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의 재발견
나카타니 아키히로 지음 | 북아지트
스트레스의 재발견
나카타니 아키히로 지음
북아지트 / 2019년 7월 / 264쪽 / 13,800원
CHAPTER1 스트레스 안에 기회가 있다
일의 초점을 ‘나’로 맞춰라장시간 일하는 건 나쁘다?: 최근 들어 일과 삶의 균형을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장시간 근무가 사회 문제로 치부되고 있다. 사회 문제로까지 번지게 된 이유는 ‘장시간 근무->좋지 않음->스트레스’라는 생각이 우리를 강하게 지배하기 때문이다. 일명 ‘워라벨’이 급부상하면서 그 반대편에 있는 장시간 근무가 사회의 악, 우리의 삶을 망치는 요소라고 여겨지고 있다. 하지만 장시간 근무를 스트레스로 잇는 건 너무 단순하고 평면적인 생각이 아닐까? 여기에는 스트레스의 본질이 빠져 있다.
아침부터 밤까지 밤을 새워 일하면서도 마이너스 스트레스를 느끼지 않고 위대한 업적을 남기는 사람이 많다. 벤처기업이나 스타트업 경영자는 모두 장시간 근무를 하고 있다. 개중에는 집에 가지 않고 사무실에 있는 간이침대에서 쪽잠을 자며 생활하는 사람도 있다. 출퇴근하는 시간을 아껴 일에 집중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이러한 사례는 빌 게이츠 등 유명 인물로부터 쉽게 들을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신기한 건, 그들 중 스트레스 때문에 힘들다거나 멘탈이 붕괴됐다고 호소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다.
예술가도 마찬가지다. 소설가도, 화가도, 조각가도, 밤낮이나 휴일에 상관없이 계속 일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스트레스로 느끼지 않는다. 운동선수는 스트레스가 쌓이면 더 힘든 훈련을 통해 스트레스를 극복한다. 일본 럭비가 강해졌다고 이야기하는 이유도, 선수들이 최근 이러한 방식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더 힘든 훈련을 통해 스트레스를 극복하는 것, 그리고 이를 통해 성장하는 것! 부인할 수 없는 성공 비법이다.
지금 나는 무엇을 위해 일하는가?: 문제는 장시간 근무 자체가 아니다. 본인이 원해서 장시간 근무를 하느냐, 아니면 어쩔 수 없이 근무를 하고 있느냐의 차이다. 원하지 않는 상태에서 어쩔 수 없이 장시간 근무를 하는 거라면 힘든 게 당연한 법이다. 이는 마이너스 스트레스로 쌓일 수밖에 없다. 지금 당신의 근무가 힘들고 피곤하다면, 그건 어쩔 수 없이 일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본인이 하는 일을 곰곰이 생각해보기 바란다. 누구를 위해, 무엇 때문에 일하고 있는지 말이다.
일의 목적이 돈이 되면, 사람은 마이너스 스트레스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반면 자신의 성장을 위해 일을 하면 같은 시간, 같은 일을 하더라도 스트레스는 플러스로 작용한다. 돈을 벌기 위해, 상사의 명령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하는 동안에는 마이너스 스트레스에서 절대 벗어날 수 없다. 반면에 예술가나 벤처기업 경영자, 운동선수 등은 자신의 성장과 미래를 위해 일을 하면서 플러스 스트레스를 받는다. 일하기 싫은데 어쩔 수 없이 일하는 게 아니므로 그때의 스트레스는 마이너스가 되지 않는다.
각자의 지난 경험을 떠올려보면 좋겠다. 직접 기획한 프로젝트를 밤새워 만들었던 짜릿한 날의 기억, 내가 진짜 하고 싶었던 일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혹은 더 잘하고 싶어서 쉬는 날에도 노력하던 그 날의 내 모습을…. 그때는 오랜 시간 책상에 붙어 있어도 화가 나거나 짜증이 나지 않았다. 지금 하는 일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오로지 그 사람 의식에 달린 일이다. 영어로 말하면 ‘job’과 ‘career’로 분류해 볼 수 있다. 자기가 하는 일을 ‘job’으로 생각하느냐 아니면 ‘career’로 생각하느냐에 따라 지금 받는 스트레스가 일류인지 이류인지가 정해진다. job이든 career든 스트레스의 크기는 동일하다. 다만 job 보다는 career 쪽이 마이너스 스트레스가 적은 것만은 분명하다. 스트레스를 플러스로 만드느냐 마이너스로 만드느냐는 오직 그 사람의 의식에 달린 일이다.
“지금 당신의 일! 잡(job)인가, 커리어(career)인가?”
스트레스 해소를 험담으로 하지 마라스트레스에 도움이 되는 대화: 이 세상에 스트레스 없는 일은 없다. 스트레스는 어떤 일을 하더라도, 심지어 자신이 그토록 원하던 일을 하더라도 반드시 고개를 내밀게 되어 있다. 따라서 중요한 건 스트레스를 쌓아두지 않고 부지런히 배출하는 일이다. 스트레스를 배출하기 위해 친구나 동료, 지인을 만나 이야기하는 사람이 많다. 아주 효과적인 방법이고 또 가장 쉬운 접근법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경우 한 가지 조심해야 할 일이 있다. 이야기가 길어지지 않도록 신경 쓰는 일이다.
친구와 술을 마실 때 처음 몇 분은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되는 대화를 나눌 수 있다. 내가 처한 스트레스를 입 밖으로 꺼내며 나쁜 기운을 날려버릴 수도 있고, 내 상황을 잘 알고 있는 친구와 함께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지 그 해결책을 논의해볼 수도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야기가 길어지고 대화할 소재가 고갈되면서 다른 사람의 험담이 태어날 수 있으니 각별히 신경 써야만 한다. 자신이 알고 있는 내용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하기 위해, 그리고 더 많은 공감을 얻기 위해 남의 험담이나 불평, 소문으로 대화의 공백을 채우게 될 수 있다.
스트레스를 쌓는 대화: 자기 생각을 말하는 동안은 스트레스를 배출할 수 있다. 하지만 자기 안에 있는 이야기가 아닌, 남의 험담이나 불평, 소문을 말하기 시작하면 어느새 말하는 일 자체에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이야기하는 동안에도, 이야기하고 집으로 돌아온 이후에도 생각이 정리되거나 마음이 홀가분해지기는커녕 묵직하고 불쾌한 기분이 내 몸과 마음을 지배한다. 술자리에서 그 순간은 해방감을 느낄 수 있지만, 알 수 없는 찝찝함이 달라붙어 스트레스는 더 거대해지고, 나를 더 지독하게 괴롭힌다. 죄책감이 생기기도 한다.
험담이나 불평, 소문이 나오려고 하면 재빨리 이야기를 끊고 자리에서 일어나야만 한다. 대화를 통해 스트레스를 발산하는 건 분명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대화가 길어지며 탄생하는 부정적인 이야기로 스트레스가 쌓이는 건 막아야 하지 않을까?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시작한 대화가 스트레스를 더욱 생산한다? 이보다 억울한 일은 없다.
“나는 오늘 누구를 만나 어떤 대화를 했는가?”
CHAPTER2 스트레스를 대하는 자세에 답이 있다
결과보다 과정에 집중하라일의 결과를 생각하느냐, 일의 과정을 고민하느냐: 스트레스는 그 시작점이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일류와 이류로 나눌 수 있다. “내가 기대한 결과를 얻을 수 있을까?” “내 노력만큼 대가가 돌아올까?” “사람들이 내 일을 높게 평가해줄까?” 이런 식으로 ‘결과’에 대해서만 고민하는 사람은 마이너스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다. “어떻게 하면 더 일찍 일을 마무리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일의 수준을 더 높일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고객을 더 만족시킬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상사의 일을 더 줄여줄 수 있을까?” 이런 식으로 일의 ‘의미’와 ‘과정’을 생각하는 사람의 스트레스는 플러스로 작용한다. 그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더 높은 성장의 계단에 올라가 있게 된다.
결과를 중요시하는 사람도, 과정을 중요시하는 사람도, 일하는 건 동일하다. 하지만 결과는 확연히 다르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남이 보기에도…. 같은 상황에서 결과에 목을 매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일이 끝날 때까지 그 결과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일할 때 더 고려해야 할 건 과정이다. 과정에 주목하면 일 집중도가 높아지고 자연스럽게 좋은 아이디어도 많이 떠오르게 된다.
결과가 아닌, 결과의 대책을 고민하라: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 선택한 직장은 광고회사였다. 나는 그곳에서 광고기획자로 일했는데, 그때 담당했던 어느 프로젝트에서 이런 질문을 받았다. “1만 명 수용이 가능한 행사장에 몇 명이나 올까요?” 아직 문도 열지 않은 행사장에 몇 명이나 올지 누가 알겠는가? 가장 좋은 건 1만 명의 행사장에 1만 명이 오는 일이다.
만약 5만 명이 몰려오면 사람에 떠밀려 누군가 다치거나 소방법 위반으로 신문 사회면을 떠들썩하게 만들 수도 있다. 단순히 “5만 명이 오면 어떡하지?” 걱정하는 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중요한 건 5만 명이 몰려왔을 때 입장을 어떻게 제한할지를 미리 생각해두는 일이다. 반대로 1만 명이 들어올 수 있는 행사장에 1천 명밖에 오지 않아도 큰 문제가 된다. 하필 이럴 때 사장이라도 오면 큰일이다.
불확실한 상황에서 안절부절못하며 조바심을 내는 사람은 이류다. 일류는 그렇게 되었을 때를 대비해 미리 작전을 세워둔다. 그러면 “5만 명이 오면 어쩌지?” “1천 명이 오면 어쩌지?” 밤새워 걱정하며 스트레스를 받을 틈이 없다. 결과를 예측해 걱정만 하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다. 결과에 대한 대책까지 미리 세워두면 결과가 어떻든 만족할 수 있지 않을까?
“중요한 건 결과 예측이 아닌, 그 결과를 예측하는 과정이다.”
도전하라, 실패하라, 그곳에 답이 있다실패는 포인트를 쌓아가는 일: 이류가 가장 두려워하는 게 무엇일까? 바로 실패에 대한 스트레스다. 그런 그들이 실패하지 않기 위해 짜낸 방법이 있다. 아예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거다. 그들은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실패하지도 않고, 스트레스도 받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는 지나치게 단편적인 생각이 아닐까? 설사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 하더라도 지금의 자리에서 꼼짝도 안하면 어느 순간 후배들에게 추월당하고 만다. 그러면 스트레스는 물론 자존감이 무너지고 무력감에 빠지기도 쉽다.
일류는 어떨까? 그들은 실패에 대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 예상과 빗나가더라도 그게 아무 의미 없지 않다는 걸, 그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무언가에 도전한 적이 없는 사람은 어디까지 가야 성공하는지, 어디에서 멈추면 실패하는지 그 경계선을 알지 못한다. 도전해본 사람만이 그 감을 찾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토스트를 구울 때도 마찬가지다. 친구에게 물어서 가장 좋은 시간을 아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다. 몇 초가 넘어가야 타는지 본인이 직접 실험해 봐야 한다. 그래야 머리와 손에 익힐 수 있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맛도 자연스럽게 알아갈 수 있다. 실패하는 일은 나 자신을 아는 일이기도 하다. 주변을 둘러보면 “나는 장점이 없다”, “나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르겠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 그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게 있다. 장점은 내가 한 무수한 실패 속에 숨어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실패는 노하우로 쌓인다. 실패를 많이 했다는 건 그만큼 포기하지 않고, 주저앉지 않았다는 걸 의미한다. 그만큼 본인이 그 일을 좋아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내가 한 실패를 적어보자. 그곳에 있는 나는 누구인가?”
CHAPTER3 스트레스를 즐기면 차이가 생긴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마라, 마음껏 버려라버리느냐, 소유하느냐: 이류가 유난히 두려워하는 게 한 가지 있다. 바로 변화다. “지금까지 살아온 나 자신을 유지하고 싶다.” “지금까지 쌓아온 그 무엇도 잃고 싶지 않다.” “아무것도 버리고 싶지 않다.” “아무것도 바꾸고 싶지 않다.” 이류는 지금까지의 전부를 버리고 싶어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은 알아야 한다. 결국에는 그 마음이 이류에게 커다란 스트레스로 작용한다는 걸 말이다.
그런 사람은 방도 쉽게 정리하지 못한다. 나중에 사용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 무엇도 함부로 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집착은 스트레스로 변할뿐더러, 여유 없이 꽉꽉 들어찬 물건을 볼 때마다 가슴이 꽉 막힌 듯 답답해지기도 한다. 일류는 어떤 물건이라도 태연하게 버릴 수 있다. 버리는 일에 오히려 쾌감까지 느낀다. 비록 필요한 물건일지라도, 없어도 괜찮다고 여길 만큼 물건에 집착하지 않는다.
어느 조직이나 ‘리더’ 자리에 앉은 사람은 스트레스로 똘똘 뭉쳐있다. 조직의 크기와 상관없이 리더는 언제나 스트레스 덩어리다. 그만큼 임무가 막중한 자리다. 그런 리더가 가장 잘해야 하는 건 바로 버리는 일이다. 크게 벌리고, 일을 자꾸 늘리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결코 좋은 리더가 될 수 없다. 좋은 리더는 손을 떼야 할 때를 알고 과감하게 앞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이다. 그래야만 아래 직원에게 존경받을 수도 있으며, 프로젝트에서 깔끔한 성과를 낼 수 있다.
버려야만 나아갈 수 있다: 성장하고 싶어하면서도 변화를 두려워하는 사람이 있다. 지금까지 배워온 게 제로로 돌아갈까 두렵기 때문이다. 새로운 사고방식을 받아들이면 과거의 사고방식은 금세 진부해진다. 그러면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과거의 방식을 버리고 새로운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 하지만 이류는 그렇게 할 수 없다. 지금까지 가졌던 사고방식을 잘라버리는 일에 정신적인 저항까지 느낀다. 이게 바로 이류의 스트레스다. 이러한 마음 상태로는 어떠한 조언도 받아들일 수 없다. 새로운 조언을 받아들이면 지금까지 가졌던 생각을 몽땅 버려야 하기 때문이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버리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고 움찔거리지 않는다. 과거를 버리는 일이 지금까지의 시간을 버리는 일이 아님을, 더 값지게 하는 일임을 알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런 사람은 계속 성장할 수 있고 일류의 길로 나아갈 수 있다.
스포츠 선수도 마찬가지다. 최고의 선수가 되기 위해 힘들게 자세를 만들었다고 하자. 그런데 그 자세로는 더 높은 목표에 도달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어느 날 알게 되었다. 이 상황에서 일류와 이류는 각각 어떻게 반응할까? 일류가 되느냐 이류에 머무르느냐는 지금까지 만든 자세를 버릴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있다. 새로운 자세는 지금의 자세에 덧씌울 수 없다. 지금을 버려야만 새로움을 얻을 수 있다.
지금의 자세를 버릴 수 없는 사람은 그 자리에서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다. 지금의 자세를 버릴 수 있는 사람만이 한계를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나는 오늘 무엇을 버렸는가?”
상대를 바꾸려 하지 말고 나 자신을 바꿔라상대를 바꾸느냐, 관계를 바꾸느냐: 힘든 상황에 처했을 때, 환경이나 상대를 바꾸려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은 이류에서 벗어날 수 없다. “상사가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데 어떻게 하면 상사의 마음을 바꿀 수 있을까요?” 가끔 이렇게 묻는 사람이 있는데 상사를 바꾸는 건 불가능하다. 남의 조언에 의해, 더구나 부하직원에 의해 바뀔 사람이었다면 벌써 바뀌지 않았을까? 우리는 상사가 더 오랜 시간을 살아왔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오래 살아서 더욱 확고해진 생각을 누가 바꿀 수 있을까? 당신이 진정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만약 상사가 자신의 단점을 인정하고 있다면 더 큰 문제가 된다. 바꾸고 싶은 의지는 있지만 바꿀 수 없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런 단점을 부하직원이 바꿀 수 있을 리는 만무하다. 친구가, 가족이, 본인도 바꿀 수 없었던 단점을 부하직원이 무슨 수로 바꿀 수 있으랴. 그런 경우에 일류는 이렇게 생각한다. “이 상사와의 관계를 어떻게 바꾸어야 할까?”
나를 바꾸는 게 성공하는 길: 이직에서 실패하는 사람의 유형이 있다. “환경을 바꾸면 어떻게든 해결될 거야”라고 안이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환경을 요리조리 바꾸어도 자신이 바뀌지 않으면 결국 결과는 똑같을 수밖에 없다. 반면 환경이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환경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바꾸는 사람은 이직에 성공할 수 있다. 자신이 바뀌면 환경이 바뀐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상사의 마음을 바꿀 수 있을까요?” 이런 식으로 상사의 단점을 지적하는 사람은 이류다. 일류는 상사의 단점이 아니라 자신의 단점을 지적한다. “지금까지 이렇게 생각했는데, 상사의 말을 들어보니 이런 식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겠군.” “이렇게 대응할 수도 있겠군.” 자신의 행동을 되돌아볼 수 있는 사람은 일할 때 스트레스를 느끼지 않는다. 일하다 보면 상사가 무리한 요구를 할 때도 있다. “내일 중으로 새로운 기획안을 내놓게!” 그럴 때는 이렇게 생각해보는 게 어떨까? “오늘 중으로 정리해볼까요?” 상대의 기준보다 자신의 기준을 높이면 스트레스는 저절로 없어지게 된다. 남이 주는 스트레스를 내가 주는 스트레스로 바꾸어 행동해보면, 그 변화가 주는 성장을 스스로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