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이 독서법으로 연봉 3억이 되었습니다
내성적인 건물주 지음 | 메이트북스
저는 이 독서법으로 연봉 3억이 되었습니다
내성적인 건물주 지음
메이트북스 / 2023년 3월 / 240쪽 / 16,500원
프롤로그제가 태어난 1992년, 부모님은 속옷 가게를 운영하셨습니다. 속옷, 잠옷, 수영복, 튜브 등 다양한 걸 팔았죠. 그 당시 누나들 모두 학원에 보낼 정도로 여유가 있었다고 해요. 그런데 1997년 IMF 외환 위기가 터지면서 점점 가게 매출이 줄어들었습니다. 더욱이 근처에 대형 마트가 생기면서 상황은 더 나빠졌습니다. 부모님은 집을 줄인 보증금으로 가게 어음을 갚아나갔지만 끝내 재기하지 못하고 폐업하고 말았습니다. 이후로 부모님은 삼 남매를 먹여 살리기 위해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일을 하셨다고 해요. 그렇게 조금 나아지나 싶었지만, 아버지가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수술을 받고 한동안 일을 못 하시게 되었죠.
그때쯤 화장실이 집 밖에 있는, 10평도 안 되는 반지하로 이사했습니다. 이후에도 참 많은 일이 있었고요. 그런데도 부모님은 삼 남매를 끝까지 지켜주셨습니다. 저는 그런 부모님을 존경했고, 반드시 행복하게 해드리고 싶었어요. 그래서 다음과 같은 첫 번째 목표를 세우게 되었습니다. 가난을 내 손으로 끊어야 한다. 가족을 지킬 수 있는 힘을 얻어야 한다.
목표를 세우기는 했지만 공부를 열심히 하지는 않았습니다. 어찌어찌해서 전문대에 들어갔고, 졸업 후 물리치료사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하루 12시간씩 일하고, 퇴근 후와 주말에는 다른 일을 했습니다. 일을 많이 해야만 부자가 된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인생이라는 것이 뜻대로 되지는 않더군요. 점차 부모님 건강에 문제가 생기면서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이렇게 가난이 대물림되는구나. 내가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쉽게 벗어날 수 없구나.’
그러던 어느 날, 자수성가하여 강남에 건물이 여러 채 있는 어르신을 환자로 만났습니다. 그분은 저에게 “가진 것 없이 태어난 사람은 독서밖에 답이 없습니다.”라는 말씀을 해주셨죠. 그 말씀을 듣고 저는 미친 듯이 책을 읽어갔습니다. 하지만 제 삶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어요. 그때 저는 다음과 같은 의문이 들었죠. ‘역시 재능이나 환경이 중요한 건가, 아니면 내가 책을 잘못 읽고 있는 건가?’
많은 고민 끝에 저는 ‘책을 읽는 데도 분명 방법이 있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렇게 저는 책 읽는 방법에 관한 세미나를 듣고, 관련된 책을 찾아 읽으며 연구했습니다. 그렇게 자세히 들여다보니, 부자들의 독서는 제가 기존에 알던 방식과는 조금 달랐습니다. 그리고 그때 저는 ‘이렇게만 책을 읽으면 가난을 끊을 수 있겠다’는 확신을 얻었어요. 그렇게 2년이 흘러갔고, 서른 살에 직장인 월급의 몇 배에 달하는 수익을 만들었습니다. 드디어 우리 가족을 지킬 힘을 얻은 겁니다.
아버지가 큰 병으로 수술을 받았을 때 1인실로 모셔 3주 동안 간병을 했고, 가족 5명이 다 같이 모여 살 수 있는 넓은 집을 구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다음과 같은 두 번째 목표를 이루기 위해 퇴사를 선택했습니다. ‘하루하루 설레는 일을 하며 살자!’ 이 책을 통해 바로 그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PART 1. 책을 읽었을 뿐인데 몸값이 올랐다
몸값 올리는 독서법을 온몸으로 배우다
낮잠도 잘 수 있는 직장에 들어가다: 엠제이 드마코가 쓴 『언스크립티드(부의 추월차선 완결판)』는 여러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한 가지 메시지를 전한다. ‘책을 읽었을 뿐인데 몸값이 올랐다.’ 또한 로버트 기요사키가 쓴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에는 “돈이 나를 위해 일하게 만드는 관점을 배우는 것보다 돈을 위해 일하는 것이 훨씬 쉽다. 그래서 결국 돈의 노예가 된다. 그러고는 잘못이 없는 자기 상사에게 화를 낸다.”라는 말이 나온다.
엠제이 드마코나 로버트 기요사키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책을 썼는지, 어떤 방식으로 돈을 벌었는지는 내게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소설가 프란츠 카프카가 말한 것처럼, 내가 살아가는 방식을 깨뜨릴 만한 도끼 같은 책이었다고 할 수 있다. 나는 그때부터 여러 시선으로 세상을 볼 수 있는 관점을 얻기 위해 책을 읽어나갔다.
그래, 투자는 나중 일이다. 일단 소득을 높이자: 물리치료사 신입 때였다.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사업을 하던 친구가 파일 하나를 보내줬다. ‘세이노의 가르침’이라는 글이었다. 부자가 되려면 꼭 읽어야 한다고 호들갑을 떨기에 일단 받아두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나는 몇몇 내용만 읽은 후에 더는 보지 않았다. 처음 시작이 다음과 같았기 때문이다. ‘좋은 의사를 만나는 법, 좋은 변호사를 만나려면….’ 흥미가 생기지도 않았고 재미도 없었다. 신입이라 배울 것도 많아 힘들어 죽겠는데 ‘좋은 의사, 좋은 변호사가 뭐 그리 중요한가’ 싶었다. 땀이 줄줄 흐르는 지옥철을 견디며 출근하고, 정신없이 환자를 보고, 퇴근 후에는 전공 공부를 했다. 주말에는 축구도 하고 데이트도 해야 했기에 나에겐 시간이 없었다.
그렇게 5개월이 지났을 무렵, 문득 출퇴근하는 시간이 아까웠다. 그래서 ‘책을 읽어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그러나 사람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지하철에서 책을 꺼내 읽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그때 문득 예전에 친구가 보내준 ‘세이노의 가르침’ 파일이 생각났다. 그렇게 나는 나와 같은 직장인들 사이에 끼어서 부자는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일하는지 읽어갔다.
‘세이노의 가르침’을 쓴 사람은 보따리 장사부터 시작해 매년 평균 10억 원씩 소득세를 낸 한국인 사업가다. 아무튼 거기에 나오는 여러 글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문구가 있었다. “투자나 재테크는 나중 일이다. 일단 소득을 높여라. 돈 모으는 속도가 빠르면 재테크는 쉬워진다.” 깊은 인상을 받았지만 그렇다고 내가 특별한 일을 시작한 건 아니었다. 나는 그저 머릿속에만 넣어놓고 또다시 주말과 휴가만 기다리는 직장인으로 살아갔다. 아무리 좋은 말을 듣고 소름이 돋아도 그때뿐이었던 것이다.
2017년 어느 날, 친구를 통해 비트코인을 알게 되었다. 얼마나 충격적이었는지, 아직도 그날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아는 형이 비트코인으로 몇억을 벌었고 아파트를 샀다는데?” 이 말을 듣고 점심시간에 잠깐 찾아봤다. 그런데 도무지 어떤 원리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렇게 잊어버리고 몇 주가 지난 뒤 친구들과 바다를 보러 갔다. 분위기에 취해서 그랬는지, 기분이 좋아서 그랬는지 친구들과 각자 10만 원씩 비트코인을 사보기로 했다. 그런데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 수익률 30%를 경험했다. 그날 밤 샤워를 하면서 ‘직장은 그만둬도 되겠는데?’라는 행복한 상상에 빠져들었다. 사실 10만 원을 넣고 수익률 30%라고 해봤자 수익금은 고작 3만 원이었다.
나는 당연히 더 많은 돈을 비트코인에 넣었다. 그쯤에서 멈췄다면 좋았을 텐데, 이미 내 눈은 돌아가 있었다. 나는 누나를 설득해 더 많은 돈을 넣었다. 결과는 참담했다. 살면서 처음으로 자본주의의 쓴맛을 제대로 경험했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 ‘이제 절대로 안 해!’ 다짐하며 코인 시장을 떠났다.
그러던 어느 날, 휴대폰 메모장을 정리하다가 예전에 적어둔 문구를 보게 되었다. “투자나 재테크는 나중 일이다. 일단 소득을 높여라. 돈 모으는 속도가 빠르면 재테크는 쉬워진다.” 이 글을 읽고 생각해봤다. ‘내가 10만 원을 투자해서 30% 수익을 봤을 때 번 돈은 고작 3만 원이었는데 만일 천만 원을 넣었으면 300만 원이네.’ 소득이 적은 사람은 상대적으로 투자금이 적을 수밖에 없다. 수익률이 10%라고 해도 100만 원을 넣으면 10만 원이다. 그러니 무리해서 돈을 더 넣게 될 확률이 높아진다.
반면에 근로소득이든 사업소득이든 소득이 많은 사람이라면 어떨까? 내가 월 천만 원을 벌고 있다고 가정해봤다. 소득 중 20%만 주식에 넣어도 월 200만 원이다. 즉 투자금이 많으면 높은 수익률을 보지 않아도 어느 정도 만족할 수 있다. 또한 하락장이 와도 소득이 받쳐주기 때문에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크지 않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앞서 말한 이유와 함께 내가 소득을 높이려고 한 가장 큰 이유는 다음과 같다. 한번 올려둔 몸값은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내 몸값을 올리는 것, 즉 내 가치를 올리는 것이 최고의 재테크인 셈이다. 나는 현재를 인정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을 선택하기로 했다. 내가 가장 먼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었을까? 물리치료사로서 최고가 되어 월급을 높이는 것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때는 몰랐지만, 이것이 나의 몸값을 올려줄 첫 번째 변화였다.
내게 주어진 역할 그 이상을 해보자: 우선 물리치료사 선배들 가운데 돈을 잘 버는 사람은 어느 병원에서 일하는지, 어떤 교육을 들었는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조사했다. 그렇게 해서 연봉을 최대한 올릴 수 있는 병원을 찾았고, 그 병원에서 일하는 소장님에게 ‘배우면서 일하고 싶다’는 내용으로 이메일을 보냈다. 그렇게 해서 감사하게도 같이 식사하게 되었고, 소장님은 다음과 같은 말을 해줬다. “지금 다니고 있는 병원보다 월급이 적을 거고, 하는 일도 한 단계 낮아질 거예요. 이걸 1년 넘게 할 수도 있습니다.”
나는 이미 신념을 정했기 때문에 직장을 옮기기로 했다. 사이먼 사이넥이 쓴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에 따르면, 사람이 신념이 있으면 의사결정이 단순해지고 뭘 해야 하는지 명확해진다고 한다. 나도 ‘일단 소득을 높이자’고 신념을 세웠기에 해야 할 일이 단순해진 것이다. 그렇게 월급을 낮추고 직장을 옮긴 뒤 퇴근 시간이 되어도 항상 병원에 남았다. 막차 시간인 11시 20분 전까지 남아서 치료 연습과 이론 공부를 했다.
하지만 정해진 날짜가 없는 기다림은 나를 지치게 했다. 그냥 포기하고 이전으로 돌아가 편하게 살고 싶었다. 그런데 나는 그런 상황을 어떻게 극복해냈을까? 특별한 건 없다. 나는 지쳐갈 때마다 책을 읽었다. 그 당시 나를 붙잡아준 것은 “지금 하는 일이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그 분야에서는 귀신이 되어라.”라는 세이노의 글이었다. 그분의 얼굴도 모르고 만날 수도 없지만, 그 덕분에 부자는 어떻게 기회를 만드는지 간접적으로 배울 수 있었다.
책을 읽으며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았다. 소장님의 치료하는 모습이 담긴 영상을 최소 100번은 돌려봤다. 작은 습관이나 멘트까지 다 외울 정도로 말이다. 치료사의 손바닥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자세히 보고, ‘이 사람은 왜 어깨 관절을 치료했을까? 왜 저런 움직임을 줬을까?’ 스스로 질문해보고 답을 찾아봤다. 그리고 소장님의 치료하는 모습을 보며 해골 모형에 대고 연습을 했다. 책에서 말한 대로 도수치료에 있어서는 귀신이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11개월이 흘러갈 때쯤 좋은 자리가 생겼고, 소장님은 나에게 먼저 제안해주셨다. 드디어 기회가 온 것이다. 그렇게 나는 고작 경력 3년 차 때 개인 치료실을 얻었다. 그 당시 내가 정말 간절히 원하고 원했던 개인 공간이었다. 원장님과 다른 층을 쓰기 때문에 예약 환자가 없으면 책을 읽거나 낮잠을 잘 수도 있었다. 나와 같이 경제적 자유를 꿈꾸던 한 직장 동료는 내게 이런 말을 했었다. “진짜 이런 직장이 어디 있을까요? 하루 2~3시간씩이나 자기계발을 할 수 있다니!”
월급이 아닌 월세를 받기 시작하다나는 물리치료사로 일하면서 직장 탈출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물리치료사로 일하는 것을 싫어하지는 않았다. 다양한 직업을 가진 환자분들과 대화하는 것도 좋고, 그들 삶의 질을 높여줄 수 있다는 데 뿌듯함을 느끼기도 했다. 그런데 다음과 같은 이유로 직장을 탈출해야겠다고 확신했다.
어느 여름날, 음식을 잘못 먹고 장염에 걸렸는데 면역력이 떨어지면서 편도염까지 않았다. 온몸에서 힘이 빠지고 도저히 일할 수 없는 상태였다. 하지만 우리 병원은 예약제로 운영하는 시스템이어서 나는 일을 해야만 했다. 그렇게 눈이 반쯤 풀린 상태로 환자를 치료하고 지옥 같은 하루를 보내면서 ‘이런 식으로 20~30년은 못 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직장에서 소득이 남보다 많으면 행복할 줄 알았다. 물론 월급을 받는 순간에는 행복했지만, 솔직히 말하면 나의 인생은 이전과 달라진 게 없었다. 똑같이 출퇴근하고, 똑같이 주말과 연차만 기다렸다. 그때부터 ‘행복하려고 돈을 버는 건데 왜 행복하지 않을까?’라는 질문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오랜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답을 찾았다. 그것은 누군가 정해둔 공간과 시간이라는 틀에 갇혀 정해진 업무를 반복적으로 하고 고정된 값이 나오는 삶이 나와 맞지 않았다.
문제의 원인을 인지하고 책을 읽어갔다.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재료가 쌓이다 보니 욕망과 목표도 달라졌다. 물론 방향은 이전과 같았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 돈을 벌어야겠다’는 방향성 말이다. 다만 목적지까지 자동차를 타고 갈지, 비행기를 타고 갈지, 이동 수단이 조금 수정되었을 뿐이다.
그때 다시 읽은 책이 로버트 기요사키가 쓴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다. 여기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돈이 나를 위해 일하게 만들어야 한다. 부채가 아닌 자산을 만들어라.” 나 역시 월급을 높이는 데 한계가 보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자산을 만드는 데 관심을 기울였다.
젊을 때는 닥치고 배워보자: 이후 나는 투자 시간 대비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자산을 만드는 데 관심을 계속 두었다. 그러다 우연히 부동산 경매를 알게 되었다. 일하면서 경매 투자 관련 책을 2~3권 정도 읽어 배경지식을 쌓았다. 그리고 나서 강의를 듣기 시작했다. 수강료가 몇백만 원에 달해 스물여덟 살인 나에겐 꽤나 부담이 큰 금액이었다. 하지만 ‘젊을 때는 닥치고 배우자’는 신념을 따르기로 했다. 솔직히 이 돈을 아낀다고 해도 내 미래가 크게 바뀔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나는 8개월 만에 빌라 3채를 낙찰 받았다. 월세 132만 원을 받아 대출이자와 세금을 제하고 월 순익 90만 원의 자동 수익이 만들어진 것이다. 나는 이 3채를 낙찰 받기 위해 대부분의 연차를 경매 입찰하러 가는 데 썼고 주말에도 부동산을 보러 갔다. 뭔가를 이루기 위해서는 결과보다 과정을 보는 관점을 길러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렇게 믿고 있다.
PART 2. 책을 읽어도 내 인생이 달라지지 않았던 이유
일주일에 한 권씩 책을 읽는데 나는 왜 부자가 안 될까?어느 날, 70대 어르신이 목 통증과 두통으로 치료를 받으러 오셨다. 치료를 하면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던 중 어르신이 “이번에 코로나 때문에 세입자들 임대료를 20% 낮춰줬어요.”라고 말씀하셨다. 또한 강남에 건물이 있고 상속을 준비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어르신은 치료받는 동안 종종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풀어주셨다. 아주 오래전이라 기억이 흐릿해졌지만, 나의 인생을 바꿔준 한마디는 또렷하게 기억한다. “가진 것 없이 태어난 사람은 독서밖에 답이 없습니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그날은 왜 그리도 가슴이 두근거렸는지 모르겠다. 아마 단순한 조언이 아니라 어르신의 인생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때쯤 나는 독서 모임에 가입했다. 그런데 충격적인 것은 몇 개월이 지나도 나의 인생이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당시 독서 모임을 하면서 이런 생각을 했었다. ‘아, 오늘도 책 한 권을 다 읽었다. 이렇게 모임에 나와서 생각을 나누니 뿌듯하군. 나 참 열심히 사는 것 같아.’ 물론 이게 잘못된 것은 아니다. 삶의 원동력이 되기도 하고 실제로 큰 도움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사람마다 목적이 다르고 욕망의 크기가 다르다. 나는 직장을 나와서 자유롭게 일하며 가족을 지킬 수 있는 돈을 버는 것이 목표였기에 실질적인 변화가 없는 행위에는 분명 문제가 있다고 여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