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이 분노에 답하다
충페이충 지음 | 미디어숲
심리학이 분노에 답하다
충페이충 지음
미디어숲 / 2022년 9월 / 288쪽 / 17,800원
1장 분노를 이해하면 인생이 달라진다
분노에 대처하는 4가지 방식당신은 분노한 경험이 있는가? 분명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렇다면 최근에 언제 분노했는지, 누구에게 분노했는지 기억하는가? 살아오면서 가장 크게 분노한 건 언제이고, 그때 어떻게 대처했는가? 답을 생각하다 보면 누구나 분노를 경험하지만 계속 분노한 상태로 있는 사람은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는 무엇을 의미할까? 결국 분노는 지나간다는 것이다. 그런데 분노는 어떻게 지나갈까? 분노의 감정이 끓어오를 때마다 어떻게 대처하는가? 분노를 어떻게 다루고 어떻게 바라보는가? 분노를 환영하고 이용하는가? 아니면 배척하고 대항하는가?
사람들이 분노를 대하는 태도는 단순한 편이다. 대다수가 분노를 억누르거나 아니면 표출한다. 분노가 일어나면 우선 참았다가 도저히 참기 어려우면 표출한다. 심리적으로 성숙한 극소수의 사람들은 분노를 탐구하고 그 배후에 숨겨진 의미를 알고자 한다. 나아가 자신의 분노를 통해 자기에게 모종의 가치를 선사한다. 분노는 비바람이나 번개처럼 세상에 당연히 존재하는 자연의 일부다. 이를 이용하는 방법을 익히면 거대한 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종종 재난이 된다. 분노를 탐구하는 첫걸음은 바로 자신이 분노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를 아는 것이다.
스스로 분노를 억누른다: 분노를 느꼈을 때 자신의 분노가 바람직하지 않다고 여겨 이를 혐오하거나 잘못된 감정이라며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따라서 이들은 자신의 분노를 억누른다. 분노를 억누른다는 것은 그 순간 자신의 분노를 허락하지 않고 분노가 외부로 드러나지 않도록 이성으로 통제하여 자신 안에 가둔다는 뜻이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다음 4가지 방식으로 분노에 대처한다. ① 자기 강요를 통해 분노를 억누른다, ② 자기 위안을 통해 분노를 억누른다, ③ 아예 분노를 부인한다, ④ 주의를 다른 데로 돌린다.
분노는 무언가 잘못됐다는 신호분노는 괴로운 감정이지만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 이상 증상이 나타났다고 알려 주므로 의미가 있다. 이때 분노를 억누르거나 표출하는 방법 말고도 그 순간의 분노에 대해 생각해 보는 방법도 있다. 내 마음은 무엇을 겪었는가? 나의 삶에 어떤 문제가 생겼는가? 분노는 나에게 어떤 정보를 알려 주는가?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해야 한다면 그 대상은 분노가 아니라 마음속의 진짜 문제다. 마음속부터 변화를 준다면 더 즐겁고 행복해질 수 있다. 분노가 자신을 더 이해하고 강하게 만드는 기회이자 출발점이 되는 것이다. 분노라는 신호가 전달하는 정보를 탐구하고 해석하여 마음속 진짜 문제를 해결하면 분노 신호도 ‘깜빡임’을 멈춘다. 그러면 분노라는 감정이 준 선물이 고마울 것이다. 분노에 대한 탐구는 다음 6가지 측면(
분노 안의 심판, 분노 안의 기대, 분노 배후의 자기 요구, 분노 안의 사랑, 분노 안의 상처, 분노 안의 욕구)에서 탐구할 수 있는데 이는 이 책의 핵심 내용이다.
분노를 탐구할 때의 장점은 명확하다. 분노 탐구는 자신을 이해하고 더 강하게 변화시키는 최고의 방법이다. 하지만 분노를 탐구한다는 것은 마치 자신의 몸을 수술하듯 내 몸 안에서 또 다른 자아를 끌어내어 자신의 분노를 바라보는 것이다. 이는 쉬운 일이 아니다. 마음이 매우 취약해질 때에는 그저 위로받고 보호받고 싶을 뿐 많은 것들을 생각하고 싶지 않다. 분노에 대한 탐구는 심리적으로 굳건할 때만 해야 한다. 이 분노는 과연 내게 어떤 정보를 알려 주는가? 이 정보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분노는 사실 하나의 도구다. 게다가 아주 큰 에너지를 지닌 도구다. 이 에너지를 파괴력이라고 부르며 분노의 공격성과 파괴력이 너무 크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사실 파괴력도 하나의 에너지다. 이를 잘못 사용하면 피해를 낳지만 제대로 활용하면 창조력으로 바뀔 수 있다. 분노를 이용할 줄 알면 목적을 달성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분노에 대한 내재적 탐구를 마친 후 분노를 이용하면 인격 성장에도 도움이 된다. 분노를 통해 차츰 자신을 알아 가고 분노할 필요가 없음을 깨닫는다. 분노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과 분노할 줄 모르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분노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마음에 분노가 없기 때문이다. 반면 분노할 줄 모른다면 분노를 억누르고 있는 경우가 많다.
2장 라벨링에 따라 분노가 올라온다: 분노는 심판이다
나의 해석에 따라 감정이 결정된다한 여성이 나에게 말했다. “우리 아이는 밥 먹을 때 입으로 들어가는 밥은 겨우 반이고 나머지는 다 바닥에 흘려요.” 이 아이의 어머니가 되어 보자. 내 아이가 이런 식으로 밥을 먹으면 어떤 생각이 들까? 어떤 기분이 들고 어떻게 반응할까? 아이의 행동을 어떻게 해석하겠는가?
100가지의 해석이 가능하다: 아이의 행동은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음식을 낭비하고 있잖아! 엄마 화났어!’, ‘먹고 싶은 것은 먹고, 안 먹고 싶은 것은 버리다니, 왜 멋대로 행동하는 거야!’, ‘널 위해서 힘들게 식사 준비를 했는데 함부로 흘리다니, 엄마의 가사 노동을 무시하는 거니?’라는 부정적인 해석을 할 수 있다. 반면에 ‘먹고 싶을 땐 먹고, 먹고 싶지 않을 때는 먹지 않고. 우리 아이는 주관이 참 확실하구나.’, ‘먹으면서 버리다니. 얼마나 맛이 없으면 그럴까. 그런데도 참고 먹느라 고생했어. 엄마가 마음이 아프다!’, ‘밥을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다가 떨어뜨렸구나. 아이들은 뭘 줘도 잘 논다니까. 정말 재미있네!’라는 긍정적인 해석도 가능하다.
위의 해석들 모두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아이가 밥 먹는 행위에 대해 100가지도 넘는 해석이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당사자와 소통하고 진짜 상황을 알아보기 전까지는 모두 추측일 뿐이다. 대다수 부모는 자녀의 이런 행동을 보면 자신만의 해석을 한 후 자신의 이해에 따라 반응한다. 대표적인 반응은 화를 내는 행동이다. 따라서 화가 나는 이유는 타인의 행동 때문이 아니라 타인의 행위에 대한 나의 해석 때문이다. 이 해석의 과정이 바로 ‘라벨링’이다.
타인의 행위에 대한 나의 해석, 라벨링: 다른 사람의 행동과 말은 모두 외부 자극이다. 이 외부 자극이 우리의 감각 기관을 통해 유입되면서 우리에게 영향을 준다. 하지만 자극 자체가 분노를 일으키지는 않는다. 자극이 중추 신경 계통을 통해 대뇌로 전달되고, 대뇌는 판단을 거쳐 타인의 행위를 정의한다. 대뇌가 이 이해의 과정을 거치면서 타인에 대한 분노가 시작된다. 따라서 라벨링은 ‘명명’ 혹은 ‘심판’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 과정은 자신이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진행되고, 우리는 그 판단에 따라 반응한다.
퇴근한 남편이 집안일에 관심 없고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지도 않으며 소파에 누워 있다고 가정해 보자. 게다가 아내와 대화를 나누지 않고 휴대전화 게임만 한다. 그 상황을 목격했다면 어떤 라벨을 붙일 수 있을까? ‘가정에 관심 없다.’, ‘무책임하다.’,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와 같은 라벨을 붙인 아내는 남편에게 분노한다. 한편 ‘남편이 무척 피곤하구나.’, ‘가정을 위해 남편이 고생하는구나.’와 같은 라벨을 붙인 아내는 남편의 고충을 이해하고자 한다.
라벨링은 자신의 내재적인 경험과 이해에 따라 외재적인 사물을 가공하는 과정이다. 이 과정이 그다음의 감정을 결정한다. 따라서 분노에 대해 탐구하기 전에 먼저 라벨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라벨에 대한 탐구는 ‘나는 분노할 때 타인을 어떻게 평가하는가?’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이다.
라벨은 사실이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남편이 가정에 관심이 없고 이기적이에요.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은 원래 이기적이에요. 사실이에요. 모두 그가 이기적이라고 생각하거든요.”라고 말한다. 사실이란 무엇일까? 사실은 객관적이고 관찰자가 달라져도 바뀌지 않는다. 다른 관찰자도 위의 남편이 이기적이라고 말할까? 남편 자신도 본인이 이기적이라고 생각할까? 남편은 분명 자신을 그렇게 평가하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이기적이라는 것은 개인의 시각에서 본 라벨이다. 누군가에 대해 내린 ‘이기적이다.’와 같은 평가는 우리의 대뇌가 만들어 낸 판단이지 객관적인 사실이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이 개인적인 평가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객관적인 사실이라고 오해한다.
우물 안 개구리에 대해 모두 알 것이다. 우물가로 날아온 새가 말했다. “만 리 밖에서 날아왔더니 목이 너무 말라.” 그러자 개구리가 말했다. “거짓말! 하늘이 우물 입구만 한데 어떻게 만 리 밖에서 날아올 수 있겠어?” 우물 안의 개구리는 하늘의 크기를 우물 입구만 하다고 여긴다. 자신이 가진 인지의 틀 안에 갇힌 사람은 자기 생각만이 사실이라고 여긴다. 다른 사람이 설명해도 이들은 상대방이 사실을 부정한다고 생각하고 더욱 분노한다. 이들의 분노에 담긴 의미는 이렇다.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는 내가 결정해! 반드시 나에게 동의해야 해. 반박은 필요 없어!’
상대방에게 라벨링해 버리면: 라벨링은 대개 다른 사람을 주의 깊게 관찰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루어진다. 그리고 일단 라벨을 붙이면 우리는 라벨링했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다른 탐색을 할 가능성을 포기한다. 자신이 이해한 바에 집착하면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을 볼 수 없다. 부모가 자녀에게 자주 ‘넌 너무 게을러! 너무 멍청해!’라고 말한다면 어떨까? 이런 라벨을 붙인 부모는 게으름과 멍청함에 분노하느라 자녀가 왜 그런지, 자녀에게 무슨 일이 있는 것은 아닌지 차분히 생각할 기회를 놓친다. 라벨이 상대방과 나 사이를 가로막는다. 라벨에 집착할수록 진실한 유대 관계를 형성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긍정적인 라벨이든 부정적인 라벨이든 라벨링은 타인의 진정한 모습을 가린다.
사실 다른 사람에게 라벨을 붙여도 상대방이 라벨을 인정하면 분노할 일도 없다. 그런데 상대방이 나의 관점에 완전히 동의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상대방의 해석이 나와 다르면 분노가 일어난다. 따라서 누군가에게 분노하기 전에 먼저 생각해야 한다. 그 일이 일어났을 때 내가 붙인 라벨은 무엇인가? 상대방이 나에게 붙인 라벨은 무엇인가? 두 사람의 라벨이 다르면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분노를 해결하려면 우선 서로 붙인 라벨이 다르다는 것을 인지하고 그 라벨의 차이를 해결해야 한다.
3장 과잉 기대가 불러온 분노: 분노는 기대다
기대가 크면 분노를 불러일으킨다분노는 기대를 만족시키지 못했을 때 일어난다. 분노는 상대방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전달한다. 한 학생이 나에게 말했다. “남자친구가 문자 메시지에 답장하지 않아서 계속 전화하다가 불안감이 몰려와 결국 화를 냈어요.” 이 학생의 분노에는 ‘내 메시지에 답장하고 내 전화를 받았으면 좋겠어. 언제든 나와 연락이 되면 좋겠어.’라는 기대가 숨어 있다.
분노는 타인에 대한 기대가 클 때 생긴다: 이런 기대가 실현되지 않으면 우리는 분노한다. 그런데 기대가 실현되지 않은 이유는 기대치가 너무 높기 때문이다. 이 말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제 기대는 높지 않은데요. 모두 정상적이고 기본적인 기대잖아요. 설마 이 정도 기대가 지나친 건가요?”
기대의 높고 낮음은 입장에 따라 달라진다. 분노한 사람의 입장에선 자신의 기대가 전혀 높지 않다. 하지만 상대방의 입장에서 분노한 사람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한 이유는 기대가 높기 때문이다. 타인이 나의 기대를 실현시키려면 다음 2가지 요건이 필요하다.
* 그는 나의 기대를 실현할 능력이 있다.
* 그는 나의 기대를 실현할 의지가 있다.반면 분노한 사람의 상대방이 기대가 너무 높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2가지다.
* 분노한 사람의 기대가 나의 능력을 넘어섰다.
* 분노한 사람의 기대가 의지를 넘어섰다.분노하는 사람은 입장을 바꿔 생각하기 어렵다. 그
저 자신의 관점에서만 볼 뿐 상대방의 관점을 헤아리지 못한다. 그런데 상대방도 나의 기대를 실현하고 싶지만, 능력의 한계로 그러지 못할 때가 있다. 하지만 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원래의 기대를 유지하면 분노하게 된다.
기대는 옳고 그름이 없다: 그렇다면 이렇게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설마 기대를 품으면 안 되나요? 배우자나 아이에게 기대하는 것이 잘못된 행동인가요?”
기대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 기대는 슬픔을 유발한다. 기대는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은 마음처럼 바람이자 소망이고, 이 자체에 옳고 그름이 없다. 하지만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 없다면 괴로워진다. 즉, 과연 기대를 해야 하는가가 아니라 자신의 기대에 어떻게 대처하는가를 고민해야 한다. 기대한다는 것은 이미 발생한 사실이므로 왜 기대했는지와 같은 생각은 불필요하다. 그저 지금의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하면 된다.
기대는 좋은 일이다. 미래를 동경하고 다른 사람에게 기대한다는 것은 세상을 살아갈 활력이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는 또 분노가 아름다운 이유이기도 하다. 분노는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분노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생각과 추구하는 바가 있다고 알려 준다. 기대 자체는 옳고 그름이 없지만, 문제는 우리가 자신을 고통스럽게 하는 방식으로 기대를 해결한다는 데 있다. 따라서 기대한다고 자책할 필요 없다. 자신의 기대를 어떻게 다룰지만 고민하면 된다.
분노는 기대가 너무 높다는 뜻일 수도 있다. 높은 기대를 해결하는 방식 중 하나는 포기다. 포기는 이 세상의 모든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는 고급 지혜다. 어떤 일이든 포기만 하면 어려울 것이 없다. 기대 자체는 분노를 일으키지 않는다. 기대에 대한 ‘집착’이야말로 분노를 초래한다. 상대방이 나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모습을 받아들일 수 없고, 그 현실을 거부할 때 분노 감정이 형성된다.
분노는 자신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할 때 일어나는 저항이자, 상대방의 현실을 향한 저항이다. 사람들은 분노 감정이 일어나면 ‘내가 원하는 대로 이뤄져야 한다.’는 환상에 빠져서 자신의 요구가 실현될 가능성이 낮은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지 못한다. 자신을 향한 분노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에너지와 능력이 부족해서 기대하던 결과를 얻지 못했는데도 포기하고 싶지 않다. 능력의 한계를 믿고 싶지 않아 자신에게 분노하게 된다. 따라서 분노할 때 자신에게 물어보자. “정말 이렇게 현실을 거부하고 싶은가?”
기대에 대처하는 두 번째 방법은 분노를 이용해 자신의 기대를 ‘실현’하는 것이다. 분노는 종종 다른 사람이 나의 기대를 실현하는 데 효과적인 방법이 된다. 내가 분노하면 상대방은 나의 분노에 위협을 느끼고 양보할 수 있다. 분노는 힘이다. 순간적으로 나를 강하게 만들고 상대방의 협조를 강력하게 밀어붙여 기대를 실현하도록 도와준다.
앞서 언급했던 사례에서 여자친구는 남자친구가 메시지에 바로 답장하길 바라지만 남자친구는 전혀 반응이 없다. 어떻게 해야 할까? 남자친구에게 분노하면 된다. 그녀의 잠재의식은 ‘내가 분노하는 만큼 남자친구가 변화할 가능성이 커진다.’라고 생각한다. 만약 그녀가 ‘앞으로 내 메시지에 바로 답장해 줘.’라고 차분히 말한다면 남자친구는 변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몹시 화를 내며 ‘왜 내 메시지에 답하지 않는 거야!’라고 말하면, 남자친구는 왜 여자친구가 화를 내는지 이해하지 못해도 비난받을까 봐 두려워 즉시 답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