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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해 보여서 불안한 당신에게

한창욱 지음 | 레몬북스


불안해 보여서 불안한 당신에게



한창욱 지음

레몬북스 / 2021년 8월 / 300쪽 / 15,000원



프롤로그_ 입고 갈 수도, 벗고 갈 수도 없는 청춘의 불안


“성숙함이란 불확실성을 인내할 수 있는 포용력이다.” 미국의 교육학자 존 핀리의 말이다. 청춘은 불확실한 것들로 이뤄져 있다. 과연 이를 인내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중년이나 노년이라면 몰라도 모든 것이 처음이고, 서투른 청춘에게 요구하는 것은 가혹한 일이다.

그렇다면 청춘은 왜 불안한 것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일부 심리학자는 청춘의 불안을 애착 대상과의 격리에서 오는 ‘분리불안장애’에서 근원을 찾는다. 꼭 어머니나 아버지 같은 특정 인물에 대한 분리불안이라기보다는, 뇌가 성장하면서 친숙했던 세계와의 분리를 겪으며 찾아오는 장애라는 것이다.

신생아로 태어났을 때 인간의 뇌 용량은 350g 정도로 성인의 25%에 불과하다. 2년 동안 뇌는 급성장해 1000g에 달하고, 10세가 되면 95% 정도 수준이 된다. 그 뒤 뇌는 조금씩 성장하다가 사춘기를 지나면서 성인 뇌 무게인 1300g~1500g에 이른다. 20대가 되면 뇌 무게는 더 이상 늘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사용하기에 따라서 좌뇌와 우뇌를 연결하는 신경섬유망 ‘뇌량’은 계속 늘어난다. 30세가 넘어가면 뇌 세포가 하루에 10만 개에서 20만 개씩 죽고, 노인이 되면 뇌의 무게도 80~90% 정도로 줄어든다.

한마디로 인생에서 행복하고 좋았던 기억은 모두 30세 이전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청년들은 그 시기에 따뜻하고 행복했던 모든 기억을 뒤로한 채 새로운 출발을 해야 한다. 정신적·경제적 독립을 해야 하고, 취업을 해야 하고,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아이도 낳아야 한다. 정들었던 둥지에서 나와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데 어찌 불안하지 않겠는가?

게다가 인간의 주된 감정인 두려움, 분노, 기쁨, 고통, 혐오, 놀라움 등으로 인해 인체에서는 도파민, 세로토닌, 아세틸콜린, 가바 등과 같은 신경전달물질이 분비된다. 청춘일 때는 이 또한 일정하지 않아서 기분이 좋을 때는 한없이 좋다가도, 불안에 한번 사로잡히면 좀처럼 헤어날 수 없다.

청춘이 당면한 현실은 또 어떠한가. 그리스 역사가인 헤로도토스의 명언은 요즘 젊은이들의 불안을 한 문장으로 대변한다.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으나 아무런 힘도 없는 것, 이것이 인간들 사이에서 느끼는 가장 쓰라린 고통이다.” 단군 이래 가장 뛰어난 스펙을 지닌 청년들의 좌절감은 바닥없는 우물처럼 암담하기만 하다. 걸음마를 시작할 때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부모의 아낌없는 지원 아래, 마치 경주마처럼 ‘약속된 땅’을 향해 앞만 보며 정신없이 달려왔다. 그러나 과학기술의 발달로 급변하는 현실 속에서 교육을 비롯한 여러 정책이 제대로 부응하지 못하면서 여기저기서 공든 탑이 와르르 무너지고 있는 실정이다. 실험적인 정책을 시도했던 자들은 바뀌고, 결국 그로 인한 피해는 청춘의 몫으로 남았다. 설상가상으로 코로나19까지 기승을 부려서 취업시장은 말 그대로 바늘구멍이 되었고, 청춘의 불안은 한층 심화되었다.

유독 청춘이 불안한 까닭은 소망하는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소망을 감싸고 있는 것은 불안이다. 내가 소망하는 것들이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불안을 불러온다. 미래에 대한 소망이 없는 사람은 불안하지 않다. 별다른 고민 없이 닥치는 대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기만 하면 된다.

청춘은 꿈꾸고 소망한다. 그것은 즉, 소망을 감싸고 있는 무수한 불안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젊은 날, 나 또한 많은 것을 소망했기에 청춘의 불안에 시달려야 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 원하는 일을 하며 살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 좀처럼 해결되지 않는 경제적 불안으로 밤잠을 설쳐야 했다. 또, 자의식은 강한 반면에 대인관계가 미숙하다 보니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술로 불안한 마음을 달래곤 했지만 그때뿐이었다. 불안이 점점 심해지자 대인기피증과 우울증 증세가 나타났다. 마음을 다스릴 방법을 찾다 보니 자연스레 뇌 과학이나 심리학, 대인관계술, 명상 등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생각하는 힘이 붙고, 불안에 대한 이해와 함께 불안을 다스리는 기술이나 노하우가 쌓이고, 뇌의 기능이나 신경전달물질 등에 대해서도 알고 나자 비로소 삶에 여유가 생겼다. 수시로 마음을 쥐락펴락하던 불안으로부터 벗어나자 세상이 달리 보였고, 그토록 홀가분할 수 없었다. 마치 태어날 때부터 씌워져 있던 운명의 굴레를 벗어던진 기분이었다.

청춘은 인생에서 가장 가치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한다. 청춘일 때는 모르고, 지나고 나서야 뒤늦게 그 가치를 깨닫기 때문이다. 찬란한 청춘을 온전히 누리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대다수는 근심과 걱정 속에서 허망하게 흘려보낸다. 나 또한 그러했기에 불안한 청년들을 지켜보고 있으면 몹시 안타깝다.

우리 주변에서 불안에 사로잡힌 청춘을 발견하기란 어렵지 않다.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다가 갑자기 머리를 감싸쥐고 혼잣말을 중얼거리거나, 학원가나 회사 인근 음식점에서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혼자 점심을 먹고, 밤길을 홀로 배회하거나 왁자지껄한 선술집에서 혼술을 하고, 한강변에 쪼그리고 앉아 시꺼먼 강물을 오래도록 바라보고, 화장실에서 수돗물을 틀어놓고 소리 죽여 울기도 하는 청춘들.

내가 만났던 그들은 기대 이상으로 합리적이었으며, 온갖 불안 속에서도 자신의 생에 충실하고자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나는 대화를 나누며 혹은 푸념을 들으며, 그들의 불안을 조금이라도 덜어줄 수 있기를 소망했다. 하지만 조언해주는 일은 조심스러웠다. 나 역시 불안장애에 시달리기는 했지만, 어쨌든 그 시기를 지나 ‘청춘의 숲’을 벗어난 방관자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서재에서 에밀리 E. 디킨슨의 <만약 내가>라는 시를 발견하였다.

만약 내가 어떤 이의 가슴앓이를 멈추게 할 수 있다면,

나 헛되이 사는 것은 아니리.

만약 내가 누군가의 아픔을 어루만져줄 수 있다면,

고통을 잠시 멎게 할 수 있다면,

혹은 지칠 대로 지쳐 있는 울새 한 마리를

둥지로 되돌아가게 할 수 있다면,

나 헛되이 사는 것은 아니리.



청춘의 시절, 미치도록 좋아했던 그녀의 시를 읽으며 비로소 용기를 낼 수 있었다. 만약 누군가 내 글을 읽고, 가슴에 얹혀 있는 크고 작은 불안 중 그 어느 것 하나라도 덜어낼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겠는가.들판에 나가면 지천으로 피어 있는 세 잎 클로버의 꽃말은 ‘행복’이다. 이처럼 행복이란 발에 밟힐 정도로 흔하디흔한 것이다. 그러나 요즘 청춘들에게는 그 흔한 행복조차도 아득하기만 하다. 반면, 눈에 잘 띄지 않는 두 잎 클로버의 꽃말은 ‘이별’과 ‘눈물’이다. 이 땅의 청춘들이여, 삶이 두렵고 힘들더라도 너무 힘겨워하지 말기를. 부정의 부정은 긍정이듯이, 눈물이나 이별이 겹쳐지면 네 잎 클로버가 된다.



Part 1 꽃은 바람에 흔들리며 핀다



마음이 불안할 때는 눈치를 본다


아버지는 백세시대에 무슨 환갑잔치냐고 조용히 넘어가자고 했다. 어머니는 ‘그래도 환갑’이라며 음식점을 예약했다. 친인척들을 불러서 간단한 저녁 식사를 하는 자리였다. 지혜는 고시원에서 공부를 하다가 자식 된 도리를 생각해서 참석을 결정했다. 그러나 그 결정을 후회하기까지 1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아, 이거! 우리 다연이가 대리 승진 기념으로 사 준 거야. 걔가 집에서는 무뚝뚝하고 게을러 터졌는데, 밖에서는 싹싹한 데다 바지런한가 봐. 동기들 중에서도 가장 먼저 승진했잖아!” 큰어머니가 선물 받은 가방을 보여주며 동갑내기 사촌 다연의 자랑을 늘어놓았다. 지혜는 엄마의 표정을 슬쩍 살피고는 재빨리 고개를 떨궜다.

연신 고기를 뒤집고 있는데, 옆자리에 앉은 남동생 지호의 시선이 느껴졌다. “철우는 귀국한 지 석 달밖에 안 됐는데, 다음 주에 또 뉴질랜드로 파견 나가! 사운이 걸린 중요한 공사라서 철우가 꼭 있어야 된다나.” 큰어머니가 포문을 열자, 이에 질세라 외삼촌이 이어받았다. 지혜는 이번에는 아빠를 돌아보았다. 입가에 인자한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바람이라도 불면 금방이라도 꺼져버릴 것만 같았다. 고기를 몇 점 먹지도 않았는데 체한 듯 명치끝이 아파왔다. 지혜는 타이밍을 보다가 화장실에 가는 척 음식점을 나왔다. 그냥 공부나 하는 건데 괜히 참석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시원을 향해 걸어가는 동안 아버지의 어색한 미소가 달그림자처럼 자꾸만 따라붙었다.

심리학에서는 눈치를 ‘셀프 모니터링(Self-Monitoring)’이라고 한다. 눈치가 빠른 사람을 센스 있는 사람, 즉 다른 사람의 기분이나 감정을 파악하는 사회인지 능력이 뛰어난 사람으로 평가한다. ‘사회적인 뇌’가 발달했다고도 할 수 있다. 반면, 사회인지 능력이 부족한 사람은 눈치가 없다. 결핍 수준이면 자폐나 조현병, 알츠하이머병 같은 정신질환에 해당하기도 한다.

『생각의 기원』의 저자이기도 한 세계적인 영장류학자 마이클 토마셀로는 사회적 지능의 생성 시기를 40만 년 전으로 추정했다. 인류가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Homo heidelbergensis)로 분류되는 이시기에 개체수의 급격한 변화가 있었고, 더 이상 혼자 힘으로는 식량을 구하기 어렵다 보니 협력이 필요함에 따라 상대의 의향을 파악하고 나의 행동을 돌아보는, 사회적 지능이 발달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사회적 욕구 중에 ‘인정 욕구’는, 자기 심리학의 창시자인 하인즈코헛이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서 산소만큼이나 필수적’이라고 할 정도로 중요하다. 가족이나 친지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은 당연하다. 그러나 지나치면 독이 되는 법이다. 특히 한국인은 스스로 자신을 평가하기보다 타인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지에 대해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홀로 살아가기보다는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공동체의식과 경쟁의식이 뒤섞인, 이른바 ‘체면 문화’ 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이다.

눈치가 발달하면 상대방의 감정이나 상황에 대한 파악이 빨라서 사회생활을 하는 데 유리하다. 하지만 지나치게 눈치를 볼 경우에는 자신의 본심을 숨기게 돼, 친밀한 관계로 이어지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또, 혹시나 하는 생각에 자기검열을 반복하다 보면 눈치만 살피게 된다. 그러다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을 때는 심리적으로 위축돼서, 누군가 기침만 해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이럴 때일수록 대범하게 생각하고 행동할 필요가 있다.

인생이란 긴 듯 짧고, 짧은 듯 긴 여정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사막을 땀을 뻘뻘 흘리며 걷기도 하고, 꽃밭에 벌렁 드러누워 콧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하고, 숨을 헉헉거리며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휘청거리며 오르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산 정상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세상을 내려다보는 것이 인생이다.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간에 그 또한 내 인생이라는 사실을 명심하자. 내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지나치게 타인의 시선을 의식할 필요는 없다. 현재의 상황에 굴복할 마음이 없다면, 떳떳함이야말로 성공에 대한 의지의 표상이자, 지금도 멋지게 살아가고 있다는 증표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잦은 핑계가 불안한 삶을 흔든다


“오늘은 왜 늦은 거야?”

지혜가 따지듯 묻자 성진이 고개를 푹 숙였다. 마치 오랫동안 굶어서 맥이 빠진 기린을 연상시켰다. “오빠, 무슨 말이라도 해봐!”“그게, 버스 여섯 대가 한꺼번에 몰려오는 바람에… 진짜야!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아서 파업하는 줄 알았다니까!”“말이야, 막걸리야! 버스가 기차야?”

성진이 정말 억울하다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건 그렇다 치고! 새벽에 나오기로 해놓고, 왜 안 나오는 건데? 난 사실 고시원이나 학원 열람실이 더 편해! 오빠 때문에 도서관에 가는 건데, 오빠가 안 오면 어떡해?”“미안! 요즘 밤낮이 바뀌어서 두세 시쯤 자거든. 잠깐 눈 좀 붙이려 했는데…….”

지혜가 말허리를 자르며 물었다.

“오빠, 솔직히 공부하기 싫지?”

“아냐! 내일부터 꼭 나갈게.”

“핑계 도사님, 공부하기 싫으면 하지 마세요. 공부하기 싫다는 사람 억지로 공부하라고 권하고 싶은 마음 없으니까!”성진은 지혜와 헤어져 집으로 가면서 쇼윈도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외면했다. 근래 들어서 자신의 모습이 마음에 든 적도 없었지만 오늘은 정말 최악이었다.

핑계는 나를 방어하기 위한 일종의 거짓말이다. 약속을 지키지 못했거나, 실수를 했거나,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결과 때문에 스스로 실망했거나, 비난받을 위기에 처했을 때 방어 기제가 발동한다. 핑계는 문제를 정면에서 해결할 능력이나 자신감이 부족하다는 고백이기도 하다. 아무리 그럴듯한 핑계를 대더라도 그 이면에 있는 불안이 사라지진 않는다. 불리한 상황에 처한 것에 대한 불안, 현 상황을 무사히 타개할 수 있을지에 대한 불안, 이번에는 넘어간다고 해도 다시 같은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는 불안 등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핑계에는 대개 두 가지가 뒤섞여 있다. 위기 상황을 일단 회피하려고 하는 뇌의 본능과 부정적인 경험이다. 전자는 육체에 직접적인 위해가 되는 원초적인 두려움이 아니라면 이성으로 극복할 수 있다. 그러나 후자는 과거의 부정적인 경험에 의해서 생성된 것이라 뚜렷한 개선 의지가 없으면 극복이 쉽지 않다. 두려워서 피하면 피할수록 불안감은 증폭된다. 원치 않는 결과라고 해서 인정하지 않고, 타인이나 환경 혹은 운수 탓을 하면, 뇌에서 정상적인 피드백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는 발전의 기회를 잃는 일이나 다름없다.

‘하고 싶은 일에는 방법이 보이고, 하기 싫은 일에는 핑계가 보인다’는 필리핀 속담이 있다. 핑계가 잦다면 하기 싫어서 그런 것은 아닌지 진지하게 돌아보아야 한다. 만약 하기 싫어도 계속 해야만 하는 처지라면 그 일의 장점을 찾아보자. 사소한 한 가지 일로 인해서 사람이 달리 보이듯, 비록 부분에 불과할지라도 장점을 보려고 노력하다 보면 전체에 대한 느낌이 달라진다.

해도 안 되는 일이라는 판단이 섰다면 계속 핑계를 대며 상황을 질질 끌고 갈 것이 아니라, 결단을 내릴 필요가 있다. 시작하는 것도 용기지만 포기하는 것도 용기다. 포기는 실패가 아니다. 내 안에 잠재돼 있는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새로운 일을 모색하기 위해 한 발 물러서는 것뿐이다. 핑계는 가뜩이나 불안한 청춘의 삶을 흔들어댄다. 마음이 불안하니 지푸라기라도 붙잡고 싶을 테지만 유혹의 손을 과감히 뿌리쳐야 한다.



Part 2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



고독과 불안은 배다른 형제다


“백 대리, 약속 없으면 나랑 저녁이나 먹자. 나 요즘 가을 타나 봐. 밤늦게 텅 빈 집에 들어서면 도대체 왜 사는 걸까, 라는 생각이 자꾸 들어.”김 차장은 주말부부다. 부인은 중학교 선생님인데 아이와 함께 청주에서 생활하는 중이었다. 대훈이 술을 따르자 김 차장이 잔을 반쯤 비운 뒤 말했다.“백 대리는 젊어서 고독이 뭔지 모를 거야.”

“그렇긴 하죠.”

대훈은 일단 맞장구를 쳐주고 나서 진짜 그런지 자문해봤다. 특별히 고독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지만 고독이 뭔지는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밥 먹고 술 마셨을 뿐인데, 야근한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가을바람이 불어오자 노란 은행잎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대훈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짙은 고독을 느꼈다. 여태 숨기고 살았던 자신의 본래 모습과 마주한 기분이었다. “휴우, 왠지 올 가을은 더 쓸쓸하게 느껴지네.”

최근 한국 임상심리학회가 학회 소속 심리학자 317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대한민국 고독지수’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 고독지수는 100점 만점에 78점으로 나타났다. 한국 사회의 고독감이 증가한 원인으로 개인주의의 심화(62.1%), 사회 계층 간 대립 심화(54.6%), 장기화된 경제 불황(48.3%), 사회적 가치관의 혼란(45.4%), 온라인 중심의 커뮤니케이션 변화(36.3%) 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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