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꿈 부자 할머니
박지수 지음 | 메이트북스
나의 꿈 부자 할머니
박지수 지음
메이트북스 / 2023년 8월 / 239쪽 / 17,000원
프롤로그 - 늙어감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스톡홀름 공항에 도착했다. 9년 차 마케터이자 워킹맘으로 바쁘게 살아가는 지윤에게 출장은 휴가였다. 시간에 대한 강박과 조급함은 사라지고 온전히 일과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순간이니까. 저녁을 먹고 숙소로 돌아온 지윤은 베를린 공항 서점에서 구입한 문고판 서적을 펼치고, 익숙한 멜로디를 흥얼거리며 혼자만의 시간을 즐겼고, 그렇게 시간의 개념을 잊은 채 부스럭거리다가 잠이 들었다.
새벽인가 아침인가. 시계를 보니 아직 새벽 4시. 암막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빛에 눈이 부셨다. 백야였다. 다시 잠을 청해봐도 도통 잠이 오지 않았다. 그래서 호텔 주변을 산책하기로 했다. 그런데 산책 중에 지윤의 시선을 사로잡은 사람들이 있었다.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오토바이를 세워두고 바닷가 바람을 맞으며 커피를 마시는 바이커들이었다. 오토바이 양옆에 매달린 짐의 규모로 보아 여행 중인 듯했다. 그런데 이들은 모두 은발 아닌가. 노년의 부부 두 쌍이 오토바이로 여행 중이었던 것이다.
지윤은 노년을 즐기고 있는 바이커들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나이 드는 것도 꽤 괜찮겠다. 바쁘게 사느라 미처 알지 못했던 다른 즐거움들을 찾을 여유가 생길 테니까. 나도 나이가 들면 저들과 같을 수 있을까?’ 지윤은 이날 처음으로 늙어감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이후 다시 반복되는 일상으로 돌아간 지윤에게서 스톡홀름 해변의 바이커들은 잊히고 있었다.
부자 할머니를 만나다30년이 훌쩍 넘은 아파트 단지에는 그 세월을 함께한 작은 상가가 있다. 엘리베이터도 없는 3층짜리 건물에 1층은 약국, 부동산, 피자집, 꽃집, 인테리어샵, 2층은 이비인후과, 소아과, 피아노 학원, 미술 학원, 태권도 학원, 3층은 재건축 조합 사무소, 세무 사무소, 법무사 사무소…. 있을 건 다 있고, 없을 건 또 없었다. 지윤이는 약국으로 들어가 약사에게 처방전 두 장을 건네고, 딸인 별이의 손을 잡고 맞은편 소파에 앉았다. 하지만 별이는 이내 지루해졌는지 일어나 약국 안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좀 흘렀나. 어떤 할머니가 지윤에게 말을 걸었다. “애기 엄마, 애기가 몇 살이야?” “네, 어르신. 이제 36개월 지났어요.” “엄마가 고생이 많겠네. 잠도 제대로 못 잔 거 같어. 아까 보니까 소파에서 눈 감고 졸더만.” “아! 제가 졸았나요? 기억이…” 그때 약사가 비타민 드링크 뚜껑을 잡고 돌려 지윤에게 건넸다. “잠도 깰 겸 이거 한 잔 마셔요.” “감사합니다.” 그러고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약사님도 지윤이 피곤해 보였는지 깨우지 않았고, 어르신들이 별이를 봐주고 계셨던 모양이다.
얼마 전 직장 생활 몇 년을 버텨온 워킹맘 지윤에게 결정적인 일이 발생했다. 진급을 결정짓는 고과 시즌이 도래했을 때였다. 평소에 일 참 잘한다는 소리를 들었기에 과장 진급에 대해선 걱정하지 않았다. 그동안 열심히 일해 왔고, KPI(핵심성과지표)도 괜찮게 나왔다. 그래서 내심 진급도 기대했고, 연봉 상승하면 전세금도 올려줄 수 있을 거라 계산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부장은 그녀를 진급시켜주지 않았다. 대신에 남자 동료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그는 실무는 언제나 펑크였지만, 의전에는 목숨을 거는 유형이었다. 지윤은 삶에 절망감을 느꼈다. 그토록 힘들게 버티며 쌓아온 것들이 모래성처럼 부서지는 걸 보면서 자신의 가치도 잃어버린 것 같았다. 그래서 도망치듯 육아휴직을 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딱 1년뿐이지만, 지윤은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별이를 위한 시간을 보내자고 마음먹었다. 권정희 약국에 들른 그날은 육아휴직을 내고 들어온 지 한 달째였던 어느 날이었다. 할머니 성함은 정희숙. 지윤은 이 아파트에 5년째 살고 있지만, 매일 출근하느라 동네에서는 낯선 이방인과 다를 바 없었다. 하지만 오늘 권 약사님, 정 여사님과 대화를 나누면서 동네에 든든한 아군이 생긴 기분이었다.
부끄러운 투자 이야기“지윤 씨.” “어르신. 안녕하세요? 어디 다녀오시는 길이세요?” “나 우리 다롱이랑 산책하던 중이었어.” “다롱아, 안녕. 강아지 너무 귀여워요.” 곧 지윤은 야쿠르트 여사님께 달려가서 ‘하루야채’ 음료를 사서 돌아왔다. “이거 드세요. 소화에 좋은 음료예요. 저는 아까 별이 친구 엄마들이 커피를 주고 가서 마시고 있었어요.” “어휴, 고마워라. 나 이거 종종 사 마셔. 내 취향을 어떻게 알았을까? 내가 음료도 하나 얻어 마시는 김에 지윤 씨에게 도움 되는 얘기 하나 해줄게. 무슨 얘기가 좋을라나.”
“어떤 말씀이라도 아주 기쁠 것 같아요.” “명성 손칼국수집 알아?” “네, 그런데 거긴 왜요?” “응. 거기 장 사장이 내 오랜 친구야. 내가 그 건물 주인이거든. 장 사장네 가게가 잘 버텨줘서 나야 고맙지. 그거 말고도 땅도 몇 군데 있고, 주식도 좀 있어. 이것저것 다 합치면 한 200억쯤 될 거야.”
“너무 부러워요. 근데 어떻게 그렇게 많은 자산을 모으셨어요?” “긴 이야기를 시작해야겠구나. 나도 처음엔 은행 예금 말고는 아는 게 아무것도 없었어. 투자는 꽁으로 하나. 먹고 죽을 돈도 없었는데. 게다가 부동산으로 돈 벌면 큰일 난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남편 월급으로 애 셋을 키우는데 도저히 계산이 안 나오더라고. 아껴 쓰는 건 물론 중요해. 하지만 잘 벌고, 잘 불리는 것도 함께 생각해봐. 매달 들어오는 소득이 적다면 아끼기만 했을 때는 한계가 있어. 소득 이상으로 아낄 수는 없잖아. 하지만 벌고 불리는 데는 한계가 없어. 돈을 더 버는 데 에너지를 쓰고, 불리기 위해 계속 공부하고 투자를 해봐. 자산이 훨씬 더 늘어날 수 있을 거야. 지금 지윤 씨 맞벌이지? 둘이 합하면 얼마나 벌어? 재테크는 좀 하고 있어?” “남편이랑 둘이 합쳐서 월 700만 원 벌어요.”
“둘이 벌어 700만 원이면 나쁘지 않구먼. 그래서 지금 얼마나 모았어? 집은 전세야? 자가야?” “전세예요…. 근데 모은 건 별로 없어요.” “지윤 씨, 알뜰하게 잘 모았을 것 같은데 왜 저축을 못 한 거야?” “정말 바보같이 들리겠지만요. 저 사기당했어요….” “남에게 맡기는 투자 말고 주식이나 펀드는 안 해봤어?” “올해 초에 뒤늦게 삼성전자 주식 샀다가 100만 원 넘게 날리고 다 팔았어요. 주식도 제 체질이 아닌 것 같아요. 저는 왜 하는 것마다 다 이 모양일까요. 큰 욕심을 부린 것도 아닌데….”
“살아가면서 한두 번의 실수는 하기 마련이야. 중요한 건 그걸 얼마나 빨리 털고 일어나느냐지. 시간을 허투루 쓰지 마. 지나간 일을 자책하고 곱씹는 시간에 앞으로 돈을 얼마나 잘 벌고 불릴까를 고민하는 게 좋아. 만약 지금보다 자산이 3배쯤 늘어난다면 뭘 사고 싶은데?” “당연히 내 집 마련이죠. 조금 작고 불편해도 좋으니 내 집이 있으면 좋겠어요.” “옳은 생각이야. 세상이 이러니저러니 하더라도 부의 첫걸음은 부동산이고, 실거주를 목적으로 매수한 내 집은 자산 생성의 반석이 된다는 건 변하지 않는 진리거든.” “육아휴직 1년 동안 저도 좀 차분히 인생도 돌아보고, 재테크도 시작해보려고 해요.”
“지금이 자네에겐 인생의 갭이어(Gap year)구나. 투자를 어렵게 생각하지 마. 투자란, 시간이 흘러도 가치가 오를 것을 사는 게 투자야. 공부하지 않고 투자하는 게 위험한 거지, 투자 자체는 위험한 게 아니란다. 내가 다음에 이 동네 부동산 한번 데리고 갈게. 잘 아는 사장님이라서 근처 브리핑 좀 해달라고 하면 지윤 씨한테 도움될 거야.” “어머, 이런 귀한 기회를… 너무 감사해요.” “아냐. 나도 지윤 씨랑 바람 솔솔 부는 벚꽃 나무 아래서 도란도란 얘기하는 시간이 좋았어. 우리 밥 먹을까? 친구 된 기념으로 밥 한번 살게. 다음 주 언제가 좋아? 화 또는 금이면 좋겠는데?” “화요일 좋아요.” 지윤은 정 여사의 행동 하나하나, 말투 하나하나를 스캐닝하기 시작했다. 부자 할머니에게 배울 게 많을 거라 예상했는데 역시였다. ‘이분의 애티튜드도 배우고 싶다.’
부자의 애티튜드47년생 정희숙. 부자 할머니는 재건축이 추진 중인 송파구의 어느 아파트 2층에서 반려견과 살고 있는데, 정 여사 주변에는 두 명의 남자가 있었다. 첫 번째는 그녀의 남편이다. 그는 회계사로 오래 일했다. 몇 년 전 은퇴하고 취미 생활 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올해 초 강릉으로 떠났다. 강릉은 그의 고향이기도 했지만, 바다가 보이는 작업실에서 조용히 그림 그리고 낚시나 하며 지내고 싶다고 했다. 정 여사는 힘들게 별거 이야기를 꺼낸 남편이 무안할 정도로 쿨하게 허락했다.
두 번째는 그녀의 손자다. 정 여사 첫째 딸네 부부는 미국 대학에 교환교수로 나가 있는데, 3년은 돌아오지 못할 거라며 살고 있던 집을 전세로 내어줬다. 그래서 오갈 데가 없어진 손자를 정 여사가 거두고 있다. 사실 거둔다고 표현할 만큼 손자 나이가 어린 것도 아니다. 그의 나이는 스물아홉 살이고 직장인이다. 어쩌면 외로운 1인 가구끼리 근처에 살면서 동고동락 한다고 할까.
날씨가 화창한 5월 첫째 주 화요일. 지윤은 별이를 어린이집에 등원시키고, 정 할머니를 만나 함께 차를 타고 식사 장소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이동 중 할머니는 책을 지윤에게 선물하며 말했다. “다들 재테크 시작한다고 하면 주식책부터 사보는데, 그러면 안 돼. 철학책을 먼저 읽어야 해. 결국 시장을 움직이는 건 사람들이고, 사람들의 마음을 알아야 시장의 움직임을 꿰뚫어볼 수 있거든. 공부는 넓은 것에서 서서히 좁혀가면서 하는 게 좋아.” 지윤은 감사의 마음으로 가져온 핸드크림을 선물했다.
음식점에 도착해 할머니는 깜빡이를 켜두고 내렸다. 발레파킹 서비스가 되는 식당이었다. 부자는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드라마에서 재벌집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은가. 집안일은 도우미가, 운전은 기사님이, 정원은 정원사가, 회사 일은 직원들이 한다.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가니 사장님이 반갑게 정 여사를 맞이했다. 주문을 받으러 온 직원에게 정 여사는 점심 B코스 두 개를 시켰다. 그리고 지갑에서 만 원짜리 몇 개를 꺼내 반으로 접어 직원 앞치마 호주머니에 넣으며 말한다. “나 귀한 손님 모시고 왔어요. 잘 좀 부탁해요.” “감사합니다, 사모님. 맛있게 해서 나올게요.”
‘부자 할머니… 돈에만 관심 있는 투기꾼은 아니신 것 같다. 세입자를 친구라고 부르신 것을 보면 악덕 건물주도 아닌 것 같고, 식당 종업원에게도 팁을 주시는 것을 보면 인색한 분도 아닌 것 같다. 나 같은 초짜에게 경제 공부 하라고 강요하지 않으시고 슬며시 책을 내미셨던 모습에서 배려가 느껴지기도 했다.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지혜, 어른으로서 자세를 두루 갖추신 분 같다. 부자 할머니에게 돈이란 무엇일까? 주변을 부드럽게 만들어주는 도구, 가족의 행복과 안녕을 유지시켜주는 도구, 자존감을 지키며 평온한 삶을 지속하게 해주는 도구… 또 뭘까? 그래. 부자 할머니를 나의 멘토로 모시자. 그리고 30년 뒤 나도 이 식당에서 또 다른 지윤에게 내 이야기를 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자.’
어느덧 그릇에 고기와 야채가 담겨 있었다. “뭘 그렇게 골똘히 생각해. 어서 들어. 식겠어.” 큰 결심을 해서인가 지윤은 갑자기 배가 고팠다. 따뜻한 국물 한 숟갈에 청경채와 버섯을 얹히고 입에 넣었다. ‘음… 샤브샤브가 왜 이렇게 부드럽고 맛있지?’ 지윤은 마침내 궁금했던 말을 꺼냈다. “여사님은 처음에 어떻게 돈을 모으셨어요?”
“나도 처음에는 아끼기만 하면 부자가 되는 줄 알았어. 그런데 수돗물도 아끼고, 매일같이 가계부를 빼곡히 적는데도 살림살이가 나아지지 않는 거야. 소득이 적었으니까. 소득이 적으면 늘리면 되는데, 그걸 깨닫기까지 꽤 많은 시간이 걸렸어. 당시 남편은 공무원이었거든. 공무원 월급이야 뻔했지. 그 양반도 늦기 전에 좀 더 높은 연봉을 받는 직업으로 갈아타야겠다고 생각했나 보더라. 퇴근 후 집에 와서 새벽까지 공부해 회계사 자격증을 땄어. 그렇게 공무원에서 고소득 직장인이 됐고, 돈을 아껴서 모은 다음 주식과 부동산으로 차차 전환해나갔던 거야.”
잠시 쉬었다가 정 여사가 말했다. “직장생활은 재미있었어?” “재미는 있었죠. 하지만 직장이 일만 해서 되는 곳은 아니더라고요.” “직장은 내 시간을 제공한 만큼 월급을 받는 곳이기도 하지만, 월급 받으면서 일을 배울 수 있는 곳이기도 해. 나는 메리야스 가게에서 적은 월급을 받고 일했지만 많은 걸 배웠다고 생각해. 예를 들면 사람 상대하는 방법, 사람들이 좋아할 물건을 사고 싶게끔 진열하는 기술 등 말이야. 만약 내가 장사 밑천 벌려면 푼돈 월급 받아서는 안 되겠다며 판매직을 관뒀다면 어떻게 됐을까? 티끌 모아봤자 티끌일 뿐이다만, 그래도 나에겐 그 시기가 티끌 모아 초석을 다졌던 때였어. 무언가 뚜렷한 계획을 잡기 전까지는 고정 수입이 들어오는 직장은 중요한 거란다. 그런데 아끼고 저축하는 걸로 끝이라고 생각하면 안 돼. 사고를 확장해봐.” “투자를 하면 되나요?”
“딩동댕! 아끼고 저축해서 은행에 돈을 넣어두면 부자가 될 수 없어.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돈의 가치가 하락하기 때문이야. 20년 전에 여기 아파트 가격이 3억이었어. 지금 얼마야? 9억은 족히 하지. 만약 20년 전에 예금으로 3억을 넣어뒀다면 이자 얼마 못 받았을 거야.” “인플레이션으로 저축한 돈의 가치가 떨어진다는 말씀이죠?” “그렇지. 20년 금방 간다. 그래서 투자도 병행해야 하는 거야.” “그래도 투자는 너무 어려워요.” “물론 투자는 어려워. 그래서 일반인들은 투자 대신 아끼는 데만 모든 에너지를 집중하는 거야. 그렇게 해도 큰돈을 만들 수 있다고 착각하고.”
“그렇다면 부자들이 돈을 모으는 이유는 투자를 더 하기 위해서인가요?” “그렇게 해석할 수도 있어. 우리집 양반이 벌어온 돈보다 내가 굴려서 이룬 자산이 더 크거든.” 이런저런 말을 나누는 동안 식사가 끝났고, 디저트로 호박파이와 커피가 나왔다. 지윤은 식사하는 내내 뭔가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기분 좋은 반성이라고나 할까. 자신이 얼마나 편협하게 살았던가, 뼈저리게 느낀 시간이었다.
그리고 이제 디저트 타임에는 좀 부드러운 이야기를 하고 싶어 화제를 전환했다. “어르신, 핸드백 너무 고급스러운데 혹시 에르메스 맞나요?” “응, 맞아. 나도 큰맘 먹고 하나 장만했지. 이건 까르띠에 시계야. 너무 예쁘지 않니? 난 이 시계를 보자마자 반했어. 다른 시계들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독특하고 개성 있는 디자인이야. 화려하면서도 우아하지. 난 명품, 보석 이런 거 좋아해. 현금은 가치가 자꾸 떨어지는데 이런 실물 자산은 시간이 지날수록 소중한 빈티지가 되거든. 그래서 기념일마다 하나씩 모아. 감가상각 없이 예쁘게 잘 착용하다가 자식에게 물려주려고. 나중에 내가 세상에 없더라도 자식들이 이걸 보면서 나를 기억해주면 좋겠다는 마음이지. 지윤은 갑자기 코끝이 찡해졌다. ‘어르신이 고가의 물건들을 구입하는 건 사치도 소비도 아니었어. 그저 투자이자 자녀와의 연결고리였다니! 부자는 역시 물건을 살 때도 10년 뒤, 20년 뒤를 내다보고 사는구나.’
황금부동산오늘 별이가 할머니 집에서 더 놀다 오겠다고 해서 지윤은 오랜만에 편한 차림으로 걷기 시작했고, 짧고 굵게 저녁 운동을 끝내고 공원 밖으로 나섰다. 그런데 황금부동산이 아직도 불을 밝히고 있었다. 지윤은 부동산 창 사이로 안쪽을 들여다봤다. 아니! 여기 정 여사가 앉아 계신 것 아닌가. 너무 반가운 마음에 지윤은 부동산 문을 열고 냉큼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어르신 계신 거 보고 반가워서 들어왔어요.” “지윤 씨가 이 시간에 웬일이야. 시간 괜찮으면 차 한 잔 해. 공사장, 여긴 우리 아파트에 사는 한지윤 씨라고 해.” “반가워요.” “두 분 말씀 중에 제가 방해한 건 아닌가 모르겠어요.” “아니야. 공사장이 이 동네 터줏대감이야. 궁금한 거 있으면 물어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