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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럿이 궁금한 당신에게

조은정 지음 | 행성B
파일럿이 궁금한 당신에게

조은정 지음

행성B / 2019년 9월 / 292쪽 / 14,000원





오픈마인드 : 마음을 열면



편견은 시야를 좁히고 귀를 멀게 하는 장애

중국에서 비행하던 당시 헐렁해진 선글라스 프레임을 조이기 위해 안경 가게를 찾았을 때의 일이다. 내가 중국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눈치챈 주인 부부가 외국인 아가씨인 나에게 이런저런 말을 걸어주었다. “중국에 온 지 얼마나 됐어요?”, “중국에서 살기 힘들지 않아요?”, “학생이에요? 일해요? 무슨 일 해요?” 상하이에서 항공사에 다니고 있다고 하니 그 부부는 “아, 스튜어디스?”라고 한다. 나는 이미 이런 반응에 많이 익숙해져 있다.

항공사에 근무한다고 하면 대개 99퍼센트는 아무 의심도 하지 않고 객실 승무원이나 공항에서 일하는 직원일 거라고 생각한다. 그게 아니라 파일럿이라고 하면 금세 나를 대하는 얼굴 표정이 달라진다. 믿기지 않는다는 듯한 미소와 함께. “그래요? 대단하시네요! 남자들만 하는 일인 줄 알았는데… 여자 파일럿은 처음 봐요.”

예전에는 그 뒤에 설명해야 하는 말이 길어져서 굳이 파일럿이라는 걸 밝히지 않았다. 상대방이 어떤 상상을 하든 그저 “네~”라고 했을 뿐. 남자가 하는 일, 여자가 하는 일이라는 편견. 누가 그렇게 정의 내린 것도 아닌데 우리는 알게 모르게 생활 속에서, 혹은 관습 속에서 자연스럽게 그런 편견을 갖고 있다. 여자에게 어울리는 일이 있고, 남자가 해야 하는 일이 따로 있다.

그런 편견에 따르면 파일럿은 남자들이 하는 대표적인 직업 중에 하나다. 물론 파일럿이라는 직업을 가진 대부분의 사람들이 남성이다. 세계에서 여성 파일럿이 가장 많은 미국에서도 여성 파일럿은 전체 파일럿의 10퍼센트도 되지 않는다.

한국에서는 5년 전만 해도 항공사마다 두세 명 있는 정도였으니 대한민국을 통째로 다 뒤져봐도 여성 파일럿은 열 명이 채 안 되었다. 최근 몇 년간 급속하게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긴 하지만 중국에서든 한국에서든 여성 파일럿이 차지하는 비중이 여전히 적은 편이다.

비행기가 크면 조종사의 힘도 커야 한다?: 비행기에 대해 궁금해하는 친구들이 자주 하는 질문 중 하나가 비행을 하고 목적지까지 가는 동안에 계속 수동으로 조종하는지 또는 자동으로 조종하는지에 관한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파일럿이 계속해서 밖을 보면서 수동으로 비행기를 조종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구름 속에 있으면 어떻게 조종하느냐’, ‘12시간씩 비행하는 경우 밥은 어떻게 먹는냐’ 하며 질문한다. 사실을 말하자면, 일단 이륙을 하고 나면 밖을 보고 비행하는 것이 아니라 주로 조종실 내의 계기판에 의존해서 비행하기 때문에 밖이 보이건 보이지 않건 상관이 없다. 그리고 제트기에는 오토 파일럿이라는 비행 자동화 장치가 있어서 이륙 직후에는 이를 가동시키면 된다.

오토 파일럿을 가동시킬 수 있는 최저 고도는 회사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내가 중국에서 조종했던 에어버스320의 경우 제조사인 에어버스의 매뉴얼에 따르면 이륙 후 100피트의 고도에 이르면 오토 파일럿을 가동시킬 수 있다고 되어 있다. 100피트라는 고도는 비행기가 이륙한 후 3초 안에 도달할 수 있는 고도이다.

그럼 오토 파일럿을 가동시킨 후에 파일럿은 그냥 노는 걸까? 물론 아니다. 수동으로 조종간을 움직여서 비행기 날개를 움직이는 것이 아닐 뿐, 컴퓨터에 알파벳이나 숫자를 입력하고 버튼을 돌려서 속도, 방향, 고도 같은 것을 변경시키고 조종간을 움직이도록 명령한다. 동시에 관제사와 끊임없이 교신하면서 목적지까지 가는 것이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비행기가 목적지에 도달해서 착륙하기 약 5분 전에, 즉 활주로가 파일럿의 눈에 들어온 이후에는 오토 파일럿에서 수동 조종으로 모드를 변경해 조종간을 잡게 된다. 이쯤 되면 비행기 조종은 힘보다는 머리로 하는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승객을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인도하려면 비행기 안에는 조종사와 객실 승무원이 필요하다. 비행기가 이륙하고 착륙하는 동안 그 둘은 같은 시간을 보낸다. 그런데 왜 대부분 조종사는 남자가 하고 객실 승무원은 여자가 하는 걸까? 같은 노선을 비행하는 조종사와 객실 승무원은 비슷한 시간에 출근해서 같은 시간 동안, 같은 비행기 안에서 일한다. 조종사는 조종석에 앉아 버튼을 돌리고 누르는 등 자동화된 기계를 조작하는 방식으로 일을 하고, 객실 승무원은 꼿꼿한 자세로 승객들에게 인사하고, 오버헤드빈에 짐을 올리고 내리는 것을 돕고, 식음료가 가득 담긴 무거운 카트를 밀고 끌며 서빙을 한다. 잠깐의 휴식이 있기는 하지만 여정이 끝날 때까지 대부분의 시간을 육체적인 노동으로 보내는 것이다.

흔히 남자와 여자는 체력이 다르기 때문에 조종사는 남자가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편견은 과연 맞는 것일까? 조종사는 객실 승무원보다 체력적으로 더 힘든 직업일까? 물론 비행 중 기계 결함이 발생하거나 악천후에 비행을 해야 하는 등 비정상적으로 운행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강인함과 판단력이 매우 필요하다. 하지만 이런 강인함과 판단력은 성별에서 비롯되는 차이가 아니다.

지식과 경험, 냉철한 판단력, 신중한 선택, 반복된 연습과 훈련으로 숙련된 기술… 이런 것들로 조종을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비행기를 조종하기에 여성이 남성보다 부족한 점은 분명 없어 보인다. 모든 것은 그저 우리의 편견에 지나지 않는다.

“Ladies and Gentleman, This Is Your Captain Speaking!”: 여객기 조종실에 들어가면 기장의 자리는 왼쪽이고 부기장의 자리는 오른쪽이다. 승객이 타고 내리는 문은 왼쪽에 있다. 그래서 승객들은 가끔 탑승하다가 기장 조종석 옆 창문으로 나를 보곤 한다. 나를 본 승객들은 두 번 놀란다. 우선 내가 여자이기 때문에 놀라고, 또 생각보다 어려 보여서 놀란다. 그들 중 일부는 연예인이라도 만난 듯이 옆 사람과 수군대기도 하고, 일행의 옷을 잡아당기기도 하고, 심지어는 스마트폰을 꺼내 사진을 찍기도 한다.

처음에는 그런 모든 것들이 어색하고 ‘혹시 내가 여자라서 불안해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에 탑승하는 승객들이 나를 볼 수 없도록 블라인드로 창문을 닫아놓곤 했다. 조종사가 여자라는 것을 들킬까 봐 기내 방송도 잘 하지 않았다. 부끄러운 일이라도 한 사람처럼, 죄라도 지은 것처럼, 해서는 안 될 일을 하고 있는 것처럼 숨어서 비행기를 운행했다. 지금은 오히려 그때의 행동과 생각들이 부끄럽게 느껴지지만, 당시에는 나 스스로도 세상의 편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겉으로는 여성도 파일럿이 될 수 있다고 외치면서 속으로는 여성 파일럿들에 대한 편견을 지우지 못했던 셈이다.

편견은 우리의 시야를 좁게 하고 귀를 멀게 한다. 그래서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무엇을 잘 할 수 있는지 생각하는 폭을 좁혀버린다. 편견은 다른 누가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 만든 장애일 뿐이다. 눈을 크게 뜨고 마음을 열고 귀를 쫑긋 세우고 주위를 둘러보자. 지금 당신이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당신의 꿈이 무엇인지 찾지 못하고 있다면 당신 스스로 편견이라는 테두리 안에 자신을 가두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편견이라는 장애를 극복하고 재활을 도와줄 유일한 의사는 오직 당신 자신뿐이다.

세상에 반은 여자다

혹독한 여자 교관: 미국 항공학교에 다닐 때 나의 첫 비행교관은 백인 남자였다. 다정하고 부드럽고 따뜻한 성격이어서 나를 무척이나 편안하게 해주었다. 그런데 나는 이상하게도 이 교관이 썩 맘에 들지 않았다. 그 당시 나는 한국에서 모아온 돈을 그저 쓰기만 하는 처지인데다, 비싼 학비를 내고 학교를 다니는 터라 기왕이면 빡세게 배워서 하루라도 빨리 항공사에 입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의 첫 비행교관은 그런 내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다정하고 부드럽고 따뜻하기만 했다. 어쩔 수 있겠는가. 처음 2주간은 마음을 비우고 그 부드러운 남자 교관으로부터 비행교육을 받았다.

그러다가 우연히 하루에 1시간씩 이틀 정도 다른 여자 교관의 이론 수업을 듣게 되었는데, 깜짝 놀랐다. 나탈리 버만이라는 이름의 이 여자 교관은 나보다 나이가 어렸는데도 아주 당찬 모습으로 똑 부러지게 수업을 진행했다. 어떤 질문을 받든 잠시도 머뭇거림 없이 충만한 자신감으로 설명하는 모습에서 나는 강한 인상을 받았다. ‘오, 이 여자 교관 좀 무섭겠는데? 이 교관의 학생은 죽어나겠군!“

누구에게도 뒤질 것 같지 않은 자신감, 확신 있는 수업, 온몸에서 발산되는 카리스마를 보건대, 그녀가 리드하는 대로 따라가기만 하면 못할 게 없을 것만 같았다. 그녀를 보면서 ‘이거구나! 이걸 배워야겠구나!’라고 생각했다. 그 길로 학교 매니저를 찾아가 비행교관을 그녀로 바꿔달라고 요청했다.

역시나, 생각했던 것만큼, 아니,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이 그녀는 깐깐했고 까다로웠으며 최소한 비행에 관해서는 완벽주의자였다. 비행을 끝내고 하늘에서 내려오면 어김없이 그녀의 수많은 비판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에게서 교육을 받는 동안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 그렇잖아도 내 마음대로 비행이 되지 않아서 속상해 죽겠는데, 그녀의 혹독하고 인정사정없는 질타를 듣고 있노라면 ‘내가 왜 이 여자 교관을 선택했을까’ 하는 생각에 자기 발등을 도끼로 찍은 것처럼 후회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날은 힘껏 준비도 많이 하고 공부도 열심히 해서 ‘오늘은 꼭 나탈리를 만족시키고야 말겠어!’ 하며 자신 있게 비행한 날이었다. 하지만 그날도 여지없이 나는 모진 평가를 들어야 했다. 분명 잘한 것도 있는데 그에 대한 칭찬은 하지 않고 조목조목 못한 것만 꼬집어 혼을 내는 그녀가 너무 야속해서, 나는 그만 그녀 앞에서 폭포수 같은 눈물을 흘렸더랬다. 가슴속에 그동안 참았던 것이 복받쳐 한꺼번에 울컥 쏟아져 내렸다.

나는 그녀에게 처음으로 대들었다. “내가 그렇게 못했어? 내가 늘 그렇게 못해? 나는 잘하는 게 하나도 없어? 칭찬 좀 해주면 안 돼?” 그러자 나탈리도 나와 함께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학교의 한 작은 교실에서 두 여자가 “엉~ 엉~”, “꺼이~ 꺼이~” 어찌나 서럽게 울었던지 다른 교실에 있던 교관과 학생들이 죄다 ‘무슨 일인가?’ 하고 달려왔었다. 그때 나탈리가 말했다. “앤지, 우리 여자들은 남자와 똑같이 해서는 경쟁할 수 없어. 남자보다 더 잘해야 선택받을 수 있는 거야!”



희망 : 희망이 보이고



늦게 출발해도 목적지에는 도착한다

때로는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길: 비행을 하다 보면 종종 이륙이 지연될 때가 있다. 악천후와 같은 기상의 원인일 수도 있고, 항공 교통량이 포화 상태여서일 수도 있으며, 드물긴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탑승수속까지 마친 승객이 나타나지 않아서일 수도 있다. 비행기를 자주 타는 사람이라면 공항에서 탑승 방송으로 이름을 불려본 경험이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짐도 실었는데 설마 떼어놓고 가겠어?’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진짜 떼어놓고 출발하므로 주의해야 한다.

미리 정해진 비행기의 출발시간을 항공 용어로 ‘슬롯’이라고 하는데, 슬롯을 놓치게 되어 제시간에 출발하지 못하면 다시 새로운 출발 시간을 허가받을 때까지 대책 없이 기다려야 한다. 이때 기장들은 얼마나 오래 기다려야 하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계속 긴장하고 있어야 하므로 심적인 압박감을 갖게 된다. 그래서 출발시간이 되어 마지막 방송을 해도 승객이 나타나지 않은 경우, 이미 화물칸에 실린 그 승객의 짐을 찾아서 내려놓는 한이 있더라도 출발하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내 중국 친구가 겪은 일도 바로 그런 경우에 속한다.

몇 년 전 하이난 산야행 비행이 있던 어느 날 아침, 친구가 다급하게 전화를 걸어왔다. 원래 타려던 하이난 산야행 아침 비행기를 놓쳤는데 그다음 비행기를 타려면 앞으로 5시간을 기다려야 한다며 공항에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는 것이었다.

맘이 한껏 상해 있는 친구를 두고 여유롭게 웃을 수는 없었기에 그런 일은 적지 않게 벌어지는 일이라며 일단 친구를 위로했다. 그러고는 마침 오후에 출발하는 내 비행기의 목적지가 네 목적지와 같으니 조금 늦더라도 나와 함께 가자고 안심시켰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그녀가 놓친 비행기보다 더 빨리 하이난 섬 산야에 도착해버렸다!

사실 그날은 하이난 섬이 태풍의 영향권 아래 있어서 착륙 시 기상 상태가 많이 걱정스러운 날이었다. 물론 비행기가 목적지에 도착할 무렵이면 태풍이 지나갔을 수도 있고, 비행기가 도착해서 착륙하는 순간은 몇 분 남짓이기 때문에 문제가 없을 수도 있다. 그래서 태풍의 영향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있는 경우로 판단되면 목적지가 태풍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할 수도 있지만, 그럴 때는 기상 상태를 확인하며 속도를 줄여 운행하거나, 목적지 근처의 상공에서 선회비행을 하면서 착륙할 수 있는 순간을 기다리거나, 최악의 경우 근처의 다른 공항으로 회항하면 되기 때문에 출발지에서 이륙을 미루는 경우는 거의 드문 편이다. 내 친구가 놓친 비행기도 그랬다.

그날 우리는 원래 예정대로라면 친구가 놓친 아침 비행기가 산야에 도착했을 무렵에야 이륙했다. 그런데 운항하면서 목적지의 기상 상태를 체크하다 보니 앞서 출발한 비행기들이 태풍 때문에 목적지에 정상 착륙을 하지 못하고 근처의 하이코라는 도시로 회항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 비행기들 가운에 내 친구가 놓쳤다는 산야행 아침 비행기도 끼어 있었다.

탑승수속까지 마친 상태에서 딴청을 피우다가 비행기를 놓치는 실수를 저질러서는 안 되겠지만, 이미 비행기를 놓쳐버렸다면 아무리 화를 내고 발을 동동 굴러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 떠나간 비행기는 돌아오지 않는 법이다.

우리는 미래를 예상할 수만 있을 뿐, 언제 어떤 일이 어떻게 발생할지 실제로는 알 수 없다. 적당한 시기를 놓쳤다는 생각에 조바심이 나고 이미 늦은 나이라는 생각에 새로운 시도가 망설여지고 미래에 닥칠 것 같은 태풍이 두려운 것이라면, 어느 정도의 착륙 가능성을 믿고 이륙하는 비행기처럼 우리도 자신의 꿈에 믿음을 갖고 이륙해야 한다. 설령 선회비행을 해야 할지도 모르고 회항을 해야 할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어쩌면 막상 그 미래에 도착했을 때 당신은 그곳에 제일 먼저 도착한 사람일 수도 있다.

내가 걸어온 비행의 꿈: 미국 사서관저에서 비서를 하던 시절, 오산 미 공군부대 안에 있는 에어로클럽에서 비행 공부를 하고 싶다고 대사님 부부께 말씀드렸을 때, 두 분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긍정적으로 내 꿈을 들어주시고 적극적인 지지로 답을 주셨다. 다만 한 가지 조건을 말씀하셨다. “앤지, 네가 비행 공부를 해보고 싶다는 것, 파일럿이 되고 싶다는 생각은 참 용기 있고 멋진 일이라고 생각해. 하지만 먼저 약속을 해주렴. 내가 한국에서 대사로 있는 3년 동안에는 절대로 내 비서 일을 그만두지 않겠다는 약속!”

나를 어여삐 여기셨던 대사님은 내가 비행 공부를 하다가 항공사에 가고 싶다는 이유로 비서직을 그만둔다고 할까 봐 끝내 그 약속을 받아내셨다. 하지만 당시 내 나이는 만으로 서른을 넘겼고, 그 나이면 한국의 항공사에서는 몇 년차의 부기장 경력을 가지고 있을 나이였다. 그래서 나는 대사님과 철석같이 약속했음에도 불구하고 시도 때도 없이 ‘지금 비행 공부를 시작해서 어느 세월에 항공사에 들어가나?’,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미국에 가서 전문 파일럿 과정을 마쳐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하며 불안해했다.

그때마다 나를 붙잡았던 것은 세 가지였다. 대사님 부부 두 분이 나에게 너무나 소중했다는 것이고, 소중한 분들과의 약속을 저버릴 수 없었다는 것이며, 또 미국에 가서 공부를 할 만큼 충분한 돈이 모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비서 일을 하던 3년 동안 나는 미국 각지에 있는 항공대학 정보들을 스크랩했고, 미국에 갈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한 군데씩 직접 방문해서 학교 투어를 하기도 했다. 그렇게 충분한 시간을 두고 하나씩 따져봤기에 교육의 질이나 학교의 명성, 졸업 후 진로에 미치는 영향 등 모든 면에서 최고의 선택을 할 수 있었다고 자부한다. 비록 그 학교를 선택할 때는 잘 모르고 한 일이긴 하지만, 어쨌든 내가 선택한 미국의 그 항공학교는 중국에서 인정하는 몇 안 되는 항공학교였던 것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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