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이후,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
김경준 지음 | 메이트북스
마흔 이후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
김경준 지음
메이트북스 / 2019년 9월 / 256쪽 / 15,000원
1장 마흔, 아주 특별한 나이
마흔, 삶의 여백을 이해하기 시작하다
2001년 11월에 어느 날로 기억한다. 가까운 친구와 함께 저녁을 먹고 커피를 마시던 중이었다. 갑자기 친구가 질문을 던졌다. “이제 한 달만 지나면 우리도 마흔이 되는구나. 벌써 마흔이라니, 실감이 안 나네. 마흔을 맞이하는 마음을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어떤 단어가 떠오르냐?” 당시 나는 직장을 옮기고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던 터라 나이를 잊고 살았다. 귀가하는 전철 안에서 왠지 모르게 친구의 질문이 머릿속에 맴돌았지만 적당한 단어를 찾지 못하고 집에 도착했다. 며칠이 지난 어느 주말, 집에서 갑자기 그 질문이 떠오르면서 마흔을 맞는 심정을 표현하는 단어로 ‘여백’이 떠올랐다.
나는 20대 후반에 학업을 마치고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가정을 꾸리면서 30대로 10년을 보냈다. 20대까지의 성장기에는 세상을 선형으로 보았다. 원인과 결과, 투입과 산출의 관계가 상당히 비례한다는 생각이었다. 재능이 있고, 열심히 노력하면 그에 비례해 성취의 폭도 클 것이라는 바람이자 믿음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30대를 지나면서는 달라졌다. 재능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실패하는 경우가 존재하고, 인생에는 운이라는 요소도 작용함을 실감하게 되었다. 인생은 복잡계였다. 완전한 질서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무질서도 아니었다.
부모님 슬하에서 학창시절을 보내는 10대, 20대의 성장기까지는 타고난 여건에 따라 살아간다. 물론 학교 성적과 입시결과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기는 하지만 일정 수준 비례하는 선형의 관계를 벗어나지 않는 범위이다. 그러나 20대 중후반 무렵부터 사회생활을 시작하면 소위 본게임이 시작된다. 일단 내 능력으로 내 삶을 책임지고 꾸려나가는 일이 만만치 않음을 알게 된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30대까지는 삶에서의 성공은 능력과 노력에 비례할 것이라는 생각이 강했다. 그러나 40대 무렵부터는 생각이 달라졌다. 일단 30대에서 예기치 않은 일들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부푼 꿈으로 입사해 나름대로 자리를 잡았다고 생각한 첫 직장에서 정리해고를 당한 것이다.
대학 졸업과 군 복무를 마치고 1989년 S증권사에 입사했다. 당시 증권사는 80년대의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전례 없는 호황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나날이 폭등하는 주가지수로 도처에 일확천금의 신화가 생겨났고, 주식투자는 온 국민의 관심사가 되었다. 당시 S증권사가 소속된 S그룹은 국내 5위권의 대기업이었다. 그러나 그룹 차원의 조직개편에 따라 경제연구원으로 이동해 근무를 시작하면서 자동차 사업에 발목이 잡혀 의외로 사정이 좋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그러던 1997년 5월 2일 오후에 당시 연구원장이 “오늘부터 연구원이 문을 닫게 되었다”는 발표를 했다. 퇴직절차 등에 대한 구체적 언급도 없었던 일종의 폭탄선언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모두 뿔뿔이 흩어지고 나는 계열사인 S정보통신으로 옮기게 되었다.
이후 동료들의 인생항로는 각양각색이었다. 그리고 그 해 10월 IMF 경제위기가 닥쳤다. 신입 직원 채용도 전면 중단되는 가운데 경력 직원의 이직은 거의 불가능한 상황으로 변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중학교를 다니는 나이의 가장에게는 재앙이었다. 가까이 지내던 선배 한 사람은 서울의 한 지하철역에서 신발가게를 열었다. 가까웠던 동료 한 사람은 아이 우윳값도 떨어지고 호구지책이 막연해 상당 기간 택시 운전대를 잡았다고 했다. 석사급 전문가였는데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없었다. 다행히 경제가 급격히 회복되면서 후일 두 사람은 모두 자기 자리를 찾았다.
나 역시 30대 후반에 갑작스런 실직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을 겪었다. 사실 30대를 지나면서 나의 행동과 무관하게 삶이 규정되는 상황을 비일비재하게 경험하고 목격하게 된다. 오랜 연애 기간을 거쳐 결혼했지만 금세 갈라서기도 하고, 건강했던 사람이 젊은 나이에 큰 병을 얻는 것은 설명하기조차 어렵다. 조직 내에서 촉망받던 인재가 불운으로 꺾이기도 하고, 어쭙잖은 부류가 행운을 맞아 날개를 달기도 한다. 운명이란 그렇게 흘러가는 것이다. 원인과 결과의 인과관계를 도저히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상황을 인정하게 되는 시점이 마흔이었다.
마흔은 삶의 여백을 이해하는 나이다. 세상살이에 원인과 결과를 부정하지는 않더라도 반드시 비례하지 않는 복잡계로 인정하는 것이 여백이다. 그렇다고 무책임하게 행동하지 않고 매사에 일희일비하지 않으면서 긴 호흡으로 인생을 바라보는 지혜를 체득하는 나이다. 마치 동양화가 여백이 있기에 그림이 완성되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나 할까. 공자가 마흔을 ‘사물의 이치를 터득하고 세상일에 흔들리지 않는 불혹’이라 표현했는데, 나는 이를 ‘인생사 여백의 이치’에 대한 이해라고 말하고 싶다.
40대부터 황금기가 시작된다
마흔 무렵 은행에서 순서를 기다리면서 별 생각 없이 꺼내 든 잡지에서 수필 하나를 접했다. 칠순에 들어선 여류 소설가의 “여자 전성기”라는 제목이었다. 읽어보니 여자의 전성기는 40대 초반에서 50대 후반이라는 요지였다. 흔히 여자의 전성기를 20대 초중반에 꽃처럼 피어나는 시기라고 하지만 정작 자신은 무엇이 좋은지도 모르고 미혼 시절이 바람처럼 지나갔다고 했다. 20대에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30대는 그야말로 정신없이 살았다. 세탁기, 청소기가 없는 시절에는 아이들을 먹이고 입히는 주부의 바쁜 일상이었다.
40대 초반이 되면 맏이가 중고등학교를 다니고 막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아이들이 어릴 때처럼 엄마 손을 타지 않으니 약간의 여유가 생긴다. 30대를 알뜰하게 보내면 40대에 경제적으로도 형편이 나아진다. 20대에는 별것도 아닌 일에 부끄러워하고 겁도 많아서 위축되었는데, 결혼해서 아이 낳고 키워보니 세상에 거리낄 일도 없어졌다. 결혼 초기에 어려웠던 남편과 시댁 식구들도 40대에 접어드니 그렇지도 않다. 무엇보다 아직 건강하고 음식도 맛있고 재미있는 일도 많다. 이런 면에서 여자의 전성기는 40대 중반부터라는 이야기였다.
여자의 40대, 50대가 전성기라는 대목에 공감이 갔다. 집에 와서 30대 중반의 아내에게 수필의 내용을 이야기했더니 반색했다. 결혼해서 아이 키우면서 인생이 피폐해지고 있다고 느끼던 아내에게 아직 전성기는 오지 않았다는 노년의 여류 소설가의 회고가 반가웠던 모양이다. 세월이 흘러 이제 50대에 접어든 아내는 여자의 전성기가 40대 초반부터라는 견해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내가 보아도 그렇다.
남자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40대 초반에서 50대 후반이 소위 연부역강(年富力强), 연륜이 풍부하고 근력도 강하다. 20대는 패기가 있으되 사리분별이 안 되고, 30대는 경험이 쌓이지만 아직 사물의 본질을 포착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40대는 경험도 풍부하고 체력도 튼실하다. 역할도 커지고 역량도 비례해 발전하는 나이이다. 새로운 도전에 나설 패기도 있으면서 자신의 분야에서 커다란 성취를 이룰 수 있는 연륜도 쌓인 황금기이다.오늘날의 40대는 주로 1970년대에 태어났다. 그들의 성장기였던 1990년대는 우리나라의 산업화가 꽃을 피우는 시기로 사회 전반적으로 윤택하고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활동기인 2000년대는 우리나라에서도 본격적으로 글로벌 기업들이 출현하면서 세계 각지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을 수 있는 시기였다. 개인적 삶은 태어난 시기와 여건의 영향을 받게 마련이다. 지금 스타벅스 커피컵을 들고 시내를 활보하는 사람들이 200년 전 조선시대에 태어났다면 40%의 확률로 천민이었을 것이고, 나머지 대부분도 일자무식에 겨우 입에 풀칠이나 하는 평민일 수밖에 없었다. 태어난 시점은 현대라도 북한이나 아프리카에서 태어났다면 현재의 삶에서 가지는 자유로움과 가능성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이는 개인적 의지나 역량과는 다른 문제이다. 일종의 운명적 요소이다. 빌 게이츠와 스티브 잡스가 천재적 능력을 타고났더라도 아프리카의 빈국에서 태어났다면 평생 소몰이나 하다가 생을 마감했을 것이다. 나도 대한민국에서 1960년대 초반에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로서 언제나 고마움을 느끼면서 살고 있다. 이런 점에서 현재의 40~50대는 행운의 세대이다. 우리나라 근대사에서 가장 혜택을 받은 세대이다. 특히, 현재의 40대는 개인적 삶의 사이클과 우리나라 사회적 흐름이 모두 정점에 이르러 있다. 그동안 갈고닦은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커다란 성취를 기대하는 연배이기도 하다.
2장 중년 몸살, 위로받고 싶은가?
40대의 외로움은 숙명이다
삶이란 고단하고 외롭다. 물론 좋은 시절도 있고, 가족과 친구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그러하다. 세상사람 모두가 서로 아끼고 이해하면서 살아가는 가족과 같은 관계 형성이 가능할 것이라는 소망도 강하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 가족 간의 관계도 달라지게 마련이다. 하물며 타인과의 관계는 말할 것도 없다. 마흔에 접어들기 시작하면 가족과 직장에서의 역학구조가 변하기 시작한다. 외롭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자식들과 배우자는 멀어지고, 연로하신 부모님은 아프시거나 세상을 떠나기 시작하고, 직장에서의 책임감은 커지고 행동과 감정을 절제해야 한다. 이러한 변화는 소위 ‘군중 속의 고독’이라고 표현하는 중년의 외로움으로 나타난다. 남을 위해 살아가는 시기인 점을 수긍하더라도 때때로 나도 위로받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나 자신을 돌아보면 40대 중반이 무척 힘들었다. 40대 초반은 S그룹을 떠나 딜로이트에 입사하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서 고군분투하던 시기였다. 나름대로 조직에서 역할을 찾아가는 즈음에 어머니께서 세상을 떠나셨다. 그 이후에 고향에서 홀로 계시는 아버지에 대한 미안함으로 나름대로 보살펴 드리는 와중에 아버지 역시 깊은 병환이 생겼다. 앞으로 아버지의 얼굴을 오래 뵙기도 어렵겠다고 생각하면서 심정이 복잡했다. 또한 집안에 우환이 생기면 이런저런 문제가 파생되기 마련이다.
이런 와중에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직장에서의 스트레스는 극도로 높아졌다. 고객인 기업 입장에서는 1년 후의 생사 여부를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외부 컨설팅을 받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당시 컨설팅 파트너로 근무하던 내 입장에서는 나 개인이 아니라 조직 전체의 사활이 불투명한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이었다. 집과 직장에서 스트레스가 동시에 닥치니 그야말로 심신이 피로했고, 집에서도 직장에서도 나의 고통을 이해해주는 곳이 없어 외로웠다. 그저 하루하루 견뎌 내자는 마음으로 아침을 시작했다. 누군가 위로해주었으면 하는 심정도 컸지만 어차피 내가 견디고 이겨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매일 ‘인내’라는 단어를 되뇌었다. 아버지의 병환은 개인의 운명이지만 내가 이끄는 조직의 사활은 다른 차원의 현실이었다.
당시 큰 위안을 주었던 책이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다. 나는 『군주론』에서 리더가 가져야 할 현실적 덕목을 접하면서 용기와 지혜를 얻었다. 특히 리더의 역할은 ‘공동체를 유지하는 것’이란 부분에서 내가 취해야 할 기본 입장을 발견했고, 언제나 이를 염두에 두고 하루하루를 견뎌냈다. 시간이 흐르고 이런저런 상황들이 매듭지어졌다. 아버지께서는 세상을 떠나셨고, 회사는 위기에서 벗어났다. 떠나신 아버지의 빈자리는 컸지만, 그래도 말년에 집에 모셨음을 위안으로 삼았다. 10여년의 세월이 흘러 이제는 과거가 되었지만 당시는 내 인생에서도 큰 시련이었고, 중심을 잃지 않고 비교적 잘 헤쳐 나왔음에 항상 감사한다.
인생은 짧지만 부침을 겪을 만큼은 길다
인생의 부침은 누구에게나 있게 마련이지만 이에 대처하는 태도와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다. 이러한 차이에 따라 인생의 가능성이 확장되기도 하고 위축되기도 한다. 특히 부침에 따라 흔들리지 않으려면 마음의 중심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잘나갈 때 붕 뜨고, 못 나갈 때 바닥으로 추락하는 롤러코스터 인생이 된다. 특히 40대는 부침이 많은 연령대이다. 30대까지가 준비기라면 40대부터 본격적으로 자신의 영역을 만들어 나가기 때문이다. 사회적 삶에서 50대는 40대의 연장선이다.
40대의 부침에 현명하게 대처하기 위해서는 종교, 신념, 가치관 등에서 연원하는 마음의 중심이 잡혀 있어야 한다. 일종의 인생관이라고 표현해도 좋다. 자신의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 정립되어 있지 않으면 상황 변화에 따른 흔들림은 당연하다. 남들보다 못한 부분에서 좌절하거나 분노하고, 남들보다 잘난 부분에서 우쭐하고 교만하게 된다. 특히, 어려움이 닥쳤을 때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자신의 입장에서 해석해 본질을 놓치고 시간을 낭비하는 경우를 피해야 한다. 현실을 직시하되 희망을 잃지 않는 합리적 낙관주의가 특히 필요한 시기이다.
미국의 해군 장교였던 제임스 스톡데일은 베트남 전쟁에서 포로가 되어 8년(1965~1973) 동안 베트남의 하노이 포로수용소에서 생활했다. 수감 기간 동안 스무 차례가 넘는 고문을 견뎌냈고, 동료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으며 끝까지 살아남았다. 그는 석방되어 귀국한 뒤 현역으로 복귀해 중장으로 전역했다. 스톡데일의 회고에 따르면 수용소에서 가장 일찍 죽는 사람은 비관주의자가 아니라 근거 없는 낙관주의자였다. 자기 자신에게 일종의 최면을 걸어 곧 석방이 될 거라는 희망을 가졌다가 좌절되면 실망하고, 다시 막연한 희망을 갖고 기다리다가 끝내 극단적인 실망에 빠져 죽음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반면 분명히 풀려난다는 신념을 갖되, 단기간 내에 석방은 어렵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수용소 생활을 받아들이고 견뎌냈다.
이후 사람들은 극한 상황을 이겨내는 합리적 낙관주의를 ‘스톡데일 패러독스’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스톡데일 패러독스에서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현실을 냉정히 받아들이되 성공하리라는 믿음을 잃지 않는 합리적 낙관주의가 필요하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3장 마흔, 나를 직시해야 할 때다
허영보다 자부심이 중요하다
오스트리아 심리학자 알프레드 아들러의 사상을 대중적으로 풀어쓴 일본 저술가 기시미 이치로의 『미움받을 용기』가 큰 인기를 얻었다. 아들러는 심리적 문제는 자기 자신에 기반하여, 이의 극복 또한 스스로의 마음가짐에 달렸음을 강조한다. 타인의 인정에 집착하지 말고 자신과 타인의 과제를 명확히 구분해야 하며, 그 과정에서 타인으로부터 미움받을 것을 두려워 말고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 핵심 메시지이다. 아들러 심리학을 소개하는 책 『미움받을 용기』가 우리나라와 일본에서 인기를 얻는 이유는 집단을 중시하는 사회문화적 분위기에서 개인들의 내적 갈등이 심하기 때문이다. 물론 서양에서도 가족과 집단을 중시하지만 개인의 가치를 더 우선시한다.
미국의 문화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가 1946년에 펴낸 『국화와 칼』은 일본 문화 분석의 고전이다. 베네딕트는 일본문화를 포함한 동양문화를 ‘수치의 문화’로, 서양문화는 ‘죄의식의 문화’로 구분했다. 이러한 구분에서 도덕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가 명확히 나타난다. 수치심은 내가 잘못했다는 자각이 아니라 남들이 나를 잘못했다고 비난하는 지점에서 출발한다. 반면 죄의식은 나와 신의 문제, 나와 양심의 문제로 귀착된다. 남들이 비난하지 않아도 나의 신이나 내면의 양심에 비추어서 문제가 있으면 죄의식을 가진다. 도덕의 관점에서 수치심은 나와 남과의 관계에서 출발하고, 죄의식은 나의 내면적 가치와 신념이 기준이다.
서양은 유일신 체제의 기독교가 발달하면서 나와 신, 나와 양심 등의 기본구조가 생겨났고,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을 거치고 근대가 형성되면서 개인의 권리와 법치의 개념이 확립되었다. 반면 동양은 유일신의 개념이 약한 규범의 구조였다. 절대자가 부재하니 개인이 아닌 집단에서의 수직적ㆍ수평적 관계가 판단의 기준이 되었다. 또한 개인의 권리와 인권 등의 근대적 개념도 서양문명에서 도입되다 보니 한계가 있었다. 오늘날 동서양을 막론하고 외양적 생활 방식은 동일하게 수렴되었다. 하지만 내면에는 개인과 집단을 보는 스펙트럼의 차이가 크다. 특히 우리나라와 일본은 가족, 동료, 동문 등의 집단을 언제나 의식하고 좋은 평판을 유지하고 살아가는 구조이다. 비록 나의 양심에 비추어서 올바른 말과 행동이라도 남을 의식해 절제해야 한다. 특히 사회생활을 하는 조직에서 미움받는 것은 거의 자살행위에 가깝다. 옳고 그름을 불문하고 일단 튀는 행동은 집단 차원에서 응징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