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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 멈추고 싶지 않다

김경수 지음 | 이새


나는 아직 멈추고 싶지 않다

김경수 지음

이새 / 2019년 10월 / 280쪽 / 16,200원



설계 : 긍정은 역경을 이겨내는 힘




내 생애 최고의 순간


바람이 지배하는 땅, 굽이치는 광활한 대지, 지구상 가장 넓은 사막, 열사 위로 내리쬐는 태양열에 지상의 모든 생명체는 점차 동력을 잃어갔다. 모두가 나를 미친놈 취급했지만 나는 기어코 이곳 사하라 사막에 발을 들였다. 거친 모래바람이 방향을 잃고 거세게 몰아쳤다. 쇳소리를 품은 바람에 모래 능선이 꿈틀거리며 맥없이 뒤로 밀려갔다. 사막 레이스 4일째 정오, 모래와의 사투 끝에 그야말로 가관인 몰골로 빅듄을 기어 올라 정상에 섰다.

어린 시절 내겐 두 가지 꿈이 있었다. 하나는 화가, 또 하나는 제임스 본드 같은 국제적인 첩보원이 되는 것이었다. 서로 연관성이 없지만 나는 이 두 가지를 이루기 위해 꽤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그 꿈을 이루지 못했다. 어른이 되니 아주 특별한 인생을 살 거란 기대와 다르게 먹고사는 데 급급했다. 세상의 쓴맛과 현실의 무서움을 겪고 나니 적지만 또박또박 월급 받고, 정년이 보장된 9급 공무원의 길을 선택했다. 꿈을 접은 후 또 다른 꿈을 품지는 않았다. 그저 성실한 직장인으로, 가장으로, 그렇게 보통의 남자로 살아갔다.

그러던 2001년 가을 어느 날, 휴일에 남편들 대부분이 그렇듯 나도 소파에 드러누워 TV를 보고 있었다. 별 감흥 없이 브라운관에 그저 눈만 주고 있는데, 갑자기 프로그램이 바뀌면서 화면 가득 황량한 사막이 펼쳐졌다. 카메라가 서서히 클로즈업되자 멀리 짐승처럼 보이던 물체는 점차 사람의 형체를 갖췄다. 이들은 장딴지에 힘줄이 불끈 선 한 무리의 선수들이었다. 그들은 모래 먼지를 일으키며 어디론가 달리고 있었다. 그 순간 가슴에 한 줄기 바람이 불어 들며 굳게 잠긴 빗장이 ‘삐걱’하고 풀린 느낌이었다. 가슴이 두근거리더니 곧 격한 압박으로 변했다. 사막의 잔상은 가을이 다 지날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겨울이 오자 가슴앓이는 막연한 꿈으로 그려졌다. ‘그래, 저길 가는 거야~. 사하라 사막에…’ 청춘이 지난 39세, 중년의 목전에서 현실의 무게에 눌려 사그라졌던 꿈과 열정이 사막의 모래바람으로 인해 되살아났다. 그리고 이듬해에 나는 거짓말처럼 사하라 사막 아주 깊은 곳에 있었다.

종일 내 무릎을 꿇리려 안간힘을 쓰던 태양이 제풀에 지쳐 모습을 감췄다. 끝없는 사구 지역을 뒹굴다시피 달려 빅듄 정상에 올라서서 장엄한 사하라를 가슴으로 품었다. 온몸은 흙먼지와 땀으로 찌들고, 몽둥이로 두들겨 맞은 듯 욱신거렸다. 통증 때문에 잠깐 발목이 잡힌 듯했지만 다시 저녁노을을 향해 내달렸다. 내 안의 열정은 태양보다 뜨겁게 들끓었다. 광야 건너편 계곡 모서리에 걸친 저녁노을을 눈에 담았다.

그간 사막과 오지를 수없이 넘나들었지만, 지도책에서만 보아왔던 사하라와의 첫 대면의 기억은 17년째인 지금도 생생하다. 미국과 이라크 간 전쟁이 발발하고 사스가 창궐해 전 세계가 흉흉했던 2003년 4월, 사하라로 가기 위해 모로코 카사블랑카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렇게 도착한 사하라에서 오금이 늘어나는 고통을 안고 달리고 또 달렸다. 사막의 밤에 흙먼지와 콧물로 뒤범벅이 된 채 길을 잃고 헤맸다. 5박 7일 동안 243km를 달려 피니시 라인에 들어섰을 때의 감흥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사하라는 내 삶의 축을 뒤흔들어 버렸다. 사하라를 달리던 그 열정은 직장으로 뻗쳐 2007년 공무원 최고의 영예인 청백봉사상을 내게 안겼다. 남 앞에 서는 게 죽기보다 싫었던 나는 지난 경험담을 하나둘 풀어내다 대한민국 명강사 칭호를 얻었다. 매 순간이 영광의 순간이었지만, 단연 최고의 순간은 사하라 사막에 첫발을 내디딘 그 순간이다. 사하라를 다녀와 일상으로 돌아온 후 한동안 열병을 앓았다. ‘내 인생에서 사하라 사막은 어떤 의미일까.’ 빈손으로 갔지만 알 수 없는 무언가를 안고 돌아온 건 분명했다. 사하라와 인연을 맺은 후 시작된 나의 40대는 직장인과 모험가라는 두 축이 공존했다. 지금까지 17년째 지구상 곳곳의 사막과 오지를 달렸다. 지금도 여전히 달리고 있다. 사하라의 마력에 빠진 것이다. 거친 대자연 속을 달릴수록 나는 더 강해졌고, 나는 잘 익은 홍시처럼 무르익었다.

터키의 서정시인 나짐 히크메트는 <진정한 여행>에서 “가장 훌륭한 시는 아직 쓰이지 않았다. 가장 아름다운 노래는 아직 불리지 않았다. 최고의 말들은 아직 살지 않은 날들이며, 가장 넓은 바다는 아직 항해되지 않았고, 가장 먼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불멸의 춤은 아직 추어지지 않았으며 가장 빛나는 별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별”이라는 시구를 남겼다. 그는 퓰리처상까지 받았지만 그의 가치는 가장 마지막에 쓴 기사라고 했다.

유난히 무더웠던 2017년 여름, 무턱대고 마라톤 대회에 나갔다. 주로에서 엄청난 고통의 5시간을 보내야 했다. 왕년의 기록만 믿고 자만한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 볼리비아 우유니 사막을 달릴 때도 훈련 없이 갔다가 혹독한 대가를 치렀던 기억이 난다. 히말라야 임자체 정상 목전인 5,985m 설서면에서 정상을 마저 오르지 못한 채 발길을 돌려야 했던 건 여전히 마음 한 켠에 진한 아쉬움으로 남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속엔 주체할 수 없는 갈급함이 여전히 꿈틀거리고 있다. "그렇다! 내 생애 최고의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 나는 지금도 그 순간을 준비하는 현역이다. 나는 ‘러너’다."



너무 잘 산 인생이란


대부분 남편이 그렇지만 나 역시 월급은 모두 아내에게 넘어간다. 나는 별도로 받는 수당 중의 일부를 용돈으로 쓴다. 이걸 개미처럼 아끼고 아껴서 사막이나 오지로 가는 밑천으로 삼는다. 그러니 웬만한 자린고비 짓도 마다치 않는다. 옷이나 신발은 출정에 필요한 것 외에는 거의 사지 않는다. 기분 내키는 대로 뭔가를 사들이는 건 꿈도 꿀 수 없다. 그래도 나는 크게 불만이 없다. 비록 일면은 궁박해도 남이 가지 않는 길을 가고 있기 때문이다.

2012년 1월, 인도 남서부 케랄라 깊숙한 곳 뮤나에서 펼쳐진 대회도 마찬가지였다. 각국에서 모여든 선수들 틈에 끼어 지친 숨을 몰아쉬며 주로를 따라 달렸다. 그간 용돈을 아껴 경비를 마련하고, 직장 상사 눈치를 살피며 휴가를 얻었지만 연일 계속된 송년 모임과 겨울 한파로 운동량은 턱없이 부족했다. 대회가 설 연휴에 껴서 간신히 아내의 제가를 받았지만 호화로운 관광도 넉넉한 유람도 아니다. 오로지 극한을 쫓아 터진 발바닥 물집의 고통을 씹으며 달리고 또 달리는 여정이다.

밀림에도 태양이 이글거리지만 대기는 건조한 사막과 판이했다. 태양이 체내의 수분을 몽땅 뽑아낼 기세로 열을 뿜어내 가만히 있어도 땀이 비오듯 뿜어져 나왔다. 갈증이 가시질 않아 연신 물을 들이켠 나머지 물 조절에 실패했다. 벌레 떼가 머리카락 속까지 헤집고 다녀도 내버려 둘 수밖에 없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니 선수들 모두 비슷한 몰골이었다. 원주민들은 일그러진 얼굴에 다리를 절뚝거리며 마을을 지나가는 선수들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봤다. 아마 그들도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저 미친놈들…. 대체 여기서 뭘 하는 거야?’

주로에서 CP(Check Point)까지 남은 거리를 잘못 체크하면 물 부족으로 낭패를 당하기 십상이다. 레이스 셋째 날 CP1을 2km 정도 앞두고 물이 거의 바닥이 났다. 물통에는 한 모금 정도만 남았다. 2005년 고비 사막에서는 조금 남은 물을 시각장애인에게 먹이고 나는 목을 두른 버프에 밴 물기를 입술로 빨며 사막 한가운데서 4시간을 버틴 적이 있다. 지금 상황이 그때보다 녹녹하다고 속단할 수 없었다. 땀 배출과 갈증을 줄이기 위해 속력을 줄였다. 오전 10시 35분, 간신히 물통 뚜껑 정도의 물을 남겨놓고 CP1에 도착했다.

내 인생에서 무탈하고 안락한 시절은 인왕초등학교 3학년 때로 일찌감치 막을 내렸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우리 가족은 당시 서울의 달동네 중 하나였던 삼양동으로 이사했다. 그때부터 주식은 수제비가 되었지만, 우리 5형제는 아무도 불행하지 않았다. 회색빛으로 점철된 나의 젊은 시절, 기울어진 가계에 보탬이 되려고 오방떡 장사를 시작했다. 기왕에 시작한 사업이니 우리나라에서 가장 맛있는 오방떡을 만들고 싶었다. 그해 겨울, 장사 시작 전에 서울 명동에서부터 동대문까지 걸으며 시장조사를 했다. 특별한 맛이나 향이 나는 오방떡이 있으면 주인에게 비결을 꼬치꼬치 물으며 비법을 꼼꼼히 메모했다. 그리고 나서 10만 원의 자본금으로 오방떡 주물과 리어카, 반죽에 필요한 재료와 파라솔을 샀다. 수십 번에 걸친 시행착오 끝에 나만의 오방떡이 세상에 나왔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요즘 말로 대박이 난 것이다. 하지만 그 시절도 오래가지 못했다. 얼마 후 소집영장이 나왔기 때문이다.

그 시절에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인도 뮤나의 밀림 한복판에 내가 서 있었다. 돌이켜보면 이제껏 꿨던 꿈 중에 변변히 이룬 것 하나 없었다. 바닥까지 떨어지다 가까스로 살아남은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목표 했던 걸 이루기보단 목표 주변에 떨어진 낱알을 주우며 만족해했다. 화가의 꿈은 일찌감치 접어야 했고, 검정고시도 과락의 쓴맛을 봤다. 피 끓는 청춘의 대부분을 허비하다 간신히 대학에 들어갔지만, 남들보다 6년이나 늦었다. 국정원에 들어가려던 목표도 이루지 못했다.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에 설 때마다 좌절과 실패의 흔적만 남겼다.

순탄하기만 한 삶은 없다. 그런데 우리는 모든 좌절과 실패의 경험을 불행한 인생과 동일시한다. ‘꿈을 이룬 사람은 행복하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불행하다’라는 명제를 설정해놓고 모두 거기 빠져 허우적거리며 산다. 과연 그게 맞는 걸까? 인도 뮤나의 밀림 한가운데 서서 나는 나에게 물었다. ‘꿈을 이뤄야만 행복한가? 좌절을 겪으면 불행한가?’ 나는 꿈을 이루지 못한 사람이다. 좌절했던 사람이다. ‘그렇다면 나는 불행한가?’ 아니, 나는 불행하지 않다. 오히려 행복하기까지 하다. 누구든 올 수 있다. 하지만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나는 인도 뮤나에 오지 않았을 것이다. 밀림을 달리며 흙먼지와 땀으로 범벅이 된 채 나는 과거 여행도 함께 다녀왔다. 우리가 한평생 가장 잘 살았다고 말할 수 있는 인생은 자신이 처한 환경을 극복한 삶이 아니다. 인간승리의 드라마가 아니며, 좌절하지 않는 삶이 아니다. 나에게 주어진 환경 때문에 행복했다거나 불행했다고 생각하지 않는 삶이다. 누구 때문에 행복했다거나 불행했다고 생각하지 않는 삶이다. 그럴 때 그 인생은 너무나 잘 산 인생이다.



경계 : 도전, 일상의 틀을 벗어나라




고단한 사막의 하루, 어디 일상만 할까


레이스가 시작되기 전날 저녁, 만반의 준비를 했지만 아침 6시 기상부터 출발선상에 설 때까지 할 일이 많다. 출근을 위해 현관문을 나서기까지의 일과보다 더 복잡하다. 기지개 펴고 눈곱 떼기, 일어나 냉수 마시고 대변 보기, 아침 식사와 식기 세척, 양치하고 짐 챙기기, 선크림 바르기. 당연히 대변을 본 후엔 물티슈로 배설구 주위를 깨끗이 닦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종일 똑같은 몸동작과 흐르는 땀에 피부가 쓸려 레이스 중에 엄청난 고통을 겪게 된다.

서양 선수들은 고열량 초경량의 식량과 장비로 무장하지만, 밥심으로 달리는 내 배낭의 레이스 첫날 무게는 10kg을 훌쩍 넘긴다. 레이스는 대략 5박 7일 동안 260km를 달린다. 더구나 꼭 필요한 장비라면 불편을 감수해서라도 레이스 내내 갖고 다녀야 한다. 간혹 배낭의 하중을 견디지 못하고 식량을 모래 속에 묻어버리는 선수도 있다. 하지만 잘 먹고 싶다면, 그 배낭의 무게를 견디는 건 오로지 선수 자신의 몫이다. 코스에 관한 정보도 미리 체크해야 한다. 레이스 거리는 얼마 되는지, CP는 몇 개인지, 구간별 거리와 난이도는 어떤지, 혹은 강물을 건너는지, 급경사의 산악이나 빅듄이 있는지도 파악해야 한다. 각 구간별 제한 시간과 전체 구간의 제한 시간은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한다. 부상이 아닌 정보 부족으로 제한 시간에 걸려 탈락한다면 이보다 원통할 수 없다. 내가 갈 길을 알고 길 위에 서는 것과 멋모르고 쫓아가는 건 천지 차이다. 우리 인생사도 마찬가지다.

출발 신호가 떨어지면서 대자연과의 가혹한 교감이 시작된다. 엄청난 모래 산 빅듄, 끝이 보이지 않는 자갈밭 광야, 급경사의 산악지역, 무릎까지 차는 협곡 물을 만나면 나도 모르게 대자연에 압도된다. 50도에 육박하는 태양의 열기, 영하 10도까지 떨어지는 새벽 한기, 3000m가 넘는 고도를 달리면서 체력의 한계를 넘나든다. 그때 나는 가장 힘들었던 과거의 순간이나 소중한 사람과의 재회를 떠올리며 그 순간을 이겨낸다. 나의 한계는 내가 정한다. 하지만 물이 떨어지면 상황은 걷잡을 수 없다. 물은 생명이다. 그러니 출발 전에 충분히 챙겨야 한다. CP마다 물이 공급되지만, 체력과 난이도에 따라 CP와 CP 사이를 이동하는 시간이 1~2시간에서 3~4시간까지 되기도 한다. 주로에서 다른 선수에게 물을 구걸하는 건 강도 짓이나 다를 바 없다. 2005년 고비 사막 한가운데서 물이 떨어진 상태에서 2시간 넘게 헤맨 적이 있다. 그 후 나는 덤으로 배낭에 작은 물통 하나를 챙기는 습관이 생겼다. 내가 마실 게 아니라 비상용이다. 2010년 인도 뮤나의 밀림에서 물이 떨어져 흐느적거리는 독일 여자선수에게 그 물은 생명수였다.

주로에는 적당한 간격으로 푯대가 꽂혀있다. 하지만 한눈을 팔거나 딴생각을 하다가는 주로를 벗어나기 십상이다. 특히 갈림길에선 눈을 더 부릅떠야 한다. 예전에 북아프리카 모로코 지역 사하라 사막에서 길을 잃은 선수가 보름 만에 알제리에서 구조된 적도 있다. 물론 주로에는 7~12km 간격으로 CP가 설치된다. CP는 이탈 선수를 파악하고 물 공급, 기록 체크 그리고 선수들의 휴식 공간이다. 그런데 요즘은 선수들이 CP에서 물 보충하느라 잠시 머뭇거리긴 해도 쉬어가는 모습은 보기 드물다.

너무 힘들면 만사가 귀찮고 입맛이 없다. 체력의 한계는 외부환경 보다 어깨를 찍어 누르는 배낭의 하중 때문에 더 크게 느껴진다. 선수들이 하루 2000kcal 열량이 포함된 7일 치 식량과 생존을 위한 나침반, 칼, 라이터, 안티배넘 펌프, 응급세트 킷, 침낭, 깜빡이, 랜턴, 서바이벌 블랑켓, 선크림, 코펠, 방한모, 치약과 칫솔, 여벌의 옷과 양말 같은 선택장비를 레이스 기간 내내 반드시 지니고 있어야 한다. 어기면 패널티를 받거나 실격 될 수 있다.

종일 달리다 캠프에 들어오면 2L 물통 3개를 받아 들고 배정된 텐트로 찾아간다. 첫날부터 고된 일정을 소화하느라 발에는 물집이 잡히고 어깨가 부서질 듯 아프다. 그렇다고 누워만 있으면 낭패 보기 십상이다. 온몸에 찌든 흙먼지와 소금기를 닦아내고, 발가락 물집도 치료해야 한다. 그날 레이스의 강평과 다음 날 코스에 대한 브리핑도 들어야 한다. 숨 돌릴 겨를이 없다. 다음날 필요한 식량을 챙기고, 장비도 재정비해야 한다. 레이스는 체력 싸움이다. 저녁도 잘 챙겨 먹어야 한다. 먹히지 않으면 억지로라도 욱여넣어야 한다. 그래야 내일 또 달릴 수 있다. 사막에서 취사 연료는 마른 낙타 똥이나 잡목이 제격이다. 온종일 일정한 자세로 달리느라 굳은 근육을 풀어주는 스트레칭도 빼놓을 수 없다.

석양이 붉게 물들고 나면 금세 캠프 주변에 어둠이 깔린다. 이제야 한숨 돌릴 여유가 온다. 지금 캠프에 무사히 들어온 것에 감사하고 다음 날 레이스를 상상한다. 이제 막 달리기 시작했건만 집으로 돌아가는 여정과 일상의 단면이 머리에 맴돈다. 지금 내가 여기에 있는 이유를 내게 묻기도 한다. 절대 고독에 빠지면 잠을 설치기도 하지만 피로가 엄습할 때 나는 이미 잠에 빠져 있다. 사막의 하루가 길고 고단하지만 어디 일상만 할까. 사막의 환경이 위험하지만 어디 우리 사는 사회만 할까. 사막을 달리는 게 힘들지만 그래도 어디 험난한 인생을 살아가는 것만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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