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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척합니다

라오양의 부엉이 지음 | 다연


나는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척합니다

라오양의 부엉이 지음

다연 / 2020년 12월 / 240쪽 / 15,000원



PART 1 그래, 어른이 된다는 건 참 김빠지는 일이야



어떤 일이든 시작이 어렵고, 꾸준히 하는 것은 더 어렵고, 끝맺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
소셜 소프트웨어를 찾는 이들은 크게 네 부류다. 첫째는 돈을 벌기 위한 사람들, 둘째는 연애를 하기 위한 사람들, 셋째는 맛있는 먹거리를 찾는 사람들, 넷째는 죽고 싶도록 절망적인 사람들이다. 지금 내 앞에 앉아 있는 루이루이는 네 번째 부류에 속한다. 10분 전에 그녀는 내게 이런 톡을 보냈다. ‘학교 다닐 때는 성적 때문에 비교당하고, 직장을 다니면서는 연봉을 비교당하고, 이제는 남보다 더 많이 걸어 다니는 것까지 비교당하고 있어요. 이젠 나를 놔줬으면 해요. 나는 이 세상과 비교당할 필요가 없는 쓰레기가 되고 싶어요.’

따지고 보면 루이루이는 이모부를 거쳐 건너서 먼 친척뻘이다. 루이루이는 어린 시절부터 특히 수학을 싫어했다. 덧셈, 뺄셈 말만 나와도 배가 아프다고 투정을 부릴 정도였다. 그녀의 엄마는 이렇게 다독였다. “대학만 들어가면 수학 따위는 할 필요가 없단다.” 안타깝게도 루이루이는 어렵사리 진학한 대학교에서 질풍노도와 같은 방황을 겪었다. 학업에 열중하며 지식을 쌓기는커녕 술과 담배, 욕설을 배웠다. ‘지식과 교양을 갖춘 지성인’이 아니라 ‘내 인생은 끝났어. 그러니 대충 살아도 돼’라는 느낌을 온몸으로 발산했다.

루이루이는 대학 졸업 후 1년 넘게 백수로 지내다 인맥 덕분에 가까스로 잡지사에 취직했다. 그제야 힘든 백수생활도 청산하고 새로운 인생을 맞이할 수 있으리라 여겼다. 그러나 잡지사의 일은 결코 녹록지 않았다. 날마다 산더미처럼 쌓이는 일 때문에 야근을 밥 먹다시피 해야 했다. 오늘은 원고의 품질을 살피고, 내일은 소재의 창의성을 따져보고, 모레는 예술적 가치를 논의하는 등 일의 강도는 고3 시절에 맞먹을 만큼 힘들고 고되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회사 동료들 앞에서 상사에게 질책을 듣는 날도 허다했다. “도대체 할 줄 아는 게 뭐야? 이따위로 할 거면 회사 나오지 마!” 그야말로 절망적인 벼랑 끝에서 기사회생했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첩첩산중에서 길을 잃은 꼴이었다.

루이루이가 물었다. “무슨 일이든 처음 시작이 어렵다고 하잖아요? 어렵게 대학에 진학해서 겨우 졸업하고 간신히 취직에 성공했는데, 내 삶은 여전히 엉망진창이에요. 정말 왜 이렇게 사는 게 힘든지 모르겠어요!” 루이루이는 기어이 울음보를 터뜨렸다. 눈물과 콧물이 한데 뒤범벅이 된 채 펑펑 우는 그녀는 그야말로 억울한 누명을 쓴 죄수 같았다. 나는 그녀에게 손수건을 건네고 울음이 잦아들기를 기다렸다가 말했다. “그래, 뭐든지 시작이 어렵지. 그런데 말이야. 그 일을 꾸준히 하는 것은 더 어렵고, 끝맺는 것은 더더욱 어려워. 대학 진학은 네가 어렵게 배움의 길로 들어서는 시작에 불과해. 또한 직장을 얻는 것은 생계 수단을 마련하기 위한 첫걸음일 뿐이야. 네가 원하는 풍요롭고 행복한 삶을 얻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무수히 많은 중간 단계와 결말을 겪어나가야 해.”

우리는 나이가 들수록 새로이 깨닫게 된다. 진심 어린 태도나 말이 결국은 거짓말이라는 사실을! 부모님은 말했다. “나중에 어른이 되면 다 좋아진단다” 담임선생님은 말했다. “대학 진학만 하면 더 이상 시험공부는 안 해도 된다.” 직장 선배는 말했다. “새로운 업무는 사나흘 적응하면 익숙해져.” 과연 어땠는가? 어른이 되어도 좋아지는 것은 하나도 없으며, 대학을 진학하고 나면 다시 자격증 시험이나 잡다한 능력인증 시험이 등장하며, 직장에서 새로운 업무에 간신히 적응하고 나면 또 다른 업무가 당신을 기다린다.

결혼하기 전에는 친구들이 이런 말을 했을 것이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모든 게 잘 될 거야.” 그러다 애인이 생기고 애정 전선에 적잖은 문제가 생기면 친구들은 또 이렇게 말한다. “너랑 안 맞는 것 같으면 헤어져.” 마음에 드는 물건이 있으면 동료들은 이렇게 권한다. “그렇게 좋으면 사버려.”

하지만 실제로 어떠한가? 성격이 잘 맞는 연인을 만나기도 힘들고, 또 그런 사람을 만나도 사랑을 가꿔나가기는 더 힘들고, 죽을 때까지 함께 백년해로하는 것은 더더욱 힘들다. 조금만 마음에 안 들어도 애인을 갈아치우는 사람은 나이 들 때까지 좋은 인연을 만나기 힘들다. 또 마음에 들면 가격을 따지지 않고 무작정 사들이는 사람은 은행 잔고가 바닥을 드러내기 일쑤다.

사실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되는 것은 마치 오락 게임에서 경험치를 얻고 레벨 업이 되는 것처럼 계속 자신을 업그레이드하는 과정이다. 다섯 살 때는 다섯 살배기 어린아이가 겪어야 하는 세상이 있고, 열여덟 살에는 청년기에 마주해야 하는 세상이 있으며. 쉰 살에는 중년이 맞닥뜨려야 하는 세상이 있다. 나이가 몇 살이든 간에 그 나이 단계에서 헤쳐 나아가야 하는 난관이 있고, 어떤 인생을 살든 그 인생길 걸음걸음마다 그에 상응하는 수준의 위기가 기다리고 있다. 적어도 내 생명이 붙어 있는 이상 경험치를 획득하지 않고서는 그 단계를 통과할 수 없다.

눈앞의 난관을 건너뛸 생각도 해서는 안 되고, 또 현재의 난관을 통과했다고 해서 앞으로 모든 일이 뜻대로 이뤄진다고 착각해서도 안 된다. 당장 눈앞에 닥친 난관을 잘 헤쳐 나아가야만 지금 나이 단계의 생활이 좀 더 수월해지고, 또 다른 레벨의 난관을 헤쳐 나아가기 위한 경험치를 쌓을 수 있다.

열여덟 살 청소년이 되어 다섯 살 무렵의 시간을 떠올리면 특별히 힘든 난관이 없었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저 어린 시절에는 대학시험을 치를 필요도 없기에 공부 스트레스도 없다고만 기억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라. 다섯 살 무렵 더러는 덧셈 뺄셈을 배우기 시작하고, 그림 그리기 방법을 배우고, 어른들에게 인사하는 방법을 익히는 등등 그 어느 것 하나 쉬운 일이 있었던가?

PART 2 사랑한다는 건 두 사람이 서로의 정신병을 치유해주는 것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두 사람이 서로의 정신병을 치유해주는 것이다


새벽 3시 30분에 느닷없이 울리는 스마트폰 벨 소리에 잠을 깼다. 비몽사몽 낚싯바늘에 걸린 물고기처럼 나는 마지못해 따뜻한 잠자리를 박차고 나와 전화를 집어 들었다. 수화기 저편에서는 고함 소리가 와르르 쏟아져 내렸다. “라오양, 하하하. 나 내일 결혼한다. 너무 흥분돼서 잠을 잘 수가 있어야지. 잠이 안 오는데 어떡하지?” 나는 화가 치밀어 맞받아 소리쳤다. “야, 인마! 넌 양심도 없냐?”

한밤중에 나의 꿀잠을 깨운 친구는 어린 시절 함께 자란 리무터우였다. 결혼식 전날의 흥분되는 그의 마음을 내가 왜 이해하지 못하겠는가? 그도 그럴 것이 리무터우는 연애 방면에서는 지금껏 못생긴 아기오리처럼 번번이 실패만 거듭하던 천덕꾸러기였다. 그러던 그가 작년 장마철에 쥐안쯔를 만난 것이다.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진 여느 연인처럼 사흘이 멀다 하고 사량싸움을 벌였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두 사람이 산책하려고 승장기를 타는데 한 남성이 뚱뚱하게 살이 찐 퍼그 두 마리와 타고 있었다. 두 마리 퍼그는 낯선 사람을 보고 경계하면서 크렁크렁, 이상한 소리를 냈다. 승강기에서 내린 뒤 쥐안쯔가 아주 심각한 표정으로 리무터우에게 물었다. “방금 그 남자가 데리고 있는 게 돼지였어요?”

그 말에 리무터우는 폭소를 터뜨리고 말았다. 이에 자존심이 상한 쥐안쯔는 그대로 몸을 돌려 집으로 돌아가버렸다. 그날 리무터우는 쥐안쯔를 달래기 위해 100여 개의 문자를 보내고 50여 차례 전화를 걸었지만 아무런 회신도 받지 못했다. 리무터우는 한밤중에 될 때까지 쥐안쯔에게 계속 문자를 보냈는데, 문자마다 영문 ‘M’ 자가 왼쪽으로 90도 기운 부호를 함께 보냈다. 호기심 때문인지 아니면 화가 가라앉았는지 그제야 쥐아쯔가 회신을 보내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이에 리무터우는 이렇게 답했다. ‘그 부호는 시그마인데 수학에서 총합, 화해를 의미해.’

물론 연애 기간에 리무터우도 쥐안쯔 때문에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적이 많았다. 예컨대 쥐안쯔가 리무터우에게 색깔이 다른 넥타이 두 개를 선물했을 때다. 다음 날 리무터우는 쥐안쯔가 선물해준 넥타이 하나를 골라매고 싱글벙글 데이트장소에 나갔다. 그런데 뜻밖에도 쥐안쯔가 토라지듯 이렇게 화를 내는 것이었다.

“왜 그 색깔을 맨 건대? 도대체 무슨 뜻이야? 다른 하나는 마음에 안 든다는 소리야?” 이런 일도 있었다. 두 사람이 함께 밥을 먹는데 쥐안쯔가 밥을 먹는 내내 아이패드로 사극 드라마를 보았다. 리무터우가 물었다. “오늘 갈비찜을 아주 맛있게 만들었는데? 얼마나 찐 거야?” 쥐안쯔는 듣는 둥 마는 둥 한참이 지나서야 이렇게 말했다. “엉? 아니야! 여덟째 왕자가 아니라 셋째 왕자가 죽인 거라고!”

약혼식장에서 쥐안쯔는 앙큼한 미소를 지으며 리무터우에게 말했다. “내가 아름답지도 고상하지도 않다는 것 나도 잘 알고 있어요. 외모도 볼품없고 속도 좁은 데서 한 성질 하죠. 그런 나에게 하늘이 당신을 천생배필로 보낸 걸 보면 전생에 나에게 큰 잘못을 저질렀나 봐요.”

쥐안쯔의 말에 약혼식장은 웃음바다로 변했다. 이때 마이크를 건네받은 리무터우는 웃음을 참으며 담담하게 대답했다. “음, 업모는 피할 수 없는 법이니 순순히 죗값을 치러야겠죠?”

언젠가 나는 리무터우에게 물은 적이 있다. “쥐안쯔는 성미가 고약하다는 걸 알면서도 그렇게 좋아?” 리무터우는 이렇게 대답했다. “순한 토끼가 아니라 고슴도치라서 더 안고 싶은 갈망이 커지는 것 아닐까?” 나는 쥐안쯔에게도 물어봤다. 리무터우는 이렇게 대답했다. “순한 토끼가 아니라 고슴도치라서 더 안고 싶은 갈망이 커지는 것 아닐까?” 나는 쥐안쯔에게도 물어봤다. “리무터우가 지저분하고 말실수도 잘하는 수다쟁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에게 한평생을 의지하고 싶어요?” 그러자 쥐안쯔는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고집 센 당나귀처럼 심술을 부릴 때도 그 사람은 날 신화 속에서나 나오는 유니콘처럼 소중하게 대해주거든요.”

처음에는 상대방이 사랑스러워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정도지만 막상 함께 지내게 되면 상대방의 고집스러움에 미움이 커진다. 결국 어제까지만 해도 좋아 죽을 것 같던 사이가 오늘은 미움과 증오에 사로 잡혀 원수가 되고 만다.

그의 성숙하지 못한 유지함을 참을 수 없지만, 그의 천진난만함이 좋기에 당신은 사랑을 이어나간다. 또 그는 당신의 고지식함이 따분하지만, 매사 진지하고 성실한 모습에 매료당한다. 당신은 그에게서 낭만이라곤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어 실망스럽지만 반면에 현실적이고 책임감 강한 모습에 만족감을 느낀다. 그는 당신의 성급하고 괄괄한 모습이 무척 불만이지만 반면에 당신의 어리숙한 모습에서 사랑스러움을 느낀다……. 이처럼 본시 사랑에는 정답이 없다. 그 누구도 100퍼센트 만족스러운 연인을 얻을 수 없다. 그저 점차 상대방의 단점까지도 기꺼이 감수하려는 것뿐이다.

누군가는 상대방의 매너 있는 모습에 마음에 뺏긴다. 가령 길을 걸을 때는 항상 인도 안쪽으로 당신을 걷게 하고, 또 온화한 태도로 차 문을 열어주거나 의자를 옮겨주며, 시시때때로 로맨틱한 데이트를 선사한다. 혹자는 상대방의 조건에 매료당하기도 한다. 가령 그의 유복한 가정 배경이나 미래 전망이 좋은 직업, 혹은 상대방의 멋스러운 외모와 체력 등…….

하지만 모든 젊은 남녀가 가장 선호하는 이성은 바로 이해심 많은 사람이다. 이해심 많은 사람은 당신이 “음” 하고 대답하면 못마땅해한다는 것을 눈치채고, 또 당신이 “어”라고 대답하면 기분이 우울하다는 것을 이내 알아준다. 또한 남들이 당신을 칭찬하는 말에는 적잖은 과정이 섞였음을 눈치채고, 당신에게 쏟아내는 비난에는 당신을 음해하려는 나쁜 의도가 있음을 간파한다. 그 사람은 얼핏 보기에는 건강한 당신의 영혼 뒤편에 아픈 환자가 숨어 있다는 것을 안다.

당신의 명석하고 예리한 두뇌 뒤편에는 어리석은 백치가 있다는 것을, 또 당신의 강인한 성격 뒤에는 나약한 정신이 숨어 있다는 것을. 나날이 성숙해지는 당신의 겉모습 뒤에는 아직 유치한 어린아이가 들어앉아 있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그 누구보다는 당신을 포용해주며 자상하게 보살펴준다. 또한 당신의 독특한 개성을 그 누구보다도 소중히 여겨준다. 그래서 당신이 감성적일 때는 논리를 따지지 않으며, 당신이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있을 때는 결코 맞서지 않고 져준다.

가장 이상적인 연인관계는 ‘당신이 하소연을 늘어놓고 싶을 때 상대방이 가만히 귀를 기울여주는 사이’이다. 여기서 좀 더 현실성을 가미한다면, ‘당신이 스트레스 쌓였을 때 맘껏 발산할 수 있도록 화풀이 대상이 돼주는 사이’이다.

아일랜드의 소설가 오스카 와일드가 말하기를, 산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의 연속이며, 사랑이란 두 바보가 서로 쫓고 쫓는 것이라고 했다. 나는 당신 역시 그러한 ‘바보’를 만나 진실한 사랑을 하며 달콤한 인생을 살아가기를 바란다.

세대 차이라는 것은 실상 상대방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사랑이다


춘제 연휴를 맞이하여 R은 두 살배기 아들과 함께 친정을 찾아갔다. 저녁 식사가 끝난 뒤 R은 방에서 얼굴 팩을 하면서 거실에서 부모님의 대화 내용을 들었다.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말했다. “내일 라오리 집에 갈 때 외손자도 함께 업고 갑시다. 명절에는 사람들이 북적여야 제맛이잖아!” 어머니가 대답했다. “난 싫어요. 내 자식도 아닌데 밖에 나갈 때마다 업고 다니란 말이에요?” R은 눈가 주름을 꾹꾹 누르며 끼어들었다. “그래요. 그 대신 엄마가 나 업어서 데려가면 되겠다. 난 엄마 자식이잖아.” R의 가족은 가족 코미디 드라마를 찍어도 될 만큼 재미있는 이야깃거리가 많다.

어린 시절 R의 집은 풍요롭지가 못했다. 한번은 용돈을 조금이라도 더 받기 위해 R은 엄마에게 거짓말을 했다. “엄마, 학교에서 예술반을 새로 개설한대. 발레, 국학, 바둑, 컴퓨터 등 전부 다 가르쳐준대. 한 달에 겨우 삼 위안(약 오백 원)이야. 엄청 싸지?” 엄마는 웃음을 터뜨리며 R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뭐? 삼 위안? 넌 엄마가 바보인 줄 아니?” 대학을 갓 졸업했을 무렵 R은 집에서 가장 게으르고 수입도 가장 적었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미움 아닌 미움을 받았다. 가령 화장실에서 오래 꾸물거리거나 혹은 전화 통화를 하면서 큰 소리로 웃거나, 소파의 쿠션을 떨어뜨리거나, 휴지통이 가득 채워져 있을 때는 언제나 R에서 잔소리하며 트집을 잡았다.

한번은 춘제 명절을 맞이하여 집으로 내려갔을 때다. 빈손으로 집에 온 R에서 어머니는 서둘러 밥상을 차려주며 잔소리를 해댔다. “스무 살도 훌쩍 넘은 애가 명절에 집에 오면서 선물 하나를 안 사 오니? 어쩜 이렇게 뻔뻔하니?”

R도 나름대로 반격했지만 번번이 참패했다. 가령 밥 먹을 때 엄마에게 음식이 짜다고 간장을 적게 넣으라고 투정을 부린 적이 있다. 그 결과 엄마는 밥그릇과 젓가락을 모두 빼앗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럼 네가 직접 만들어서 먹어.” 그날 밤 엄마는 빨래 바구니에서 R의 옷만 추려서 빼놓은 뒤 그 옆에 쪽지를 붙여놓았다. ‘세제 많이 넣는다고 할까 봐 빨래를 못 하겠구나. 네 옷은 네가 직접 빨려무나.’

한번은 아버지에게 금연해야 한다고 불만을 말한 적이 있었다. 그러자 아버지는 거만스레 이렇게 말했다. “그럼 금연하는 아빠를 찾아가려무나. 이제 우린 부녀관계를 의절한 거니까. 너에게 생활비도 줄 필요가 없겠지?” 머리를 쥐어박고 으름장도 높으며 구박을 했지만 사실 R의 부모님은 누구보다 더 그녀를 사랑했다. R이 학교 다니는 10여 년 동안 아버지는 항상 시간이 날 때마다 그녀와 함께 놀아주며 이렇게 말하곤 했다. “놀 때는 실컷 놀아야 해. 제대로 놀지 못하면 금방 어른 된다.” 그녀는 직장을 찾아다닐 때 아버지는 이렇게 당부했다. “네가 좋아하는 일을 찾으려무나. 엄마 아빠 노후 준비는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그런 걱정은 하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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