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 한 번은 유대인처럼
자오모, 자오레이 지음 | BOOKULOVE
인생에 한 번은 유대인처럼
자오모, 자오레이 지음
BOOKULOVE / 2020년 5월 / 360쪽 / 16,000원
현실주의자의 지혜를 배우다
현명한 지혜는 독립적인 의식에서 출발한다 기원 전 586년, 유대 왕국을 멸망시키기로 결심한 바빌론 국왕은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예루살렘을 함락시켰다. 이로 인해 유대인 36만 명이 소위 ‘바빌론 유수(기원전 6세기에 신바빌로니아에 의해 정복당한 유대인이 바빌론에 포로로 끌려간 일을 뜻하다)’를 겪어야 했다. 바빌론 국왕은 자신의 뛰어난 은덕과 위대한 품격을 과시하려는 심산으로 포로로 끌려온 유대인들에게 최소한의 생존환경을 보장해주었다. 하지만 국가의 원수를 눈앞에 둔 유대인들은 엄청난 정신적 고통에 시달렸다. 독립적인 민족정신을 가지고 있었던 그들은 국가가 멸망한 치욕을 결코 잊지 못했다. 유대인은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타국살이의 설움과 근심을 『성경』시편에 써 내려갔다. 그리고 빈번한 모임을 통해 고향을 추억하고 모세로부터 전해져 내려온 율법을 연구했다.
그들은 민족의 앞날을 모색하고 타국에서 민족적 특색을 보전하는 방법을 탐구했는데, 이것은 유대 지식인들에게는 깊이 사고해야 할 중요한 문제였다. 이같은 사고방식이 있었기에 바빌론 제국이 멸망한 뒤, 유대인들은 고향으로 돌아가 국가를 재건할 수 있었다. 또한 예루살렘 성전의 중건과 부흥을 실현하고 생존에 대한 이성적인 반성과 경험을 축적해나갈 수 있었다. 뛰어난 자기인식 능력과 강한 소속감은 세계 각지로 퍼져나간 유대인들의 민족적 자긍심이 됐다. 유대 민족이 세대를 거듭하면 지켜온 전통 풍습과 신앙은 민족의 부흥을 이끌어낸 핵심 원칙이다.
1880~1890년대에 러시아와 독일을 중심으로 등장한 반유대주의 물결은 시오니즘과 유대 국가 수립 운동에 불씨를 지폈다. 그 과정에서 걸출한 사상가와 문학가가 대거 출현했고, 시오니즘은 그들의 단골 주제가 됐다. 문학계 대표 인물로는 이스라엘 히브리어 작가 슈무엘 요세프 아그논이 있다. 그는 1888년 헝가리 부차치의 한 유대인 가정에서 출생했다. 어린 시절 유대교의 영향을 깊이 받은 그는 여덟 살 때부터 매일 시를 한 편씩 썼다.
19세기 말, 유럽의 자산계급 유대인들은 시오니즘 운동을 활발히 전개했다. 그들은 세계 각지의 유대인들을 향해 팔레스타인으로 돌아가 국가를 수립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당시 청년이었던 아그논도 시오니즘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며, 1910년에는 예루살렘으로 이주했다. 그곳에서 그는 문학과 작품 집필에 몰두했다. 아그논은 유대 역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탈무드』에서 신화와 전설을 능숙하게 인용했다. 그는 생전에 60여 편의 작품을 완성했는데 단편소설이 주를 이루었다. 1966년 10월 20일, 스웨덴 한림원은 아그논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하며 다음과 같이 밝혔다. “그의 독특한 서사 예술은 유대인의 삶에서 길어 올린 것이다.”
아그논은 유대 민족 문화에 대한 진중한 태도로 그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서술함으로써 시오니즘의 깊은 뜻을 널리 알렸다. 그에게 예루살렘은 ‘태양’과 같았다. 유대 민족은 찬란한 역사와 문명으로 그를 길렀고 아그논은 글을 통해 풍부하고 섬세한 예술적 결정체를 창조해냈다. 그는 유대 문학이 독창적이며 쉽게 잊혀지지 않는 것이기에 다른 언어가 아닌 고대인이 사용했던 히브리어로 작품을 완성했다. 결국, 민족의 언어와 문학이 살아 있어야 문화도 명맥을 계속 유지할 수 있다!
민족 문화의 독립성을 지키는 일은 쉽지 않으며 문학은 하나의 무기에 불과하다. 민족 문화의 독립을 위해서는 사회 각계각층이 함께 힘을 모아야 한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유대인은 과거를 잘 잊지 않는 민족이다. 그들이 겪은 학살, 추방, 유랑의 기억은 가슴 깊이 새겨져 있으며, 타인으로부터 부정당하는 일에 강한 반발심을 느낀다. 또한 유대인은 사고력이 뛰어난 민족이다. 그들의 독자적인 사고 능력은 유대 민족이 세계에 안정적으로 뿌리내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선조들이 피와 눈물로 닦은 길은 후대 유대인에게 훌륭한 행동준칙이 됐다. 심지어 가족과 친구에게도 의존하지 않는 그들이 타국의 통치자라면 더 말할 것도 없지 않겠는가? 타국에서 내 땅을 한 뼘이라도 얻고 싶다면 의존할 사람은 오직 자기 자신뿐이다!
긍정의 사고방식, 좋은 생각이 좋은 에너지를 만든다
무화과나무와 두 노인 유대인은 근면한 태도와 성공이 밀접한 관계에 있다고 생각한다. 근면한 태도를 갖췄다고 전부 성공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근면한 태도는 성공을 위한 전제조건이라 할 만하다. 『성경』에도 근면함을 강조하는 구절이 종종 등장한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라.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어느 날,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가 땀 흘리며 일하는 유대인 노인을 발견했다. 노인은 열심히 구덩이를 파고 무화과나무를 한 그루 한 그루 심어나갔다. 황제가 노인에게 물었다. “그대는 이 나무에서 열린 열매를 수확할 수 있다고 기대하는가?” “열매를 수확할 때까지 제 목숨이 붙어 있지 않는다면 자식들이 그 기쁨을 누리겠지요. 어쩌면 신께서 그때까지 제 목숨을 앗아 가지 않을지도 모르죠.” “열매를 수확할 때까지 그대의 목숨이 붙어 있거든 내게 알려주게.”
황제는 노인에게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떠났다. 시간이 흘러 무화과나무는 노인이 살아 있을 때 풍성한 열매를 맺었다. 노인은 바구니에 무화과를 한가득 담아 황제를 찾아가 말했다. “예전에 무화과나무를 심던 늙은이입니다. 이 무화과가 바로 그 나무에서 열린 열매입니다.” 그러자 황제는 노인을 황금의자에 앉혀 대접히고 무화과를 담았던 바구니에 황금을 가득 채워 돌려보냈다. 대신들이 황제에게 물었다. “그 노인을 후하게 대접하고 황금을 하사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조물주가 근면하게 살아온 노인에게 영예를 안겼으니 황제인 나도 그리해야 되지 않겠느냐?”
한편 유대인 노인의 이웃 중에는 온종일 일도 안 하고 빈둥거리며 허송세월하는 남자가 있었다. 그의 아내는 황제가 노인에게 황금을 하사한 이야기를 듣고 남편에게 말했다. “황제가 무화과를 엄청 좋아하나 봐요, 당신도 황제에게 무화과를 바치면 황금을 받을 거예요.” 남자는 아내 말대로 바구니에 무화과를 가득 담아 궁을 찾아가 황제를 알현하길 청했다. 신하에게 남자의 이야기를 들은 황제는 크게 화를 냈다. “그자를 궁 앞에 세워두고 궁을 출입하는 자들은 그에게 무화과를 던지도록 하라.” 남자는 처참한 몰골이 돼 집으로 돌아왔다.
이는 유대인 사회가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는 사람을 배척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이야기다. 그만큼 유대인은 노동의 가치를 소중하게 생각하며 열심히 일하는 자세를 생존의 법칙으로 믿고 따른다. 『성경』에 나오는 천지만물 창조 이야기도 근면을 미덕으로 여기는 가르침의 원천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성공한 사람들이 지불한 노력의 대가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들의 화려한 모습과 명예로운 지위만 주목하고 그들이 흘린 땀은 생각하지 않는다. 일을 할 때 타인의 성과를 질투할 필요는 없다. 질투는 자신에게 어떠한 이익도 가져다주지 않는다. 그보다는 타인의 빛나는 모습 뒤에 가려진 힘겨운 노력에 주목해야 한다. 또한 남들만큼 충분히 노력하지 않은 자신을 반성하고 성실하고 근면한 자세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유대인이자 세계적인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어릴 때부터 뭐든지 느린 아이였다. 학교에 입학할 나이가 되어서도 또래 아이들보다 어눌하고 둔했고, 학교 성적은 늘 바닥을 맴돌았다. 선생님에게 호명돼 교과서를 읽어야 할 때도 그는 언제나 멍하니 서서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수학에 푹 빠진 뒤부터는 하루도 쉬지 않고 수학을 공부했다. 엔지니어였던 아인슈타인의 삼촌도 수학을 좋아했다. 어느 날, 삼촌은 종이에 직삼각형을 그리고 A²+B²=C²라고 적은 뒤에 조카에게 말했다. “이것이 바로 피타고라스 정리라는 거야. 2천 년 전에 이미 증명된 공식이지. 네가 한번 증명해보렴.” 기하학이 뭔지도 몰랐던 열두 살의 아인슈타인은 단번에 피타고라스 정리에 매료됐고 그것을 꼭 증명해보고 싶었다. 그는 몇 주일 내내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않은 채 수학만 생각했다. 그리고 3주 뒤 마침내 피타고라스 정리를 증명하는 데 성공했다.
성공은 우연히 이루어지는 게 아니며 태어나면서부터 성공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타고난 시기나 기가 막힌 운명 같은 것은 그저 결과만 보고 하는 말에 불과하다.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면 모두 근면한 태도로 최선을 다해 일한 대가로 성공이라는 열매를 수확했음을 알 수 있다. 즉, 최선을 다해 노력한 사람만이 좋은 성과를 얻을 수 있다. 유대인은 자녀가 힘들고 지쳐서 게으름을 피우고 싶어 할 때 이렇게 말한다. “너는 열심히 노력했다고 생각하겠지만 그건 착각에 불과해. 실제로는 노력 근처에도 미치지 못해. 인생은 경쟁이고 네 진정한 적은 바로 너 자신이야. 인생은 딱 네가 노력한 만큼 돌려받는 거야. 많은 걸 바란다면 더 많이 노력해야 해.” 지금부터라도 근면의 돛을 올리고 인생의 항해를 시작해보자. 중간에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르지만 근면은 우리를 성공의 땅으로 인도할 것이다. 우리가 흘린 땀방울이 앞날을 밝게 비춰줄 것이다.
역발상의 사고방식, 물길을 거스르기 어렵다면 따르는 것도 좋다
술은 술로 풀고 독은 독으로 풀다 오래전, 초원에서 유목 생활을 하던 유대 민족은 자연스럽게 생존을 위해 다양한 기술을 터득했다. 특히 맞불을 놓아 마을을 구한 이야기는 너무나 유명하다.
하루는 초원에 큰불이 나서 그 일대가 삽시간에 화염에 휩싸였다. 불이 난 곳에서 멀지 않은 초원에는 한 무리 유목민들이 있었다. 큰불이 일어난 걸 발견한 무리는 혼비백산해 사방으로 달아났다. 그때 오랜 시간 유목 생활을 하며 쌓은 지혜와 연륜이 느껴지는 노인이 큰 소리로 외쳤다. “살고 싶다면 제 말을 따라주세요.” 노인은 일단 사람들을 모은 뒤 초원의 풀을 전부 뽑게 했다. 활활 타오르는 거대한 불꽃이 서서히 다가오자 노인은 풀을 뽑은 자리에 불을 붙였다. 순식간에 노인 주변으로 거대한 화염이 벽처럼 솟아올랐다. 이 화염 벽은 사방으로 퍼져나갔고 초원에서부터 발화한 불꽃과 만났다. 신기하게도 두 개의 불꽃이 부딪치는 순간, 노인을 향해 다가오던 불꽃이 서서히 힘을 잃고 사그라들었다! 노인은 불꽃으로 불꽃을 진압하는 과학적인 이론은 몰랐지만 오랜 경험에서 쌓은 지혜로 맞불을 놓아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했다.
이와 같은 역발상의 이야기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전설적인 ‘투자의 귀재’ 앙드레 코스톨라니는 금융역사상 가장 성공한 투자자로 ‘유럽의 워런 버핏’으로 불린다. 그는 서른다섯 살에 평생 먹고살 만큼의 부를 쌓았지만 식지 않는 열정으로 독일 경제지 《카피탈》의 칼럼니스트로서 인생 2막을 시작했다. 코스톨라니는 그 일을 장장 25년이나 지속했다. 또한 그는 단기간에 부자가 되려면 부유한 배우자를 만나고, 유망한 사업 아이템을 갖고 투자를 한다는 단순하고도 분명한 원칙으로 유명하다.
앙드레 코스톨라니는 1906년 헝가리의 부유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양조장을 운영했고 어머니는 음악 애호가였다. 아버지는 쓰고 떫은 술이라도 건강에 이로울 수 있다는 사실을 코스톨라니에게 보여주었다. 코스톨라니는 아버지의 가르침을 깊이 새기고 돈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했다. 그는 돈이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며 절대 돈의 노예가 돼서는 안 된다는 철학을 갖게 되었다. 또한 투자는 힘들지만 이익이 늘어날수록 정신을 수양하고 이성적인 사고력을 키울 수 있는 일로 여겼다.
코스톨라니는 50세가 되었을 때 더 이상 도전할 목표가 없어 신경쇠약과 함께 깊은 우울증에 시달렸다. 그는 괴로워하던 끝에 친구인 정신과의사에게 조언을 부탁했다. 그에게 증세를 전해들은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의 성격을 그대로 물려받은 자네는 몸속에 쌓인 에너지를 발산할 곳을 찾지 못하고 있어. 그러니 무슨 일이든 하는 게 좋아. 자네가 육체노동자라면 나무를 베거나 돌을 운반하는 일로 에너지를 많이 소비하라고 하겠어. 하지만 자네는 고등교육을 받았으니 창조적인 일을 하는 게 낫겠군.”
코스톨라니는 친구의 충고를 듣고 아버지가 만들던 ‘몸에는 좋지만 쓴 맛이 나는 술’을 떠올렸다. 안락한 생활이 자신의 육체적인 고통을 없애주지 못한다고 판단한 그는 힘들게 일하는 게 더 낫다고 판단했다. 그렇게 코스톨라니는 칼럼니스트이자 작가로 두 번째 인생을 시작했다. 그가 집필한 열세 권의 책은 전부 베스트셀러가 됐다. 훗날 코스톨라니는 증권 세미나를 열어 자신의 투자 방법을 사람들과 공유하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다.
부와 명예를 얻은 뒤에도 치열하게 노력하는 사람들을 ‘다 이루고도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는 말로 폄하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이것은 지나치게 단편적인 관점이다. 오히려 고강도 업무를 할 때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 갑자기 일을 그만두면 정신적인 충격에 빠질 수 있다. 유대인 가문이 수십 년, 수백 년, 혹은 더 긴 세월 동안 재산을 축적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이 돈을 추구하는 행위를 초월해 부의 축적을 이성적인 사고 영역으로 승화시킨 데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기회의 힘, 모두에게 공평한 시간이라는 자원
기회를 잡고도 움직이지 않는 것을 경계하라 사람들은 영화제작사 워너브라더스는 알아도 창업주의 몸에 유대인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사실은 잘 알지 못한다. 10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워너브라더스가 남들보다 한 걸음 앞서간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워너브라더스 형제는 어린 시절에 아버지를 따라 폴란드에서 미국으로 이주했다. 영화에 남다른 애정이 있었던 워너브라더스는 성인이 되면 영화 산업에 뼈를 묻는 게 꿈이었다.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은 진작 알았다. 가장 빨리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남들보다 빨리 시장을 선점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1903년, 워너브라더스는 창업의 기회를 포착한다. 그들은 탄광촌 사람들이 돈을 많이 갖고 있어도 즐길 거리가 부족해 무료해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들은 영사기를 펜실베니아주와 오하이오주 일대 탄광촌을 돌며 노천에서 영화를 보여주고 돈을 받았다. 워너브라더스의 성공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시장에 뛰어들자 경쟁이 치열해졌다. 하지만 워너브라더스는 노천극장에 머물지 않고 또 다른 현상에 주목했다. 무엇보다 노천에서 운영을 하다 보니 관람객을 관리하는 게 매우 불편했다. 그들은 발 빠르게 경영 전략을 바꿔 영화관을 세웠다. 최초의 영화관이 문을 열면서 워너브라더스는 1923년에 드디어 어린 시절의 꿈을 실현했다. 자신들만의 영화사를 세우고 평생 영화 산업에 종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워너브라더스는 영화 산업에서의 성공에 안주하지 않았다. 만약 그들이 다른 기회를 완전히 포기해버렸다면 영화사는 대공황의 위기를 넘지 못했을 것이다. 1930년대, 미국에 심각한 경제 위기가 들이닥치자 영화 관람객이 대폭으로 줄어들었다. 워너브라더스도 생사의 갈림길에 서있었다. 당시 미국인들은 쏟아져 나오는 뮤지컬 영화에 심각한 피로를 느끼고 있었다. 그것을 기회로 생각한 워너브라더스는 신선한 소재와 새로운 표현 방식을 탐구했다. 워너브라더스는 과감히 뮤지컬 영화를 포기하고 사실적인 풍경을 담은 갱스터 무비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1935년, 워너브라더스는 영화 <캡틴 블러드>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기세를 몰아 <리틀 시저>, <공공의 적>, <신을 연기한 남자>를 잇달아 제작해 엄청난 흥행 수익을 거두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카사블랑카>, <요크 상사> 등 전쟁을 소재로 한 영화를 제작해 미국인의 애국심을 자극해 막대한 이윤을 챙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