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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버릇 마음버릇 몸버릇

다네이치 쇼가쿠 지음 | 베이직북스


말버릇 마음 버릇 몸 버릇

다네이치 쇼가쿠 지음

베이직북스 / 2020년 3월 / 232쪽 / 13,000원



1장 지금의 나를 바꾸는 습관




반복 연습으로 평생 습관을 만들어라


‘지금’의 자신을 어떻게든 하고 싶을 때, ‘지금’ 이 상황을 바꾸고 싶을 때, 몸과 입과 생각을 일치시켜야 합니다. 몸(늘 하는 몸 버릇), 입(늘 하는 말버릇), 생각(늘 하는 마음 버릇)이 일치되지 않으면 바라지 않은 현실이, 일치되면 바라던 소망이 눈앞에 나타납니다.

저는 ‘지금, 바로 이 순간’을 바꾸고 싶은 절박한 마음으로 스승의 가르침을 따라 몸과 입과 생각을, 즉 몸 버릇과 말버릇과 마음 버릇을 돌이켜 보았습니다. 저는 늘 남에게 적대적으로 행동했고, 입만 열면 남을 헐뜯었으며 속으로는 결코 남에게 마음을 열지 않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몸과 입과 생각에 똑같이 남을 거부하는 습관이 배어 같은 행동을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그 결과가 ‘생각대로 되지 않는 나’라는 형태로 나타났습니다.

식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달거나 열량이 높은 음식만 먹다 보면 당뇨병이나 비만이 되기 쉽고, 술만 마시다 보면 간이 상하기 쉽지요. 식생활의 오랜 ‘습관’이 그 사람의 ‘지금’ 건강 상태라는 눈에 보이는 형태로 나타납니다. 무의식적인 습관이 형태로 나타났지만 같은 일을 오래도록 반복하며 살아온 것입니다. 케이크를 어제와 오늘 두세 번 계속해서 먹었다고 갑자기 변화가 찾아오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꾸준히 몇 년, 몇십 년 동안 ‘습관적’으로 계속 먹으면 이런저런 성인병이 되어 나타납니다.

습관이 형태가 되어 나타나는 결과는 금방 없애지 못합니다. 하루 이틀 음식에 주의를 기울였다고 해서 살이 빠지지도 않고 몸 상태가 좋아지지도 않습니다. 체형이나 체중에 신경 쓰지 않는다면 상관없지만, 만약 신경이 쓰이거나 몸에 문제가 있어 바꾸고 싶다면 일단 나타난 결과를 없애거나 고치기 위해 꾸준히 다른 ‘습관’을 반복하여 새로운 결과를 만들 수밖에 없습니다. 식생활의 새로운 습관을 몇 달, 몇 년 이어감으로써 생활 습관병이 좋아졌다는 새로운 결과를 손에 넣을 수 있답니다. 인생이나 삶의 방식을 바꾸는 것도 똑같습니다.

현재의 한심한 나를 먼저 인정해라


‘지금’을 바꾸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는 보통 두 가지 동기가 있습니다. ① ‘지금’이 글러 먹었기 때문에 바꾸고 싶다. ② ‘지금’을 더 좋게 만들고 싶다. 어느 쪽이나 다 ‘지금’을 바꾸는 에너지가 되지만, 어느 쪽이 더 수월한가 묻는다면 압도적으로 두 번째, ‘지금’을 더 좋게 만들고 싶다는 동기가 에너지가 될 때 수월합니다.

풍수에서 쓰는 표현을 빌리자면 첫 번째 에너지는 ‘살기’, 두 번째 에너지는 ‘생기’라고 합니다. ‘지금’이 글렀기 때문에 바꾸고 싶다는 ‘살기’를 에너지로 삼으면 줄곧 글러 먹은 것을 찾아다니게 됩니다. ‘지금’ 이대로는 글렀다 -> 좀 더 노력해 본다 -> 바뀌었다 하더라도 아직 부족한 것 같다 -> 좀 더 노력한다. 이런 식으로 ‘지금’을 계속 부정하므로 훨씬 힘들고 쉽게 만족하지 못합니다. 결국 언제까지고 마음은 채워지지 않고 ‘한심한 지금’을 바꾸지 못합니다.

한편 ‘지금’도 좋지만 좀 더 나은 ‘지금’을 만들고 싶은 ‘생기’를 에너지로 삼으면 “좋았어. 좀 더 나아질 거야.” 하는 긍정적인 마음으로 나아갈 수 있으므로 좋은 변화가 일어나기 쉽습니다. 어느 쪽이 옳으냐 그르냐가 아니라 나누어 쓸 필요가 있습니다. ‘글러 먹었으니까 바꾸고 싶다’는 살기 에너지는 금세 결과를 내고 싶을 때 씁니다. 비유하자면 단거리 달리기에 해당합니다. 순간적으로 큰 힘이 나오므로 승부를 걸어 ‘승리’를 노릴 때는 효과적이지만 지속성은 없습니다.

한편 ‘지금도 좋지만, 더 나아지면 좋겠다’는 생기 에너지는 계속 유지하기가 편하므로 일을 지속하고 싶을 때 사용합니다. 이쪽은 장거리 달리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비행기 운행 과정에 비유하면 이륙 에너지가 살기, 비행 중의 에너지가 생기입니다. 그러므로 ‘지금’을 순간적으로 바꾸고 싶다면 살기 에너지를 쓰면 되고, ‘지금’을 바꾸어 좀 더 좋은 상태를 줄곧 유지하고 싶다면 생기 에너지를 쓰면 됩니다.

만약 ‘지금’이 한심해서 시작했다 하더라도 도중에 ‘지금’ 이대로도 괜찮다 싶으면 생기 에너지로 갈아탐으로써 꾸준히 좋은 상태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요령은 지금의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 ‘지금’의 한심함이 출발점이더라도 조금씩 변화가 나타난다면 ‘아직 부족하지만 그런 나도 나야’라고 인정하면 됩니다. 한심하지만 쓸모없는 사람은 아니라고, 그렇게 자신을 인정할 수 있으면 그 시점에서 살기 에너지가 생기 에너지로 바뀝니다.

덧붙여 일반적으로 많은 종교가 지금 이대로는 안 된다, 고쳐야 한다고 현재를 부정하는 요소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어리석음은 죄이고,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되고, 질투는 나를 더럽힌다고 가르칩니다. 종교에는 인간이 사회에서 단체 생활을 더 잘하도록 만들기 위한 사회적 규칙으로서의 역할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 스승인 구카이는 탐욕을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욕심을 부려도 될 뿐 아니라 어리석어도 괜찮다, 질투해도 괜찮다, 허영을 부려도 괜찮다고 말합니다. 애초에 “내가 어리석으니 어쩔 수 없지”에서 출발해서 “내 욕심이나 어리석음과 어떻게 사이좋게 지낼 것인가?”라는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욕심투성이에 미숙하고 모자란 ‘지금’의 나를 인정하고 거기서 출발하므로 매우 현실적인 사고방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구카이를 존경하고, 지금도 그의 발자취를 좇아 순례길에 오르는 것은 욕심을 비롯해 사람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사상이 마음에 와 닿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2장 운을 내 편으로 만드는 습관




운이 좋다고 말해야 운이 들어온다


운은 하늘이 내려준다거나 이미 다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런 자세로는 운을 자기 쪽으로 끌어당기기 어렵습니다. ‘운’을 남에게, 하늘에게 맡겨놓은 셈이니 자기 힘으로는 어찌해 볼 수 없다고 이미 마음을 접어버렸으니까요.

예전에는 저도 운이라는 것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의식조차 하지 않았지요. 하지만 무의식적인 습관을 바꾸면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의 운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점은 무의식적 습관이 ‘운’의 흐름을 만든다는 사실입니다. ‘운’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무엇이 떠오르고 어떤 생각이 드는가, 이때에 떠오르는 그 무의식적인 습관이 그 사람의 운에 크게 작용합니다.

만약 내 무의식적인 습관이 ‘운’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면 그 습관을 바꾸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일단은 ‘운’에 대한 이미지부터 생각해 봅시다. ‘운’이 좋은 사람 하면 머릿속에 어떤 사람이 그려지나요? ‘운’이 좋은 사람이란 한마디로 충족된 사람, 행복을 느끼는 사람입니다. ‘운’이 좋은 인생이란 많은 것에 고마움을 느끼는 인생입니다. 그리고 ‘운’이 좋은 사람은 수많은 바람을 이루며 삽니다.

말버릇, 마음 버릇, 몸 버릇으로 운의 방향을 바꿔라


‘운’이 없다는 사람은 마음이 자신이 바라는 쪽으로 향해 있지 않고, 그것을 원한다고 말하지도 않으며 행동도 그 방향으로 향해 있지 않습니다. 원하는 것에 마음이 향해 있지 않으면 다른 것만 보입니다. 원한다고 말하지 않으면 원하는 것을 자기도 모르고, 원하는 것을 향해 나아가지 않으면 원하는 것에 다다르지 못합니다. 즉, ‘운’의 흐름은 ‘마음 버릇’, ‘말버릇’, ‘몸 버릇’의 ‘방향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운’이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면 일단 자신이 바라는 쪽으로 마음을 두고(=원한다고 생각할 것), 그것을 말로 표현하고(=욕구를 내뱉을 것), 그 방향으로 나아가야(=행동할 것) 합니다.

여기부터가 중요합니다. ‘운’의 정체가 ‘말버릇’, ‘마음 버릇’, ‘몸 버릇’의 ‘방향성’이라고 한다면 ‘방향성’을 스스로 바꿀 수 있다는 뜻입니다. ‘운’의 방향을 바꾸면 되는 것입니다.

“난 원한다고 제대로 말했을까?” <- ‘말’

“정말 이 방향이 맞을까?” <- ‘생각’

“그 방향으로 제대로 나아가고 있는 걸까?” <- ‘행동’



이렇게 늘 ‘말버릇’, ‘마음 버릇’, ‘몸 버릇’의 ‘방향성’을 확인하면서 원하는 것을 향해 갈 수 있도록 수정해가면 됩니다.

이를테면 ‘가족과 보내는 시간을 가장 소중히 하고 싶다’를 원한다고 합시다. 하지만 늘 “오늘도 바빠. 일이 안 끝났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의 경우에는 일의 우선순위가 가장 높으므로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말’과 ‘행동’을 수정해서 “오늘은 일 안 해!”라고 하던 일을 즉시 중단하고, 집으로 가세요. 평소 일에 지쳐 대화할 시간도 없었던 가족과 단란한 시간을 보내세요. 물론 한 번의 시도로 원하는 결과가 나오는 일은 드물지만, 그 행동이 쌓이고 쌓여 방향성을 만들어 갑니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고 어디로 향하고 싶은가. 그리고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가. ‘말버릇’, ‘마음 버릇’, ‘몸 버릇’을 늘 돌이켜보고 방향을 수정해 가면 원하는 결과에 다다를 수 있습니다. 그게 언제일지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말과 생각과 행동의 방향이 일치해서 일직선으로 나란히 있다면 얻고자 하는 결과로 이어지기 마련입니다.

나쁜 습관을 바꾸는 ‘완화-중지-수정-가속’의 법칙


‘부자’가 되고 싶은데 쓸데없이 낭비만 하고 계획적으로 저금도 하지 않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면 그 ‘몸 버릇’을 바꿔야 합니다. 부자가 되고 말겠다고 입으로만 말하면서 마음속으로는 ‘안 될 거야’라고 생각한다면 그 ‘마음 버릇’을 바꿔야 합니다. 돈을 모아 집을 장만하겠다면서 수시로 가게에 들려 뭐라도 하나 사야 직성이 풀린다면 좀처럼 돈을 모으지 못할 겁니다.

습관을 바꾸기란 입으로 말하는 만큼 간단하지 않습니다. 습관이란 어떤 행위를 무의식 상태가 될 때까지 반복한 결과, 뿌리를 내린 것입니다. “오늘부터 살을 빼겠어!”라고 선언하거나, 꾸역꾸역 사과만 먹는 다이어트를 시작해 봐도 그것이 무의식적인 습관으로 정착되지 않는 한 살을 빼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조금 궁리를 해야 합니다. 습관을 바꾸려면 다음 네 단계를 밟아 봅시다. ① 일단 줄곧 계속되는 습관의 횟수를 줄임으로써 늦춘다. ② 어느 정도까지 늦춰지면 멈춘다. ③ 원하는 결과를 향해 방향을 바꾼다. ④ 그 방향으로 움직임의 속도를 높인다. 즉, 늦추다가(완화) 멈추고(중지) 방향을 틀어(수정) 속도를 높임(가속)으로써 습관을 바꾸어 가는 겁니다. 이것을 완화-중지-수정-가속의 법칙이라고 하겠습니다.

예를 들어, ‘연중 다이어트 선언’을 하면서 간식 습관을 좀처럼 버리지 못한다면 ① 간식 먹는 횟수를 줄인다. ② 간식을 끊는다(①을 거쳤기에 끊기가 조금은 편해졌다). ③ ‘살이 빠진 나’를 머릿속에 그린다. ④ 새로운 식생활로 갈아타서 그것을 반복해 간다. 이렇게 네 단계를 밟는 동안 살을 빼기 위한 행동이 몸에 배면서 이윽고 습관이 됩니다. 다이어트를 예로 들었지만, 이것은 모든 것을 습관화하는 데 유용합니다. “지금까지는 이랬다”, “지금까지는 이렇게 해 왔다”라는 과거의 ‘습관’에 마침표를 찍고, 새로운 습관으로 갈아 치우는 것입니다.

만약 좀처럼 상황이 바뀌지 않는다면 단계를 밟는 순서가 잘못되었거나 새로운 것을 아직 충분히 실천하지 않아서 습관으로 뿌리내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습관이 될 때까지 계속하세요. ‘운’의 흐름을 바꾸고 싶다면 ‘완화-중지-수정-가속’의 법칙으로 습관을 바꾸어 보세요.

더이상 해도 안 될 때가 진짜 기회다


살다 보면 삶을 포기하고 싶은 최악의 현실과 마주칠 때가 있습니다. 제게는 아버지의 사망 전후가 그런 시기였는데 극도의 혼란 속에서도 계속해서 이렇게 되뇌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으로는 안 돼. 나도 언젠가는 이 세상을 떠난다. 제대로 된 삶을 살아야지’ 그렇게 해서 나름대로 삶의 버팀목을 찾아 헤맨 끝에 만난 것이 ‘습관의 힘’입니다.

막다른 상황에 몰려 어찌할 바 몰랐던 경험이 없었다면 변함없이 성질머리 비딱한 못된 인간인 채로, 사회를 원망하면서 이렇다 할 배움도 못 얻고 다시는 영원히 일어서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막다른 곳에 몰렸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사방팔방 꽉 막혔더라도 괜찮습니다. 거기가 진정한 출발점입니다. 틀림없이 흐름을 바꿀 결단을 내릴 수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사방팔방이 막혔다는 것은 이미 사방으로, 팔방으로 헤쳐 나갈 시도를 해보았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다시 그 틈새로 아홉 번째, 열 번째 시도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KFC의 창업자 할랜드 데이비드 샌더스는 60대 후반에 자신이 개발한 닭튀김을 팔아줄 가게를 찾아 영업을 나섰으나 1008번 거절당하고 1009번째 처음으로 계약을 따냈습니다. 만약 1008번째에 포기했더라면 지금의 KFC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모든 수단과 방법을 다 써보는 것입니다. 다 써보기도 전에 포기하는 것이 무엇보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운이 나쁜 사람은 사방팔방 다 막힐 때까지 시도하지도 않습니다. 한두 번 찔러보고는 ‘어쩐지 안 될 것 같다’라며 포기하고 맙니다. 가능성을 부정하는 것이 ‘운’을 망가뜨립니다. 체념해버리기 때문에 ‘운’이 찾아올 길이 없습니다. 성공을 거두는 사람은 성공할 때까지 계속하는 사람입니다. 멈추어 서기보다 돌파할 길이 없는지 깊이 생각해 보세요. 도전은 헛되지 않습니다. 도전한 수만큼 경험을 손에 넣을 수 있습니다. 불가에서는 몇백 번, 몇천 번이나 똑같은 수행을 반복합니다. 그 반복이 자신을 믿는 마음과 자신감으로 이어지고, 더 나은 ‘습관’이 되어 무의식적인 나쁜 ‘습관’을 바꿉니다.



3장 돈을 끌어당기는 습관




돈의 본질을 알아야 돈이 모인다


돈을 대하는 모습에서 특히 그 사람이 사는 방식에 밴 ‘버릇’이 잘 드러납니다. 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마음 버릇), 어떻게 말하는지(=말버릇), 어떻게 돈을 쓰는지(=몸 버릇) 그 습관에 따라 돈이 잘 모이기도 하고 덜 모이기도 합니다. 애초에 돈이란 무엇인가, 돈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는 ‘마음 버릇’이 중요합니다.

일단 돈이란 무엇인가. 그 본질을 함께 생각해 봅시다. 원래 돈은 물물교환을 대체하기 위하여 등장했습니다. 사과를 가진 사람과 꽁치를 가진 사람이 있는데 서로 상대가 가진 물건을 갖고자 할 때 아주 오랜 옛날에는 물물교환을 했습니다. 서로 원하는 것끼리 교환할 수 있었으니 둘 다 만족스러운 일입니다. 물물교환은 바로 ‘기쁨’의 교환입니다.

그런데 사과를 가진 사람이 지금 당장은 꽁치를 원하지 않지만 한 달 후에 원하게 되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래서 언제든 꽁치로 바꿀 수 있는 교환용으로 돈이 등장한 것입니다. 돈이란 ‘이것을 가지고 있으면 언제든 꽁치로 교환할 수 있어요’라는 ‘신용’이 담긴 것입니다. 돈은 ‘기쁨’의 감정과 ‘신용’이 모습을 바꾼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원하던 꽁치를 받을 수 있다는 ‘기쁨’의 대가. 고대에는 돌이나 조개, 지금은 지폐나 동전으로 달라지기는 했지만 가지고 있으면 틀림없이 원하는 물건과 교환할 수 있다는 믿음을 돈은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날에는 가치 있는 것과의 교환 도구로 돈이 존재합니다. 가치 있는 것이란 자기는 만들어내지 못하지만 마련하고 나면 편리하고 기쁜 물건이나 서비스를 가리킵니다. 그런 물건이나 서비스를 손에 넣는 ‘기쁨’과 ‘감사’의 마음을 건네는 교환 도구로 돈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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