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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멘탈을 위한 좋은 심리 습관

가타다 도모야 지음 | 비즈니스북스


유리멘탈을 위한 좋은 심리 습관

가타다 도모야 지음

비즈니스북스 / 2021년 11월 / 248쪽 / 14,500원





불안한 마음의 원인을 찾는 연습



불안감, 나를 지키는 경고 메시지


인간의 몸은 감정과 감각을 관장하는 뇌 구조까지 대략 10만 년도 더 전인 수렵 채집 시대부터 더 이상 진화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어떤 생활을 했을까요? 수렵 채집 시대는 도시 국가는 물론, 농경 문화가 시작되기 훨씬 전입니다.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모든 것들을 해가 될지 알 수 없는 것들 투성이인 외부에서 얻어야 했으니 항상 위험에 노출되었을 것입니다. 매일 식량 부족에 시달리며 먹거리를 찾아 헤매고 사자와 같은 포식자의 표적이 되거나 자연재해로 희생되거나 타민족과 전쟁을 벌이기도 했을 것입니다. 이런 위험으로부터 하루하루 몸을 지키며 우리의 조상은 공포나 불안과 같은 감정을 키워 왔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흔들리고 불안해지는 것은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한 ‘방어 반응’입니다. 이를 통해 뭔가를 경고하기 위해서죠. 쉬운 예로 눈앞에 사자가 있다고 합시다. 이때 생기는 공포심은 ‘그 자리를 떠나라’는 경고입니다. 무섭지 않은 척, 강한 척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공포심은 그런 이성과는 관계없이 ‘여기에 있고 싶지 않아.’라며 그 자리를 벗어날 동기를 부여해 줍니다.

한 번 사자를 만났던 사람이 ‘또 만나면 어떻게 하지.’ 하고 사냥에 나서기를 불안해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불안이란 미래의 위험에 대비하라는 방어 반응입니다. 안전한 경로를 확인하고 무기를 갖추는 등 몸을 보호할 수 있도록 철저히 준비하라는 경고입니다. 경험이 많은 고대인이 “괜찮아. 걱정할 거 없어.”라고 말해도 대비하지 않으면 불안해서 마음이 진정되지 않을 것입니다.

‘사자는 당연히 무섭죠. 하지만 다른 사람의 시선을 두려워하고 불안해하는 건 이상하지 않나요?’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시선이 두려운 것도 자신을 지키기 위해 나타나는 방어 반응입니다. 인간은 집단생활에 적응한 동물입니다. 바꿔 말하면 단독으로 살아갈 수 있는 강한 동물이 아닙니다. 고대 사회에서는 집단에서 쫓겨나거나 무리에 끼지 못하면 곧장 죽을 위기에 처했습니다. 따라서 다른 사람에게 미움을 받거나 얕잡아 보이거나 가벼워 보이는 등의 위험 요소들을 멀리하려는 것도 훌륭한 방어 반응입니다.

저는 스물여덟 살에 녹내장이라는 병으로 눈에 장애를 얻었습니다. 녹내장은 조금씩 눈이 보이는 범위, 시야가 좁아지는 질환으로 실명 원인 1위에 꼽히는 질병입니다. 지금은 오른쪽 눈은 거의 실명에 가깝고 왼쪽 눈도 한가운데만 겨우 보이는 정도입니다. 그런 작은 구멍으로 보이는 것은 교정하여 0.08 정도의 흐릿한 세상입니다. 물론 일이나 생활도 불편하지만 그보다 훨씬 더 저를 힘들게 했던 것은 역시 마음의 문제였습니다.

발병 당시는 독립한 지 딱 3년이 지난 시점이었습니다. 나름대로 노력해서 자리를 잡았고 잘해 낼 자신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녹내장이란 진단을 받자 혼자 밖에 나가기 두렵고 마음이 몹시 약해졌습니다. 제 마음은 열등감과 굴욕감이 뒤섞인 어두운 감정으로 가득했습니다. ‘열등감 따위 느끼지 않아도 돼.’, ‘앞을 못 본다고 부끄러울 게 뭐 있어.’ 하면서 스스로를 타일렀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털어 내려고 해도 마음은 풀리지 않았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저를 괴롭힌 부정적 감정은 당연합니다. 중요한 것을 경고하고 있었는데 그걸 알아차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열등감은 ‘역할을 잃을’ 위험이, 굴욕감은 ‘존엄을 잃을’ 위험이 다가오고 있다고 나에게 경고했던 것입니다.

고대 수렵 채집인들과 달리 현대인은 안전합니다. 비록 역할이나 존엄을 잃어도 살아갈 수 있죠. 하지만 자신을 비하하고 ‘못난 나’를 탓하면서 남의 눈치를 보며 산다면 굴욕으로 점철된 인생을 살게 될 것입니다. 어두운 감정이 보냈던 경고의 의미를 번역하면 이렇습니다. ‘이대로는 안 돼. 나만이 할 수 있어! 자부심을 갖고 어떻게 살지 생각해 봐!’ 당시에는 그런 경고를 받고 있다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방어 반응의 의미를 깨닫고 행동을 바꾼 것은 좀 더 시간이 지난 후였습니다.

여러분의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자연스러운 감정을 의심하지 마세요. 그것은 오랜 세월에 걸쳐 축적된 ‘안전하게 살기 위한 방어 반응’입니다. 아무리 불쾌한 감정이라도 다 의미가 있으며 여러분을 지키기 위한 알람입니다.

약한 마음을 인정하는 것이 먼저다


단단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약한 마음을 부정하거나 강한 척하지 않습니다. 부자연스럽게 행동할 필요가 없죠.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은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감정을 인정하고 보상하는 것입니다. ‘보상’이란 ‘부족한 것을 보충하려는 마음의 작용’을 말합니다. 자기 자신에게 솔직해져야 그에 따른 보상 작용으로 마음이 강해집니다.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기 위한 행동을 일으키는 것이 유리 멘탈의 역할입니다. 그리고 행동을 개선하면 내면은 자연스럽게 강해지게 되죠. 실제로 저는 눈이 잘 보이지 않자 부족한 감각을 메꾸려는 듯 귀로 들리는 정보에 민감해지고 손과 손가락의 감각이 예민해졌습니다. 보상 작용, 즉 ‘부족한 것을 보충하려는 움직임’은 스스로 몸을 지키기 위해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작용입니다.

안 좋은 일을 겪었을 때, 불쾌한 감정이 드는 게 당연합니다. 지갑을 잃어버리면 속상하고 수입이 줄어들면 불안합니다. 문제는 그러한 자연스러운 감정을 부정하면 개선하기 위한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이겠죠.

구도는 아주 단순합니다. 가령 시합에서 져서 화가 난다면 자연스러운 감정입니다. 이런 감정을 해소하기 위해 연습량을 늘리거나 연습 방법을 바꾸는 등 행동을 수정합니다. ‘결과를 직시했다.’, ‘도망치지 않고 끝까지 해냈다.’는 자부심이 생기면 자신에 대한 믿음도 생깁니다. 다시 말해 진정한 자신감이 내면에서 솟아납니다. 자연스럽게 강한 마음이란 이런 것입니다.

시합에 져서 억울하고 분한데 아닌 척, 괜찮은 척 자신을 속이고 ‘몸 상태가 좋지 않아서’, ‘심판 판정이 이상해서’ 등의 이유를 대며(설령 진실이라고 해도) 자연스러운 감정을 똑바로 보지 못하고 회피하는 선수는 신체적, 기술적으로는 물론 정신적으로도 강해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억울하고 분한 감정을 인정하지 않는 한 부족함을 보충하려는 보상 작용, 다시 말해 상황을 바꾸기 위한 행동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는 정신적인 면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정신적 문제는 전부 환경 변화에 의해 생깁니다. 그리고 변화를 만들어야만 해결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확신을 얻은 후 지난 10년 동안 일어난 일로 약해진 저의 마음을 전부 ‘강인함의 재료’로 가공해 왔습니다. 즉 끊임없이 부족한 능력을 보충해 왔다는 뜻입니다. 그러자 할 수 있는 일이 늘었고 점점 더 자신을 믿게 되었습니다. 어떤 일에도 동요하지 않는 마음은 갖지 못했지만 동요하는 마음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은 알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아무리 마음이 약해져도 괜찮아.’라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살다 보면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2020년 봄 이후, 크게 힘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대 방지를 위해 강의 시간에 수강자 간 대화가 금지되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일방적으로 혼자 떠드는 일에는 자신이 없습니다. 그런 강의 방식보다는 수강자를 수업에 참여시키거나 게임을 하면서 듣는 사람도 함께 신이 나서 떠들고 즐기며 배우는 방식을 선호합니다.

그런데 갑작스러운 환경 변화 때문에 제 방식대로 강의를 진행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게다가 눈이 잘 보이지 않아서 수강자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반응이 어떤지 알 수가 없습니다. ‘대화 금지 규칙’이 생긴 이후 즐거웠던 강의 준비가 고통스러워졌습니다. 코로나 탓이니 신경 쓰지 말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느낀 것을 다르게 해석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수강자에게 도움이 되도록 프로그램을 전부 다시 짜야겠다.’고 결심하고 나니 더 이상 강의 준비가 고통스럽지 않았습니다. 그 고통 역시 행동을 바꾸기 위해 생긴 것이었습니다. 이때 ‘코로나 탓이니 어쩔 수 없지.’ 하며 괴로운데도 아닌 척 넘겼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저는 계속 스트레스를 받으며 강의를 진행했을 테고 프로그램도 영영 개선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마음을 강화하기 위해 뭔가를 나쁘게 말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저 환경 변화로 약해진 마음의 의미를 이해하고 이를 보완할 수 있는 행동을 하면 됩니다. 지금까지 그렇게 하지 못한 이유는 자신의 마음 상태를 내내 부정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느낀 대로 마음이 약하다는 것을 인정하세요. 그렇게 하면 자연스럽게 어떻게 개선해야 할지 깨닫게 될 것입니다.



약해진 마음을 인정하는 연습



마음이 약한 건 인간적이라는 말


아내는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이 있던 날, 신경내과에서 우울증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 후에 2년 동안 일을 쉬었습니다. 직접적인 원인은 과로입니다. 사실 몇 개월 전부터 징후가 있었습니다. 퇴근 후 집에 돌아와도 기분이 울적한지 밥을 잘 먹지 못했고 음주량이 늘었습니다. “정말 괜찮아?”라고 몇 번이나 물었지만 아내는 매번 괜찮다고 했습니다. 결국 불안해서 전철을 탈 수 없을 정도가 되어서야 휴직을 결심했습니다.

나중에 들어 보니 아내에게도 역시 이유가 있었습니다. 불안해서 회사에 가지 못하게 된 ‘그렇게 될 만한 이유’가. 당시 아내의 부서는 어떤 불합리한 안건으로 골치를 앓고 있었습니다. 누가 손을 대도 잘 해결되지 않는 일이었죠. 그런 부서의 관리를 떠맡자 성실하고 사람 좋은 아내는 거절하지도 누군가에게 떠넘기지도 못했습니다. 부정적인 기분을 꾹꾹 누르고 마냥 열심히 일했던 겁니다. 우울과 불안, 식욕 부진, 불면증과 같은 징후가 있었는데도 저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좀 더 빨리 알아차렸더라면’ 하고 몇 번이나 후회했는지 모릅니다.

아내와 같은 상황에 처해도 ‘어차피 망할 일, 못해도 괜찮아.’ 하면서 뻔뻔하게 대처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다들 아무렇지 않은데 이런 사소한 일로 힘들어하다니.’라고 생각하며 스스로 한심하다고 느낄 때도, 스스로가 이해하기 어렵고 납득이 되지 않을 때도 내면에는 ‘그렇게 느낄 만한 이유’가 반드시 있습니다.

타인과 비교하거나 보편적인 관점에 맞추려고 할 필요는 없습니다. 자기 자신이 느끼는 것만이 진실이니까요.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을 상담했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그렇게 느낄 만한 이유’가 없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객관적으로 보면 이해하기 어렵더라도 당사자의 이야기를 유심히 귀 기울여 들으면 반드시 이유가 있었습니다. 이는 매우 자연스러운 반응이며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이해하기 힘든 감정이라도 ‘그렇게 느낄 만한 이유가 있다’고 믿고, 설령 명확한 이유를 찾지 못해도 ‘잘 모르겠지만 분명 이유가 있을 거야.’라고 생각하세요. 그러고 나서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인간적인 보통의 반응이다.’라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마음을 강하고 단단하게 만드는 기준이 됩니다.

마음속 ‘불안 도깨비’와 이별하는 법


많은 사람들이 ‘불안을 없애는 방법’을 알고 싶어 합니다. 물론 그 마음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저도 인간관계, 외출, 장래 등 만사가 불안해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불안은 전부 의미가 있어서 생긴 것입니다. 적이라며 멀리할 게 아니라 사이좋게 지내며 이용해야 합니다. 불안을 ‘내비게이션’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울 겁니다.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설정하면 목적지까지 가는 길을 자동으로 안내해 줍니다. 만약 길을 잘못 들면 내비게이션은 ‘경로를 재탐색합니다!’ 하면서 가는 길을 수정하라고 알려 줍니다. 불안도 마찬가지로 ‘행동을 수정하세요.’라는 경고입니다. 불안의 경고를 무시하고 참고 지내는 것은 시끄럽게 울리는 알람 시계를 이불로 덮어 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있어서 당연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불안을 부정하고 싶어서 더 커진 불안을 저는 ‘불안 도깨비’라고 부릅니다. 지금까지 경험상, 불안해서 고민한다는 사람의 불안 중 90퍼센트는 이 불안 도깨비였습니다. 어떤 권투 선수를 상담했을 때의 일입니다. 그는 ‘불안을 없애고 싶다’고 했습니다. 원래 신체적으로도 기술적으로도 강한 선수였습니다. 그런데 확실히 이길 것을 장담했던 시합에서 지면서 몸이 자신의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게 되었고 이후 다른 시합에서도 연달아 패배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불안을 없앨 수 있을지 조사하고 다양한 시도를 했다고 합니다. 프로 야구 선수가 슬럼프에 빠질 때 다니는 전문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불안해지지 않는 암시’도 걸어 봤지만 뭘 해도 시합 전 불안 증세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불안이 없어지지 않는 한 절대 이기지 못할 것 같아.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라는 생각은 불안 도깨비의 전형적인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처음 그를 만났을 때, 저는 이렇게 물었습니다.

“왜 불안이 커졌는지 아세요?” 그는 “제 정신 상태가 약해서 그런 게 아닌가요?” 하고 대답했습니다.“그건 아닙니다. 불안을 부정하고 강한 척해 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불안이 오히려 더 커진 것이죠. 냉정하게 생각해 보세요. ‘또 졌잖아.’라고 불안에 사로잡히는 것이 그렇게 이상한 일인가요? 중요한 시합이라면 더 불안해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불안해지는 것’이 정답이겠죠.”

그에게 선택지는 두 가지밖에 없습니다. 도망치거나 싸우거나. 즉 시합을 포기하고 패배하여 기대를 저버림으로써 위험을 제로로 만들 것인가, 아니면 이겨서 주변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할 것인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죠. 이 경우, 위험을 피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선택이었습니다. 불안이란 감정은 그 선택으로 이끄는 동기 부여였던 셈입니다.

그는 ‘불안을 부정한다’는 자각마저 없었습니다. 코치가 늘 그에게 “네가 불안한 건 마음이 약하기 때문이야!”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가 불안을 부정하고 계속 강한 척한 것은 주변 사람들이 그런 모습이기를 강요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저와 대화하면서 불안은 적이 아니라 오히려 내 편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시합 일주일 전에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전히 불안합니다. 질까 봐 두렵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불안해질까 봐 불안하지는 않습니다.” 연습량을 늘려도, 새로운 기술을 고안해도, 상대의 전술을 완벽하게 분석하고 대응하려고 해도 불안을 완전히 없애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긴다는 확신도 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준비해도 불안한 마음은 남죠. 운동이든 일이든 인간관계든 모두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래도 불안으로 나타나는 경고를 따라 해야 할 일을 전부 해냅니다. 그러면 ‘할 수 있는 것은 전부 했다’는 자신감, 자신에 대한 믿음이 생깁니다. 그것이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진정한 강인함입니다. 그의 시합 결과를 알려드리면 판정승이긴 하지만 오랜만에 승리했다고 합니다.

불안은 나쁜 것도 우리의 적도 아닙니다. 오히려 내 편이며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안내해 주는 내비게이션입니다. 불안한 것은 여러분의 마음이 약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위기관리에 뛰어난, 훌륭한 마음을 가졌다는 증거입니다. 그러한 강점이 있기에, 안전하게 살아가기 위해 일단 ‘불안해진다는 것’을 깨닫기를 바랍니다.



강한 척하며 마음을 괴롭히지 않는 연습



‘하지 않으면 안 돼’의 세 가지 유형


‘좋은 부모가 되지 않으면 안 돼.’, ‘늘 웃는 모습을 보여 주지 않으면 안 돼.’, ‘일찍 일어나지 않으면 안 돼.’, ‘즐기지 않으면 안 돼.’, ‘열심히 하지 않으면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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