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함 너머
임종득 지음 | 굿인포메이션
약함 너머
임종득 지음
굿인포메이션 / 2021년 10월 / 496쪽 / 22,000원
1장 약자에게는 그들만의 전략이 있다
반드시 이기는 약자만의 전략 조그마한 보트와 거대한 항공모함이 있다. 같은 속도로 항해하던 중 긴급상황이 발생하여 이들이 가던 방향을 급히 바꾸려고 하는 데, 둘 중 누가 방향전환이 더 빠를까?
정답은 작은 보트이다. 거대한 항공모함은 강력한 핵연료를 사용한다 하더라도 그 규모 때문에 신속하게 방향을 전환하기 어렵다. 뉴턴의 관성의 법칙이 이를 잘 설명한다. 물체가 크면 클수록, 빠르면 빠를수록 방향전환이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또한, 작은 보트는 키를 잡은 사람이 결정해서 바로 바꾸면 된다. 키를 돌리면 금세 배의 방향을 바꿀 수 있다. 의사결정도, 실제 방향전환도 오래 걸리지 않는다. 하지만 항공모함은 복잡한 의사결정 과정과 절차를 거쳐야 한다. 조직에도 동일한 법칙이 적용된다. 작은 조직은 신속하게 반응할 수 있는 반면에 거대한 조직은 어려움을 겪는다.
바로 이 점이 약자가 철옹성 같은 강자를 이길 수 있는 단초가 될 수 있다. 약자는 이와 같은 강자의 약점을 식별하고 집중할 때 비로소 승리할 수 있다. 이미 최적의 시스템을 구축한 강자에게 누구나 예상 가능한 방법으로 경쟁해서는 승산이 없다. 그러나 견고해 보이는 조직도 그 거대함으로 인해 발생할 수밖에 없는 약점이 있다. 아무리 거인이라 해도 약자의 공격이 자신의 약점으로 향하면 당황할 수밖에 없다. 새로운 환경에서 예상 밖의 새로운 룰로 싸울 때, 강자는 약점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그러나 어떤 조직도 목표를 전환하는 것이 작은 보트의 방향을 전환하는 것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변화를 위해서는 치열한 노력이 필요하다. 강자의 약점을 찾아내는 통찰이 필요하고, 그 약점에 약자의 강점을 집중해야 한다. 이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시시각각으로 몰려오는 두려움을 이겨내고 강자에게 담대히 도전해야 한다.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르는 불리한 국면을 참고 또 참아내야 한다. 그래서 약자가 강자를 이기는 것은 그만큼 어렵다. 그러나 약자라고 해서 항상 약한 것이 아니고 강자라고 모든 경우에 강한 것이 아니다. 자연생태계나 인간세상을 살펴보면 약함이 항상 불리한 것이 아니며, 부끄러워할 일도 아님을 알 수 있다. 개인이든 조직이든 정말 부끄러워해야 할 것은 자신의 처지를 바로 보지 못하는 것이다.
약자의 승리 방정식, V = WE MISS 보스턴대학의 이반 어렝귄-토프트 교수가 내놓은 흥미로운 분석이 있다. 19세기 이후 강대국과 약소국 간 전쟁 200여 건을 분석해 보니 약소국이 이긴 경우가 28%에 달했다. 이 수치는 시간이 흐를수록 계속 높아지는 경향을 보인다. 1950~1999년엔 놀랍게도 약소국의 승전율이 50%를 넘었다. 약소국이 승리한 전쟁은 대개 게릴라전 같은 변칙을 구사한 경우였다. 강자가 원하는 전쟁의 룰을 거부하는 순간 약자의 승리 가능성이 크게 높아진 것이다.
국가뿐만 아니라 개인이나 조직에서도 이런 일은 자주 일어난다. 이런 현상은 강자를 이기는 약자의 승리가 결코 우연이나 기적으로 치부할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어떤 개인과 조직은 승리하고 어떤 개인과 조직은 패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약자의 승리 방정식, ‘V = WE MISS’에서 ‘WE MISS’는 다섯 가지 핵심요소의 머리글자를 따서 만들었다. ‘약자인 우리가 간절히 바라는 것, 그러나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이란 의미이다. 승리를 간절히 바란다면 이 다섯 가지 요소들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전략적 적용의 비법이 놓쳐서는 안 된다. 방책(Ways), 목표(End), 가용수단(Means) 세 가지 요소에 정보(Intelligence), 끈기(Strongly Stand)라는 두 가지 요소를 추가한 이유는 특히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정보가 굉장히 중요해지고 있고,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싸워야 하는 약자에게 정보는 더욱 절실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강자와의 경쟁에는 힘의 불균형이 존재하므로 약자는 정면대결을 피하고 지구전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 불리한 여건에서 견디기 위해서는 끈기가 필수적이다. 끈기가 있어야 오래 참을 수 있고,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전략의 세 기둥: 목표, 가용수단, 방책 다섯 가지 핵심요소 중 먼저 일반적인 전략의 3요소를 살펴보자. 전략을 구상하고 시행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요소가 바로 목표, 가용수단, 그리고 방책이다. 많은 사람들이 전략을 ‘목표달성을 위해 가용수단을 활용하여 방책을 구상하는 술’이라고 정의한다. 목표는 전략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이고 모든 가용수단을 집중해야 할 결승점이다. 목표는 명확하고, 결정적이며, 달성 가능해야 한다. 약자는 가용수단이 제한되기 때문에 강자를 상대할 때는 목표를 낮게 잡아야 한다. 목표를 수 개로 구분하여 조그마한 중간목표를 달성하고 그 여세를 몰아 보다 큰 승리로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조그마한 승리의 누적을 통해 상대적 열세를 만회하는 것이 약자가 목표를 결정할 때 명심해야 할 요소이다.
가용수단은 목표달성에 중요한 역량이다. 군사적 가용수단은 병력, 물자, 전력, 군수지원, 자금 등을 의미한다. 그중에서 가용수단을 대표하는 무기체계가 가장 중요하다. 이전에 사용되지 않았던 무기를 사용하면 상대보다 월등한 전투력을 발휘하여 쉽게 이길 수 있기 때문이다. 군사적 수단 이외에도 현대전에서는 외교적, 경제적, 심리적 수단 등 다양한 수단들이 동원된다. 군사 총력전의 형태를 가진 오늘날의 전쟁은 한 국가의 가용한 모든 수단이 동원된다.
방책은 목표달성을 위해 가용수단을 활용하여 어떠한 옵션을 선택할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즉, 전투력의 운용방법을 의미한다. 전투력 운용은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라는 육하원칙을 적용하여 최적의 방책을 선택하는 것이다. 양측이 유사한 수준의 무기체계를 보유하고 있는 경우에는 전력을 운용하는 방법에 따라 승패가 결정된다.
사실 약자가 강자를 상대로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은 많지 않다. 그래서 약자에게 전략이 중요한 것이다. 지피지기한 상태에서 면밀하게 상황변화를 관찰하며 약자의 강점으로 강자의 약점을 공격하는 것이 방책의 핵심이다. 지형과 기상을 활용하고, 시간과 장소를 선택하며, 예상치 못한 기습을 통해 방책을 다양하게 하여 결정적인 시간과 장소에서 상대적 우위를 달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2장 방책(Ways) : 약자의 강점을 강자의 약점에 집중하라
테르모필레 전투, 300 전사 페르시아 대군을 막다 스파르타의 왕 레오니다스는 300명의 스파르타 정예부대와 1000명의 테스피아 병사만을 남기고 모두 후방으로 철수시킨다. 그리고 자신은 그들과 함께 남았다. 스파르타의 승리를 위해서라면 자신의 목숨도 아깝지 않았다. 죽음을 불사하는 왕의 단호함과 결단력 덕분에 스파르타의 병사들은 하나로 뭉칠 수 있었다.
2006년 개봉된 영화 <300>이 바로 이때의 상황을 그리고 있다. 영화에는 BC 480년, 페르시아 대군에 맞서 싸우는 스파르타의 전사 300인의 용맹스러운 모습이 처절하게 묘사되었다. 이 영화의 초점은 스파르타 용사들의 용맹함에 맞추어져 있지만, 그 용맹함을 의미있게 만든 레오니다스의 전략적 식견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300 대 15만이라는 절대적인 열세 속에서 적을 저지하는 방법은 열정과 용기만으로는 되지 않는다. 그래서 레오니다스는 페르시아군보다 먼저 이동하여 적이 우회할 수 없는 테르모필레 협곡을 막아섰다. 이곳에서는 아무리 많은 대군이라 해도 실제 전투에 참여할 수 있는 인원이 제한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소수의 정예병으로 좁은 길목을 막아선 것이다. 레오니다스와 300명의 결사대는 죽기를 각오하고 길목을 지켰고 페르시아 대군을 맞아 그 협곡에서 3일을 버텨냈다.
레오니다스가 테르모필레 협곡이 방어에 최선이라고 생각한 이유는 또 있었다. 대군이었던 페르시아군은 보급에 곤란을 겪고 있었다. 특히, 장거리 원정을 온 이들은 전진하면서 현지 조달을 해야 한다. 테르모필레를 방어해 낼 수 있다면 물량의 현지 조달이 어려워질 뿐 아니라, 동맹을 망설이던 다른 그리스국가들의 참전도 기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페르시아군에게 있어 이 협곡은 장점을 살리기 힘든 지역이었다. 군대의 좌우가 각각 벼랑, 성벽으로 막혀있 궁병을 집중시켜 사격을 퍼붓기도 힘들었을 뿐만 아니라 기병도 쓰기 힘들었다. 결국 페르시아군은 장점인 대규모 병력, 궁병, 기병 등이 모두 봉쇄된 상태에서 좁은 지형과 성벽 엄폐물까지 지닌 스파르타군의 공격에 속절없이 무너졌다. 첫날 전투에서 스파르타군의 희생은 두 명에 그칠 정도의 일방적인 싸움이었다.
마침내 협곡에서는 결코 스파르타군을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한 페르시아의 왕 크세르크세스는 새로운 방법을 선택한다. 한 그리스 병사의 밀고로 우회로를 알게 된 페르시아군은 그 길을 통해 스파르타군의 후방을 공격한다. 전방과 후방 동시에 공격을 받은 스파르타의 300 용사들은 이 협곡에서 레오니다스와 함께 최후를 맞는다. 전투가 끝난 후 크세르크세스는 레오니다스의 머리를 베어 장대에 높이 꽂아놓았다고 한다. 적장이 죽으면 예를 갖추어주는 것이 정상인데 크세르크세스가 얼마나 화가 났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레오니다스와 300 용사들은 비참한 최후를 맞았으나, 그들의 희생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그들이 3일이라는 시간을 벌어준 덕택에 그리스 연합군은 전열을 가다듬어 재정비할 수 있었고, 그 효과는 살라미스 해전에서 나타나 그리스 연합군에게 승리를 가져다주었다.
3장 목표(Ends) : 명확하고 결정적이며 달성 가능해야 한다
구정 대공세, 베트콩은 잃었으나 전쟁에서 이기다 ‘적이 원하는 시간에 싸우지 않는다.’ ‘적이 원하는 장소에서 싸우지 않는다.’ ‘적이 원하는 방법으로 싸우지 않는다.’ 이것이 베트남의 전쟁 영웅 보응우옌잡 장군의 3불 전략이다. 북베트남은 이 전략으로 프랑스군을 몰아냈고, 미국과의 전쟁에서도 이 전략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런데 1968년 1월 북베트남군이 남베트남 국경도시 케산에 2만 명의 병력을 투입해 적의 관심을 돌린 후, 최대 명절인 구정에 맞춰 남베트남 주요 도시의 관공서를 기습 공격했다. 이른바 구정 대공세다. 그 동안 소규모로 게릴라전을 벌여왔던 북베트남이 이런 공격을 하리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구정 대공세, 북베트남의 전략: 1968년 1월 31일, 이른 새벽을 기하여 베트남 전역 주요 도시에 대한 베트콩의 대대적인 기습공격이 시작되었다. 베트콩은 주요 도시들을 습격하여, 짧은 시간 동안 미 대사관, 방송국, 대통령궁 등을 점령했다. 미군은 일시적으로 공황상태에 빠졌으나 미군은 곧 사이공을 재탈환하고 안정을 회복한다. 결국 구정 대공세는 북베트남의 완패로 끝난다. 베트콩은 참전병력의 절반에 가까운 3만 5천 명이 사망하고 5,800여 명이 생포되었다. 반면, 미군의 피해는 크지 않았다.
그렇다면 군사적으로는 너무나도 결과가 뻔한 구정 대공세에 나섰던 북베트남은 도대체 무엇을 노렸던 것일까? 설날 명절 새벽을 이용해 기습공격으로 상대의 허를 찌른다고 해도 전투에서 이기기는 어렵다는 사실을 처음부터 호찌민 주석과 보응우옌잡 장군도 알고 있었다. 처음부터 그들의 목표는 주요시설을 점령하거나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 시민과 세계의 이목을 끄는 것이었다.
그래서 케산을 먼저 공격하여 적의 관심을 돌린 후 구정 연휴 기간 동안 베트남 주요 도시의 핵심시설을 공격하여 미국 내 반전 여론을 유도한 것이다. 포로로 잡힌 베트콩을 남베트남 장성이 공개처형하는 모습을 담은 사진이 언론에 유포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베트남전쟁에 대한 회의와 비판 여론이 일었다. 보응우옌잡이 주목한 것은 미군 지휘관이나 미군이 아니었다. 그들을 지지하는 힘의 근원을 본 것이다. 그것은 미국 본토에 있는 시민들이었다. 사랑하는 아들과 남편을 전쟁터에 보낸 사람들의 심리였다.
구정 대공세의 교훈: 구정 대공세의 교훈은 다음과 같다. 첫째, 구정 대공세의 목적은 전투에서의 승리가 아니라 협상 유도용이었다. 이 전투를 통해 남베트남군과 연합군, 그리고 남베트남 국민을 공포에 빠지게 할 수는 있었다. 호찌민 주석과 보응우옌잡 장군은 군사력으로는 전투에 이길 수 없었지만, 적을 협상장으로 나오게 할 수는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군사력이 우수한 남베트남과 미국에서 먼저 ‘전쟁 대신 평화’라는 비명이 터져 나오면 군사력이 열세인 북베트남 측에 절대적으로 유리해지기 때문이다.
둘째, 심리전과 선전전으로 전쟁에 이기려는 시도였다. 북베트남이 구정 대공세에서 패배한 것은 역설적이게도 북베트남에 전쟁의 승리를 안긴 전기가 됐다. 이 전투를 계기로 미국에서는 전쟁을 싫어하는 반전 분위기가 고조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많은 젊은이를 징집해 파병하고 항공모함과 전폭기 등 첨단 무기들을 동원해 폭격하고도 북베트남을 궤멸시키지도 전쟁 의지를 꺾지도 못했다는 비난이 줄을 이었다.셋째, 미국과 서유럽에서 반전운동의 대대적 확산이다. 구정 대공세 뒤 미국에선 베트남 전쟁에 대한 환멸감이 확산하고 반대 운동이 널리 퍼지며 대학가를 중심으로 시위와 병역기피가 만연했다. 미군의 사기도 떨어져 불복종과 탈영이 줄을 이었다.
넷째, 결국, 미국은 구정 대공세가 벌어진 1968년 평화협상에 나섰으며 1969년 베트남 주둔 미군 감축에 나섰다. 1973년 1월 27일 프랑스 파리에서 북베트남, 남베트남 임시정부, 남베트남, 미국 사이에 ‘파리 평화협정’이 조인됐다. 미국의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협정 이틀 뒤인 1월 29일 ‘베트남전 종전 선언’을 했으며 그해 3월 29일까지 모든 미군을 남베트남에서 철수시켰다.
4장 가용수단(Means) : 당신이 숨겨놓은 무기는 무엇인가
판옥선, 임진왜란 시 조선 수군의 승리비결 1592년 일본은 15만이 넘는 대규모의 병력으로 조선을 침략한다. 파죽지세로 진격하던 일본군은 한양을 점령하고 평양까지 진출하지만 전쟁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 그 주된 원인 중 하나는 남해에서 이순신에게 패하여 해상 보급로를 차단당해 전쟁지속 능력을 유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순신은 임진왜란 중 23전 23승을 거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자료들을 확인해 보면 더 많은 크고 작은 해전이 있었다. 확실한 것은 이순신은 이 모든 전투에서 승리했다는 사실이다.
이순신이 모든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많은 사람이 필사즉생의 정신력, 이순신의 탁월한 전략, 거북선, 화포 성능의 우위 등을 꼽는다. 특히 많은 이들이 임진왜란 때 최고로 활약한 것은 거북선으로 알고 있다. 물론 거북선의 역할이 대단했음은 사실이지만 맨 앞에서 돌격선 역할을 하기 위해 소수만 제조되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 역할에 한계가 있었다. 사실 당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게임 체인저는 조선의 주력함인 판옥선이었다. 판옥선은 조선 명종 때 개발된 전투용 함선으로 진을 형성해 함포와 화살로 공격하는 역할을 맡았다. 이순신 장군은 판옥선의 장점을 잘 활용하여 승리할 수 있었다. 일본의 함선과 비교할 때 판옥선은 다음과 같은 장점이 있다.
첫째, 2층 구조로 되어 있어 활동에 제약이 없었다. 보통의 배들은 한 개의 갑판을 가지고 있는 데 비해, 판옥선은 갑판이 이중으로 되어 전투원(2층)과 비전투원(1층)을 구분하여 탑승시켰다. 비전투 원인 노잡이는 위험에 노출되지 않고 안전하게 노를 젓는 데 전념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2층 갑판의 전투원들은 전투에 집중할 수 있었다. 특히, 높은 위치에서 상대방을 내려다보며 전투하는 장점이 있었다. 일본군은 사무라이들이라 칼싸움에 능했다. 그래서 일본 수군의 전투는 배를 붙이고 상대방의 배로 넘어가 칼싸움으로 적을 제압하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일본의 주력선인 세키부네보다 판옥선이 높아 쉽게 올라갈 수 없었다. 반면 조선 수군은 공격 핵심인 화포와 불화살 공격에 유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