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랜서지만 잘 먹고 잘 삽니다
도란 지음 | 원앤원북스
프리랜서지만 잘 먹고 잘 삽니다
도란 지음
원앤원북스 / 2020년 01월 / 296쪽 / 15,000원
CHAPTER 1 그렇게 프리랜서가 되었습니다
나의 자유로운 날들 - 어떻게 프리랜서가 됐냐고 물으신다면 대학 졸업 후 기자로 일하며 취재와 기사 작성으로 눈코 뜰 새 없이 지냈다. 그래도 좋았다. 워낙 하고 싶은 일이었고, 오래도록 동경했던 언론계에 내 자리와 명함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행복했다. 나를 비롯한 기자들에겐 취재 경험과 기사가 재산이었다. 이 재산은 당장 입금되지는 않아도 가슴속에 켜켜이 쌓이는 게 확실히 느껴졌다.
하지만 그 시절은 종이신문과 온라인 뉴스 사이에서 종이 신문을 유지하느냐 마느냐로 대세와 실랑이하던 때였다. 대부분의 언론사들은 재정적으로 어려웠다. 내가 다니던 신문사는 월급이 밀렸다. 한 달에 십만 원, 이십만 원씩 쪼개가며 돈을 입금하더니 퇴사할 무렵엔 이미 몇백의 급여가 밀린 상태였다. 다른 언론사로 이직을 고려했지만 귀동냥으로 들은 소식에 따르면 힘들기는 다른 언론사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나는 그토록 좋아하던 언론사 생활을 털고 다른 세계로 넘어왔다.
새로 취직한 곳은 프랜차이즈 기업의 마케팅팀이었다. 마케팅의 ‘마’ 자도 모르는 나였지만 기자 경력과 글쓰기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운 좋게 취직되었다. 주로 언론홍보를 담당하고, 사람들에게 보여줄 스토리텔링 콘텐츠를 만드는 일을 했다. 업무는 조금씩 늘었고, 나중에는 일하는 시간만큼 공부도 해가며 마케터로 성장해갔다. 그런데 마케팅을 해본 이들이라면 알 것이다. 새로 나오는 매체와 홍보방식은 차고 넘치는데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매번 숫자로 매겨지는 실적을 내기 위해 마케터들이 얼마나 피가 말라가는지. 이렇게 9년간 쌓여가는 회사생활에서 종종 의문이 일었다. ‘만약 내가 직업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회사라는 틀을 빼고 시작했다면 어땠을까?’, ‘정말 회사라는 도착지가 필수였을까?’
프리랜서로 전환한 계기는 마케터로 일한 지 5년 차에 들어선 무렵이었다. 매일같이 하는 야근과 그놈의 라인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 이직을 생각하고 있었다. 이직을 염두에 둔 곳은 인지도가 높고 규모가 큰 기업이었다. 집에서 좀 멀긴 했어도 근무환경이 상당히 좋은 곳이었다. 북악산이 병풍처럼 둘러싼 사무실 풍경, 언제든 질 좋은 아메리카노를 마실 수 있는 카페테리아, 현 직장에 비해 높은 연봉, 면접 시 마주친 이들의 고급스러운 차림새와 행동거지, 하나같이 다 마음에 드는 구석들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구석들 사이에서 흐릿하게 의문을 품었다. ‘이직만 하면 즐겁게 살 수 있을까?’ 현재 다니는 회사가 문제인 건지, 내가 회사생활을 버티듯 다니고 있는 게 문제인 건지 헷갈렸다. 저녁 6시가 되면 당연한 퇴근시간인데도 눈치를 보며 겨우 가방을 싸는 생활이 다시 이어지는 게 나를 즐겁게 할까? 일단 이직만 한다면 나는 더 많은 돈을 모으고, 더 멋진 일을 하며, 후배들로부터 존경받는 상사가 될 수 있을까? 이 의문에 나는 긍정적으로 답할 수 없었다.
그 멋진 회사는 면접에서 나를 통과시켰다. 얼마 후 합격을 통보하는 전화가 왔다. 하지만 나는 입사를 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차마 ‘회사 자체를 다니지 않겠다’라는 포부를 말 할 순 없었다. 그래서 엉뚱한 거짓말로 답을 하고 말았다. “지금 회사에 남기로 했어요. 정말 죄송합니다. 저보다 좋은 직원 만나시길 바랄게요.”
그러고 나서 며칠 뒤 나는 다니던 회사에서 짐을 쌌다. 그때 내 나이 서른넷이었다. 주변 사람들은 퇴사를 말렸지만, 나는 기어코 회사라는 구조에서 빠져나와 자유로운 노동자 신분으로 옮겨왔다. 물론 프리랜서를 시작한다는 건 아주 즐겁고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회사를 그만두고 ‘프리선언’을 할 무렵은 불면증과 초조함으로 늘 긴장된 상태였다. ‘나를 찾는 곳이 없으면 어쩌나’, ‘애매한 나이에 일을 그만뒀으니 재취직을 하고 싶어도 못 하면 어떻게 될까?’ 이런 상상이 나를 떨게 했다. 하지만 여러 번 생각해봐도 고통스러운 회사생활과 이직을 앞두고 나는 같은 선택을 했을 거라 예상한다. 그렇게 불안한 시간을 잠시 견디고 나니 프리랜서로 일하는 매순간이 내게는 꼭 맞는 편안함이었다.
프리랜서 생활은 올해로 5년째다. 보통 공공기관이나 기업, NGO 등의 일을 맡아 하는데,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형식에 맞춰 글을 쓰는 일이라 작가로 불리기도, 취재가 빈번하게 진행되니 기자로 불리기도 한다. 적게는 두세 군데, 많게는 다섯 군데 정도의 클라이언트와 일을 진행한다. 단기 프로젝트가 들어오면 프로젝트를 마치고도 일을 쉬지 않기 위해 더 많은 곳에서 일감을 받는다. 대응해야 할 클라이언트가 그만큼 늘어난다는 뜻이다.
나는 이제 일한 만큼 오롯이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는 프리랜서가 되었다. 좋고 나쁜 점이야 어느 직업이나 수두룩하니 회사생활과 프리랜서 생활의 경중을 따지는 건 의미가 없다. 하지만 지금 ‘회사’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목이 메고, 가슴속에 뜨거운 두부가 얹혀 있는 기분이 든다면 회사라는 네모 밖을 상상해보는 게 새로운 계기가 될 수 있다. 이 시대를 사는 방식이 오로지 ‘회사원’ 하나뿐만이 아니라는 것을 인지하기만 해도 우리는 꽤 괜찮게 살 수 있다.
일감은 어디서 구하냐고요? - 밥그릇을 채우는 네 가지 방법 일자리, 일감을 흔히 밥그릇이라고들 말한다. 직장인에게 직장에서의 제 자리가 밥그릇이라면 프리랜서에게 밥그릇은 일감이 아닐까? 직장인이 조직에서 자신의 책상 한 자리와 직함, 업무 영역을 보유하듯 프리랜서도 자신의 일감을 사수해야 한다. 프리랜서는 어떻게 일감을 구할까?
내 경험상 프리랜서로 일감을 구하는 방법은 크게 네 가지로 묶을 수 있다. 일단 보통의 직장인이 이직할 때와 마찬가지로 구직사이트에서 찾는다. 구직사이트에 접속해보면 고용형태에 당당히 ‘프리랜서’라는 항목이 있다. 프리랜서로 구인하는 경우는 정규직을 고용할 만큼 업무량이 꾸준하지 않지만 내부 인력으로 해결이 안 되는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구하는 케이스다. 혹은 업무 특성상 굳이 사무실에 모여 일하지 않아도 될 경우 고용과 정리가 유연한 프리랜서를 선호하기도 한다.
구직사이트를 통해 일감을 구하는 경우는 프리랜서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다. 갓 독립한 사람이 능숙한 세일즈맨처럼 영업을 할 것도 아니고, 적어도 기업이라는 믿음직한 형태의 조직으로부터 일감을 받고 싶으니 구직사이트를 찾을 수밖에 없다. 나는 프리랜서로 일을 시작하고 2년 정도 진행한 일감의 대부분을 구직사이트에서 찾았다.
그리고 사람들이 흔히 예상하는 일감의 루트는 지인의 소개다. 소개로 일감을 받는 경우는 있지만 그 수가 그리 많지 않다. 내 경우 정규직에서 프리랜서로 전환할 때 딱 한 번 소개로 일감을 받은 적이 있다. 남편의 친구가 운영하는 외식 브랜드의 SNS 콘텐츠를 만드는 일이었다. 아무래도 남편의 친구다 보니 대하는 게 조심스럽기도 하고, 혹여나 업무적으로 갈등하느라 중간에서 남편과 친구의 사이까지 흐리게 될까 걱정이 많았다. 다행히 남편의 친구는 공과 사를 잘 구별하는 사람이었고, 업무적으로 부딪힌 적도 별로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사이가 좋고 원활하게 일한다 한들 누군가의 소개로 일을 한다는 건 신경 써야 할 부분이 그만큼 늘어난다는 뜻이다.
내 생각에 가장 이상적인 일감의 의뢰는 함께 일했던 클라이언트로부터 다시 제안을 받는 경우다. 함께 일하며 이미 서로를 겪어봤으니 두 번씩 맞춰가며 간을 볼 필요가 없다. 고료 수준이나 결제방식도 다 알고 있으니 걱정도 덜하다. 한 번 일해보고 두 번째를 제안한다는 건 클라이언트가 그만큼 나를 신뢰한다는 뜻이니 몹시 감사한 일이고, 나의 업무방식을 크게 수정하지 않아도 되어서 안심이다. 클라이언트가 어떤 콘텐츠와 업무방식을 선호하는지 알고 있으니 그에 맞춰 일을 진행하고 마음 편히 고료를 받으면 된다. 또 두 번, 세 번씩 함께 일하는 동안 더 좋은 작업 결과를 전달하고 계약된 프리랜서로서 좋은 아이디어나 기획까지 제안한다면 튼튼하고 견고한 비즈니스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에이전시를 통해 일감을 얻기도 한다. 내가 에이전시를 통해 일감을 받은 건 1년도 채 되지 않았다. 작가와 클라이언트를 연결해주는 에이전시에 포트폴리오를 등록한 뒤 종종 일감을 소개받고 있다. 이 이야기를 하면 다시 질문이 따라온다. “에이전시는 얼마나 떼어가나요?” 이 질문에 대한 답만큼은 단언할 수 있다. “그런 건 묻지도 따지지도 말아야 해요.” 나라는 사람의 포트폴리오와 경력을 보고 클라이언트에게 소개하고 일감을 전해주는 에이전시다. 클라이언트가 제시한 고료에서 얼마간의 수수료를 떼어간들 그걸 아까워하고 흥정이라도 하려 든다면 에이전시와 일할 이유가 전혀 없다. 나를 믿고 소개하는 그들에게 고마움을 가져야 옳은 태도다. 얼마를 떼어갈지 궁금해 하고 전전긍긍하느니 그들을 믿고 함께 일하는 동료라고 생각해야 그 관계가 유연해진다.
보통 이런 방식으로 일감을 얻는다. 하지만 프리랜서가 일감을 사수하는 왕도는 없다. 일감을 구하는 방법은 각양각색이고 내가 아는 것은 한계가 있으니 누군가는 새로운 길을 개척할 수도 있겠다. 그런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도 프리랜서의 길을 가고 싶다면 못 할 것도 없다. 일감을 확신할 수 없는 세계임에도 불구하고 해볼 만한 마음이 든다면 지금 당장 오라. ‘각자도생’의 세계에 온 것을 환영한다!
Chapter 2 프리랜서로 살아보니 괜찮습니다
인싸 되는 법 - 자발적 아싸에서 은근한 인싸가 되어간다 인싸(인사이더의 줄임말)와 아싸(아웃사이더의 줄임말), 그중 나는 자발적 아싸에 가까운 사람이다. 사교성이 스펙처럼 통용되는 요즘, 아무래도 인싸형 인간일수록 어디서나 인기를 끌고 취직이든 업무든 유리하게 풀어가기 쉽다. 하지만 세상 모두가 쾌활하게 사교적이지 않다는 불변의 진리에 따라, 나는 아싸형 인간이 프리랜서로 살아가는 나름의 사정을 털어놓으려 한다.
고등학교 졸업 후 1년 재수를 거쳐 대학에 입학했는데, 이때부터는 자발적 아싸에 속했다.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바쁘기도 했고 소위 말하는 ‘캠퍼스 생활’보다 학점과 생활비가 중요했기 때문에 동기나 선배들과의 자리를 적당히 조절해가며 적정선의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정도였다. 집에서 학비와 용돈을 받으며 학교에 다니고 여가생활을 보내는 동기들과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았다는 점도 큰 요인이었다. 언젠가 같은 동기지만 한 살 아래였던 동생이 내게 했던 질문이 기억난다. “언니는 왜 자꾸 아르바이트를 해요?” 동갑내기에게는 이런 말도 들었다. “네가 자꾸 아르바이트한다고 일찍 가니까 친해질 수가 없어.” 내가 지금 가난해서 학교에 다니고 생활하려면 아르바이트를 반드시 해야 한다고 차마 말할 수 없었지만, 그날의 이질감은 졸업할 때까지 아싸로 살 수 있는 든든한 에너지가 되었다.
이런 자발적 아싸 성향은 회사에 다닐 때도 이어졌다. 회사생활을 하면 다시 층위가 나뉜다. 직급ㆍ부서 관계없이 웃으며 말을 섞고 회식에서 온몸을 불살라 인기몰이를 하는 인싸, 용건 외에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조용히 지내는 아싸, 모두와 잘 지내진 않지만 적당히 웃어가며 싫은 티를 내지 않는 중간 단계. 회사를 그만두면서 역할극은 그나마 정리되었지만 결국 프리랜서도 사회에 속하기는 마찬가지다. 직장 내에서 서열과 사내 분위기에 맞춰 성격을 관리할 정도는 아니지만 적어도 클라이언트를 대할 때, 업무상 담당자와 교류할 때, 나처럼 인터뷰와 취재가 빈번한 직업인 경우 낯선 이와의 대면에서 적당한 페르소나를 갖춰야 하는 건 어쩔 수 없다.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아싸의 기질까지 가감 없이 드러낸다면 클라이언트가 나를 다시 찾는 일은 기대하지 않는 편이 낫다.
그래서 인터뷰를 나가거나, 새로운 클라이언트를 만나거나, 취재를 함께 가는 낯선 동행이 있을 땐 내가 가진 가장 말끔한 페르소나를 꺼내 얼굴에 씌운다. ‘오늘의 나는 밝고 쾌활해. 구김 없이 예쁘게 자란 어른이야. 그러니까 즐겁게 이야기할 수 있어. 오늘 나는 다정할 거야.’ 이런 다짐을 입 안에서 곱씹으며 현장으로 향한다. 인터뷰 자리에서는 더없이 자주 웃는 얼굴을 보여서인지 그 덕에 인터뷰이들은 나를 따라 곧잘 웃는다. 젊은 사람이 싹싹하다며 칭찬하는 어르신들이 많고, 딱딱한 표정으로 시작했지만 속내를 스스럼없이 꺼내는 진솔한 인터뷰로 마무리되는 날도 많다. 업무 담당자들과는 처음엔 적당한 페르소나로 편안하게 지내다, 시간이 지나면서 진짜 내 모습으로 조우한다.
하루 종일 페르소나를 쓰고 있다가 집에 도착하면 쓰고 있던 페르소나를 마음속에 주섬주섬 챙겨 넣지만 이렇게 애쓰는 가운데 내가 은근한 인싸가 되어간다고 느낀다. 오늘 하루 구김 없던 내가 좋았다면, 수줍은 나는 잠시 잊고 상대방과 끊임없이 웃음을 터뜨렸다면, 그토록 바랐던 페르소나가 이미 내가 된 게 아닐까? 혼자 감내하는 게 익숙했던 삶에서 은근한 인싸로 변해간다고 느끼는 요즘, 사람들 주변에 겉돌던 나는 프리랜서로 살며 보다 단단해지고 있다. 단단해진 만큼 자연스럽게 인싸가 되어가고 있다. 굳이 페르소나를 꺼내지 않아도 웃을 수 있고, 진심으로 즐거운 인터뷰와 대화를 소유하는 현재는 내가 자발적으로 선택한 인싸의 길이다.
프리랜서 작가의 밥상 - 밥만큼은 온전히 벌어서 먹고 싶다 “글 써서 밥 먹고 삽니다.” 이 소개말은 들쭉날쭉한 수입과 자유로운 생활의 간극을 건강하게 버티게끔 하는 원동력이다. 어릴 적부터 제일 잘 하는 것, 그나마 ‘특기’란에 하나 적을 수 있었던 ‘글짓기’라는 단어가 몸서리치게 고마웠던 언젠가부터 시작된 이 자부심. 자음과 모음의 합을 이용해 쓴 무형의 것들이 실용적으로 쓰인다는 사실은 땅 위의 나를 단단하게 버티게 해준다.
내가 잡지사에 합격해 기자생활을 시작한다고 했을 때 가족들은 믿지 않았다. 월급을 받아오고 나서야 기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4년간 기자생활 후 잠시 다른 직군으로 외도를 하고 다시 프리랜서로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도 친정 식구들은 믿지 않았다. 이렇게 프리랜서 작가는 가족부터 주변 사람들까지 쉽게 보지 않는 직업이다. 어쩌다 전업 작가나 작가를 지망하는 사람들과 대화해도 마찬가지다. 누구 하나 글 써서 밥 먹고 사는 게 쉽지 않다. 글을 그저 생각한 대로 술술 나오는 게 아니라 공부도 하고 취재도 해서 머리와 마음에 뭔가 그득히 채워야 나온다. 엄청난 노동력이 집약된 일이다. 그럼에도 아주 유명한 작가가 아닌 이상 나를 비롯한 작가들은 언제든 적은 고료에 달달거리고, 어처구니없는 누군가의 무례함을 삭혀야 하고, 글쓰기 외의 부업으로 끼니를 챙겨야 한다.
이런 이유로 가끔 의기소침해지지만 대부분의 날들에 나는 ‘밥’을 잘 챙겨 먹기로 했다. 밥 벌어 먹기 힘든 직업인데, 밥마저 제대로 못 먹으면 내가 너무 불쌍해질 것 같아서였다. 수입이 들쭉날쭉하다며 개다리소반에 밥과 간장 종지만 올려 놓고 먹을 게 아닌 이상 끼니를 잘 챙겨서라도 자부심에 영양분을 줘야 한다. 이럴 땐 ‘밥만큼은 잘 먹어야지’ 하고 벼르는 마음과 ‘밥이라도 잘 해 먹어야지’ 하며 의기소침해지는 나를 위로하는 마음이 번갈아 든다.
그렇게 차리는 1인분의 밥상은 소박하지만 부실하지 않게 준비하려 애쓴다. 간단하게나마 내 욕구를 충분히 채워줄 수 있는 음식을 만들어 먹는다. 저녁식사는 남편과 하는 것이니 최대한 남편에게 맞춰 준비하고, 점심식사는 오로지 내가 먹고 싶은 것으로 궁리해 요리한다. 그렇다고 점심을 늘 혼자서만 먹진 않는다. 가끔 친구를 만나서 점심을 함께 먹거나, 화요일의 독서모임 후 다 같이 식사를 할 때도 있다. 그럴 때는 꼭 내 용돈으로 밥을 사 먹는다. 최소한 점심식사만큼은 꼭 내가 벌어 먹고 싶어서인지, 생활비로 나만의 점심 밥값을 내기가 싫다. 격주로 모이는 독서모임에서 사람들과 밥 먹으러 갈 때마다 내 앞에 놓인 음식을 보며 속으로, ‘오, 내가 벌어먹는 밥이로구나’ 하며 기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