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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노의 가르침

세이노 지음 | 데이원


세이노의 가르침

세이노(SayNo) 지음

데이원 / 2023년 3월 / 준비중 / 7,200원



1부 아무것도 가진 게 없다고 느껴질 때



앞길이 보이지 않을 때


삶이 그대를 속이면 분노하라:
수차례 그래미상과 MTV상 시상식에서 트로피를 몇 개씩 수상한 미국의 백인 랩 가수 에미넴은 쓰레기 더미나 다름없는 환경에서 살았다. 생후 5개월 만에 아버지는 도망갔고, 마약 중독자인 어머니는 완전 떠돌이였다. 에미넴의 삶을 그린 영화 〈8 Mile〉을 보면, 그의 어머니가 아들의 동창생과 동거를 하면서 그 동창생이 오럴섹스를 안 해 준다고 아들에게 호소하는 골 때리는 장면도 나오고, 자기 애인이 친구와 섹스를 하는 것을 목격하는 장면도 나온다. 당연히 그의 노래에는 어머니나 애인에게 쌍욕을 퍼붓는 내용이 나오며, 대부분의 가사는 아주 반항적이고 폭력적이고 외설적이며 욕으로 도배되어 있어 2000년 미국에서 ‘공공의 적’으로 꼽힐 정도였다.

미국의 어느 학교에서 총기 사건이 일어나고 범인이 에미넴의 앨범을 즐겨 듣곤 했음을 기자들이 지적하자 그는 이렇게 말한다. “심히 유감이다. 하지만 당신은 너무나도 미운 사람이나 짜증나는 사회를 없애 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낀 적이 없는가? 나는 학창 시절 나를 괴롭히던 녀석들을 죽이고만 싶었다. 집에 돌아와 자기 방의 모든 것을 닥치는 대로 부수는 심정을 이해하는가?”

나는 이해한다. 나는 주먹으로 피가 나오도록 방바닥을 치고 거울을 깨부순 적도 있었다. 내가 어린 시절 이발소에는 대부분 푸시킨의 시가 걸려 있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우울한 날들을 견디면, 믿으라,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현재는 슬픈 것. 모든 것은 순간적인 것, 지나가는 것이니. 그리고 지나가는 것은 훗날 소중하게 되리니.’

나는 이 시가 참 싫었다. 내 삶은 수제비로 범벅이 되어 있는데 슬퍼하지도 말고 노하지도 말라니. 희망은 안 보이는데 견뎌 내라니. 세상은 이른바 배웠다는 위선자들로 가득 차 있는데 기쁨의 날이 올 것을 믿으라니. 돈 봉투를 안 가져온다고 나를 책망한 담임은 어느 날 모범 교사로 칭송을 받고(나중에 교장까지 되었다), 나는 자원입대했는데 멀쩡한 부잣집 친구들은 징집 면제되었다. 그런데 지나가는 시간이 훗날 소중하게 된다니 나보고 그것을 믿으란 말인가. 나는 세상에 대한 나의 분노를 폭파시키고 싶었다. 그래서 영화 〈쉰들러 리스트〉의 주인공처럼 세상이 뒤집힐 전쟁을 기다렸던 적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나 세상을 욕하고 가래침을 줄곧 뱉었지만 정작 나 자신도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언제나 눈이 시뻘겋게 일확천금만을 노리며 한탕 할 기회만 노렸고 아무 하는 일도 없이 꿈틀거리기만 했다. 카프카의 <변신>에 나오는 벌레처럼 나는 먹고 싸고 먹고 싸는 그런 존재였던 것이다. 어제가 오늘이고 오늘이 내일이었으며 내일은 다시 어제였다. 조그마한 차이도 없었다. 나는 내가 혐오스러웠다. 내가 분노하여야 할 대상은 세상이 아니었다. 나 자신이었다. 나는 혐오스러운 나의 삶이 너무나도 한심하였고 끝내는 저주스러웠을 정도로 스스로에게 분노하였다. 내가 나를 죽이고 싶었던 것도 어쩌면 그런 혐오감과 분노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절망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나는 나를 죽이고 싶을 정도로 내 삶의 주인이 되고 싶었다. 나는 5월의 찬란한 햇살 밑에서 향긋한 꽃내음을 그대로 들이마시며 어깨를 펴고 살고 싶었다.

당신은 어떠한가? 인생은 자전거와 같다. 뒷바퀴를 돌리는 것은 당신의 발이지만 앞바퀴를 돌려 방향을 잡는 것은 당신의 손이며 눈이고 의지이며 정신이다. 당신의 발이 ‘생활’이라는 이름으로 당신을 움직여는 주지만 정작 당신의 손은 호주머니 속에 깊이 박혀 있는지도 모른다. 정작 당신의 눈은 당신 앞에 놓인 길을 바라보지 않고 옆에서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오토바이들과 스포츠카만 부러운 마음으로 바라볼지도 모른다. 때문에 비록 열심히 페달을 밟고는 있지만 당신이 탄 자전거는 제자리를 맴돌 뿐이다.

만일 당신이 말초신경이나 자극하는 것들에 현혹되어 채팅, 게임, 공짜 사이트, 복권, 유명 브랜드 상품, TV, 술, 도박, 경마 등 일확천금과 한탕주의의 망상에만 몽롱하게 사로잡혀 있다면 당신이 바로 그렇게 제자리를 맴도는 사람이다. 그렇게 삶에 질질 끌려다니며 제자리를 맴도는 사람들이여. 이제는 그 삶을 정면에서 바라보아라. 비겁하게 외면하지 말라. 그 삶이 자랑스러운가? 이제는 그 삶에 대해 분노할 때가 되지 않았는가. 파충류와 포유류의 차이 중 하나는 파충류는 본질적으로 화를 내거나 기쁨을 내는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뇌에서 그런 역할을 하는 변연계가 퇴화되었기 때문이다. 악어 쇼에서 악어를 때려도 악어가 화를 내지 않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당신의 삶이 분노할 대상임에도 분노하지 않는다면 이미 당신의 뇌는 썩어 버린 것이다. 차라리 강물에 빠져 죽어 버려라. 하지만 이제라도 삶이 당신을 속인다고 생각되면 그 삶을 던져 버려라. 내동댕이쳐라. 삶은 한 번뿐이다. 삶에 비굴하게 질질 끌려가지 마라. 명심해라. 당신이 분노하여야 할 대상은 이 세상이 아니다. 당신의 현재 삶에 먼저 슬퍼하고 분노하면서 ‘No!’라고 말하라. Say No! 그리고 당신의 삶을 스스로 끌고 나가라. 당신이 주인이다.

돈독이 올라야 부자가 되는 줄 아는가? 투자 기법을 몰라서 부자가 못 되는 줄 아는가? 절대 아니다. 일확천금의 기회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꿈 깨라, 쇠고랑을 찰 기회만 있을 뿐이다. 인터넷에서 광고만 보아도 돈을 벌 수 있다고 믿는 자들이여, 메일만 보내면 수억 원을 벌 수 있다고 떠드는 자들이여. 편안하게 빨리 돈 벌고 싶어서 애를 태우는 자들이여, 평생 가난의 괴로운 숯불이 이마 위에 올려지는 저주를 받을 것이다. 나는 그대들이 한시라도 빨리 그 허황된 몽상에서 깨어나기를 바란다. 피와 땀과 눈물과 시간 없이 무엇을 얻겠다는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저 물만 부으면 되는 컵라면 같은 순간적인 인스턴트 재테크 지식만 찾는다. 자기가 부자가 되지 못하는 이유가 어떤 투자 기법을 모르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하거나 이자에 밝지 못한 때문으로 치부해 버린다. 웃기는 소리 하지 말라. 당신 생각대로라면 이른바 재테크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모두 부자이어야 하는데 그들의 평균 재산은 다른 직장인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나에게서 실전 투자 기법을 배우면 돈을 더 벌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당신이 스스로의 삶에 대한 태도부터 바로 세우지 않는 한 절대 부자가 될 수 없다고 하면서 당신을 한심한 사람으로 매도하고 독설을 퍼붓는 사람이다. 자기 삶의 노예가 되어 자기 생활과 시간을 통제하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돈의 주인이 될 수 있단 말인가.

현재의 삶이 절망스럽고 괴롭고 암흑에 싸여 있는 것 같이 보이는가? 그렇다면 이제 분노하라. 분노를 느끼는 사람만이 닫힌 문을 세게 쾅쾅 두드릴 수 있다. 용수철처럼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와 당신의 삶을 이 거친 세상에서 우뚝 홀로 세울 수 있도록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피 튀기듯 노력하라. 그리고 이제는 자전거 손잡이를 제대로 잡고 정면을 바라보고 페달을 밟아라. 그렇게 하기 시작할 때 당신은 당신 삶의 주인이 되는 것이며 그때 비로소 돈이 당신의 노예가 되어 당신을 섬기게 되는 것이다. 인생 역전은 당신 스스로 현재의 삶에 분노하여 그 삶을 뒤집어 버릴 때 이루어지는 것이지 ‘수백억짜리 복권에 이번에는 내가 당첨될지도 모른다.’는 달콤한 상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종종 자기혐오에 빠져 죽고 싶다고 말하는 독자 메일을 받는다. 고통 없이 죽는 방법을 물어보는 독자들도 있다. 이런 독자들에게는 언제나 이렇게 답장하곤 하였다: “너 자신을 죽이고 싶다면 그 죽이고 싶은 인간을 머릿속에서 끄집어내어 제삼자 입장에서 살펴보아라. 불쌍하고 가련한 모습이 아마 하나둘이 아닐 것이다. 길거리에서 그런 사람을 만났다고 치자. 어떻게 할 것 같은가? 칼로 찔러 죽이겠냐? 아니면 이런 사람도 있구나, 불쌍하구나, 생각하면서 뭔가 이끌어 주고 도와주고 싶어질까? 아마도 후자일 것이다. 바로 그 마음을 너 자신에게 가져라. 너 자신을 불쌍히 여기고 보살펴라.”

나는 믿는다. 누구에게나 그 내면에는 그 육체의 주인이 사랑할 수도 있는 그 자신이 존재하고 있다고 말이다. 당신 자신을 당신이 사랑할 수 있는 사람으로 조금씩 바꿔 나가라.

어떤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세상이 원하는 기준에 맞추어 일하라: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라는 시 <귀천>을 쓴 천상병 시인의 소원은 “내 집 하나만 있었으면”이었다. 심지어 그는 “누가 나에게 집을 사 주지 않겠는가? 하늘을 우러러 목 터지게 외친다”고도 했다. 그러나 1993년 그가 삶을 마감한 곳은 ‘주인 말고도 세 가구가 있는 집’이었고 열네 사람이 몸을 부대끼며 살던 곳이었다. 그래서 그는 “가난은 내 직업”이라고까지 했다. 그는 왜 가난했던가. 시를 좋아하였기에 시만 썼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돈을 다루는 상과 대학을 다녔던 사람이다. 돈은 그의 아내가 찻집을 하여 벌었다고 한다. 그가 가난하였던 이유는 무엇인가? 시집이 잘 팔리지도 않는 이 땅에서 시를 썼기 때문 아닌가. 시인으로서 시만 쓴다면 대부분 가난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똑같은 시인이지만 많은 책들의 편자 혹은 역자로 등장하기도 하는 류시화는 내가 짐작하기에 전혀 가난한 시인이 아니다. 그는 보통 사람들이 무슨 글을 읽고 싶어 하는지를 찾아내 상품화시키는 유능한 편집자이자 세상에서 대가를 얻어 내는 마케팅 기법도 아는 사람이다.

당신이 시인이라면 천 시인처럼 살 것인지 류 시인처럼 살 것인지는 당신 스스로 결정할 사항이며 그 어느 쪽의 삶이 우월하다는 말은 그 누구도 하지 못한다. 하지만 어느 직업을 가졌든, 세상으로부터 더 많은 경제적 대가를 얻어 내려면 그 대가를 결정하는 세상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세상이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른 채 자기 최면에 빠져 살게 되면 돌아오는 것은 실패와 좌절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패한 자들의 대부분은 세상이 원하는 것은 무시하면서 실패의 책임과 원인을 세상에 돌린다. 세상이 불공평하다느니 세상이 썩었다느니 세상이 학벌이나 인맥으로만 이루어져 있다느니 등등, 실패한 자들의 핑계는 길고 긴 레퍼토리를 이룬다. 명심해라. 성공한 자들은 어떤 일이 잘못되면 그 책임과 원인을 자기 자신에게서 찾는다. 절대 세상 속에서 핑계를 찾지 않는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보자. 나는 자가용 기사를 한두 명 겪어 본 사람이 아니다. 연봉 2천만 원을 주건 3천만 원을 주건 간에 보통의 자가용 기사의 경우 “목적지까지 잘 모셔다드리고 차량 관리 잘하면 되었지 뭐가 더 필요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목적지까지 잘 모신다는 기준은 순전히 자기들 기준이며 차량 관리 수준 역시 자기들 판단에 근거한다.

약 십수 년 전 기사 한 명을 새로 채용하였다. 그 시절에 나는 언제나 신경이 날카로웠다. 보통의 직원들은 사장에게서 야단을 맞으면 얼굴이 하루 종일 굳어 있다. 하지만 그는 내가 별것도 아닌 일에 불같이 화를 내도 5분 후에는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하였다. “사장님, 약속 장소에 가실 시간입니다.” 그는 자신이 아는 길이어도 지도를 미리 보고 샛길들을 확인하였다. 그런 태도를 보고 <막히면 돌아가라>라는 책을 사다 주었더니 그는 너무도 좋아하였다. 대부분의 기사들은 길이 막혀 차가 꼼짝달싹 못 하면 “이게 내 탓이냐?”는 태도를 보였지만 그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사장님, 저 옆 골목으로 한번 가 보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물론 나는 언제나 찬성이었다.

그는 오후에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음에도 “오후에 비가 안 올 수도 있다”고 하면서 차를 닦아 놓았다. 그것도 완벽하게 닦아 놓았다. 대부분의 자가용 기사들은 그렇지 않다. 그는 내가 권하는 책들을 모두 읽었고 기사 대기실에서 화투를 치지도 않았다. 우선은 차량을 최선을 다해 관리하였고 남은 시간에는 나이 어린 직원들에게 도와줄 일이 없느냐고 묻는 사람이었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기 돈으로 차량 정비 서적을 사서 공부하는 기사를 나는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만난 적이 없다.

1년 정도가 지난 후 나는 새로 기사를 구하고, 임직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를 회사 영업부 과장직에 앉혔다. 임직원들의 반대가 극심했던 이유는 내가 왜 그를 영업부 과장직에 앉히려는 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가 내게 아부를 잘해서 내가 그런 결정을 내린 것으로 오해하기도 하였지만, 나는 그가 너희들하고는 일하는 근본 자세가 다르다는 말만 했을 뿐이다.

3개월 정도가 지나자 모든 거래처에서 그의 사람 됨됨이를 칭찬하는 말이 들려왔다. 6개월 정도가 지나자 더 이상 회사 내에서 그의 자질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다시 1년 후, 그는 사표를 들고 나를 찾아왔다. 돈을 어떻게 버는지를 알았다고 하면서 말이다. 나는 정말 기쁜 마음으로 그를 보내줬다. 몇 년 후 그가 업소용 김치 납품공장을 아내와 함께 운영하고 있음을 들었다. 직원이 10여 명 된다는 말과 함께 말이다.

이 이야기에는 후기가 있다. 내가 그를 영업부 과장에 앉혔을 때 입사한 새 기사는 자기 선임자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곧 알게 되었다. 그리고 당연히 자기에게도 그러한 기회가 주어지기를 기대하면서 나에게 하는 모든 행동에 매우 신경을 씀은 물론 내 가족들에게도 아주 공손하게 처신하였다. 그리고 종종 내게 자신이 예전에 영업 활동을 한 경험이 있다고 말하기도 하였다. 선임자가 영업부 과장직에서 사표를 내자 그는 내게 자신도 영업부에서 일해 보고 싶다고 졸랐다. 하도 귀찮게 조르기에 그를 영업부 평직원으로 보내면서 영업부 임원에게 이렇게 말했다. “몇 개월만 데리고 있어라. 얼마 버티지 못할 테니까.” 2개월 만에 그는 사표를 냈다.

왜 나는 선임자처럼 행동하려고 애를 쓴 그를 무시하였을까? 세상이 원하는 자세로 일하는 태도는 뼛속 깊이 자리 잡은 인식에서 나오는 것으로 눈앞의 홍당무가 탐이 나서 나오게 되는 행동과는 그 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의도적으로 남에게 잘 보이고자 하는 행동하는 사람은 보는 사람이 없으면 곧 그 본성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적토마는 홍당무가 없어도 잘 달린다고 내가 말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이제 무슨 일을 하건 당신의 기준을 바꾸어라. 당신이 정한 기준으로는 절대로 부자가 되지 못한다. 부자들은 세상이 원하는 기준으로 일을 해온 사람들이다. 세상이 원하는 기준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높고 넓고 깊다. 세상의 기준에 맞춰 일하라. 그래야 부자가 된다.

2부 부자로 가는 길목에서



돈, 똑바로 알자


돈에 대한 위선을 버려라:
돈에 대한 한국 사회의 태도는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처럼 대단히 이중적이다. 어느 종교에서는 돈이라는 말 대신에 물질이라는 단어를 즐겨 쓴다. 신성한 장소에서 돈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는 것조차 불경스럽게 여기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돈에 대하여 말하는 것을 상스럽고 천하게 여기는 태도는 우리 사회 어디서나 나타난다. "황금을 보기를 돌같이 하라”라는 최영 장군식의 초월적 가르침도 있고 “나물 먹고 물 마시고 팔베개를 베면 행복한 것”이라는 식의 안빈낙도가 교육의 한 핵심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런 점들을 생각하면 이 사회는 그 어느 나라보다도 깨끗하고 청렴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을 살펴보면 작가 출신 정치인 김홍신의 말처럼 이 나라는 한 푼이라도 서로 더 위해 ‘서로 뜯어먹고 사는 사람들’이 가득한 곳이고, 그러한 탐욕으로 인해 한국의 부정부패 지수는 에스토니아, 남아프리카공화국, 모로코 등보다도 더 낮은 48위이며(국제투명성기구 2000년도 발표) 전 세계 수출주도 국가 19개국 가운데 한국의 뇌물공여지수는 최하위인 18위에 머물고 있고, 떡값과 리베이트가 어느 곳에나 만연하여 있다. 돈에 대한 태도가 이렇게 겉과 속이 전혀 다른 이상한 모순을 보이는 나라가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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