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부터는 나를 위해 가꿉니다
뽀따(김보연) 지음 | 비즈니스북스
50부터는 나를 위해 가꿉니다
뽀따(김보연) 지음
비즈니스북스 / 2021년 11월 / 280쪽 / 15,000원
시작하며_ 50, 내게 더 좋은 인생을 선물할 기회가끔은 꿈인가 싶을 때가 있다. 50대 나이에 유튜브라는 생소한 영역에 도전해 20만 명에 가까운 구독자들과 소통하는 ‘뽀따 언니’로 살고 있을 줄이야.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상상조차 하지 못한 내 삶의 모습이다.
결혼하고 아이 키우던 30대 시절에는 인생이 일직선으로 쭉 뻗은 대로와 같을 거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순탄하고 안전한 그 길이 내가 걸어갈 인생길이리라 믿었다. 하지만 40대가 되고 깨달았다. 막상 걸어보면 평온한 길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는 걸. 때로는 번개에 쓰러진 나무가 길 한가운데를 막아서고, 때로는 산사태로 끊긴 길을 만나기도 했다. 그렇게 험하고 고된 길을 나는 꽤 오랫동안 걸었다. 그 길을 겨우 버텨내 건널 수 있었던 건 딸과 가족들, 친구, 그리고 신앙의 힘 덕분이었다.
그리고 50 중반을 맞은 지금, 젊음은 지나온 길에 두고 왔지만 걸어온 삶의 한 걸음 한 걸음이 소중하고 감사하다. 구불거리고 그늘이 짙게 드리운 길을 또 만난다고 해도 이젠 더는 두렵지 않다. 나는 걸어온 그 길 위에서 더 강인해졌고 더 현명해졌다. 그런 믿음을 디딤돌 삼아 오늘의 삶도 도전을 계속한다. 내게 더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인생을 선물하고 싶어서, 유튜브를 통해 만나는 4060 젤리뽀(뽀따TV 구독자를 부르는 애칭으로 ‘젤 이뻐’라는 뜻이다) 님들의 삶을 응원하는 뽀따 언니로 성장하기 위해서.
이제는 남이 아닌 나와 내 마음을 돌보는 시간: 처음 책을 내보자는 제안을 받았을 때 고개를 저었다. 내 성격상 대충은 하지 못할 텐데. 지나온 시간을 모두 끄집어내 수십, 수백 번 반추하고 또 말하려는 이야기가 잘 전달될지에 대한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며 한 자, 한자 쓰려고 할 텐데. 그 과정이 얼마나 힘들지 더럭 겁이 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젤리뽀들을 만나오며 깨달은 사실이지만 50이 되기까지 내가 살아온 이야기와 크고 작은 경험이 누군가에게는 말뿐인 위로보다 더 현실적이고 힘이 되는 응원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무엇보다, 나이 듦을 상실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었다. 몸 여기저기가 아파 죽겠는데 그냥 갱년기라 그렇대요, 가정이나 직장에서 내 자리가 점점 쪼그라드는 것 같아 서글퍼요, 내 맘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몸이 야속해요, 남편도 자식도 내 마음을 몰라줘서 외로워요…. 뽀따TV로 이런 사연을 보내오는 여성들에게 우리는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더 아름다워질 수 있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아름다움’, ‘도전’, ‘발전’, ‘성장’, ‘내일’과 같은 단어는 2030만의 전유물이 아니며 꿈꾸는 모든 사람, 그 소중함을 아는 간절한 사람의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지난 50년은 가족을 위해, 다른 사람들 눈치만 보며 살았다면 이제 남은 50년은 그동안 미루고 밀쳐두었던 나 자신과 내 마음을 살피고 돌보며 살자. 인생에 쓸 수 있는 모든 힘을 다 썼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렇지 않다. 더는 한 발자국도 못 움직일 것 같았던 내가 그 험하고 고된 길을 용기 내어 한 걸음씩 내디디고 끝내 여기까지 달려왔듯 누구라도 그렇게 자신만의 길을 개척할 수 있다.
제1장 50, 이 멋진 시간을 우아하게 즐기는 법
당신도 ‘나이 감옥’에 갇혀 있나요?영화를 자주 보진 않지만 패션 관련 영화는 꼬박꼬박 챙겨 보는 편이다. 최근에는 <에밀리, 파리에 가다>를 여러 번 반복해 봤는데 주인공 에밀리의 다채로운 패션을 감상하는 재미가 아주 쏠쏠했다. 그런데 이보다 더 많이 본 영화가 있다. 이제껏 열 번은 넘게 봤고 앞으로도 몇 번은 더 볼지도 모르는 영화, 바로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다.
패션지의 화려한 세계가 배경인 이 영화는 볼 때마다 아이디어와 영감이 샘솟는다. 앤디 역을 맡은 앤 해서웨이가 패션 매거진 《런웨이》에 입사해 빠르게 적응해나가는 모습도 재미를 주지만 특히 편집장 미란다로 분한 메릴 스트립의 패션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촬영 당시 55세였다고 하는데 입고 나오는 의상마다 어찌나 섹시하고 우아하게 소화해내는지 눈을 떼기 어려울 정도다. 카리스마 넘치는 은발과 볼드하고 청키한 감각적인 액세서리, 칼같이 선이 잡힌 블랙 팬츠와 재킷, 아찔한 스틸레토 힐까지,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벽한 스타일링이다.
영화 캐릭터라 가능한 패션이겠지만 전체적으로 톤만 조금 누그러뜨리면 실생활에서도 얼마든지 응용할 수 있을 것 같다. ‘아유, 이 나이에 어떻게’라는 마음의 장벽만 뛰어넘을 수 있다면 말이다.
요즘 내 또래 여성들을 보면 그래도 어머니 세대보다는 패션이나 메이크업으로 개성을 드러내려는 욕구가 강한 편이다. 그런데도 조금만 과감해 보인다 싶으면 손사래부터 친다.
“이 나이에 그런 옷을 어떻게 입어?”
“아유, 이 나이에 그런 색깔을 어떻게 발라?”
“그런 건 애들한테나 어울리지, 이 나이에 입으면 나잇값 못 한다고 타박 받아.”
그러고 보면 40대부터는 나이를 부정적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40대 이후로는 매력이 있을 수도, 아름다울 수도 없다. 그리고 뭔가를 새로 배우기도 어려워진다. 무능력해지고 열정이 사라지며 실수가 잦고 몸도 예전 같지 않다. 유행을 따라잡기도 힘들지만 실은 이도 저도 다 귀찮다.
자기 나이를 이런 식으로 규정하면 패션뿐 아니라 삶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자신감이 사라질 수밖에 없다. 100세 시대를 맞아 인생 2막을 준비해야 한다고 말은 하면서도 막상 새로운 공부나 도전을 앞두고는 ‘이 나이에’라는 핑계를 대며 뒤로 물러선다. 이 나이에 공부는 무슨, 이 나이에 무슨 부귀영화를 보겠다고, 이 나이에, 이 나이에…. 마치 옴짝달싹하기 어려운 감옥에 갇혀 사는 것 같다. 가둔 사람 없이 스스로 기꺼이 갇히는 ‘나이 감옥’ 말이다.
‘나이 감옥’에서 빠져나오면 마법이 일어난다: 얼마 전 신문에서 흥미로운 기사를 읽었다. 예일대학교와 버클리대학교 연구진이 61~99세 노인 100명을 대상으로 나이에 대한 고정관념이 우리 몸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했다는 내용이었다. 실험에서 연구진은 일부 노인들에게 ‘원기 왕성’, ‘탄탄한 몸’, ‘창조적인’ 같은 단어가 빠르게 지나가는 컴퓨터 화면을 3주간 보게 했더니 그렇지 않은 노인들보다 걷기나 의자에서 일어나기 등의 신체 능력이 향상되었다고 보고했다.
한번은 라디오에서 이런 이야기도 들었다. 실험을 위해 70대 후반에서 80대 초반 남성 여덟 명을 선발해 외딴 마을에서 6박 7일간 지내게 한 이야기다. 그런데 그 마을은 시간을 20년 전으로 되돌린 듯한 공간이었다. TV에서는 20년 전 영화와 뉴스가 방송됐고 라디오에서는 20년 전 유행가가 흘러나왔다. 숙소에 비치된 야구 잡지도 20년 전 것이었다. 집안일은 간병인 도움 없이 노인들 스스로 하도록 했다. 일주일 후 실험 결과는 놀라웠다.
거의 모든 노인의 신체 나이가 20년 젊어졌다. 시력, 청력, 악력은 물론이고 기억력과 지능까지 50대 수준으로 되돌아갔다. 이야기를 듣고 궁금해서 인터넷으로 더 알아보니 1979년 하버드대학교의 엘렌 랭어(Ellen Langer) 교수가 주도한 ‘시계 거꾸로 돌리기(Counterclockwise study)’라는 매우 유명한 실험이라고 한다.
우리는 나이에 관한 수많은 고정관념에 둘러싸여 살고 있다. 때로는 나 자신이 만든 나이 감옥에 기꺼이 갇히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연구들은 우리가 나이에 관한 고정관념을 떨치고 나이 감옥에서 빠져 나오기만 하면 마법 같은 일이 벌어진다고 알려준다. 시간을 되돌린 듯 나이를 거슬러 젊어지고 건강해지고 총명해질 수 있다고 말이다.
“요즘 사람 나이를 옛날 사람과 똑같이 쳐서는 안 되고, 살아 온 햇수에 0.7을 곱하는 게 제 나이다.”
고(故) 박완서 작가의 말이다. 오늘날 우리나라 여성의 기대 수명이 86세라고 하니 박완서 작가의 나이 계산법이 합당한 것도 같다. 이 계산법에 따르면 올해 내 나이는 38세다!
한번 상상해봤다. 내가 정말로 38세라면 어떨까? 엽기 떡볶이를 먹어도 속 부대낄 걱정 없고, 오래 앉아 있다가 갑자기 일어나도 “아이고!” 소리가 절로 안 나오고, 휴대전화 볼 때마다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뒤로 뺄 일도 없을 것이다. 30대로 되돌아간다는 상상만으로 왠지 몸이 가뿐해지고 눈이 밝아지는 기분이다. 세상에 못 할 일도, 두려울 일도 없다는 자신감이 차오른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나이에’라는 말은 입 밖에 내긴커녕 머릿속에 떠올리지도 않을 것 같다.
나이는 그냥 나이일 뿐이니까: 윤여정 배우가 얼마 전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받았다. 그녀가 드레스 위에 시크하게 걸친 꼼데가르송 항공 점퍼도 덩달아 유명해졌다. 원래 20대 남성용 점퍼라는데 성별과 나이에 구애받지 않고 어떤 옷이든 근사하게 소화해내는 그녀가 더욱더 멋져 보인다.
누군가는 그녀가 연예인이니까 혹은 날씬하니까 그렇게 당당할 수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그녀는 자기 나이를 편안하게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 같다. 나이를 편안하게 받아들인다는 건 나이는 그냥 나이일 뿐임을 안다는 것이다. 나이에 얽매여 나이 탓을 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만일 그녀가 ‘이 나이에’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이었다면, 그래서 새로운 도전을 두려워하고 나잇값 운운하는 사람들 때문에 옷 한 벌 마음대로 못 입는 사람이었다면 일흔이 넘어 두 번째 전성기를 맞지는 못했을 것이다.요즘의 2030 세대는 세상이 정한 취업할 나이, 결혼할 나이, 부모 될 나이를 거부하고 자신만의 시간표대로 인생을 설계한다고 한다. 젊은 사람들에게 배울 건 배워야 한다. 우리도 할 수 있다. 50대는 이래야 하고, 60대는 저래야 한다는 세상의 고정관념에서 얼마든지 벗어날 수 있다.
만일 “이 나이에 무슨!” 하면서 손사래 친 일이 있다면 그 일을 지금 당장 해보자. 메릴 스트립이 그랬던 것처럼 슬릿이 아찔하게 들어간 스커트를 입어보는 건 어떨까? 오랜 숙제였던 운전면허증 따기는? 몸에 착 달라붙는 운동복을 입고 운동을 시작하는 건? 애들이고 남편이고 훌훌 떨쳐버리고 제주에서 한 달 살아보는 건 어떨까?
나이가 몇 살이든 지금보다 더 당당해질 수 있다. 더 우아하고 아름다워질 수 있다. 더 배울 수 있고 현명해질 수 있다. 자기 자신을 나이 감옥에 가두지만 않으면, ‘이 나이에’라는 핑계로 뒷걸음치지만 않으면 매일매일 더 성장해서 더 멋진 사람,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
나이 감옥에서 나온다는 건 ‘나이 때문에’ 아무것도 못 했던 내가 ‘나이 덕분에’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나로 변화하는 일이다. 새로운 시선으로 보는 세상은 결코 전과 같지 않을 것이다.
제2장 품위 있게 나이 들고 싶다면 지금부터 마음공부
이제는 홀로서기를 연습할 때한번은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 남편이 능력이 있었더라면, 아니 애초에 능력 있는 남자와 결혼했더라면 지금 이런 고생은 안 하고 살겠지 하는 생각에 남편이 미워죽겠다는 것이다.
사실은 나도 그런 생각에 사로잡힌 적이 있었다. 남편의 사업 실패로 인생 전체가 곤두박질치면서 어린 딸아이와 흙바닥에서부터 다시 일어나야 했을 때 나 역시 남편을 원망했다. 왜 그렇게 어리석은 욕심을 부렸냐고 묻고 따지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남편의 실수에 내 책임도 있음을 안다.
생각해보면 남편은 혼자만 힘쓰는 시소 놀이를 하고 있었다. 시소 한쪽 끝에 앉은 나와 딸을 하늘 높이, 더 높이 띄우기 위해 맞은편 끝에서 혼자 발을 구르며 애쓰고 있었다. 내가 진작 남편의 부담을 덜어주었다면, 남편에게 전적으로 의지하지 않았다면, 내가 주체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의견을 말했다면 남편은 분명 다른 선택을 했을 것이다. 남편은 의지할 대상이 아니다. 그냥 함께 살아가는 동반자일 뿐인데 나는 이 사실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
요즘 젊은 여성에게는 말도 되지 않는 다른 세상 이야기겠지만, 우리 세대만 해도 여자는 남편만 잘 만나면 팔자 고친다는 인식이 있었다. 능력 없는 남편을 원망하던 내 친구의 머릿속에도 그런 인식이 몇십 년이 지나도록 끈질기게 남아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 남의 손으로 팔자 고치려고 마음먹는 순간 자기 자신은 사라져버린다. 그 사람이 요구하는 대로 휘둘리게 된다.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기대려 하면 영영 자신의 두 다리로 서지 못하는 사람이 된다. 그러면 그 누군가를 더욱더 의지해야만 하고 심해지면 집착할 수밖에 없다. 혼자 걷기는커녕 서지도 못 한다. 그렇게 스스로 존재감을 느끼지 못하고 불안과 두려움에 떨다 보면 마음의 근력은 점점 힘을 잃고 만다.
누군가에게 의지하지 않아야 외롭지도 않다: 우리가 지금껏 의지한 사람은 남편만이 아니다. 정서적으로는 남편보다 아이들을 훨씬 의지하며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아이들은 자라서 언젠가는 엄마 곁을 떠난다. 그게 자연스러운 과정이라는 걸 알면서도 우리는 마음의 준비를 못 한 채 그 순간을 맞는다. 중년 여성들에게 빈둥지증후군이 찾아오는 이유다.
빈둥지증후군은 아버지도 느끼는 감정이지만 어머니가 더 크게 실감하곤 한다. 특히 전업주부로 아이를 돌보는 데 대부분의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온 사람이라면 그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둘째 언니가 중년 여성의 이런 심리에 대해 이렇게 진단한 적이 있다. 지금껏 자식 때문에는 웃어봤어도 나 때문에 웃어본 적은 없어서 아이들이 떠나가면 불안하고 외로움을 느낀다는 것이다. 엄마로서는 아주 유능하지만 자신을 데리고 사는 데는 아직 무능하다.
생각해보니 나는 우리 딸과 산전수전 겪는 동안 서로 엄청나게 의지하며 살았는데도 정작 딸이 독립할 때는 크게 흔들리지 않았던 것 같다. 함께 산다고 해서 딸에게 더 많은 걸 해줄 수 없다는 걸 알았고, 딸을 전적으로 믿기도 해서였다. 그런데 그보다 더 큰 이유가 있었다. 내가 뽀따TV를 시작하면서 ‘나 자신을 데리고 살기’에 어느 정도 유능해졌기 때문이다.
옷가게를 할 때는 뭔가 20퍼센트 정도 부족하다는 느낌이 계속 들었는데 뽀따TV를 하면서는 달랐다. 구독자 젤리뽀 님들과 영상과 댓글 또는 다이렉트 메시지로 소통하면서 나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비록 온라인 플랫폼이지만 함께 울고 웃으며 정서적으로 교감하고 서로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다는 사실, 참된 위로와 격려, 응원을 통해 모두가 깊은 충만함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그렇게 나는 정말 잘하고 싶고 잘할 수 있는 분야에서 일하는 기쁨을 알게 되었다. 온 마음을 다해 일하고 있었기 때문에 큰 어려움 없이 딸에게서 정서적으로 독립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남편에게서, 아이들에게서 독립하고 싶다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나로 거듭나야 한다. 더는 남을 의지하며 사는 게 아닌 내 힘으로 온전히 서고 싶다면 말이다. 남편과 아이의 성공과 실패에 덩달아 널뛰기를 하지 말아야 한다. 남편과 아이라는, 내 힘으로 어쩔 수 없고 통제 불가능한 존재에 집착하지 말고 이제는 자기 변화와 성장에 집중해야 한다.
그리고 공부해야 한다. 공부해서 취업이든, 봉사 활동이든 취미 활동이든 새로운 일에 도전해보자. 나를 재발견해보자. 지금껏 누군가에게 의지하며 사느라 내 보물 같은 잠재력을 잊고 살았다. 남편과 아이에게 의지하려는 생각을 버리면 그제야 내 재능이 보이기 시작한다. 나 역시 더는 남편을 의지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고 나서야 나의 새로운 재능을 발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