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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 같은 걱정 한입씩 먹어치우자

장신웨 지음 | 리드리드출판


코끼리 같은 걱정 한입씩 먹어치우자

장신웨 지음

리드리드출판 / 2022년 7월 / 240쪽 / 16,800원





PART 1 불안증후군



불안과 눈을 맞춰라


“이 도시를 벗어나고 싶다. 오늘만 벌써 11번째 드는 생각이다. 올해 들어서만 7번이나 사표를 쓰고 싶었다. 26번째 회사 문을 닫을까 고민했다. 33번째 이혼을 떠올렸다.”


이 광고 문구는 2018년 중국에서 가장 감동적이고 힘이 되는 영상으로 뽑혔다. 도시 생활을 그대로 보여 준 광고 속 주인공은 바로 나, 혹은 친구나 이웃으로 짐작된다. 그래서일까. 5분도 되지 않는 이 짧은 영상은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며 수천만 네티즌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누구나 한 번쯤 바쁜 일상을 탈출하고 싶어 한다. 지금 있는 위치에서 하루라도 벗어나 자유롭고 싶은 마음이다. 다르게 말하면 새로운 시도나 도약의 기회를 꿈꾼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다시 생각해 보자. ‘이곳을 벗어나면 정말 좋아질까?’, ‘지금 가고 싶어 하는 곳이 내가 진짜 원하던 미래일까?’ 그러나 마음이 편치 않다면 그 어느 곳도 천국이 될 수 없다.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걱정:
우리는 끝없는 걱정의 시대에 살고 있다. 불확실한 미래 문제로 ‘불안’을 품고 두려움과 초조함에 떤다. 어딜 가나 불안이 그림자처럼 따라붙어 끊임없이 괴롭힌다. 과학의 발전과 요동치는 환경은 미래학자조차 단언하지 못하는 현실을 펼쳐 보인다. 주식, 부동산, 고용, 팬데믹 등 미래는 예측 불가한 미궁에 빠진 모습이다. 전문가나 정부, 기업의 통제력을 잃은 불안이 대중에게 고스란히 전이되고 있다. 그로 인해 우리는 끊임없이 걱정과 불안에 잠식되어 가고 있다.

사실 불안은 난감한 문제다. 불안을 껴안고 있는 사람은 자석처럼 쉴 새 없이 불안한 정보를 끌어당긴다. 그들은 자신의 불안과 초조를 배설하는 데도 거침이 없다. 인터넷 댓글이나 약한 상대를 붙잡고 불안을 쏟아낸다. 불안이 깔린 대화에서 말이 부드럽게 나올 리 없다. 자신의 불안을 전가하는 데 열을 올릴 뿐이다. 부정적인 마음은 편협한 사고를 만든다. 인지, 감정, 인식을 한쪽으로 치우치게 만들어 생각의 범위를 좁히는 것이다. 점점 고집스럽게 행동하고 스스로 제한된 틀에 가둔다. 마치 세일 기회를 놓칠까 봐 판매 정보에 더 관심을 기울이고 물건을 사야만 자신의 이익이 극대화된다고 집착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세일 제품을 구매하면 승리했다는 기쁨을 얻는다. ‘빅 세일’이 다가오면 지름신이 강림하는 이유이다.

이럴 때는 자기 사고의 바탕에 ‘일시 정지’ 버튼을 달자. 일시 정지는 외부에서 자극이 올 때 생각과 행동 사이에 휴지 타임을 두어 일정한 공간을 남겨 두는 것이다. 잠시 생각을 멈추고 일상으로 돌아가 시장을 거닐며 신선한 채소와 과일을 고르거나,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꽃향기를 맡거나, 아름드리나무를 껴안고 고개를 들어 흰 구름을 바라보자. 이게 어려우면 길게 심호흡하며 신체 각 기관을 이완시켜 보자. 현재 만끽할 수 있는 세계를 보며 미래에 대한 끔찍한 상상을 털어 내야 한다.

능동적이며 적극적이고 광적인 분주함에도 일시 정지가 필요하다. 불안감에 이끌려 노력의 의미와 만족감을 상실하면 바쁘기만 하지 전혀 즐겁지 않다. 이는 결국 자기 소진으로 귀결된다. 끔찍한 상상에 쫓기며 질주하다 보면 어느 순간 ‘일시 정지를 강요당하는’ 날이 온다. 치명적인 건강상의 문제에 직면하거나 실패와 좌절이라는 예기치 않은 결과에 봉착할 수도 있다.

나의 일상과의 종이 한 장의 거리:
매사추세츠 메디컬 명상 센터와 캘리포니아 건강 연구소의 플로렌스 메이어 교수와 밥 스테어 교수가 진행하는 MBSR(마음 챙김에 기반을 둔 스트레스 감소) 프로그램 강연을 들은 적이 있다. 명상 강연 둘째 날, 휴대폰을 끄고 이틀 동안 ‘정좌하고 침묵’하는 훈련을 했다. 강제로 철저히 일시 정지당한 나는 현기증이 나고 온몸에 두드러기가 났다. 한밤중 방에 홀로 앉아 있자니 문득 ‘나는 왜 이곳에 있는가?’라는 질문이 떠올랐다. 나는 메모지를 찾아 “휴식조차도 이렇게 노력해야 하는구나.”라는 한 줄을 쓰고 다시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 적막한 밤은 오롯이 나 자신과 함께한 첫날이었다.

그때부터 글쓰기가 내 삶에 들어왔다. 감정의 폭풍이 몰려오거나 물러갈 때 책상 앞에 앉아 나의 분노와 눈물, 상심과 무기력을 한 자 한 자 써 내려갔다. 평정심을 되찾을 때까지. 이제는 글로 나 자신과 대화하고 진정으로 원하는 바를 묻는 습관이 생겼다. 일상과 종이 한 장의 거리를 유지하며 내가 스스로 누르는 일시 정지 버튼이다. 나는 그 안에서 자유를 느낀다. 그렇게 5년의 세월이 훌쩍 지났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휩쓸게 된 지금 나는 책을 쓸 만한 충분한 체력과 인내심을 가지게 되었다.

욕망은 다스리고 포부는 펼쳐라


1960년대 스탠퍼드대학 심리학과 월터 미쉘 교수는 마시멜로 실험을 진행했다. 아이들의 책상 위에 좋아하는 마시멜로를 올려놓았다. 실험 결과, 약 3분의 1의 아이만이 마시멜로를 먹고 싶은 욕구를 통제했고, 나머지 아이들 대부분은 3분을 넘기지 못하고 마시멜로를 먹고 말았다. 심지어 선생님이 나가자마자 먹은 아이도 있었다. 이 고전적인 심리학 실험은 더 가치 있고 장기적인 결과를 위해 눈앞의 이익을 포기하고 기다리는 자기 통제력에 관한 실험으로 인간의 ‘만족 지연’에 대한 연구이다.

소비주의의 ‘마시멜로’:
우리 인생에는 많은 마시멜로가 있다. 성공, 돈, 집, 외모, 권력, 경쟁, 명예 등 욕망의 열차를 의식하는 순간 우리는 더욱 초조해진다. 실제로 우리는 잘 기다리지 못하고 결국은 그 대가를 치르고야 마는 모습을 사회 곳곳에서 보게 된다. 급성장하는 사회와 경쟁에 치열하게 맞서야 한다는 조급함과 출발선에서부터 지면 안 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고, 다른 사람과 삶을 비교하고 나아지지 않는 현실에서 좌절하고 우울감에 빠진다. 이 모든 것이 스스로 위기를 자초하는 격이다. 그로 인해 우울과 불안 장애 또한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심적 여유를 갖지 못하고 기다리지 못한 대가이다. 삶을 멀리 내다보고 오늘을 살아야 한다. 그래야 욕망을 다스리는 자기 통제력이 발현된다.

고통은 성장을 위한 소재:
심리적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의 내면은 충돌과 갈등으로 가득 차 있다. 창작하는 예술가의 내면 역시 충돌과 긴장감으로 가득하다. 같은 충돌과 갈등, 긴장인데 왜 어떤 사람은 우울과 소외를 겪고 어떤 사람은 예술로 승화시킬까?

그 답은 서로 다른 방어 기제가 작용하고 있다는 데 있다. 먼저 심리 ‘증상’을 호소하는 사람은 원시적 방어 기제를 사용한다. 내면의 어지러운 욕망과 충돌을 단순하고 거칠게 처리한다. 비난이나 저주의 말, 부정, 책임 전가, 즉흥적 행동으로 사회의 적응력을 잃고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준다. 이러한 표출의 근원은 인내력과 통제력 부족에 있다. 반면 예술은 유머, 상징, 승화와 같은 고급스러운 방어 기제의 결과이다. 예술가는 내면의 상처나 고통을 캐릭터나 이야기로 전환하여 작품에 쏟아내고 창작 과정에서 통합을 일구어 낸다. 진짜 좋은 작품은 내면의 욕망을 응집해 이를 승화시키는 것이다.

사람의 인생도 예술과 같다. 고통을 인내하고 이겨 내는 일은 ‘만족을 지연’시키며 자기를 통제하는 과정이다. 불안이 생명의 잠재력을 일깨우고 더 큰 불안감을 견딜 힘을 준다. 불안의 이면에는 안정과 도약이 있다. 불안을 통제하는 것은 창조와 인간성의 승화를 의미한다. 욕구를 충족하고자 지나치게 목표 지향적인 삶을 산다면 결코 이루어 낼 수 없는 과업이다.



인터넷 불안 시대



부러움이 불안을 부른다


인터넷 시대는 정보 과부하 시대다. 정보는 방대하고 번잡할 뿐만 아니라 진실과 거짓을 분별하기 어렵다. 매일 최신의 정보가 빠르게 올라오는 인터넷에서 실시간 이슈는 순간순간 바뀌고 한번 놓친 정보는 다시 찾아보기 어렵다. 사람들은 정보를 다양하게 접하지만, 지식의 범위는 확장되지 못하고 깊이도 얕다.

인터넷 검색 순위를 믿나요:
1인 미디어 시대인 요즘, 정보는 교묘하게 ‘단장’하고 서로 다른 출처로 이름을 바꿔 대중 앞에 수시로 등장한다. 수많은 정보 앞에서 선택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상업적 원동력에 힘입어 과대 포장과 기술 혁신으로 둔갑한 정보는 기업 마케팅의 수단이 된다.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으며 현혹해 판단 기준을 흐릿하게 만든다. 물론 잘못된 ‘판단’의 책임은 전적으로 소비자의 몫이다.

과학의 발전은 지식의 발전을 촉진한다. 우리 일상과 직결되는 의료, 건강, 음식, 통신 분야의 빠른 발전은 편리함을 선물하며 동시에 우리의 ‘상식’을 끊임없이 뒤집는다. 그러나 대중은 그 ‘진실’을 판단하기 어렵다. 영양학 박사가 전문 용어로 삼시 세끼 어떤 음식을 섭취해야 하는지 설명한다면 일반인이 그 논리적 허점을 찾아내기 힘들다. 그가 추천하는 식품만 기억하게 되고 우리의 ‘상식’은 ‘전문 지식’ 앞에서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정보의 진위를 구분하기가 점점 어려워진다니 이 얼마나 불안한 일인가? 따라서 전문가들은 사회적 책임을 느끼고 정확한 정보 전달의 소명을 다해야 한다. 나아가 자기 분야의 전문 의견만을 주장해서는 안 된다. 다른 분야와 교류와 협력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편협한 관점에 불과하다. 이를 위해 지속적인 소통이 이루어져야 한다.

알면 알수록 불안해지는 이유:
중국의 심리학 플랫폼 이신리와 중국 언론 런민왕이 공동 진행한 설문 조사는 팬데믹이 대중의 심리 상태에 미치는 영향을 보여 준다. 설문 조사 결과 4년제 대학 졸업 이상의 참가자가 보여 준 부정적인 심리 상태가 가장 높았다. 이는 지식에 의존할수록 더 정확하게 알고 싶은데 공부하고 분석할수록 무엇을 따라야 할지 몰라 오히려 더 초조하고 전전긍긍하게 된다는 결론에 이른다. 이처럼 지식은 우리의 불안을 덜어 주지 못하고 지식의 추구가 오히려 불안을 높인다는 것을 보여 준다.

대량의 정보와 지식이 두뇌를 장악하면 몸의 감각이 둔해진다. ‘감각 처리’는 두뇌가 몸의 감각 메시지를 받아 반응하는 과정이다. ‘감각 처리 장애’는 요즘 아이들이 많이 보이는 학습 능력 장애다. 지적 능력은 정상이지만 아이의 대뇌와 신체 각 부분의 조화에 문제가 발생하여 주의가 산만하고 손발이 맞지 않으며 통제되지 않는 행동을 한다. 섬세한 동작을 하지 못하고 방향을 잘 구분하지 못하는 등 대뇌와 신체가 서로 조화를 이루지 못해 이상 행동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문제의 원인은 부모의 과도한 보호 때문이다. 아이에게 생각의 여지를 주지 않고 부모가 직접 모든 걸 판단하고 결정해 명령을 내린다. 그로 인해 아이는 자신의 감각을 이용할 줄 모르게 된다. 과도하게 전자 제품을 이용하는 것도 아이가 자신의 신체와 각 기관을 충분히 사용할 수 없게 만든다. 흙장난이나 모래놀이 같은 옛날 놀이 방식이 감각 처리에 주는 의미를 얕보지 마라. 모래를 만지고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애써 친구와 함께 물통을 나르는 것 모두 매우 중요한 감각 처리 훈련이다. 나무에 오르고 물놀이를 하며 여기저기 뛰어다니면 몸이 환경에 적응하는 능력을 키울 수 있다. 이는 성인도 마찬가지다. 업무 중 잠깐 걷기나 하늘을 바라보는 등 감각적 활동을 수시로 해야 한다.

요즘의 우리는 생각이 자신을 잡아먹는 기분이 들 만큼 바쁘게 사고한다. 날마다 다사다망하다. 저녁이 돼서야 소파에 몸을 뉘어 보지만 이내 스마트폰을 들고 낮 동안 머릿속에 머물렀던 정보의 관성에 따라 움직인다. 잠들 때조차 계획과 목표, 이런저런 생각과 사고에 집중한다. 목표를 실현하는 그 순간 다음 목표를 정한다. 자신의 생활에 깃들어 있는 빛, 향기, 소리, 맛 등 몸의 감각이 전하는 느낌을 감상할 여유를 갖지 못한다. 감각의 발견이 주는 감흥을 받지 못하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
미국의 실험 심리학자 다니엘 사이먼스와 다니엘 레빈은 ‘주의력’에 관련된 실험을 진행했다. 실험자가 지도를 들고 행인에게 길을 묻는다. 행인들이 의심 없이 길을 알려 줄 때 다른 실험자 두 사람이 큰 문짝을 들고 질문자와 행인 사이를 지나간다. 그 찰나 행인의 시선은 문짝에 가로막힌다. 이때 질문자가 교체된다. 문짝을 든 사람이 지나가면 행인 앞에 서 있는 사람은 아까 그 사람이 아니다. 키도, 입고 있던 옷도 다르고 분명 목소리도 다르다. 이를 알아챈 행인은 얼마나 될까? 겨우 절반도 안 되는 47%의 행인이 질문자가 바뀌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유사한 다른 연구에서는 33%에 불과했다. 많은 사람이 바로 눈앞에서 발생하는 일도 알아채지 못했다. 왜 그럴까?

사람들은 과제를 받으면 문제 해결이라는 목표에 주목한다. 목표 달성과 직접적으로 관련 있는 정보만을 선택하고 처리하는 데 치중한다는 것이 심리학자의 설명이다. 자신이 많은 것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한다고 한다. 심지어 ‘나와 이야기 나누는 사람’을 분명하게 의식하지 못하는 단계까지 이른다. 이러한 현상을 ‘변화 맹시’ 또는 ‘변화맹’이라고 한다. 현대를 사는 우리도 목표만을 주시하는 ‘맹시’가 아닐까? 성적과 실적만을 바라보다 지속 가능한 발전의 가능성을 외면해 버리는 건 아닐까? 돈, 더 좋은 집, 더 비싼 차만을 바라보다 이미 지칠 대로 지쳐 버린 자신을 보지 못하는 건 아닐까?

어렸을 적 나의 어머니는 뜨개질로 스웨터를 짜 주셨다. 한 코 한 코 반복하면 어느새 큰 변화가 생긴다. 할머니의 재봉틀이 ‘다다다다’ 돌아가던 소리도 기억한다. 새해가 되면 온 가족이 함께 둘러앉아 만두를 빚었다. 누구는 소를 만들고 누구는 피를 만들었다. 할아버지가 큰 솥에 물을 끓이고 만두를 쪘다. 노동은 몸에 기억을 저장하는 훌륭한 방식이며 가장 창의적인 부분이기도 하다.

현대인은 최대한 노동을 피하려고 노력한다. 차를 타고 갈 수 있다면 걷지 않고, 사 먹을 수 있다면 손수 음식을 하지 않는다. 대신 기술 문명이 가져온 가상 공간에서 인생을 즐긴다. 그로 인해 두뇌에는 잡다한 지식과 정보만 쌓이고 감각은 되살려 내지 못한다. 오직 원초적인 자극만 받을 뿐이다. 그렇게 몸을 황폐하게 만든 결과 얻게 되는 것은 끝없는 공허함과 허망함, 불안이다. 그로 인해 삶은 생동감을 잃는다. 뒤처지지 않기 위해 남보다 더 알아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자. 대신 두뇌에 자신을 둘러싼 감각적 에너지를 받아들이자. 오감을 열어 자극되는 감각을 감상하자.

스스로에게 자유를 허하라


베이징대학의 쉬카이원 교수는 ‘공심병’ 개념을 제시했다. 마음이 텅 비어 생명력을 잃은 증상으로 허전함, 무기력, 존재감 결핍의 통합적 표현이다. 개인적 조건과 가정 여건이 나쁘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진정 원하는 것을 찾지 못해 삶의 의미와 원동력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최근 몇 년 사이 이런 심리 현상이 사회 각층에서 대두되고 있다. “내가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어. 도대체 무엇을 원하는지.” “내가 누군지조차 모르겠어. 어느 순간 두려움을 느낄 때가 있어.” “난 나 자신을 위해 살아 본 적이 없어. 아니 살아 있던 순간 자체가 없었던 것 같아. 이런 인생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공부를 잘했고 일을 잘하는데도 행복하지 않아. 그렇다고 못해 내고 싶지도 않아.”

이것이 공심병에 걸린 사람의 감정이다. 의기소침, 흥미 감소, 쾌감 감소 증상이 우울증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들은 사회적 시선을 매우 의식하고 좋은 이미지로 남기 위해 노력한다. 그로 인해 자신은 매우 고단하고 피로한 삶을 살게 된다. ‘미소 우울증’이란 말이 이들을 표현하기에 적합할 것 같다. 표면상으로는 즐겁지만 내면에서는 외롭고 무의미함을 느낀다. 사회나 주변 사람과 감정적 연결을 맺지 못한 데서 오는 괴리감이다. 관계에서 영양분과 즐거움을 얻지 못한 그들은 우수한 성적, 목표 달성, 성취감으로 대리만족하려고 한다. 하지만 ‘목표’가 달성되는 순간 내면의 ‘허전함’이 순간적으로 밀려온다. 텅 비어 있는 마음에는 그 순간 누릴 기쁨의 씨앗조차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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