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무기가 되는 글쓰기
임재성 지음 | 문예춘추사
삶의 무기가 되는 글쓰기
임재성 지음
문예춘추사 / 2019년 7월 / 240쪽 / 13,800원
PART 1. 글은 삶을 이해하는 시작점
내 삶의 이야기를 쓴다는 것
‘내 인생이 왜 이럴까’ 고민될 때: 살다 보면 풀리지 않는 여러 가지 삶의 문제에 힘겨워질 때가 많습니다. 의문이 생겨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답을 찾기 어렵습니다. 자신도 모르는 행동들이 삶의 발목을 잡고 송두리째 흔듭니다. 반복된 쓴 뿌리들이 성장을 방해하는 것만 같습니다. 왜 그런지 원인을 찾으려 해도 쉽사리 답을 내놓지 못합니다. 우리가 내리는 선택과 결정은 인과관계가 명확합니다.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죠. 근거 없는 행동은 없습니다. 살아온 환경, 성격, 인생의 가치, 추구하는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 등이 행동과 선택의 근간이 됩니다. 어떤 선택과 행동에든 그에 걸맞은 이유와 까닭이 존재하지만 우리는 그 연결고리를 쉽게 발견하지 못합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글을 써 보는 것입니다. 전문가를 찾아가지 않고도 자신을 이해하는 가장 좋은 도구가 글쓰기입니다. 글쓰기는 혼자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행위입니다. 특별한 기술을 배우지 않아도 일상생활에서 늘 하는 것이기도 하고요. 하다못해 스마트폰으로 문자라도 보내잖아요. 우리는 일상에서 매일 글쓰기를 하며 살아갑니다. 다만 자신의 삶을 들여다보려는 글을 쓰지 않을 뿐입니다.
글에 도대체 어떤 힘이 있기에 자신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걸까요? 글은 묘하게도 자기 오감을 작동시키는 마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글을 쓰게 되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오감이 작동되기 마련입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이 어린 시절 살았던 고향에 대해 쓴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리고 고향을 떠올려 보세요. 그럼 먼저 시각이 작동되어 고향의 정경을 바라봅니다. 마음의 눈으로 살았던 배경을 또렷하게 감지하지요. 가족, 친구들과 어울려 왁자지껄하게 놀던 소리가 들립니다. 고향의 냄새, 당시 느꼈던 느낌도 생생하게 재현됩니다. 만지고 놀았던 대상들의 느낌, 맛있게 먹었던 고향의 음식도 침샘을 자극합니다. 글을 쓰겠다고 플레이 버튼을 누르면 자동 재생이 되듯 오감이 작동되어 고향과 관련된 스토리들이 삶 속으로 파고듭니다. 이렇듯 글은 삶을 이해하는 묘하고도 확실한 힘을 제공해 줍니다.
전 미국 대통령 빌 클린턴은 한때 성 추문 사건으로 힘겨운 시기를 보냈습니다. 대통령으로, 한 여자의 남편으로, 한 아이의 아버지로 견딜 수 없는 시간을 보내야 했지요. 그는 자신의 죄를 부인하기보다 인정하고 용서를 구합니다. 그 과정에서 받은 상처와 모멸감 등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가족에 대한 미안함도 많았을 겁니다.
빌 클린턴은 자신이 왜 그런 행동을 저지르게 되었는지 훗날 깨닫게 됩니다. 자기 삶의 이야기를 풀어내면서야 알게 된 것입니다. 그는 『빌 클린턴의 마이 라이프』에 자신이 이따금씩 보인 파멸적인 행동은 어린 시절 알코올중독이었던 아버지 밑에서 자란 환경에서부터 비롯되었다고 고백합니다. 자기 삶을 이해한 빌 클린턴은 자신에게 아픔을 준 아버지를 용서했다는 이야기도 풀어놓았습니다. 어린 시절 폭력을 휘두르고 가족을 힘들게 했지만 사랑으로 품고 용서합니다. 그렇게 지난 삶의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비로소 자기 삶을 이해합니다. ‘내가 왜 이럴까?’에 대한 답을 찾은 겁니다.
지금과 다른 모습을 꿈꾸려면: 힘든 인생이든 행복한 인생이든 인생을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합니다. 매 시기 주어지는 삶의 고민과 문제 앞에 우리가 매번 명확한 답을 찾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 답을 찾기 위한 고민의 과정이 무용한 것은 아닙니다. 그럴 때 가슴을 후벼 파는 아픔도, 저미어 오는 슬픔도, 도돌이표처럼 반복되는 삶의 흔적들도 발견할 수 있으니까요. 문제를 바로 알아야 해답을 찾을 수 있듯이 현재의 삶이 이해돼야 더 나은 미래로 다가갈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삶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이를 위해 선행되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자신의 현재 상태를 파악하는 것입니다. 자기 삶을 이해하려면 지나온 역사를 성찰해야 합니다. 오늘 현재 자기 삶의 근원이 지난 역사에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역사학자 에드워드 카는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말합니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말입니다. 오늘의 삶을 이해하려면 과거의 삶에서 단서를 찾아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오늘의 삶은 과거의 합이 만들어낸 결과입니다. 그래서 현재를 알려면 과거와 끊임없는 대화를 하라고 조언합니다.
미국의 철학자 조지 산타야나는 “과거를 기억 못 하는 이들은 과거를 반복하기 마련이다.”라고 말합니다. 과거를 제대로 알지 못하면 지나온 삶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하니 참 무서운 말입니다. 철학자 니체도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에서 비슷한 메시지를 던집니다. “직접적인 자기관찰도 자신을 알기에는 결코 충분하지 않다. 우리에게는 역사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과거란 수많은 물결 속에서 우리에게 계속 흘러 들어오기 때문이다.”
‘자기 삶에서 왜 똑같은 자리에서 쓰러지고 포기하게 되지? 내 인생은 왜 이렇게 안 풀리지?’라는 의문이 든다면 혼자 끙끙 앓지 마십시오. 대신 지나온 삶의 흔적들을 살펴보세요. 과거 삶에 앞으로 살아갈 해답이 숨어 있기에 그렇습니다.
삶의 발목을 잡는 상처를 치유하다
누구에게나 내면의 아픈 상처가 있다: 이 시대의 청춘들은 참 많은 상처를 안고 살고 있습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아픈 상처를 경험하지요. 갓 태어났을 때 부모와의 애착 관계 형성, 어린 시절 부모의 양육 태도, 부모의 가치 강요, 살면서 겪은 가슴 아픈 일들이 상처로 남습니다. 어린 시절에 받은 상처는 평생 자기의 발목을 잡고 괴롭힙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내면에 상처가 형성된 채 살아가는 것입니다.
“부모가 억압적이거나, 자녀를 방치하거나 학대할 때 아이는 애착 손상을 입습니다. 성적에 따라 조건부 사랑을 하는 부모, 서로 싸우느라 자녀에게 사랑을 주지 못하는 부모, 먹고사는 일 때문에 자녀를 돌볼 시간이 없는 부모도 본의 아니게 자녀에게 애착 손상을 입습니다. 부모로부터 외면당하거나, 거부당하거나, 버림받으면 사람에 대한 믿음이 낮아지고 결국 다른 사람에게도 버림받을 거라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불신, 불안, 두려움 등 부정적 감정이 생기며 부정적 생각 패턴을 갖게 됩니다. 부정적 ‘인생 대본’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본인의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해 절망적으로 생각하고, 부정적 상황을 예측하고, 절망하며 지레 포기하는 사람이 바로 정서적 흙수저입니다.”
『정서적 흙수저와 정서적 금수저』라는 책에서 성인 정신 질환의 가장 큰 원인이 어린 시절의 애착 트라우마로 인한 정서 조절의 어려움이라고 합니다. 부모들의 삶의 태도가 내면의 아픈 상처를 형성하게 된다는 이야깁니다. 내면에 상처가 있는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첫째, 한번 받은 상처는 그것이 치유되기 전까지 없어지지 않고 그대로 남아서 조금씩 자랍니다. 상처에는 세월이 약이라는 말이 적용되지 않습니다. 둘째, 상처는 우리의 자유와 기쁨을 박탈하면서 마음을 지배합니다. 오늘을 사는데도 과거에 살도록 지배하는 것이 상처입니다. 셋째, 상처는 인간관계를 파괴합니다. 아버지와 관계가 좋지 않았던 사람이 사회생활을 할 때 직장 상사나 자기의 윗사람과 좋은 관계를 맺기가 어려운 이유가 바로 이 때문입니다.
넷째, 상처는 유전됩니다. 우리는 육체뿐만 아니라 정신적이고 영적인 DNA까지 부모로부터 물려받습니다. 그런데 내면의 아픈 상처마저도 유전이 된다는 겁니다. 부모의 상처가 곧 자신의 것이 되고, 치유되지 않는 자신의 상처는 자녀에게 대물림이 됩니다. 참 무서운 것이 내면의 아픈 상처입니다.
표현하라, 그 순간 치유는 시작된다: 자기 삶을 토대로 글을 쓸 때 누리는 효과는 다양합니다. 그중에서도 단연 으뜸은 치유 효과입니다. 내면의 아픈 상처들을 치유하는 데 글쓰기가 제격입니다. 이미 많은 전문가들이 자기 삶을 토대로 하는 글쓰기에 치료 효과가 있다는 것을 연구로 입증해 주었습니다.
『치유하는 글쓰기』의 저자 박미라는 “어떤 내용이라도 말하고 싶으면 말해야 한다. 듣는 사람이 없어도 좋다. 상대가 감당할 수 없는 말이라면 혼잣말이라도 상관없다. 입을 열고 말하기 시작할 때 치유는 시작된다.”라고 전합니다. 혼자 있더라도 응어리진 아픔을 발설하라는 의미입니다. 다른 사람의 시선 때문에 망설이는 것이 아니라 과감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발설입니다. 내면의 아픔을 어떤 형태로든 밖으로 발설하고 표현하는 순간 치유는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삶 속에서 가슴 아픈 기억은 무엇입니까? 지난 삶 속에 마음을 아리게 한 이야기가 있다면 발설하십시오. 말로 해도 좋지만 글은 더 큰 힘이 있습니다. 그러니 당상 펜을 들거나 컴퓨터 자판 앞에 앉으십시오. 그리고 기억 속에 머물러 있는 이야기를 지면에 꺼내 놓으십시오. 표현하는 순간 이미 치유는 시작됩니다.
PART 2. 내 글에 생명력을 불어넣다
글쓰기 전 몸에 익혀야 할 것들
읽기가 쓰기다, 쓰기를 위한 독서법: 글을 써 의미 있는 결과를 만들어 내려면 먼저 준비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읽기’입니다. 잘 읽어야 글도 잘 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글 잘 쓰는 비결을 말한 구양수의 삼다론 첫째 덕목도 다독이었지요. 읽더라도 많이 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많이만 읽는다고 글을 잘 쓸 수 있을까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많이 읽되 어떻게 읽느냐가 중요합니다. 제대로 읽지 않으면 양은 글쓰기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제대로 된 읽기는 문자에서 의미하는 속뜻을 이해하고 그 너머의 보이지 않는 것까지 유추해 냅니다. 나아가 문자 속에 담긴 의미를 해석하고 분석하며 통찰을 얻는 것까지 이어져야 합니다. 그렇게 깨달은 메시지를 자기 삶에 적용하는 행위까지가 제대로 된 읽기입니다. 이렇게 읽어 내야 글쓰기에도 성공할 수 있습니다.
정약용은 쓰기를 전제로 읽었고, 읽기를 전제로 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학자입니다. 정약용이 500여 권을 펴낼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독특한 독서법으로 비롯되었습니다. 정약용은 책을 읽기 전 마음 자세를 가다듬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문심혜두를 여는 공부를 의미합니다. 문심은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고, 혜두는 지혜의 구멍입니다. 글쓴이의 마음을 깨달아 알고 그것을 바탕으로 지혜의 문을 여는 것입니다. 그래야 의미 있는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정약용의 독서법을 간추리면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째가 정독입니다. 글을 꼼꼼하고 자세히 읽는 것을 말합니다. 한 장을 읽더라도 깊이 생각하면서 읽는 것이지요. 모르는 내용이 나오면 관련 자료를 찾고 철저히 근본을 밝혀 이해하며 읽는 독서입니다. 정약용이 살았던 시대에는 정독을 하는 사람이 드물었습니다. 음독으로 반복된 독서가 대세였습니다. 그런데 정약용은 묵독을 강조합니다. 조용히 읽으면서 그 뜻을 음미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질서입니다. 책을 읽는 과정에서 깨달은 것이 생기면 즉각 메모하는 방법을 말합니다. 무수한 정보의 바다에서 ‘보는 눈’을 키우는 독서입니다. 질서를 위해 필요한 것을 정약용은 의심과 의문이라고 합니다. 저자의 이야기를 의심하며 비판적으로 읽어야 함을 이야기합니다. 그 의미를 독일의 철학자인 쇼펜하우어도 이야기했습니다.
“알기 위해서는 물론 배워야 한다. 그러나 안다는 것과 여러 조건을 통해 스스로 깨달은 것은 엄연히 다르다. 앎은 깨닫기 위한 조건에 불과하다. 그런 의미에서 독서와 학습은 객관적인 앎이다. 그리고 독서와 학습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사색은 주관적인 깨달음이다. 누구나 책을 읽을 수 있고, 누구나 공부할 수 있지만, 누구나 이를 통해 사색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 『쇼펜하우어 문장론』에서
책에서 얻는 앎은 자신의 것이 아니고 작가의 것입니다. 이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면 의심하고 의문을 가져야 합니다. 끊임없이 사색하며 자신의 생각을 만들어야 하죠. 그때 번뜩이며 떠오른 생각과 깨달음을 메모하는 것이 질서입니다. 정약용은 스스로 깨달음을 얻을 때까지 이 과정을 반복했습니다.
셋째는 초서입니다. 책을 읽으면서 중요한 구절이나 마음을 울리는 문장을 만날 때 옮겨 적는 것, 즉 베껴 쓰는 과정을 일컫습니다. 내 삶을 글로 풀어낼 때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대목을 발췌하는 것이 도움이 되지 않을 리 없지요. 글을 쓸 때 가장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독서법입니다.
베껴 쓰기 과정에서 진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초서해 놓은 것을 활용하면 자신의 생각을 돋보이게 할 수 있습니다. 자기 생각만으로 한 권을 책을 쓰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저명한 사람의 글로 논리를 덧입혀야 독자를 이해시키고 설득할 수 있습니다. 초서가 글을 잘 쓰게 해 주는 유용한 도구인 것입니다. 저자의 생각에 무조건 동의하는 것이 아니라 제 생각을 만들기 위해 의심하고 의문을 던져야 합니다. 그리고 깨달은 것을 메모하고 글감을 만드는 독서가 필요합니다. 나아가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한 인용 글을 확보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초서입니다.
읽기로 탄탄하게 기초를 연마하는 것이 글쓰기로 이어지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그렇게 삶의 무기를 찾아 글쓰기 강좌와 독서법, 진로, 인문학 강의를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니 글쓰기 기술을 익히기 전에 준비해야 할 것은 바로 제대로 된 읽기입니다. 읽기가 되면 글쓰기는 그리 어렵지 않으니까요.
창의적인 역량은 이렇게 만들어진다: 글쓰기는 창의적인 분야입니다. 창의적인 능력이 있어야 글을 잘 쓸 수 있습니다. 창조는 기존에 있는 것을 비틀고, 뒤집어 보고, 붙이고, 연결하고, 통합할 때 생기는 능력입니다. 세상에 나온 창조물들은 이런 과정을 통해 탄생되었으니까요. 창의적인 능력이 없다고 글쓰기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글을 쓰는 그 자체가 창조이기 때문입니다. 그 의미는 『하버드 수재 1600명의 공부법』의 저자 리처드 라이트의 말로 이해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나는 졸업반 학생 60명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했다. ‘여러분이 대학에서 공부했던 모든 과목을 생각해 보라. 사고방식, 학습, 생활 같은 것에 대해서 가장 큰 영향을 준 과목은 무엇인가? 또한 특별한 가치가 있는 과목은 어떻게 조직되어 있었는가?’ 여기서 나온 결과는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학생들은 자기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과목은 리포트가 있는 과목이었다고 말한다.”
학생들이 리포트의 중요성을 이야기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글을 쓰는 과정에서 창의적인 역량, 자신의 생각을 체계적으로 전달하는 능력이 향상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회에서는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을 필요로 합니다. 논리적으로 표현하려면 다양한 이야기를 붙이고, 연결하고, 재조직해야 합니다. 창의성이 형성되는 과정도 이와 같습니다.
글을 쓰기 전 몸에 익혀야 할 것 중 하나는 수용된 정보를 다른 것과 연결하는 능력입니다. 수용된 정보가 기존의 지식과 연결되고 통합될 때 멋진 글이 탄생될 수 있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인문학을 IT와 연결했습니다. 인문학에서 얻은 통찰을 바탕으로 IT 기술과 연결하고 통합하고 조직화했지요. 그렇게 해서 I 시리즈가 탄생한 것입니다.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는 연결하고 통합하는 능력으로 페이스북을 만들어 냈습니다. 그는 컴퓨터 과학, 심리학, 고전과 역사, 매체학, 사회학 등을 섭렵했습니다. 다양한 장르를 섭렵한 것을 바탕 삼아 세상을 한층 열린 사회로 만드는 데 활용합니다. 사람들과 접근하고 연결하는 능력은 사회학과 심리학으로, 기술적인 측면의 접근은 컴퓨터 관련 분야로 해결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 주는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이 탄생한 것입니다.
세련된 원고로 비상하는 글쓰기
말하지 말고 보여 주듯 써라: 초고를 쓸 때 배고픈 문장을 쓰려면 말하듯이 쓰면 좋습니다. 이야기하듯이 쓰면 간결하게 글을 풀어낼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말하듯이 쓰면 자신이 전달하려는 메시지를 비교적 쉽게 전개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세련된 원고로 비상하려면 보여 주는 글을 써야 합니다. 그 의미는 세계적인 글쓰기 코치 내털리 골드버그의 말로 이해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