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심한 당신을 위한 멘탈 처방 70
멘탈 닥터 시도 지음 | 리스컴
소심한 당신을 위한 멘탈 처방 70
멘탈 닥터 시도 지음
리스컴 / 2021년 8월 / 312쪽 / 16,000원
정신적으로 지쳐 있다
항상 밝은 표정으로 손해 보는 역할만 한다 누구한테나 밝은 표정을 짓는 사람은 무리해서라도 상대방을 기쁘게 해주고 싶다는 마음이 있다. 그런 마음을 갖는 당신, 무척이나 타인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일 것이다. 하지만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지나친 나머지 자기 마음은 깔아뭉개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런 식의 태도가 계속되다 보면 점점 자기 의견을 말하지 못하게 되고, 주변 사람들에게 늘 휘둘리기만 하는 삶을 살게 된다. 더 나아가, 늘 상대방의 요구에 따라주기만 하다 보면 어느새 그게 당연한 것이 되어 어떤 배려에도 상대방은 점점 기뻐하지 않게 된다. 원래 상대방을 기쁘게 해주고 싶어서 배려했던 것인데 어느새 그런 목적조차 이루어지지 않게 되는 셈이다.
상대방이 기분 나쁘겠다 싶어서 거절하지 못한다거나 ‘No’라고 말하면 상대방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절대 그렇지 않다. 당신에게 뭔가를 부탁한 사람의 말을 들어줄 수 없을 때는 “미안하지만 이런저런 사정이 있어서 못하겠다”라고 솔직하게 자신의 뜻을 전달해보자. 그러면 상대방 역시 이해할 게 분명하다.
방법만 잘 연구한다면 밝은 표정으로 부드럽게 거절하는 것도 전혀 불가능하지 않다. 나의 거절로 잠깐 동안이나마 상대방이 불쾌감을 가질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웬만큼 집요한 성격이 아닌 한 얼마간 시간이 흐른 뒤에는 잊어버린다. 자신의 마음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잘 거절할 줄 아는 사람이 되겠다는 목표를 세워보자. 상대방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는 것도 좋지만, 언제나 손해 보는 역할만 하고 있으면 자아를 지킬 수가 없다.
스스로 한계선을 만들어놓고, 스트레스를 피한다는 생각으로 행동해보자.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므로, 밀려오는 스트레스를 미리 피할 수만 있다면 스트레스로 인한 질병을 예방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이런 상태가 계속되면 좋지 않겠다’는 느낌이 드는 행동은 되도록 줄이는 것이 현명하다.
화나는 일이 있어도 ‘참고, 견디고, 넘기며’ 지낸다 흔히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충고를 할 때 ‘감정적으로 행동하지 말라’는 식의 이야기를 한다. 최근에는 ‘합리적’, ‘생산성’ 같은 단어가 많이 사용되면서, ‘감정적’이라는 단어가 이와 대비되어 왠지 좋지 않은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감정 중에서도 특히 대인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분노의 감정인데,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는 사람을 미숙하고 불완전하게 보기도 한다. 그래서 분노를 억지로 누르고 눌러 자기감정의 뚜껑을 막아버린 사람도 있다. 그렇다면 분노의 감정이란 건 전혀 쓸모없고 무가치한 것일까? 막무가내로 화를 낸다거나 폭언, 폭력으로 이어지는 분노의 감정은 물론 억제해야 하겠지만 쓸모 있는 분노도 있다. 그것은 ‘뭔가에 저항할 필요가 있을 때의 분노’다.동물을 예로 들어보면, 동물들은 신체적인 위험에 몰렸을 때 분노를 표시함으로써 자기 몸을 지키려고 한다. 그렇게 하지 않을 경우 자기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또한, 근래 세계 각지에서 일어나고 있는 대규모 투쟁이나 사회의 변혁을 요구하는 저항운동 같은 것도 분노가 행동기반인 경우가 많다.
이렇게 자신의 의사 표시의 하나로 표출하는 분노는 반드시 억제할 필요는 없다. 분노해야 될 때조차 분노하지 않고 억누르기만 한다면 스트레스가 쌓여 정신건강에 좋지 않을 뿐 아니라 결국 자신에게 불리한 상황을 만드는 결과가 된다.
도저히 양보할 수 없을 때, 어떻게든 상대방을 이해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는 분노를 표시해도 좋다. 다만 무턱대고 다짜고짜 분노를 퍼부을 게 아니라 “그렇게 하면 무척 화가 날 것 같아”라고 내 기분을 먼저 전달하는 것이 좋겠다. 그렇게 하면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상대방으로 하여금 나의 분노를 알아차리게 할 수 있다.
‘읽씹’ 당하면 움츠러든다 요즘 메시지들은 대부분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 알 수 있다. 이메일이나 문자메시지도 대부분 수신 확인이 된다. 예전에는 메시지를 보내도 읽었는지 확인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아 상대방으로부터 답이 없으면 ‘아직 안 읽었나?’라고 생각하기 쉬웠다. 그러나 지금은 읽으면 바로 표시가 뜨기 때문에 메시지를 읽고도 답이 없으면 마음이 불편하다. ‘읽씹’ 당했다고 해도 실제로는 여러 가지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누군가와 열심히 메신저를 주고받는 중이어서 ‘나중에 답해야지’ 하고 마음먹었다가 깜빡 잊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내가 메시지를 보낸 상대방 역시 지금 그런 상황일지도 모른다.
사람은 참 주관적이고 이기적인 존재여서, 자기가 했을 때는 아무렇지 않다가도 똑같은 일을 다른 사람이 하면 거슬리는 경우가 많다. 이것을 정신과 용어로 ‘인지 편향’이라고 한다. 자기가 본 상대방 상황과 상대방이 본 자기 상황이 완전히 똑같음에도 두 가지의 상황을 다르게 받아들이는 것처럼 인지해 차이가 생기는 것을 말한다.
인지 편향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자기 생각이 한쪽으로 치우쳐 있지 않은지 자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눈앞에 펼쳐진 상황에 대해 달리 생각할 수는 없는지 여러 가지 개연성을 상상해보고 왜곡된 생각을 바로잡는 것이다. 예를 들어 상대방이 내 메시지를 읽고도 답이 없다면, 상대방에게 무시당했다거나 상대가 나를 싫어한다고 생각하는 것 외에 다른 가능성은 없는지 생각해본다. 그러면 ‘아 참, 지금 바쁜 시간이구나’라거나 ‘답한다고 해놓고 깜박했을 거야’ 하는 식으로 생각이 정리될 수 있다. 이렇게 생각을 바꿔보면 조금은 마음이 편안해질 것이다. 평소 자신의 인지가 편향되어 있지는 않은지 신경 쓰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습관을 들인다면 상대방의 행동이나 태도 등을 부정적으로 예단하는 버릇이 조금씩 교정될 수 있을 것이다.
마음에 벽이 있다
직장에 불쾌한 사람이 있어서 피곤하다 사람들의 고민거리 중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할 정도로 사회생활에서 사람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가 크다. 그중에서도 감정의 기복이 심한 사람과 함께 일을 하는 것처럼 피곤한 경우도 드물다.
감정의 기복이 심한 사람은 사소한 일 하나에도 기분이 상해 갑자기 차가운 반응을 보이곤 한다. 그 일과 직접적으로 관계가 없는 사람에게 불똥이 튀기도 하고, 개인적인 일로 기분이 상해서 남에게 화풀이하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 휘말리면 대체 어찌 해야 좋을지 알 수 없다.
이렇게 기분 변화가 심한 사람이라면 일기 예보를 보고 대처하듯 조기에 알아차려 대책을 세우는 수밖에 없다. 기분이 쉽게 변하는 사람은 옆에 있으면 의외로 쉽게 그 변화를 감지할 수 있다. ‘지금 이 사람, 기분이 별로구나’ 하고 금방 알아차리게 된다. 하늘에 먹구름이 잔뜩 끼어있을 때 외출을 삼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 사람의 기분이 별로인 것을 알아차렸다면 되도록 가까이 가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또는 좀 더 고차원적인 테크닉이긴 하지만 상대방의 기분이 별로일 때 아예 과감히 거리를 좁혀 바짝 다가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무슨 일 있어?”라고 말을 걸어준다거나, 기분을 풀 수 있도록 약간 거들어준다거나 해서 효과적인 타이밍에 상대방의 기분을 달래주는 것이다. 더 나아가 상대방 역시 자신의 감정을 깨닫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다만, 타이밍이 적절치 않거나 방법이 좋지 않거나 하면 날씨가 더욱더 거칠어지고 벼락이 떨어질 수도 있으니 충분히 주의를 기울인다. 적어도 한 번 정도 말을 걸어봐서 반응이 없다거나 더더욱 기분이 나빠지는 것 같다면 긁어 부스럼을 만들지는 말아야 한다. 기분이 나쁜 것은 그 사람의 문제이므로 그 때문에 휘둘릴 필요는 전혀 없다. 가까이 접근하지만 않으면 된다.
일방적으로 나를 싫어하는 사람, 이유가 뭘까? 누구에게나 잘 맞지 않는 사람이나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 알고는 있어도 막상 누군가가 나를 싫어한다고 생각하면 기분이 나쁘고 그런 상대방의 태도도 신경 쓰인다. 게다가 왜 나를 싫어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다면 더욱 기분이 떨떠름하다.
사람이 누군가를 싫어하는 이유에 대해 한번 생각해보자. 누군가를 싫어하게 되는 것은 대부분 그 사람과 싸웠다거나 그 사람과 문제가 있었다거나 할 때다. 그런 구체적인 원인이 있다면 자신의 태도 여하에 따라 관계 개선 가능성이 있다. 그 일은 없었던 것으로 하겠다고 마음먹으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구체적인 이유가 없어도 싫어지는 수가 있다. 가장 큰 요인은 ‘생리적인 혐오’와 ‘질투’다. 누구나 어떤 사람에 대해 ‘뭐라고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왠지 그 사람이 싫다’는 감정을 가질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생리적 혐오에 해당한다.
생리적으로 서로 안 맞는 것은 대부분 첫인상에서 결정된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방의 또 다른 면을 알게 되면 더 이상 싫지 않을 수 있다. 괜히 ‘그 사람이 나를 싫어할지도 몰라’라는 생각으로 지레 겁먹지 말고 그냥 자연스럽게 대하는 게 좋다.
누군가를 이유 없이 싫어하는 또 한 가지 요인이 바로 질투다. 질투는 상대방이 일방적으로 그런 마음을 품는 것이기 때문에 좀 까다롭다. SNS에서 보이는 안티 역시 질투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다. 이유 없이 당신을 싫어하는 사람은 어쩌면 뭔가 당신에 대해 질투심을 품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질투심은 그 이면에 콤플렉스가 자리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어떤 사람이 당신을 싫어한다면, ‘아, 이 사람이 뭔가 콤플렉스가 있나 보다’라고 생각하는 게 마음 편하다. 안티 글을 보면 알 수 있듯, 질투심은 공격성과 집착으로 이어지기 쉽다. 이런 사람과는 되도록 접촉을 피하고 반응도 보이지 않는 편이 낫다.
‘잘 안 맞는다’고 생각되는 사람이 있다 우리 몸은 참 신비로워서 스스로 위험을 감지해 방어하는 능력이 있다. 알레르기 같은 것이 대표적이다. 몸이 해로운 것이 들어오면 피부에 먼저 반응이 나타나 더 큰 위험을 막는다. 뜨거운 물에 닿으면 순간적으로 손이 움츠러들고, 이상한 것을 입에 넣으면 당장 토해내는 것도 같은 원리다. 자신에게 해로운 것, 맞지 않는 것은 자연스럽게 거부하게 되는 메커니즘으로 만들어져 있는 셈이다.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이 같은 원리가 작용한다. 사람들 중에 유난히 잘 맞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잘 안 맞는 사람이 있다. 이야기가 안 통하고 계속 삐거덕거리는 사람, 주는 것 없이 싫은 사람…. 이런 사람과 억지로 가까이하려다 보면 스트레스가 쌓인다.
이럴 때는 마음이 가는 대로 행동하면 된다. 필요하다면 마음의 셔터를 내려서 상대에게서 느껴지는 스트레스를 최소화하는 게 중요하다. 어쩔 수 없이 계속 마주쳐야 하는 사람이라면 상대방의 싫은 부분이나 눈에 두드러지는 부분을 의식적으로 멀리한다. 그 사람 이야기를 특별히 마음에 담아두지 말고 절반쯤은 에누리해서 듣는 식으로 심리적 거리를 둔다. 당장 얼굴을 안 볼 수는 없더라도 심리적인 거리를 둔다면 마음의 상처를 피할 수 있다. 맞지 않는 상대 앞에서는 마음의 셔터를 내려도 별 문제 될 게 없다.
경우에 따라서는 심리적 거리뿐만 아니라 물리적 거리가 필요할 때도 있다. 나와 너무나 안 맞아서 그 사람과 함께하는 게 커다란 스트레스라면 그런 사람과는 심리적으로나 물리적으로나 거리를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것이 자기 자신을 지키고 스트레스를 없애는 비결이다.
그 사람, 어떻게 좀 안 될까…
화가 나면 감정대로 행동해버린다살다 보면 예상치 못했던 일이 자주 일어난다. 예상치 못했던 게 기쁜 일이라면 좋겠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는 게 어려운 점이다. 갑작스러운 슬픈 소식에 감정이 북받치기도 하고, 인내심 테스트라도 하듯 화를 돋우는 일에 감정이 폭발했다가 나중에 후회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감정적으로 행동하지 않기 위해서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감정 컨트롤을 잘 못 하는 사람에게 ‘감정적으로 행동하지 말라’고 충고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 충고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감정적으로 행동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갑자기 뒤에서 달려들어 놀래키고는 놀라지 말라고 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나는 “감정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어느 정도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다만, 자신이 감정적인 상태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갑자기 언짢은 일이 생겨서 화가 났다. 거기까지는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중요한 것은 그 시점에서 ‘아, 지금 내가 화가 났구나’ 하고 깨닫는 것이다. 실제로 “나는 지금 화가 나 있다. 버럭 화를 내고 있다”라고 소리 내어 말해보는 것도 좋다.
사람의 감정은 뇌의 편도체에서, 관장하는 사고는 전두엽에서 관장하므로, 감정과 사고를 각각 별개의 부위가 담당하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감정의 활동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되도록 빨리 자신의 상태를 객관화해서 뇌 기능을 ‘사고’로 전환해야 한다.
‘아, 지금 내가 짜증이 나 있구나’라는 느낌이 든다면 ‘왜 짜증이 나 있지?’라고 생각해본다. 뭔가 짚이는 일이 있다면 ‘그렇게까지 짜증 낼 필요가 있는 걸까?’ 하고 스스로 질문을 던져본다. 만일 그 원인이 사소한 것이었다면 그렇게까지 짜증을 낼 필요는 없었다는 것을 깨달아 기분이 안정되기도 한다. 짜증을 억누르기는 어렵더라도 그 시점에서 화는 어느 정도 누그러져 있을 것이다. 감정을 사고로 변환하면 원래 있었던 분노의 정도가 완화되기 때문이다. 머릿속으로 끓는 물을 차가운 그릇으로 옮기는 작업을 하는 것이다.
이렇게 완충 작업을 하고 난 다음에는 ‘심호흡을 열 번 한다’거나 ‘천천히 찬물을 마신다’, ‘10초 동안 눈을 감는다’ 등과 같이 미리 정해두었던 행동을 취해본다. 이렇게 하면 감정에 따라 반사적으로 튀어나오는 행동을 막을 수 있다. 감정 컨트롤이 잘 안 되는 사람은 화가 났을 때 이런 과정을 의식적으로 실천해보자.
위한다는 구실로 나를 괴롭힌다 지도한다는 구실로 지나치게 혹독하게 굴거나 일부러 심한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 이런 모습은 직장뿐 아니라 교육 현장에서도 발견된다. 아이 교육을 위해서라면 체벌과 학대 등을 일삼는 것이 비슷하다. 구조적으로 위에 있는 사람이 ‘이게 다 너를 위해서’라고 자기 행위를 정당화하며 부적절한 수단으로 가르치는 것이다.
체벌이나 학대가 용인되지 않는 것처럼, 당사자가 싫어하는데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인격 모독에 가까운 방법으로 아랫사람을 가르치는 것은 정당화하지 못한다. 정확하게 말하면 괴롭힘에 해당한다. 가르친다는 구실로 누군가를 괴롭히는 사람을 가만히 살펴보면 기분이 안 좋을 때 괜한 사람에게 화풀이하는 경우가 많다.
모든 괴롭힘에는 숨은 이유가 있다. 대개 어떤 사람을 자기 아래에 둠으로써 그 사람보다 우위에 서고 싶어 하는 욕구가 숨어 있다. 그런 욕구가 ‘내 말을 따르게 하겠다’, ‘내 뜻대로 조정하겠다’는 식의 강압적인 태도로 나타난다. 겉으로 ‘그냥 말하면 못 알아들으니까’, ‘이렇게 하기는 싫지만 어쩔 수 없어서’라고 하면서 상대에게 책임을 전가하기도 한다.
괴롭히는 당사자는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보지 못할 뿐만 아니라 죄책감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당하는 사람만 괴롭고 스트레스가 크다. 그런 상황을 계속해서 견뎌내야 할 필요는 없다. 단호하게 ‘No’라고 말하고 상대방의 행동을 제지하는 것이 좋다. 하지만 윗사람이어서 막을 수 없다면 회사 내 공식 기구를 찾아 상담해야 한다. 그러면 대개 회사에서는 적절한 부서로 재배치해주기도 한다. 혼자서는 도저히 해결하지 못했던 일이 상담으로 새롭게 해결될 수도 있다.
열심히 하지 않는 사람을 도저히 못 봐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