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여는 듣기의 힘
아가와 사와코 지음 | 지니의서재
마음을 여는 듣기의 힘
아가와 사와코 지음
지니의서재 / 2023년 11월 / 256쪽 / 17,800원
당신은 들을 줄 아는 사람인가요
입이 절로 열리게 하라
이야기하고 싶게 만들어라: 편집장에게 ‘아가와다운 대담’을 하라는 말을 듣고 어떤 일화가 떠올랐다. 시로야마 작가 앞에서 내 이야기를 늘어놓았던 것이다. 이 부분만 보면 인터뷰어로서 실격이다. 하지만 늘 그랬던 것은 아니다. 소설가 가이코 겐과의 인터뷰는 달랐다. 줄곧 가이코 작가의 독무대였고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기만 하면 됐다. 이런 경험을 거친 뒤 시로야마 작가를 만난 것이다.
어쨌든 두 번 다 인터뷰어로서 한심한 모습을 보여줬다. 가이코 작가 앞에서는 꿀 먹은 벙어리, 시로야마 작가 앞에서는 수다쟁이. 나중에야 가이코 작가는 ‘말할’ 줄 아는 사람이고, 시로야마 작가는 ‘들을’ 줄 아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시로야마 작가는 날카로운 추궁이나 의표를 찌르는 질문은 없었다. 그저 “그렇군요.”, “그래서요?”라고 한마디를 던지고 나서 웃었을 뿐이다. 재밌다는 표정으로 내 이야기를 차분히 들어줬다. ‘그렇구나!’ 인터뷰는 상대를 몰아붙이는 방식만이 전부가 아니었다. 상대가 스스로 ‘이야기하고 싶다’라고 느끼게 해주는 것 또한 훌륭한 자질이다. 그래서 나는 ‘내 이야기를 재밌게 들어주는데 무슨 이야기든 못 하겠어!’라는 느낌을 전달하며 인터뷰를 하겠다고 다짐했다.
풍부한 지식과 교양을 갖췄으면서도 온화하고 다정다감한 모습을 보인 시로야마 작가. 그와 비교할 순 없지만, 상대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듣는 일 정도는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궁지에 몰린 끝에 ‘시로야마 작가 본받기’라는 목표가 생겼다.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실낱같은 용기가 솟아났다.
이야기에 집중하면 그 속에 질문거리가 있다
질문은 세 개면 충분하다: 초보 시절, 선배 아나운서의 저서에서 흥미로운 내용을 발견했다. “인터뷰할 때 질문은 하나만 준비하세요. 그 자리에서 다음 질문을 생각해내야 합니다. 다음 질문을 찾기 위한 힌트는 첫 번째 질문에 대한 상대의 답변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바로 그거구나!’ 눈이 번쩍하고 떠졌다. 질문한다. 답변을 듣는다. 답변에서 의문점을 찾아 다음 질문을 한다. 다시 답변을 듣는다. 꼬리에 꼬리를 물듯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가는 인터뷰가 중요하다는 의미였다.
예를 들어 게스트가 “지금은 별로 고민이 없어요.”라고 답했다고 하자. 다음 질문이 떠오르지 않는가? “이전에는 고민이 많았다는 거군요? 어떻게 이겨내셨나요? 전에는 주로 어떤 고민을 했나요?” 얼마든지 질문거리를 찾을 수 있다. 말하는 쪽도 “지금은 별로 고민이 없어요.”라고 말했을 때는 나름 여러 가지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요즘에는 특별한 고민이 없어. 왜일까? 예전에는 참 힘들었는데…. 아마도 그분의 충고가 날 강하게 만들어줬을 거야.’ 이런 기분에 잠긴 상대에게 다음 질문으로 “좋아하는 색은 뭔가요?”라고 물으면 머릿속이 뒤죽박죽 엉망이 될 게 뻔하다. 반면, 답변과 관련된 내용을 다음 질문으로 던지면 풍성하고 일관성 있는 이야기로 이끌 수 있다.
아무리 그래도 ‘질문은 한 개만 준비하라’는 선배의 가르침을 곧장 실천할 수는 없었다. 대신 질문지의 항목을 줄여나갔다. 지금은 질문을 머릿속에 세 개 정도 준비해서 인터뷰한다. 자료를 살펴보며 게스트의 삶, 생각, 인간관계 등을 조사한다. 그리고 ‘이 일을 물어보면 재미있겠어.’, ‘왜 항상 큰 소리로 이야기할까?’, ‘어릴 때 키워 준 할머니의 영향이 컸을지 몰라.’ 등과 같이 궁금한 점을 중심으로 ‘데뷔 전 방황기’, ‘큰 목소리의 비밀’, ‘할머니’라는 세 가지 주제로 간추린다. 다만 어떻게 될지는 실제로 만나보지 않고는 알 수 없다. 할머니의 영향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아버지와 재회에서 받은 가르침이 자극이 되었을 수 있다. 이럴 때는 그 자리에서 계획을 바꿔 아버지의 이야기를 집중해서 듣고 다음 질문을 한다.
질문을 몇 개를 준비하든 상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게 중요하다. 어려운 주제를 논할 때나 이름이 기억나지 않을 때를 고려해 작은 메모지 등을 준비할 때를 제외하고는 가능한 한 질문지를 준비하지 않는다. 질문지가 있으면 시선이 그쪽으로 가게 마련이고, 인터뷰할 때 질문지를 힐끔거리며 불안한 모습을 보이면 게스트도 불안해진다. 기분 나쁘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일대일로 나누는 대화는 생각보다 섬세한 행위다. 눈빛 하나, 호흡 하나가 ‘나와 이야기하는 게 즐겁지 않나?’라는 의심을 불러온다. 이런 불안감을 상대에게 주지 않기 위해서 나는 가능한 한 불필요한 요소를 배제하고 ‘대화’에만 집중한다. ‘나는 당신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있어요.’라는 태도가 대화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사소한 행동에서 대화의 소재가 발견된다영화
의 감독과 주연을 맡아 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기타노 다케시 감독과 인터뷰했을 때의 일이다. 나는 코미디언에서 영화감독으로 변신한 그의 ‘변화의 삶’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갈 작정이었다. 물론 그가 당한 오토바이 사고 이야기도 물어보려고 했다. 자리에 앉아 인사를 나누는데 매니저가 기타노 감독 앞에 물수건을 건넸다. 이 점이 의아해서 첫 질문부터 궤도를 벗어나고 말았다. “물수건을 항상 가지고 다니시나 보죠?” “아, 네. 눈이 금세 건조해지거든요.” 3년 전 오토바이 사고의 후유증으로 눈이 건조해서 물수건이나 안약을 지참했던 것이다.
상대방에 대한 세심한 관찰이 필요하다: 사람들은 기타노 감독이 사고를 극복했다고 믿었지만 본인은 아직 신체적 정신적으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바로 화제를 바꿔 원래 준비한 이야기를 질문할 수도 있었지만, 궁금증이 발동했다. 그래서 사고 후유증에 관한 질문을 계속했다. “주위 사람들은 다 나았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그 사고로 기타노 다케시는 끝났다고까지 생각했으니까.” 순간 판도라의 상자를 연 듯한 기분이 들었다. 기타노 감독의 이야기를 묵묵히 들었다. “사고 전에는 꽃집이 있어도 그냥 지나쳤는데 요즘은 가던 길을 멈추고 넋 놓고 꽃을 보고 있을 때가 있어요. 언젠가는 부엌에서 식칼을 쥐고 한동안 생각에 잠긴 적도 있었어요. 하지만 용기가 없어서….”
앗, 이건 특종인가? 아니면 사람들이 아는 이야기일까? 혼란스러워졌다. 그 와중에 사고 후 기타노 감독의 모습이 내가 마지막에 물으려고 했던 영화 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했다. 배우 오스기 렌이 연기한, 휠체어 생활을 하게 된 형사가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꽃집 앞에서 멍하니 꽃을 바라보던 장면. 그러다가 꽃을 사 들고 와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림에 열중하면서 새로운 삶의 의욕을 되찾는다. 즉 는 기타노 감독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영화였다. 예기치 않은 질문이 사고 후 심경으로 시작해 영화 이야기로 절묘하게 이어진 것은 나의 능숙한 유도 때문이 아니다. 기타노 감독 스스로가 마음 가는 대로 이야기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내게 공이 있다면 ‘물수건’에 관심을 보인 것뿐이다. 이후는 기타노 감독의 이야기에 맞장구를 쳐주는 정도가 전부였다.
마음에 여백을 가져보라: 가수 하기하라 겐이치와의 인터뷰도 예기치 않게 성공했다. 그는 시코쿠 지방의 88개 사찰을 순전히 도보로만 순례하고 돌아온 뒤였다. 하기하라 씨는 이 순례 이야기를 하고 싶다며 전해 왔다. 인터뷰 스텝은 다소 망설였다. 순례 이야기도 좋지만 좀 약하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일단 순례 에피소드로 시작한 뒤 그룹사운드 시절의 이야기로 화제를 돌리자고 했다.
인터뷰 당일, 일정대로 하기하라 씨를 만났다. “순례를 다녀오셨다면서요?” 이 질문으로 시작된 그의 순례 이야기는 마치 재미있는 영화 한 편을 보는 듯했다. “시작할 때는 소원이 많았어요. 근데 나중에는 아무 생각이 안 나더라고요. 내 소원 따위는 생각나지 않고 마음이 정화되더군요. 살면서 처음으로 잘했다며 나를 칭찬했어요.” 순례담은 하기하라 씨의 인생 그 자체였고 그래서 더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인터뷰 말미에 그룹사운드 시절의 이야기와 신작 영화 이야기도 나눴지만, 순례담에 압도되어 감흥이 없었다. 이때 다짐한 바가 있다. 앞으로 내가 이야기 ‘주제’를 정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미리 상대를 예단하고, 듣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대로 선택하는 짓이 얼마나 위험한가. 그날 절실히 깨달았다.
상투적인 반응이 대화를 망친다
인터뷰를 하다 보면 ‘고난을 이기게 해준 말’이 있다는 게스트를 종종 만난다. 정치가 요시이에 히로유키가 그랬다. 불량 청소년이었던 그는 정신을 차리고 공부에 매진하던 중 오토바이 사고를 당했다. ‘역시 나는 안 되는구나.’ 생사의 갈림길에서 자포자기한 채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 고등학교 때 선생님이 그를 찾아왔다. “죽으면 안 돼. 넌 나의 꿈이란다.” 이 한마디에 요시이에 씨는 삶의 의욕을 되찾았다고 한다.
도대체 어떻게 그런 말을 생각해낼 수 있었을까. 왜 이 말이 히로유키 씨의 마음을 변화시켰을까. 그 기적 같은 말의 위력에 압도되어 두 사람이 마주하고 있었을 병실의 광경을 그려봤다. 듣는 이가 상대의 이야기에 지나치게 감정이입하면 문제가 될 수도 있지만, 상대의 이야기를 영화 속 장면처럼 받아들이면 이야기가 이해되고 새롭게 보이는 것들이 생겨난다.
하지만 아무리 자신의 경험에 빗대어 감정이입하고 감동하더라도 “당신이 어떤 심정인지 전부 이해할 수 있어요. 그럼요. 다 알고말고요.”와 같은 일은 일어날 수 없다. 그렇게 될 리가 없다. 상대와 완전히 똑같은 경험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다 안다’라고 반응하면 상대는 이야기할 맛을 잃는다. 특히 ‘진심 어린 말’로 구원받아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섣부른 위로에 담긴 거짓된 마음은 금방 들통난다. 그 결과 신뢰하지 못할 사람이라는 의심만 사게 될 수 있다. 인생에서 누군가의 ‘말 한마디’가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해 보자. 인터뷰할 때 사소한 맞장구라도 진심을 담아 전해야 한다.
듣는 맛을 살리는 비법
길을 잘못 들었다면 되돌아가자
업무상 인터뷰는 설정된 궤도에서 완전히 이탈해서는 안 된다. 어떻게 샛길로 빠진 이야기를 원래대로 되돌려야 할까? 확실한 방법은 없다. 그래서 이런 사태에 빠지지 않도록 준비를 철저히 한다. 여기에 내가 터득한 요령 몇 가지를 소개해 본다.
첫 번째 요령은 샛길로 빠진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즐기는 것이다. 재미있는 이야기로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럴 기미가 없다면 이야기 중에 본래 듣고 싶었던 주제와 관련된 말이 있는지 필사적으로 찾아야 한다. 어느 가수와 인터뷰한 사례다. 나는 본인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는데 친구 아버지의 친구 이야기로 빠져서 조마조마했다. 하지만 계속 들어보기로 했다. “그분이 하는 말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게 ‘칠전팔기’래요. 당시 저는 일곱 번째 앨범을 낸 상태여서 철렁 내려앉았어요. 일곱 번은 쓰러질 수 있다는 말이잖아요. 근데 그 앨범도 망해버렸어요. 그만두려고 했죠. 근데 아저씨 말이 떠올라서 한 번만 더 해보고 그때도 안 되면 접자 했죠.” 이런 식으로 샛길로 빠지나 싶던 이야기가 선회하여 인터뷰의 핵심으로 부각되기도 한다. 그래서 주제와 상관없는 이야기라도 집중해서 들어야 한다. 잡담에서 생각지도 못한 중요한 단서가 튀어나올 수도 있으니 귀를 기울이자.
두 번째 요령은 “왜 그런 사건을 일으킨 거죠?”라고 불쑥 상대를 난처하게 만드는 방식이다. 이런 질문은 타이밍만 잘 잡으면 상대는 정신을 못 차리고 순순히 대답해주기도 한다. 다만 이 요령을 활용하려면 질문 전에 상대와 충분한 신뢰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자신을 존중하는지, 아니면 비판이 목적인 질문인지 알 길이 없다. 성의를 갖고 대하지 않으면 속마음을 들을 수 없다. 상대와 신뢰만 형성하면 무슨 말인들 못하겠는가. “미안한데요. 그 이야기는 일단 놔두고 아까 하던 이야기를 더 해보죠.” 아마 본심을 직설적으로 드러내도 상대는 꺼리지 않고 받아 줄 것이다.
세 번째는 다소 고전적인 방법이다. ‘이야기 끼어들기’라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상대의 이야기가 장황해서 말을 끊어야겠다는 생각이 들면 이야기를 잘 듣고 있다가 호흡을 가다듬는 타이밍을 노려 불쑥 끼어들어야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발언권을 준다. “그럼, ○○ 씨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지나치게 빠르게 끼어들면 말을 끊는 인상을 줘서 말하는 사람이 언짢을 수 있다. 그러므로 이야기의 흐름에서 적당한 타이밍을 포착해야 한다.
나는 인터뷰할 때 상대의 ‘호흡’을 주시하는 편이다. 상대가 호흡하는 방식을 보면 이야기가 즐거운지, 빨리 끝내고 싶은지 속내를 간파할 수 있다. 이렇게 파악된 상대의 마음은 다음 질문을 하는 데 도움이 된다. 어쩌면 한 번 샛길로 빠진 이야기를 되돌리려 애써도 노력만큼 성과가 없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가능한 한 이야기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유도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야 한다. 내 경험상 이야기 중심을 놓치지 않고 상대를 유도하는 것이 최고의 방법이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 때 물꼬가 터진다
일본 전통 만담가 고바야시 모리오와의 인터뷰 당시 진땀을 뺐던 기억은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있다. 당일 예정된 스케줄이 빨리 끝난 고바야시 씨는 매니저를 통해 30분 일찍 인터뷰를 시작할 수 있는지 타진해왔다. 우리 팀은 사전 회의 도중에 연락을 받고 서둘러 나왔지만 도로가 막혀 변경된 약속 시간보다 20분 정도 늦었다. 그래도 사과는 해야 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많이 기다리셨죠?” 그런데 고바야시 씨가 볼에 잔뜩 바람을 넣고 있는 것이 아닌가. 마치 복어처럼. 앗, 화가 나신 걸까?
웃으며 무마할 수 없을 만큼 노여움이 커 보였다. 안절부절못하며 인터뷰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어떤 질문에도 퉁명스러웠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초등학생 때 이야기로 친구들을 즐겁게 해준 일화도 언급했다. 듣고 싶다는 내 말에 그는 마지못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만담가답게 맛깔스러운 입담에 모두 박장대소했다. 그의 얼굴에도 미소가 번졌다. 이제 기분이 풀린 모양이었다. 이후 고바야시 씨는 동료 만담가들의 에피소드를 비롯해 가족 이야기까지 정성스레 들려줬다.
인터뷰 종료 인사를 하고 다시 한번 사과의 말을 건넸다. “기다리게 해서 정말로 죄송했습니다.” 아차, 이 일을 어쩌나. 고바야시 씨의 얼굴이 순간 굳어지면서 복어처럼 변했다. 겨우 잊었는데 다시 생각난 모양이었다. 후회가 밀려들었으나 내뱉은 말을 주워 담을 수도 없는 법. 어쨌든 그와의 만남으로 포기하지 않으면 뜻밖의 결실을 맺기도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또 하나, 지나간 안 좋은 순간은 당사자가 떠올리지 않는 한 다시 꺼내면 안 된다는 사실까지.
포기할 뻔한 인터뷰: 나는 웬만해서는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는다. 인터뷰 일만큼은 필사적으로 물고 늘어진다. 물론 포기할 뻔한 적도 있었다. 아니, 포기한 것과 같다. 상대는 인기 드라마에서 두각을 보인 배우 와타베 아츠로였다. 무심해 보이면서 섬세하고 그늘진 표정이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런 ‘멋진 남자’가 불편하다. 잘생긴 얼굴을 마주하고 있으면 내 자리가 아닌 듯 거북해진다. 그래서 인터뷰 시작 전부터 다소 불안했다.
슬픈 예감은 빗나가는 법이 없다. 와타베 씨의 답변은 뭔가 무성의하고 상투적이었다. 한 시간이 지나도 어색한 기류가 사라지지 않았다. 약속된 시간도 다 되어가고 어쩔 수 없이 슬슬 인터뷰를 마무리 지으려는데 불현듯 그가 내게 물었다. “아가와 씨, 이 코너를 몇 년이나 하셨죠?” “음…. 7년이요.” 내 대답에 와타베 씨가 무심하게 웃더니 이렇게 덧붙였다. “오래 하셨으면 좋겠어요.” “네에?” “정말 제가 이야기하기 편하게 해주셨어요.” 이 말을 듣고 뒤로 넘어갈 뻔했다. 이야기하기 편했다고? 이날도 하나 배웠다. 사람은 모두 똑같은 얼굴로 기뻐하고 슬퍼하지 않는다. 보기에 전혀 즐거워 보이지 않는 사람이지만, 속으로는 뛸 듯이 기뻐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니 함부로 단정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