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투의 편집
김범준 지음 | 홍익출판사
말투의 편집
김범준 지음
홍익출판사 / 2020년 4월 / 208쪽 / 14,800원
1장 선택과 집중으로 일상을 바꾼다
심플할수록 품격이 생긴다없애면 올라간다: 내 스마트폰은 최신형이다. 그래서 아주 많은 기능들이 있고, 넉넉한 메모리 용량은 기본이다. 그러니 애플리케이션을 아무리 설치해도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스마트폰의 첫 화면을 허전할 정도로 비워둔다. 전화, 메시지, 주소록, 카메라, 갤러리(앨범). 다섯 가지만 배치했다. 누군가는 불편하다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이것은 나만의 일상을 지키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다. 스마트폰의 애플리케이션을 바로바로 눈에 띄게 배치하는 게 생활의 편의를 위해 좋다고 말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지만, 나는 그들이 말하는 삶의 편의가 오히려 일상을 복잡하게 만들어서 싫다.
그래서 더 좋아진 점이 뭐냐고? 일상에 즉각 필요한 것보다 진정으로 중요한 것들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해야 할 것이 적어지고, 좋아하는 것들을 더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무식한 단순함이라는 말처럼, 나의 잘라내기가 이제는 괜찮은 간결함으로 레벨 업 되면서 삶의 품격이 상향 조정되었다. 복잡한 삶을 효율적으로 만들거나 내 삶의 품격에 도움이 안 되는 것들을 제거하는 일은 단지 스마트폰 정리만이 아닐 것이다.
말투는 바로 나: 나를 지키고 나의 일상을 품위 있게 만드는 일에 필수인 것이 있으니, 그건 바로 ‘말투’다. 말투의 사전적 의미는 한 사람의 말에서 드러나는 독특한 방식이나 느낌이다. 내가 하는 말, 그것을 담는 투. 말투를 보면 사람이 보인다. 장황하게 말하는 사람, 간략하게 말하는 사람, 욕을 섞어 쓰는 사람, 어떤 상황에서도 부드럽게 말하는 사람, 톡톡 쏘듯이 말하는 사람, 툭툭 던지듯 말하는 사람 등등. 우리는 각자 어떤 말투를 쓰고 있을까? 내 말투는 남에게 어떤 느낌으로 다가갈까?
관계 속에서, 나는 내 말투로 정의된다. 아주 일상적인 인사말부터 진심을 담은 이야기까지, 우리는 말, 때로는 글로 소통한다. 그래서 말투는 중요하다. 말투에 따라 나의 이미지가 규정되고, 관계의 질이 결정되고, 내 위치가 달라지고, 때로는 원하는 것을 더 손쉽게 얻거나 잃을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말투에 신경을 써야 한다.
누구에게나 호감인 완벽한 말투는 없다. 완벽한 사람이 없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누구나 말투를 좋게 다듬어 사회 속에서 더 나은 사람이 될 수는 있다. 그게 바로 말투의 편집이 필요한 이유다. 어떻게 편집하고, 디자인하느냐에 따라 내게 더 맞는 사람을 만나고, 더 즐거운 대화를 나누고,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
자기 자신을 믿고 침묵을 선택하라: 상대방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게 무엇인지는 무시한 채 내 마음대로 말해놓고, 그것이 상대방을 위해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 경우가 많았던 건 아닐까? 쓸데없는 말을 하느라 정작 해야 할 말은 했는지 안 했는지도 모르는 내가 보였다. 길고 길게 말을 마치고 난 뒤의 그 찜찜함. 나는 내 말과 말투의 문제를 고쳐야겠다고 절실히 느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상대방에게 답답함을 주는 불필요한 말들을 줄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렇다. 나의 말투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간결함이었다. 단순함이라고 표현해도 좋겠다. 필요 없는 말을 없애고, 필요한 말에 집중하기, 말투의 편집이 필요했다.
상담심리학의 원리에 따르면, 상담사는 내담자 스스로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잠재력이 있다고 믿게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만나자마자 “상담사는 해답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당신의 경험을 말씀해주시면 됩니다”라고 강한 어조로 못 박는다면 내담자는 오히려 더 많이 불안할 수 있다. 훌륭한 상담사는 내담자에게 관심과 호의를 갖고, 내담자의 마음이 열리도록 기다리며 꼭 필요한 말만 한다. 즉, 말을 줄인다는 것은 무작정 입 닫고 상대방 얼굴만 쳐다보는 것이 아니라 간결하고, 정확하게 필요한 말을 한다는 뜻이다.
말투 디자인에서, 심플해야 한다는 원칙을 지키기 위해 특별하게 멋진 말을 구사할 필요는 없다. 그저 문제의 본질을 깨닫고, 그것을 위해 가장 중요한 말을 최대한 간결하게 표현하면 된다. ‘명료하다’라는 말이 있다. ‘분명하고 또렷하다’는 뜻으로, 흔히 ‘간단명료하다’는 표현으로 쓰인다. 진리는 언제나 간단명료하다. 짧되 핵심에 집중하는 명료한 말투가 복잡한 문제를 간단하게 정리하고, 결국 나의 일상을, 나아가 나의 삶 전체를 수준 높은 형태로 디자인한다.
모든 사람이 이렇게 또렷한 말투를 쓰려고 노력한다면 세상의 대화는 좀 더 군더더기 없이 진실되고, 사람 사이의 오해와 갈등과 반목도 줄어들지 않을까? 성공철학의 거장인 나폴레온 힐(Napoleon Hill)은 이렇게 말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말을 해야 할지, 아니면 침묵을 지켜야 할지 망설이게 될 때 자기 자신을 믿고 침묵을 선택한다.” 여기서의 침묵은 역시, 아예 말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신중하게 생각해 간결한 말투로 말한다는 뜻에 가깝다.
2장 타인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말투 디자인
논쟁은 그만두고 제안을 하라대화에서 양보할 수 없는 자리에 서게 되면: 하나의 문제를 두고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감정만 상해가는 경험은 누구나 한 번쯤 해봤을 것이다. 문제 해결을 위해 대화를 하는데, 대화를 이어갈수록 해결은커녕 문제가 더 확대되니 미칠 노릇인 경우 말이다. 한 치의 양보도 없는 대립의 순간에는 약간의 물러섬도 패배로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그런 때일수록 서로에 대한 양보와 배려가 담긴 말투가 필요한데, 그게 이성적으로는 받아들여지지만, 감정적으로는 불가능에 가까우니 문제다.
내가 딱 그랬다. 해결을 하려고 대화를 시작했다면 해결로 끝을 내야 했는데, 오히려 해결과는 거리가 멀어진 채 감정만 상해서 다시는 볼 일 없는 상황으로 만들어버리는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A: 이게 아빠가 원하는 수준이라고 생각해? 열심히 한 건 알겠지만 이래선 곤란해.
B: 아빠, 저는 최선을 다한 거예요. 이 이상은 힘들어요.
A: 무슨 말이야. 더 이상 안 된다니!
B: 여기서 더 이상의 수준을 원한다면 감당할 수 없어요.
A: 뭐라고? 그만두겠다는 거야? 끝이라는 거냐고!
B: 저도 어쩔 수 없어요.
A: …….
여기서 A는 물론 나였고, B는 나의 아들이다. 난 아이가 천재이기를 바라지는 않았다. 모범생이기를, 효자이기를, 착하기를 원했다. 하지만 내 속내를 액면 그대로 드러낸 말투는, 아이들 앞에서 ‘나는 꼰대다!’라는 이정표를 내 얼굴에 스스로 붙인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식으로 해서 내가 얻어낸 건 ‘내 할 말은 다 했으니 이제 알아듣겠지?’라는 착각 가득한 후련함뿐이었다. 난 도대체 왜 그랬을까?
상담이나 거래에서 양보할 수 없는 자리에 서게 되면, 나는 늘 완강하고 투박한 말투로 상대방을 윽박지르는 걸 서슴지 않았다. 그러다 어이없어 하는 상대를 보며 내가 승기를 잡았다고 믿었다. 착각도 그런 착각이 없었다.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방향 전환을 할 줄 아는 말투가 대화에 최우선이라는 사실을 모른 채 나만의 방식에 취해 있었던 것이다.
나의 말에 대한 상대방의 침묵이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문제의 시작이라는 걸 몰랐다. 내가 원하는 답이 상대의 입에서 나오지 않았을지라도 겸허히 받아들이거나 겸손히 설득하려는 태도가 내겐 없었다. 나는 왜 싸우지 못해 안달이 나 있는 사람처럼 굴었을까? 얼마든지 대화의 방향을 전환하는 유연한 말투로 나 자신을 디자인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이제 나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고객님이 말씀하신 게 맞습니다. 저도 아쉬운 결과입니다. 경영기획팀과 심하게 다퉜는데, 겨우 이런 결과밖에 내지 못했습니다. 그 대신 만약 이 계약이 성사되면 후속 조치에 대해서는 최고로 대우해드리겠습니다. 한 번만 이해를 부탁드립니다.”
말투를 바꾸면 일상이 바뀐다: 상대가 아무리 부정적으로 나온다 해도 긍정적인 말로 응답해야 한다. 상대방이 혼란스러워 한다고 함께 정신이 없다면 아마추어다. 프로페셔널은 어려운 순간에도 내면의 흔들림을 바로 잡고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면서, 자신의 말투로 대화를 디자인할 수 있어야 한다. 다음은 내가 아는 한 부부의 이야기다. 그 부부는 10년 동안 살고 있던 아파트를 팔려고 했다. 그런데 마지막 순간에 사려는 사람과 티격태격하게 되었다. 구두로 얼마에 매수하겠다고 이야기가 나온 상황이었는데, 막상 계약하는 자리에 와서 다른 말을 하니 당연히 짜증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런 상황이 한 마디 말로 해결됐단다. 무슨 말이었을까. 참고로 팔려는 부부는 30대 후반이었고, 사려는 사람은 결혼을 앞두고 집을 보러 다니던 신랑의 어머니였다. 이미 매매가 협의가 끝난 것을 신랑의 어머니가 막판에 트집을 잡으며 깎으려고 하자 판매자인 부부의 기분이 상할 대로 상한 상태였다. 이때 파는 쪽의 남편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런데 어머니, 이 집은 이상하게 애가 잘 생겨요. 우리 부부도 아들 둘을 낳았고, 우리보다 머넞 살았던 부부도 애가 둘이었고요.” 마트가 가까워서 좋아요, 이 동네는 조용한 곳이에요, 지하철이 가깝습니다 등등. 많은 말을 해도 별로 관심을 갖지 않던 매수자의 어머니는 아이를 둘 낳았다는 말에 반색을 하며 당장 계약하자고 했다.
이 남자, 참 현명하지 않은가? 감정 섞인 날카로운 말로 대응하기보다 상대의 관심을 끌 수 있는 화제를 부드러운 말투로 꺼냈으니 말이다. 말투를 컨트롤 할 줄 아는 대화 디자이너로서 손색이 없어 보인다. 생각해보자. 이 경우에 커뮤니케이션 충돌의 이유는 단 하나, 돈이었다. 하지만 해결은 돈 그 자체가 아닌 다른 방법에 의해 이루어졌다. 문제의 핵심을 돈이 아닌 자녀로 전환한 순간, 모든 상황이 종료된 것이다. ‘말투의 힘’이 제대로 발휘된 순간이 바로 이럴 때가 아닐까?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한 번 더 생각해보고 차분하게 표현하는 말투, 주어진 이슈에 매몰되지 않고 좀더 넓은 시각에서 상황을 전환시킬 줄 아는 말투, 이런 것을 하루에 하나씩이라도 축적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3장 적절한 거리두기가 필요하다
적절한 소통은 적절한 거리에서 나온다그가 취업 면접에서 떨어진 이유: 의견이나 이해의 충돌을 우리는 ‘마찰’이라고 부른다. 따라서 원만한 인간관계는 마찰을 어떻게 없애고 적절하게 유지하느냐에 달려 있다. 인간관계에서 자신의 강점을 어디에 어떻게 발휘해야 힘이 되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자기 주변의 사람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고 있으며 어떤 불협화음이 있는지를 관찰하는 게 우선이다. 마찰은 보통 부정적인 의미로 여겨져서 마땅히 없애야 할 무엇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마찰이 없으면 무작정 좋은 것일까? 거꾸로 마찰 없는 인간관계는 무조건 유익하기만 할까? 오히려 마찰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상대와 적절한 거리를 두고, 관계를 원활하게 만들어나갈 수 있어야 한다. 적절한 거리를 두는 말투를 사용한다는 건 상대방에 대한 예의와 배려를 나타내기에, 자신의 소통역량을 내보일 수 있는 계기가 되니 말이다.
한 취업 사이트에 따르면, 구직자 3명 중 2명은 잘못된 의상 때문에 면접에서 떨어졌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고 한다. 이 말이 사실일까? 나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옷차림은 첫인상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고, 또한 경우에 따라서 ‘내가 이 회사에 입사하기 위해 이만큼 노력하고 왔다’는 것을 알리는 역할도 하기 때문이다. 물론 옷차림이 면접의 본질은 아니다. 면접은 지원자가 채용될 자격이 있는지 여부를 직접 만나서 확인하는 전형 과정으로, 예의에 어긋날 정도가 아니라면 옷차림이 결정적인 불합격 사유가 될 수 없다. 오히려 어설픈 포장 때문에 알맹이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 면접관이 있다면, 그런 회사야말로 수준 이하다. 정말로 옷차림이나 헤어스타일 탓에 불합격이 됐다면 혹시 탤런트나 모델 오디션을 본 것은 아닌지.
하지만 무엇보다도 면접에 임하는 구직자 입장에서 지켜야 하는 기본 중의 기본은 말투다. 태도가 겸손하고, 단어 하나를 구사하더라도 품위 있게 표현하고, 안정된 속도로 말한다면 플러스 점수를 받을 확률이 높다. 이것이 바로 말투의 힘이다. 따라서 면접을 단순히 시험이라고 여기지 말고, 낯선 사람과의 커뮤니케이션이라고 생각하는 편이 취업에 유리하다.
면접에서는 제한된 시간 내에 자신의 생각을 설득력 있게 펼칠 수 있는 대화의 기술이 필요하다. 이는 하루 이틀만에 터득할 수 있는 게 아니어서 평소 꾸준하게 훈련을 해야만 효과를 볼 수 있다. 면접에서 말을 잘했는데 떨어졌다고 억울해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런 사람들일수록 너무 장황하게 말을 한 경우가 태반이다. 자신을 부각시키기 위해 지나치게 말을 많이 하는 것은 독선적인 인상을 주기 쉽다. 이렇게 되면 훌륭한 답변을 해도 왠지 ‘잘난 척하는구나’, ‘말만 잘하는군’ 하는 정도로 평가되기 쉽다.
면접관이라는 낯선 상대와의 대화에서 적절한 거리, 적절한 태도를 유지할 줄 알아야 더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음을 명심하자. 면접은 완벽한 인간이 아니라 적임자를 찾는 시간이다. 상대와의 대화를 통해 거리를 좁히고, 나와 다른 생각이 마찰을 일으키는 것이 당연하다고 받아들이는 태도를 보인다면, 어떤 인간관계에서도 돋보일 수 있는 것이다.
존중은 적절한 거리두기에서 나온다: 독서 모임을 함께하던 어느 교사로부터 들은 얘기다. 어릴 적부터 한쪽 다리가 불편했던 그는 어른이 된 지금도 목발이 필요하다. 언젠가 그가 담담히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은 적이 있다. “초등학교 3학년 때였어요. 무척 더운 날이었죠. 목발을 짚고 지하철 계단을 올라가고 있는데, 누군가 한손에 들고 있던 저의 신발가방을 툭 잡아채더라고요. 깜짝 놀라 쳐다보니 어떤 아주머니가 서 계셨어요. 그런데 그분이 끌끌 혀를 차며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아휴, 불쌍해라. 아줌마가 도와줄게!’”
그는 계단을 어떻게 올랐는지 모를 정도로 모멸감에 휩싸였다고 회고했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성인이 된 지금도 여전히 그런 시선은 불편해요.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고, 그런 일을 겪을 만큼 겪었지만 여전해요. 누군가의 갑작스런 동정의 말이나 시선은 받아들이기 힘이 듭니다. 어릴 때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제는 그런 일방적인 동정은 적극적으로 거부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이제 완연히 성인이 되었지만 누군가 자신의 목발과 다리를 빤히 쳐다보는 시선은 여전히 불편하다고 말했다. 일방적인 동정이 섞인 시선은 폭력일 뿐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그런 시선에 고개를 푹 숙이거나 피하지만은 않는단다. 대신 당당히 대응을 해준다고 한다. “제가 그렇게 이상한가요?”
이제 그는 상대의 불필요한 관심으로부터 벗어날 줄 알고, 자신의 의지를 지키는 일에도 두려움 따위는 없다. 회피를 선택하는 대신 잘못된 상황을 만들어낸 상대방에게 주저하지 않고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직진을 선택한 것이다. 상대의 몸이 불편하고, 자기는 멀쩡하다고 해서 무조건 동정 어린 눈으로 바라볼 권리를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래도 나는 뭔가 해결되지 않는 느낌이어서, 그에게 다시 물어봤다. “그래도 어린아이가 힘들게 걷고 있는데 도움을 주고 싶을 수도 있지 않나요? 만약 그렇다면 어떻게 행동하는 게 좋은가요?”
그는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가 천천히 말했다. “우리처럼 일상에서 늘 타인의 시선에 괴롭힘을 당하는 사람들에게는 조금 조심스럽게 대해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냥 지나칠 수 없다면 ‘혹시 도와드릴 게 없을까요?’라고 다가서는 게 좋겠지요. 도움을 받는 사람의 자기결정권을 인정하는 게 우선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얘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