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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받아치는 기술

이오타 다쓰나리 지음 | 사람과나무사이


되받아치는 기술

이오타 다쓰나리 지음

사람과나무사이 / 2022년 4월 / 248쪽 / 16,000원





part 1 무례한 말로 선 넘는 사람에게 되받아치기



막말을 퍼붓는 사람에게는 “yes, but 화법”으로 되받아친다
“야, 너 진짜 일머리 없다. 머리가 그렇게 안 돌아가? 밤새겠네, 밤새겠어!”

“할머니 옷 입고 왔어? 요즘 누가 그런 옷을 입냐? 유행을 따라가진 못해도 최소한 촌스럽게 보이진 말아야지, 그 옷은 너무했다, 야!”


듣는 사람이 상처받을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사람, 상대에게 모욕감 주는 말을 얼굴 똑바로 쳐다보면서 내뱉는 사람, 이런 사람 어디에나 꼭 있다. 속상하고 억울하고 화도 난다. ‘내가 왜 저 사람한테 이런 말을 들어야 하지? 그러는 자긴 뭐가 그렇게 잘났는데……?!’“사돈 남 말 하시네. 마감이 코앞인데 자기 할 일도 못 끝내고 깔아뭉개고 있는 사람이 누군데?”“요즘에는 일부러 시간 내서 옷도 사고 패션 잡지도 구독하며 나름대로 신경 쓰고 있거든요.” 독하게 마음먹고 되받아보기도 하고 때로 비꼬기도 한다.

그런데 어설프게 되받아치면 상대는 기다렸다는 듯 오히려 공격 수위를 높인다. “그걸 변명이라고 하니?” “넌 아무래도 옷에 대한 센스가 없나 봐. 없는 센스가 갑자기 길러지는 것도 아니고, 어쩔 수 없지, 뭐.” 비난과 악담이 끝나지 않는다. 안 그래도 마음의 상처를 입었는데,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격이다. 최악이다. 그렇다고 계속되는 막말에 사과를 할 수도 없고, 막말을 계속하게 내버려 둘 수도 없다.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속 시원히 되받아치는 기술 어디 없을까?

그 사람은 왜 막말을 할까?:
막말하는 사람은 어떻게든 트집을 잡아 비난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네가 나빠.”, “네 잘못이야.”, “너는 한심한 인간이야.” 이런 말이 하고 싶어 좀이 쑤시는 사람이다. 그는 상대가 스스로 부족한 사람이라고 인정하게 하고 싶은 것이다. 이것이 막말하는 사람을 움직이는 원동력이다. 그래서 그는 상대가 잘못을 인정할 때까지 입을 다물지 않는다. ‘그래 다 내 탓이야.’라고 상대가 사과하는 말을 듣는 게 목적이다. 그 말을 듣기 전까지 책임 추궁을 멈추지 않는다. “그게 아니라…….” “그건 그렇지만…….” 이런 식으로 변명하거나 다른 쪽으로 화제를 바꾸려고 하면 난리가 난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아직도 말귀를 못 알아듣네?”

이렇게 되면 당신에게 남은 선택지는 다음 두 가지다. ‘내 탓이 아니야! 너도 잘못했어.’라고 강하게 맞서거나 ‘맞아, 내 잘못이야. 미안해!’라고 항복하는 수밖에 없다. 결사 항전하듯 강하게 맞서자니 체력도 기력도 달리고, 일단 일이 커지는 것은 원치 않는다. 게다가 말싸움에 자신이 없다면 나름대로 되받아쳐도 되로 주고 말로 받는 격이 되기 십상이다.

그렇다고 제대로 싸워 보지도 않고 항복하기에는 뭔가 억울하다. 왜 내가 숙이고 들어가야 하나? 잘못은 저쪽이 했는데……. 부아가 치민다. 곤란하다. 정말 저 두 가지 길밖에 없을까? 적절하게 수위를 조절하며 잘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yes, but 화법”으로 되받아친다:
막말하는 사람에게는 일단 받아들이고 나서 반격하는 게 최선이다. “야, 너 진짜 일머리 없다. 머리가 그렇게 안 돌아가? 밤새겠네, 밤새겠어!”

“그러게 말야. 내가 일 처리가 좀 느리지. 그런데 늦게 알려 준 건 너잖아?”

“할머니 옷 입고 왔어? 요즘 누가 그런 옷을 입냐? 유행을 따라가진 못해도 최소한 촌스럽게 보이진 말아야지.”“참고하겠습니다. 그런데 과장님처럼 패션에 신경 쓸 시간이 없어서요.”



예를 들면 이렇게, 일단 상대의 말을 받아들인다. 그러면 상대의 욕구를 만족시키면서 나도 여유를 찾을 수 있다. 그러고는 상대가 틈을 보일 때 급소를 찾아서 공략한다. “그러게 말입니다. 그런데”, “참고하겠습니다. 그런데” 공식을 머릿속에 넣어 두자. “yes, but 화법” 또는 “yes, and 화법”이라 부르는 방식이다. “그러는 그쪽은”, “말이 나온 김에” 등도 일단 받아들이고 나서 되받아칠 때 활용하기 좋은 말이다. 이는 평소 회의나 대화를 할 때도 효과적인 기술이다. “그게 아니라”, “그렇지만”으로 시작하는 말보다 훨씬 현명하고 여유 있게 보이니 부지런히 연습해 두자!

눈만 뜨면 지적질하며 괴롭히는 상사에게는 ‘더 높은 사람의 권위’를 활용하여 무력화시킨다
“어이, 막내! 이거랑 이것도 처리해!”

“마셔, 마셔. 술 못 마시면 영업 못 한다!”

“주말에 골프 쳐야 하니까 시간 비워. 뭐? 선약? 그건 취소해야지!”




직장 내 괴롭힘, 말만 들어도 손발이 부들부들 떨린다. 상사나 선배처럼 윗사람에게 괴롭힘을 당하면 나도 모르게 움츠러든다. 무섭다. 하루하루가 지옥 같다. 특히 안 좋은 경우는 괴롭힘인지, 업무 지시인지, 직장 내 따돌림인지 분간이 가지 않을 때다. 그래서 더욱 되받아칠 엄두가 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는 대개 말끝을 흐리며 떨떠름하게 시키는 대로 따른다. 그러다 때로 용기를 내어 나름대로 반박해 보기도 한다. “그래도 그건 좀 아니죠…….” “그건 제 일이 아닙니다…….” 있는 힘껏 용기를 짜내 소심하게 반항해 본다. 물론 통하지 않는다. “알았으니까 그냥 시키는 대로 해!” 불벼락이 떨어진다. “말이 많다! 마시라면 그냥 마셔!”

어설프게 되받아치면 고압적인 태도에 힘을 실어 줄 뿐이다. “어쭈? 그런 태도로 우리 부서에 있을 수 있겠어?” 아예 협박하는 사람도 있다. 왜 변변한 저항 한번 못 할까? 결국 이불 쓰고 울다 지쳐 잠드는 수밖에 없을까?

만연한 직장 내 괴롭힘:
직장 내 괴롭힘을 일삼는 사람은 ‘윗사람은 아랫사람에게 엄해도 된다’는 사고방식의 소유자다. 회사니까, 상하 관계니까, 이 정도는 당연한 요구라고 생각한다. 괴롭힘이 아니라 일상적인 업무 지시라는 것이다. 또 오냐오냐 받아 주면 버릇이 나빠질 거라 여긴다. 무엇보다 서열이 높은 자신에게는 아랫사람을 엄격하게 가르칠 권리와 의무가 있다고 믿는다.

유교 문화권에는 상하 관계를 따지는 서열 의식이 남아 있다. ‘장유유서(長幼有序)’ 개념이 바로 그것으로, ‘선배·후배’를 강조하는 스포츠 분야에서는 여전히 장유유서 개념이 강하게 작용한다. 그래서 괴롭힘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그 정도는 당연하다고 착각하곤 한다. 직장 내에서 괴롭히는 사람은 한 개인이라기보다 그렇게 ‘괴롭히는 문화’의 한 일원이다. 그래서 당하는 사람이 더욱 불리하다. “세상은 그런 게 아니야. 네가 세상을 알기나 해?” 있는 힘껏 되받아쳐도 제대로 상대조차 해 주지 않아, 무의미한 저항으로 끝나고 만다. 직장 내 괴롭힘은 심각한 사회 문제다. 이러한 갑질을 뿌리 뽑을 방법은 없을까? ‘사표’라는 최후 수단을 쓰지 않고 현명하게 되받아칠 방법이 없을까?

직장 내에서 괴롭히는 사람은 권력에 약하다:
직장 내 괴롭힘은 상하 관계에서 비롯된 공격이다. 그렇다면 괴롭히는 사람에게 더 높은 상하 관계를 인식시켜 주면 된다. 구체적으로 상대보다 더 높은 사람, 즉 선배의 선배, 상사의 상사 등의 존재를 끄집어내는 방법이다.“어이, 막내! 이거랑 이것도 처리해!”

“알겠습니다. 그런데 부장님이 지시하신 업무가 있는데 뭐부터 할까요?”

“마셔, 마셔. 술 못 마시면 영업 못 한다!”

“어이쿠! 저기 부장님 잔이 비었군요……. 가서 한 잔 따라 드리고 오겠습니다.”

“주말에 골프 쳐야 하니까 시간 비워. 뭐? 선약? 그건 취소해야지!”

“알겠습니다. 그전에 먼저, 부장님께 그래도 되는지 여쭤보겠습니다.”



‘아랫사람은 윗사람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단순한 사고방식의 소유자에게는 그 사람이 고개조차 들 수 없는 더 윗사람을 소환하면 그만이다. 그러면 싱거울 정도로 공격 수위가 낮아진다.

그리고 ‘직장 내 괴롭힘’이라는 표현을 의식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을 추천한다. “요즘 직장 내 괴롭힘이 있다는 말을 자주 들어요.” “친구 회사에 직장 내 괴롭힘 신고 게시판이 생겨서 익명으로 글을 쓸 수 있대요.” 이처럼 평소에 슬쩍슬쩍 ‘직장 내 괴롭힘’이라는 표현을 써 보자. ‘아랫사람에게 막말한다’ → ‘직장 내 괴롭힘이 문제가 된다’ → ‘윗사람 심기가 불편해진다’ → ‘자칫 잘못하면 법적 처벌을 받는다’ 이런 단계로 생각이 이어질 수 있다. 자신보다 위에 있는 존재에 약한 사람이라면 행실을 바로잡을 가능성이 크다. 정론은 통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더 윗사람’이나 ‘법률’ 등 그들이 따를 수밖에 없는 존재를 강조해 타인을 괴롭히는 버릇을 고쳐 주자!



part 2 공감력 없는 말로 화가 치밀게 하는 사람에게 되받아치기



눈치 없이 선을 넘는 사람에게는 ‘그가 불편해하는 화제’로 입을 다물게 한다
“결혼은 언제 할 거야? 눈이 너무 높은 거 아냐?”

“2세 계획은 아직이야?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빨리 낳는 게 낫지.”

“이혼했다며? 왜? 성격 차이야?”




눈치 없이 선을 넘으며 사생활을 캐묻는 무례한 사람을 만나면 짜증 지수가 마구 솟구친다. 민감한 주제를 거침없이 파고들며 꼬치꼬치 캐묻는다. 이런 사람에게는 뭐라고 대꾸해도 통하지 않는다.

“아니, 눈이 높아서 안 하는 건 아니고요.” (부정)

“아냐? 그럼, 만날 기회가 없어?”

“뭐, 그냥 잘 지내요.” (얼버무리기)

“뭐야, 그래도 결혼은 해야지.”

“아, 그건 프라이버시입니다.” (거절)

“사람이 왜 그렇게 정이 없어. 서로서로 안부도 묻고 걱정도 해 주고 그런 거지.”

“…….” (무언의 분노)

“왜? 화났어? 다 너 생각해서 그러는 거야.”



이런 식으로 무슨 말을 해도 포기하지 않고 원하는 대답을 들을 때까지 추근추근 엉겨 붙는다. 찰거머리가 따로 없다. 도대체 뭐가 그렇게 궁금할까? 뭐라고 거절해야 그만 내 영역에서 나가 줄까?

자신에게는 ‘알 권리가 있다’고 굳게 믿고 있다:
사생활을 존중하지 않는 사람을 흔히 ‘둔감하다’고 여기는데, 알고 보면 절대 둔하거나 눈치 없는 사람이 아니다. 건드리면 안 되는 절대 영역을 파악하고 나서 슬금슬금 눈치를 보며 밀고 들어온다. 표적을 정해 놓고 끈질기게 파고든다. 알면서도 선을 넘는다. 그래서 더 괘씸하다.

도대체 왜 그러는 걸까? 이유는 간단하다. ‘알고 싶기’ 때문이다. 궁금해서 몸이 근질거린다. 흔히 ‘가십’이라고 하는, 소문이나 험담을 떠들 기회를 참을 수 없는 것이다. 게다가 어째서인지 ‘자신에게는 알 권리가 있다’고 굳게 믿고 있는 것이 불가사의하다. 당연한 권리인 듯 당당하고 끈질기게 묻는다. 마치 ‘언론의 자유’를 무기 삼아 연예인의 사생활을 폭로하는 기자 같다. 당하는 쪽에서 대놓고 불쾌감을 드러내도 개의치 않고 끈덕지게 파고든다. 아주 진절머리가 난다. 소문에 굶주린 이 하이에나를 물리칠 좋은 방법 없을까? 이런 사람을 단숨에 퇴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종교’, ‘가정’, ‘돈’은 3대 금기 화제:
이렇게 선을 넘는 사람의 입을 다물게 하려면 이쪽에서도 강하게 나가야 한다. 마찬가지로 입에 올리면 분위기가 불편해지는 화제를 꺼내는 수밖에 없다.“결혼은 언제 할 거야? 눈이 너무 높은 거 아냐?”

“저희 집안 사정이 좀 많이 복잡해서요…….”

“2세 계획은 아직이야?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빨리 낳는 게 낫지.”

“종교적인 이유가 있어서요…….”

“이혼했다며? 왜? 성격 차이야?”

“그게, 돈 문제가 좀 생겨서…….”



자세히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 물론 거짓말이라도 상관없다. 마치 피해자인 양 비극의 주인공을 연기하듯 눈을 살짝 내리깔고 작은 소리로 속삭이듯 말하자.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내쉬어도 좋다. 그러면 상대방도 경계심을 갖는다. 더 파고들면 위험해지는 금단의 영역임을 감지하고 한발 물러선다.“그러게 말입니다. 정말로 힘들어요!”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 사는 게 쉽지 않군요!”



그래도 물러나지 않는 강적에게는 조금 더 과장을 보탠 연극을 보여 준다. 연기파 배우처럼 눈물이라도 글썽거리며 열연을 펼치면 한층 효과적으로 소문 진드기를 털어 낼 수 있다. 물론 이렇게 연막작전으로 퇴치하면 한동안 이상한 소문에 시달릴 수 있다. 사생활을 캐묻는 사람은 대개 말이 많고 이 말 저 말 옮기고 다니는 습성이 있기 때문이다.

대충 둘러댔다가 엉뚱하게 넘겨짚어서 황당한 소문이 나도는 것보다는 차라리 ‘사연 있는 사람’이라는 분위기를 풍기는 게 편할 때가 많다. 물론 애초에 선을 지킬 줄 모르는 사람과는 엮이지 않는 게 최선이다. 사생활을 존중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상대방이 들으면 멈칫할 만한 화제를 던져 주고 조용히 떨어져 나가기를 기원하자!

잔머리 쓰며 자기 잇속만 챙기려는 사람에게는 호들갑스럽게 놀란 척하여 그의 태도가 비상식적임을 알게 해 준다
“이거, 마감이 지났는데, 어떻게 좀 안 될까?”

“나 지금 좀 급한데, 먼저 처리해 주면 안 될까?”

“미안, 지금 정신이 좀 없네. 오늘 어떻게 안 될까?”




어딜 가나 약삭빠르게 새치기를 하려는 낯 두꺼운 사람이 있다. 규칙을 지키지 않고 특별 취급을 해 달라며 아무렇지도 않게 요구한다. 심각한 규칙 위반이나 터무니없이 과도한 요구라면 거절하겠는데, 너무 사소해서 딱 잘라 안 된다고 하기에도 민망한 일이다. 단칼에 거절하면 치사하게 군다고 뒷말을 늘어놓는다.

“그럼, 너만 믿는다!” 난감하다는 듯 쓴웃음을 지으면, 고개를 꾸벅 숙이고 억지로 떠맡기고, 볼일이 끝났다는 듯 총총 사라진다. “안 되겠는데요.” “에이, 힘 좀 써 봐.” 거절하면 어떻게든 해 달라고 매달린다. “이렇게 하시면 안 됩니다.” “안 되는 게 어딨어! 그냥 하면 되는 거잖아. 이렇게 부탁하면 들어줄 줄도 알아야지.” 단호하게 거절하면 오히려 발끈해서 덤벼든다. 골치가 아프다. 이런 사람은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얌전히 물러나게 되받아칠 무슨 좋은 말 없을까?

겉으로 ‘좋은 사람’ 가면을 쓰고 있어 더 악질이다:
약은 사람은 ‘자신에게 관대한 사람’이다. 세상이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믿는다.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규칙을 살짝 다르게 적용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천연덕스럽게 떼를 쓴다. 대개 능글거릴 정도로 붙임성이 좋아 의외로 적도 많지 않다. 노골적으로 억지를 부려 엄청나게 민폐라면 주위 사람들도 상대해 주지 않을 텐데 표면적으로는 좋은 사람이라 친구도 적잖게 있는 편이다. 그래서 이런 사람에게 무언가 부탁을 받으면 딱 잘라 거절하기 어렵다. 거절하면 주위에서 “좀 해 주면 어때, 유세 부리기는…….”라며 마치 부탁을 들어주지 않는 사람을 나쁜 사람 취급하기 때문이다.

곤란하고 억울하다. 마뜩잖은 부탁을 억지로 들어주어도 보답은 없다. 고맙다는 말조차 듣지 못할 때도 있다. 이런 사람을 퇴치할 뭔가 좋은 방법 없을까?

“네?”, “뭐라고요?”, “음?” 으로 차단한다:
잔머리 쓰며 자기 잇속을 챙기는 사람을 상대할 때는 호들갑스럽게 “네?”라고 되받아치자. 놀란 척이라도 상관없다. 진지할 필요도 없고 농담을 섞어도 좋다. 어쨌든 한 번은 강경한 태도를 보여야 한다.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야?’라는 뉘앙스를 섞어 깜짝 놀랐다는 반응을 보여 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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