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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과 수다와 속삭임

고유라 지음 | 아이템하우스


그림과 수다와 속삭임

고유라 지음

아이템하우스 / 2021년 4월 / 384쪽 / 17,500원



아름답다는 것 - 폴 세잔 / 사과와 오렌지


하얀 식탁보 위에 빨간 사과가 탐스럽게 가득 차 있다. 절대적 구도로 완성한 색과 면의 배치가 견고한 아름다움으로 빛난다.

현대미술의 아버지로 불리는 폴 세잔은 자연을 원기둥, 구, 원뿔로 완벽하게 표현하고 싶었다. 통나무는 원기둥으로, 사과와 오렌지는 구로 인식해 지각의 진실을 구현해내고자 한 세잔의 욕망은 절대적 미의 기준을 확립해 현대미술의 심미적 경험을 바꾸어 놓았다. 세잔은 “자연은 표면보다 내부에 있다”고 말하고 사물을 정확하게 묘사하기 위해 사과가 썩을 때까지 그렸다는 일화로 유명하다.

소파 위에 놓인 흰색 식탁보는 과일 표면 특유의 생생한 광택이 더욱 도드라지게 빛나는 역할을 해주고 있다. 오로지 인간의 두 눈으로 관찰한 것만을 생생하게, 직접적으로 표현해내고자 하는 세잔의 욕망은 추상에 가까운 기하학적 형태와 견고한 색채의 결합이라는 새로운 경지를 낳았다.

별 하나의 나그네 - 빈센트 반 고흐 / 자화상


생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예술가의 무언의 절규! 그림을 가득 채운 환한 색채 속에는 운명에 지지 않으려는 고독한 예술가의 결연한 눈빛이 읽힌다.

고흐가 자신의 귀를 스스로 자른 후 붕대로 싸맨 채 처음으로 붓을 잡고 그린 자화상! 창으로 들어오는 환한 햇살을 받으며 외로운 한 사내가 서 있다. 연둣빛 멱, 초록색 코트, 파란색 모자는 하나같이 선명한 원색으로 칠해져 있다. 굵은 붓터치로 그려진 사내의 얼굴은 왠지 불안한 고뇌가 서렸다.

고흐는 ‘그림에 중독된’ 화가였다. 10년이 채 안 되는 작가생활 동안 2천 점의 그림을 그린 미친 화력! 자화상에는 몸이 낫는 대로 다시 붓을 들겠다는 화가의 집요한 결기가 느껴진다. 그러나 화가의 뒤편의 빈 캔버스에는 무언가 그리다 만 형체가 뭉개져 있다. 그림에 대한 그의 광적인 집착은 살고 싶다는, 생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는 무언의 절규가 아니었을까. 나는 숙명과의 싸움에서 결국 패배하고 만, 이 위대하고도 불행한 화가의 소리 없는 절규를 듣는다.

소요하는 사람의 작은 평화 - 헤르만 헤세 / 무차노의 전망


푸른빛 호수를 중심으로 푸른 하늘, 초록빛 산, 노랑 집들이 언덕과 어우러진다. 그림 같은 풍경을 보며 걸을 수 있다는 것을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아름다운 풍광은 과일처럼 맛있고 꽃처럼 화사해 바라만 보아도 행복한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헤세가 행복했던 순간은 몬타뇰라의 정겹고 고즈넉한 풍경들을 그림으로 담았던 시간과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마을을 정처 없이 걸었던 산책길에서였다. 헤세는 루가노 호수가 보이는 이 마을을 “포도 넝쿨과 밤나무 숲으로 뒤덮인 잠자는 듯한 마을”이라고 극찬했다. 언덕을 따라 옹기종기 모여 사는 낡은 마을은 개 짖는 소리마저 들리지 않는 고요와 평화의 공간이었다.

무차노 마을에서 그림 같은 자연 풍경을 보며 산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일까? 봄이면 사람 키보다 낮은 언덕을 휘적휘적 걸으며 들꽃과 벗하고, 여름밤에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별똥별을 바라보며 한적한 거리를 쏘다니고, 가을에는 낙엽을 밟으며 인생을 생각하고, 겨울이면 하얀 눈밭에 파묻혀 아무 일없이 고요히 파묻힐 수 있다면…… 행복은 소요하는 자만이 느낄 수 있는 작은 평화의 순간이 아닐까.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 - 얀 베르메르 /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


짙은 어둠속에서 낯선 터번을 두른 한 소녀가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고개만 살짝 돌려 관람자를 응시하고 있다. 진주귀고리의 앳된 소녀의 눈빛은 세상을 향한 순수한 열망으로 가득 차 있다.

독특한 네덜란드풍의 이국적 정서가 물씬 배어나, 동명의 역사소설과 영화로도 이미 전 세계인을 매혹시킨 한 소녀의 당돌한 시선. 베르메르는 자신이 선호하는 노랑과 파랑을 사용해 전에 없었던 맑고 투명한 진주 빛깔을 창조해낸다. 마치 빛의 알갱이가 진주의 표면에 그대로 묻어날 듯한 질감을 통해 어두운 배경에서 환하게 빛나는 소녀의 얼굴이 보는 이로 하여금 신비한 매력을 빠지게 한다.

소녀의 살짝 벌어진 입술과 관람자를 응시하는 초롱한 눈빛은 비밀로 가득한 생의 한복판을 이제 막 디디려는 서툰 의지의 표상처럼 반짝인다. 이 작품은 특정한 인물을 모델로 삼은 초상화가 아닌, 17세기 네덜란드에서 주로 그려진 트로니(고유의상을 입은 특정 유형을 대표하는 사람을 그린 가슴 높이의 초상화)이다.

바다는 오늘도 안녕하십니까 - 구스타브 쿠르베 / 폭풍우 후의 에트르타 절벽


깎아지른 에트르타 절벽 밑으로 잠시 숨을 고르는 소요하는 파도가 일렁인다. 하얀 모래사장에 매어둔 두 척의 조각배와 하늘 높이 글썽이는 구름이 자못 위태롭다. 삶은 늘 고요 속의 격정을 숨겨 놓았다는 듯 쿠르베의 화폭은 불안하기만 하다.

사실주의의 선구자인 쿠르베가 그린 ‘에트르타 절벽’ 연작은 대기의 흐름과 폭풍우가 몰아치는 하늘을 주의 깊게 그려낸 인상주의로 나아가는 길을 확실하게 보여준 예지적 연작화의 뛰어난 수작이다. 1865년에 쿠르베는 에트르타와 도빌 등 프랑스의 휴양지 절벽들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림 속 에트르타 절벽에는 불안한 적막감이 흐르고 있다. 격렬한 폭풍우가 잦아든 해변이지만 언제 또 몰아칠지 모르는 자연의 변화에 화폭 안의 풍경들은 알 수 없는 불안감에 휩싸여 있다.

쿠르베는 에트르타를 7번이나 그리며 대사에 부딪혀 반사된 광선과 색채를 시시각각으로 사실적으로 그려내 자연의 느낌마저 담아내는 놀라운 표현력을 발휘하였다. 쿠르베의 에트르타 절벽의 다양한 모습들을 화폭에 담았다.

대지에 씨를 뿌리는 마음으로 - 장 프랑수아 밀레 / 씨 뿌리는 사람


대지에 생명을 잉태하듯 씨 뿌리는 농부의 손놀림이 당당하다. 농부의 역동적인 움직임에는 고단한 노동의 수고는 저만치 사라져버렸다. 보잘것없는 농부도 밭에선 대지와 투쟁하는 눈부신 영웅이 된다.

밀레는 농민생활에서 취재한 일련의 농촌 소재를 특유의 시적 정감과 우수에 찬 분위기의 표현으로 그려 농촌생활을 묵직하게 전하는 바르비종파의 대표 화가가 되었다. 이 작품의 씨를 뿌리는 농부의 역동적인 자세와 노동의 고단함에서 오는 삶의 신산함이 묘하게 어울린 대표적인 농촌풍속화이다. 밀레는 생명의 원천인 대지와 인간의 관계를 흥미롭게 드러내며, 그만의 종교적인 신성함마저 부여하고 있다. 대지의 생명을 잉태키 위해 힘차게 씨를 뿌리는 농부의 역동적인 모습에서 움트는 대지의 생명력이 물씬 배어나온다.

봄은 속삭인다 - 피에르 오귀스트 콧 / 사랑의 봄


사랑하는 순간은 봄이다. 봄은 서툴고 풋내 나는 아름다운 속삭임이다.



그네에 기댄 사랑하는 두 남녀의 주위로 환한 아지랑이 같은 봄이 빛난다. 오귀스트 콧의 화폭은 언제나 동화 같은 사랑으로 넘실댄다. 봄이면 대지엔 초록생명이 물씬 돋아나고, 들녘에 화사한 꽃들이 피어난다. 아마도 봄의 색감을 말하라면 옅은 초록과 연한 연분홍이 어우러진 풋내 나는 서투른 연인들의 색이 아닐까. 그렇게 첫사랑은 서툴고 풋내 나고 달큰한 흥분으로 긴장을 놓지 못하는 날들의 연속이다. 바로 그림 속 두 연인의 뿌옇고 화사한 서툰 몸짓처럼.

<사랑의 봄>에는 그의 전매특허 같은 어린 연인들의 사랑으로 가득 차 있다. 어린 연인들을 감싸고 있는 주변은 인적 드문 숲이어서 마치 몰래 저지르는 어설픈 밀회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이루어질 수 없는 풋내기 사랑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서툴고 여린 감정이 그림을 한층 아름답게 빛내고 있다. 당시에도 이 그림은 사람들에게 아름다움의 상징 같은 그림이었는지 파리 살롱에서 크게 주목했고, 지금도 서양인들이 여전히 사랑하는 ‘귀여운 연인들’의 표본 같은 그림이다. 화가는 몰라도 서양인들은 이 그림을 자신의 마스코트 그림으로 많이 애용한다고 한다.

새벽은 생명으로 깨어난다 - 샤를 프랑수아 도비니 / 우아즈의 새벽


새벽 강에 붉은 태양이 떠오를 때면 강변 주위에 자연이 깨어나기 시작한다. 이슬을 머금은 풀잎은 한층 빛나고 강물은 간밤의 뒤척이던 물살을 가만히 흘려보낸다. 새벽 정적을 깨고 강변 저쪽에서 벌써 소 모는 목동의 모습이 어른거린다.

도비니가 자주 그렸던 바르비종의 우아즈 강변은 새벽부터 밤까지 시시각각으로 변화무쌍한 자연의 빛을 발하곤 했다. 도비니는 자연주의 화풍을 대표하는 화가로, 자신이 관찰한 우아즈 강의 풍경을 실시간으로 세밀하게 관찰해 화폭에 담았다.

우아즈 강변의 새벽하늘이 떠오르려는 태양으로 붉게 달아오르기 시작한다. 강물은 하늘의 빛을 담아 그림자를 드리우며 깨어나고, 새벽의 강변 주위에서는 작은 움직임들이 부산스럽다. 물소리가 좀 더 커졌고, 숲에서는 단잠에서 깨어난 생명들이 뒤척이는 소리가 들려올 것만 같다. 1857년 가을, 도비니는 ‘보틴’이라 이름 붙인 배를 타고 밤을 새우며 기다려 우아즈의 새벽을 그렸다.

예술가의 시선은 시대를 꿰뚫어본다 - 디에고 벨라스케스 / 시녀들

예술가가 바라보는 세상은 그저 ‘보기’가 아니라 ‘꿰뚫어보기’이다. 시시각각 변하는 빛의 뉘앙스를 받은 어린 공주의 당당함이 주변을 압도한다. 예술가가 통찰력을 빛내면 한 장의 그림은 역사를 보여준다.

<시녀들>은 바로크 회화의 대표적 걸작이자 스페인 황금기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이 그림은 총 3가지의 시선으로 그려져 있다. 화가가 바라보는 시선, 하얀 드레스를 입은 공주의 시선, 관람자의 시선이 그것이다.

어린 공주는 왕과 왕비를 위문하러 왔지만 왕과 왕비는 공주 뒤에 있는 거울에만 반사돼 나타나고 있다. 작품의 핵심은 공주와 시녀들의 살아있는 표정에 있다. 공주의 양 옆에는 공주에게 물을 주고 있는 시녀와 공주에게 예를 갖추는 귀족 출신의 시녀가 있다. 그 옆에 공주를 즐겁게 해주기 위해 난쟁이 광대가 있고, 문을 열고 나가는 궁정 집사도 보인다.

이 작품은 스페인 궁정의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한 바로크 시대를 압도하는 당대 최고의 걸작이다. 벨라스케스 특유의 사실주의적 접근 방식을 통해 중세 궁정의 화려한 일상이 생생하게 재현되고 있다.

이토록 아름다운 꽃들을 보라 - 클로드 모네 / 아이리스가 있는 모네의 정원


정원엔 온통 진보라와 분홍, 빨간 꽃들이 멀미가 날 정도로 붉게 타고 있다. 꽃잎과 풀잎들은 빗방울을 매달고 햇살을 빛내며 행복한 비명을 지르는 듯하다. 정원의 즐거움이 나에게로 와 웃음을 터뜨리지 않을 수 없었다.

모네는 1890년에 지베르니에 있는 집을 사서 화실을 만들었고, 1893년에는 집 주위의 땅을 사들여 정원을 조성했다. 모네의 정원은 근처 엡트 강의 지류에서 물을 끌어들여 연못에는 수련을 심고 아치형의 다리를 놓았다. 모네의 정원에는 사계절 철을 달리하는 꽃들이 끊임없이 자연의 경이로운 순간을 연출해낸다. 양귀비, 수국, 장미, 붓꽃, 아이리스가 철따라 서로 다른 꽃대궐을 이루는 모네의 정원에는 예술가의 궁극적인 목표인 아름다움이 시시각각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혹시라도 모네의 정원에 들를 일이 있다면 가급적 투명한 가을비가 내리는 가을 해질녘이 제격이다. 그때쯤 비가 그치고 반짝 해가 떠오르면, 꽃잎과 풀잎들은 빗방울을 머금고 이슬 같은 보석을 잠깐 보여줄 지도 모른다. 이처럼 아름다운 화실에서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모네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화가였을지도 모른다.

사랑, 그 절실한 아이러니 - 구스타프 클림트 / 키스


자주색 꽃들과 노란 줄기 위에서 사랑하는 연인들이 깊은 입맞춤을 한다. 누구에게나 사랑은 뜻밖의 기쁨이고 낯선 슬픔이며 익숙한 외로움이다. 직사각형과 원형의 어울리지 않는 두 존재가 부딪쳐 아름다운 파열음을 내는 것, 사랑이다.

<키스>! 클림트를 전 세계인에게 각인시킨 표현주의 걸작이자 그를 당대 화단에서 추방시킨 문제작. 이 작품만큼 많은 논란과 화제의 중심에 섰던 작품도 서양미술에서 그리 흔치 않을 것이다. 지금은 그림뿐만 아니라 다양한 디자인으로 묘사돼 청춘남녀의 사랑을 받고 있는 작품이다.

그림은 서로 상반되는 이질적인 이미지가 충돌해 그로테스크한 아름다움을 연출한다. 여자의 드레스엔 원형의 생물 문양이 새겨져 있고, 남자의 옷에는 강인한 직사각형 장식이 박혀 있어 서로가 강렬한 대조를 이룬다. 클림트식 사랑의 방정식은 흉측하게 굽은 여자의 발가락과 일그러진 손, 남자의 갈색 피부가 어우러져 오싹한 진실을 전한다.

사랑은 지독하게 싸우면서 아름답게 순응하는 인간만의 외로운 여정이기라도 하듯 관람자들을 끊임없이 자극하는 장식과 관능의 메타포가 클림트의 원시 표현주의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클림트의 작품 <누다 베리타스> 상단의 비문에 적힌 “너의 행동과 예술 작품으로 모든 사람에게 즐거움을 줄 수 없다면 소수의 사람을 만족시켜라”는 그의 언명이 많은 것을 깨닫게 한다.

아름다움의 한가운데 - 빈센트 반 고흐 / 양귀비꽃


끝내는 아무 것도 남겨 놓지 말고 가자. 마지막이 아름다운 사람은 순간에도 늘 최선을 다한 사람이었다.

마지막을 향해 치닫는다는 것은 모든 것을 다해 소진해버린다는 의미일까. 적어도 고흐에게 있어서 마지막 순간은 그림을 향한 자신의 모든 것을 소진한 아낌없는 시간이었고, 그 가혹한 열매는 <양귀비꽃>으로 아름답게 산화했다.

1890년 5월, 고흐는 1년 동안 머물렀던 생레미의 요양원을 떠나 평화로운 전원의 마을 오베르에 도착했다. 고흐는 6월 16일에서 17일 사이에 자신의 치료를 돌보던 의사 가세의집에서 이 그림을 그렸다. 고흐는 당시 자신의 심리적 상태를 그리기라도 하듯 양귀비꽃이 가득한 진한 붉은색의 강렬한 느낌을 섬세하게 표현했다. 그렇게 밝고 환한 색채를 사용한 것은 자신만의 고유한 그림세계를 개척한 영혼의 화가 고흐의 상징적 표시였다.

그림은 강렬한 에너지가 넘치고 있으며 최고의 전성기에 있었던 고흐의 내면에 흐르는 감정과 섬세함이 그림 속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 자신을 사로잡고 있는 자연의 놀라운 순간과 분위기를 포착하기 위하여, 놀랄 만큼 빠른 속도로 격렬하게 그려나갔던 고흐의 미친 붓놀림, 스스로도 최선을 다한 작품이었기에 고흐는 동생 테오에게 ‘이 정물화 그림이 나의 작품 중에서 가장 잘 팔릴 거라고’ 편지를 썼다. 그의 유언 같은 예감은 들어맞아 그의 작품 중 가장 잘 팔린 그림 중 하나가 되었다.

그대 눈동자 푸른 하늘가 - 클로드 모네 / 파라솔을 든 여인


구름 낀 파란 하늘에 바람이 불어 여인의 치맛자락이 나부낀다. 희미하게 흐려지는 바람 속으로 여인의 얼굴이 매만지든 스쳐가는……. 아, 스치는 바람결에 어디로든 사라지고 싶은 날이다.

이 작품은 모네의 부인 카미유 동시외와 아들 장의 모습을 묘사한 그림이다. 구름이 끼었지만 청명한 하늘은 빛을 가리기 위해 파라솔을 든 여인의 실루엣과 함께 신선하고도 상쾌한 기분을 전한다. 모네의 부인 카미유는 그림 모델이었고 두 사람은 결혼 전에 사랑하여 아들 장을 낳았다. 그러나 모네의 아버지는 두 사람의 결혼을 반대했다.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어렵게 결혼했다. 청명한 가을 하늘 아래 바람처럼 흩날리는 듯한 카미유가 금방이라도 모네의 곁을 떠날 사람처럼 위태로워 보인다. 대기 속으로 사라져버릴 환영처럼 그녀는 모네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

내가 너의 눈물이 되어 - 에드바르 뭉크 / 입맞춤


“그녀의 젖은 뺨이 내 뺨에 닿았다. 나의 입술이 그녀의 입술 사이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나무와 우리를 둘러싼 대기와 지상의 모든 것들이 사라졌다. 예전에 한 번도 알지 못했던 세계를 보았다.” - ‘뭉크의 노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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