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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의 시간

이수진 지음 | 원앤원북스


마흔의 시간

이수진 지음

원앤원북스 / 2024년 5월 / 240쪽 / 18,000원





마흔에 찾아온 인생의 두 번째 챕터



삶의 공허와 허무를 메우기 위한 선택


삶의 의미와 목적을 상실하고 실존적 공허감에 시달리는 이들이 가장 쉽게 빠져드는 게 중독이라고 한다. 공허, 허무, 상실감, 쓸쓸함을 메우고자 또는 숨기고자 일, 술, 도박, 게임, 마약 등 자극적인 것으로 계속해서 감각을 마비시키는 게 바로 중독이다. 돌아보면 육아의 첫 10년은 마치 육아에 중독된 듯 ‘육아홀릭’의 시간이었다. 그때 아이의 성장 단계와 시기를 제대로 알고 있었더라면, 우리가 함께하는 시간의 길이, 밀도, 유한성을 예측할 수 있었더라면 그렇게 힘들게만 보내진 않았을 텐데, 바쁜 틈틈이 10년 이후의 시간도 준비할 수 있었을 텐데….

삶에 ‘만약’이란 없다지만 늘 아쉬움이 남는다. 어느 순간 아이가 훌쩍 자라 육아에 들이는 시간과 에너지의 투입량이 줄자, 육아홀릭이었던 내게 중독보다 더 고통스러운 금단 현상이 찾아왔다. 모처럼 찾은 자유의 시간을 여유롭게 즐기며 조금씩 변화된 삶에 적응하는 선택을 할 수도 있었으련만, 이런 순간을 맞으리라 예상도 예측도 하지 못했던 그때의 난 삶의 전환점에서 당황한 채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자존심을 세우느라 도움의 손길을 구하거나 멘토 또는 롤모델을 찾아 나설 생각 역시 하지 못한 채 그저 혼자 끙끙거렸다. 갑자기 몰려든 공허와 허무에 겁먹고 압도된 나머지 한시라도 빨리 마음속 텅 빈 공간을 메우려 허겁지겁 서두르고 있었다.

이제 육아의 빈자리는 그동안 내 삶의 우선순위에서 밀려 있었던 일과 자기계발이 차지했다. 육아에 쏟는 시간이 줄어든 만큼 더 많은 시간을 일에 매달렸고, 허무를 숨기고자 그동안 미룬 자기계발에 몰두했다. 결핍의 경험 덕분에 일에서 얻는 성취감과 자기계발을 통한 성장 욕구가 얼마나 크고 강력한지 새삼 깨달았다. 부모로서 아이를 키우며 뿌듯함과 성취감을 느끼고 아이와 함께 성장하는 크나큰 경험을 했다. 하지만 ‘나’라는 독립된 존재로서 난 여전히 성장에 목말랐고, 도전과 성취로 뿌듯함과 성취감을 느끼고 싶었다.

‘육아홀릭’ 때보다 한술 더 뜬 ‘워커홀릭’에 ‘성장홀릭’의 시간을 보냈다. 일, 육아, 성장에 몰두하며 이전보다 더 정신없이 몸과 마음을 바쁘게 만들었다. 잠시나마 공허와 허무를 마음속에서 살짝 밀어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그게 좋은 선택이었는지 나쁜 선택이었는지, 아이를 돌보는 시간이 줄어드는 만큼의 공백을 채우기 위한 조급한 선택이었는지, 그도 아니면 이 또한 나를 찾는 여정을 위한 선택이었는지 알지 못한 채 인생의 두 번째 챕터 첫 장, 나를 찾는 여정은 그렇게 불안하게 시작되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삶의 우선순위 간의 조화와 균형의 최적점을 찾고 내 삶의 진정한 의미와 목적을 발견하기까지의 필수 불가결한 여정이었지만, 삶의 우회로를 돌고 돌아 나만의 트랙에 올라서기까지 또다시 긴 여정이 시작되고 있었다는 걸 그땐 알지 못했다.



일, 육아, 성장에서 프로가 되는 마흔



어른이 되기 위해 어른아이가 해야 할 질문


30대 시절을 꼬박 워킹맘으로 살았다. 어둡고 긴 터널을 홀로 걷는 듯 아득한 시간이었다. 친구들에 비해 다소 이른 결혼과 출산으로 육아와 일을 병행하며 세상에서 홀로 동떨어져 나온 듯 박탈감을 느꼈다. 여전히 자유롭고 청춘의 삶을 마음껏 즐기는 듯 보이는 또래 친구들을 보며 내가 처한 현실이 한심하고 딱해 후회와 원망의 마음이 컸다. 이 어두운 터널에 끝이란 게 있을까? 빛이 보이는 터널의 끝에 영영 가닿지 못할 것만 같아 두렵고 조급한 마음에 불안감을 키우며 스스로를 괴롭힌 날들이었다. 돌아보면 몸은 성인이 되었지만 마음은 여전히 미성숙했다. 아이도 어른도 아닌 어른아이였다.

부모가 된다는 건 자기 삶조차 챙길 능력이 없는 어른아이가 자신의 선택에 책임지고 다른 이들의 삶을 돌보며 서서히 자신의 정체성을 알아가 삶의 주체로 성숙해가는 진정한 자아 독립의 여정이 아닐까 싶다. 일터에서 서른 살 초반의 후배들을 보면 어찌나 어리고 앳돼보이는지, 언젠가 맞이할지 모를 워킹맘의 고단한 현실을 생각하면 벌써 애틋한 감정이 올라온다. 물론 시대도 환경도 바뀌었고 지금 세대는 15년 전 워킹맘의 삶을 막 시작한 어리숙했던 나와는 전혀 다르다는 걸 모르지 않는다. 지금의 그들은 훨씬 똑똑하고 야무지게 자신의 인생을 계획하고 선택할 거란 것도 잘 안다.

최근의 혼인율, 출산율, 이혼율이 좋은 반증일지도 모른다. 한 번뿐인 삶에 최선을 다하기 위한 나름의 선택일 테니 그런 추세에 대해선 긍정도 부정도 할 수 없다. 그럼에도 선배, 꼰대, 낀 세대로서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지금 그들은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삶이 존재한다는 것, 어떤 선택이든 선택의 결과보다 선택한 삶을 어떻게 살아내는가가 더 중요하고 또 결과적으로 훌륭한 선택이란 것이다.

공주와 왕자 동화보다 훨씬 더 단순한 기승전-입시와 취업이라는 세상에 살던 어른아이는 결혼이라는 문만 통과하면 이야기의 끝, 영원한 해피엔딩을 맞는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어른아이가 도착한 곳은 앨리스가 떨어진 토끼굴 속 이상한 나라처럼 상상조차 해보지 못한 결혼과 육아라는 이상한 나라였다. 이상한 나라에서 길을 잃고 헤매던 앨리스는 나무 위 고양이에게 어디로 가야 하느냐고 묻는다. 고양이는 답한다. 어디로 가길 원하는지에 달렸다고.

입시와 취업 이후의 삶에 대해, 어떤 삶을 만들어가고 싶은지 진지하게 고민해보지 않았다. 그저 흘러가는 대로 살면 되는 줄 알았다. 질문 없는 삶에는 당연히 답도 없다는 사실을 모른 채. 결혼과 출산, 육아가 가져올 삶의 큰 변화에 대해 학교에서도 책에서도 가르쳐주지 않았다고, 가르쳐주지 않았으니 몰랐다고, 몰랐으니 상상할 수 없었다고 핑계를 대며 내내 억울해하고 원망했다. 어디로 가야 하느냐고, 왜 답을 알려주지 않느냐고, 어서 빨리 답을 내놓으라고 따지기만 했다.

그러나 이 모든 게 성인으로서 내 선택이고 책임이었다는 걸 이젠 알고 있다. 혼자 똑똑한 척 살아왔지만, 어디로 가길 원하는지 내 삶에 대한 진지하고 구체적인 계획 하나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란 걸 말이다. 그러니 이제 질문을 먼저 해야 한다. ‘나는 어디로 가길 원하는가?’

내 아이가 나를 성숙한 어른으로 키웠다


육아의 첫 10년, 워킹맘의 삶을 시작하고 보낸 10년이라는 시간은 어른아이였던 나를 어른으로 성장시킨 진정한 ‘수업 시대’였다. 한 인간으로서 성숙해지고 나다운 모습으로 살아가기 위한 준비의 시간이기도 했다. 아이가 없었다면 결코 경험하지 못했을 삶의 다양한 이면과 마주하고, 인생의 희로애락을 순도 100%로 맛보고 체험하며 진짜 인생 공부를 했다. 아이를 낳고 키우며 내가 선택한 삶의 무게를 온전히 내 힘으로 감당했다. 부모로서의 의무와 헌신을 기꺼이 감당하고, 내가 누구인지 또 어디로 가고 싶은지 묻고 답하며 조금씩 내 삶의 정체성을 가진 어른이 되어갔다.

아이를 키우며 흘린 땀과 눈물의 짜고 쓴 맛을 본 뒤에야 생 앞에 겸손해지고 범사(凡事)에 감사함을 배웠다. 그렇게 조금씩 내 몸에 맞는 어른의 옷을 갖춰 입으며 성장하고 어른이 되어가는 게 진정한 삶의 모습이 아닌가 싶다. 다 때가 있다는 옛 어른들 말씀처럼, 아이를 낳고 키우며 처음으로 내가 원하는 삶을 구체적으로 그리기 시작했으니 육아의 첫 10년을 돌이켜보면 내가 내 삶의 진정한 주인으로 거듭나기 위한 진짜 성장기였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그러고 보니 나를 낳고 키운 건 부모님이지만, 나를 어른으로 만들고 성숙한 인간으로 키운 건 내 아이였다.

아르투어 쇼펜하우어는 ‘삶은 고통’이라고 말했다. 『의지의 표상으로서의 세계』에서 그는 인간의 의지가 본능적인 욕망과 욕구에 뿌리를 두고 있기에, 의지를 다지며 살아가는 인간의 삶에는 필연적으로 고통과 불만이 초래되며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은 대부분 실패할 거라고 했다. 그렇다면 삶의 의지를 꺾으려 달려드는 온갖 시련과 고난, 그 때문에 겪어야 하는 뼈아픈 고통, 고통에서 벗어나려 발버둥 치며 노력하는 시간이 모두 무소용이란 말인가? 그렇진 않을 것이다.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모든 노력이 결국 무참한 실패로 끝날지라도, 그 시간을 통해 조금은 더 성숙해지고 경험을 통해 깨달으며 더 단단해진 내가 남았으니 삶에서 완전한 실패는 없는 게 아닐까?

또한 크고 작은 시련과 고난은 나의 지극한 현실을 자각하고 직면하게 한다. 덕분에 내 안의 성장 욕구를 발견하고 더 나은 삶을 향한 의지와 전투력을 상승시키기도 한다. 나라는 칼날을 날카롭게 벼릴 계기를 만나고 나라는 그릇을 키울 기회를 얻었다면, 삶의 긴 호흡으로 봤을 때 값을 따질 수 없는 소득일 것이다. 달콤 씁쓰름한 초콜릿 같은 시련과 고통에서 삶의 의미를 찾고 나아가 성장의 동력으로 삼는다면 삶에서 완전한 실패도, 전적으로 나쁜 시련도 없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어느 날 또다시 시련과 고난이 내 방문을 두드린다면 두려워하지도 도망치려 애쓰지도 않을 것이다. ‘대체 왜 또 찾아온 건데? 왜 나한테만 이러는 건데!’라며 볼멘소리를 내뱉을 수는 있겠지만 기꺼이 방문을 활짝 열어주고 정면으로 마주할 것이다. 무법자처럼 들이닥쳐 온 방을 제집처럼 차지하고 앉은 시련과 고난이 제풀에 지쳐 스스로 방문을 열고 나갈 때까지 ‘이 또한 지나가리라’를 되뇌며 나 또한 내 방에서 버티고 견딜 것이다. 그렇게 삶을 계속해서 살아갈 것이다. 내 의지와 욕망이 불러들인 시련과 고통, 노력의 3종 세트를 연마제 삼아 무뎌진 칼날을 다시 날카롭게 벼리며 ‘잘 봐,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시련이었어!’를 외칠 것이다.

내가 지금 서 있는 여기에서부터 새롭게, 다시 시작하겠다는 마음으로 시련이 지나갈 때까지. 시련의 끝에 닿을 때까지 시련과 고통이 내게 찾아온 의미를 찾으며 지금 이 순간을 기어코 지난날의 추억으로 만들 것이다. 돌이켜보면 득도 많았다. 시련 덕분에 삶의 깊이와 넓이를 배웠고, 결핍 덕분에 내 안의 잠든 욕구를 일깨웠으니 말이다. 흔들림 속에서 점점 더 단단해지고, 아픔과 고통 속에서 지혜와 통찰을 얻으며 나만의 색과 모양을 갖춘 ‘나다움’의 모습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현재에 집중하며 한계를 넓혀가고, 그리하여 시련의 시간이 나를 다듬고 담금질하며 키워가는 수련의 시간이 되도록 만들고야 마는 것. 그것이 바로 ‘나’라는 사람의 고유한 정체성을 가진, 나다운 삶이자 내 의지로 지속 성장하는 삶의 모습이리라. 인생을 산다는 건 결국 태도의 문제일지 모른다. 삶에서 겪는 다양한 시련과 고통을 성숙한 삶을 위한 성장통이라 생각하고, 삶이란 나라는 사람의 성장 소설을 의미 있게 만드는 여정이라 생각한다면 그 또한 의미 있는 과정일 테니 말이다.



마흔의 성공에 이르는 나만의 비법



우연처럼 찾아온 기회를 거머쥘 기동력


워킹맘의 성공 비법은 삶의 ‘기동력’을 높이는 것이다. 겉보기에는 하루아침에 이뤄진 성공과 날벼락 같은 행운도 이면을 들여다보면 성실함과 꾸준함, 인내심으로 쌓아온 노력의 시간이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리고 어느 날 내 삶의 궤도가 우연처럼 찾아온 기회를 거머쥘 때 성공은 만들어진다. 그 우연 같은 기회를 알아보는 눈과 재빠르게 잡아챌 수 있는 근력은 일상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운용하는지에 달려 있다.

삶을 레버리지하라:
워킹맘의 재테크는 시테크다. 조금이라도 나의 시간과 에너지 절약에 도움을 준다면 제품이든 서비스든 과감히 투자해 적은 노력으로 큰 결과를 얻어야 한다. 영화에서처럼 내 분신이 두 개, 세 개 있었으면 싶은 일-육아 병행 라이프에선 시간 운용 자체가 불가능하다 싶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하루 24시간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낭비되는 시간은 늘 있기 마련이다. 그 말인즉, 레버리지(Leverage, 적은 힘으로 높은 효율을 추구하는 행위)할 수 있는 시간 역시 많다는 뜻이다.

가장 쉽고 빠르게 레버리지할 수 있는 건 가사에 쏟는 시간이다. 가사에 쏟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퇴근 후 곧바로 육아 출근을 해야 하는 워킹맘에게 길든 짧든, 많든 적든 가사 자체가 부담이고 스트레스다. 스마트 기기나 가사도우미 서비스 등 가사 업무를 위임하고 그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방법을 찾아라. 가사 효율을 높이는 가전제품과 관련해선 트렌드를 앞서는 얼리어답터가 되어라. 퇴근 후 1분이라도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을 벌 수 있다면 충분히 값어치를 한 것이다.

멀티플레이어의 환상을 버려라:
뇌과학적으로 멀티플레이가 불가능하다는 건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한 번에 한 가지 일에 집중할 때 효율성이 높아지는 게 당연하다. 워킹맘이 멀티플레이를 잘하는 것처럼 보이는 건 절박함 속에서 분초 단위로 우선순위를 바꾸는 기민함과 민첩성, 그리고 높은 상황 대응력 덕분이다. 선택과 집중, 전환의 과정이 순식간에 일어나 마치 멀티플레이를 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하지만 긴장감 속에서 높은 집중력을 계속해서 유지해야 하는 삶은 터지기 직전의 풍선처럼 위태롭다. 그런 삶은 결코 지속 가능하지 않다.

일, 육아, 성장이라는 세 가지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 슈퍼 워킹맘으로 진화해왔지만, 우리는 하루 7~8시간 자고 삼시 세끼를 잘 챙겨 먹고 일과 육아에서 자유로운 온전한 쉼의 시간을 가지며 에너지를 충전해야 건강한 삶을 유지할 수 있는 평범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의지와 노력으로 만들어진 슈퍼 워킹맘이지, 초능력과 불멸의 신체를 타고난 슈퍼 히어로는 아니란 얘기다. 그러니 멀티플레이어의 환상을 버리고 내 신체적, 정신적, 정서적 한계를 정확히 알고 우선순위를 관리하며 삶의 효율성과 기동성을 높여가야 할 것이다.

체력부터 장착하라:
육아 로드맵은 아이와 내가 함께 뛰는 마라톤 경주와 같다. 모든 여정을 끝까지 완주하기 위해 체력은 워킹맘의 필수템이다. 드라마 <미생>에서 사범님이 장그래에게 해준 말 ‘일하듯, 공부하듯 체력을 길러라’는 15년 전, 워킹맘의 삶을 막 시작한 내게도 꼭 해주고 싶은 말이다. 내가 원하는 걸 얻고 싶다면, 원하는 삶을 지속하고 싶다면 먼저 체력부터 키워야 한다.

체력 관리의 기본은 잘 먹고 잘 자고 규칙적으로 운동하는 것이다. 할리우드 배우들의 심리상담사로 유명한 필 스터츠는 삶의 원동력을 내 육체와의 관계, 사람들과의 관계, 나 자신과의 관계로 나눈다. 그중 가장 기본은 내 육체와의 관계, 바로 체력 관리다.

나쁜 영양 상태와 부족한 수면, 지속적인 체력 저하로 만성 피로, 우울감, 불안감을 달고 사는 것도 문제지만 진짜 큰 문제는 아이가 엄마의 위태로운 건강 상태에 고스란히 노출된다는 것이다. 엄마의 체력이 무너지면 아이의 건강한 삶도 함께 무너진다는 걸 잊지 말자. 그렇다면 워킹맘 체력을 장착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첫째, 잘 먹는 게 힘이다. 먹는 게 남는 거라지 않던가? 엄마가 아이의 성장 단계에 맞춰 영양 밸런스를 맞춘 식단을 고민하듯,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변화하는 내 몸에 대해서도 꾸준히 공부하며 식단을 관리해야 한다. 마흔이 되면 젊은 시절 했던 굶는 다이어트와 불균형한 식습관으로는 더 이상 건강을 유지할 수 없다는 걸 여실히 깨닫는다. 건강한 에너지와 활력은 자연에서 유래한 건강한 음식에서 얻을 수 있다. 우유, 계란 등 단백질을 보충하고, 식이섬유를 섭취해 장 건강을 관리하고, 간헐적 단식과 클렌즈 등 체질에 맞는 영양 구성과 식습관의 변화를 꾸준히 시도한다.

둘째, 잠이 보약이다. 인간은 하루 일고여덟 시간은 자야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수면의 양뿐만 아니라 질도 중요하다. 특히 나이가 들수록 수면의 질이 떨어지므로 숙면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잠자기 전 컴퓨터나 핸드폰 사용을 자제하고 깨끗한 침구, 어두운 조명, 암막 커튼 설치 등 수면 환경 조성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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