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리더들이 논리학을 배우는 이유
치루루 지음 | 힘찬북스
세계의 리더들이 논리학을 배우는 이유
치루루 지음
힘찬북스 / 2019년 12월 / 293쪽 / 14,800원
아리스토텔레스 ‘논리의 마지막 방어선’
나의 스승을 사랑하지만, 진리를 더 사랑한다 강의실 가운데에는 수염까지 히끗히끗한 백발의 노인이 서 있었다. 린넨 소재의 옷을 몸에 걸치고 시원해 보이는 샌들을 신은 노인은 예사롭지 않은 분위기를 풍겼다. 곧 노인이 자신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안녕하십니까, 여러분의 논리학 멘토인 아리스토텔레스입니다.” 놀란 표정을 지은 클레어가 사람들을 둘러보니 직장인도 있었고 학생들도 있는 것 같았다. 자신처럼 처음 온 사람으로 보이는 몇 빼고는 모두 차분한 표정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야기를 이어갔다. “나는 플라톤의 제자였지만 플라톤의 유심론적 관점은 반대했습니다. 나의 스승은 ‘이념이 실물의 원형이고, 이념은 실물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독립적으로 이 세상에 존재한다’고 생각했지요. 하지만 나는 그렇게 여기지 않았어요. 세상은 다양한 것으로 이루어졌고, 그것들 자체의 형상(形相)과 질료(質料)가 조화를 이루며 이 세상을 함께 만들었다고 생각했습니다.” 클레어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그 유명한 이론을 잘 알고 있었다. ‘질료’, 즉 사물을 구성하는 재료이고, ‘형상’은 모든 사물의 개별적인 특징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클레어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웃으며 말했다. “날개를 푸드덕거리고 있는 닭이 한 마리 있다고 생각해 볼까요. 닭이라는 ‘형상’은 날개를 푸드덕거릴 수 있고, 소리를 내어 울 수도 있고, 알을 낳을 수도 있지요. 그 닭이 죽게 된다면 닭의 ‘형상’도 존재하지 않게 됩니다. 그 때 유일하게 남게 되는 것이 바로 ‘질료’이지요.”
아리스토텔레스의 표정에서 아련함이 느껴졌다. 생각이 그를 머나먼 그때로 데려간 듯했다. “플라톤은 감각이 지식의 원천이 될 수 없다고 단호히 말했어요. 하지만 난 지식은 감각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당시 저의 사상에는 유물론적 요소가 반영되어 있었지요. 물론, 그 당시 나의 생각은 많은 사람들의 비난을 불러일으켰지요. 모두 내가 ‘자신의 스승을 배반한 배은망덕한 제자’라고 말했어요. 하지만 난 그 사람들에게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의 스승을 사랑하지만 진리를 더 사랑한다!’”
논리에 관심을 가져라, 인생에 더 관심을 가져라 “논리학에서 인생의 궁극적인 가치는 단지 생존이 아니라 각성과 사고의 능력입니다. 예를 들어 열심히 노력하는 것은 업무 향상을 위해서, 사업의 번창을 위해서, 더 나은 삶을 위해서입니다. 사회적 교류 역시 인생에서 중요한 부분으로, 논리는 대인 관계에 방법을 제시하기도 합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하는 사이 머리를 하나로 묶은 여학생이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끊었다. “논리학은 이성적인 것이지만 친구를 사귀는 것은 감성적인 것이잖아요, 이성적인 사고로 친구를 사귀면 슬프지 않을까요?” 아리스토텔레스는 여학생의 질문에 마치 종소리와 같은 울림이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불행할 때는 도움이 되는 친구가 필요합니다. 행복할 때는 고상한 친구가 더욱 필요합니다. 불행할 때 친구를 찾는 것은 필수적입니다. 행복할 때 친구를 찾는 것은 고상함을 위해서입니다.”
모두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음미하는 표정이었다. 사실 친구를 사귈 때의 목적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마음을 기댈 수 있는 친구, 또 하나는 필요에 의한 친구이다.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마음을 알아주는 친구는 많지 않다. 특히, 사회에 발을 디딘 후 친구를 사귀는 목적은 물질적인 필요에 의해서인 경우가 많다.
“깃털이 같은 새는 함께 모입니다. 진정한 친구는 두 개의 몸이 하나의 영혼을 품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마음을 알아주는 친구라 할지라도 친구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심리적인 필요입니다. 따라서 친구를 사귀는 과정에서 논리학을 활용해야 합니다.” 모두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적 사유에 탄복했다. 클레어는 물질적으로 서로 이용하지 않는 친구가 바라는 것이 없는 순수한 친구라고 생각해 왔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듣고 난 후에야 심리적인 필요 역시 사회생활의 필요의 일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논리적 사유는 정말 중요하다.
베이컨 ‘논리적 수사’
기존 논리의 비판
이 더운 날에 중절모를 쓰고 있고, 뾰족한 턱에는 짧은 수염이 촘촘히 나 있었다. 목에는 물결무늬 머플러까지 두르고 딱 봐도 통풍이라고는 전혀 되지 않을 것 같은 옷을 입은 영국 신사의 모습이었다. 흡사 트럼프 카드 J에 등장하는 인물과 같은, 오늘의 논리학 멘토는 프랜시스 베이컨이었다.
“전통 논리학은 자연을 이해하는 수단으로 쓰인 것이 아니라 논쟁에서 상대방을 이기는 것에만 연연한 기술에 불과했습니다. 즉, 전통 논리학은 오직 변론에만 활용되고 상대방이 어떠한 관점에 동의하도록 강제합니다. 하지만 사물에 대한 새로운 지식은 파악할 수 없어요. 제가 과학적 귀납법을 제정할 때 전통 논리학을 신랄하게 비판한 적이 있었죠! 내가 활동하던 시대에는 교회가 모든 것을 장악했습니다. 교회세력은 과학에 반기를 들었고 과학 실험을 무시했습니다. 그들은 스콜라 철학의 논리를 이용해 하느님의 존재를 변호했습니다. 재미있는 점은 교회의 논리로 이용된 스콜라 철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학설에서 비롯되었음에도 그의 학설을 왜곡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스콜라 철학의 논리는 사람들의 생각을 속박했고 과학의 진보와 발전을 심각하게 저해했습니다.”
모두 프랜시스 베이컨의 설명과 함께 암울했던 그 시절로 돌아간 듯했다. “물론 나는 그런 현상을 발견한 후 스콜라 논리가 자연과 생활에서 동떨어졌다고 비판했습니다. 스콜라의 ‘철학자’들은 몸은 사원과 아카데미에 묶여 있고, 지혜는 좁은 동굴 속에 갇혀 있다고 비난했죠. 나는 당시 스콜라 철학의 사상을 직접적으로 공격해서 사람들이 답답한 고정 관념을 벗어나도록 도와주었으며 경전을 연구하는 사람들의 사상적 사슬을 풀어 주었습니다. 또한 사물을 연구하고 발견할 때의 법칙을 밝히려면 새로운 경로와 방법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새로운 논리는 바로 내가 수립한 그 위대한 귀납법입니다.”
귀납법 이야기
전통 논리가 과학의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사상을 속박한다고 생각한 프랜시스 베이컨은 새로운 논리방법을 만들기로 했다. 베이컨이 말했다. “잘못된 방향으로 달리기를 한다고 가정해 봅시다. 노력하면 할수록, 빨리 달리면 빨리 달릴수록 점점 더 방향을 잃게 되겠죠. 나는 사람들이 활용할 수 있는 유용한 논리를 소개하고, 새로운 도구를 발명해서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 내가 할 일 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전통 논리를 비판하면서 관찰과 실험을 기반으로 하는 과학적 귀납법을 제시하였습니다. 귀납법이란 사물 속에서 공리(公利)와 개념을 찾는 합당한 벙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정확한 사유와 진리 탐구를 위한 중요한 도구입니다.”
프랜시스 베이컨이 계속 말했다. “귀납법에서 발전한 불완전 귀납법을 ‘수탉 귀납법’이라고도 합니다. 자, 예를 들어주면 바로 이해할 겁니다. 한 농부의 아내가 있습니다. 농부의 아내는 닭 열 마리를 키웠죠. 농부의 아내는 암탉이 크면 달걀을 얻고 수탉은 백일 정도 기른 후에 잡아 먹을 생각이었습니다. 한편 수탉은 ‘첫날 아침에 사료를 먹고, 둘째 날 아침에도 사료를 먹었고, 구십구 일 동안 아침마다 사료를 먹었으니 백 일째인 오늘도 사료를 먹겠지’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농부의 아내는 백 일째 되던 날 수탉을 잡습니다. 수탉은 구십구 일 동안 사료를 먹은 경험이 있지만 백 일째 되는 날도 사료를 먹을 것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없었죠.”
클레어는 정말 놀랐다. 이런 논리라니… 심오하구나. 베이컨은 이어서 말했다. “내가 제시한 귀납법에서는 분석이 매우 중요합니다.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사물에서 본질이 아닌 것, 우연인 것을 없애고, 추상적이지만 필연적인 본질을 뽑아냅니다. 자연현상의 원인과 규율을 인식하려면 상상과 추측에만 의존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 직접 관찰과 실험을 해야 진리가 주는 달콤함을 맛볼 수 있습니다. 나의 귀납 논리는 전통논리와 다릅니다. 전통 논리는 변하지 않고 경직된 일종의 교조주의입니다. 그러나 나의 귀납 논리는 계속 발전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귀납법은 완벽한 것도 아니고 개선이 필요한 부분을 수용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러한 것들을 발견하면서 전진하고 또 전진한다.’ 이 말은 나의 귀납 논리가 정확하다는 것을 설명합니다.”
언변, 논리적 사고의 단련부터
클레어는 질문했다. “선생님, 저는 변호사입니다. 어떻게 해야 더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까요?” 베이컨은 클레어를 유심히 본 후 말했다. “여러분, 모두 이런 경험이 있을 겁니다. 생각이 너무 많고 자신의 논리적 사유가 매우 혼란스러운 때 말입니다. 생각이 너무 많으면 바로 정돈이 되지 않죠.”
베이컨이 말을 잠시 멈췄다가 말했다. “생각이 너무 많다면 자신의 생각을 종이에 한 줄 한 줄 써 보세요.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 나열해 보세요. 필요하지 않은 것을 정리해 가는 것은 손실을 막는 방법입니다.”
흄 ‘사유 논리의 초석을 다져라’
진위 판별을 위한 명제와 정의
스코틀랜드 전통 복장을 한 ‘부인’이 가벼운 걸음으로 강단에 올라섰다. ‘부인’은 유쾌한 남자 목소리로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오늘 논리학을 가르칠 데이비드 흄입니다.”
“진위판별, 거짓된 사물을 변별한다는 뜻입니다. 제가 약간 여성스러운 분위기를 풍기기는 하지만 논리학의 사유 방법을 활용해서 현상을 통해 본질을 봐야합니다. 내 외모에는 남자로서의 특징도 많습니다!” 모두 멋쩍어서 웃었다. 데이비드 흄은 손뼉을 치며 학생들을 집중시켰다. “거짓을 가려내고 진실만 남기려면 논리학의 정성분석법을 알아야 합니다. 연구 대상을 질적으로 분석하는 정성분석은 연구 대상의 ‘있고 없음’과 ‘맞고 틀림’문제를 해결합니다. 구체적으로, 귀납과 연역, 분석과 종합, 추상과 개괄 등 방법을 활용해 대상의 본질을 인식하고 내재적인 규율을 알아낸다는 목적을 달성합니다!”
회색 지대와 인위적 회색 지대
데이비드 흄은 목을 가다듬고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 세상에는 절대적으로 맞거나 틀린 것은 없습니다. 흑과 백은 극단적인 표현이고 현실 세계에서의 많은 일은 그렇게 극단적으로 나눌 수 없습니다. 회색 지대, 중간 지대나 임계 지대를 뜻하는 말이죠. 지리적 위치, 남녀관계, 경제적 수입 등에서 회색 지대는 매우 많습니다.”
클레어도 그렇게 생각했다. 데이비드 흄이 말했다. “사실 회색 지대는 대부분 인위적입니다. 인위적인 회색 지대가 나타나는 주요 원인은 회색 지대를 이용해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회색 지대에 속한 문제와 상황들은 최대한 노력하며 맞서고 다른 사람과 협력해 해결해야 합니다.” 회색 지대에 빠졌을 때 미운 감정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밝고 긍정적으로 앞을 봐야 한다. 데이비드 흄은 생각에 잠긴 듯한 학생들을 바라보다가 환하게 웃었다. “여러분이 회색 지대를 만났을 때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생각으로 끝까지 가는 것이 아니라 논리적 사유를 이용해 사고하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 하더라도 심각한 곤경에 빠지진 않을 겁니다!”
프레게 ‘논리학 속의 오류’
잘못된 논리: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
“안녕하십니까! 오늘의 논리학 멘토인 프리드리히 루트비히 고틀로프 프레게입니다! 독일인은 대부분 이름이 매우 깁니다. 외국에 나가서 제 이름을 소개하면 어떤 사람은 네 사람이 온 줄 알고 의자 네 개를 준비하기도 합니다.” 학생들이 한바탕 크게 웃었고, 프레게가 강연하기 시작했다.
“1980년대 코카콜라가 99년간 이어온 전통 레시피를 바꾸고 새로운 제품을 탄생시키겠다고 발표하자 소비자들의 반대에 부딪혔습니다. 일부 소비자들은 ‘새로운 콜라를 출시한다면 다시는 코카콜라를 마시지 않겠다’라고 협박하기까지 했어요. 결국 코카콜라는 굴복했고 기존 레시피로 생산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클레어는 그 의미가 이해되지 않았다. “또 다른 이야기를 하나 더 해 드릴게요. 프랑스군과 영국군이 워털루 전투를 벌일 때 로스차일드는 정보원을 통해 전쟁의 결과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영국 공채가치가 떨어질 때 대량의 영국 공채를 사들여 영국 정부의 최대 채권자가 되었고 영국의 경제를 장악하게 되었지요.”
“그렇다면 이 두 이야기의 배후에는 어떤 논리학적 지식이 담겨 있을까요?” 프레게가 물었다. “코카콜라 이야기는 집단 요소를 소홀히 했다는 것입니다. 고객은 99년 동안 변하지 않은 레시피는 전통적인 미국정신을 상징한다고 여겼고, 코카콜라가 이를 포기한다는 것은 일종의 배반이라고 생각했죠. 한편 로스차일드는 맹목적으로 시류를 좇고 쉽게 공포에 빠지는 집단의 특징을 이용해 자신의 목적을 달성했습니다.” “사람은 정체되어 있는 동물이 아니고 방향이 각기 다른 에너지이기 때문에 우리가 알고 있는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것은 논리학에서 볼 때 잘못된 것입니다. 사람들이 힘을 합치면 노력을 덜 기울여도 되는 경우도 있지만 힘이 서로 분산된다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을 것입니다.”
잘못된 논리: 감각적 경험은 믿을 수 있다.
“감각적 경험이란 것은 사실 별로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좋은 첫인상을 만드는 것은 중요합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절대 다수의 사람들이 처음 만났을 때의 4분이면 상대에 대한 전체적인 이미지를 형성한다고 합니다. 가끔 첫인상이 여러분의 유일한 기회일 수도 있고 여러분의 운명을 결정지을 수도 있습니다.” 프레게가 말했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에게 좋은 첫인상을 남기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첫째, 쉽게 다가갈 수 있어야 합니다. 둘째, 자신이 알지 못하는 화제에 대해서는 아는 척을 하는 것보다는 화제를 돌리거나 솔직히 말하는 것이 좋습니다. 셋째, 인색하거나 짜증 내지 않고 좋지 않은 습관은 버립니다. 마지막으로 관대한 마음을 배워야 상대방에게 좋은 감각적 경험을 줄 수 있습니다.”
크립키 ‘논리학 속의 회피’
클레어가 고개를 들어보니 자유분방한 복장과 밀짚모자를 쓴 중년의 남성이 미소 가득한 얼굴로 강단 가운데에 서 있었다. “안녕하세요! 오늘의 논리학 선생인 크립키입니다!”
‘일부’와 ‘전체’의 혼용
“가끔 이런저런 이유로 사실의 진상을 보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들이 직접 본 것은 어쩌면 누군가가 당신이 보길 원한 것일 수도 있고, 스스로 보고 싶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우리는 무제를 전반적으로 봐야 합니다. 단순하게 하나의 관점에서만 문제를 바라보면 잘못된 결과를 얻고 단편적인 내용을 사물의 전부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두툼한 안경을 쓴 대학생이 말했다. “선생님, 예를 들어주실 수 있나요? 직접 본 일이 왜 진실이 아니죠?” 크립키가 웃으며 말했다. “예를 하나 들어드릴게요. 예전에 한 농부가 양계장을 열었습니다. 한 기독교인이 닭 두 마리를 훔쳐갔습니다. 화가 난 농부는 ‘도둑, 사기꾼, 기독교인에게 닭을 팔지 않음’이라는 팻말을 세우고 모든 기독교인들과의 거래를 거절했지요. 농부는 모든 기독교인들이 겉으로는 도덕적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했죠. 그 농부는 모든 기독교인들이 위선적이라고 판단했습니다.” 학생들이 한바탕 웃었다. 농부가 너무 극단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