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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에 다시 읽는 이솝우화

강상구 지음 | 원앤원북스


오십에 다시 읽는 이솝우화

강상구 지음

원앤원북스 / 2024년 4월 / 332쪽 / 18,500원





제1장 지나친 욕심은 독이다



남의 것이 아닌 내 것에 집중하자


<갈까마귀와 비둘기>

갈까마귀 한 마리가 집에서 잘 먹고 지내는 비둘기를 보고, 먹이를 얻어먹기 위해 자기의 깃털을 하얗게 칠하고 나타났다. 갈까마귀가 조용히 있자 비둘기는 갈까마귀를 자기의 무리로 여겼다. 그러던 어느 날 갈까마귀가 울음소리를 냈다. 비둘기들은 낯선 소리를 듣고는 갈까마귀를 쫓아냈고, 갈까마귀는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갈까마귀 무리들은 하얗게 변해버린 갈까마귀를 알아보지 못하고 무리에 끼워주지 않았다. 결국 양쪽 먹이를 원했던 갈까마귀는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했다.

필자가 채용 면접을 할 때 20대와 30대 중반의 지원자가 함께 있는 경우를 볼 때가 있다. 모집 요강에는 ‘해당 분야 이외의 경력은 인정하지 않는다’라는 조항이 있음에도 30대 중반의 지원자가 새로운 분야에 지원한다. 30대 중반이라면 대개 직장생활을 5년에서 많게는 10년 정도 했을 것이다. 만약 한 직장에서 10년간 근무했다면 관리자급이나 전문가가 되었을 것이다. 보수도 10년이라는 경력에 걸맞게 받을 것이고 말이다. 그런데 직장을 자주 옮기면 전문성을 쌓을 시간이 줄어 이직을 할 때마다 경력을 인정받지 못하고 신입 대우를 받는다.

면접자에게 회사를 지원한 사유를 물어보면 대개는 이렇게 대답한다. “이전 직장에 비전이 없었다거나 업무가 적성에 맞지 않았다”라고 말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이 지금 입사하려는 회사에도 비전이 있는지, 업무가 적성에 맞을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들이 착각하는 것이 있다. 바로 ‘비전이란 누군가가 만들어주는 것이고, 누군가가 자기의 적성을 발견해서 그 적성에 맞는 일을 맡겨야 한다’는 생각이다.

갈까마귀의 사냥 능력과 활동 범위를 비둘기가 따라올 수 없다. 그런데 우화에서 갈까마귀는 본인의 강점은 까맣게 잊고, 먹이를 쪼아먹고 있는 비둘기를 부러워했다. 그리고 비둘기의 집단에 들어가 자신의 강점을 사장시키고 만다.

30대 중반의 경력자가 학교를 갓 졸업한 20대 청년이나 사회초년생과 일하는 것은 비둘기로 변장한 까마귀 이야기와 다를 바 없다. 당장은 만족하더라도 사회 경험은 어떻게 할 것이고, 나이 차이는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세대 차이로 인한 갈등은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비록 업무가 마음에 안 들더라도 이전의 일을 꾸준히 했다면 나름의 기술을 습득했을 것이다. 그 안에서 잘하는 것을 찾고 비전을 발견했다면, 다시 초년생이 되는 수고로움은 면하지 않을까?

남의 떡이 커 보이고, 이웃집의 잔디가 더 푸르게 보일 때가 있다. 막상 내가 갖고 있을 때는 존재감 없던 물건도 다른 사람이 갖고 있으면 좋게 보인다. 비교하는 순간, 부러움 때문에 갖고 싶다는 욕망이 생긴다. 내 손에 든 것은 안 보이고 다른 사람의 손에 든 것만 보인다. 자기 장점보다 다른 사람의 장점만 보인다. 자기 손에 쥔 것은 하찮게 보이고, 다른 사람이 쥔 것은 귀하게 보인다. 그런데 상대방은 어떻게 생각할까? 상대방도 당신이 가진 것을 부러워한다는 사실을 명심하길 바란다. 우화 속의 비둘기는 갈까마귀가 안 부러웠을까?



제2장 자존감, 나를 지켜내는 힘이다



자신의 본분에 충실하자


<뱀의 꼬리와 몸>

어느 날 뱀의 꼬리가 “이제부터 머리 역할을 하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몸의 다른 부분들이 우려하며 이렇게 말했다. “너는 눈도 없고 코도 없는데, 어떻게 우리를 데리고 가겠다는 말이니?” 꼬리는 이 말을 듣고도 아랑곳하지 않고, 앞장서서 몸을 아무렇게나 끌고 갔다. 그 결과 뱀은 돌무더기 구멍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뱀은 등뼈가 부러지고 온몸에 상처가 났다. 그러자 꼬리가 머리에게 아침을 떨며 애원했다. “주인님! 우리를 좀 구해주세요. 당신과 겨루려고 한 건 제 잘못이에요.”

인도에는 오래전부터 카스트 제도가 있다. 승려 계급인 브라만, 귀족과 무사 계급인 크샤트리아, 평민 계급인 바이샤, 노예 계급인 수드라로 나뉜다. 카스트 제도는 본래 계급의식보다는 분업에 목적을 뒀다. 각자의 일을 전문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같은 계급끼리 혼인한 것이다. 같은 일을 하는 사람끼리 혼인하면 시너지 효과가 나올 거라 기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그 의도가 변질되었다. 그러면서 조선시대처럼 귀천을 구분 짓는 계급제도로 바뀌었다.

축구 공격수가 관중의 환호를 받는다고 해서 골키퍼가 골대를 비워두면 누가 슈팅을 막아내겠는가? 어떤 감독이 이런 선수를 그라운드에 내보내겠는가? 자기 일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면서 다른 일만 넘보고 있다면 어떤 사장이 이런 직원에게 일을 주겠는가? 지금 엉뚱한 곳에 한눈팔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자. 다른 사람의 업무를 부러워하다가 당신 자리가 없어질 것을 생각해보았는가? 가장의 자리가 힘들다고 그 자리를 내팽개치면 가족은 어떻게 될 것인가?

머리와 꼬리는 서로 다른 본분이 있다. 그저 꼬리가 싫다는 이유로 머리가 되고 싶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호랑이 꼬리가 될까, 닭 머리가 될까 고민하는가? 그런데 무엇이 되었든 그것이 당신의 본분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어떻게 할지 모르겠다면 당신이 원하는 것을 한번 시도해보라. 다만 결과가 뻔하고 답이 분명하다면 본분에 충실하라. 그제야 성공의 길이 보일 것이다.

직업에도 계급제도처럼 차이가 있을까? 대통령과 환경미화원의 차이는 무엇일까? 직업의 귀천은 어떻게 판단할까? 그리고 직업에 대한 가치관과 선호도에 따라 어떻게 달라질까? 모든 사람이 사회적 지위에 연연해 고위 관직에만 매달린다면 사회는 어떻게 돌아가겠는가? 모든 사람이 돈이 최고라며 돈 되는 일에만 매달리면 세상은 얼마나 삭막해질까? 뱀의 꼬리처럼 자기 역할은 잊은 채 모두 머리가 되겠다고 나서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



제3장 자만하지 말고 계속 도전하기



이겼다고 자만하지 말고, 졌다고 포기하지 마라


<수탉 두 마리와 독수리>

수탉 두 마리가 암탉들을 차지하려고 싸우고 있었다. 그 결과 한 마리가 다른 한 마리를 내쫓았고, 패자는 덤불숲에 숨었다. 승자는 하늘로 오르더니 높은 담장에 앉아 목청껏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때 독수리 한 마리가 그 수탉을 잡아채갔다. 그러자 숨어 있던 수탉이 모든 암탉을 차지했다.

천신만고 끝에 마지막 상대를 누르고 올림픽에서 금메달이 확정되는 순간, 승리한 선수는 감격에 겨워 눈물을 펑펑 쏟는다. 그리고 세상을 다 얻은 듯한 표정으로 국기를 몸에 두르고 손을 흔들며 경기장을 한 바퀴 돈다. 관중들도 승자의 손짓에 환호하며 함께 기뻐하고 축하한다. 올림픽이 끝나더라도 다음 올림픽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 승리한 선수들은 이 순간의 감동을 다음에도 맛보리라 생각하며, 더 열심히 훈련하겠노라 다짐한다. 그러나 세상은 승자가 자기 일에 몰두하도록 가만두지 않는다. 승리의 기쁨을 함께 나누자며 방송국에서 초청하기도 한다. 그들의 초청에 응하다보면 승자는 의도치 않게 훈련을 게을리 하기도 한다. 선수로서의 자세를 잊은 것이다.

승자들이 성공의 기쁨을 맛볼 때 패자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절치부심하며 훈련에 몰입해 칼을 간다. 게다가 신진 선수들은 새로운 기술과 힘으로 무장해, 위로 치고 올라가고자 훈련한다. 국가대표 선발전이 시작되면 한때 승리의 기쁨을 누렸던 선수는 무명 선수에게 패하고, 올림픽 무대도 밟지 못하는 불운을 겪기도 한다.

누구든지 승리의 기쁨을 맛보고 싶어 한다. 승자는 자신을 능가할 선수가 없다고 생각한다. 승리의 기쁨에 도취되어 성공의 뒷면에 실패의 그림자도 있다는 사실을 깜박 잊어버리기도 한다. 물론 기쁨을 표현하는 일이 비난받을 일은 아니다. 자신의 가치가 긍정적으로 인정받음을 기뻐하고 꾸밈없이 표현할 뿐이다. 그러나 계속해서 영광을 누리고 올라간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패배의 아픔을 달래는 또 다른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신기록이란, 사실 수립된 순간부터 ‘깨지기를 기다리는 기록’일 뿐이다. 패자는 영원한 패자가 아니고, 승자도 영원한 승자가 아니다.

앞서가는 사람은 사냥의 표적이 되어서 언제, 어디서 화살을 맞고 거꾸러질지 모른다. 도처에는 도전이 기다리고 있고 신기술은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모른다. 패배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 말을 명심하라. 절대로 포기하지 마라. 승자는 자만심 때문에 몰락할 수도 있고, 다른 강자가 나타났을 때 자리를 내주어야 할 수도 있다. 절치부심하는 자세로 ‘승리’라는 목표를 향해 나아가라. 승리의 여신은 당신에게 손을 내밀고 있다는 것, 그리고 당신이 그 손을 잡아주길 언제나 기다린다는 것을 기억하라. 먹구름 위에는 밝게 빛나는 태양과 청명한 하늘이 있다는 것도 잊지 마라.

인생의 승리자가 되고 싶은가? 그렇다면 이겼다고 자만하지 말고. 졌다고 포기하지 마라. 그리고 도전하고 도전하라. 도전하지 않는 자는 어제의 패배를 설욕할 수 없다. 두려움을 동반자로 삼고 담대함으로 앞길의 장애물을 걷어차라. 울타리를 뛰어넘을 때야말로 또 다른 세상을 만날 수 있다. 울타리를 넘어갈 때 푸른 초원이 눈앞에 보이고 새로운 인생이 펼쳐질 것이다.



제4장 사람들의 원망을 사지 않는 법



서로 다름을 인정하자


<염소와 당나귀>

한 사람이 염소 한 마리와 당나귀 한 마리를 기르고 있었다. 염소는 당나귀가 맛있는 먹이를 먹는 게 부러웠다. 그래서 당나귀에게 이렇게 말했다. “무거운 짐을 지고 맷돌을 돌려야 하는 네 삶의 고통이 끝이 없구나.” 염소는 당나귀에게 병에 걸린 척하고 쓰러지면 쉴 수 있을 거라 충고했다. 이 말을 들은 당나귀는 쓰러졌고, 이때 몸을 다쳤다. 당나귀를 치료하려고 온 수의사는 염소의 허파를 달여 먹으면 나을 거라고 했다. 결국 염소는 죽고 말았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말을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주변 사람에게 좋은 일이 생기면 보통 이런 갈등을 한다. 한 쪽에서는 축하해주고 싶은 마음, 또 다른 쪽에서는 시기하는 마음이 소록소록 솟아나는 것이다.

우리는 상대적인 평가 속에서 자라왔다. 학교에서, 직장에서, 사회에서 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성적, 재산, 학력, 집안 등 여러 가지 잣대로 평가를 당한다. 평가 때문에 ‘먹고살 만한’ 사람들도 만족하지 못한다. 더 많은 것을 가지려 발버둥 치고, 자신이 불행하다며 불평을 한다. 반면 궁핍하거나 장애가 있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처지에 있는 사람이 오히려 자기보다 더 어려운 사람도 있다며 ‘살아 있음’ 그 자체에 감사하고 행복해 하는 경우도 있다. 세상살이는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한다.

사람들은 대개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고, 이웃집 아들의 성적이 좋으면 자기 아들을 닦달한다. 서로를 비교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의 손에 있는 떡이 더 커보이고, 이웃집 잔디밭이 더 푸르게 보인다. 나는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이웃집 사람은 여유롭게 고급 외제차를 타고 다니며 노는 것 같다. 그래서 비위에 거슬린다. 이유가 무엇일까? 상대에 비해 자기가 부족해 보여서, 자존심에 상처를 입어서 그렇다. 결국 상처받은 자존심을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 하지만, 약 오르게도 상대방은 더 빠르게 내달린다. 힘껏 달리지만 오히려 더 멀어지는 격차 때문에 추격의 의지는 꺾이고 좌절한다.

머리를 굴려서 여러 방법을 써보며 쫓아가지만 무용지물이다. 그제야 우화의 염소처럼 잔머리를 굴린다. 조언하는 척하면서 상대방을 골탕 먹이거나 불가능한 방법을 제시해 상대를 곤란에 빠뜨린다. 그런데 잔머리는 잔머리일 뿐이다. 잔머리 때문에 오히려 신용을 잃고 상대방이 피하는 처지가 된다. 물론 남의 손에 있는 떡이 더 보인다고 해서 내 가치관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할 일은 아니다. 부러움은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다만 상대를 시기하거나 잔머리를 굴리지 말라는 뜻이다.

우화의 염소처럼 잘못된 생각 때문에 손해 보는 것만 아니라면 잔머리도 일종의 ‘촉진제’가 될 수 있다. 삶의 촉진제를 갖고 싶다면 각자 처한 현실과 역할이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나와 네가 서로 다른 존재임을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 내가 해야 할 일이 분명히 보인다.



제5장 타인과 공존하는 삶



호의도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


<제우스와 거북>

제우스는 결혼 축하연에 모든 동물들을 초대했다. 그런데 거북이만 오지 않았다. 다음 날, 이를 의아하게 여긴 제우스가 거북에게 물었다. “왜 너만 향연에 오지 않았느냐?” 그러자 거북이 대답했다. “우리 집이 최고이니까요.” 화가 난 제우스는 거북이 어디를 가든 등에 집을 지게끔 만들었다.

“젊어 보입니다”라는 인사를 받으면 “그렇게 봐주시니 고맙습니다”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에이, 젊긴 뭐가 젊어요. 폭삭 늙었는데”라며 부정하는 사람도 있다. 선물을 받고서는 “갖고 싶었던 것이에요”라며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별 쓸모도 없는 걸 사느라 돈을 낭비했네요”라며 핀잔을 주는 사람도 있다. 동일한 호의인데 긍정적으로 반응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부정적으로 표현하는 사람들이 있다.

긍정적으로 반응하는 사람들은 대개 호의를 베푸는 일에 능숙하다. 반면 부정적으로 반응하는 사람들은 호의를 베푸는 일에 익숙하지 않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잘 먹는다”라는 말처럼 베풀기를 잘하는 사람이 호의도 잘 받아들인다.

사람들과 만나기보다는 혼자 생활하는 것을 즐기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대개 혼자 있을 때 편안해하고 여러 사람과 어울리는 것을 불편해한다. 혼자일지언정 재미있게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세상은 구조적으로 혼자 살기 힘든 곳이다.

우리는 가족관계 안에서 성장하고 이웃과 더불어 생활한다.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란 말이다. 관계 속에서 태어났기에 아무리 독야청청하려 해도 불가능하다. 두문불출하고 세상과 인연을 끊어버린다면 모르겠지만, ‘먹고살려면’ 자연이 베푸는 호의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며 세상과 어울릴 수밖에 없다.

내가 베푼 호의를 상대가 묵살한다면 어떤 기분일까? 상대의 호의를 내가 묵살했다면 상대방의 마음은 어떻겠는가? 우화에서 거북은 제우스의 초청에 말없이 참가하지 않았다. 게다가 그 이유를 묻는 제우스에게 “집보다 더 좋은 것이 어디 있느냐”며 호의를 무시했다.

그런데 거북이 참석하지 못할 이유를 미리 말했다면 어땠을까? 제우스가 물었을 때 다른 방식으로 대답했다면 거북에게 무거운 짐을 지게 했을까? 바쁘고 복잡한 일상이지만 누군가 나에게 호의를 베풀면 잠깐이라도 고마움을 표하자. 상대의 호의를 긍정적으로 수용하고 나 역시 호의를 베푼다면, 우호적인 관계가 만들어질 것이다.



제6장 사람을 잘 가려서 만나는 법



지나친 호의는 경계하라


<염소 지기와 야생 염소>

염소 지기가 염소들 틈에 야생 염소들이 섞여 있는 것을 보았다. 해가 저물자 염소 지기는 염소들을 동굴에 몰아넣었다. 염소 지기는 자신의 염소에게 죽지 않을 만큼 꼴을 한 줌씩 먹였고, 새로 온 염소에게는 길들일 요량으로 먹이를 넉넉히 주었다. 그런데 날이 밝아 산에 오르자 야생 염소들이 달아났다. 염소 지기는 야생염소들이 배은망덕하다며 비난했다. 그러자 야생 염소들이 돌아서며 대답했다. “당신은 원래 있던 애들보다 우리에게 훨씬 잘해주었어요. 만약 다른 염소들이 온다면 당신은 분명 우리를 홀대하겠지요.”

종종 뇌물수수 사건으로 검찰에 불려가 심문을 받는 정치인의 뉴스를 접하곤 한다. 그들은 뇌물을 준 사람을 만난 적도 없다거나 만났다 해도 금품을 받은 적 없다며 펄쩍 뛴다. 그런데 수사 결과, 그들의 관계가 드러나고 변명이 거짓으로 판명나곤 한다. 정치인에게 아무 이유 없이 거액의 현금을 가져다주는 사람이 있을까? 분명 의도가 있지 않겠는가? 물론 보답 차원에서 베푸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다만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 돈뭉치를 가져와 그냥 쓰라고 한다면 이를 순수하게 볼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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