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목록
재생목록이 비어 있습니다.
-
-
0:00 0:00
화면 너비 (여백)
좁게
보통
넓게
최대
배경 테마
글꼴
바탕/명조
돋움/고딕
글자 크기
작게
100%
크게
줄 간격
좁게
보통
넓게

싱크로니시티

조셉 자보르스키 지음 | 에이지21
싱크로니시티



조셉 자보르스키 지음

에이지21 / 2021년 5월 / 375쪽 / 18,000원





여행 준비



워터게이트 사건


1973년 10월 당시 나는 서른아홉이었다. 워터게이트 사건은 전해 9월에 터졌다. 당시 내 관심은 휴스턴에서 변호사로 일하고, 다국적 법률회사를 세우고, 사업체를 경영하는 데에 집중되어 있었다. 10월 말 닉슨 대통령의 수석보좌관이었던 알렉산더 헤이그 장관이 아버지 레온 자보르스키에게 전화를 해서 특별검사직을 맡아 달라고 했다. 아버지는 완전히 독립적으로 수사를 진행할 수 있고, 필요하다면 대통령을 법정에 세울 권한을 보장한다는 조건이라면 직무를 맡겠다고 했다. 이후 몇 달 동안 특별검사직을 수행하면서 아버지는 워터게이트 음모의 경악스러운 면모를 알았고, 그들에게 배운 대로 극비로 아들인 나와 공유했다. 그리고 이것이 나한테는 삶을 바꾼 중대한 계기가 되었다.

나는 대통령 자리에 있는 사람을 다시 온전히 신뢰할 수 있을지 의문스러웠다. 나아가 나는 이를 정치 리더십의 문제가 아니라, 조직 리더십 전반의 문제라고 보았다. 주어진 권력을 남용하는 파렴치한 리더들과 이런 종류의 행동을 자초하는 나태하고 자기중심적인 시민이 악순환의 고리를 만들고 있었다. 나는 이런 상황에 깊은 우려와 함께 진정한 책임감을 느꼈다. 하지만 정작 나를 괴롭힌 것은 이런 상황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못하리라는 스스로의 무력감이었다. 과연 어떻게 이런 문제에 대처하고 진정한 변화를 가져올 것인가? 이렇게 하여 나의 남은 인생을 바칠 중대한 변화를 향한 씨앗은 뿌려졌다. 하지만 내가 씨앗이 자랄 환경을 만들고 능력을 키우기까지는 아직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성공한 인생 / 여행이 시작되다


워터게이트 사건이 터질 때까지 나는 13년 동안 변호사로 일했고 누가 봐도 성공했다고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의 여자 친구 프랜과 결혼해서 아들 하나를 키우고 있었다. 우리는 말하자면 보통 사람이 원하는 모든 것을 손에 넣었다. 고수익이 보장되는 전문직, 아름다운 동네에 있는 넓고 안락한 집, 누구나 갖고 싶어 하는 온갖 물건, 건강하고 다재다능한 열한 살 아들 조이, 휴스턴에 있는 많은 친구와 친척, 이는 일종의 그림 같은 생활이었고 그런 생활이 지속되었다.

그런데 1975년 마흔 살에 나의 세계가 무너져 내렸다. 나는 추수감사절 주말에 아버지와 몇몇 동료와 함께 목장에서 사냥을 한 다음 일요일 저녁에 휴스턴으로 돌아왔다. 막 서재로 들어와 소지품을 내려놓는데 아내 프랜이 들어와서 말했다. “이야기 좀 해요. 정말 중요한 일이에요.” 내가 자리에 앉자 그녀가 말했다. “조, 우리 이혼해요.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어요.” 나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당시 프랜은 휴스턴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었는데 수업에서 누군가를 만나 사귀고 있다는 것이었다. 대화를 나눈 뒤에 프랜이 말했다. “오늘 밤부터 당신이 집을 나가줬으면 해요.” 그래서 가방을 몇 개 챙겨서 차를 몰고 하워드 존슨 모텔로 갔다. 엄청난 충격으로 망연자실한 상태에서 그렇게 홀로 있었다. 아내와 아들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그림 같던 삶 전체가 산산이 부서져 버렸다.

별거 기간에도 이혼한 다음에도 나는 사무실에서 일을 했지만 이른 아침과 늦은 밤이면 혼자였고, 그런 시간이면 스스로를 곰곰 들여다보았다. 여러 면에서 내 눈에 보이는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아와 나의 감정과 접촉하기 시작하면서 상실의 고통과 혼란이 내면에서 솟구쳐 나를 휘감곤 했다.

누나 조니가 내가 빠진 고통을 간파했다. 어느 날 일이 끝나고 집에 와보니 조니에게서 작은 소포가 와 있었다. 휴 프레이더가 쓴 『조금만 더 일찍 나를 알았더라면』이라는 제목의 책과 함께 어쩌면 이것이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는 누나의 메모가 들어 있었다. 그날 저녁 읽기 시작했는데 다 읽을 때까지 손에서 책을 놓을 수가 없었다. 이후 며칠에 걸쳐서 크지 않은 책의 구절구절을 읽고 또 읽었다.

책 내용은 자아 발견을 위한 여행을 시작한 사람의 자아 성찰 내용이었다. 작가는 ‘자신이 누구이며, 여행을 하는 이유가 무엇이며, 여행의 목적이 무엇인가’라는 문제에 정면으로 맞서 해답을 얻으려 노력하고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자아 성찰적인 글쓰기의 위력을 알 수 있었다. 작가는 글을 씀으로써 자신을 둘러싼 상황을 명료하게 파악하고, 그런 통찰을 통해 자기 치유 방법을 찾아내고 있었다.

나도 낱장 메모지에 같은 형식으로 글을 써서 매일 서류철에 보관하기 시작했고, 몇 달 전에 쓴 글을 찾아 다시 읽어보곤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내가 변해가는 모습, 생활에서 특정 패턴이 나타나는 모습을 보고 적잖이 놀랐다. 이런 과정이 혼란스러웠던 마음에 질서를 가져왔고 의식에 일관성을 가지게 했다. 다음에는 노트를 한 권 사서 자아 성찰 내용을 계속 기록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런 나와의 대화가 더없이 소중해졌다. 혼자 보내는 고독한 시간이 내게 일종의 정화 과정이 되어 주었는데, 일생일대 위기에 직면해 있던 내게는 바로 이런 과정이 절실히 필요했다.

나는 내가 어떻게 살고 있으며, 어디로 가고 있으며, 삶에서 무엇을 바라는지 성찰하기 시작했다.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 우리가 진짜 두려워하는 것은 물리적인 죽음이 아니라는 사실도 알았다.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지금까지 진정한 삶을 살지도, 고차원적인 삶의 목표를 깊이 생각하지도, 그런 목표를 향해 과감히 떨쳐 일어나 보지도 못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조차 해보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이 시기가 내게 새로운 삶의 여정이 시작된 시기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이후로 많은 시간이 흐른 뒤였다. 여정은 이미 그때 내 안에서 시작되었다.

자유

1976년 4월 나는 회사에서 소송을 진행하고 있었는데, 규모가 커서 해당 사건에만 전력을 쏟아야 하는 그런 소송이었다. 9월 초 재판이 13주째로 접어들었을 무렵 판사가 7주간의 휴정을 명했다. 그래서 나는 생각지 않은 자유의 몸이 되었고, 무작정 7주간의 유럽 여행을 떠났다. 정해진 계획 없이 짐도 아주 간소했다. 과거 인상 깊게 읽은 책도 몇 권 챙겼는데, 그때는 몰랐지만 챙겨간 책이 당시 내 사고를 발전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프랑스를 여행하는 내내 나는 성당에 매료되었다. 특히 파리에서 남서쪽으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중세풍의 작은 도시 샤르트르에 있는 대성당에 끌렸다.

그날 오후 늦게 성당 주위를 서성이며 나는 자유의 2가지 개념을 생각했다. 2가지 모두 7주간의 여행에서 내내 느꼈던 것이다. 첫 번째는 ‘벗어나는 자유’, 말하자면 환경의 억압에서 벗어나는 자유였다. 내가 아버지의 그늘에서 생존 투쟁을 벌이던 과거 15년 동안 내가 주로 느낀 것이 바로 순응하는 삶에서 벗어나고픈 욕구였다. 하지만 이즈음 또 다른 개념의 자유가 깊은 심연에서 의식의 표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전심전력을 다해 삶의 목표를 좇아가는 자유, 동시에 통제하거나 억지로 ‘만들어내지 않고’ 삶의 창조적 기운이 나를 통과하여 움직이도록 내버려두는 자유였다. 샤르트르에서의 경험은 나의 내면에서 발견한 각종 억압 요소, 특히 두려움을 뚫고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사랑의 기술


이번 유럽 여행 도중 결혼이 사실상 와해되기 직전까지 내가 아무런 변화를 감지하지 못한 이유는 뭘까 생각하며 읽고 또 읽었던 책이 바로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이었다. 그의 논지는 인간 실존 문제에서 유일하게 만족스러운 해답이 사랑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사랑하는 것이 하나의 기술이며 사랑의 이론뿐만 아니라 실천까지 숙달해야 한다고 말한다.

일체감


재판을 끝낸 다음, 나는 티턴 산맥으로 배낭여행을 떠났다. 3일째 되던 날 아침 캠프에서 멀지 않은 개울로 낚시를 하러 갔다. 걸어가는 데 갑자기 족제비 한 마리가 눈 속에서 튀어나왔다. 족제비는 검은색에 가까운 진한 눈동자로 나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녀석의 출현에 나는 가던 길을 멈췄다. 우리가 서로의 눈을 들여다보고 있었던 시간이 기분에는 몇 분은 족히 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실제로는 아마 1분도 채 안 되었을 것이다. 녀석이 몸을 돌려 가는가 싶더니 다시 이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러고는 한참 나를 쳐다보고는 일종의 ‘쇼’를 시작했다. 공중으로 뛰어오르더니 크게 공중제비를 돌고 다시 내 눈을 들여다보았다. ‘이거 어때?’ 하고 묻는 것처럼 말이다. 녀석은 내 앞에서 같은 곡예를 서너 번 보여주었고 곡예가 끝나면 항상 고개를 살짝 옆으로 기울여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곡예를 한 대가로 칭찬이라도 구하는 모양새였다. 처음에 나는 목석마냥 꼼짝도 못하고 서 있었다. 그러다가 녀석의 곡예가 반복되자 마지막에는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녀석과 같은 방향으로 고개를 기울였다. 우리는 꽤 오래 그렇게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 순간 나는 족제비와 하나가 된 기분이었다.

족제비와 나는 그렇게 몇 분 동안 의사소통을 했다. 그리고 나는 일종의 시간을 초월한 느낌을, 우주 만물과 하나가 된 느낌이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는 그런 신비로운 느낌을 받았다. 이후 족제비와의 조우에 많은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것이 나에게 얼마나 중요한가를 진정으로 이해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훗날 알고 보니 표면상으로 보이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었다. 족제비와의 조우가 가르쳐준 것은 하나가 되는 느낌, 즉 일체감이라는 경험의 중요성이었다.



이어지는 몇 달에 걸쳐서 나는 족제비와 마주친 경험을 계속해서 반추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우주의 조직 원리는 ‘관련성(relatedness)’이며, 이것이 ‘객관성 실재성(thingness, 사물성)’보다 근본적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우리가 리더십을 고민하면서 빠뜨린 부분이 바로 이것이라는 생각도 새록새록 들었다. 우리는 항상 리더가 하는 행동, 그들의 리더십 스타일과 작용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만, 리더십의 존재 방식이라는 측면에는 거의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유럽 여행 도중 『사랑의 기술』을 읽은 경험은 프롬의 다음 책 『소유나 존재냐』로 나를 이끌었다. 프롬의 논지는 책의 서문에 나오는 다음 2개의 인용 문구로 요약된다. ‘① 행함을 위한 도(道)는 존재 방식이다 - 노자. ② 무엇을 하느냐보다 어떤 존재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몇 주 뒤 리더십 관련 책을 닥치는 대로 읽고 있을 무렵 우편으로 짤막한 에세이가 실린 소책자가 하나 배달되었다. 37쪽 분량의 얇은 소책자의 저자는 로버트 그린리프였고, 제목은 『리더로서의 하인』이라고 되어 있었다. 하인처럼 사람들을 섬기는 지도자, 즉 ‘서번트 리더십(servant leadership)’이라는 개념은 나에게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고 한동안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이후 나는 1977년 초에 다시 산으로 갔다. 차분한 분위기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내 앞에 있는 모든 것을 심사숙고하기 위해서였다. 산을 떠날 무렵 나는 ‘서번트 리더십’을 육성할 조직 만들기에 필요한 기본 윤곽을 잡은 상태였다. 말하자면 훗날 ‘아메리칸 리더십 포럼(American Leadership Forum, ALF)’이라 부르게 되는 조직의 대체적인 구상을 마친 것이었다. 이 구상은 서로 다른 영역의 사람들로, 특히 공동체나 지역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청년층 리더들의 결합을 장려할 생각이었다. 즉 누구도 ‘책임지지’ 않으려 하는 다원화된 사회에서 공적 책임 의식을 고양하고 사람들을 이끄는 능력을 키워줄 생각이었다.

나는 기본 구상을 마친 ALF의 아이디어를 혼자서만 품고 있었다. 1년 뒤에 고객이자 친구인 톰 팻초(환경 전문 기업인 브라우닝 페리스 인더스트리 설립자)가 나를 찾아왔다. 그가 나를 찾아온 이유는 휴스턴에 설립 예정인 임원 연수센터라는 본인의 꿈을 이야기하고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톰이 자기 꿈을 이야기하고 나니 나도 용기가 생겨 그에게 내 꿈을 이야기해도 되겠구나 싶어 그동안 준비한 계획안을 복사해서 톰에게 주었고 톰은 집으로 가져가서 검토하기로 했다.

며칠 뒤에 톰이 와서 검토 의견을 알려주었다. “이건 정말 대단한 아이디어라는 생각이 드네. 그런데 자네 계획안을 보니, 자네는 집행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운영 책임자 자리는 다른 내부인에게 맡기겠다고 하는데, 이건 자네의 꿈일세. 꿈이 현실이 되도록 실행하는 사람은 자네여야 해. 지금 다니는 법률회사도 그만두고 변호사 일도 접고 자네가 가진 에너지와 시간을 전부를 바쳐야 할 거야. 아니면 실현은 무리라고 봐야지.” 그의 말은 전적으로 옳았다. 하지만 나는 톰에게 시기가 좋지 않다며 지금은 힘들겠다고 말했다. 톰이 그런 나를 보더니 말했다. “언제든 준비가 되면 알려주게. 나도 돕겠네.”

문턱을 넘다



안내자 - 데이비드 봄과의 만남


1980년 7월 27일 일요일이었다. 나는 1주일 전에 법률회사를 그만두었고, 내가 설립하기로 마음먹은 새로운 기구의 철학적 토대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놓고 글을 쓰고 생각하며 씨름하고 있었다. 특히 중요한 새로운 리더십 커리큘럼을 어떻게 할지 많은 생각을 했다. 그날 나는 샤워를 한 다음 《선데이 타임즈》지를 휙휙 넘겨보는데, 교육면에 ‘우주의 협력 방법’이라는 헤드라인이 눈에 들어왔다. 기사 옆에는 런던 대학 버크벡 칼리지 이론물리학 교수인 데이비드 봄의 사진이 게재되어 있었다.

기사는 봄의 신작 『전체와 접힌 질서』를 언급하면서 새로운 이론을 설명했다. ‘접힌 질서’에 관한 봄의 이론은 무척 전문적이어서 기사 내용 중에 이해하지 못한 부분도 많았다. 하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자면 나는 내용을 모두 이해했다. 무엇보다 봄의 이론은 내가 찾고 있던 해답이었다. 갑자기 이 사람을 반드시 만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사는 계속해서 다음의 내용을 이야기했다.

‘봄이 주장한 비국소성(non-locality, 초공간성이라고 하기도 함)과 물리적 현상과 의식을 구별하지 않고 하나로 보는 관점 때문에 일부 초심리학자는 그의 이론에 의존하여 텔레파시, 예지, 염력 같은 현상을 설명하려 한다. 봄은 이런 시도에 반대하지는 않지만 확고하게 중립을 지키고 있다.

‘접힌 질서’는 일상적인 사고와 지각을 넘어서는 심층 차원의 실재이며, 기존 과학 이론에서 말하는 모든 실재상을 넘어서는 것이다. 봄의 표현에 따르면 기존 과학 이론에서 말하는 실재는 ‘명시적인 질서’에 속한다. ‘접힌 질서’에서는 존재의 총체가 시공간에 존재하는 개별 ‘조각들’ 안에 접혀 들어가 있다. 여기서 말하는 개별 조각이란 하나의 물체일 수도 있고, 사고 혹은 사건일 수도 있다. 이처럼 우주 안의 모든 것은 다른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친다. 모두가 단일 연속체의 부분이기 때문이다.

봄은 분리를 지향하는 현재의 흐름은 주어-동사-목적어라는 우리의 문법 구조 안에 깊이 각인되어 있다고 말한다. 또한 우리는 다른 개인 혹은 집단을 우리와 구별되는 ‘타자(他者)’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분리 지향이 개인적인 수준과 사회적인 수준에서도 나타나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했다. 그리고 이런 분리 지향이 결국 우리를 고립으로, 이기주의로, 전쟁으로 끌고 간다고 주장했다.’

빙고! 정말 맞는 말이었다. 이것이 바로 내가 그동안 느끼고 꿈꾸고 생각하던 것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리더십 커리큘럼의 근본 토대를 이런 식으로 표현할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나는 여기저기에 몇 번의 전화를 한 뒤에 봄의 자택 전화번호를 알아내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어느새 그가 수화기 너머에 있었다. 마음을 열고 허심탄회하게 내가 생각하는 바를 이야기한 다음 그를 꼭 만나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다음날 오후를 나와 함께 보내는 데 흔쾌히 동의했다. 봄과의 만남은 모험이 펼쳐지는 동안 내가 경험하게 될 수많은 ‘예측 가능한 기적’ 중에 하나였다. 그날 나는 봄의 사무실에 있었고 4시간이 넘도록 그와 대화를 나눴다. 그리고 대화가 진행되는 내내 나는 녹음기로 대화를 녹음했다. 우리는 물리학과 철학 원리의 결합과 이것이 나의 꿈인 리더십 포럼과 어떻게 관련되는지 이야기했다.

전문 열람 제한

미가입 상태이므로 요약본의 일부만 제공됩니다.
더 깊이 있는 내일의 통찰력과 지식 에너지를
프리미엄 무제한 이용권으로 충전해 보세요!

멤버십 가입 / 결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