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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을 넘지 않는 사람이 성공한다

장샤오헝 지음 | 미디어숲
선을 넘지 않는 사람이 성공한다

장샤오헝 지음

미디어숲 / 2022년 6월 / 288쪽 / 17,800원





선을 넘지 않으려면 말조심부터



“내가 좀 직설적이야.”라는 무례한 말


누군가 “내가 좀 직설적이야.”라고 말하면 나는 막 식은땀이 나기 시작한다. 분명 그다음에는 매우 귀에 거슬리는 말이 나오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너 요새 살쪘지?”, “왜 아직 결혼을 안 했니?”, “남자 친구랑은 어떻게 지내?” 등등 신경에 거슬리는 말들이 쏟아져 나온다. 흔히들 단순하고 거리낌 없는 사람의 말을 요즘 말로 ‘사이다 발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사람은 처음에는 솔직해서 재미있다는 이유로 환영을 받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기피 대상이 된다. 그들은 너무 직설적이라 늘 다른 사람을 난처하게 한다. 자신의 모습대로 사는 것과 무례함은 한 끗 차이다.

중국의 사상가 순자는 “다른 이에게 하는 선한 말은 옷보다 따뜻하고, 다른 이에게 상처 주는 말은 가시보다 깊이 박힌다.”라고 말했다. 분수를 아는 사람은 너무 솔직하거나 직설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솔직함이 도를 넘으면 사람들에게 속물적이고 예의가 없으며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나쁜 인상을 준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말문을 여는 세 개의 문:
미국 예일대학교의 스테이트 보 교수는 어리석음의 다른 말이 ‘자기중심성’이라고 했다. 성인들의 관계는 ‘호혜의 원칙’에서 벗어날 수 없다. 다른 사람이 당신의 자존심을 돌봐 주길 원한다면 그에 상응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마음 그릇이 작으면 자신만 담을 수 있고 다른 사람은 품을 수 없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이 당신을 품어 주기를 기대하지 마라. 이것이 바로 ‘등가 교환 법칙’이다. 분수를 아는 사람은 사실을 말할지라도 정도의 선을 지킨다. 그들은 사실을 알아도 함부로 말하지 않고 완곡하게 표현하며, 다른 사람의 자존심을 배려해 지혜롭게 말한다.

불교와 힌두교에는 제자에게 소중히 간직해 두었던 비밀을 물려주는 전통이 있다. 바로 ‘말문을 여는 세 개의 문’이다. 말하기 전에 먼저 자신에게 “이것이 진실인가? 이것은 선의에서 나오는 것인가? 과연 필요한 일인가?”라고 세 번 물어보는 것이다. 말은 비수나 날카로운 칼이 되어 다른 사람의 마음을 깊이 찌를 수 있다. 입을 열기 전에 이 세 가지를 자신에게 물어보라. 그러면 적어도 뭔가 어긋난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때 즉시 자신의 입을 다물 수 있을 것이다.

부드럽게 비판하는 법


혹독하게 비판한다고 해서 말에 권위가 생기는 건 아니다. “혹시 정신이 어떻게 된 거 아니니?”, “어떻게 이렇게 멍청한 실수를 할 수 있니?” 이런 비판은 너무 가혹해서 예의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역효과마저 초래한다.

중국의 저명한 교육가인 도행지는 “비판할 때는 방법이 중요하다. 비판은 하나의 예술이며, 그것을 잘 사용한다면 칭찬보다 더 유용하다.”라고 말했다. 비판은 단순히 가시 돋친 말을 하거나 감정을 발산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비판의 핵심은 소통하고 인도하고 함께 발전하게 하는 데 있다. 부드러운 태도를 유지하고 도리에 맞게 비판을 하는데 어느 누가 받아들이지 않겠는가?

신랄한 비판은 감정 대립만 일으킨다:
영국의 행동학자 포터는 “사람들이 심한 비판을 받았을 때 보통 첫 장면만 기억할 뿐 나머지는 억울해하며, 근거를 찾아서 당신의 비판에 반박하려 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너무 신랄하게 비판할 경우 당신이 진정으로 전하고 싶은 뜻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고 상대방과 감정적 대립만 일으킬 뿐이다. 당신은 심하게 비판할수록 권위를 세울 수 있고, 규칙과 제도의 중요성을 나타낼 수 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사실 그것은 상대방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고, 그들의 적극성에 상처를 내어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아프리카의 대초원에 사는 바벰바 족은 전통으로 내려오는 독특한 비판 의식을 지금까지도 유지하고 있다. 만약 누군가가 잘못을 저지르면 족장은 먼저 그에게 마을의 중앙에 서 있게 하고 부족 사람들 모두가 잘못을 저지른 사람을 겹겹이 에워싼다. 그리고 나이가 많은 사람부터 비판 대신 칭찬을 시작한다. 백발이 성성한 노인들이 먼저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일찍이 부족을 위해 애썼던 일을 진술한다. 이 이야기를 듣는 당사자는 장점이 길어질수록 양 볼이 빨갛게 상기되고, 고개를 숙이며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 된다. 노인들이 말을 다 하고 난 후에는 중년, 젊은이, 그리고 어린아이의 순서로 진행된다. 말할 때도 규칙이 있다. 사실을 과장해서는 안 되며, 다른 사람이 말했던 것을 반복해서도 안 된다. 또한 부드러운 어조로 말하고 얼굴에는 따뜻한 미소를 띠고 있어야 한다.

이것은 잘못한 사람에게 잘못을 깨닫고 자신을 돌아보는 마음의 여정이나 다름없다. 빈정거리고 추궁하는 식의 비판은 듣는 사람에게는 혹독한 고문과 같다. 비판에 설탕 옷을 씌워 교묘한 암시와 감칠맛 나는 이야기 속에서 당신의 선한 의도를 깨닫게 하라. 그래야 당신의 말에 매력이 생긴다.



사회성 좋은 사람들의 비밀



사람 사이에는 안전 거리가 필요하다


너무 많은 사람이 대인 관계에서 분수를 알지 못한다. 그리고 자신과 타인 사이에 안전 거리를 설정해야 한다는 것은 더더욱 모른다. 대인 관계에서 분수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친한 사람과 어울릴 때도 안전 거리를 무시한 채 다가간다. 이들은 상대방을 존중할 줄 모르며 무례하게 말하기 일쑤다. 또한 사람 사이에 안전 거리가 사라지면 아무리 친밀한 관계도 지속되기 어렵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대인 관계에서 적당한 거리는 일종의 보호막이다. 너무 가까워져 개인의 사생활이 없어지면 불편해지기 마련이다. 반면 너무 먼 거리를 유지하고 누군가가 다가오는 걸 거절하며 가족, 친구의 사랑을 차단하면 고독하고 외로워질 수밖에 없다.

안전 거리를 넘어가지 않는 것이 예의다:
적절한 거리는 아름다움을 만든다. 지구와 태양 사이의 적당한 거리가 만물이 조화롭게 생존할 수 있도록 한다. 사람도 이와 같아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야만 감정의 흐름이 깊어지고 승화될 수 있다. 우리는 서로를 존중하며 상대방에게 개인적인 공간을 좀 더 주어야 하며, 자신에게도 약간의 숨 돌릴 여지를 남겨 두어야 한다.

핀란드 사람들은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두 좌석 중에 한 자리만 비어 있다면 어느 누구도 빈 좌석에 쉽게 앉지 않는다. 만약 외지 관광객이 핀란드 현지 사정을 몰라 그 빈 좌석에 앉는다면, 옆에 앉아 있던 사람은 일어나서 다른 좌석으로 갈 가능성이 크다. 이런 행동이 오해를 살 수 있지만 이것은 당신을 밀어내기 위함이 아니다. 단지 안전 거리를 지키기 위함이다. 그들에게는 사람 사이에 일정한 안전 거리를 유지하며 제멋대로 넘어가지 않는 것이 기본적인 예의인 것이다. 경솔하게 행동하면 결례를 범할 수 있다.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사교적인 장소나 혹은 낯선 사람 사이에서 1.2~2.1미터의 거리를 유지해야만 비로소 안전한 거리라고 할 수 있다고 한다. 너무 가까이 있으면 상대방에게 예의가 없다는 느낌을 준다. 하지만 심리적 안전 거리는 쉽게 무시된다. 이러한 상황은 대부분 친한 사이에서 일어난다. 예를 들면, 갑자기 불청객으로 들이닥치는 것이다. 누군가의 집을 방문하고 싶을 때, 미리 상대방과 약속을 해야 상대방도 미리 집을 정리하고, 맞이할 음식을 준비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신이 한마디 말도 없이 누군가의 집에 들이닥친다면 주인은 불편함을 느낄 것이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는 “세계의 모든 질서는 일정한 정도 안에서 불타고, 일정 정도에 의해 꺼진다.”라고 말했다. 모든 일이 분수를 잃으면 부정적인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다. 사람과 사람이 어울리는 데도 분수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너무 멀리 떨어지면 친밀한 관계를 유지할 수 없고, 너무 가까이 다가가면 원망을 들을 수도 있다. 편안한 안전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현명한 선택이다.

매사 시시비비를 가리지 마라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푸충의 아버지가 아들에게 쓴 편지를 묶어 낸 『상하이에서 부치는 편지』에는 이런 명언이 나온다. “아무리 떳떳해도 교만하지 말고, 일리가 있어도 몰아붙이면 안 된다.”

‘이유가 있으면 따지고 들어도 된다’는 것은 우리 일상에서 진리로 여겨진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그 기준과 정도를 혼동해서 언제나 시시콜콜 따진다면 우리 인생은 험난해지고 사람들과 차츰 어울리기 힘들어질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완벽히 이성적인 마음은 마치 날카로운 칼과 같아서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을 다치게 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만물은 모두 그 양면성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사람을 대할 때 나만 옳다고 생각해서는 안 되며, 오류를 발견했다면 조용히 잘못을 인정해야 한다. 설령 나의 말이 일리가 있다 하더라도 상대방을 세 번은 용서해야 한다. 용서할 수 있을 때 용서해 자신과 타인에게 여지를 남겨 주어라.

일리가 있으면 몰아붙여도 될까?:
사실 일상의 많은 다툼은 모두 큰 지장을 주지 않는 작은 일들로 일어난다. 마음이 넓은 사람은 자신이 약간의 손해를 보더라도 이런 상황을 이해하고 용서한다. 그러나 ‘일리가 있으면 몰아붙여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소란을 피워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며 다툼에서 이겼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이기적이고 천박한 본성만 드러냈을 뿐이다. 이는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은 결과를 낳는다.

힐러리가 자서전을 출판한 후 한 유명 토크 쇼에 나갔다. 진행자가 자서전을 비웃으며 공공연하게 이렇게 말했다. “이 책은 잘 팔릴 리가 없습니다. 만약 이 책이 백만 부가 팔린다면, 저는 신발을 먹겠습니다!” 몇 주 후에 진행자에게 비보가 전해져 왔다. 힐러리의 자서전이 예상보다 잘 팔려 곧 밀리언셀러가 될 것이라는 소식이었다. 사람들은 인터넷에서 이 일을 끊임없이 언급하며 힐러리가 그 유명한 토크 쇼 진행자를 비난하고 망신 주길 기다렸다. 나중에 힐러리가 이 진행자의 프로그램에 다시 출연했을 때 그녀는 진행자에게 훌륭한 ‘신발’을 선물했다. 진행자는 자신이 공언했던 대로 그 신발을 먹고 나서 “맛이 아주 좋다.”며 크게 웃었다. 알고 보니 힐러리가 선물한 신발은 그녀가 정성껏 주문 제작한 신발 모양의 케이크였다. 그녀는 이런 방식으로 이 진행자의 불손한 언행을 ‘응징’하였고, 결국 그의 진심 어린 사과를 받아 낼 수 있었다. 이후 이 진행자는 힐러리의 열렬한 팬이 되었다.



오래 가는 관계는 안전 거리를 지킨다



친구라고 함부로 선을 넘지 않는다


감성 지수가 낮은 사람들은 대부분 친하다는 이유로 거리낌 없이 친구를 놀린다.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친구의 단점을 끄집어내서 아픈 곳을 찌른다. 이런 사람은 갈수록 친구와 멀어지고, 깊게 사귀지 못한다. 친할수록 가까울수록 더욱 선을 지키고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을 망각하는 것이다. 사실 친구 사이라면 무슨 이야기든 다 할 수 있다. 서로 치부를 드러내고 놀리는 것도 우정이라는 토대 위에 이루어진다. 하지만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앞에서든 뒤에서든 신체 결함이나 비난하는 어조를 띤 농담은 삼가야 하며, 민감한 부분이나 사생활에 관한 이야기도 피하는 것이 좋다. 당신의 말이 선을 넘어서면 농담은 비웃음이 되어 사랑하는 친구를 잃을 수 있다.

친구라는 이름의 친근하고도 무거운 존재:
모든 것을 친구에게 의존하고, 귀찮은 일이 생기면 친구가 의리로 도와줄 것을 기대하는 사람은 결국 사람들 사이에서 ‘독’이 되어 모두가 멀리할 것이다. 친구의 경제 조건이 좋다고 몇 번이고 돈을 빌리고 갚지 않거나, 친구가 병원에서 근무한다고 모든 집안사람에게 “아프면 ○○병원에 가서 ○○의사를 찾기만 해.”라고 말하면서 “우리 친구잖냐, 이 정도는 해 줄 수 있지?”라고 말하면 친구의 기분이 어떨까. 분수를 아는 사람은 항상 입을 열기 전에 자신의 요구가 친구에게 어떤 영향과 어려움을 가져다줄지 먼저 생각해 보며 친구들의 선의를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다. 어려울 때 친구가 도와주면 당신은 마땅히 감사해야 한다.

친구끼리 서로 힘든 일을 쏟아내는 것은 자주 있는 일이다. 하지만 모든 일이 지나치면 안 된다. 절대 친구를 ‘감정 쓰레기통’으로 여기고 상대방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무절제하게 쏟아내지 마라. 아무리 소꿉친구, 절친, 의리 있는 친구라 해도 만약 당신이 그들에게 항상 부정적인 에너지를 쏟아낸다면 그들도 짜증이 날 것이다. 그렇게 사람들은 점점 조용히 당신과 멀어질 것이다.

결론적으로 우정은 이해와 존중을 전제로 해야 한다. 서로의 입장을 바꿔 사고하는 역지사지를 배우고, 넓은 마음으로 친구를 대하며 서로 예의를 지키고, 선을 쉽게 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직장에서 선을 긋거나 선을 지키는 법



동료 사이의 넘지 말아야 할 선


한 조사에서 직장인 10명 중 7명은 동료와 경쟁하며 쉽게 적대감을 느낀다고 답했다.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인 직장인들은 항상 동료를 ‘적’으로 여기고 사사건건 경쟁하며, 눈앞의 작은 이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직장 생활을 한다면 그 역시 오랜 기간 커리어를 유지할 수 없을 것이다.

만약 직장에서 동료가 틈만 나면 당신을 괴롭히는데도 화를 참고 말을 삼키겠는가? 계속 참으면 억울해서 견디기 힘들 것이다. 그렇다고 그 자리에서 화를 내면 일을 그르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한 현명한 대처는 자신의 역량에 따라 실행하는 것이다. 충동적이고 경솔하게 행동하면 원망하지 말아야 할 사람을 원망하게 되고, 진퇴양난에 빠지게 된다. ‘도끼로 제 발등을 찍는’ 미련한 짓은 하지 말아야 한다. 기억하라. 반격할 능력이 있을 때는 가차 없이 갚아 주어야 하지만 무력한 상황에서는 화를 참고 교훈을 얻으라!

동료 간의 경쟁은 스트레스 혹은 원동력:
직장에서 인간관계를 맺을 때는 원칙을 중시해야 한다. 대부분의 일에 대해 단지 옳고 그름만 볼 것이 아니라 이해관계를 살펴야 한다. 만일 직장에서 부당한 일을 당하면 우선 자신에게는 아무 잘못이 없다는 것을 입증해야 하며, 자신의 위치를 분명히 하고 선을 지켜야 한다. 그래야 사람들에게 약점을 잡히거나 손아귀에 놀아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적대적인 감정을 품고 동료를 대하면 결국 자신의 성장에도 나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흔히들 ‘동업하는 사람은 원수이고, 동료는 라이벌’이라고 말하지만 오고 가는 선의의 경쟁이 서로의 발전을 촉진할 수 있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동료 간의 경쟁은 스트레스가 되기도 하지만 직장 생활의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직장에서 가장 얻기 힘든 것은 능력이 출중하고 심성이 정직한 경쟁 상대를 만나는 것이다. 더할 나위 없이 치열하지만 질서 정연한 경쟁 사회 속에서 라이벌과의 경쟁은 끊임없이 서로의 잠재력을 불러일으키고, 심지어 나중에는 서로를 진심으로 아끼게 되기도 한다. 바꾸어 생각해 보면 경쟁 상대는 사실 팀워크를 이루는 좋은 파트너이다. 그와 잘 어울리면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어 성장할 수 있다.

당신은 팀의 일원일 뿐만 아니라 독립적인 개체이기도 하다. 동료와 경쟁할 때는 반드시 원칙을 지켜야 하고, 그 사람에게 상처를 줘서는 안 된다. 동료는 ‘적’이 아니며, 언제 ‘친구’가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직장에는 직장의 규칙이 있다. 직장 동료 간에 너무 사이가 좋으면 이 또한 사고가 생길 수 있으니 바람직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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