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 오늘이 당신에게 가장 젊은 날입니다
나카타니 아키히로 지음 | 나비의활주로
50 오늘이 당신에게 가장 젊은 날입니다
나카타니 아키히로 지음
나비의활주로 / 2022년 4월 / 264쪽 / 15,000원
50대는 나답지 않은 체험을 통해 다시 태어납니다
예상치 못한 상황은 신이 준 선물임을 명심합니다인생을 즐기는 사람과 인생을 즐기지 못하는 사람, 이렇게 사람은 두 유형이 있습니다. 이 두 사람의 결정적인 차이는 무엇일까요? 인생을 즐기는 사람은 우연한 상황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인생을 즐기지 못하는 사람은 우연히 벌어진 상황을 싫어합니다. 이미 정해진 일정을 좋아하는 것입니다.
인생을 즐기지 못하는 사람은 여행할 때도 항상 일정대로 행동합니다. 주머니에는 일정표가 들어 있어서 시도 때도 없이 꺼내 보면서 분석합니다. “이제 몇 분 남았어.” “여기에서는 몇 분까지 있어야 해.” “좋아, 이 페이스대로 가면 그것도 볼 수 있어.”
그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빼곡히 적혀 있는 일정표입니다. “보통이라면 두 군데를 가지만 이 일정표대로라면 네 군데를 갈 수 있어!” 그러곤 뭔가를 해냈다는 성취감에 휩싸입니다. “이렇게 완벽한 일정표는 없어! 보통은 두 군데밖에 볼 수 없지. 세 군데를 보면 감지덕지한데, 우리는 네 군데까지 볼 수 있어!”라고 두 주먹을 불끈 쥐기도 합니다. 그런데 같이 간 일행이 늦게 나온 순간, 모든 일정이 물거품으로 변합니다. 또한 일행 중 한 사람이 “잠시 쉬었다 가면 안 돼?”라고 말하면 버럭 화를 냅니다. “그걸 말이라고 해? 여기서 쉬면 나머지 일정이 엉망이 되잖아? 정 쉬고 싶으면 넌 따로 행동해!”
부모님을 모시고 가는 여행에서도 한정된 시간 속에서 여러 가지 일정을 짭니다. ‘이 꽃밭을 보여 드리고 싶다.’ ‘여기서 맛있는 음식을 대접해 드리고 싶다.’ ‘이 재미있는 쇼를 보여 드리고 싶다.’ 그런데 여행 도중에 부모님께서 “오늘은 좀 피곤하니까 느긋하게 쉬고 싶구나.”, “내일 아침은 늦게까지 푹 자고 싶어.”라고 말하면 발끈하면서 토라집니다. “무슨 말씀이세요? 나머지 일정은 어떡하고요? 나도 이제 몰라요, 마음대로 하세요!” 이래서는 누구를 위한 여행인지, 여행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 수 없지 않을까요?
여행에서는 일정을 짜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짜놓은 일정을 버리는 것입니다. 일정을 추가하는 것은 간단합니다. 하지만 짜놓은 일정은 좀처럼 버릴 수 없습니다. ‘밤새워 일정을 짰는데.’, ‘남은 인생에서 다시는 올 수 없을지도 모르는데.’ 이렇게 생각하면 예상치 못한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예상치 못한 상황을 받아들이면 나머지 일정이 엉망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진정한 체험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할 수 있는 법입니다.
오로라 투어에서 오로라를 보지 못하면 불만을 터트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뭐야? 오로라는커녕 아무것도 없잖아? 어떻게 된 거야?”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는 그 상황을 즐길 수 있는 사람과 즐길 수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럴 때는 주변 사람들과 친해져서 “다음에 또 오자.”라고 말하는 사람과 “이게 무슨 오로라 투어야? 돈 돌려줘!”라는 사람으로 나누어집니다.
오로라 투어에서 오로라를 보았다면 그것으로 좋은 체험이 됩니다. 반면에 오로라를 보지 못했다면 “다음에 또 같이 옵시다!”라고 말하며 같이 간 사람들과 친해지는 게 어떨까요? 비록 나중에 같이 올 수 없어도 말이지요.
예전에 광고 회사에 다닐 때, 소주 관련 제품 광고를 찍기 위해 보리밭에 간 적이 있습니다. 보리가 가장 아름다울 때는 수확하기 직전인 장마철입니다. 장마철이라고 계속 비가 내리는 건 아니므로, 필자는 일기 예보를 확인하고 촬영에 나섰습니다.
그런데 계속 비가 오는 바람에 하늘을 올려다보고 꼬박 이틀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동안 계속 호텔에 틀어박혀 있었지만, 덕분에 스태프들과 친해졌습니다. 날씨가 좋지 않아서 원하는 성과를 얻을 수 없었지만, 오히려 주변 사람들과 친해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상치 못한 상황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야말로 인생을 멋지게 즐기는 방법이 아닐까요?
스스로 체험과 경험을 하면 할수록 삶은 즐거워집니다인생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50대 사람이 좋아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견학입니다. 저는 오랫동안 볼룸 댄스를 하고 있는데, 가끔 댄스 교습소 문을 빼꼼히 열고 “일단 견학해도 될까요?”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한번 견학하는 사람 중에 정식으로 배우러 오는 사람은 10퍼센트도 되지 않습니다. 90퍼센트는 그냥 견학으로 끝나 버리지요. 저는 벌써 10년이 넘게 ‘나카타니 학교’를 통해 사람들과 만나고 있는데, 견학은 누구든 자유롭게 할 수 있습니다.
어느 날, 굉장히 예의 바른 사람이 수업 도중에 견학하러 왔습니다. 그는 10분쯤 듣고 있다가 “대략 알았습니다.”라고 말하며 수업이 끝나기도 전에 밖으로 나갔습니다. 나는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없어서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겨우 10분 듣고 뭘 알았다는 거지?” 아무리 대단한 사람이라도 직접 체험해 보지 않으면 진정한 느낌을 알 수 없지 않을까요?
요즘 대부분 문화 센터에는 중년 이후의 사람들에게 가르치는 컴퓨터 교실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컴퓨터를 배우는 사람들은 두 종류로 나누어집니다. 체험형과 응시형입니다. 여성들은 주로 체험형입니다. 그들은 매뉴얼도 보지 않고 일단 시도부터 합니다. “선생님, 여기에 F1에서 F12까지 있는데, 이걸 누르면 어떻게 되나요?”
그러곤 선생님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키를 전부 눌러 봅니다. 그들의 강렬한 호기심에는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입니다. 반면에 남성들은 매뉴얼에 마커로 밑줄을 그은 다음, 노트에 꼼꼼히 옮겨 씁니다. 그리고 팔짱을 낀 채 바라보기만 할 뿐, 키보드에 손을 대지 않습니다.
강사가 “괜찮으니까 키를 눌러 보세요.”라고 말하면 “대충 알았으니까 해 보지 않아도 됩니다.”라고 대답합니다. ‘혹시 키를 잘못 누르면 폭발하는 거 아닌가?’라고 지레 겁을 먹고 손을 대지 않는 것입니다. 남성 중에는 “오늘은 프린트물 같은 건 없나요?”라고 묻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들은 프린트물을 매우 좋아합니다. 종이 다발 같은 것을 받으면 뭔가 배우고 있다는 느낌이 드나 봅니다.
커뮤니케이션을 배우러 가서도 프린트물을 요구합니다. 하지만 목소리 훈련은 프린트물로는 할 수 없지 않을까요? “이런 식으로 크게 말씀해 보세요. 그러면 목소리가 이렇게 나옵니다.” 강사가 이렇게 설명하면 “아하, 그렇군요. 대충 감이 오네요.”라고 말할 뿐, 강사가 시키는 대로 하지는 않습니다.
컴퓨터 수업을 받는 50대 여성 중에는 아무 키나 마음대로 누르는 바람에, 가끔 컴퓨터가 먹통이 되는 일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에도 그들은 당황하지 않고 콘센트를 뽑아서 강제로 컴퓨터를 종료시킵니다. 때로는 다른 사람 컴퓨터의 콘센트까지 뽑기도 합니다. 콘센트가 뽑힌 사람은 주위가 떠나갈 듯 비명을 지릅니다. 그래도 컴퓨터가 망가지는 일은 없습니다. 이런 것이 견학이 아니라 참여입니다. 어떤 분야든 직접 참여하지 않으면 진정한 재미를 알 수 없습니다.
마술 쇼를 보러 가면 마술사가 마술하는 도중에 이렇게 묻는 일이 있습니다. “혹시 저를 도와주실 분, 계실까요?” 그러면 마술에 참여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앞을 다투어 손을 듭니다. 하지만 마술사는 그런 사람들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손을 들지 않은 50대 남성을 가리킨 뒤, “저를 도와주시겠습니까?”라고 말하면서 그를 무대로 이끕니다. 50대 남성의 딱딱하고 어색한 표정이 재미있기 때문입니다.
일본 최고의 마술사인 마릭 씨의 마술 쇼에 가면 모든 관객에게 스푼을 나누어 줍니다.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이 스푼 구부러뜨리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집안에서 권위적이고 보수적인 아버지가 숟가락을 구부러뜨립니다. 옆에 있던 가족들이 깜짝 놀라서 “여보!”, “아빠!”라고 소리친 순간, 아버지는 자신의 구부러진 숟가락을 내려다보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습니다. 가족 세 명 중에 엄마와 딸은 할 수 없었는데, 아버지만 숟가락을 구부러뜨린 것입니다. 이것을 계기로 그 아버지는 마술에 빠지게 됩니다.
프랑스에는 조금 에로틱한 마술이 있습니다. 아름다운 여성과 50대 남성이 같은 망토 안에 들어간 뒤, 갑자기 망토를 벗기면 50대 남성 손에 브래지어가 들려 있는 마술입니다. “어머나! 보기와 달리 손이 빠르시군요!” 여성이 이렇게 말했을 때 관객들이 한꺼번에 웃음을 터뜨리는 사람은 처음에 나가고 싶어 하지 않았던 50대 남성입니다. 이처럼 마술도 그렇고 서커스도 그렇고, 가장 즐거운 것은 볼 때가 아니라 참여할 때입니다.
이점만 따지다 보면 진정한 체험을 할 수 없습니다어떤 것을 체험하려고 할 때, 항상 망설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체험하기 전에 꼭 이런 말을 합니다. “그것을 하면 어떻게 되나요?” “그것을 하면 어떤 이점이 있나요?” 최근에 1박 2일로 절의 생활을 체험해 볼 수 있는 템플 스테이가 유행하고 있습니다. 템플 스테이를 신청할 때 “이번 1박 2일 체험으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습니까?”라고 질문한다면 좀 이상하지 않을까요?
덕력이 높은 90세의 큰스님도 아직 깨달음을 얻지 못했다고 하시는데, 겨우 1박 2일에 깨달음을 얻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체험을 망설이는 사람은 항상 ‘그것을 하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라고 머릿속으로 계산합니다. “그것을 하면 어떤 이점이 있나요?”라고 물으며 살아온 사람은 예측할 수 있는 체험은 해도, 예측할 수 없는 것은 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 있는 100개의 체험 중 99개는 예측할 수 없습니다. 또한, 직접 해 보지 않으면 아무도 결과를 모르고, 체험한 뒤의 느낌은 사람마다 모두 다릅니다. 더구나 결과를 예측할 수 없기에 즐거움이 더 커지는 법이지요.
템플 스테이를 체험해 본 사람은 그곳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 어떤 의식의 변화가 일어났는지, 어떤 좋은 점이 있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반면에 체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그런 것이 있구나.’, ‘해 봐야 아무것도 얻을 수 없어.’라고 생각합니다. 예측할 수 있는 것과 예측할 수 없는 것이 있을 때는 예측할 수 없는 일을 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면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멋진 경험을 할 수 있을 테니까요.
자기보다 어린 이로부터 배울 수 있을 때 진짜 성장합니다
결과로 즐거울 때는 ‘으하하!’, 과정으로 즐거울 때는 ‘두근두근!’을 기억하세요 이 세상에 즐겁게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요? 사람은 누구나 즐겁게 살고 싶어 하고, 그런 감정은 나이가 들수록 더욱더 간절해집니다. ‘즐겁다’는 말에는 두 가지 감정이 담겨 있습니다. 바로 ‘으하하’와 ‘두근두근’입니다.
이 두 가지 감정은 비슷한 것 같지만 미묘한 차이가 있습니다. ‘으하하’는 이미 일어난 일에 사용하는 기쁨의 감정이고, ‘두근두근’은 앞으로 일어날 일에 사용하는 설렘의 감정입니다. “로또에 당첨되어서 으하하!”, “주가가 올라서 으하하!”, “여성들에게 인기가 있어서 으하하하!”라는 식으로 ‘으하하’는 이미 일어난 일에 웃는 모습입니다.
“로또에 당첨될 것 같아서 으하하!”, “주가가 오를 것 같아서 으하하!”, “여자들에게 인기가 있을 것 같아서 으하하하!”라는 식으로 미래의 즐거움을 나타낼 때에는 어울리지는 않습니다.
한편, 지금 뭔가를 배우고 있는 사람은 언젠가 그 분야에서 경지에 올랐을 때의 자기 모습을 떠올리면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춤을 배우고 있는 사람은 언젠가 참석할 댄스파티를 상상하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입가에 미소가 감돌게 됩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즐거움을 상상하거나 미처 결과가 손에 들어오지 않은 즐거움을 상상하면 자기도 모르게 가슴이 ‘두근두근’하지요. 즉, 지금 즐겁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직 결과가 손에 들어오지 않았다.’라고 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30대와 40대에는 ‘으하하’란 감정과 ‘두근두근’이란 감정을 모두 즐길 수 있습니다. 작은 행운에도 큰 웃음을 터트렸고 미래를 생각하면 가슴이 두근거리기도 했습니다. 다시 말해 결과와 과정을 모두 즐길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50대에 접어들면 앞이 보이지 않습니다. 급여도 적어지고 직책도 낮아지며 정년퇴직이 코앞으로 다가온 현실을 생각하면 마냥 즐거울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50대인 지금 손에 넣을 수 있는 즐거움은 결과로 얻는 ‘으하하’가 아니라 과정으로 즐기는 ‘두근두근’이 아닐는지요. 두근두근을 느끼기 위해서는 결과에 상관없이 과정을 즐길 수 있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50대를 최대한 즐겁게 살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니까요.
어린 선생님에게 배우는 것을 꺼리지 않을 때 한 번 더 성장합니다30대까지만 해도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는 선생님은 대부분 자신보다 나이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40대가 되면 자신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들이 하나둘씩 늘어나고, 50대에 접어들면 나이 많은 선생님보다 나이가 어린 선생님이 더 많아집니다. 30대나 40대 선생님은 물론이고, 개중에는 자식뻘 되는 사람에게 배워야 하는 일도 있습니다. 50대에는 두 유형의 사람으로 나누어집니다. 바로 주변의 모든 사람을 선생님으로 여기는 이와 나보다 어린 사람은 선생님으로 여기지 않는 이입니다. 하지만 나이가 어리더라도 굉장한 사람으로부터 배우지 않으면 본인만 손해가 아닐까요?
주변을 둘러보면 나이가 어려도 한 가지 분야를 깊이 파고든 덕분에 전문직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으로부터 하나라도 배우겠다는 자세를 가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50대에 인생을 즐기지 못하는 사람 중에는 자신보다 어린 사람에게서 배우는 것에 저항감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많습니다. ‘나보다 어린 사람이 뭘 알겠어? 나보다 어린 사람에게서는 배울 필요가 없어.’라고 여기는 것이지요. 50대에 영어를 배우러 학원에 가면, 선생님이 외국에서 공부한 20대 젊은이인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수업하면서 선생님이 물어봅니다. “OO씨, 이럴 때는 뭐라고 말하죠? 이것도 모르세요? 벌써 몇 번이나 나왔고, 지난번에도 말했잖아요?”
그런 말을 들으면 발끈해서 선생님에게 나이를 물어본 뒤, 마음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리곤 합니다. “나는 그 나이에 아침 일찍 출근해서 밤늦게까지 일했어. 그 덕분에 우리나라가 이렇게 잘살게 됐다고! 나 같은 사람에게 존경심을 가져!”
하지만 시대가 바뀌었다는 사실을 모르거나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는 사람은 남은 인생을 즐겁게 살 수 없습니다. ‘뭔가를 배운다’라는 것은 선생님을 존경함과 동시에 지식을 습득한 과정을 존경한다는 뜻입니다. 나보다 어린 사람을 존경할 수 없는 사람은 50대 이후에 누구에게도 배울 수 없고, 남은 인생을 즐길 수도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50대가 진심으로 존경받는 데 필요한 건 무엇일까요많은 사람들이 손에 넣고 싶어 하는 것이 두 가지 있습니다. 바로 존경과 보수입니다. 사람들에게 존경도 받고 싶고 보수도 많이 받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하지만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손에 넣기는 매우 힘듭니다.
“지위가 높을수록 보수가 늘어난다.” 이것은 많은 사람들이 하고 있는 착각 중 하나입니다. 존경을 많이 받으면 보수는 내려가고, 보수를 많이 받으면 존경은 내려갑니다. 즉, 존경과 보수는 반비례하는 것입니다.
일은 보통 잡(Job)에서 커리어(Career)로, 커리어에서 미션(Mission)으로 나아갑니다. 잡은 돈을 위해서, 커리어는 자신을 위해서, 미션은 사회를 위해서 하는 일입니다. 잡은 돈을 위해서 하는 일이지만 정작 돈을 가장 많이 버는 시기는 커리어를 쌓는 때입니다. 그리고 미션으로 나아가 사회를 위해서 일하기 시작한 순간, 보수는 줄어들게 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