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목록
재생목록이 비어 있습니다.
-
-
0:00 0:00
화면 너비 (여백)
좁게
보통
넓게
최대
배경 테마
글꼴
바탕/명조
돋움/고딕
글자 크기
작게
100%
크게
줄 간격
좁게
보통
넓게

나는 홈메이커입니다

크리스티나 피카라이넌 지음 | SISO


나는 홈메이커입니다

크리스티나 피카라이넌 지음

SISO / 2022년 8월 / 284쪽 / 16,500원





가정이라는 울타리, 가족이라는 이름



어두워지는 세상에서 가정은 빛이다


미국에서는 전업 가정주부를 홈메이커(Homemaker)라고 부른다. 하우스메이커(Housemaker)라 하지 않고 홈메이커라고 부르는 데는 이유가 있다. ‘하우스’와 ‘홈’은 전혀 다른 의미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하우스를 사고 빌릴 수는 있어도, 아무나 그 공간을 홈으로 바꿀 수는 없다. 하우스는 단순히 보이는 건물을 지칭하지만, 홈은 보이지 않는 것들을 포함한다. 그래서 홈메이커라는 말을 직역해 사회적 문맥 이상으로 의미를 확장한다면, 어떤 공간을 홈으로 바꾸고자 하는 누구나 홈메이커라 볼 수 있다. 전업주부이든, 워킹맘이든, 싱글이든, 기혼자이든, 아이가 있든 없든, 사람은 누구나 홈을 이루려고 노력한다. 우리는 온전히 자신이 자신일 수 있는 공간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홈에 자기만의 색깔을 덧입혀 각기 다른 자기표현의 연장선으로 홈을 유니크하게 만들어 간다. 세상에 같은 사람이 없듯, 똑같은 홈도 없다.

홈메이커가 무엇인지 이해를 돕기 위해, 잠깐 비즈니스 콘셉트를 빌려 생각해 보자. 입사 면접을 준비할 때 첫 번째로 알아야 할 것은 내가 지원하는 기업의 미션(Mission statement)과 비전(vision statement)이다. 미션이란 그 기업이 현재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 추구하고자 하는 방향, 지키고자 하는 가치관을 담은 존재의 이유, 아이덴티티의 정의, 사명에 대한 설명이다.

미션은 회사가 중요한 결정을 할 때 경로를 이탈하지 않도록 받쳐 주는 볼링의 가드바와 같으며, 어두운 바다를 밝혀 다음 가야 할 길을 알려 주는 등대와도 같다. 비전은 최종적으로 도달하고 싶은 이상적인 목적지이며, 미래의 청사진이다. 미션이 수많은 결정을 올바르게 내릴 수 있도록 보호막이 되어 주고 자기만의 색을 가진 다음 방향으로 인도해 준다면, 비전은 미션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희망과 원동력을 지속적으로 부여하는 꿈의 역할을 한다.

홈메이커에도 이와 비슷한 정의가 필요하다. 홈메이커는 몸과 마음 모두 멀티태스킹을 요구하는 직업이다. 그래서 직업의 정의를 잘 이해하고 적용하는 것만으로 어느 정도 심신의 보호를 받고 일의 본질을 잘 지켜 나갈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다. 홈메이커는 단순히 집을 아름답게 꾸미거나 가사를 담당하고 다른 사람의 스케줄을 돕는 사람이 아니다. 홈메이커는 하우스를 홈으로 만드는 사람이다. 집이라는 공간 안에 머무르는 모든 사람이 나 자신일 수 있도록 심신의 안정된 보호와 소소하고 따뜻한 행복과 편안한 쉼을 느끼게 해 주는 사람이다.

이것은 단순히 가족뿐만이 아니라 홈메이커 본인에게도 해당된다. 예쁜 인테리어 디자인을 원하는 것도, 고장 난 곳을 수리하는 것도, 매일 가사를 도맡는 것도 환경에 의해 삶의 질이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아무리 인테리어를 잘 한다 해도 보고 즐길 사람이 없으면 의미가 없고, 고장 난 부분을 수리해 봤자 편리하게 사용할 사람이 없으면 수리할 필요가 없으며, 가사도 사람이 살지 않으면 할 필요가 없다. 우리가 하우스를 홈으로 바꾸려는 이유는 이 공간이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홈메이커는 눈에 보이는 것들을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위해서 쓰도록 노력해야 한다. 누구나 집이라는 건물 안에서 살지만 다 홈으로 느끼지는 않는다. 그래서 홈의 초점은 보이는 것들이나 물질적인 것들이 아닌, 홈을 즐길 수 있는 사람 그 자체이다. 사람이 중심에 놓이지 않으면 집은 홈이 될 수 없다. 혹시 다른 사람 집에서 신세를 지게 된 적이 있다면, 그때의 경험을 한번 떠올려 보자. 그 집에서 나 자신이 그대로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마음이 보호받지 못한다면, 절대 그 집을 내 집이라 느끼지 못한다. 다른 사람 집에 얹혀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래서 홈메이커는 눈에 보이는 것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의 질을 케어하고 보이는 것들과 밸런스를 맞춰 주는 사람이다. 눈에 보이는 것들을 잘 사용해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도 원활하게 돌아가도록 흐름을 만드는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 이 역할을 어떻게 해내느냐에 따라 당사자는 물론 모든 가족 구성원의 근본적인 행복이 좌우된다. 험한 세상의 파도에서 홈은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보호하는 벙커이며, 몸과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재활원이며, 모자란 에너지를 재충전하는 쉼터이며, 새로운 방향과 태도, 전략을 생산하는 헤드쿼터다. 그러므로 눈에 보이는 것만을 중요시하거나 특정한 일 또는 구성원만을 중심으로 홈이 돌아간다면 이 밸런스는 깨지게 되고, 홈에서 상처받은 가족은 세상의 바다에서 떠도는 위태로운 배가 된다. 이것은 아이들은 말할 것도 없고, 어른도 마찬가지다.



엄마, 오롯이 자신을 위하여



인생이 레몬을 주면 레모네이드를 만들자


갤럽(Gallup) 조사에 따르면 홈메이커들은 직장을 가진 엄마들에 비해 우울증, 슬픔, 화를 더 많이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직장을 가진 엄마들은 17%가 우울증이 있는 반면, 전업 홈메이커들은 28%가 우울증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그리고 워킹맘은 34%가 걱정을 안고 산다고 말한 반면, 홈메이커들은 41%로 나타났다.

이런 홈메이커들의 어려운 이야기를 듣고 집에 방문해 보면 이해가 간다. 그들의 집과 가족들 사이에는 해야 할 일, 어긋난 감정, 적절하지 않은 행동과 말들이 넘쳐나 지켜보기만 해도 이미 버겁다. 그리고 끝없는 집안일의 책임은 홈메이커에게 일방적으로 치우쳐져 있다. 그들의 삶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의 불균형을 실감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홈메이커만큼 노동 학대를 당하는 직업도 없다. 원하는 때에 휴가를 낼 수 없고, 휴일 없고, 병가 없고, 교대 없고, 근무 시간의 끝이 없는 직업이 홈메이커다. 실제 조사에서 홈메이커의 일주일 평균 근무 시간은 90시간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집안일이 너무 힘들어 관두기엔 내 소중한 가족들이 눈에 밟히고 계속하자니 몸과 마음이 괴롭다.

나의 첫아이들은 쌍둥이다. 나는 쌍둥이가 태어났을 때 남편의 직장 때문에 주변에 한국 사람은커녕 아시아인도 드문 작은 시골에서 살았다. 남편은 매일 사무실로 출퇴근을 했고, 1년에 적어도 3번은 2~3주 동안 해외로 출장을 갔다. 시부모님은 비행기를 타야만 오실 수 있는 타 주에 살고 계셨고 친정은 한국에 있었다. 결혼 직후 이직 결정과 함께 이사를 한 후 4개월 만에 쌍둥이를 임신했기 때문에 친한 친구들도 없었다.

그렇다고 가사 도우미를 쓸 정도로 여유가 있는 형편도 아니었다. 한마디로 나는 낯선 곳에 혼자서 쌍둥이를 길러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나는 쌍둥이를 임신했기 때문에 거의 4개월 내내 입덧을 했고, 마지막 3개월은 침대에 누우면 숨을 쉴 수가 없어서 친구에게 빌린 리클라이너(recliner, 반 정도 눕혀지는 의자)에서 잤다.

쌍둥이는 예정일보다 5주 일찍 무사히 태어날 수 있었고, 나오자마자 집에서 1시간 거리에 있는 큰 병원의 NICU(Neonatal Intensive Care Unit, 아기 중환자실)에서 2주를 지냈다. 나는 수술하고 퇴원한 바로 다음 날부터 회복도 안 된 몸을 이끌고 아기들을 먹이러 남편과 매일 병원으로 장거리 출퇴근을 했다.

아픈 둘째는 4개월 즈음 6시간에 걸친 수술을 했다. 나는 아기가 퇴원할 때까지 병실에서 살았고 남편은 집에서 첫째와 지냈다. 나는 아픈 아기들이 함께 있으면 회복력이 상승한다는 것을 그레이 아나토미(Grey’s Anatomy, 미국 의료 드라마)에서 본 것이 기억나 늘 첫째가 오면 둘째가 누워 있는 병실 침대에 같이 눕혔다. 다행히도 수술한 아기는 별 탈 없이 퇴원을 했고, 우리는 마침내 집에서 다 같이 만날 수 있었다.

출산 후 퇴원하던 날, 담당 간호사는 나에게 정말 중요한 이야기를 해 주었다. 병원에 있는 동안 쌍둥이가 지켰던 스케줄을 나에게 주며 집에서도 꼭 지키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스케줄을 따르지 않으면 아기들도 예측할 수 없는 일상이 괴롭고, 나도 아기들의 행동 패턴을 예측할 수 없어 쉴 시간이 없기에 너무 힘들 거라고 했다. 나는 그 조언을 지키려고 무진장 애썼다. 늘 스케줄에 맞춰 움직였고, 아기들이 새로운 환경에서도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왔다. 병원에서 한 것처럼 매일 정해진 루틴을 정확히 따랐더니, 아기들은 집에서도 문제없이 병원 생활 패턴을 그대로 따라갔다.

나는 아기들과의 시간이 늘 이렇게 흘러갈 줄 알았다. 그러나 그건 나의 착각이었다. 정작 힘든 시간은 2년 반쯤 되던 때부터 시작되었다. 이때도 시스템은 잡혀 있었지만 쌍둥이가 걷기 시작하면서 예상치 못하는 일들이 많이 벌어졌고, 그로 인해 계획들과 스케줄이 틀어지기 시작했다. 그런 상황에서 다시 일상의 중심을 잡으려 노력하며 필요한 모든 일을 해내는 데는 추가적인 정신력과 노동량이 요구되었고, 그로 인해 하루의 무게가 점점 달라지기 시작했다. 나는 그때 시스템과 스케줄, 루틴이 주는 일상의 보호와 중립성, 인적 자원 배분, 역할의 밸런스와 생산성을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이때의 경험과 깨달음은 나의 삶에 전반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소중한 지침이 되었다.

쌍둥이는 비슷한 일을 동시에 하거나 동시에 원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내가 늘 염두에 두어야 하고, 미리 조심하고 준비해야 하는 일들은 점점 늘어났다. 그렇게 시간이 지날수록 아기들과의 하루에는 예상치 못한 추가 노동이 필요했다. 아기들은 천진난만하고 너무 예쁘지만, 내가 해내야 하는 일의 무게들은 점점 나를 짓누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자라면서 당연시해 왔던, 나의 편의를 위해 너무 쉽게 부탁했던 엄마의 노동이 실제로는 얼마나 고단하고 사람을 피폐하게 만들 수 있는지를 실감했다.

이 시기의 힘든 시간을 잘 버티기 위해 제일 먼저 한 일은 내가 해야 하는 역할과 일들을 정확히 파악하고, 우선순위를 정하고, 그에 따라 삶을 최대한 단순화시켜 가장 중요한 것들에 집중할 에너지와 마음과 시간을 챙기는 것이었다. 그리고 우울증을 예방하기 위해 쌓여 가는 불편한 감정과 소통하고, 나 자신과 친한 친구가 되어 홀로 서는 방법을 스스로 가르치게 되었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관계와 그 밸런스를 잘 지켜 줄 홈 시스템을 계속 고민하고, 분석하고, 검토하고, 대화하고, 시도하고 수정해 나갔다. 가족은 소중했고, 나는 가족과 같이 행복해지고 싶었기 때문에 이런 노력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미국에서는 육아로 인해 오는 우울증을 ‘강요 우울증(forced depression)’이라고 부른다. 육아는 우울증에 걸리는 것을 강요할 정도로 힘든 일이라는 것이다. 누구나 다 하는 일, 조용히 각자 잘 해내는 일 같지만, 엄마들의 하루를 들여다보면 말 그대로 ‘고전분투’다. 길고 무거운 일상에 눌린 엄마들의 우울한 마음은 비밀의 정원처럼 돌봐 주는 사람 없이 버려져 있다. 현실의 무게를 고려하면 엄마의 우울함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결과인지도 모른다.



엄마의 자존감을 지혜롭게 돌보는 법



자신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법 배우기


미국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알게 되고 또 나 자신을 알아 가면서 느낀 것은 우리가 존중하는 법을 잘 모르고 살아간다는 것이다. 미국 문화에 비교했을 때 한국 문화는 근면 성실의 챔피언이지, 존중과 이해의 대표주자는 아니다. 그것은 자신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배우자와의 관계,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 친구와 친척 관계, 상사와 직원의 관계에도 그렇다. 미국에서 살면서 한 번도 듣도 보도 못한 다양한 배경과 삶의 방식을 가진 사람들을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해 주는 것은 나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하고, 검토하고, 가르치고, 몸과 마음으로 연습해야 하는 새로운 패러다임 교육이었다.

홈메이커로 살다 보면 자신과 갈등을 겪는 순간이 많다. 수많은 감정과 의문을 마주하며, 혹은 의도적으로 지나치며 나아가야 하는 순간들이 하루에도 무수히 지나간다. 이 파도들 속에서 자신을 보호할 존중의 방파제가 잘 잡혀 있지 않으면, 그 감정들을 적절한 수준에서 조절해 주지 못하고 그 흐름에 휘말리게 된다. 그러면 내면의 갈등이 자신에 대한 실망, 능력에 대한 불신, 평가 절하, 자존감의 하락에서 나아가 가족과의 갈등, 대인관계의 갈등으로도 나타날 수 있다. 그래서 홈메이커는 다른 사람들뿐만 아니라 자신으로부터도 자신을 존중하고 보호하는 법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존중이라는 것은 마음의 안전지대를 지켜 주는 적정선이다. 지나치게 사적이거나 불편하거나 연약하거나 예민한 부분을 자극 또는 침범하지 않고 인격적으로, 관계적으로 건강한 선에서 멈추어 주는 것이 존중이다. 내 자신에게 특별한 구석이 눈에 띄지 않더라도 내세울 조건이 없더라도 진실한 내 자신의 본모습을 인정하고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것은 아이에게도 적용이 되고, 나 자신에게도 적용이 되고, 내가 원하지 않았던 대답이나 행동을 하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적용이 된다.

우리가 서로 프라이버시를 지켜 줘야 한다고 말하는 것처럼 마음도 그 프라이버시 선을 지켜 주는 것이 존중하는 것이다. 나와 다르다고 해서, 내가 원치 않는 상황이라고 해서, 또는 내 아이, 내 남편이라고 해서 끝까지 추궁하거나, 핀잔을 주거나, 흠을 잡거나, 교묘히 조종하려 하거나, 강요와 압박하는 행동 등은 존중과 거리가 먼 행위라고 볼 수 있다.

존중의 예를 들어 보자.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한 친구가 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에서 자라 나중에 미국으로 온 다른 친구가 있다. 어느 날 두 사람은 각자 아이들을 데리고 산책을 했다. 우크라이나 친구의 아이들이 산책로를 걷다가 갑자기 나무에 오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미국 친구가 놀라며 아이들이 다칠지도 모르니 얼른 내려오게 하는 게 좋지 않겠냐고 말했다. 그러자 우크라이나 친구가 나무에 오르는 건 위험하지 않다고 자신이 어릴 때 늘 나무에 올랐다고 말했다. 그 미국 친구는 그 친구의 교육 방식을 존중해 ‘그렇구나’ 하며 산책을 계속했다.

곧 산책로가 굽어지며 시야에서 길의 절반이 가려졌다. 미국 친구의 아이들이 앞장서서 걸어가다 곧 시야에서 사라졌다. 이제 우크라이나 친구가 놀라며 아이들이 시야에서 벗어났으니 쫓아가 봐야 되는 거 아니냐고 한다. 그랬더니 미국 친구가 멀리 가지 않고 우리 바로 앞에 있을 테니 쫓아갈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친구 역시 ‘그렇구나’ 하며 그 친구의 교육 방식을 존중해 주었다. 그렇게 두 친구는 서로 다른 방식을 나누고 배우며 남은 산책길을 즐겁게 끝냈다. 만약 두 친구가 서로의 다른 방식을 그대로 존중하지 않고 마치 상대방의 삶의 방식이 잘못된 것처럼 자신의 방식을 강요했다면 사이좋은 친구로 남기 어려웠을 것이다.

나는 미국에 와서 내가 알던 상식이 통하지 않는 것을 경험했다. 한국에서는 너무도 당연해서 생각조차 하지 않고 지냈던 것들이 미국에서는 적용이 되지 않았고 동의도 인정도 받지 못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상대가 몰라서 그런 줄 알고 설명을 하기도 하고, 가르치려 하기도 하고, 안 되면 되게 하려고도 노력했다. 그러나 내가 소위 말하는 ‘상식’의 차이나 부재는 단순한 무지에서 오는 것이 아니었다. 그냥 사람이, 문화가 다른 것이었다. 누가 무지하고 누가 그른 것이 아닌 그냥 그게 사는 방식이고 문화였던 것이었다.

그렇게 시행착오를 겪으며 문화적 다양성 속에서 존중의 진정한 의미를 배워 가기 시작했다. 존중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상대가 나랑 다른 점을 인정하는 것, 다른 사람이 거절 혹은 승낙을 할 때 내가 기대했거나 듣고 싶은 말이 아니었더라도 잘 받아들이는 것, 또는 내가 다른 사람과 달라도 괜찮다는 것을 인정해야 가능한 일이다.

전문 열람 제한

미가입 상태이므로 요약본의 일부만 제공됩니다.
더 깊이 있는 내일의 통찰력과 지식 에너지를
프리미엄 무제한 이용권으로 충전해 보세요!

멤버십 가입 / 결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