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 나를 인정할 시간
양은우 지음 | 예문
50, 나를 인정할 시간
양은우 지음
예문 / 2020년 6월 / 240쪽 / 13,800원
제1장 우리, 이만하면 잘 살아왔다 - 지나온 삶의 가치를 인정할 시간
이제 알아요, 당신은 최선을 다하셨다는 것을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실과’라는 과목이 있었다. 바느질이나 요리, 책꽂이 만들기 등 생활에 필요한 소소한 일들을 가르치는 수업이었다. 하루는 선생님께서 복숭아를 사 오라는 숙제를 내주셨다. 실과 시간에 사용할 재료인 듯했다. 등교 시간, 아버지는 나를 데리고 마을 어귀에 있는 구멍가게로 가셨다. 그리곤 당시 내 주먹보다 작은 풋복숭아를 몇 개 사 주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풋복숭아도 아닌 개복숭아에 가까운 것이었다. 아버지가 사 주신 풋복숭아를 들고 가면서도 이걸 가져가도 되나 속으로 은근 걱정이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우려가 현실이 되었다. 실과시간이 되자 선생님은 준비해 복숭아를 꺼내라고 했다. 그날 실습의 주제는 과일을 깎아 접시에 담아내는 것이었다. 낭패가 아닐 수 없었다. 과일 깎는 실습에 가져온 것이 초등학생의 손바닥 반 크기도 안 되는 조그만 풋복숭아였으니 깎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다른 아이들은 모두 자기 머리통만 한 복숭아를 들고 왔다. 난 당황하여 얼굴이 새빨개졌다. 내가 꺼내 놓은 풋복숭아를 본 선생님은 크게 야단을 치셨다.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내가 느낀 창피함은 심장에 통증을 느낄 정도로 대단한 것이었다. 정말로 쥐구멍이 있다면 그 구멍 속으로 숨어버리고 싶었다. 그날 수업이 어떻게 끝났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40년도 넘는 시간이 지났지만 그때의 당황스럽고 수치스러웠던 느낌만은 아직까지도 생생하게 남아 있다.
그날 난 아버지를 원망했을까? 그리 효심 깊은 아들이 아니었으므로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어쩌면 집으로 돌아가 아버지에게 화풀이를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월이 너무 많이 흐른 탓인지 내 기억 속에 아버지에 대한 원망은 별로 남아 있지 않다. 대신 아버지를 이해하는 마음이 더욱 크게 자리 잡고 있다. 만약 그때 아버지가 그 자리에 계셨다면 나보다 더 당황하셨을 지도 모른다. 풋복숭아 앞에서 당황하여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아들을 본다면 아버지는 틀림없이 속상해서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누구보다 자식을 사랑하고 자상하게 대했던 아버지였기에 자신의 실수로 인해 아들이 곤혹스러운 상황에 빠진 모습을 봤다면 날카로운 칼에 심장이 베이듯 가슴이 아팠을 것이다.
아직도 한 번씩은 그날의 기억이 떠오르곤 하지만 난 아버지를 원망하지 않는다. 그것은 결코 아버지가 의도한 것이 아니었을 것이기에. 어느 부모인들 자식이 곤란한 상황에 처하는 것을 좋아하겠는가? 다만 당시의 형편이 그 정도밖에 안 되었을 뿐. 사는 게 넉넉하고 여유로웠다면 아버지도 분명 크고 좋은 복숭아를 사줬을 것이다. 돌이켜보면 그건 아버지의 잘못이 아니다. 그 당시 아버지는 당신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했을 것이므로.
나중에 내가 하늘로 돌아가 아버지를 만나 지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날의 일이 화제로 등장할지 모른다. 어쩌면 아버지는 그때 일을 기억하지 못하실 테고 그래서 내 이야기를 들으면 당황하실 지도 모른다. 그러면 난 아버지의 손을 잡고 이렇게 말할 것이다. “아버지, 괜찮아요. 다 지난 일인걸요. 아버지가 그때 최선을 다하셨다는 것을 잘 알아요. 고맙습니다, 아버지.”
우리, 이 정도면 참 잘 살아왔다 가끔, 자신의 지나온 삶이 후회스럽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만나곤 한다. 사람들이 지난 삶을 되돌아보며 후회하는 건 두 가지 이유 때문일 것이다. 하나는 인생을 살면서 마주쳤던 수많은 갈래길에서 자신이 선택한 길이 아닌 또 다른 길을 선택하지 못한 것에 대한 미련과 아쉬움이요. 다른 하나는 자신이 선택한 길을 걸어오는 동안 보다 열심히 살지 못하고 시간을 낭비했던 것에 대한 자책일 것이다.
나 역시 가끔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며 나도 모르게 한숨지을 때가 있다. 살면서 마주쳤던 수많은 갈림길에서 ‘그때 그 길이 아니고 다른 길을 선택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그때 하지 못했던 것들을 해봤다면 어땠을까? 헛되이 흘려버린 시간들을 조금 더 아껴 썼으면 어땠을까?’하는 생각을 떠올릴 때가 많다. 인내심이 없어, 용기가 없어, 두려움과 결단력 부족으로, 현실과 타협하느라 하지 못했던 수많은 일들, 머뭇거리다 도전조차 못해본 나의 꿈, 바람이 불 듯 순식간에 지나버리고 말았던 과거의 나나들을 되돌아보며, 그때 만약 다른 선택을 했다면 어땠을까 생각하곤 한다. 그때 내 마음이 끌리는 대로 행동했다면 지금의 내 삶은 달라져 있을까? 지금의 내 나이만큼 들어서 되돌아봤을 때 그 삶은 후회 없을까?
나이가 들어가면서 젊어서 조금 더 공부를 하지 않은 것이 후회스럽다. 이미 대학을 다닐 때 모 대기업의 산학장학생으로 입사한 상태였고, 회사에서 지원을 약속했기에 마음만 먹는다면 박사 과정까지 진학할 기회를 충분히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공부가 힘들기도 했고 어려운 형편에 하루라도 빨리 사회로 나가 돈을 벌고 싶은 욕심이 들어 그만 포기하고 말았다. 박사 학위 하나 없다고 해서 크게 불편할 일도 없지만 그래도 가끔은 후회스러울 때가 있다. 만일 그때 박사 과정에 진학을 했다면 지금의 내 삶은 어떻게 달라져 있을까?
누구나 한 번쯤 지나온 길을 돌아보며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있지만, 가지 않은 길은 어디까지나 미련일 뿐이다.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 한들 또다시 같은 선택을 할지 모른다. 그때 용기가 없어서 하지 못했던 일, 두려워서 하지 못했던 일, 소심해서 머뭇거리다 기회를 놓친 일들이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서 바뀔 수 있을까? 과연 나는 다른 길을 선택할 수 있을까? 내가 가지 않은 길은 내 길이 아니다.
내가 선택한 삶에 대한 자책 또한 마찬가지다. 인생을 다시 산다고 해서 지금보다 충실히, 만족스럽게 산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삶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달라지지 않는다면 아무리 과거로 돌아간다고 해도 인생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지금보다는 후회 없이 잘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은 어디까지나 착각이거나 현재의 내 삶에 대한 비겁한 변명일 뿐이다. 심판대 앞에 선 남자처럼 말이다.
지나간 시간을 돌아보며 후회하는 것은 내 손 안에 든 귀한 생명수가 손 틈으로 빠져나가는 걸 보지 못하면서 땅바닥에 떨어진 생명수가 아까워 바닥만 바라보고 있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지금 열심히 살지 못하면서 지난 시간을 후회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짓이 어디 있단 말인가? 과거는 미래에 투사된다. 과거는 되돌릴 수 없고 우리 앞엔 미래가 남아 있다. 과거를 돌아보며 후회하거나 자책할수록 미래의 삶은 불만족스러울 수밖에 없다. 후회해도 달라질 건 없다. 지나간 시간을 붙잡고 후회하는 것보다는 다가올 미래를 후회 없이 살도록 노력하는 것이 어쩌면 더 현명한 일인지도 모른다. 지금부터라도 그동안 용기가 없어서, 두려워서, 소심해서,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느라 못했던 일을 해보는 것이 차라리 더 낫지 않겠는가?
한편으로 우리는, 어쩌면 색안경을 쓴 채로 스스로의 삶을 바라보는지도 모른다. 자기 삶의 긍정적인 면, 성공적이었던 부분, 보람 있는 측면보다는 부정적인 측면, 실패하는 일, 마음대로 안 되었던 일, 아쉬웠던 부분만 끄집어내어 후회의 감정을 덧칠하고 있는 건 아닐지…. 내 삶이 후회스럽다는 것은 지극히 나만의 주관적인 판단일 뿐, 어쩌면 내 삶이 누군가에게는 부러운 모습일 수 있다.
당신은, 그리고 나는, 생각보다 더 잘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자신의 삶을 뒤돌아보며 후회하지 말자. 혹시라도 지나간 삶에 후회가 들거든 자신의 어깨를 톡톡 두드리며 나지막하게 속삭여보는 건 어떨까? “괜찮아. 지금까지 잘 살아왔어”라고.
제2장 지금, 내가 서 있는 자리를 받아들이기 - 현재의 내 모습을 인정할 시간
격(格)과 주책 사이 치과에 갔더니 간호사들이 나를 ‘아버님’이라고 부른다. “아버님, 이쪽으로 앉으세요.” “아버님, 입 크게 벌려 보세요.” 아직 오십 대 중반밖에 안 된 나를 너무 나이 많은 사람으로 보는 것 같아 인상이 찌푸려진다. ‘아버님이라니? 내가 그렇게 늙어 보이나? 뭐라고 한마디 할까?’ 생각했지만 말이 되어 입 밖으로 나오지는 않는다. 물론 치과 간호사들이 내게 아버님이라고 부르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이름을 부르기엔 다소 건방져 보이고, 어르신이라고 부르기엔 애매해 보이는 사람들에게 쓸 수 있는 ‘적당한’ 호칭이‘아버님’인 듯싶다. 그렇다 해도 아버님이라는 호칭은 지나치게 나이 든 것 같아 싫다. 그런데 어깨가 아파 침을 맞으러 간 한의원에서도 ‘아버님’ 하고 날 부른다. ‘응? 아버님?’ 그 순간 고민이 깨끗이 사라졌다. ‘그래, 난 아버님이다. 이젠 그렇게 불려야 할 나이인가 보다.’ 섭섭하지만 받아들이기로 했다. 아무리 거부해도 소용이 없기에.
살면서 변화를 받아들인다는 것, 무언가 달라지고 있다는 흐름을 읽는다는 것은 꽤나 중요한 일이다. 흐름을 읽지 못하고 나에게 일어나는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면 그와 맞지 않는 엉뚱한 행동들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 혹은 그런 행동들을 우리는 ‘주책’이라고 부른다. 주책이란 자신의 ‘격’에 맞지 않게 행동하다는 것을 말한다. 나이 들어서도 젊었을 때처럼 좌충우돌하며 다혈질적으로 행동하거나, 거친 말을 서슴없이 입에 담고, 자신의 능력이나 여건을 고려하지 않은 채 ‘내가 누군지 알아?’라며 큰소리 떵떵 치고, 치기 어린 행동을 일삼는, 이런 것들이 모두 주책이다.
물론 변화를 거부하고 하던 대로 하고 싶은 것이 인간의 속성이다. 따라서 흐름을 읽고 변화를 받아들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어진 변화를 스스럼없이 받아들이고 그에 맞춰 행동해야 품격을 지키며 나이 들 수 있다. ‘격’을 지키려면 흐름을 읽어야 한다. 주위의 변화, 그리고 자신의 변화. 주변의 변화와 자신의 변화에 맞추어 끊임없이 자신이 설 자리를 조율해 나가야 한다. 그러자면 그 흐름이 자신에게 바꾸어 놓은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하는데 과연 나는 잘하고 있는 걸까?
나이 든다는 것은 한 때는 나이 드는 것이 즐겁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 까칠하던 성격도 한풀 꺾이고 모나던 성격이 너그럽고 온화한 성격으로 바뀌었다. 젊을 때는 낯선 사람들과 말 한마디 섞지 못했건만 이제는 누구와도 어렵지 않게 대화를 나눌 정도로 능글맞게 변하기도 했다. 그런 변화를 보며 ‘이게 나이에서 오는 관록이라는 것이구나’ 하고 느낀 적이 있다. 그래서 나이 드는 것이 서럽지도 않고 딱히 안타깝지도 않았다. 오히려 나이 듦이 진심으로 반가웠다. 비록 눈은 침침해지고 흰머리가 늘어가고 있었지만 그래도 나름 즐거웠다. 그런데 조금 더 나이가 들자 다시 생각이 바뀌었다. 반가움이 슬픔으로 바뀐 것이다. 요즘은 나이 든다는 것이 참으로 고통스러운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이 듦이란 하나씩 익숙한 것과 이별하고 이 아픔을 삭여야 하는 것인가 보다.
늘 어린애 같기만 하던 첫 아이 현준이가 군에 입대했다. 하필이면 제일 추운 시기에. 서 있는 것조차 고통스럽게 느껴지는 칼바람 속에 민둥머리 아들을 연병장에 남기고 돌아오는 길이 어찌나 서럽고 안타깝던지 눈물이 핑 돌았다. 의경이기에 군사 훈련이 끝나고 자대 배치를 받으면 자주 볼 수 있을 테고, 다른 아이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편한 군 생활을 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진 바람 때문인지 마음이 아리기만 했다. 제대를 하고 나오니 이제 독립을 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말로는 어서 독립해서 나가라고 하지만 막상 그 시간이 다가오니 왜 이렇게 아쉬운 마음이 드는지 모르겠다. 자식을 품 안에서 떠나보내는 부모의 마음이 다 그러지 않겠는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20여 년의 세월. 알콩달콩 같이 했던 그 시간이 이젠 끝나간다는 생각이 들어 슬프다.
어머니도 꽤 나이가 드셨다. 벌써 팔순이 다 되셨다. 얼마나 더 건강하게 지내실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나이가 들면서 익숙한 것들, 정들었던 것들, 사랑하는 존재들로부터 이별해야 하는 일들이 많아진다. 이미 앞서 세상을 등진 친구들도 있다. 그렇게 하나둘씩 주위에서 떠나가거나 떠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 내가 아끼는 것들, 내가 아끼던 사람들, 내 젊은 시절을 함께했던 소중한 추억들을 떠나보내야 하는 것이 나이 드는 것인가 보다. 그래서 나이 든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견딜 수 없는 슬픔이기도 하다. 이젠 나이 드는 것이 서럽다. 예상하지 못했던 이별이 언제 옆구리를 헤집고 들어올지 모르기 때문에.
다시, 배려와 존중을 생각하다 언젠가 아파트 입구에 이런 공고문이 붙었다. 아파트 관리 사무소에서 붙인 것으로, 날씨가 너무 더워 경비원들이 힘들어하니 모든 경비초소에 에어컨을 설치하겠다는 것이었다. 가만히 있어도 숨이 턱턱 막히는 찌는 듯한 무더위에 손바닥만 한 작은 공간에서 웅크리고 앉아 있는 경비원들을 볼 때마다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는데 에어컨을 설치한다니 마침 잘됐다 싶었다. 누가 낸 아이디어인지는 몰라도 경비원들의 힘든 상황을 배려한 고운 마음씨에 절로 박수가 나왔다. 며칠 후 그 공고문 옆에 다른 공고문 하나가 붙었다. 이번에는 경비원들이 붙인 것이었다. 에어컨을 설치해준 주민들의 성의에 감사하며 전기요금이 많이 나오지 않도록 최대한 절제하고 아껴 쓰겠다는 것이었다. 그 밑에 볼펜으로 감사하다는 말이 덧붙여져 있었다. 관리사무소의 배려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주민들에게 불편을 끼치지 않겠다는 경비원들의 고운 마음씨에 감동이 밀려왔다.
관리사무소와 경비원들의 공고문을 보면서 내내 흐뭇한 미소를 감출 수 없었다. 비록 부자동네도 아니고 힘 있는 사람들이 사는 아파트도 아니지만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마음에 가슴이 따뜻해졌다. 인건비로 나가는 돈을 줄이기 위해서 아파트 경비원을 해고하고 경비원들에게 택배를 날라 달라며 갑질을 한다는 이야기들이 심심치 않게 들리는 요즈음 이 일은 내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세상은 혼자 살 수 없다. 더불어 사는 것이 세상이다. 때로는 누군가에게 기대하기도 하고, 때로는 누군가 기댈 수 있는 기둥이 되어야 한다. 지극히 관념적인지는 몰라도 귀한 것도 없고 천한 것도 없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 모든 인간은 동등하다. 더불어 사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에 대한 존중과 배려이다. 돈 있다고 없는 사람을 깔보지 않고, 힘 있다고 힘 없는 사람을 무시하지 않으며, 배웠다고 못 배운 사람을 천하게 보지 않아야 한다. 누군가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배려하면 그것은 언젠가는 내게 돌아온다. 모든 사람들이 존중과 배려를 몸소 실천하면 세상은 더욱 따뜻하고 살기 좋아질 것이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자리를 받아들이기 어느 날 갑자기 생각지도 않게 회사를 그만둔 후 경제적으로 꽤나 큰 손실을 입었다. 임원으로서 받을 수 있었을 적지 않은 연봉과 꽤 두둑한 퇴직금, 경제활동을 못하면서 가만히 앉아서 까먹게 된 저축, 아이들의 학자금과 각종 기회비용 등 손실은 생각보다 컸다. 회사의 후배들이 속속 임원으로 진급했다는 소식들이 들려왔다. 힘들고 어려워도 꾹 참고 회사를 다녔다면 나 역시 몇 년 전에 이미 임원이 되었을 텐데, 쓸 데 없이 서둘러 회사를 옮기는 바람에 기회를 놓쳤다고 생각하니 그들이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난 지금 먼 길을 돌아가고 있다. 장애물을 이겨내고 꾸준히 인내심을 발휘했다면 지금쯤은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위치나 안정적으로 경제적 수입을 창출할 수 있으련만 섣부른 조바심이 먼 길을 돌아가게 만들고 만 것이다. 하지만 나는 지금 이 길이 후회스럽지 않다. 비록 지름길을 놔두고 에둘러 먼 길을 빙 둘러가는 어리석음을 자책할 때도 있긴 하지만 가급적이면 후회하지 않으려고 한다. 후회해봐야 달라지는 것은 없기에, 후회한다고 해서 그때로 돌아갈 수도 없을뿐더러, 지나간 과거를 붙잡고 후회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짓도 없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