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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분 안에 말하라

사이토 다카시 지음 | 라이스메이커


1분 안에 말하라

사이토 다카시 지음

라이스메이커 / 2019년 7월 / 224쪽 / 14,000원



1장 1분 감각 익히기



1분은 짧지 않다


나는 항상 스톱워치를 가지고 다닌다. 대학교 수업에서도, 사회인 대상의 세미나에서도 내 강의는 이것을 눌러야 비로소 시작된다. ‘1분’의 중요함을 아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1분이라는 시간은 일반적으로 짧다고 여기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특히 나에게는 아주 긴 시간이다. 그만한 그릇이 있다면 그 안에 다양한 이야기를 담을 수 있다. 그런데 대부분 사람들은 그 그릇을 군데군데 빈 채로 내버려둔다.

예컨대 3분이라는 시간이 있다면 1분에 전달할 수 있는 내용에 3분을 들이게 된다. 시간을 세 배로 묽게 하는 셈이다. 이렇게 되면 1분에 끝낼 이야기의 세 배를 준비해야 한다. 대학생이나 직장인을 대하다 보면 ‘밀도 감각’이 결여된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다. 역시 1분을 단순히 ‘짧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그런 까닭에 서론이 상당히 길어지기도 한다. “제대로 전달될지 모르겠는데……”라든가 “1분이라는 짧은 시간에 무엇을 어떻게 이야기하면 좋을지 망설이다가……” 등 변명 같은 말로 시작하는 패턴이 많다. 혹은 좀처럼 본론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라쿠고(만담과 비슷한 형태의 일본 전통 예술-옮긴이)처럼 서론이 긴 사람도 적지 않다. 그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하면 물리적으로 무리가 따른다. 서론에 30초나 들이면 본론이 30초로 끝나버리기 때문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1분의 밀도를 철저히 올려가는 연습이다. 이를 통해 먼저 ‘고밀도’라는 감각을 몸에 익혀나간다. 그러고 나서 그것을 2분에서 3분으로 늘려가면 그 안에 담긴 정보량은 방대해질 것이다. 물론 이야기에서 중요한 것은 정보만이 아니다. 분위기를 정돈하고 마음을 설레게 하여 흥미를 유발하는 아이디어도 필요하다. 다시 말해서 단순히 밀도만 높으면 된다는 뜻은 아니지만, 밀도 감각은 현대인에게 반드시 필요한 커뮤니케이션 도구다.

스톱워치만 사용해도 일이 빨라진다


앞서 말한 대로 ‘1분 감각’을 익히려면 먼저 스톱워치부터 준비해야 한다. 손목시계의 스톱워치 기능이 아닌 운동 시간을 측정할 때 쓰는 진짜 스톱워치가 좋다. 꼭 비싼 것이 아니어도 괜찮다. 다만 글자나 버튼은 큰 것이 사용하기에 편리하다. 이것을 항상 책상 위에 꺼내두면 이제부터 ‘스톱워치 생활’이 시작된다.

사실 공부나 비즈니스는 스톱워치와 매우 잘 어울린다. 반면에 데이트할 때 스톱워치를 꺼내 든다면 아주 난감해질 것이다. 데이트는 효율을 추구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부나 비즈니스는 기본적으로 효율을 추구한다. 나는 공부하거나 일할 때 스톱워치를 책상 위에 꺼내놓지 않는 것이 오히려 믿기지 않는다. 모든 기업의 전 사원이 일상적으로 스톱워치를 활용했으면 하는 바람까지 있다.

시간 감각 없이는 일을 할 수가 없다. 따라서 대부분 직장인이 ‘오전 중에 이것을 하고 오후에 저것을 한다’라든가 ‘O시부터 O시까지 OO를 한다’ 정도의 계획은 세울 것이다. 혹은 ‘O일까지 납품’과 같은 일정도 있으리라.

그러나 이와 같은 오전, 오후 단위 또는 한 시간 단위는 시간 단위로서 지나치게 길다. 또 마감은 의식하면서도 일의 경과를 분 단위, 초 단위로 의식하는 사람은 적다. 시시각각 시간이 사라져가고 있음을 의식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다 보니 결국 쓸데없이 시간을 끈다.

이때 스톱워치를 사용하면 일은 확실히 빨라진다. 눈앞에 시간이 지나가는 것이 보이면 시간 사용의 밀도가 자연스레 높아지고, 더불어 문제를 푸는 속도도 빨라진다. 시간을 재면 동기가 강화되고, 시간을 단축하는 쾌감을 중요시하는 학습 회로가 완성된다.

외부의 재촉은 동기를 강화하는 데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시간이 단축되어가는 것을 느끼면 누구나 기분이 좋을 것이다. 시간을 눈으로 확인하게 되면 더 빨리 일을 마치고 싶은 심리가 작용한다. 이렇듯 명확한 시간 의식은 효율적인 업무를 위한 가장 큰 무기가 된다.

스톱워치를 사용하는 데 한층 더 익숙해지면 사용하지 않을 때도 시간에 예민해진다. ‘이건 시간 낭비가 아닐까?’라든가 ‘내가 너무 오래 말하는 것 아닌가?’ 하고 깨닫게 된다. 낭비, 무리, 불균형을 없앤다는 의미에서는 ‘도요타 방식’의 시간 관리라고 할 수 있다.

스톱워치에는 사람의 시간 의식에 강하게 발동을 거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아직 많은 사람에게 이러한 인식이 부족한 것 같다. 생각만 해도 안타까운 일이다. 먼저 여러 가지 활동을 하기 전에 스톱워치 버튼을 누르고 시간을 재어 차츰 사용에 익숙해지는 연습부터 시작하자. 그것만으로도 시간 의식이 현저히 높아질 것이다.

2장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사이의 강 건너기



화자와 청자 사이에 ‘디딤돌’을 놓으라


강연회의 강사는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하나는 천천히 여유롭게 이야기하는 유형이다. 이는 스토리에 무게를 두고 정서에 호소하고자 하는 것이다. 특히 슬픈 이야기를 짤막하게 하면 느낌이 살지 않는다. 다른 하나는 속도를 조절하며 간결하게 이야기하는 유형이다. 이런 방식은 업무상의 정보나 노하우를 전달할 때 효과적이다.

후자일 때 화자의 머리 회전이 청자보다 빠르면 이야기는 매끄럽게 진행된다. 사람의 듣는 감각은 생각보다 빠르기 때문이다. 반대로 화자의 두뇌 회전 속도가 느리면 청자의 머릿속에 공백이 생겨버린다. 그러면 자신보다 머리 회전이 느린 사람의 이야기는 별로 듣고 싶지 않다는 반응이 나올지도 모른다. 그럼 청산유수의 달변이면 될까? 꼭 그렇지도 않다. 대체로 이런 사람들의 이야기는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흘러가버리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이야기를 했는데 무슨 이야기였는지 도통 기억이 나지 않는 유형이다.

이때 필요한 것이 바로 ‘디딤돌’의 발상이다. 화자와 청자 사이에 강이 흐르는 이미지를 그려보자. 그 강을 건너면 화자의 메시지를 받아들일 수 있는데 헤엄쳐 건너기에는 무리가 있다. 강을 건너려면 디딤돌이 몇 개쯤 필요한데, 그 디딤돌을 놓는 작업이 바로 말하기의 근본이다.

여기서 말하는 ‘강’이란 화자와 청자 사이를 가로지르는 지식의 단절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땅에 완전히 잇닿아 있는 이야기, 즉 빤한 이야기는 들어도 재미없다. 인간은 자신이 건널 수 없는 강을 디딤돌을 밟고 건너서 이제까지 몰랐던 건너편의 것을 알고 싶어하는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수준 높은 이야기를 할 때는 적당한 곳에 디딤돌을 놓지 않으면 청자가 도중에 강에 빠지고 만다. 더 심각하게는 화자가 자신과 청자 사이에 강이 있다는 암시조차 주지 못하는 일도 있다. 즉, 이야기의 주제가 무엇인지도 제시하지 못하는 경우다.

적어도 청자가 강의 존재를 알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리고 가령 디딤돌이 세 개 필요한 이야기라면 청자가 두 번째 디딤돌까지는 이를 수 있게 해야 한다. 예를 들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대한 설명에서 세 번째 디딤돌은 물리학에 대한 전문 지식이 없으면 밟기 어렵다고 하자. 하지만 ‘달리는 전차 안에서 뛰어올라도 같은 자리에 떨어진다’는 단계까지는 따라올 수 있는 사람이 많다. 이렇게 한 단계씩 올라가는 작업을 통해서 나중에 남는 것 없는 이야기가 되는 일을 피할 수 있다.

그러자면 말하기에 앞서 먼저 각 디딤돌을 정확하게 이미지화해야 한다. 이야기를 항목별로 나누는 것도 방법이지만 나는 ‘강’의 이미지를 그려보길 권한다. 종이에 위아래로 가로선 두 개를 그어서 강을 만든다. 그 사이에 돌 세 개를 그리고, 그 내용을 생각해서 채운다. 이렇게 시각화해서 생각하면 이야기의 전체상을 잡기가 쉬워진다.

물론 청자의 지식이 풍부하다면 디딤돌의 수를 줄여도 된다. 반대로 어린아이를 상대로 이야기한다면 디딤돌을 더 늘려야 한다. 기본적으로 세 개 정도의 디딤돌을 건너 반대편 기슭에 당도했을 때 청자는 만족한다. 어쨌든 화자는 ‘강의 건너편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를 명시해줘야 한다.

상대성이론을 설명하는 예에서는 강 그 자체가 베일에 싸인 존재다. 아인슈타인이 등장할 때까지 인류는 그 강의 존재조차 알지 못했다. 즉, 아인슈타인은 이 강을 발견하고 건너서 그때까지 누구도 얻지 못했던 것을 손에 넣은 것이다. 물론 누구도 건너지 못한 강을 건너기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누군가가 건넌 강을 다른 사람도 건널 수 있게 하는 것은 요령만 익히면 어느 정도 가능하다. 이것이 계몽적 커뮤니케이션이다.

3장 듣는 사람을 사로잡는 1분 프레젠테이션



캐치프레이즈를 내세워라


글을 쓰다 보면 ‘이 문장은 내용을 정리하는 데 딱 좋은 캐치프레이즈가 되겠다’ 싶은 말이 떠오를 때가 있다. 그런 말은 화살괄호(<>)로 묶어서 구별하고 강조한다.

한편 대화 속에는 화살괄호가 없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나는 대담과 같은 자리에서 그러한 어구를 발견하면 ‘이것은 화살괄호로 묶으면 되겠다’ 하고 의식하는 것이 습관화되었다. 그렇게 하면 그것이 대화의 ‘소제목’이 된다. 종종 편집자에게서 “사이토 씨의 이야기는 소제목을 붙이기가 쉬워요”라는 말을 듣는데, 그것은 내가 화살괄호로 묶일 만한 말을 의식적으로 강조해서 쓰기 때문이다. 나 역시 일상적으로 이야기할 때는 내용만 지루하게 늘어놓는 경향이 있으나, 그때 화살괄호를 의식함으로써 일상 대화에서도 콘셉트를 내세울 수 있다.

꽤 고도의 기술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실 그렇지도 않다. 누구든 바로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실천하는 사람이 적은 것은 글을 쓸 기회가 별로 없기 때문이리라. 나는 책이나 칼럼을 집필하면서 화살괄호 의식이 매우 강화되었다. 뭔가 좋은 구절이 떠오를 때마다 화살괄호로 묶거나 서체를 고딕으로 바꾸는 일이 일상화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남들과는 다르게 훈련됐는지도 모르겠다.

좀처럼 글을 쓰지 않는 사람도 화살괄호 사용을 습관화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세미나 등에서 종종 이 부분을 요구한다. ‘발언 중에 소제목이 될 만한 캐치프레이즈를 반드시 넣으라’고 지도하는 것이다. 이렇게 큰 노력을 들여서 콘셉트를 만드는 것은 다른 사람의 시간을 소중히 여기는 규범 의식의 표현이기도 하다. 한 문장으로 제안하는 데 시간과 노력을 들인 만큼 다른 사람의 시간을 절약해주는 셈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여담인데, 이런 점에서 훌륭한 이들이 광고업계 사람들이다. 그것을 업으로 하는 만큼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예컨대 예술 감독 겸 그래픽 디자이너로 알려진 요리후지 분페이 씨의 저서 『죽음 카탈로그』는 인간이 죽는 방법의 유형을 카탈로그식으로 정리한 책이다. 이 카탈로그라는 단어만으로 그 책에 담긴 내용이 영상처럼 떠오르는 사람이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4장 상대의 호감을 끌어내는 1분 커뮤니케이션



닮고 싶은 본보기를 찾아 흉내내라


세상에는 이야기를 잘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다. 그런 사람은 한발 더 나아가 어떤 상황에서 이야기하고 싶은지, 상대에게 어떻게 보이길 바라는지 생각해두는 것이 좋다. 스포츠와 마찬가지로 그 선택에 따라 규칙과 훈련법이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예컨대 라쿠고가처럼 이야기하고 싶다면 명인의 라쿠고를 철저히 들으면 된다. 그러나 비즈니스 프레젠테이션을 잘하고 싶다면 라쿠고를 들어도 그다지 의미가 없다. 그것은 야구를 잘하기 위해 수영 연습만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시간 낭비라고까지는 할 수 없으나 지나치게 멀리 돌아가는 느낌이다. 역시 야구에는 야구만의, 수영에는 수영만의 훈련법이 있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잘하기 위한 가장 쉽고 빠른 길은 본보기를 찾아서 흉내 내는 것이다. ‘이 사람처럼 되고 싶다’ 하는 대상을 찾아서 그 핵심을 집어내어 재현하고, 주위에 있는 누군가에게 들려준다. 혹은 다른 사람의 훈련법을 분석하여 적용한다. 스포츠에서는 당연시되는 방법이지만 화술을 이런 식으로 연습하는 사람은 소수이리라 생각한다. 대부분 연습은 하지 않고 잘하는 방법을 찾는 경향이 있다.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는 것은 확실히 너무도 일상적인 일이므로 스포츠처럼 연습이 필요하지는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리라. 그러한 생각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막연하게 ‘이야기를 잘하는 사람’이라는 관점은 버리자. 어느 ‘스포츠’에 능해지고 싶은가를 먼저 명확히 해둘 필요가 있다.

5장 상황별 1분 말하기



사과하기- 사과는 빠르고 확실하게


잘못된 사과는 상황을 악화시킨다: 버라이어티 쇼나 뉴스에서 연예인이나 기업 대표의 ‘사죄 회견’을 자주 볼 수 있는데, 그것을 보고 있으면 ‘사과할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자신은 ‘몰랐다’며 발뺌하기에 급급하거나, 시종일관 ‘어쩔 수 없었다’라는 변명뿐이거나, 최악으로는 부하 직원이나 사회의 탓으로 돌리는 패턴이다.

사과는 무엇보다 상대에게 ‘이것으로 죄를 씻었다’라고 인정받는 것이 목적이다. 그에 더하여 사실 관계를 철저히 해명할 필요가 있다. 예전이라면 ‘열 가지 실수 중 세 개 정도 밝히면 되겠지’ 하는 자세도 통용되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오늘날은 무언가를 감춘 채로 은근슬쩍 넘어가기가 어렵다. 인터넷의 보급으로 소비자 간 네트워킹이나 내부 고발이 쉬워졌기 때문이다. 개개인의 소비자뿐 아니라 소비자 집단, 그리고 사내 직원들까지도 기업을 냉엄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나중에 가서 새로운 사실이 또 밝혀지면 인상은 더욱 나빠진다. 기업으로서 당연히 감춰야 할 것까지 공표되어 규탄의 대상이 된다. 물론 불상사를 일으키는 일 자체도 문제이지만 사후의 대처법, 즉 잘못된 사과 방법은 사태를 점점 더 심각하게 만든다는 뜻이다. 기업이나 연예인뿐만이 아니다. 일상생활에서도 사과의 태도는 매우 중요하다. 예컨대 교육 실습생으로서 모교로 실습을 간 학생들이 실수하는 경우는 흔히 있다. 아직 학생이고 익숙하지 않은 환경인 데다 실습 과정에서는 실수하는 것도 하나의 공부이므로 그 자체는 별 수 없다.

문제는 그로 말미암아 배정된 학교의 교생 지도교사나 교장 선생님과의 관계가 악화되는 일이 있다는 점이다. 여러 가지 사정을 들어보면 대개는 실수 그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라 그 후의 대처 방법이 잘못되었다. 알기 쉽게 말하면 학생들은 사과하는 방법을 몰랐던 것이다. 예컨대 ‘담당 시간이 너무 많아서’, ‘바빠서 준비 시간이 부족했다’, ‘아무도 시키지 않아서’라는 식의 자기변호가 앞선다. 그것은 사태를 악화시킬 뿐이다.

‘먼저 선생님들께 사과하고 왜 실수했는지를 설명한다. 이것이 처음 1분 동안 할 일이다. 그렇게 하면 지금 이상으로 사태가 악화되는 일은 없다.’

학생들에게서 상담을 요청받으면 나는 이렇게 가르친다. 화재와 마찬가지로 실수로 불이 붙은 것은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 이후에는 초동 대처에 따라 ‘작은 불’로 진압되는가 하면 ‘큰불’로 발전하기도 한다. 덧붙여 사제 간이나 가까운 사이에 어차피 해야 할 사과라면 조금 과장된 태도로 확실히 사과하는 편이 좋다.

사과에도 순서가 있다: 사과할 때는 표정도 중요한 요소다. 아무리 머리를 숙여도 히죽거리거나 될 대로 되라는 표정이면 이는 사과하는 것이 아니다. 당연하게도 오히려 불에 기름 붓는 격이 될 뿐이다. 그렇다고 표정을 과신해서도 안 된다. 종종 실패하는 사례가 바로 사과하기 전에 사정 설명부터 들어가는 패턴이다. ‘미안합니다’라고 얼굴에 쓰여 있다고 해도 먼저 말로 표현하지 않으면 상대에게 전달되지 않는다. 말이 전달되지 않으면 표정조차 거짓으로 보이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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