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문학 속 한마디 말의 힘 말꺼리
이선종 지음 | 아이템하우스
고전 문학 속 한마디 말의 힘 말꺼리
이선종 지음
아이템하우스 / 2021년 6월 / 312쪽 / 15,000원
르네상스의 탄생 : 고전주의
근대 문학의 지평을 연 시인, 단테 알리기에리 “아주 작은 불꽃이 커다란 불길로 타오를 수 있다.” ‘르네상스’라는 새로운 문을 연 단테가 한 말이다. 그는 중세의 암흑을 깨고 근대의 여명을 밝힌 선구자였다. 단테는 르네상스의 발상지이며 중세문화의 중심지였던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귀족 가문의 아들로 태어났다. 비록 가문의 가세는 기울었지만, 그의 아버지는 단테의 교육만은 소홀히 하지 않았다. 단테는 학구열이 높았으며, 책임감 있고 자신에게 엄격한 청년으로 성장했다. 단테는 다섯 살에 어머니를 여의고 의붓어머니의 손에 자랐는데, 그래서인지 그는 모성애를 제대로 알지 못한 채 동경의 마음만을 키웠다.
단테의 생애에 큰 영향을 준 베아트리체는 그가 아홉 살이 되던 해에 만났다. 어느 날, 아버지를 따라 파티에 참석한 소년 단테는 그곳에서 베아트리체를 처음 만나고, 첫눈에 반해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베아트리체는 단테의 작품 활동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 여인이다. 그의 걸작 『신곡』에서 베아트리체는 천국의 안내자이자 구원의 여인으로 나온다. 스물네 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요절한 베아트리체는 단테의 영원한 연인이었으며, 그의 삶의 의미이자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었다.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해낸다. 나에게 저력이 있다. 나에게는 오직 전진뿐이다. 이런 신념을 지니는 습관이 당신의 목표를 달성시킨다. 너의 길을 걸어라. 사람들이 무어라 떠들든 내버려 두어라.” - 단테 알리기에리
단테는 『신곡』을 집필하기 전에 피렌체 공화국의 정치에 뛰어들었다. 당시 피렌체는 집권 세력인 겔프당이 흑당과 백당으로 갈라져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 단테는 백당의 당원이었는데, 교황을 지지하던 흑당은 막강한 힘이 있었던 반면에 교황의 정치적 야심을 반대하던 백당은 피렌체 시민의 지지를 받았다. 그런데 단테가 로마에 사신으로 파견되어 머무는 동안 피렌체의 상황이 급변했다. 정권을 차지한 흑당이 백당의 당원을 모두 추방하기 시작했다. 물론 단테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에게는 영구추방과 체포될 경우 사형에 처한다는 조치가 취해졌다.
“한 번만 실패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실패할 때마다 일어서는 것을 목표로 하라.” - 단테 알리기에리
이때부터 단테의 방랑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는 피렌체를 벗어나 이탈리아 전역을 다니며 망명 생활을 하다가 자신을 지지하는 영주의 도움으로 라벤나에 정착한다. 그리고 자신의 삶과 신앙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이 작품이 바로 『신곡』이다. 『신곡』은 단테가 죽기 1년 전에 완성되었다. 그는 시민의 애도 속에서 성 프란체스코 교회에 안치되었다. 그 후 뒤늦게 단테의 위대성을 깨달은 피렌체에서는 그를 추방한 것을 후회하고, 그의 작품을 모든 이들이 널리 읽도록 하였다. 종교(신) 중심의 사회였던 중세시대에서 인간(휴머니즘) 중심의 근대 사회가 시작되었음을 알린 『신곡』은 종교뿐만 아니라 정치, 문학, 철학 등 여러 분야에 큰 영향을 미쳤다. 서양 문학에서는 단테를 셰익스피어와 나란히 견주기도 한다. 괴테를 비롯한 많은 작가가 단테의 『신곡』을 인류의 걸작으로 손꼽으면서 그의 작품에서 예술적 영감을 얻기도 했다.
구원에 이르는 과정을 다룬 서사시 『신곡』: 『신곡』은 단테가 지옥과 연옥, 그리고 천국을 여행하다가 마침내 구원에 이른다는 내용의 작품이다. 단테가 평소 존경하던 고대 로마의 시인 베르길리우스를 만나 지옥의 문 앞으로 향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단테는 지옥에서 사흘, 연옥에서 사흘을 보낸 후 베르길리우스와 헤어진다. 그리고 그의 앞에 첫사랑 베아트리체가 나타나 단테와 함께 사흘간의 천국 순례를 떠난다. 그는 순례에서 여러 교황과 왕들, 학자와 예술가 등을 만나고, 그 과정에서 삶과 죽음, 죄와 벌의 의미를 알게 된다. 그러면서 인간으로서의 기쁨과 위안을 찾는다. 그리고 순례가 끝나는 마지막 날, 단테는 하나님의 사랑에 눈을 뜨면서 이야기는 끝이 난다.
『신곡』은 <지옥편>, <연옥편>, <천국편> 전체 3부로 이루어졌으며, 각 편은 33개의 노래로 구성되었다. 서곡까지 포함하면 모두 100개의 노래로 구성된 서사시이다. 여기서 ‘3’은 삼위일체를 뜻하고, ‘100’은 완전수를 의미한다.
『신곡』 중에서 <지옥편>: 서른다섯 살의 단테는 인생의 절반을 살아왔지만, 여전히 삶속에서 혼란을 느끼고 있었다. 이런 그의 앞에 표범과 사자, 그리고 늑대가 나타났는데, 세 짐승은 각각 음란과 오만, 탐욕을 상징한다. 단테는 고대 로마 시대의 시인 베르길리우스와 함께 순례에 나선다.
“여기로 들어오는 모든 이는 희망을 버려라.” 단테와 베르길리우스가 지옥에 도착했을 때 ‘지옥문’에 적힌 글귀이다. 지옥은 모두 아홉 개의 층으로 나누어졌는데, 죄의 위중에 따라 벌을 받았고, 깊이 들어갈수록 형벌은 가혹하였다. 그곳에는 신앙심이 없는 자, 이단자, 자살한 자, 탐욕스러운 자, 아부하는 자, 위선과 절도를 일삼는 자 등이 형벌을 받고 있었다.
첫 번째 층에는 기독교 전파 이전에 태어난 사람들이 있었는데, 호메로스, 오비디우스, 소크라테스 등 고대의 위인들도 있었다. 그들은 기독교의 세례를 받지 못한 불운으로 여기에 온 것이었다. 실질적인 고통은 두 번째 층부터 시작되는데, 한 층씩 갈 때마다 더욱 끔찍한 고통을 받는 자들이 등장했다. 애욕에 빠진 자들은 영원히 불안에 떠는 벌을 받고, 탐식의 죄를 저지른 자는 자기 배설물 위에 앉아 있는 벌을 받기도 했다. 단테는 지옥의 여러 참상을 목격하면서 지옥 중에서도 가장 깊은 곳인 아홉째 층에 이르고, 갈수록 더 큰 울음과 고통의 비명들이 울려 퍼졌다. 그중에서 두 사람이 서로 엉켜있는데 위에 있는 사람이 울부짖으며 아래에 있는 사람의 목덜미를 잔혹하게 물어뜯는 장면이 나온다. 단테는 이 장면을 매우 생동감 있게 표현했다.
“나는 게라르네스카의 우골리노 백작이었소. 지금 나에게 이렇게 물어뜯기고 있는 자는 우발디니의 루지에르 대주교지요. 내가 왜 이놈에게 이런 짓을 하고 있는지 말하리다. 이놈의 사악한 술수에 넘어가 내가 권력투쟁에서 패배하게 되자 이놈은 나와 나의 아들들을 탑 속의 가옥에 가둬버렸지요. 그 끔찍한 감옥에도 희미한 빛이 새어 들어오더이다. 눈에 비친 자식들의 얼굴과 내 모습이 똑같다고 생각하니 너무나도 마음이 아파 나도 모르게 내 손을 깨물었지요. 그러자 자식들은 내가 배고파서 그러는 줄 알고, ‘아버지, 저희를 잡수시면 그만큼 저희의 고통도 줄어들 거예요. 아버지께서 저희에게 육신을 입혀 주셨으니 이제는 벗겨 주세요’라고 말하더구려.
그러나 세상의 어느 아비가 그런 부탁들 들어줄 수 있겠소? 나흘이 지나자 첫째 아들이 죽고, 이후에 나머지 세 아들도 차례로 눈을 감았지요. 그리고 얼마 후엔 나 역시 오랫동안 먹지 못해 장님이 되고 말았소. 아이들이 죽고 나서 이틀 동안 그들의 이름을 불러대며 대성통곡을 하였는데, 슬픔보다도 허기가 더 견딜 수 없더이다. 그러다가 나는 결국 굶주림에 못 이겨 자식들의 시신을 먹는 끔찍한 죄를 저지르고야 말았소. 고통에도 지지 않던 나는 결국 배고픔에 굴복하고 말았던 거요.”
자신의 이야기를 끝낸 우골리노는 다시 루지에르의 머리통을 미친 듯이 물어뜯으며 큰 소리로 울부짖었다. 단테는 지옥의 끔찍한 참상에 눈을 뜰 수 없었다.
“우린 더 높은 계단까지 올라가야 한다. 그놈들에게서 벗어났다고 다 끝난 것이 아니다. 알아들었으면 용기를 내라.” 베르길리우스가 단테에게 용기를 심어주기 위해 한 말이다. 그는 단테와 함께하는 여정에서 안내자의 역할에 충실했다. 베르길리우스의 조언에 용기를 낸 단테는 곧 의연함을 되찾았고, 두 사람은 지옥을 벗어날 수 있었다.
『신곡』 중에서 <연옥편>: 지옥에서 사흘을 보낸 단테와 베르길리우스는 연옥에 도착했다. 이곳은 천국에 들어갈 기회가 있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죄를 씻어내는 ‘정죄의 산’이다. 그들은 천국에 가겠다는 의지로 정진하고 있었다.
“이 산은 다른 산과 다르다. 아래에서 시작할 때 가장 힘들고, 위로 오를수록 더 쉬워진다.” - 베르길리우스
연옥은 모두 7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층은 인간의 일곱 가지 죄악, 즉 오만, 시기, 분노, 태만, 인색과 낭비, 탐식, 애욕을 의미한다. 그런데 산을 오를수록 일곱 가지 죄악은 하나씩 사라진다. 이것은 죄의 형벌이 경감되는 것으로, 점점 천국이 가까워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단테와 베르길리우스가 첫 번째 언덕을 올랐을 때 어깨에 무거운 바위를 짊어지고 오르는 한 무리의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들은 속죄의 영혼들로, 저마다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느릿느릿 걸으면서 주기도문(예수가 제자들에게 가르쳐 준 기도)을 읊어댔다.
그들은 생전에 주일에만 교회에 나가면서 스스로 그리스도인이라 자처하고, 자신의 재능이나 권력 등을 무기로 다른 사람들을 무시했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것이 바로 인생이라는 사실을 몰랐다. 베르길리우스는 그들의 영혼이 천국에 오르기를 기도한 후 단테를 다음 연옥으로 안내했다.
“지성과 기술로 여기까지 데려왔으나 이제부터는 ‘그대의 기쁨’이 안내자가 될 것이다.” - 베르길리우스
계속해서 연옥의 언덕을 오르던 단테는 점점 빛이 환해지며 몸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이때 단테의 앞에 새하얀 너울을 쓰고, 올리브 잎 왕관을 쓴 여인이 나타났다. 바로 베아트리체였다. 베아트리체는 자애로우면서도 엄숙한 목소리로 단테에게 말했다. 그런데 천국으로 들어가기 전, 베르길리우스가 작별을 고한다. 그는 세례를 받지 않아 천국에 들어갈 수 없었다. 베르길리우스가 말한 ‘그대의 기쁨’은 바로 단테의 영원한 사랑인 베아트리체였다. 베아트리체는 베르길리우스를 대신해 단테를 천국으로 인도했다.
『신곡』 중에서 <천국편>: 천국은 열 겹의 하늘로 이루어졌는데, 지옥과 연옥처럼 각각의 선에 따라 행복을 누리고 있었다. 단테는 베아트리체와 함께 첫 번째 하늘인 월광천부터 아홉 번째 하늘인 원동천을 거쳐 하나님이 머무는 정화천까지의 여정을 떠난다.
“당신은 지금 당신의 잘못된 상상력으로 자기 자신을 가두려 하고 있어요. 스스로 자신의 눈을 가리고 있는 꼴이에요. 지금 이곳은 지상의 피렌체가 아니라 당신의 원래 고향이었던 천국이에요. 그리고 지금 들려오는 저 소리와 강렬한 빛은 당신의 본향으로의 귀향을 반기는 하늘의 은총입니다.” 베아트리체가 천국에 들어선 단테를 진정시키기 위해 한 말이다. 그녀는 단테를 안내하는 동안에 그가 궁금해 하는 것과 구원의 신비로움을 설명해줬다. 단테는 천국을 순례하면서 여러 성인과 가족, 친척들을 만났다. 어느덧 단테와 베아트리체는 단테가 바라던 하나님이 계시는 정화천에 올랐다.
그런데 갑자기 베아트리체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고, 그녀 대신에 한 노인이 단테를 바라보고 있었다. 노인의 손짓에 하늘을 바라보자 하나님의 빛에 둘러싸인 베아트리체가 있었다. 그녀의 권능과 신비에 단테는 압도되었고, 그녀는 밝고 환한 사랑의 미소를 보내왔다. 그리고 조용히 영원한 빛 속으로 사라졌다.
노인은 성 베르나르였다. 그는 베아트리체를 대신하여 성모 마리아에게 단테가 하나님을 볼 수 있도록 해달라고 청하였다. 단테의 소망은 하나님을 완전하게 인식하는 것이었다. 그때 성 베르나르가 높이 쳐다보라고 말한다. 단테가 시선을 들자 하나님의 빛이 가득했고, 자신이 하나님의 빛 속에 들어와 있음을 깨닫는다. 마침내 단테는 하나님의 사랑에 눈을 뜨게 된다. 그는 천국의 마지막 하늘까지 경험한 후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인간 이성의 해방 : 계몽주의
최초의 사회과학자, 샤를 드 몽테스키외 “쓸모없는 법은 필요한 법을 무력하게 만든다” 18세기 프랑스 계몽주의 시대에 저명한 법률가이자 사상가인 몽테스키외가 한 말이다. 그는 자유주의 사상에 입각한 ‘삼권 분립(입법권, 사법권, 행정권)’을 주장하며 권력의 독재를 견제하였다. 이런 몽테스키외의 사상은 이후 프랑스 혁명의 사상적 토대가 되었으며, 인권 선언과 미국 헌법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몽테스키외는 1689년, 프랑스 보르도 근처에 있는 라 브레드에서 하급 귀족 가문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네 남매 중 맏아들이었는데, 그가 일곱 살 때 어머니를 여의었다. 몽테스키외는 열한 살 때 학교에 입학해 지리, 과학, 수학, 역사 등을 배웠으며, 졸업 후 보르도 대학교에 진학해 법학을 공부했다. 1708년에 법률 훈련을 받기 위해 파리에 간 그는 1713년, 아버지가 세상을 뜨자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이후 로마 가톨릭교회에서 운영하였던 줄리아 컬리지를 졸업한 그는, 1715년 결혼하여 가정을 꾸렸다. 그리고 이듬해 자손이 없었던 백부의 유언에 따라 백부의 작위와 봉토를 계승하여 제2대 몽테스키외 남작이 되었다. 작위를 상속하기 전 몽테스키외의 본명은 ‘샤를 루이 드 스콩다’였다. 그는 백부가 맡고 있었던 보르도 고등법원의 고등법원장을 계승하였다.
“우리는 단지 행복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보다 더 행복하기를 원한다. 그래서 이것은 달성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실제보다 더 행복하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 몽테스키외
이 무렵 영국에서는 명예혁명이 일어나 입헌군주제가 선포되었고, 1707년에는 스코틀랜드가 합병되어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이 세워졌다. 그러나 이와 대조되게 프랑스는 1715년, 루이 14세가 죽은 후 루이 15세가 즉위하지만, 프랑스의 낡은 체제는 여전하여 곳곳에서 많은 문제가 일어났다. 이런 시기에 진로를 고심하던 몽테스키외는 고등법원을 그만두고 파리로 이주하여 연구와 저술에 전념했다.
몽테스키외는 1716년부터 고등법원에 근무하면서도 보르도 학술원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자연과학과 역사, 정치 등 자신의 관심을 넓혀왔다. 그리고 1721년, 『페르시아인의 편지』를 익명으로 발표했다. 이 작품은 프랑스를 여행 중인 페르시아인 우스베크와 리카가 고국에 있는 친구들과 주고받은 편지로 구성돼 있다. 『페르시아인의 편지』는 발표되자마자 큰 인기를 얻었다.
이후 몽테스키외는 『페르시아인의 편지』와 같은 서간문의 형식으로 18세기 프랑스의 정치와 사회를 풍자적으로 묘사하였으며, 특히 가톨릭교회를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1721년, 그는 『페르시아인의 편지』가 출판된 이후에 파리에 가서 많은 학자와 교류했다. 1725년에 그는 고등법원장직을 팔았으며, 1728년 프랑스 학술원 회원이 되었다.
“진정으로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사람들과 함께 서야지, 사람들의 위에 서서는 안 된다.” - 몽테스키외
몽테스키외는 1728년부터 1731년까지 오스트리아, 독일, 헝가리, 이탈리아 등 각국을 여행한 후 영국에 2년 동안 머물렀다. 그 시기 그는 영국 정치의 좋은 점에 감명을 받았다. 1731년에 프랑스로 돌아온 몽테스키외는 2년간의 연구 및 집필 활동에 들어갔고, 1734년에 그의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히는 『로마인의 위대함과 쇠락 원인에 대한 고찰』을 발표했다.
이후 장장 10여 년에 이르는 연구와 집필 끝에 1748년에 이르러서야 그의 가장 대표작이라고 불리는 『법의 정신』을 출간하였다. 그러나 종교적 권위를 비판한 것을 빌미로 이 작품은 로마 교황청으로부터 금서로 지정된다. 이에 몽테스키외는 1750년 『법의 정신』 개정판을 추가 집필한다. 그는 이 작품에서 평등애의 실천을 말하고, 이를 바탕으로 공화정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후 1755년, 그는 파리에서 창궐한 열병에 걸려 생을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