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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라클 클럽

미치 호로위츠 지음 | 라이스메이커


미라클 클럽

미치 호로위츠 지음

라이스메이커 / 2021년 4월 / 344쪽 / 16,800원



기적은 누구에게나 일어난다


비틀즈는 왜 인도로 떠났을까?:
전설적인 그룹 비틀즈가 1968년 인도로 떠났다. 세계적인 스타였던 그들의 인도행은 많은 사람들의 관심으로 이어졌다. 인도 북부 리시케시에서 그들은 요가와 명상을 하면서 지친 심신을 달랬다. 돈과 명예, 그 모든 것을 가졌던 그들이 무슨 연유로 인도라는 곳으로 발길을 돌렸는지 개인적인 속내는 알 수 없다. 다만 그들은 창작이라는 고된 정신적 노동에 반복적으로 자신을 소비하는 일에 지쳐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전 세계적인 아티스트들의 고뇌가 그러하듯, 그들 역시 정신적 허기나 허망함에 괴로웠으리라.

이쯤에서 우리는 의문이 든다. 간절히 내가 원하고 바라던 것을 이루고 나면 동화 속의 행복한 결말처럼 정말 ‘그들은 행복하게 잘 살았다’로 끝나는 것일까? 나 역시 그 이후의 삶은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런 면에서 비틀즈의 대성공 이면의 정신적 공백에 우리는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이는 보통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많은 것들을 이야기해주고 있다. 세속적 성공 외에도 중요한 것은 정신적 건강을 지키는 일이며 이는 곧 내면의 평화와 행복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세계적인 스타 비틀즈, 천재적 아티스트라는 수식어에 가려진 존 레논, 폴 매카트니, 조지 해리슨, 링고스타 개인의 삶을 스스로 면밀히 살피고 돌보며 성공 앞에서 자신을 지키는 일도 그들에겐 간절했을 것이다.

간혹 사회적으로 성공을 거두었을 때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것들이 자신을 급습해오기도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갑작스럽게 부자가 되거나 큰 인기를 얻는 스타들이 겪는 이 어려움을 우리는 많이 지켜봤지만, 우리의 삶도 이들과 다를 바가 없다. 외부의 많은 조건들이 개인의 인생을 침범하고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 누군가에 의해 생을 잠식당하기도 한다.

“세상은 하나의 무대며, 인간은 배우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모두 맡은 배역에 맞게 살아가고 싸우고 투쟁한다. 생의 마지막 장에는 결국 망각만 남을 뿐이다.” -셰익스피어

지난 150년 동안 우리는 많은 변화를 겪었다. 다양한 정치 이데올로기가 흥망성쇠하고, 의학이 발달하고, 과학 기술의 발전을 이루는 등 혁신적인 변화가 사회 곳곳에서 일어났지만, 그럼에도 인간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기본 감각은 위의 셰익스피어의 표현과 전혀 달라진 것이 없다. 가끔은 크고 작은 삶의 변화를 경험하고, 신으로부터 통찰을 얻기도 하고, 간절히 바라는 목적을 이루기도 한다. 때론 사랑하는 사람을 잃거나, 배신을 당하고 좌절하는 등 비극을 겪기도 한다. 하지만 인생 전체를 놓고 보면, 태어나서 크고 작은 일들에 도전하고 실패하거나 성공하면서 삶을 배우거나 혹은 절망한다. 그렇게 길고도 짧은 생을 마감하면서 우리는 익숙한 삶의 ‘패턴’을 갖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패턴을 벗어나지 않는다.

이러한 정형화된 삶의 틀에 도전장을 던진 현대 사상이 있다. 이 사상은 인간은 ‘배우에 지나지 않는’ 존재가 아니라 자신의 인생을 결정하고 재구성할 수 있는 능동적인 존재라고 말한다. 그리고 사회, 기술, 과학의 발전은 변화를 간절히 바라는 인간의 염원이 재능과 능력의 성장을 이끌어내고, 이것이 그 분야에 발현되어 일어난 혁신적인 변화라고 말한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생각에서 만물이 나온다’는 것이다.

19세기 중반 미국 뉴잉글랜드의 정신치유와 초월주의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는 이 사상은 ‘신사상’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신사상은 많은 결점이 있지만, 또 희망만을 맹목적으로 쫓는 ‘도그마’라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나는 이 책을 통해 신사상의 본질은 여전히 강력한 힘을 가지며 여러분들이 직접 경험해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할 것이다.

다시 비틀즈로 돌아가보자. 그들은 인도에 와서 그간 소진되었던 창작 에너지를 채우고 난 후 다시 음악 활동에 매진한다. 실제로 비틀즈의 대표곡들은 그들의 인도행 이후에 쏟아졌다. 문명과는 동떨어진 곳, 그래서 나를 충분히 돌아볼 수 있는 곳. 비틀즈의 여행 이후로 인도는 그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정신적 안식을 줄 수 있는 곳으로 각인되기 시작했다. 그저 세상이 시키는 배우로 살아가던 나에게서 벗어나 스스로 생각하고 깨우칠 수 있는 가르침을 줄 수 있는 곳으로 말이다. 신사상을 좇을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수행지로 그렇게 인도는 매력적인 공간이 되었다.

부를 욕망하라


부는 부를 부른다:
나의 아버지는 매우 가난한 사람들을 변호하는 뉴욕시의 비영리 법률구조단체에 소속된 변호사였다. 그런데 어느 날 아버지는 어떻게 손써볼 수도 없는 이유로 직장과 변호사 자격을 잃었고, 그 후로 우리 가족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정부가 빈곤층에서 제공하는 식품 구매권을 받아서 끼니를 해결하고, 집세를 내지 못해 언제 쫓겨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석유 난로 하나에 의지하며 살았다. 우리 집에는 크리스마스도 없었고 생일 선물 같은 것도 없었다. 누나와 나는 어린 시절부터 별의별 일을 하며 생활비를 벌었다. 아버지는 어느 날 빚을 갚기 위해 한밤중에 어머니의 결혼 반지를 훔쳤다. 결국 부모님은 이혼했고 누나와 나는 학교가 끝나면 아르바이트를 하러 다녔고 학자금 대출도 받았다.

유대인 변호사의 아들은 으레 부유하고 성장했을 것이라는 생각은 그때나 지금이나 틀렸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의 이러한 편견이 나를 진짜 부유하게 만들었다. 나는 백만장자가 되었다. 내가 종종 언론에 얼굴을 비칠 만큼 잘나가는 사람이나 뛰어난 사업가가 되어서가 아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 나의 본업은 그다지 돈이 되는 일은 아니다. 나의 아내는 미혼모 가정에서 자랐으며 지금은 방송국의 프로듀서로 일한다. 우리 부부는 뉴욕 맨해튼에서 아이 둘을 키우며 산다. 우리에겐 돈을 잘 버는 친척도 없다. 그런데 어떻게 내가 이런 삶을 살 수 있게 되었을까? 그것은 바로 부가 어느 정도를 넘어서는 순간 ‘부가 부를 부른다’는 법칙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헬렌 윌맨스의 삶을 들여다보도록 하자. 윌맨스는 여성 참정권을 주장하고 신사상을 믿었던 사람이다. 오랫동안 캘리포니아 북부에서 농장을 하며 찢어지게 가난한 삶을 살다가 1890년대 후반 작은 출판 왕국을 건설하는 데 성공한다. 1899년, 윌맨스는 그녀가 쓴 책 『나는 어떻게 가난에서 벗어났는가』에서 이렇게 말한다. “어떤 생각을 하면서 살면 부를 창조할 수 있다고요? 네, 그렇습니다. 우리는 자신이 품고 있는 생각의 특성을 활용해서 실제로 부를 창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생각만으로는 안 됩니다. 용기를 가지고 행동으로 옮겨야 합니다.”

그녀의 마지막 말은 반드시 기억하자. 그녀가 걸어온 인생은 신사상에서 말하는 해방을 비유적으로 보여준다. 1880년대 초, 윌맨스는 시카고에서 신문 기자가 되어 시대를 앞장서는 여성 기자가 되었다. 그 전에까지만 해도 모든 것이 인생의 걸림돌이었다. 직장에서는 해고됐고, 남편과 이혼하고, 두 딸을 혼자 키워야 했으며, 하숙집에서는 쫓겨나기 일보직전이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노동자를 위한 신문을 펴내고 싶다는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시카고의 한 신문사에 기자로 입사한 윌맨스는 1882년 어느 날 편집자에게 자신의 꿈을 이야기하고 혹시 자신의 꿈에 투자할 생각이 있는지 물었다. 편집자는 그녀의 요청을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그녀는 사무실에서 뛰쳐나와 시카고의 어둑어둑한 거리를 정처 없이 걸으며 생각했다. ‘나는 정말 혼자구나. 기댈 사람이 하나도 없구나.’ 하지만 자신이 속으로 한 이 말을 듣는 순간, 오히려 자신감이 가득 차올랐다. 꼭 누군가에게 기댈 필요는 없다는 생각은 곧, 내 정신이 지닌 힘에만 기대면 된다는 사실을 불현듯 일깨워준 것이다. 바로 신사상의 교리인 자기신뢰의 힘을 알아차린 것이다. “나는 학교의 굴레를 이제 막 벗어던진 아이처럼 가벼운 걸음으로 얼어붙은 거리를 걸어갔다. 나의 지난날들은 나에게서 완전히 분리되었다. 천국으로 가 자유로운 영혼이 된 기분이었다.”

윌맨스와 마찬가지로 나 역시 지금까지 부자가 되고 싶다거나, 값비싼 물건 속에 둘러싸여 살고 싶다는 꿈은 꿔본 적이 없다. 내가 믿는 것은 노동조합과 적당한 소득 재분배 정책이다. 돈을 펑펑 쓰기보다는 절약을 미덕으로 여긴다. 하지만 넉넉한 삶을 사는 데 더할 수 없이 중요한 사실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 이것은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르건대, 우리는 모두 신이다


유한한 존재, 인간의 슬픔:
초월주의 사상가 랄프 왈도 에머슨은 미국이 배출한 어떤 사상가보다 완전한 철학적 조예를 갖춘 선지자로 꼽힌다. 에머슨은 개인이 힘을 갖추는 데 필요한 요소로 두 가지를 꼽았다. 하나는 ‘훈련’이다. 그가 말하는 훈련이란 단련, 연습, 배움을 의미하며, 무술가가 수련을 멈추는 법이 없는 것처럼 하나의 기술을 계속 반복하여 익히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집중’이다. 집중이란 목표를 향한 훈련에서 나오는 에너지에 온 정신을 기울이는 것이다. 비행기 조종사가 어떤 환경에서도 안전하게 비행할 수 있는 것은 온 정신을 집중한 착륙 연습을 되풀이한 덕분이고, 댄서의 몸이 리듬에 맞춰 자연스럽게 반응하는 것도 심혈을 기울인 반복 연습이 있었기 때문이다.

에머슨에 따르면 훈련과 집중이 자연스럽게 순환하게 하려면 기본적인 전제 조건을 먼저 갖추어야 한다. 바로 신체적으로 건강해야 한다는 점이다. 에머슨이 말하는 ‘건강’이란 장애가 없는 몸이 아니라, 내 마음과 의지를 쉽게 꺾어버리는 만성적인 질환에 방해받지 않는 상태를 의미한다. 이 건강이란 관점은 오늘날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현대인들 대부분은 크고 작은 만성 질환들을 가지고 있고, 이로 인해 원하는 목표에 도달하기 전에 주저앉을 때가 많다. 고혈압, 당뇨와 같은 대사 질환은 물론 비염 천식과 같은 호흡기 질환, 스트레스로 인한 불면증과 드물게는 폭력과 학대와 같은 충격으로 오는 트라우마 등 정신 질환도 우리를 매 순간 괴롭힌다.

이렇게 건강 상태가 좋지 않은 사람은 건강을 바로잡는 데 전념하느라 거의 모든 에너지를 소진해버릴 확률이 높다. 그래서 예수가 병자들을 고쳐준 치유사역부터 19세기 중반 뉴잉글랜드의 정신치유 운동까지, 자아실현과 영적 수련을 추구하는 길들은 항상 건강을 되찾는 것을 중시한다. 바라건대 부디 건강을 유지하기를 바란다. 그렇다면 ‘긍정적인 마음’은 과연 몸의 병을 치료하는 데 도움이 되는가? 우리에게 희망은 있을까? 나의 대답은 ‘그렇다’이다. 일단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가 플라시보 효과에 대해 거의 기적이라고 할 만큼 새로운 발견을 해냈다.

◎ 2002년 7월 <뉴잉글랜드의학저널>에는 플라시보 수술, 즉 가짜 수술의 효과를 보고하는 연구가 실렸다. 휴스턴 재향군인병원에서 무릎관절염 환자들에게 전혀 건강에 해를 미치지 않을 정도로 살짝 절개만 해 흔적만 남기는 가짜 관절염 수술을 해주었는데, 실제로 일반 외과 수술을 받은 환자들과 비교했을 때 이들의 무릎 통증은 현저히 나아졌음을 밝혔다. 연구진들은 가짜 수술로 관절염이 개선된 원인으로 플라시보 효과를 들었다.

◎ 2007년 하버드대학 심리학 교수 엘렌 랭어는 호텔 청소부들에게 그들의 일상적인 업무 활동이 유산소 운동을 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을 교육했더니 청소부들의 체중과 혈압이 감소했다고 보고했다. 실제로 피실험자들의 일하는 습관이나 개인적인 삶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음에도 4주도 안 되어 체중이 줄어드는 현상이 나타났다. 반면 대조군에서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기적의 설계


인생에 꼭 한 번은, 당신의 미라클:
기적은 사람의 힘으로 했다고는 어떻게 설명할 수 없는, 그 자체로 강력한 에너지를 가진 일이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사람이 살아났다든가, 끔찍한 사고 현장에서 살아남았을 때 우리는 보통 이를 ‘기적’이라 부른다. 그만큼 기적은 일어나기도 어렵고, 또 그것을 경험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 만큼 강한 에너지를 지닌다.

보통 사람인 우리가 갈망하는 삶의 기적은 무엇일까? 사실 우리가 원하는 삶의 기적이란 아주 단순하다. 가슴 속에 품고 있었던 것을 이루는 것. 바로 그것이 우리가 믿는 기적일 것이다. 누구나 크든 작든 무언가를 꿈꾼다. 간절함에 경중은 있겠지만, 바라던 대로 되고 싶은 마음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같은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뜻한 바대로 살지 못하고 일생을 마친다.

평범하지만 소중한 가정을 꾸리고 싶었던 꿈, 원하던 학교를 가고 싶은 꿈, 관심 있는 분야에 종사하며 평범한 일상을 유지하고 싶은 꿈. 누구나 이런 꿈을 꾸지만 녹록치 않은 세상살이에 열정은 퇴색되고 그저 그렇게, 다른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적당히 자신과 타협하며 생을 살아간다. 기적이란 그저, 선택된 몇몇의 사람들에게만 주어진 특권이라 생각하며 나의 삶과는 더욱 멀어져간다. 이제는 어떤 꿈을 꾸었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먼지가 앉은 채 내팽개쳐져 있다. 당신도 그러한 삶을 살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이제 내가 바라던 것, 내가 꿈꾸던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시간이다.

나는 성인이 되고 거의 25년 동안 영적인 문화를 연구하며 내 삶에서 의미를 찾아왔다. 이러한 시간을 보내며 나는 대단히 강력한 하나의 힘이 존재하고, 이 힘을 개인적인 완성, 의미, 목적의식을 추구하는 데 이용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우리는 좋은 방향이든 나쁜 방향이든 항상 이 힘을 이용하고 있고, 반대로 이 힘에 우리가 이용되는 경우도 많다. 이 힘은 매우 강하게 작용해서 때로는 인생의 먹구름을 걷히게도 하고, 반대로 새로운 먹구름을 드리워서 우리의 앞길을 가로막기도 한다. 기적을 경험한 사람들은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된다. 기적이 가진 강력한 에너지가 그들의 삶을 완전히 바꿔놓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웬만해서는 이전의 삶으로 되돌아가지 않는다.

미국이 베트남전에서 실패한 이유:
단 하나의 간절한 바람에 집중하고 행동하는 힘의 법칙은 개인의 삶뿐만 아니라 국가와 문명 차원에서도 영향을 미친다. 우리는 미국과 베트남의 전쟁에서 그 생생한 사례를 볼 수 있다.

편집자로 일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1990년대 중반, 나는 해리 섬머스 대령과 함께 일할 기회가 있었다. 그는 베트남전쟁에 참전하여 무공훈장을 받은 장교이며 그가 쓴 책 『전략에 관하여』는 미국이 베트남에서 패한 이유를 가장 훌륭하게 분석했다고 평을 받았다. 직설적이고 박식한 섬머스 대령은 미국이 북베트남을 상대로 대부분의 교전 지역에서 우세를 유지하고 있었으며, 수시로 폭격을 가해 적군을 위축시키고 영토를 점령해나고 있어 사실상 전쟁에서 완전히 승리할 수도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군사적 관점에서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섬머스 대령은 미국의 정치인들과 대중이 전쟁에 대한 ‘도덕적 합의’를 구축하지 못했던 것이 결정적 요인이라고 주장했다. 린든 존슨 대통령은 한 번도 의회에 공식적인 선전 포고를 요청하지 않았고 당시 의원들도 선전포고를 단순한 형식상 절차로 보는 시각이 많았다. 선전 포고는 전쟁의 정당성을 입증하고 전쟁에 수반되는 이해관계와 희생을 가늠하는 절차로서 의미가 있었다. 하지만. 베트남전은 공식적인 선전 포고도 없었고 전쟁의 명분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정치적 과정도 생략된 채 진행되었기 때문에 미국 국민들을 제대로 설득하지 못했다. 국민적 합의를 얻지 못한 의회는 전쟁에 필요한 막대한 인력과 물자를 동원하지 못했다. 그 결과 베트남에서는 무의미한 대학살이 자행되었으며, 미국 시민 사회는 도덕적 혼란에 빠졌고 반전 여론이 일어났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자 미국 내에서 정치적 지지는 무너졌고 지휘관들의 전쟁의지는 꺾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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