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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일즈 이펙터

김명수 지음 | 와일드북


와일즈 이펙터

김명수, WILDS(기획) 지음

와일드북 / 2021년 11월 / 320쪽 / 22,000원









1장 Want: 간절히 원해야 한다







노도윤 _ 지구 3바퀴 반을 돈 세계 여행 전문가의 끝없는 변신

지구를 3바퀴 반 돈 여자, 지금까지 다녀온 나라가 150개국에 이른다. 세계 성문화 성교육 강사이자 세계 탐험 여행 전문가인 노도윤 씨는 이웃집 나들이처럼 세계 여행을 즐긴다. 초호화 유람선 크루즈 여행까지 섭렵한 그녀를 만나면 ‘글로벌 여행’ 상담에 성교육까지 받을 수 있다. 그 동안 세계 여행 경비로 3억을 쏟아부었지만 그 덕분에 지금은 최고의 세계 여행 탐험가로 대접받으면서 세계 여행을 떠날 때마다 모든 여행 경비를 협찬받고 두둑한 수입까지 올리고 있다. 전 세계의 다양한 문화를 속속들이 들여다본 노하우를 밑천으로 문화 전도사이자 세계 성문화 전문가로도 잘나가고 있다. 대한적십자사 서울지사 홍보대사로도 활동하면서 레드크로스탑클라우드 고액 후원자 모임을 만들어 어렵고 소외된 이웃들에게 봉사와 나눔 천사로 희망의 등불을 선사하고 있다.



전라북도 정읍의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고향에서 보내고,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세계 일주 꿈을 가슴에 품었다. “중학교 2학년 때 사회 선생님께서 ‘너희들이 성인이 되는 시대에는 너희가 원하면 세계 각국에 여행 갈 수 있다.’라는 말씀을 해 주셨어요.” 그 말을 귀담아듣고 그때부터 세계 일주를 꿈꿨다. 그리고 대학 때부터 해외여행을 다니기 시작했다. 세 번씩이나 세계 일주를 다녀온 그녀는 자유로운 영혼으로 ‘그저 건강하게 살아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모든 것에 감사할 따름’이라며 ‘더 이상의 미련도 욕심도 없을 만큼 깃털처럼 몸과 마음이 가볍고 자유롭다.’라고 털어놓는다. “어려서 가슴에 품었던 세계 일주 꿈이 이루어졌죠. 그래서 꿈은 이루어진다는 강의를 합니다. 특히 시골 오지 학생들한테 꿈을 키워 주기 위한 강의를 많이 합니다.”



그에게 여행은 평생 멈출 수 없는 꿈이다. 그래서 나이가 들어 갈수록 50대든 60대든 90대든 죽을 때까지 꿈과 목표가 있어야 한다고 늘 이야기한다. 크루즈 초호화 유람선도 타 보았다. 배낭여행으로 해외 오지를 다니지만 때로는 돈이 들어가더라도 한 번뿐인 인생 자신만의 럭셔리한 여행을 해 보고 싶어서다. 여행을 통해서 세상을 넓게 본 만큼 넉넉한 마음으로 모든 사람의 마음조차 담아낼 수 있는 넓은 가슴과 깨달음도 함께 얻었다. 배낭 하나 둘러메고 세계 각국을 다니다 보면 내가 어떤 일을 했을 때 가장 가치 있고 즐거울 수 있는지 잃어버린 나의 정체성을 찾고 나만의 시간을 되돌아보는 기회가 될 수 있다.



노도윤 세계 여행가는 우리보다 못사는 나라들, 다양한 문화가 혼재하는 나라들과 아프리카 오지 여행은 꼭 가 보라고 권한다. 우리가 얼마나 풍요롭고 여유롭게 살고 있는지를 직접 경험을 통해서 느껴 보라는 의미에서다. “아이들한테 특히 시골 학교 청소년들에게 꿈과 비전 강의를 하면서 ‘나도 시골에서 자라면서 지금과 같이 꿈을 이루었다.’라며, 꿈은 이루어진다는 글로벌 리더십 강의를 합니다.” 그는 여행에서 보고 느끼는 유적과 유물도 좋지만 사람을 통해서 느끼는 감동이 가장 크다고 말한다. “세계 일주를 하면서 직접 만나는 사람들을 통해 얻는 게 좋아요. 그러면서 우리나라가 참 대단한 나라구나, 하는 자부심과 자랑스러움을 느끼죠.”



노도윤 세계 여행가는 세계 성문화와 성교육 전문 강사로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여행을 취미로 삼아 세계 각국을 다니면서 다양한 성문화를 접했다. 심리학을 전공한 그는 프로이트에 관심이 있어서 깊이 파고들다 보니까 성교육 전문가의 길에 들어선 계기가 되었다.



그는 여성들에게 자기 자신을 위해서 한 번쯤 여행을 떠나 보라고 권한다. 남편과 자녀 뒷바라지하느라 희생하고 헌신하는 것도 좋지만 결국은 내가 행복해야 가족들이 행복할 수 있기 때문에 나를 위해서 나만의 여행을 떠나 보라고 조언한다. “여행은 아는 만큼 보입니다. 가기 전에 항상 그 지역에 대한 공부를 해야 해요. 여행은 계획을 세우고 준비하는 과정이 가장 즐겁습니다. 돌아와서는 그 즐거움으로 더 의욕적인 일을 할 수 있고 또 다른 여행을 꿈꾸면서 삶 자체가 너무 행복하고 즐거워요.”



“그동안 돈만 모이면 무조건 여행을 떠났어요. 7남매 중 막내다 보니까 엄마가 대 주고, 형제들도 모아서 주고, 알바하다가 결국은 시간이 아까워서 알바 안 하고 여행을 떠났어요. 이제는 형제한테 빌린 돈은 다 갚았고 조카들 여행 간다면 여행 경비 제가 다 대 주죠.” 인생 참 멋있게 산다. 세계 여행을 가장 많이 다닌 여자, 바로 그녀 노도윤 씨다. “배낭 하나 달랑 메고 야생마처럼 살아왔어요. 자유로운 영혼으로 하고 싶은 대로 마음 가는 대로 여한도 미련도 없이 살아왔어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세상을 가슴에 품고 있기 때문에 더 많은 주변 사람들에게 더 통 크게 나누고 베풀며 살고 싶어요.”



노도윤 씨의 변신은 끝도 없다. 50년 넘게 사용해 온 이름 노미경도 2020년에 노도윤으로 개명했다. 코로나로 해외 여행길이 막히자 노도윤 씨는 다시 한번 통 큰 변신을 했다. 서울에서도 가장 비싼 금싸라기 지역 강남대로에 국내 제1호 여행 카페 노 작가의 아지트를 오픈해서 운영하고 있다. 코로나 공포로 상권이 위축되어 잘나가던 사장들도 불황으로 비명을 지르고 폐업이 속출하는 현실에서 노도윤 씨는 보란 듯이 강남 노른자 땅에 3개 층 합계 100평(2층, 1층, 지하층) 규모의 대형 카페를 2020년 추석 명절에 오픈했으니 어디서 그런 배짱이 나오는지 놀라울 뿐이다. 그런데 노도윤 씨의 역발상이 먹혀들었다. 오픈한 지 8개월이 지난 2021년 6월 현재까지 노 작가의 아지트는 손님들의 발길이 꾸준하게 이어지고 있다. 노 작가의 아지트는 카페의 분위기부터 남다르다.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세계 각국의 기념품들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 문화 충전소 같은 느낌이 든다.



“세계 각국을 다니면서 다양한 지식인들의 소통 공간과 복합 문화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카페 주인장 세계 여행 작가 노도윤 씨의 말이다. 카페는 정치, 사상, 종교 이념을 초월해서 문화, 예술, 철학, 삶에 대해 다양한 얘기를 나눌 수 있는 문화 공간이다. 노도윤 세계 여행가가 중년들을 위한 여행 카페를 오픈한 이유다. 노도윤 작가가 세계 각국을 다니면서 하나둘씩 모아 둔 여행용품과 여행 기념품들을 카페에 전시했다. 각국의 특색이 담긴 진기한 모습의 기념품들을 감상하다 보면 꼭 현지 여행을 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코로나 여파로 당분간 해외여행은 힘들 듯해서 그동안 다녔던 여행지 추억을 떠올리며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은 마음에 그만의 특별한 공간을 마련했다.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 여행에 대한 관심과 꿈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함께하고 싶습니다.” 노 작가의 아지트에서는 여행지에서처럼 그 누구든 모두가 친구가 될 수 있다. 코로나로 일상에 지친 사람들, 힘들고, 외롭고, 무료하게 쓸쓸한 나날을 보내는 사람들 모두 환영한다. 노 작가의 아지트에 가면 세계 여행가가 타 주는 루와 아메리카노 커피, 와인을 마실 수 있다. 세계 150개국을 돌면서 보고 들은 흥미진진한 해외 여행기와 지구촌의 글로벌 성문화 강의도 들을 수 있다. 브런치로 촐촐한 배를 채울 수도 있고, 이야기 주제가 있으면 이용할 수 있는 세미나, 강의장도 있다. 지하 1층에는 유명 소나무 화가의 그림을 상설 전시해서 누구라도 그림을 감상할 수 있다.



방송인, 연예인, 기자, 유명 인사, 여행 마니아, 일반 시민 등 여행 카페를 찾아오는 손님들도 다양하다. 대부분 노도윤 씨가 그동안 쌓아 놓은 인맥들이다. 카페를 찾아온 손님이 다시 손님을 끌고 오는 부메랑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코로나로 최악의 불황에 허덕이는 상황에서도 노 작가의 아지트가 큰 어려움 없이 영업을 이어 갈 수 있는 원동력이 바로 그 때문이다. 코로나가 잡히면 노도윤 씨는 다시 세계로 훨훨 날아다닐 것이다. 지구 세 바퀴 반을 돌고 네 번째 세계 일주 도전을 계속 이어 나갈 것이다.





2장 Imagine: 생생하게 상상하자







임춘열 _ ‘운전은 내 친구’ 취미와 적성을 전직으로 택한 여성 개인택시 기사

언제 들어도 박력 있고 명랑한 목소리. 운전대를 잡아야 스트레스가 풀리고 엔도르핀이 솟는다는 1955년생 임춘열 여사는 서울에서 개인택시를 몰고 있다. 취미가 운전이고 사람 만나기를 좋아해서 적성을 살려 택한 천직이다. 몸에 밴 서비스 정신으로 친절한 시민의 발이 되어 안전하게 손님을 모시는 모범 기사다. 직업에 대한 자부심도 강하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마음껏 즐기고 직업으로 삼아 수입도 올리니 행복한 사람이다.



세상에서 가장 선호하는 직업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제1지망으로 여러분은 무슨 직업을 선택하겠는가? 십중팔구는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멋있는 직업을 고를 것이다. 하지만 세속의 잣대와는 전혀 다른 직업을 제1지망으로 골라잡을 수도 있다. 임춘열 씨도 바로 그런 사람이다. 임춘열 씨는 2003년 3월부터 마을버스를 1년 2개월 동안 몰다가 2005년 7월 KD운송그룹에 입사하여 2006년 12월 19일부터 2016년 5월까지 버스 기사로 근무했다. 그리고 정년퇴직 후 2017년 1월부터 개인택시를 몰고 있다.



“버스 운전이 적성에 딱 맞고 좋더라고요.” 2011년 4월에 여성 버스 기사 임춘열 씨를 인터뷰하면서 들은 첫 마디다. 결혼해서 전업주부로 살다가 KD운송그룹 경기고속 여성 기사 채용 광고를 보고 지원하여 100대 1의 치열한 경쟁을 뚫고 운전대를 잡았다. 버스를 몰아 보니 운전이 적성에 딱 맞는다면서 환하게 웃던, ‘앙드레 김이 디자인한 유니폼이 어울리는 여자’ 임춘열 씨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임춘열씨는 2011년 서울 강변~덕소 구간을 운행하는 15번 버스를 몰았다. KD그룹 전체 버스 기사 8,000명 중에 여성 기사는 140명으로 2%가 채 안 됐다. 그중에 한 명이 임춘열 기사였다.



“결혼해서 전업주부로 살다가 문뜩 내 나이(45)에 미안하더라고요. 그래서 45세 때 ‘50이 되면 너(50)를 취업해서 맞이하마.’라고 생각했어요. 그때부터 내가 오랫동안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니까 바로 운전이더라고요.” 그는 전업주부에서 버스 기사로 인생 유턴을 결심하고 2003년 1월 대형 1종 면허에 도전하여 한 번에 땄다. 버스 회사에 취직하여 60까지 일하고 정년퇴직하면 개인택시를 뽑아 70까지 일하겠다고 쉽게 생각했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면허를 취득한 지 2개월 후인 2003년 3월부터 마을버스를 14개월 몰다가 2005년 7월 KD운송그룹에 입사하여 2006년 12월 19일부터 버스를 운전했다. 겁 없이 버스 회사에 들어와 큰 차를 운전하면서 초반에는 실수가 많았다. 하지만 얼마 안 가 자타가 공인하는 모범 기사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대형 버스를 장시간 운전하면 체력 소모가 엄청나다. 체력이 받쳐 주지 못하면 웬만한 남자도 오래 버티기 힘든 직업이다. “대형 버스 운전은 여자 직업은 아니라고 봐요. 집안일과 병행하려면 슈퍼우먼이 돼야 하잖아요. 그런데 도전해 볼 만한 매력은 있지요.” 그녀가 생활 체육에 매달리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한때 배구부 주전 세터이자 주장을 맡기도 했다는 그녀는 배드민턴도 수준급이다. 지금도 체력은 국력이라는 신조로 쉬는 날에는 운동을 한다.



“저는 운전이 적성이 딱 맞아요. 원래 사람을 좋아하거든요. 제 차를 타고 내리는 분들에게 제가 먼저 인사해요. 승객이 먼저 저에게 인사할 때도 있고요. 그럴 때 뿌듯하죠.” 친절하면 임춘열이다. 친절상 수상 단골로 2009년에는 한 해에 무려 4번이나 회사에서 주는 친절상을 탔다.



물론 그에게도 아찔한 순간이 있었다. 입사해서 1년이 다 돼 가던 날 교통사고를 냈다. 인사 사고로 징계 위원회까지 올라갔다. 입사 후 최대 위기였다. 그때를 교훈 삼아 안전 운행을 생명처럼 준수하고 있다. “기사로서 안전 운전과 친절은 기본이죠. 겉치레 친절은 안 통해요. 승객이 먼저 알아보거든요. 저한테는 큰 회사가 적성에 맞아요. 규정만 잘 지키면 되니까.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고 정년 후 개인택시 뽑아서 70살까지 운전대를 잡을 계획입니다.” 2011년 기자와의 인터뷰 당시 임춘열 씨가 했던 말이다.



임춘열 씨는 2017년 1월부터 개인택시를 몰고 있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변함없이 시민의 든든한 발이 되어 주고 있다. 전업주부로 있다가 50대에 버스 회사에 취직하여 신나게 버스를 몰다가 정년퇴직한 이후에도 예나 지금이나 운전은 내 친구라고 말하며 시민의 발이 되어 주고 있다. 당당하고 자부심 넘치는 임춘열 택시 기사의 삶은 현역에서 물러나 인생 2막을 살아가는 은퇴 세대들에게 많은 교훈과 메시지를 던져 준다.





3장 Learn: 살아 있는 동안 배워야 한다







신용선 _ 인생 2막에서 더 잘나가는 액티브 시니어 박사

1959년생 신용선 박사는 시니어가 되고부터 더 잘나가고 있다. 은퇴하고 뒷전으로 밀려날 나이에 현역 시절 못지않게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것이다. 가치 있고 보람찬 인생 2막을 살고 싶어 하는 은퇴 세대들의 대표 ‘롤 모델’을 꼽으라면 단연 신용선 박사를 추천한다.



신용선 박사에게 2018년은 특별하고 의미 있는 반전의 해였다. 생애 첫 도전으로 60세에 책 두 권을 저술했다. 또한 경영 지도사로도 탁월한 능력을 인정받아 정부 지원 사업으로 실시하는 글로벌 강소기업 선정과 스타 기업 육성 사업의 기업 선정 및 평가 위원으로 참여했다. 2019년에는 더욱 승승장구하여 자신의 인생에서 ‘경영학 박사 취득’이라는 또 하나의 역사를 썼다. 그리고 모교인 강원대학교 대학원 출강과 몽골대학원대학교 객원 교수직까지 맡게 되었다. 듬직한 체구와 특유의 친화력으로 그의 주변에는 늘 사람들이 몰린다. 유창한 영어 실력에 더하여 글로벌 마인드로 다양한 분야에서 폭넓은 인맥을 구축해 오다 보니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그렇다고 신용선 박사가 걸어온 길이 탄탄대로 일색은 아니었다. 우선 그에게는 고등학교 입학만 하고 등록금을 되찾아 온 소년기의 아픈 기억이 있다. 그 후 검정고시를 거쳐 대학을 나오고 50이 넘어 서울 집과 춘천을 오가며 대학원을 마쳤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샐러리맨으로 근무하다 스스로 회사를 차려 쓴맛, 단맛 두루두루 경험했다. 그가 크게 실패했다가도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나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환갑이 넘은 나이에 평생 못 해 본 대학 강단에 서고, 액티브 시니어로 잘나가는 그가 새로운 길을 찾아 끊임없이 도전하고 추진할 수 있었던 동력은 한마디로 ‘꿈’이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꿈을 포기해 본 적이 없습니다. 제 꿈은 구름 같은 허상의 꿈이 아니라 죽을 만큼 힘들이고 노력하면 달성할 것이라는 꿈이었습니다. 한순간도 꿈이 없었다면 큰 역경들을 넘어서 여기까지 올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젊은 후배들에게 말한다. 세상에서 제일 강하고 무서운 사람은 ‘꿈을 가진 사람’이라고…….



신용선 박사는 같은 세대인 시니어들이 처한 현실을 산으로 비유했다. 시니어들은 3개의 산에서 내려와야 한다. 나이(年齡)의 산, 지위(地位)의 산, 은퇴(隱退)의 산이다. 이 나이에 내가 어떻게? 얼마 전 회사 임원이었는데……. 은퇴하고 나니 할 게 없네……. 이 3개의 산에서 내려오지 못하면 아주 불행한 시니어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대기업 신입 사원 공채로 입사하여 임원까지 해 본 경험을 밑천 삼아 오랫동안 사업을 직접 하다가 60이 넘어 대학 강단에 서기까지 그가 흘린 땀과 노력을 생각하니 가슴이 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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