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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번밖에 살 수 없다면 인문고전을 읽어라

김부건 지음 | 밀리언서재


단 한 번밖에 살 수 없다면 인문고전을 읽어라

김부건 지음

밀리언서재 / 2023년 1월 / 328쪽 / 18,000원





PART 01 최고가 될 준비가 되었는가?



일이 풀리지 않을 때는 자신부터 돌아본다


그해 농사를 망친 것은 세월 탓으로 돌리지 말라.

무죄세 사천하지민지언(無罪歲 斯天下之民至焉) -『맹자』 「양혜왕 상」


“흉년의 탓으로 돌리지 말라. 백성의 기아를 금년의 기후가 나빴기 때문이라고 하거나, 잘못이 흉년에 있다는 등과 같이 세월을 탓하지 않고 그것을 왕 스스로의 책임으로 여기고 정치를 한다면 천하의 농민들은 모두 기뻐하면서 왕의 치하로 모여들 것이다.”

맹자는 왕이 어진 정치를 베풀면 백성들은 그를 본받아 분수에 맞게 살 것이고, 왕이 걱정하는 것처럼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해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아 나라를 오랫동안 다스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왕이 패권주의에 물들지 않고 중심을 백성들에게 두어 도덕 정치를 베풀 때, 비로소 백성들도 인의(仁義) 정신을 받아들여 왕에 대한 무한 신뢰와 충성을 하게 된다는 가르침을 준 것이지요.

외부로부터 침입도 없고 어떠한 적의 침공도 능히 무찌를 수 있을 정도로, 안으로 단단한 결속력을 갖춘 태평천국이라 하더라도 흉년이 들면 민심은 순식간에 흉흉해지고 도적과 불신, 시기 세력들이 판을 치게 됩니다. 그렇다면 과연 말 그대로 흉년이 왕의 책임일까요?

이는 흉년이 들어 농사를 망친 탓을 모두 기후나 백성의 책임으로 전가하지 않고 어쩔 수 없는 결과에 대해 왕이 책임지고 최대한 빨리 수습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내부적으로 민심이 흉흉해지거나 기아에 시달리지 않도록 발 빠른 대책을 수립해야 함을 언급한 것입니다.

다양한 직업군으로 세분화된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농사짓기처럼 자연환경에 의존하기보다 대부분 인적 관리와 물적 관리로 나눠지는 일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크고 작은 불상사가 생겨납니다. 그 가운데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책임 소재를 파악하는 것과 더불어 누군가는 그 책임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지요.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억울한 사람이 생겨나고 더러는 자신을 희생해서 스스로 모든 책임을 짊어지려는 의인도 있겠지만,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책임 전가’를 하려는 악의적인 마음입니다.

맹자는 인(仁)은 사람들의 편안한 집이고, 의(義)는 사람들의 바른길임을 알 때, 올바른 정도(正道)의 이치를 깨달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본인이 잘못했다면 과감히 그것을 인정하고 스스로 반성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남 탓 네 탓’을 하면 할수록 그만큼 내 주위에는 불신과 방해 세력들이 양산될 것입니다. 하지만 ‘내 탓’으로 책임을 인정하고 새로운 해결 방안을 찾고자 노력한다면, 내 주변에는 어느새 나를 인정하고 존경하는 사람들이 모여든다는 사실을 늘 잊지 말아야 합니다.

행동하기 전에 옳은 일인지를 먼저 생각하라


백성들이 형벌을 면하려고만 하고 나쁜 짓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민면이무치(民免而無恥) -『논어』「위정」


“법률로만 시종일관하는 정치하에서는 세상의 일반적인 도덕 감정이 땅에 떨어진다. 즉, 국민들은 법률에만 저촉되지 않는다면 무슨 일을 해도 된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마침내는 법망을 뚫고 거기에만 걸리지 않는다면 어떤 나쁜 짓을 저질러도 부끄러운 줄 모르는 것이다.”

흔히 ‘양심에 맡긴다’고 표현합니다. 그만큼 현대 사회에서 믿음과 신뢰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세상에는 법 없이도 잘 사는 대다수의 국민들이 있지만, 교묘히 남의 약점이나 허점을 악용해서 사리사욕을 채우는 이들도 많습니다.

도교에는 “큰길을 계속 가는 데는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그렇다고 유혹에 못 이겨 다른 길로 접어들면 전망은 그만큼 더 어두워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고단한 삶은 장애와 시련의 연속이므로 편하다고 해서 선택한 길이 잘못된 길일 수도 있습니다. ‘나 하나쯤이야.’ 하는 생각이 모여 전체 질서를 어지럽히고 정해 놓은 규칙들을 혼란스럽게 할 수도 있습니다. 일례로 지자체별로 시민 양심 문고를 만들어 책을 기증받거나 구입해서 운영했는데, 책이 분실되거나 낙서 등으로 훼손되는 경우가 많아 결국 중단되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전적으로 시민의 양심에 맡겨 문고를 운영하는 것도 다분히 어려운 일인데, 자신이 저지른 행위가 타인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끼치고 손괴까지 발생시킨다면 어떻게 될까요? 응당 그에 따른 피해 보상과 그 책임을 물어야 할 일이지만, 법망을 교묘히 피해 가며 옳지 않은 행위에 대한 책임감이나 부끄러움조차 못 느끼는 이들이 많습니다. 준법 행위는 법치 국가에서 당연시해야 할 의무이지만, 그 전에 우선적으로 지켜야 할 것이 바로 도덕 정신입니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했습니다. 무언가 좋은 일을 할 때는 다른 사람 모르게, 그리고 내세우기 위해서가 아닌, 마음에서 우러나는 행동을 하라는 뜻입니다. 이런 마인드를 가진 사람들이 많다면 법 없이도 공정한 사회가 될 것이고, 자신보다 남을 먼저 배려하는 사회 풍토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잘못된 행위를 저질렀다면 타인이 알기 전에 스스로 먼저 반성하고 부끄러워할 줄 아는 성숙한 문화 시민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내 삶의 주인공으로 살아가는 법


자신 말고 믿고 기대는 것이 있어서는 안 된다.

불가이유협야(不可以有挾也) -『맹자』「만장 하」


“친구를 사귀는 도리는 부귀나 권세, 재능 등을 믿고 그것을 친구 관계에 끼워 넣어서는 결코 성립될 수 없다.”

시시각각 변하는 삶에서 늘 적자생존의 이치를 절실히 깨닫게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인지도 모릅니다. 사람은 편할수록 더욱더 편해지려는 본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타인에 대한 의존도가 커질수록 자신의 독립은 점점 멀어진다는 것입니다.

옥스퍼드 대학교 졸업생들은 ‘온 세상이 내 것이다!’라며 자신의 존재 가치와 세상을 향한 무한 도전 의지를 보였습니다. 반면 케임브리지 대학교 졸업생들은 ‘세상이 누구의 것이냐는 나에게 중요하지 않다!’며 온전히 관점을 자신에게 맞췄습니다. 언뜻 정반대로 보이지만 둘 다 세상으로 나아가기에 앞서 자신을 믿고 자기 의지대로 살아가는 삶을 표명했습니다. 거친 세상살이에서 온전히 자신을 믿고 자기 생각대로 실행하는 것만큼 가치 있는 것이 또 어디 있을까요?

스티븐 코비는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에서 첫 번째 습관으로 ‘자신의 삶을 주도하라.’고 얘기합니다. “우선 자기 자신에게서 떠나 보라. 그리고 자신의 모습을 내려다보며 투자하도록 노력하라. 마치 다른 사람을 보듯이 자기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주도적인 삶을 사는 이들은 항상 긍정적이고 자신감이 넘칩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 역시 “주도적인 노력으로 스스로의 인생을 향상시키는 인간의 불가사의한 능력보다 더욱 고무적인 것은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개인의 비전은 스스로를 돕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을 때 비로소 그 가치가 더욱 빛나는 것이지요. 반드시 ‘하면 된다’는 믿음과 확신을 갖고 주도적으로 실천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합니다. 의존적 삶에는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대가가 따르는 법입니다. 남들이 이룩한 부귀와 권세, 능력을 부러워하기보다는 스스로를 믿고 자기 인생에서 진정한 주인공으로 거듭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PART 02 성공의 추월 차선으로 변경하라



선한 영향력이 성공을 가져다준다


사람의 인생이란 올바름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인지생야직(人之生也直) -『논어』「옹야」


“원래 인간의 본성은 선하다. 즉, 정직한 천성을 따라 살아가야 올바르게 산다고 할 수 있다.”

인생이란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시련의 연속입니다. 그 가운데 가장 많은 상처와 시련을 주는 것은 인간관계에서 오는 배신과 분노입니다. 서로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면 신뢰가 쌓이지 않고 결국 소통에도 문제가 생깁니다.

공자는 신이나 죽음과 같은 형이상학적인 것보다는 현실적인 문제 해결이 더 절실함을 강조했습니다. 사람들 간의 조화로운 관계를 통해 ‘이상적인 사회’를 이루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공자의 주된 관심사였습니다. 이상적인 사회란 계급 간의 갈등이 없고 사람 간의 신뢰로 움직이는 사회를 말합니다.

고자(告子)는 성무선악설(性無善惡設)을 주장했습니다. ‘인간의 본성은 선하다고도 볼 수 없고 악하다고도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고인 물을 동쪽으로 트면 동쪽으로 흐르고, 서쪽으로 트면 서쪽으로 흐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이 선한 마음을 먹느냐 악한 마음을 먹느냐에 따라 인간의 본성이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반면 맹자는 성선설을 주장했습니다. 본래 인간은 ‘인의예지라는 선한 본성’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이라는 사단에 의해 확인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인성론에 대한 옳고 그름을 떠나서 중요한 것은 올바른 인생을 살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느냐입니다. 올바른 삶이란 성공에만 집착해서 타인을 기만하고 자신을 숨기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과 신뢰를 쌓아 가는 것입니다.

큰 기회는 사소한 약속을 지키는 데서 온다


사람으로서 신의가 없으면 좋을 수가 없다.

인이무신 부지기가야(人而無信 不知基可也) -『논어』「위정」


“인간관계는 신의를 바탕으로 성립된다. 신의 없이는 인간관계도 사회도 성립될 수 없다. 그러므로 신의 없는 자는 훌륭하다고 인정받지 못한다.”

공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이 신의가 없다면 그것이 옳은지 모르겠다. 큰 수레에 소의 멍에 걸이가 없고 작은 수레에 말의 멍에 걸이가 없다면 무엇으로 그것을 운행하겠는가?” 멍에 걸이 없는 수레가 제구실을 못하는 것처럼 신의가 없으면 사람 구실을 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사람 간의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할 덕목입니다. 아무리 가벼운 약속이라도 서로의 신뢰를 바탕으로 한 것은 지키는 것이 도리입니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약속을 이행하지 못한다면 상대방에게 양해를 구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요즘 세상은 너무나도 바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일상의 다반사가 업무를 위한 미팅과 협의, 약속이나 만남들로 채워지고 있습니다. 때로는 약속을 잡아 놓고 다른 급한 약속이 생긴다거나 더 중요한 미팅이나 일정들 탓에 부득이 약속을 파기하거나 늦춰야 하는 경우도 생깁니다. 이럴 때 어떻게 신뢰를 지켜 나가야 할까요?

‘진여(眞如)의 마음’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참으로 있는 그대로의 마음’이자 ‘현재 있는 모습 그대로가 진리인 마음’입니다. 모든 존재에는 진실한 모습이 존재합니다. 화엄종의 대표자인 법장의 『화엄의해백문』에서는, “하나의 조그마한 티끌만 보아도 전체가 갑자기 나타나며, 이것과 저것은 서로 받아들이니 가느다란 머리카락 하나만 보아도 모든 사물이 함께 나타난다.”고 했습니다. 하나의 사물을 통해 하나의 완전한 우주를 볼 수 있는 것이 바로 ‘진여의 마음’입니다. 이렇듯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하고 가식과 집착하는 마음을 버렸을 때 비로소 사물을 제대로 평가하고 서로 간의 신뢰를 쌓아 나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스스로에 대한 자아 인식과 통찰을 얻어 내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스스로 깨우치기보다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배우며 습득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자신이 계획한 더 나은 삶을 위해 기대감과 희망을 갖고 열심히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겠다는 의지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러나 독불장군과도 같이 이기심과 아집으로 가득한 삶에는 좋은 결과가 찾아들지 않습니다.

물론 모든 사람들과의 관계를 원만하게 유지할 수는 없습니다. 단지 자신의 잘못이나 불찰로 인해 관계가 소원해졌다면, 자신에 대한 신의가 깨졌거나 신뢰감을 잃은 것은 아닌지 반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결국 신의를 잃으면 성공이든 성장 발전이든 자신이 원하는 인생을 이뤄 나가기 어렵습니다.

성공은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하다


길을 다닐 때는 지름길만 찾아다니지 않는다.

행불유경(行不由經) -『논어』「응야」


“큰길을 똑바로 나아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것은 비록 멀리 돌아가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평탄하고 올바른 길이다. 이와는 반대로 가까운 길로 보이고 변화의 매력을 가지고 있더라도 작은 길은 얼마 못 가서 막다른 곳에 다다른다.”

이는 자유(子游)가 한 말로 지름길이나 뒤안길을 취하지 않고 큰길로 나아간다는 것은 ‘행동을 공명정대하게 함’을 비유한 말입니다.

자유는 공자의 제자로 공문십철(공자 문하 10명의 뛰어난 제자)에 속하며, 자하와 더불어 문학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습니다. 그가 노나라에서 벼슬하여 무성의 재상으로 임명되었을 때의 일입니다. 공자는 사랑하는 제자가 벼슬을 하게 되자, 일하는 모습을 보고 축하도 할 겸 직접 무성으로 찾아갔습니다. 공자는 자유에게 “일을 잘하려면 좋은 협력자가 필요하다. 네게도 아랫사람 중에 훌륭한 인물이 필요할 텐데 쓸 만한 인물이 있느냐?”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자유가 “예, 안심하십시오. 성은 담대, 이름은 멸명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이야말로 훌륭한 인물로 언제나 천하의 대도를 갈 뿐, 결코 지름길이나 뒤안길을 가지 않습니다. 정말 존경할 만한 훌륭한 인물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공자는 기뻐하면서 훌륭한 인물을 소중히 대하라며, 제자를 격려했다고 합니다.

목적지까지 빨리 도착하려면 지름길로 가야 합니다. 그러나 지름길이라 하여 좁은 길로 가다가는 막다른 길에 이르기 쉽습니다. 지름길이 반드시 ‘빠르고 올바른 길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지름길이란 불필요한 반칙과 편법, 특권 같은 비합리적인 행위를 뜻합니다. 발 빠른 행동이 일체의 부정이나 거짓 없이 공명정대한가에 대한 성찰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의미입니다.



PART 03 인생에 플러스가 되는 사람을 만나라



변화는 받아들이되 마음은 한결같이


변하지 않는 마음을 지닌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난호유항의(難乎有恒矣) -『논어』「술어」


“착한 사람일 수는 없을지라도 적어도 변하지 않는 마음을 지닌 사람이 되어야 한다. 누구나 어제와 오늘의 언동이 다르고 겉을 꾸미며 자기 자신을 기만하는 생활을 보내고 있다. 한결같이 변하지 않는 마음을 지니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공자는 “성인은 내가 만날 수 없을 테니, 군자다운 사람을 만날 수 있으면 좋겠구나!”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한 사람은 내가 만날 수 없을 테니, 항심을 가진 사람을 만날 수 있으면 좋겠구나! 없으면 있는 체하고, 텅 비었으면서 꽉 찬 체하고, 가난에 허덕이면서 풍족한 체하면 항심을 갖기 어려우니라!” 쉬이 변하지 않는 평상심과 ‘체’하지 않는 평정심을 강조한 것입니다.

공자는 어리석은 3가지를 삼치(三痴)라고 했습니다. 첫째는 ‘없어도 있는 체’하는 망이위유(亡而爲有), 둘째는 ‘비었어도 가득한 체’하는 허이위영(虛而爲盈), 셋째는 ‘적으면서도 많은 체’하는 약이위태(約而爲泰)입니다. 이런 어리석은 자들은 항심을 갖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결코 변하지 않는 것은 ‘변하지 않는 것이 없다는 진리 그 자체뿐’이라는 말이 있듯이 항심을 갖고 살아가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특히 정치권에서는 수시로 당적을 옮기고, 직장 또한 자신의 이권에 따라 수시로 바뀌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시대적 상황에 맞게 잘 처신하는 것이라고 여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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