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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계속 이렇게 살 수 없다는 당신에게

류지민 지음 | 다른상상


마흔, 계속 이렇게 살 수 없다는 당신에게

류지민 지음

다른상상 / 2019년 10월 / 292쪽 / 14,800원



마흔 이후, 그 불안함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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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든 나’는 생각해 본 적 없기에 - 마흔 이후의 고민, 낯선 나이


늘 그렇듯이 변화는 예고 없이 찾아온다. 열 살 전에는 나이를 실감하지 못했고, 10대에는 오히려 해가 바뀌고 한 살씩 나이를 먹는 것이 신나는 이벤트였다. 나이에 대해 민감해지기 시작하는 시기는 20대 중반 이후부터였다. 취직과 연애, 결혼, 이런 인생의 중요한 이벤트들을 앞둔 나이여서 마치 스톱워치를 켜 둔 것처럼 시간에 민감했다.

30대에는 너무 바빴다. 취직과 결혼이라는 인생 과제를 겨우 해결하고 나니 30대가 되었다. 이제부터는 뭔가에 쫓기는 생활에서 벗어나 조금 더 여유 있게 살고 싶었다. 하지만 여유로운 시기는 아이가 태어나기 전까지였다. 기대감에 차서 엄마가 되었고 몸과 마음을 다해 정성껏 아이를 키웠다. 아이를 낳으니 10년이 훌쩍 지나갔다. 일하면서, 아이를 키우면서, 최소한의 집안일을 하면서 하루하루가 마치 전쟁 같았다. 행복한 순간이 정말 많았는데도, 전체적으로 보면 순식간에 지나간 시기였다.

그렇게 바쁘게 지내던 마흔둘의 봄이었다. 아이들을 학교와 어린이집에 보내고 거울 앞에 서서 내 얼굴을 봤다. 거울 속의 나는 내가 아닌 것 같았다. ‘이대로 마흔다섯이 되고 오십이 되는 건가?’ 겁이 덜컥 났다. 30대에 50대를 그려 보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마흔둘에 바라보는 오십은 현실이었다.

그때부터 다시 책을 찾았다. 원래 책을 좋아했지만 30대에는 육아서 이외에는 책을 잘 읽지 않았다. 안 그래도 정적인 성격인데 책을 많이 읽으면 더 수동적으로 머무는 듯했기 때문이다. 무기력한 20대를 보냈던 나는 30대에는 일부러 책을 멀리했다. 하지만 40대가 되니 답답한 마음을 위로받을 곳이 책 외에 별로 없었다.

동네 독서 모임에 가입해서 다양한 책을 읽었다. 그러나 30~40대 엄마들의 관심사는 어느 정도 제한되어 있었다. 나는 서점에서 40대 이후의 삶에 대한 책을 찾기 시작했다. 거의 대부분의 책들이 ‘아직 늦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 방법은 주로 독서, 공부, 재테크, 자격증 따기 등이었다.

독서와 공부가 필요하다는 사실에는 공감하면서 반발심과 의문이 들었다. 돈이 더 많아서, 자격증을 몇 개 더 따서, 유명해져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지금까지 해야 할 일에 충실하면서 열심히 살았지만, 정작 인생이라는 것에 대해 전체적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이전까지 내 인생 계획은 딱 30대까지였다. 40세 이후, 50세 이후를 생각해 보지 않았다. 더구나 아이가 태어난 후에는 아이를 키우는 데만 관심과 신경이 쏠려 있어서 나 자신의 삶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내 인생은 어디로 흘러가는 것일까? 아이들 키우고 대학 보내고 나면 나에게 뭐가 남을까? 이제 은퇴 자금 마련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는 것일까? 그냥 이대로 돈 벌고 가족들끼리 살다 조용히 세상을 떠나는 것일까? 쓸쓸하고 씁쓸했다.

마흔 이후를 탐색하다



청년도 아니고 노년도 아닌 그 애매모호함 - 마흔 이후라는 시기


중년이란 한마디로 낀 세대다. 인생을 전반기와 후반기로 나눈다면 유년기, 청소년기, 청년기가 전반기에 해당하고 중년기와 노년기는 후반기에 포함될 것이다. 3단계로 나눈다면 유년기를 1단계, 청년기를 2단계, 노년기를 3단계로 볼 수도 있다. 중년기는 청소년기에 이어 두 번째로 맞는 애매모호한 시기다.

젊고 예쁜 것, 싱싱한 것, 절정인 것이 아름답다는 데 동의한다. 하지만 ‘보기 싫다’, ‘추하다’는 판단에는 가치가 개입되어 있다. 자연의 세계에서는 ‘보기 싫은 것’이 의미마저 없지는 않다. 사실 보기 싫은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보기 싫다는 것은 남에게 매력이 없다는 뜻이다. 자연의 세계에서는 매력이 없다는 것은 곧 외부의 주목을 받을 이유가 없다는 말과 같다. 더 이상 이성을 유혹할 필요가 없고 사랑을 받을 이유가 없다.

피고 지는 것이 자연의 이치라는 사실을 안다면 쇠퇴기를 불쾌하게 바라볼 이유는 없다. 어쩌면 외부에 시선을 돌리지 말고 자신에게 집중하라는 의미일 수도 있다. 시선을 뺏는 방해거리, 외부의 유혹에서 벗어나 인생 후반부에 맞게 서서히 자신의 삶을 재정비하라는 신호일 수도 있다.

에릭슨이 말하는 중년기의 과제: 인생에는 여러 개의 단계가 있으며, 각 단계마다 다른 의미와 역할이 있다는 주장을 처음 한 사람은 독일 출신의 미국 심리학자 에릭슨이다. 에릭슨은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기 위해서 각 단계별로 발생하는 독특한 갈등을 해소해야 하며, 중년기는 생산성 대 침체(자기 몰입)의 갈등이 주가 되는 시기라고 주장했다. 자녀를 낳고 기르는 것뿐만 아니라 직업을 통해서 성과를 만들고 이상을 세우는 활동도 생산성에 포함된다. 중년기에는 생산성이 결핍되기 때문에 기분이 가라앉기 쉬우며, 자신의 성장 시기 경험이 공허하고 좌절감을 느꼈을 경우 자녀의 요구가 아닌 부모 자신의 요구로 자녀들을 몰아붙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한편 에릭슨은 생의 마지막 단계인 노년기에 ‘원숙기’라는 이름을 붙이고 이 시기에는 통합(자아 정합성)대 절망감의 갈등이 나타난다고 분석했다. 자아 정합성이란 자신의 인생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자신의 유한성을 인정하고 죽음까지 수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단계에 기본적으로 해야 하는 일은 ‘자신의 일생을 성찰하는 것’이며, 이 과제에 실패할 경우 만회할 수 없는 후회와 비통함에 빠지게 된다고 한다.

노인이 되면 신체적 상실과 사회적 상실, 경제적 상실을 경험하면서 스스로는 ‘쓸모없는 인간’이라고 인식하게 된다. 이런 절망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생애는 그럴 수밖에 없었으며 많은 실수와 약점에도 불구하고 다른 어떤 것에 의해서도 대치될 수 없는 것으로 수용하고 받아들이는 태도’가 필요하다. 에릭슨은 이런 태도를 ‘자아 통합’이라고 불렀다. 자기 인생을 보고 설사 살아오면서 많은 실수를 했더라도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그것을 내 생의 행복했던 일들과 함께 받아들이겠다’는 자기 고백을 이끌어 내는 것이다.



살아가는 이유를 묻다 - 조금씩 또렷해지는 삶의 의미


중년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그다음 단계인 노년기를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노년기를 들여다보면 하나의 문제와 만난다. 그것은 바로 ‘죽음’이다. 죽음은 철학이 탄생한 이유이자 직면한 부조리의 궁극적인 원인이다. 인류는 지난 수십 세기 동안 이 문제와 씨름해 왔지만 뚜렷한 답을 낼 수 없었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는 이유는 나도 모든 이들과 마찬가지로 태어나고 죽는 한 생명이자, 의식을 가진 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죽음 역시 노화와 마찬가지로 남의 일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의 일이기 때문이다.

철학자들은 우리가 죽음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사는 동안 되도록 죽음을 잊으려 하고, 죽은 후에도 사람들에게 기억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한다고 말한다. 대표적인 방법은 기억할 만한 업적을 남겨서 유명해지는 것이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라는 말이 있듯이 개인의 삶에 의미를 만들어 내려는 노력인 동시에 영원히 죽지 않으려는 무의식적인 발버둥인 셈이다.

한편 진화심리학자들은 이런 발버둥을 ‘종족 보존을 위해 이성을 유혹할 만한 매력을 갖추라’는 유전자의 명령에 대한 반응으로 해석한다. 제프리 밀러의 저서 『연애』에서 유머 감각을 갖추거나, 기부와 봉사 활동으로 사람들의 존경을 받거나, 심지어 성직자가 되려는 노력조차도 그 가장 밑바닥에는 DNA에 새겨진 우리의 본능이 자리 잡고 있다고 분석한다. 삶의 의미를 만들어 내려는 모든 노력이 본능에 충실한 결과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 말이 옳다면, 우리는 평생 유전자의 지배를 벗어날 수 없는 가련한 생물이다. 다른 생물과 구별되는 점이라면 그런 사실을 우리가 ‘인식’하고 있다는 것뿐.

철학자들은 진화심리학자들과 달리 인간에게 ‘자유 의지’가 있다고 생각하고 싶어 한다. DNA가 우리의 모든 행동을 지배하는 것이 사실이라고 해도, 우리는 여전히 우리 삶의 어떤 부분에 대해서는 결정권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세상을 꿰뚫어 보는 통찰력을 갖고서 그런 결정권조차 없다면 태어난 것 자체가 저주일 수도 있으니까.

진화심리학적 관점에 동의하더라도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싶어 하는 욕구를 버릴 수는 없다. 인간은 육체적인 한계에도 불구하고 삶과 죽음, 우주의 신비까지 통찰하고 탐구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삶이 기본적으로는 의미 없음(우연히 세상에 던져진 존재임)을 깨닫고 절망하거나 스스로 삶을 마감하기도 하지만,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떻게든 오래, 행복하게 살고 싶어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삶에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100억 부자 되기’, ‘세계 여행’ 같은 구체적인 목표가 의미일 테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하루에 세 번 감사하기’, ‘나보다 어려운 사람들을 항상 생각하기’ 같은 삶의 태도가 의미일 것이다.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철학에 관심 없는 사람이라도 자신이 ‘어떤 거대한 흐름’에 속해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게 된다. 특히, 자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스스로가 꽃을 피운 후 자신의 모든 양분을 열매에게 기꺼이 주고 시들어 가는 식물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을 것이다. 나도 아이와 함께 동물원에 갈 때마다 새끼를 살뜰하게 보살피는 동물들을 보면서 부모에게 동질감이 느껴져 눈물이 핑 돌곤 했다. 자신이 없는 사람 역시 모든 것을 내어 주고 점점 작아지는 부모님을 보면서 자신이 거대한 생명의 흐름의 일부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내 삶의 의미는 그것으로 충분하다. 인간이 살아가면 만들어 내는 거대한 흐름 안에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어져있음을 느끼는 것. 그리고 그 삶의 의미가 죽음을 초월한다. 중년의 시기에 그 의미를 단단히 찾아 두면 이어질 노년도 두렵지 않을 것이다.



‘돈, 돈, 돈’에서 벗어나기 - 나의 인생 후반부는 ‘10억’보다 중요하다


태어나서 거의 30년을 공부하고 30년 동안 벌어서 그 돈으로 30년 이상을 버텨야 하는 시대다. 경제활동이 마무리 되기 시작한 중년기에는 수입이 없는 노년기에 대해 대비까지 해 둬야 하기 때문에 경제적인 고민이 더 깊어진다.

최소한의 자금이 중요해진다. 예전처럼 20대에 결혼하고 바로 자녀를 낳는 시기였다면 대략 50대 중반이면 큰 지출이 필요한 이벤트들이 마무리되었겠지만, 지금은 늦게 결혼하고 자녀도 늦게 낳는 추세다. 만혼과 늦은 출산으로 50대 중반이 되어도 자녀는 아직 고등학생이거나 대학생인 경우가 많다. 나도 거의 40세에 늦둥이를 낳았기 때문에 60대 중반까지는 계속 지출에 대한 대비를 해 둬야 하는 상황이다.

그전까지는 막연한 불안이거나 돈을 많이 모으고 싶다는 바람 수준이었다면 40대 중반 이후부터는 돈 관리는 지극히 현실적이고 냉엄한 과제가 된다. 보험사와 금융기관에서는 노후 자금으로 최소 20~30억을 이야기하고,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무슨 일이 닥칠지 모르기 때문에 30억도 부족하다는 이야기들이 오간다. 하지만 사람들 사이에서 무차별적으로 오가는 말, 보험사의 불안 마케팅, 막연한 두려움에 끌려 다니다가는 중년기를 돈 버는 데 다 보내게 된다. 어쩌면 불안 때문에 노년기에도 경제활동에서 은퇴하지 못하게 될 수 있다. 치킨집 차렸다가 퇴직금 날리는 사태가 남의 일만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중년은 벌여 놓았던 일들을 점차 수렴하는 가을의 시기다. 이제 돈에 대한 집착과 두려움도 다스리고 돈에 대한 태도도 조금 더 확실히 정할 때가 되었다. 돈에 대한 가치관을 스스로 정리해야 할 타이밍이다.

필요한 노후 자금, 현실적으로 계산해 보기: 노후 대비를 위해 도대체 얼마나 필요할까? 20~30억을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전문가들은 현실적으로 살고 있는 집을 포함해서 10억 정도면 충분히 노후를 버틸 수 있다고 말한다. 서울의 평균 집값이 10억을 넘보는 상황에서 ‘겨우 10억?’이라고 되물을지 모른다. 하지만 은퇴시기에 빚을 제하고 10억의 순자산을 갖고 있는 사람의 비율을 그리 높지 않다. 2018년 3월 말 기준으로 한국은행과 통계청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순자산 10억 원 보유 가구는 전체의 6.1퍼센트라고 한다. 그렇다면 10억 미만을 갖고 있는 나머지 93.9퍼센트 가구는 노후 대비에 실패한 사람들이고 그들의 중년기는 암흑과 같은 것일까?

‘돈이 전부가 아니다’라는 마음으로 자존감을 지키면서 살아가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에게 그런 말은 ‘조선 시대 선비’처럼 세상 물정 모르는 소리로 들릴 것이다. 물질은 무시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자존심과 존엄을 지키려면 최소한의 돈은 필요하다. 하지만 이 ‘최소한의 돈’의 수준은 사람에 따라 많이 다르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5억이 될 수도, 어떤 사람에게는 10억이 될 수도 있다.

따라서 나에게 필요한 노후 자금을 현실적으로 계산해 보고 부족하면 그것을 채울 방법을 고민하는 것도 중년기에 해야 할 중요한 일이다. 내 경우에는 10억 정도면 훌륭하고, 몇 억이라도 순자산이 있다면 충분히 노후를 대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기준을 어떻게 낮추면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해당할 것이다.

다만 그동안 모은 돈은 노후 자금의 일부에 불과하다. 학자들은 노후에도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려면 어느 정도의 사회 활동은 필수라고 이야기한다. 꼭 돈을 버는 ‘직업’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그동안의 경력과 경험을 활용해서 보람을 느끼며 할 수 있는 ‘일거리’나 ‘일감’의 차원에서다. 현실적으로 사회 활동이 어려운 초고령기를 제외하고 부부가 각자 제2의 커리어를 통해 100만 원씩만 번다면 노후를 크게 불안해할 필요가 없다. 노후 자금으로 마련한 목돈은 큰돈 들어갈 때나 미지의 세계인 초고령기를 위해 남겨 두고 5060중년기와 노년기 초기에는 일정 시간의 사회 활동을 하면서 생계비를 보태는 것이다.

이런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제2의 커리어가 될 나만의 일거리를 고민하고 설계하고 필요한 준비를 해야 한다. 이것이 중년기에 꼭 해야 하는 현실적인 노후 준비라고 생각한다. 결국 ‘돈이 전부가 아니다’라는 말은 어느 정도 진실인 셈이다. 돈이 충분히 있어도 보람과 존재 의미를 느낄 수 없다면 노년기 삶의 질은 많이 낮아질 것이다. 어쩌면 경제적 이유로 은퇴하지 못하고 생계 활동에 매달리는 경우보다 자존감이 더 낮아질 수도 있다.

지금이 바로 자기 관리가 필요한 시점 - ‘원하는 것’과 ‘가능한 것’ 사이의 균형점 찾기 ‘자기 관리’, ‘습관’ 등의 말을 들으면 ‘에이, 청소년이나 젊은 사람들한테나 필요한 말이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중년기야말로 내가 원하는 인생 후반부의 라이프 스타일을 정의하고 그에 맞는 자기 관리 방법과 습관을 정착시켜야 할 때다. 중년기에 들어서면서 스스로를 돌아보고 중년기에 맞는 나만의 라이프 스타일을 시도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다. 그것은 ‘인생의 절반이 지나간 중년기에도 여전히 습관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습관의 중요성이라면 이미 유년기, 청소년기에 지겹게 들었다. 20대에도 심심치 않게 들은 바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완전히 독립하고 결혼을 통해 정신적으로도 완전히 성인이 된 30대부터는 누구도 나한테 ‘바른 습관을 만들어라’ 같은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 심지어 부모님마저도, 그렇게 10년, 15년 내가 원하는 대로, 나에게 편한 생활 방식을 유지해 왔다. 그리고 그런 자유가 좋았다. 이제 완전히 어른이 된 것 같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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