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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 1퍼센트 부의 지름길

김정한 지음 | 레몬북스


유대인 1퍼센트 부의 지름길

김정한 지음

레몬북스 / 2020년 4월 / 280쪽 / 14,500원



성공하며 가치 있게 사는 삶



그대, 부자가 되고 싶은가


『탈무드』에 보면 이런 말이 있다. “사람을 상처 입히는 세 가지가 있다. 번민, 말다툼, 텅 빈 지갑이다. 이 중에서 텅 빈 지갑이 가장 큰 상처를 입힌다.”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돈 없이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 효도도 하기 어렵고, 가족의 애정을 얻는 것도 사랑을 하는 데도 우정을 쌓는 데도 돈이 필요하다. 또 좋은 인간관계를 맺기 위해서도 돈이 필요하다.

물론 돈의 액수가 늘어난다고 해서 행복지수가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돈 없이 행복하기는 사막에서 오아시스 찾기만큼 어렵다. 그래서 누구나 부자가 되고 싶어 한다. 부자가 되면 돈에 구애받지 않고 입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가지고 싶은 것에서 모두 자유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 부자가 되려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탈무드』는 ‘부자는 부자의 사고방식으로 부를 실천하는 사람들’이라고 강조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가난한 사람의 앞줄에 있는 사람은 부자의 가장 뒷줄에 있는 사람보다 당장 돈이 더 많을 수는 있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의 습관이 몸에 배게 되면 시간이 흐를수록 가난해진다. 반대로 지금은 가난해도 부자의 줄에 서서 부자의 사고방식과 부자의 행동을 배우고 실천하면 부자의 습관이 만들어져 부자가 될 수 있다. 그러니 돈을 벌려면 가난해도 부자의 줄에 서라고 『탈무드』는 말한다.

가난하면서도 당당하게 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자본주의는 돈(money)이 최고라면서 삶의 비중과 초점을 돈에 두어 도덕 상실의 사회를 만들고 있다. 돈이라는 태풍에 휩쓸려 들 수밖에 없다. 사실 따지고 보면 돈은 도덕적으로 중립이다. 돈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라 그 돈을 사용하는 인간의 도덕성에 문제가 있을 뿐이다.

인구수 1,800만 명으로 한국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지만 미국 《포춘》지가 선정한 100대 기업 중 40%를 소유하거나 최고경영자를 맡고 있으며, 세계 억만장자 중 30%, 최상위 부자 40인 중 40%,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의 40%를 배출한 유대인들은 어린 자녀들에게 돈과 경제를 가르치는 것을 너무도 당연하게 여긴다. 갓난아기 손에 동전을 쥐어줄 정도다.

그들은 말한다. “가난은 집안의 50가지 재앙보다 훨씬 나쁘다”라고. 유대인들은 오랫동안 가난을 일종의 저주로 여겨왔다. “만일 세상의 모든 괴로움과 고통을 모아서 저울 한쪽에 올려놓고 가난을 다른 쪽에 올려놓는다면, 가난이 그 모든 것보다도 더 무겁다.” 빵 바구니가 비어 있으면, 불화가 찾아와 문을 두드린다는 것이다.

성공한 사람, 부자로 살고 있는 사람 중에 왜 유대인이 많을까? 그건 바로 어린 시절부터 읽어온 『탈무드』 때문이다. 『탈무드』 속에는 수요와 공급, 은행과 돈, 이자, 환율, 생산과 소비, 시장, 무역 등 우리 주변에서 흔히 사용하는 경제 용어가 가득 들어 있다.

유대인들은 돈을 버는 데 상당한 노력과 애정을 쏟는다. 부자가 되기 위한 하나의 목적으로 그렇게 하는 것은 아니다. 유대인들에게 돈이란 부자가 되어서 마음껏 물건을 사라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돈을 더럽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돈은 잘 살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기에 재정교육을 어릴 때부터 시킨다. 의식주와 더불어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수라는 것을 교육한다. 돈은 기회를 만들어주고 사람을 축복할 수 있는 도구라는 것이다. 그들은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 노력하고 힘들게 번 돈을 함부로 쓰지 않는다. 돈을 벌기는 어렵지만 쓰기는 쉽다는 사실을 항상 마음에 새겨 돈을 꼭 필요한 곳에만 쓰기 때문에 지출에는 늘 신중하다.

부자 유대인을 보면 아주 지독하게 검소한 구두쇠로 살아간다. 하지만 그렇게 힘들게 모은 돈을 꼭 필요한 곳에는 엄청난 액수로 선뜻 내놓는다. 이 정신은 남을 배려하는 기부정신으로 대대로 내려오고 있다. 이것이 바로 유대인들이 부자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부자가 되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먼저 검소한 구두쇠가 되라고 가르친다. “아끼고 또 아껴라!” 이것이 바로 부자 유대인들의 생활철학이다.

더 나은 미래를 준비하며 사는 삶



자신감의 출발은 희망이다


아들 넷을 둔 한 노인이 있었다. 아들 모두가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랐던 노인은 교훈을 주기 위해 여러 가지 이야기를 생각해냈다. 그중에서 한 가지를 소개한다.

어느 날 노인은 네 아들을 한자리에 불러 숙제 하나를 주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에 같은 배나무 한 그루를 관찰한 뒤 자신이 보고 느낀 점을 함께 나누는 것이었다. 네 아들은 각각 다른 계절에 배나무를 보았기에 느낀 점도 제각각이었다. 막내아들의 ‘보고’까지 듣고 난 노인은 네 아들을 다시 불러서 말했다.

“너희가 각자 본 배나무의 모습은 한 계절만의 모습에 불과하단다. 그리고 배나무는 계절마다 모습이 다르지. 우리가 살아가면서 의기소침해지고 실패할 때도 있지만, 즐겁고 행복할 때도 있는 것과 같은 이치야. 나무는 언제나 똑같은 나무이지만 계절은 늘 바뀐단다. 사람도 마찬가지여서 언제나 똑같은 우리이지만 마음이 시도 때도 없이 바뀌는 것과 같지.”

아들들은 아버지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들에게 남기는 아버지의 마지막 교훈이라는 사실도 깨달았다. 노인은 네 아들이 살아가면서 일시적으로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고 주저앉거나 반대로 갑자기 일이 잘 풀린다고 해서 초심을 잃고 오만해지지 않는 등 인생의 희노애락을 능동적으로 받아들이고 대응하기를 원했다.

인생은 마치 대자연의 사계절과도 같아서 만물이 소생하는 봄과 초록의 잎이 무성한 여름이 있고, 열매가 풍성히 맺히는 가을과 잎이 시들어 떨어지는 겨울이 있다. 『탈무드』에 나오는 이 우화는 단순하지만 깊은 교훈을 담고 있다.

봄의 싱그러움과 여름의 찬란함, 가을의 풍성한 수확을 안으려면 겨울의 혹독함을 견뎌 이겨내라. 일시적인 고통 때문에 미래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지 마라. 아무리 힘들어도 가슴 깊은 곳에 희망을 간직해야만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갈 수 있고, 칠흑같이 어두운 곳에서도 길을 계속 더듬어 나아갈 수 있으며, 마음에 간직한 목표를 향해 한 걸음 두 걸음 씩씩하게 나아갈 수 있다. 셰익스피어는 “불행을 치료하는 약은 희망뿐”이라고 했다. 희망은 마음을 치료하는 빨간 약이고, 고통이나 더 큰 불행도 치유할 수 있다.

유대인의 우화에 나오는 것처럼 배나무는 계절마다 모습이 다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의기소침해지고 실패할 때도 있지만, 즐겁고 행복할 때도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나무는 언제나 똑같은 나무이지만 계절은 늘 바뀐다. 사람도 마찬가지여서 언제나 똑같은 우리이지만 마음이 시도 때도 없이 바뀌는 것과 같다.

지혜롭고 이성적인 사람은 결코 부정적인 감정에 휘말리지 않는다. 부정적인 감정은 에너지를 낭비하게 만들고 스스로를 우울하게 하고, 심하면 건강까지 해친다. 부정적인 감정이 밀려오면 좋아하는 일을 하며 천천히 밀어내라. 그리고 ‘자신을 믿어라’, ‘마지막에 웃는 사람은 바로 나’라며 스스로 마인드컨트롤을 하라.

미래에 대한 멋진 풍경을 그리고 싶다면 유대인처럼 언제나 희망을 가슴에 품고, 때로는 평탄하지만 때로는 울퉁불퉁한 인생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라.

싫으면 하지 마라, 그러나 하려면 최선을 다하라


유대인들은 자녀를 가르칠 때 “싫으면 그만둬라, 그러나 하려면 최선을 다하라”고 가르친다. 동양에서는 공부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으로, 학교나 유치원은 ‘가지 않으면 안 되는 곳’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아이들은 공부하는 것, 학교 가는 것을 ‘의무’라고 생각하고 있다. 책임과 의무로 아이들을 옭아매는 것은 그들을 따분하고 싫증나게 한다. 어쩔 수 없이 가는 학교,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공부라면 즐거울 리가 없다. 유대인들은 “하기 싫으면 그만둬라, 그러나 하려면 최선을 다하라”고 가르친다. 동양권에서는 배움은 ‘의무’라고 가르치지만 유대인들은 배움은 책임이 따르는 ‘자유’임을 강조하고 있다.

유대인들은 아이들이 공부하기 싫어하는 것은 어른들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유대인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공부는 ‘달콤하고 즐거운 것’이라는 인상을 심어주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이스라엘의 초등학교에서는 등교 첫날을 공부의 ‘달콤함’을 학생들에게 가르쳐주는 날로 정해놓고 있다. 교사는 신입생에게 히브리어의 알파벳 스물두 자를 가르치는데, 꿀 묻힌 손가락으로 글자를 쓴다. 그러면서 이제부터 배우게 될 모든 것은 꿀처럼 달고 맛있는 거라고 얘기해 준다. 또 학생 전원에서 케이크를 나눠주는 학교도 있다. 맛있는 크림으로 만든 달콤한 케이크 위에는 히브리어 알파벳이 역시 크림으로 쓰여 있다. 학생들은 교사를 따라 크림 알파벳을 손가락 끝으로 더듬어가며 빨아먹게 된다. 결국 배움은 즐거움이고 달콤하다는 것을 가르쳐주는 지혜로운 노력이다.

어린아이는 스스로의 능력을 끝까지 추구한다. 어린아이는 부모들이 자신의 의사를 존중해 주면, 공부를 할 때도 자신의 능력에 따라 적극적으로 나서려는 의욕을 갖게 된다. 그 한 가지 예로, 러시아의 혁명가인 레온 트로츠키는 열 살 때부터 남보다 뛰어나고 싶다는 욕망을 품고 선생님도 풀지 못하는 어려운 문제를 들고 나와 선생을 곤경에 빠뜨리기 일쑤였다고 한다. 이렇듯, 자기 자신의 능력을 추구하는 데 지나치리만큼 열성적인 유대 어린아이들은 부모의 희망을 받아들일 때도, 자기 자신의 의사를 적극적으로 반영한다.

아이들의 장래에 대해 지나치게 기대감을 갖거나, 단시간에 교육에 대한 결과를 얻기 위해 재촉하여 아이들에게 강박증을 갖게 해서는 안 된다. 아무리 자식을 사랑한다 하여도 아이를 대신하여 공부하고 그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는 없다. 어디까지나 아이 스스로가 자신의 길을 발견하고 스스로의 능력에 맞는 길을 찾아 만족하며 살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것이 최선의 결과를 얻는 교육 방법이다.

부를 실천하며 사는 삶



왜 일을 해야 하는가


사람은 왜 일을 해야만 하는가? 속된 말로 ‘먹고살기 위해’ 일하는 것일까? 『탈무드』에는 “만약 인간에게 악의 충동이 없다면 집도 짓지 않고 아내도 얻지 않을 것이며 아이들도 낳지 않을 것이고 일도 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쓰여 있다. 노동의 가치에 대해 이야기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빌헬름 브르만은 “노동은 인생을 감미롭게 해주는 것이지 결코 힘겨운 짐이 아니다. 걱정거리가 있는 자만 노동을 싫어한다.”고 했고, 막심 고리키도 “일이 재미있으면 인생은 낙원이다. 일이 의무라면 그 인생은 지옥이다.”고 명확하게 노동에 대한 정의를 내렸다.

많은 사람이 롤 모델로 삼고 있는 빌 게이츠는 “인생이란 원래 공평하지 못하다. 그런 현실을 불평하지 말고 받아들여라. 세상은 당신이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하지 않는다. 세상이 당신한테 기대하는 것은, 당신 스스로 만족한다고 느끼기 전에 무엇인가를 성취해서 보여주는 것이다.”라며 왜 일을 해야 하는지를 지적하고 있다. 『탈무드』에는 어떻게 살아야 제대로 사는 삶인가에 대한 해답을 일을 하라는 메시지로 답하고 있다. “현재의 그릇인 몸을 열심히 사용하라. 내일이면 깨질지 모르니.”

유대인이 남긴 『탈무드』에도 일에 대한 말들이 많다. “우주는 다음 세 가지를 기초로 지탱되고 있다. 첫 번째는 『토라』, 두 번째는 노동, 그리고 세 번째는 친절을 베푸는 것이다.” ‘노동’에 해당되는 히브리어는 ‘아보다’이다. 이 단어에는 서로 상충하는 두 개념이 존재한다. ‘아보다’는 ‘노동’이면서 ‘예배’이다. 고대 히브리인들은 인간의 노동은 단순히 생계를 위해 하는 일을 넘어 신에게 예배하는 행위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일주일 동안 하는 일과 신을 경배하는 일은 분리할 수 없으며, 그것이 바로 신의 뜻이기도 하다고 여겼다.

건강한 몸으로 일을 할 수 있다는 건 어쩌면 축복이다. 일을 한다는 건 곧 행복이다. 다만 가진 것에 만족하고 하는 일에 감사하며 정성을 다할 때 행복을 느끼게 된다. 햄버거 가게에서 일을 하든, 거리에서 청소를 하든, 노동은 신성하다. 어떤 일을 하든 부끄럽게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일을 하는 데 있어 불행을 부르는 첫 번째 이유는 ‘내 탓’이 아니라 ‘남 탓’하는 거다. “부모를 잘못 만나서, 돈이 없어서” 지금의 내 모양이 이렇다는 식의 불평은 곧 자신을 망치는 지름길이다. 학교는 승자나 패자를 뚜렷이 가리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사회는 다르다. 일한 만큼, 노력한 만큼만 기대하고 만족해야 한다. 나 스스로 내가 선택한 일에 만족하며 그 안에서 원하는 것을 찾아야 한다. 내가 원하는 것을 남이 찾아주지 않는다. 무슨 일을 하든 자신과 싸우는 것이 가장 힘겨운 싸움이고, 자기 자신을 이기는 것이 가장 훌륭한 승리다.

40세가 넘으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게 링컨의 충고다. 링컨의 말처럼 젊었을 때 열심히 일해야 중년이 편안해진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원하는 만큼의 돈을 버는 사람은 지극히 드물다. 대부분 원하는 일이 아닌 일을 하며 많지 않은 보수를 받으며 성실하게 살아간다. 지금 하는 일, 지금 곁에 있는 사람, 지금 머무는 곳을 소중하게 생각하며 최선을 다해 살아갈 때 만족을 느끼게 된다. 일에 대한 행복도 대단하지 않다. 나를 필요로 하고 내가 할 일이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이다.

강자는 누구이고 약자는 누구일까?『탈무드』의 <강자와 약자>에 대한 예화를 보면 이런 이야기가 있다. “세상에는 약자이면서도 강자에게 공포감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네 가지가 있다. 첫째, 모기이다. 모기는 사자에게는 그야말로 공포의 대상이다. 둘째, 거머리이다. 거머리는 등치가 산더미만 한 코끼리가 봐도 징그러운 놈이다. 셋째, 파리. 아무리 사납다는 전갈도 파리에게는 꼼짝 못 한다. 넷째, 거미. 하늘의 날쌘돌이 매도 거미줄에는 공포감을 느낀다. 어떤 강자에게도 항상 천적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아무리 힘없고 보잘것없는 미물이라도 조건만 충분히 갖춰지면 강자를 이길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강자일까? 현실적으로 따지면 돈이 많은 사람, 권력을 쥐고 흔드는 사람,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에게 “당신은 강자로 살고 있습니까?”라고 질문을 한다면 뭐라고 대답할까? 아마도 남들이 강자라고 하지만 본인 스스로는 여전히 강자가 아니라고 말할 것이다. 그래서 더 높이 올라가기 위해, 더 많은 것을 가지기 위해, 더 많은 능력을 얻기 위해 애를 쓴다.

그렇다면 가장 강한 사람은 누구일까? 그것은 자신의 마음을 다스릴 줄 아는 사람이다. 사람의 육체는 마음에 의해 움직인다. 마음의 명령에 따라 보고, 듣고, 말하고, 쓰고, 서고, 걷고, 기뻐하고, 굳세어지고, 부드러워지고, 슬퍼하고, 두려워하고, 오만해지고, 남에게 설득되고, 사랑하고, 미워하고, 원망하고, 탐구하고, 도전하고, 반성한다. 결국 가장 강한 사람은 자신의 마음을 조절할 수 있는 사람이다.

언뜻 보기에는 힘이 세고, 권력이 많고, 가진 것이 많은 이들이 강자처럼 보인다. 물론 현실적으로 그들이 나의 생존권을 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은 그저 나보다 조금 많이 가졌을 뿐이다. 그렇다면 약자는 어떤 사람일까? 자신을 잘 모르는 사람이다. 내가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고, 어떤 감정을 지녔는지도 모르고 살아간다는 것은 때로는 허수아비와 같은 느낌이 들 것이다. 그저 내 욕구대로 같은 실수를 반복하면서, 자신을 반성하거나 성찰하지 못하는 것은 무지하기 때문이다. 자기를 모르는 사람은 이 세상을 가장 슬프고 위험하게 살아가는 약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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