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전환의 심리학 수업
황시투안 지음 | 미디어숲
인생 전환의 심리학 수업
황시투안 지음
미디어숲 / 2021년 12월 / 256쪽 / 15,800원
1장. 생각의 전환: 비로소 나로 살아가다
지속 가능한 선순환을 만들어라 끝없는 악순환에 빠진 인생: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하다보면 즐거워하는 사람도 있고, 괴로움을 토로하는 사람들도 있다. 어떤 사람은 돈 때문에 고민하고, 어떤 사람은 부부 문제로 고민하기도 한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행복한 가정은 다 비슷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제각기 불행이 있다”라는 톨스토이의 말이 떠올랐다. 하지만 나는 사람들의 불행 속에서 경이로운 유사성을 발견했다. 그것은 바로 사람들이 수렁에 빠져 허우적거릴수록 더 깊이 빠져드는 악순환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대문호 발자크는 “힘들다. 여행을 떠나고 싶다. 여행만이 나를 편하게 해 준다. 그런데 여행을 가려면 돈이 필요하다. 돈을 벌려면 일을 해야 하고, 일에 몰입하면 시간이 없어 여행을 못 가게 된다. 나는 도망치거나 자유로울 수 없는 악순환에 빠져 있다”라고 말했다. 발자크와 마찬가지로 우리 또한 마찬가지인 것 같다. 여행할 때는 일 걱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일할 때는 여행의 환상에 빠진다. 여행, 돈, 일 이 세 가지는 하나의 순환으로 연결되어 있고, 우리는 이 울타리 안에서 녹초가 되어 있다.
인생의 많은 고난에는 반드시 이런 악순환이 있다. 발자크의 고민은 여행을 가고 싶지만 여행 경비가 필요해서 돈을 벌기 위해 열심히 일하게 되고, 그 결과 여행을 갈 시간이 없게 되고, 더 피곤해지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여기에는 고난, 결정, 행동, 결과의 네 가지 요소로 구성된 순환이 숨어 있다. 이런 악순환을 깨지 못하면 우리는 무한히 반복되는 트랙에서 수많은 실패를 이어갈 것이다. 그렇다면 이 죽음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악순환의 고리에서 빠져나오는 방법: 악순환에서 빠져나오려면 우선 자신이 어떤 순환에 빠져 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그리고 악순환 뒤에 어떤 가설과 신념이 있는지 파악해야 한다. 예를 들어 돈이 없어서 고민하는 것을 ‘돈이 없다 - 돈을 아낀다 - 돈을 안 쓴다 - 기회가 없어진다 - 돈이 더 없어진다’라는 순환의 뒤에는 ‘돈은 아끼면 생긴다’는 가설이 있다. 그러나 그 가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결과는 ‘돈을 아끼면 돈이 더 없어진다’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명확하게 분별할 수 있다면 스스로를 곤경에 빠뜨리는 잘못된 신념으로부터 벗어나 전혀 다른 삶을 살 수 있게 될 것이다. 이제 돈에 대한 신념을 ‘돈은 아끼면 생긴다’가 아니라 ‘돈은 자신의 능력으로 버는 것’으로 바꿔 보자. 그러면 자신의 ‘능력을 향상’시키게 되고, 행동은 ‘배움과 성장’으로 나타나고, 그 결과 자연히 ‘능력이 향상’되고, 그 효과는 ‘갈수록 돈을 많이 버는 것’이 된다. 그리고 그 결과 ‘돈은 능력으로 버는 것’이라는 신념이 더욱 강화되어 악순환이 선순환으로 변한다. 부부 갈등이나 자녀교육에서 마주하는 위기를 해결하는 방법 또한 마찬가지다. 이제 스스로 반복된 악순환 뒤에 있는 가설을 발견하고 그것을 되돌릴 방법을 찾아보자.
한번 선순환이 일어나면 인생은 갈수록 나아진다: 일상에서 무력감을 느낀다면, 악순환에 빠져 있을 가능성이 크다. 이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술을 마셔 알코올로 자신을 마비시킬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을 각성하고 어려움을 해쳐나갈 ‘생각’을 하는 것이다. 악순환 뒤에 숨어 있는 잘못된 가설이나 신념은 무엇이고 그것이 가져올 결과는 무엇일지,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효과는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 그때 비로소 깨달을 것이다. 자신이 견지해 온 생각이 잘못되어 있고 그로 인해 도달하고 싶은 효과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으며, 결국 자신의 인생이 끝없는 악순환에 빠져 있다는 것을 말이다.
인생은 항상 마이너스 아니면 플러스로 순환한다. 마이너스냐 플러스냐는 전적으로 순환의 저변에 있는 신념과 가설에 달려 있다. 악순환을 돌파하는 키는 악순환 뒤에 있는 가설을 잘 찾아내고, 자신이 달성해야 할 인생의 목표를 생각해 보는 것이다. 자신이 세운 어처구니없는 가설을 들여다보고 신념을 바꾸고 새로운 삶의 목표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면 인생은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생각만 바꾸어도 이전의 악순환에서 벗어나 삶을 행복하게 하는 성장엔진을 가동시켜 새로운 인생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일단 선순환이 시작되면, 인생은 반드시 갈수록 좋아지게 된다.
세상의 모든 차가움 뒤엔 따뜻함이 감춰져 있다 무지막지한 사람의 마음속엔 어디에도 말할 수 없는 고통이 있다: <저는 약의 신이 아닙니다>라는 영화가 소위 대박이 났다. 이 영화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이 ‘쓰레기 같은 사람’에서 어떻게 ‘영웅’이 됐는지 심리학적 측면에서 살펴보자.
감독이 과거의 청용(영화 속 주인공)에게 입힌 이미지는 한 마디로 ‘쓰레기’였다. 청용은 머리가 닭장 같고 허름한 점퍼를 입고 슬리퍼를 질질 끌며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고 다닌다. 매사에 그야말로 꼴불견인 그는 정말 쓰레기 같은 남자다. 그는 일이 맘대로 안 되자 변호사를 때리고 집에서는 아내에게 폭력을 휘두른다. 아이에게 더 나은 여건을 만들어 줄 힘도 없으면서 아이가 전처와 함께 이민가는 것은 절대 허락하지 않으며 무조건 ‘내가 아이의 아버지’라고 우긴다. 그는 칠칠치 못하고 능력도 없고, 돈도 없어서 집세와 아버지의 양로원 비용도 계속 밀린다. 그는 남성용 건강보조식품인 ‘신의 기름’이라는 수상쩍은 제품을 판매하는데, 제품이 팔리지 않을 때면 그저 가게에 틀어박혀 밤새도록 정신없이 게임만 한다. 그의 인생은 군데군데 구멍이 뚫리고 비가 새는 바구니 같다. 게다가 성격마저 거칠고 이기적이다.
그런데 영화에서 이 ‘쓰레기 같은 인간’은 결국 영웅이 된다. 도대체 어떤 힘이 쓰레기 같은 사람을 영웅으로 만들었을까? 쓰레기 같은 인간은 정말 천성적으로 나쁜 사람인가? 이 질문에 답하려면 ‘쓰레기 같은 인간’들이 왜 미움을 사는 사람으로 변했는지를 먼저 알아야 한다.
온몸에 가시를 세우는 것은 사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함이다: 나의 수업을 받는 한 수강생은 난폭한 아버지로 인해 삶이 크게 영향을 받았다. 아버지는 자주 술에 취했고 그때마다 집 안의 가구를 망가뜨리며 주사를 부렸다. 그는 일하다가 갑자기 집에 상주하는 가정부로부터 아버지가 술주정을 부린다는 연락을 받는 것을 가장 두려워했다. 아버지가 난동을 부릴 때마다 자녀들은 하던 일을 놓고 집으로 달려와 아버지를 달래야 했다. 그는 아버지를 절대 용납할 수 없다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심리학을 공부한 후에야 그는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자녀들은 모두 바빠서 아버지 집에 가는 일이 드물었고, 아버지는 자신이 술주정을 해야 잠시나마 자녀들의 얼굴은 볼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아버지의 술주정 뒤에 있는 외로움을 본 그는 이후 형제들과 함께 아버지 집에서 가족 모임을 가졌고 매주 돌아가며 아버지와 다도시간을 가졌다. 그 이후로 아버지는 술주정을 하지 않았다.
모든 행동 뒤에는 반드시 긍정적인 동기가 있다. 행동은 잘못된 것일 수 있지만 동기에는 항상 긍정적인 측면이 있기 마련이다. 쓰레기 같은 사람들이 얄미운 행동을 할 때도 그들에게 말할 수 없는 고통이 있기 마련이다. 인류가 지금까지 살아남은 것은 온갖 방어수단으로 자신을 보호할 줄 알았기 때문이다. 다만 사람마다 스스로를 보호하는 방식이 다를 뿐이다. 극단적인 사람은 자신을 가시 돋친 고슴도치처럼 만들어 자신을 지키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가족에게 날카로운 가시를 드러낸다. 이런 수단은 자신의 안전은 지켜주지만 동시에 주변 사람들에게 무심코 피해를 주기 쉽다.
영화에서 청용의 모습과 내 수강생의 아버지가 미움을 사는 이유는 그들의 몸에 박힌 가시가 주위를 불편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자신을 보호하는 가시를 거두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자신을 강하게 하는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 더 강해질 때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이 길은 비교적 길어서 일생에 걸쳐 실행해야 한다. 둘째는 본래의 힘을 깨우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만 자신의 내재된 힘을 일깨울 수 있을까?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 하나는 자비로운 마음으로 자신의 갑옷을 녹이는 것이다. 자비(慈悲)는 불교 용어로, 중생에게 행복을 베풀고 고뇌를 제거해 주는 것을 말한다. 행복을 주는 것을 ‘자(慈)’라 하고, 고통에 공감하고 없애 버리는 것을 ‘비(悲)’라고 한다. 이 둘이 합쳐져야 비로소 자비가 된다. 자비로움은 타인의 고통을 보는 데서부터 비롯된다.
영화에서 청용은 초반부엔 그
저 자기 이익만 챙기는 망나니에 불과해서 인도에서 약물을 밀반입하려고 한다. 그는 자신을 ‘별 볼 일 없는 사람’이라고 여기며 살아왔다. 그런 그가 어떻게 백혈병 환자들로 부터 ‘약의 신’으로 불리는 영웅으로 변했을까? 그 시작은 청용이 단짝 친구의 죽음에 충격을 받으면서부터였다. 머리카락이 듬성듬성 빠진 친구가 하얗게 질린 입술로 청용에게 귤을 좀 먹으라고 하자 그를 둘러싼 견고한 껍데기가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이후 병마에 시달리던 친구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자 그의 양심이 깨어난다. 장례식장에 마스크를 쓰고 조문 온 백혈병 환자들의 삶에 대한 갈망과 동시에 무력한 눈빛이 청용의 내면에 있던 어떤 신성한 힘을 일깨웠다. 그때부터 그는 약을 원가에 팔고, 인도 제약공장이 폐쇄되자 기꺼이 비싼 약을 사들여 헐값에 판다. 삶과 법, 인정과 현실의 싸움에서 그의 내면에 잠자고 있던 자비가 깨어나고, 에너지가 솟구치면서 그는 관객들에게 감동을 주는 영웅으로 다시 태어났다.
어떤 사람이 나쁜 것은 그가 단지 너무 괴로워서 어쩔 수 없이 그런 것이다. 자신의 고통만을 바라볼 때는 온몸의 가시를 세워 자신을 보호하지만, 타인에게 초점을 맞추면 다른 사람의 고통이 자비를 일깨운다. 이것이 바로 ‘쓰레기 같은 인간’이 ‘영웅’으로 가는 길이다.
만물에 있는 작은 틈새 사이로 언제나 빛은 새어 들어 온다: 누구에게나 약한 면이 있다. 특히, 가시 돋친 사람들은 더욱 그렇다. 그들이 고슴도치처럼 가시를 바짝 세우는 것은 당신을 해치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함이다. 고슴도치가 가시를 세우는 이유는 두려움 때문이다. 힘이 약한 사람은 항상 조심스럽게 자신을 보호하려고 한다. 꿀벌의 경우 사람을 쏘면 죽을 수 있는데도 생명이 위협받는 순간에는 어쩔 수 없이 사람을 쏘는 걸 선택한다. 그러므로 가시 돋친 사람들은 상대를 찌르는 동시에 자신을 다치게 한다. 그것을 스스로 알아차릴 때 자비심은 저절로 생겨난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입은 갑옷이 나와 상대방 사이의 연결을 끊고, 내 삶을 억누르고 손상하며, 고통을 느끼는 감각을 약화시키고, 마음의 문을 닫아 다른 사람들이 싫어하는 사람이 되게 하지는 않는지 잘 관찰해야 한다. 또한 자신을 보호하는 동시에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 그의 쉽지 않은 삶과 고통을 느끼고 자비심을 일깨우는 것도 잊지 않아야 한다.
레너드 코헨은 ‘만물에는 모두 금(틈새)이 있다’며 우리는 완전한 사람이 아니기에 때로는 남이 싫어하는 모습으로 살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그 틈 사이로 빛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부처는 “선하고 악한 사람은 없고 선악은 그 마음에 있다”라고 말했다. 인간은 누구나 영웅이 될 만한 내재적 자원을 갖고 있기에 당신이 내면의 자비심을 일깨우기만 한다면 적어도 주변 사람들의 영웅은 될 수 있다.
2장. 시각의 전환: 더 나은 자신을 발견하다
인생 7단계에서 나는 어디쯤인가? 계층은 어떻게 뛰어넘을 수 있을까?: 나는 모든 사람이 평등한 것을 존중하지만 사회적 측면에서 사람들은 서로 다른 계층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서 계층이라고 하는 것은 사회적 의미이지 철학적 의미는 아니다. 똑같이 태어나도 누군가는 평생을 바쁘게 뛰어다니며 하루 종일 생업에 시달리고, 누군가는 눈부신 모래사장에서 한가롭게 일광욕을 즐긴다. 무더운 여름, 누군가는 땀을 뻘뻘 흘리며 버스를 비집고 다니고, 누군가는 기사가 운전하는 자가용에 편히 앉아서 우아하게 음악을 듣는다. 누군가는 누추한 집에서 살고, 누군가는 호화로운 저택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산다. 이것이 바로 사회적 계층이 다른 데서 나온 결과이다. 밑바닥층 사람들은 먹고살기 위해 하루종일 힘겹게 살아가고, 상류층은 자유롭고 쾌적하게 산다.
도대체 무엇이 이러한 계층을 결정하는가? 돈, 지능, 인맥인가 아니면 운명인가? 아마도 사람들 대부분은 마음속으로 돈만 있으면 상류층의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사실 돈을 많이 가진다는 것이 인생에서 상류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아니다. 물론 내가 생각하는 상류층 사람은 부자나 권력자가 아니라 생명을 살리고 사회를 위해 가치를 창출하여 대중의 존경을 받는 사람이다. 사람의 사회적 계층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나는 나의 저서 『권층돌파』에서 사람을 ‘노(奴)ㆍ도(徒)ㆍ공(工)ㆍ장(匠)ㆍ사(師)ㆍ가(家)ㆍ성(聖)’의 7단계로 분류했다. 여기서 이 개념들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보자.
1단계 노(奴) - 노는 무언가를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무리에 속한다. 자발적이지 않은 상태에서 살기 위해 일하며 불평불만을 가득 품고, 늘 자신의 인생이 보이지 않는 힘에 사로잡혀 창살 없는 감옥에서 사는 것 같다고 느끼며 답답해한다. 대개 흔히 말하는 빈곤층이 그런 경우다.
2단계 도(徒) - 수습생으로 성장의 기초를 다지는 단계이다. 잠깐 능력은 부족할지 몰라도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배우면서 성장하려 한다. 노와 도의 차이는 노는 어쩔 수 없이 일하는 것이고, 도는 자발적이고 능동적으로 배우고 일한다는 점이다.
3단계 공(工) - 사회의 주요 집단이다. 그들은 규칙에 따라 일을 잘 처리할 능력이 있다. 가족을 부양하고,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며 열심히 살아간다.
4단계 장(匠) - 손재주가 있고, 일 처리가 능숙하며, 최선을 다하고, 과감하게 혁신하는 업계의 엘리트들이다. ‘장’은 자기만 일을 잘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제자를 받아 기술을 가르치고 실전을 전승한다.
5단계 사(師) - 이전 단계에서는 모두 일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나 ‘사’부터는 일뿐만 아니라 사람을 중점적으로 다룬다. 스승은 능력을 갖출 뿐 아니라 자신의 기술이나 학문을 다른 사람에게 전수하고, 사람에게 일을 가르칠 뿐 아니라 그들 내면의 훌륭한 덕목과 지혜를 일깨워 준다. ‘사’와 ‘도’는 함께 가는데 ‘사’가 있기에 ‘도’가 성장할 수 있다.
6단계 가(家) - 자비롭게 사람들을 마음에 품고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여 자수성가할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 따르는 아이돌이자 업계의 모범이 된다. 그들은 자신의 성공 모델을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 주어 사회에 막대한 물질적 그리고 정신적 부를 창출할 수 있다.
7단계 성(聖) - 인생의 최고 단계이다. 중국은 고대에 생전에 인류에 큰 공헌을 한 인물을 사후에 ‘성인(聖人)’으로 추앙했다. 공자(孔子)가 성인의 반열에 있다.
한 사람이 더 높은 단계에 오를 수 있느냐는 그가 얼마나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는지나 얼마나 큰 권력을 가지고 있는지에 달려 있지 않다. 만약 그의 마음이 넓지 않다면, 권력이 아무리 높고 엄청난 세력을 갖고 재산이 많아도 보이지 않는 힘에 사로잡혀 바깥 것들의 조종을 받게 된다. 옛사람들은 덕이 제자리에 서지 않으면 재앙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연히 높은 자리를 차지했다고 해서 그 사람이 사회적으로 높은 위치에 있다고 할 수 없고, 마찬가지로 서민 가정에서 태어났다고 해서 사회의 밑바닥에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자신의 울타리를 넘어 인생의 더 높은 차원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의 신체가 다른 생물들에 비해 절대 우월하지 않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먹이사슬의 꼭대기에 올라설 수 있었던 것은 인간의 두뇌가 매우 발달하여 도구를 사용하고 언어를 사용해 다른 사람과 협력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혼자서는 사자의 적수가 되지 못하지만 무리를 지어 힘을 합치면 사자를 잡을 수 있다. 협력은 인간을 먹이사슬의 꼭대기에 올려놓았다. 그러나 무리가 생기면 그 안에는 반드시 계급이 생기게 되고 아래층의 사람들을 보호하고 더 잘 협력하게 하기 위해 우두머리가 등장한다. 국가는 말할 것도 없고 작은 기업에도 반드시 리더가 존재하기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