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숙한 어른이 갖춰야 할 좋은 심리 습관
류쉬안 지음 | 다연
성숙한 어른이 갖춰야 할 좋은 심리 습관
류쉬안 지음
다연 / 2020년 5월 / 280쪽 / 15,000원
PART 1 감정 편: 유리멘탈과 이별하는 연습
남들이 너무하다 탓하지 말고 내가 유리멘탈임을 인정하라 남들이 자신을 인정해주지 않으면 불같이 화를 내며 그 어떤 비판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 조금만 조언을 건네도 온종일 우울한 기운을 발산하는 사람, 자신의 신경을 거스르는 SNS 댓글에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사람……. 이렇게 툭하면 평정심을 잃고, 깨지기 쉬운 유리처럼 쉽게 상처나 충격을 받는 사람들을 우리는 ‘유리멘탈’의 소유자라고 부른다. 물론 유리멘탈을 가졌다고 해서 이들에게 도덕적인 결함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다른 사람들과는 다를 뿐이다. 이들은 보통 사람들보다 타인의 시선이나 의견에 민감하다. 즉,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게 어떤 반응을 보이느냐에 따라 이를 자신에 대한 인정 또는 부정으로 받아들여 자존감이 오르락내리락한다. 어떤 일의 원인을 판단할 때도 환경적 요소 등 기타 요소와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는 ‘외적귀인’이 아닌 자신의 인격과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는 ‘내적귀인’의 성향을 보이는 편이다.
유리멘탈을 가진 사람은 비판을 받으면 상대가 자신의 능력이나 인격을 부정하고, 자신을 가치 없게 여겼다고 생각해 온몸의 가시를 바짝 세운 고슴도치처럼 행동한다. 이들이 자신의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보이는 반응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상대의 말에 끈질기게 반박하거나 역으로 상대를 공격하여 ‘네가 틀렸다. 사실 난 가치 있는 사람이다’라는 사실을 보여주려고 하는 것, 또 하나는 냉담하게 문제를 회피해버리는 것이다. 후자의 경우에는 상대와 논쟁을 벌이지도,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당장의 충돌을 피해 자신의 상처를 보듬을 곳을 찾으며, 때로는 자신을 부정했던 사람에게 숨어서 반격을 가하기도 한다.
‘유리멘탈’은 주로 후천적으로 형성되는데, 이는 어린 시절의 성장 환경과 매우 밀접한 연관이 있다. 예컨대 학자들은 성장 시기 아이들이 부모에게 과도한 통제나 사랑을 받게 되면 온전한 자아인지를 형성할 기회를 잃어 유리멘탈을 가질 확률이 높아진다고 말한다. 그 극단적인 예의 하나가 바로 중국의 ‘소황제(중국 도시에서 과보호를 받으며 자란 외동아이를 일컫는 말로, 단체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성인이 되어서도 다소 이기적이고 독선적인 경향을 보임)’다. 일부 부모는 자식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아이가 무슨 짓을 해도 그저 ‘괜찮다’를 연발하며 타인이 아이의 행동을 바로잡아주는 것조차도 용납하지 못하는데, 이렇게 자란 아이는 성인이 된 후에도 타인의 비판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된다. 또 다른 극단적인 예는 바로 소년범이다. 어려서부터 자신이 왜 혼이 나는지도 모르고 부모의 무분별한 폭언과 폭력에 시달리며 자란 아이들은 자책하는 성향을 가지게 되어 결국 자포자기의 마음으로 자신의 삶을 수렁에 빠뜨리기 십상이다.
한마디로 타인의 비판을 수용하고, 이를 자신의 성장 기회로 삼을 줄 아는 어른이 되려면 부모의 교육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따라서 부모는 훈육할 때, 이것이 아이의 잘못된 점을 바로잡아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도와주는 과정임을 아이에게 분명히 알려줄 필요가 있다. 그리고 누군가가 일부러 공격해온다고 생각될 때는 빙빙 돌려 말하거나, 역으로 상대를 공격하거나, 또는 속으로 삼켜 마음에 상처를 내지 말고, “네 말에 상처받았어”라고 자신의 불만을 표현할 수 있도록 함께 가르쳐줘야 한다.
아이의 성장 과정 중 이러한 훈련이 필요한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그래야 아이가 타인에게 비판받았을 때도 심리적 유연성을 발휘해 다른 사람의 피드백을 선의의 가르침으로 여기고, 발전 기회로 삼아 ‘진짜 확고한 자신감’을 기를 수 있다. 둘째, 원인이 무엇이든 유리멘탈을 가지게 되면 우울과 불안, 초조감에 시달릴 뿐만 아니라 타인에게도 부정적인 감정을 전파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쉽게 상처받는 타입이라고 해서 자신을 너무 못살게 굴 필요는 없다. 멘탈은 강화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멘탈을 강화하려면 먼
저 자각 능력을 키워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나를 공격하는 것 같아 불편한 순간이 오거든 먼저 이 불편함을 한껏 느껴보는 것이다. 그 느낌은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것이지만 내가 왜 이렇게 화를 내는지, 그럴 만한 일인지, 아니면 그저 관성적인 감정반응인지를 조금만 생각해본다면 그 불편한 느낌과 상대방의 말이 정비례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다음으로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예를 들면 내가 내가 아닌 제3자라고 가정하고 그 상황에서, 내가 어떻게 행동할지를 상상해보는 것이다. 비판의 대상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라면, 나는 그에게 뭐라고 조언을 건넬 것이며, 그 상황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이렇게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면 원래 느꼈던 감정들이 어느새 많이 누그러지게 될 것이다.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는 훈련 외에도 열린 마음을 가지려는 꾸준한 노력으로 상대의 의견을 단칼에 부정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생각해보라. 상대를 공격해 자신에게 무슨 실질적인 이득이 있겠는가? 또 무조건적인 회피가 자신에게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어쩌면 이 같은 극단적인 행동으로 파트너의 감정을 상하게 할 수도, 또 친구와 가족들에게 미움을 살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일할 기회나 사람을 잃는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그런 다음에는 상대의 말이 정말 좋은 충고는 아닌지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만약 상대가 정말 나에게 좋은 충고를 건넨 거라면 자신을 낮춰 대범하게 대꾸해보라. “정말 좋은 충고다. 앞으로 명심할게.” 이는 결코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는 행동이 아니다. 오히려 넓은 도량을 드러내며, 이성적으로 옳고 그름을 분별하고, 과감하고 깔끔하게 일을 처리하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심어줄 수 있다. 또한 상대의 의견을 인정함으로써 충돌 발생의 확률을 낮추고 호감을 높일 수 있다. 그저 “네 의견을 받아들일게”라는 말 한마디로 이렇게 많은 이점을 얻을 수 있다니, 기꺼이 시도해볼 만하지 않은가?
마지막으로 자신의 일 처리방식과 가치관에 대해 분명히 생각해봐야 한다. 그리고 상대가 나와 다른 입장을 가졌다면, 그 다름을 표현할 줄 알아야 한다. 상대의 의견이 자신의 원칙에 어긋난다거나 상대가 지나치게 주관적인 의견을 내세운다고 판단된다면, 감정적으로 어깃장을 놓을 것이 아니라 명확한 논리를 가지고 그와 대화를 해야 한다. 요컨대 상대의 생각을 지나치게 확대해석할 필요도, 감정적으로 대할 필요도 없다. 상대의 반응과 의견이 우리의 발전을 돕는 자양분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한편 유리멘탈을 가진 사람을 대할 때는 먼저 상대를 인정하고 그런 다음 다시 의견을 제시해 단편적인 논쟁은 되도록 피하며 ‘이는 너 자체와 무관하다’라는 점을 상기시키는 소통의 기술이 필요하다. 만약 상대가 나의 말에 반격을 가하며 자신의 주관을 고집한다면 ‘소통에는 적절한 시기가 필요하다’는 원칙을 기억하자. 상대의 생각을 돌려놓기 가장 어려울 때가 바로 당장 의견 충돌이 발생한 때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럴 때는 기지를 발휘해 문제 해결 방법부터 생각해야 한다. ‘유리멘탈을 가진 상대에게 나의 조언이 필요할까?’라고 자문해 봐도 좋다. 정말로 상대를 변화시키는 것이 자신의 의무라고 생각된다면 서로 차분한 마음을 가지고 있을 때, 논쟁이 벌어지지 않았을 때, 그와 이야기를 나눠보라. 부디 이 같은 조언이 당신의 감정반응을 좀 더 유연하게 만들어 지혜롭게 유리멘탈을 극복하는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
PART 2 자율 편: 삶의 규율을 정하는 연습
우리가 집착을 버리기 어려운 이유 아마도 누구나 새해맞이 대청소를 하다 치우고 치워도 샘솟듯 나오는 물건들에 ‘아, 집에 이렇게 많은 물건이 있었구나!’ 하고 새삼 깨닫게 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건 버리기 아까워서, 저건 기념할 만한 가치가 있으니까, 이건 비싸게 주고 산 물건이라 등의 이유로 결국 버리지 못하고 다시 서랍 속으로 향한 물건이 많지 않던가? 그런데 우리가 이처럼 쉽게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건 우리가 꼭 검소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불필요한 것을 끊고 버리고 집착에서 벗어난다는 일명 ‘단사리((斷捨離; 2011년 일본에서 유행하기 시작한 ‘끊고, 버리고, 떠나기’)’는 요즘은 ‘미니멀 라이프’의 한 개념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단사리’의 경지에 이르려면 확실히 수련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우리에게 불필요한 것을 끊어내지 못하고, 버리지 못하며,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일까? 심리학에서는 두 가지 이론으로 이러한 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
그 첫 번째 이론은 바로 ‘소유 효과’이다. 당신이 5만 원짜리 티셔츠를 구매했다고 가정했을 때, 당신에게 그 옷의 가치는 과연 딱 5만 원 만큼일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 티셔츠는 이미 당신의 것이 되었고, 당신의 마음속에서 5만 원의 가치를 넘어섰을 테니까 말이다. 누군가 그 티셔츠를 팔라고 하면 당신은 아마 ‘8만 원은 받아야지’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시 당신에게 “이 티셔츠를 얼마에 사시겠습니까?”라고 묻는다면 당신은 여전히 5만 원을 생각할 것이다. 자신이 어떤 대상을 소유하는 데 낼 수 있는 돈과 그 대상과의 이별에 낼 수 있는 돈은 언제나 차이가 나는데, 그것은 바로 소유 효과 때문이다.
물론 ‘이 티셔츠를 구매하기 위해 시간을 할애했으니 그 시간 또한 비용에 포함해야 한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는 합리적인 생각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소유 효과가 희한한 점은 바로 다른 사람에게 받은 물건에 대해서도 똑같이 과대평가가 이뤄진다는 사실이다. 행동 심리학자가 이런 실험을 한 적이 있다. 실험 대상자를 A와 B그룹으로 나누고, A그룹 사람들에게 커피를 마실 때 사용하는 평범한 머그컵을 선물한 후 “만약 누군가가 당신에게 그 머그컵을 사겠다고 한다면 당신은 얼마에 컵을 파시겠습니까?”라는 질문을 던진 것이다. 이에 A그룹 사람들이 제시한 가격은 평균 7달러 정도였다. 한편 B그룹의 사람들에게는 똑같은 머그컵을 보여주며 “만약 당신이 이 머그컵을 구매해야 한다면 얼마를 지불하시겠습니까?”라고 물었고, B그룹이 제시한 가격은 평균 3달러로 A그룹이 제시했던 가격과 곱절 이상의 차이가 났다. 결국 아무 대가를 지불하지 않았어도 자신의 것이 되면 그 대상의 가치를 높게 평가한다는 것이다.
소유 효과가 나타나는 이유 중 하나는 우리가 ‘상실’의 느낌을 좋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손실회피성’이라고 하는데, 이는 ‘끊고, 버리고, 벗어나기’를 어려워하는 우리의 심리적 현상을 설명해줄 두 번째 이론이기도 하다. 즉 이익과 손실의 규모가 같을 때, 우리는 이익보다 손실을 더 크게 느끼는데, 통계에 따르면 이 효과가 이익과 손실의 체감 차이를 2배에서 2.5배까지 벌여놓는다고 한다. 예컨대 실수로 1만 원을 잃어버리면 2만 원이나 2만 5천 원을 얻어야 1만 원을 잃어버린 상실감을 상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소유 효과와 손실회피성은 비단 우리가 물건을 사고팔 때뿐만 아니라 우리의 투자행위에도 영향을 주어 사회 전반에 간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예컨대 주가가 단기간에 상승할 가능성이 없거나 현재보다 더욱 하락할 것이 예상될 때도 투자자들은 대개 손절매를 하는 대신 언젠가 오르기를 바라며 기다리는 쪽을 선택한다. 손절매하지 않으면 ‘정말’ 손해를 본 것은 아니라는 생각에 추가 손실을 막을 결정적 시기를 놓치는 것이다.
결국 끊어내고, 버려야 할 때는 아무리 고통스럽더라도 즉각 행동에 옮겨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자신이 가진 것을 과대평가하고, 손에 쥔 것을 잃을까봐 두려워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면 사람과 일과 물건에 대한 집착을 버릴 수 있을까?
첫째, 손절 시점을 정하고 자신에게 시간을 주어 그 시간 안에는 반드시 불필요한 것을 끊고, 버리고, 집착에서 벗어나기 위한 결정을 내려보자. 과거 내 경험을 예로 들면 30분 안에 책꽂이를 정리하기로 하고, 초시계로 카운트다운을 설정해놓으니 시간적 압박에 좀 더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둘째, 추억이 가득 담긴 대상이라면 자신한테 이렇게 말해주자. 내가 연연하는 것은 대상 자체가 아니라 그 대상에 얽힌 추억이며, 기억해야 할 추억은 이미 마음에 새겨두었다고 말이다. 그러니 추억이 깃든 대상과 이별할 때는 그 감정을 인정하는 시간을 가져보자. 일본 최고의 정리 컨설턴트 곤도 마리에는 이렇게 조언한다. “당신과 여러 해 함께한 물건에는 감정이 실리게 마련입니다. 그러니 물건을 버리거나 다른 곳에 기부할 때는 그동안 함께해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전해보세요.”
셋째, ‘이 물건이 내 것이 아니라면, 나는 이 물건을 구매하는 데 얼마의 돈을 기꺼이 지불할 수 있을까?’를 자문해보자. 당시엔 그렇게 좋았던 물건이 지금은 누가 선물을 해준다고 해도 썩 달갑지만은 않을 것 같다면 아까워서 버리지 못할 이유가 뭐 있겠는가?
이는 내 실제 경험에서 우러난 조언이기도 하다. 언젠가 지인으로부터 선물을 받아 딱 한 번 사용한 스마트밴드가 있었다. 항상 책상 위에 놓여 있는 그 물건을 볼 때마다 왠지 내가 그 가치를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는 것 같아 아깝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볼 때마다 묘한 죄책감이 드는데, 굳이 저기 저렇게 둘 필요가 있을까?’ 그래서 나는 이 스마트밴드를 다른 친구에게 선물했고, 고맙게도 그는 나의 선물을 무척 좋아해주었다. 매일 착용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를 계기로 운동을 시작해 이후 이 스마트밴드를 차고 마라톤까지 완주했다. 그날 그가 피니시 라인에서 스마트밴드를 찍은 사진을 내게 보내주었는데, 그 사진을 보고 그에게 선물하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은 물건이라면 집에 쌓아두느니 다른 사람에게 선물하는 것이 낫다. 우리의 생활공간을 차지했던 물건이라면 분명 우리의 마음속에도 공간을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낡고 오래된 물건을 정리해 새로운 물건을 위한 공간을 마련해보자. 불필요한 것들을 끊고, 버리고, 집착에서 벗어날 줄 알아야 비로소 더 유연한 사고를 가진 보다 나은 내가 될 수 있다.
PART 3 이성 편: 편견에 휘둘리지 않는 연습
용감하게 무지를 인정하는 것은 일종의 슬기다 아주 먼 옛날 여우 한 마리가 산을 빠져나오는 길에 포도가 주렁주렁 열린 포도나무를 발견했다. 여우는 생각했다. ‘와, 정말 맛있겠다!’ 그러고는 포도를 따겠다는 일념으로 나무를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절반도 못 가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그렇게 두 번, 세 번, 네 번을 시도했지만 결과는 모두 실패였다. 한참 동안 포도를 올려다보던 여우는 씁쓸한 마음으로 돌아서며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저 포도는 분명 실 거야!”
『이솝 우화』에 나오는 신 포도와 여우 이야기다. 우리에게 친숙한 이야기지만 의외로 사람들이 잘 모르는 사실이 있다. 그것은 바로 이야기 속 상황이 현실에도 존재한다는 점이다. 이는 심리학의 주요 개념 중 하나인 ‘인지부조화’와 연관이 있다. ‘인지부조화’란 1957년에 심리학자 레온 페스팅거가 자신의 저서 『인지부조화 이론』에서 제시한 개념이다. 어떠한 일을 했을 때 그 결과가 예상과 달라 두 가지 이상의 모순되는 믿음이나 생각, 가치를 동시에 갖게 되면서 겪는 정신적 불편함을 일컫는다. 인지부조화 이론에 따르면 이러한 불편함을 없애기 위해 사람들은 흔히 3단 반응을 보인다.
첫째, 자신의 행동에 대한 인식을 바꾼다. 여우 이야기를 예로 들자면, 여우는 그저 포도를 따려 시도를 해본 것일 뿐, 정말로 포도가 먹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다고 생각했을 것이라는 얘기다. 둘째, 자신의 행동을 바꾼다. 이야기 속 여우가 포도 먹기를 포기한 것처럼. 마지막으로 셋째, 결과에 관한 생각을 바꾼다. 결국 마지막에 포도는 실 거라는 결론을 내린 여우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