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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연금술

웨인 다이어 지음 | 비즈니스북스


마음의 연금술

웨인 다이어 지음

비즈니스북스 / 2021년 8월 / 319쪽 / 15,800원



나는 마음의 버릇을 고치기로 했다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


‘깨어난다’는 건 얼마나 멋진 개념인가! 자면서 꿈을 꿀 때 그게 꿈이라는 걸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잠에서 깨어나는 것뿐이다. 깨고 나면 전혀 다른 세상에서, 전혀 다른 경험을 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여기서 이야기하려는 것도 그와 비슷하다. 깨어나는 과정에서 우리는 지금까지 살아왔던 꿈속 세상을 돌아보게 된다.

깨어났다는 걸, 더 높은 차원의 의식이 우리의 인생을 관장하고 있다는 걸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이를 위해 거쳐야 할 몇 가지 단계가 있다. 여기서는 나이, 성별, 직업 등 우리의 겉모습과 관련된 건 그 무엇도 상관이 없다. 중요한 건 상황을 다르게 인지한다는 점이다. 사람들의 약점이 분명하게 보인다.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온 믿음과 규칙이 이제 더는 의미가 없음에도 사람들이 여전히 고수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심지어 자기 안에서도 그런 면을 보게 된다. 더는 적용되지 않는 규칙, 누군가 씌워놓은 규칙을 바탕으로 처신하는 나를 볼 때가 있다. 그때 스스로에게 화를 내지 마라. 좋다거나 나쁘다는 판단을 내리거나 집착하지 마라. 그저 있는 그대로를 바라봐라.

이런 사고방식을 얻으면 내가 옳거나 상대방이 옳거나를 벗어나 극적인 자유로움을 느낀다. 누군가 내 의견에 반대해도 그에 맞서 싸우거나 설득하는 대신 마음속으로 이렇게 생각한다. ‘그래, 저 사람이 지금 있는 곳은 저기야’ 좋고 나쁨은 판단하지 마라. 그저 그대로를 바라봐라. 그러면 모든 생명에 믿기 어려울 정도의 사랑이 생긴다. 깨어남의 과정을 시작할 때는 이런 변화로 거의 압도될 것이다. 살면서 가장 행복했을 때, 아직 어린아이였을 때 느꼈던 사랑과 비슷하게 사람을 사랑하게 된다. 심지어 적이나 경쟁자인 사람도 사랑하게 된다. 세상 사람들 한 명 한 명에게 위대함과 소중함을 느끼고 누구도, 무엇도 다치기를 원하지 않게 된다.

언젠가 해변을 걷다가 한 남성이 소년에게 낚시하는 법을 가르치는 모습을 봤다. 그는 물고기 한 마리를 잡았는데 너무 작았다. 그래서 다시 바다에 놓아주려다가 그만 낚싯줄이 엉켰다. 남자가 낚싯줄을 푸는 동안 물고기는 해변에서 숨을 쉬지 못한 채 몸을 팔딱였다. 하지만 남자는 엉킨 낚싯줄을 푸는 일에 집중하고 있어서 물고기는 완전히 잊은 듯했다. 그는 낚싯줄을 풀면서 아이에게 낚싯줄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었고 나는 그가 이 물고기를 어떻게 할지 궁금해하며 잠시 서서 지켜봤다.

모든 생명이 소중하다는 마음이 있었다면 그는 일단 물고기에 걸린 낚싯바늘을 부드럽게 뺀 뒤 바다로 돌려보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낚싯줄이 엉켰다는 생각에만 빠져 있다가 겨우 물고기가 생각난 듯 말했다. “자, 이 물고기 돌려보내자.” 그렇게 돌려보낼 때까지 그는 물고기를 2분 정도 고통 속에 두었다. 그리고 풀려난 물고기는 금방 다시 해변으로 밀려 올라왔다. 남자는 이번에도 눈치채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그곳으로 가서 그 작은 물고기를 살펴봤다. 물고기가 여전히 살아 있었기에 해변에서 20미터가량 바다로 들어가서 풀어주었다. 마침내 물고기는 필요한 걸 얻었고 바닷속으로 잽싸게 사라졌다.

나에게도 남에게도 얽매이지 않는다


깨어나기 시작하면 이런 행동을 자주 하게 된다. 사람에게든, 물고기에게든 모든 생명에 동정심이 든다. 그렇다고 반드시 채식주의자가 될 필요는 없다. 더 인도적인 방식으로 생산된 고기를 찾으면 된다. 깨어남을 경험하면 개인적인 도덕관이 바뀌며 새로운 기준을 세우기 시작한다.

나는 내가 반드시 옳다는 과거의 기준을 내려놓았다. 다른 사람의 어떤 점이 틀렸는지 지적하고 콧대를 꺾겠다는 마음이 크게 줄어들었다. 이제 나는 하고 싶은 말을 쉽게 참는다. 누군가 때문에 화가 나거나 짜증이 나는 일도 자연히 줄었다.

깨어남으로써 달라지는 또 다른 점은 사람에 대한 집착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특히, 어떤 식으로든 자신을 통제하려 했던 사람에게 더는 집착하지 않게 된다. 새로운 사고방식과 만물에 대한 연민으로 과거에는 분명하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모든 사람이 내 편이어야 한다고 집착하지 않는다. 누군가의 통제를 받아왔다면 더는 그런 관계가 필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관계를 정리한다. 처음에는 마음속으로 관계의 끈을 놓는다. ‘앞으로는 그 사람의 말(행동)에 좌지우지되지 않을 거야’ 처음에는 좀 불편해도 시간이 흐르면 곧 마음속에 평화가 찾아오고 그런 관계를 완전히 떠나게 된다.

깨어남의 가장 큰 핵심은 이제 나를 아무런 꼬리표 없이 바라볼 수 있다는 점이다. 더는 나 자신을 직책이나 결혼 여부 또는 재산 등으로 정의하지 않는다. 나를 특정한 무언가로 정의하지 않는다. 늘 내 뒤에 붙어 다녔던 꼬리표, 예를 들면 ‘나는 대학을 나왔어. 나는 전문직이야. 나는 남편이야. 나는 아버지야. 나는 남자야’가 이젠 없다. 오히려 나라는 존재에 형체가 없음을 깨닫는다.

또한 문제점, 어려움, 장애물도 전과 같은 방식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이제는 그런 것들을 전환의 관점, 즉 한 에너지가 다른 에너지로 바뀌는 것으로 본다. 예를 들면 이런 식으로 생각한다. ‘이 문제는 곧 흩어져 사라질 거야. 항상 그렇듯 말이야. 내가 감당할 수 있다면 이걸 통해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 확인할 기회야.’

예전에 여행 중에 호텔 방 열쇠를 잃어버렸던 적이 있었다. 그런 일이 생기면 몹시 짜증이 나던 시절도 있었지만 이젠 그런 일이 생기면 시험에 들었다고 여긴다. 그런 일은 곧 해결되리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열쇠를 찾지 못하더라도 다른 열쇠를 얼마든지 받을 수 있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20초도 채 지나지 않아 열쇠를 찾았다. 열쇠는 그냥 나타났다. 간단한 예지만 이렇게 생각하기를 연습할수록 실제로 문제가 금방 사라진다는 걸 알게 된다.

사소한 것에 연연하지 않는다


깨어나면 전에는 의미를 느끼고 동기를 부여하던 행동과 일도 더는 중요하지 않다. 지금까지 살면서 정말로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일을 떠올려보자. 나는 괜찮은 집단에 속해 있는가? 친구들이 나를 좋아하는가? 나는 어울리는 옷차림을 하고 있는가? 지금 내가 적절한 모임에 나가는 건가? 한때는 매우 중요했던 일들이 더는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일을 대체할 새로운 즐거움을 찾게 된다. 혼자서 아니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시를 읽거나 산책하는 등 소소하고 단순한 일들 말이다.

더는 자신이 보통 사람이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 어떤 행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 이제는 아무래도 괜찮다. 매주 금요일과 토요일 저녁마다 데이트하지 않아도 된다. 배우자에게 집착하지 않아도 괜찮다. 아무것도 얻지 않아도 괜찮다. 수많은 사람의 시간과 에너지를 잡아먹고 있는 일들을 나도 해야 한다며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오해하지 않기를 바란다. 멋진 옷을 입고 즐거운 모임에 나가는 게 잘못되었다는 말이 아니다. 지금 그렇게 지내고 있고 즐기고 있다면 멋지고 좋은 일이다. 부디 신나는 시간을 보내기를 바란다. 다만 깨어나기 시작하면(이 순간은 몇 살에든,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 많은 일이 점점 덜 중요해진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게 된다. “아니에요. 그 일은 하지 않을 것 같아요. 전 이걸 읽고 싶어요.” “새로운 계획을 진행 중인데 제게는 정말 중요한 글쓰기를 하고 싶어요.” “지금 그림을 그리는 중인데 꼭 끝맺고 싶어요.” “네다섯 명이 모여 중독에 관한 의식을 높이는 새로운 모임을 시작하려 해요.” 아무런 영감도 주지 않았던 일들은 단호히 거부하고 새로운 열정을 주는 대상과 함께하게 된다.

인생의 우선순위가 달라진다. 예전에 손에 넣으려고 몹시 애썼던 일이나 활동, 물건, 장소 등에서 철저히 멀어지기 시작한다. 한때 정말 중요했던 모든 것이 사라진다. 그러고 나면 ‘내면의 신호’라 일컫는 것이 나타난다. 무엇이 옳고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항상 자신의 기준을 따르게 된다. 이제는 길을 찾기 위해 다른 사람이나 외부 요인을 바라보지 않는다.

나도 살면서 이런 일들을 경험했다. 극적인 변화였다. 내게 가장 중요한 건 아이들과의 시간이다. 아이들과 함께할 수 없거나 함께하지 않겠다고 결정할 때면 혼자 있는 의미를 찾는다. 점점 그런 순간에 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그냥 생각에 잠기면 정말 완벽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금요일 밤에는 으레 영화를 보러 갔다가 외식을 해야 한다는 생각도 하지 않는다. 오랫동안 내 인생의 일부였던 많은 일에 더는 마음이 끌리지 않는다. 하지만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그 또한 필요한 시간이었다. 그 모든 시간을 거친 덕분에 여기에 오는 방법을 알 수 있었다.

깨어남을 경험하면 인간관계가 달라진다. 어떤 관계는 더 깊어지기도 하지만 관계의 수는 크게 달라지기 시작한다. 이제는 항상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일이 참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친구 서너 명만을 만나거나 한두 명과만 교류하기도 한다. 나 자신과의 관계를 단단히 하는 것이 더 중요해지고 나를 더 위대하고 완벽한 그 무엇의 일부를 바라본다. 그런 변화를 이루려면 보통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언제나 사람들로 둘러싸여 있는 시간이 아니라 오롯이 혼자 있는 시간이 지극히 중요하다.

남에게 의존하는 관계가 싫어지고, 내 인생이 나아갈 길과 관련해 어떤 결정이라도 하려는 사람은 누구든 참기 힘들어진다. 이것이 깨어난 뒤 경험하는 가장 두드러지고 극적인 변화다. 이제 누구도 더는 내게 이래라저래라 간섭하지 않는다. 누구도 내가 어때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집에서나 직장에서나 마찬가지다. 나 자신이 주변과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인물이란 걸 알기에 그렇게 한다. 만일 누군가가 나를 통제하려 하면 우선 사랑으로 대응한다. 그래도 효과가 없으면 그 사람은 그대로 두고 그냥 넘어간다.

나답게 살기 위한 세 가지를 기억할 것



자유롭고 싶다면 의심을 지워라


세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만들어진다. 그런데 그 생각에 의심이 들어 있으면 우리는 의심에 따라 행동한다. 의심 외에 다른 것을 따르지 못한다. 안타깝게도 부모나 학교, 사회가 우리에게 가르쳐준 내용에는 대부분 의심이 들어 있다. 이 점을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 무슨 일이든 할 수 없다고 생각하거나 아니면 해낼 수 있을지 아주 조금의 의심이라도 들면 우리는 그 의심에 따라 행동한다. 랄프 왈도 에머슨이 말했던 것처럼 ‘모든 행동의 전신은 생각이다.’ 따라서 의심을 떠올리면 이에 따라 행동하게 된다. 결국 의심 때문에 인식을 높이거나 만들고 싶은 걸 만들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의심을 지우는 게 중요하다.

일은 생각하는 대로 펼쳐지기 때문에 마음속으로 어떤 일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행동하게 된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싫어하는 부분이나 잘못된 부분을 보며 이 관계가 왜 부정적으로 흐르는지 의문이라면 시선을 돌려야 한다. 어떤 점이 좋은지, 어떤 점이 멋진지 생각한 뒤 관계가 펼쳐지는 모습을 확인하라.

의심을 지우려면 마주하는 모든 사람과 사물 속에서 드러나지 않은 신성한 모습을 보라. 그것이 전부다.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어렵다면 스스로 이렇게 말해보라. ‘굳이 이해할 필요는 없어. 사람들에 관한 내 판단이야말로 정말 의심스럽다고 생각하기만 하면 돼.’ 의심을 지우면 우리를 다른 방향으로 이끄는 에너지를 쉽게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가야 할 길에서 우리를 밀어내려는 그 무엇도 우리에게 영향을 미칠 수 없음을 알게 된다. ‘이 사람이 왜 저러는 거지?’, ‘내 인생에 이 약물이 왜 또 나타난 거야?’, ‘여기서 왜 이런 유혹이 생겼지?’라는 생각 대신 시험에 들었다는 걸 안다. 그래서 사랑으로 대응하기로 마음먹고 그렇게 행동해서 새로운 인식을 얻는다.

무엇을 해야 할지 항상 알고 내용을 이해하며 ‘그래, 남들이 알려준 의심보다 내가 새로 알게 된 바에 따라 행동할 거야’라고 되뇌는 일은 때로 힘이 든다. 신체적인 모든 건 유한하지만 신체를 넘어서는 건 전부 무한하다. 앎은 무한하기 때문에 우리에게 전해진 것이다. 지금 다른 몸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앎은 영원하기 때문에 여전히 우리 안에 존재한다. 의심을 지우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은 믿음을 앎으로 바꾸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높은 자아에 대해’ 아는 것이 아니라 ‘높은 자아를’ 알고 있다. 우리는 높은 자아와 직접 관계를 맺고 항상 함께할 수 있다.

신은 공기처럼 보이지 않는 존재다. 우리는 신을 만지거나 볼 수 없지만 어디서나 경이로운 신의 작품과 의도를 엿볼 수 있기에 신이 존재한다는 걸 안다. 우리는 신이 그곳에 있다는 걸 안다. 이 앎과 믿음을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믿음은 앎이다. 다른 사람이 우리에게 알려준 게 아니라 숭배하거나 행하라고 말한 것도 아니다. 따라서 ‘내겐 증거가 필요해’가 아니라 믿음을 갖기로 마음을 바꾸면 우리는 신뢰 단계를 벗어나 앎의 단계로 이동한다. 믿음은 내면에서 내리는 결정이라는 점을 반드시 이해해야 한다. 우리의 결정이 앎이 될 때 신성한 지성의 형태로 만물에 흐르는 성스러운 에너지를 느낄 수 있다. 그러고 나면 믿음은 항상 우리 안에 존재하는 에너지가 된다.

마음의 관찰자가 되는 법


시인 칼릴 지브란의 이 말을 나는 참 좋아한다. “사실 삶을 사는 건 삶이다. 당신이 삶을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당신은 그저 삶의 관찰자일 뿐이다.” 관찰자는 육체의 세계에 있지 않지만 우리의 몸을 관찰한다. 관찰자가 되려면 자기 안에서 빠져나와 내 삶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제3자의 시각으로 봐야 한다. 정신적 인식을 높이고 이를 통해 성취감, 목적, 자유로 가득한 인생을 만들고 싶다면 아무리 힘들어도 반드시 자신과 결과를 분리해야 한다. 스스로 삶에서 발생하는 모든 일을 관찰하는 사람으로 여겨라. 내 안의 마음과 모든 생각에 주의를 기울여라. 오늘 일어나는 일과 과거에 있었던 일에 전부 주목한다.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관심을 기울인다. 이 모든 과정에서 감정에 흔들리지 않는 관찰자의 관점으로 바라본다.

두 가지 세계, 내면과 외부 세계를 알아차리고 나서 스스로 물어보라. 보이는 일 뒤에서 보고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하루에 여러 번 이 질문을 던지다 보면 자신은 정해진 대로 행동하고 인생을 사는 몸과 마음보다 훨씬 더 큰 존재임을 알게 된다. 보이는 일 뒤에서 관찰하고 있는 진정한 자신의 존재를 깨달으며 새로운 차원의 평화와 창의성을 얻는다. 내 인생을 바라보는 존재를 눈치채기 시작하면 나는 지금 겪고 있는 문제보다 훨씬 더 큰 존재임을 알게 된다. 나는 나를 방해하는 존재가 아니다. 고통스러운 건 단지 몸일 뿐이다. 나라는 존재는 고통받을 수 없다. 위대한 사상가들은 인생이 무엇인지 확인하려 하는 대신 인생을 바라보는 방법을 배우고자 한다. 의심을 지우고 관찰자가 될 때 믿거나 말거나 더없는 기쁨이 존재하는 곳, 높은 인식이 존재하는 곳에 설 수 있다.

내면의 소음을 끄고 마음을 비우기


인식을 높이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패턴을 따라야 한다. 먼저 의심을 지우는 법을 배운다. 의심이 사라지기 시작하면 관찰자의 시선이 생긴다. 의심이 깨끗이 사라졌을 때만 관찰자가 될 수 있다. 그리고 관찰자가 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침묵을 지키는 것임을 알게 된다. 내면의 대화를 차단하면서 침묵을 지키는 법을 배워야 한다.

자신의 생각을 그저 관찰하고 비판하지 마라. 관찰자가 되는 법을 배우고 나면 이 일이 훨씬 쉬워진다. 아무것도 우리에게 접근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조용하고 텅 빈, 보이지 않는 그 장소에 다다르면 ‘호랑이를 가둔 창살 사이의 공간’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음악을 만드는 음표 사이의 침묵이다. 우리에게는 침묵이 필요하다. 가능한 한 침묵의 시간을 많이 가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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