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고비마다 나를 지켜내는 인생공부
이철 지음 | 원앤원북스
삶의 고비마다 나를 지켜내는 인생공부
이철 지음
원앤원북스 / 2019년 5월 / 432쪽 / 18,000원
1부 논어에서 배우는 인생공부
인간관계
남의 마음을 나의 마음처럼 헤아려라: 자공이 물었다. “죽을 때까지 평생 실천할 만한 한마디 말이 있습니까?” 공자가 대답했다. “그것은 바로 서(恕)다.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은 남에게도 시키지 말라.” [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欲 勿施於人.)]
자공은 공자의 제자 중 한 사람으로 인간관계에서의 친화력과 설득력, 외교술이 뛰어났다. 이러한 능력으로 위기에 처한 노나라를 구하기도 했으며, 또 많은 재물을 모으기도 한 인물이다. 그가 쌓은 부가 얼마나 어마어마했는지 “천하의 재물은 모두 자공에게로 흘러들어간다”는 말이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자공이 평생 실천할 한마디 말을 묻자 공자는 서(恕)라고 답한다. 서는 ‘같을 여(如)’와 ‘마음 심(心)’을 합쳐서 만든 글자로 ‘나의 마음을 타인의 마음과 같게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내가 타인이 아닌 이상 타인의 마음과 나의 마음을 같게 할 수는 없다. 그래서 공자는 서의 뜻을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은 남에게도 시키지 말라’는 뜻으로 설명하고 있다. 즉 내가 원하지 않는 것, 내가 싫어하는 말과 행동은 남도 그렇게 여길 것이라 생각해 퍼뜨리지도 시키지도 말라는 것이다.
하지만 서를 실천하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다. 언젠가 자공이 공자에게 “저는 남이 저에게 하지 않았으면 하는 일을 저 역시 남에게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라고 말한다. 공자가 말한 서를 평생 실천하겠다는 약속의 말이었다. 이에 공자는 그것은 네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며 자공의 다짐을 타이른다. 서의 정신을 실천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공자는 왜 어렵다고 생각했을까? 그 이유는 평범한 인간이 욕심과 욕망을 모두 버리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를 가슴에 새기고 욕심을 버리고 남을 배려한다면, 인간관계가 지금보다 더 나아질 것이다. 자공이 다른 사람과의 관계 맺음과 부의 축적에 뛰어났던 이유는 공자의 가르침을 죽을 때까지 실천하겠다는 다짐을 잘 지켰기 때문이다.
사랑이란 긍정과 부정의 총합이다: 공자가 말했다. “오직 인한 사람만이 다른 사람을 좋아할 수 있고 오직 인한 사람만이 미워할 수 있다.” [유인자능호인 능오인(惟仁者能好人, 能惡人.)]
인(仁)이란 사람을 널리 사랑하는 것이다. 타인을 진정으로 사랑할 때 우리는 그 사람이 잘되기를 바라며 나아가 완성된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 사람됨의 완성은 스스로의 잘못된 행동을 고치고 고난과 시련을 겪고 이겨냄으로써 이루어지기 때문에 사랑이 무조건적인 긍정이 될 수는 없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잘되기를 원하면서 그 사람의 잘못을 비판하지 않는다면, 이는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그 사람이 잘못을 고치지 않는 것을 미워하지 않는다면 이 또한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사랑을 바탕으로 하는 비판과 그렇지 않은 비판은 확연히 구별된다. 따라서 사랑이란 좋아함과 미워함이 균형을 이뤄야 한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조선시대 정조 대의 선비였던 이덕무는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의 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너무 엄격하면 사나운 자식은 멀어지게 되고, 너무 사랑하면 영리한 자식은 방자하게 된다. 부모가 자식을 대하는 방법은 엄격함과 사랑함이 균형을 이루는 것이다.”
부모가 자식을 대하는 마음만큼 사랑이 넘치는 것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부모와 자식 간에도 좋아함과 미워함이 균형을 이뤄야 하니 다른 종류의 사랑에는 말할 것도 없다.
처세
이익만을 좇으면 원망이 많아진다: 공자가 말했다. “이익을 위해 행동하면 원망을 많이 사게 된다.” [방어리이행 다원(放於利而行 多怨.)]
주위에 이익만을 좇아서 끝내 성공한 사람들이 있고, 또 죽을 때까지 이익만을 좇다 부귀와 명예를 누리고 죽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누구나 존경하고 그리워하는 이름이 되었든, 누구나 욕하기를 마다하지 않는 이름이 되었든, 어쨌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수십억 원의 재산을 쌓은 한 노인이 어느 날 갑자기 심근경색으로 죽었다. 평상시 건강했던 터라 유언장을 써놓지 않은 상태였다. 자식들은 아버지를 묻자마자 무덤가에서 서로 주먹질을 하며 재산 문제로 다투기 시작했다. 그런 모습을 본 주위 사람들은 “그러게, 재산을 뭐하러 쌓아두었노, 좋은 일에 쓰고나 가지” 하는 원망을 했고, 자식들 또한 각자에게 유리한 유언장을 써놓지 않은 아버지를 원망했다.
살아 있을 때의 누군가의 원한보다 죽고 난 후의 원망을 더욱 두려워해야 한다. 부귀와 명예를 쥐고 있다면 살아 있을 때는 누구나 칭찬하고 아부하기에 급급하지만, 죽으면 누구나 드러내놓고 원망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승집 개가 죽으면 문상객이 넘치지만, 정승이 죽으면 아무도 찾지 않는 법이다. 살아서 정승이었더라도 죽어서 자기가 기르던 개만도 못한 대우를 받고 싶은가?
말을 해야 할 타이밍과 자세: 공자가 말했다. “군자를 모실 때 저지르기 쉬운 3가지 잘못이 있다. 아직 말할 때가 아닌데도 말하고자 조급해하고, 말할 때가 되었는데도 말하지 않고 숨기려 하고, 안색을 살피지도 않고 아무 말이나 하는 것을 장님이라 한다.”
이 글은 굳이 군자를 모실 때의 잘못으로 이해하기보다는 타인과 대화할 때 저지르기 쉬운 3가지 잘못으로 이해하면 된다. 법가 사상을 집대성한 책 『한비자』는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시작한다.
“저는 알지 못하면서 말하는 것은 무지이며, 알고 있으면서도 말하지 않는 것은 불충이라 들었습니다. 남의 신하가 되어 불충함은 죽어도 마땅하며, 말이 도리에 맞지 않거나 실제와 맞지 않다면 이 또한 죽어야 마땅합니다.”
이 말은 한비자가 진시황을 처음 만나 올린 글의 서두로 말을 조심스레 꺼내면서도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은 하겠다는 결기가 느껴진다. 한비자의 이 말도 공자의 말처럼 사람이 말을 해야 할 타이밍과 그때의 자세는 어떠해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이것을 마음속에 새긴다면 살면서 저지를 잘못이 크게 줄어들 것이다. 우리가 저지르는 잘못의 대부분은 말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눈치란 ‘남의 마음을 그때그때 상황을 미루어 알아내는 것’이다. 그러니 남의 안색을 살피지 않으며 눈치 없이 분위기 못 맞추고 아무 말이나 내뱉는 사람은 장님과 다름없다.
공자의 마지막 가르침: 공자가 말했다. “명(命)을 알지 못하면 군자가 될 수 없으며, 예(禮)를 알지 못하면 설 수 없으며, 말을 알지 못하면 사람을 알 수 없다.”
이는 『논어』의 마지막 문장으로 공자의 가르침을 세 글자로 압축해 제시하고 있다. 명(命)은 내가 나아가야 할 길로 사람이 태어남과 삶은 아무 목적이 없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게 부여받은 명을 실천하기 위해서 살아야 하는 것이다. 명을 깨닫는 것, 그것은 나의 꿈과 목표를 명확히 설정하는 것이다. 명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은 인생이 허무하다고 생각하고, 더 나아가서는 아무렇게나 살아가고, 인간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삶을 살기도 한다. 그러므로 명을 알지 못하면 인간이 될 수 없다.
예(禮)는 내가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해주는 규범으로, 예가 있어야 타인과 화합하며 조화롭게 살 수 있다. 공자는 예가 아니면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움직이지도 말라고 했다. 보고, 듣고, 말하고, 움직이는 것은 인간이면 누구나 하는 것인데, 그것이 예의 범위를 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마지막은 타인의 말을 듣고 그 말의 옳고 그름을 분별할 수 있어야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뜻이다. 나의 명을 알고 나를 세우고 나면 삶 속에서 타인과 부대끼며 살아가야 하는데, 타인은 전부 나와 같지 않으니 그 사람됨을 판단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 사람됨의 일차적 판단 기준을 말에 둔 것이다.
자기계발
두루 통달하라: 공자가 말했다. “군자는 한 가지 용도로만 쓰이는 그릇이 아니다.” [군자불기(君子不器.)]
그릇은 애초에 만들 때 그 쓰임새가 정해져 있다. 국그릇, 밥그릇, 찻잔, 술잔처럼 그 쓰임새를 생각해 모양과 재질을 결정해서 만든다. 하지만 인간은 그릇처럼 쓰임새가 정해져 태어나지 않는다. 커가면서 개개인의 자질과 정신, 주위의 환경과 교육 등에 따라 어떤 사람이 되는지 결정된다. 또 한 번 결정되었다고 해서 그것으로 고착되지 않고, 죽을 때까지 스스로의 노력과 의지에 따라 다양하게 변화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인간이다.
공자가 말하는 것은 인간이 그릇처럼 쓰임새가 정해져서 태어나지 않으므로 다양한 기능과 사상을 습득하고 갈고닦아야 한다는 뜻이다. 이는 당시의 교육과목이 육예(六藝)였던 것을 생각하면 쉽게 수긍이 간다. 육예는 예(禮), 음악, 활쏘기, 수레 몰기, 글쓰기, 셈하기다. 인간이 문무를 두루 갖추는 것을 목표로 한 교육과정이었다.
요즘은 한 분야만 파는 전문가가 되어야 성공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전문도 보편을 기반으로 해야 확고히 할 수 있으며, 보편도 전문으로 나가야만 깊이를 갖출 수 있다.
반드시 경계해야 할 3가지: 공자가 말했다. “군자가 경계해야 할 3가지가 있다. 어릴 때는 혈기가 아직 안정되지 않았으니 성욕을 경계해야 한다. 커서는 혈기가 한창 강하니 투쟁심을 경계해야 한다. 늙어서는 혈기가 이미 쇠잔해졌으니 탐욕을 경계해야 한다.”
우리 몸은 혈과 기로 이루어져 있다. 혈은 육체이고 기는 정신이다. 어리다는 것은 아직 육체와 정신이 완전히 자라지 않은 상태다. 그런 상태에서 혈과 기를 소모하는 성욕에 지나치게 몰입하게 되면 성장에 방해가 된다. 그렇다고 인간의 본성인 성욕을 그냥 두었다가는 분별없이 다가가게 된다. 성 교육이 필요한 이유다.
혈기가 조화롭게 안정되고 나면 세상을 향한 투쟁심이 끓어오른다. 도전과 저항의 정신은 젊음의 특성이다. 그렇다고 해서 방향 없이 이리저리 치받기만 하고 분란만 일으킨다면 그 젊음은 좌절과 나락의 길에 빠져들 것이다. 과유불급이다. 지나친 투쟁심을 경계하되 도전과 저항의 정신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사람의 육체는 스물다섯 살이 넘으면 성장을 멈추고 노화의 길에 들어서기 시작하고 마흔이 넘어가면 급격하게 혈기가 쇠잔해지기 시작한다. 힘도 없으면서 지나친 탐욕을 부리는 것은 노망이고 아직 자신이 젊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착각일 뿐이다.
짐은 무겁고 갈 길은 멀다: 증자가 말했다. “선비는 마음이 드넓고 의지가 굳세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맡은 임무는 중대하고 갈 길은 멀기 때문이다(任重道遠). 인의 실천을 임무로 삼으니 어찌 막중하지 않겠는가? 죽어서야 끝날 길이니 어찌 멀지 않은가?”
흔들리고 나태해지는 마음을 다잡는 데 맞춤인 문장이다. 한 번 뜻을 세웠으면 굳센 의지로 길을 개척해나가야 한다. 굳센 의지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한편으로는 바다와 같은 넓은 포용력을 지녀야 한다. 넓음 속에서만 날카로운 굳셈이 꺾이지 않기 때문이다. 넓고 굳센 마음을 가져야 비로소 막중한 임무를 단단히 부여잡고 먼 길을 걸어갈 준비가 된 셈이다.
이 문장은 함부로 뜻을 세웠다가 중도에 쉽게 포기하는 사람들에게 증자가 내려치는 죽비다. 공부든 성공이든 쉽게 성취하는 것은 이 세상에 없다. 드넓고 굳센 마음과 의지로 기치를 굳세게 부여잡고 묵묵히 길을 걸어가는 자만이 성취의 환희를 느낄 수 있다. ‘임중도원(任重道遠)’은 2018년 《교수신문》이 뽑은 올해의 사자성어이기도 하다.
마음공부
공자가 하지 않은 4가지: 공자께서는 평소 4가지를 전혀 하지 않으셨다. 억측이 없었고, 꼭 그래야만 한다는 자세가 없었고, 고집을 부리며 불통함이 없었고, 나라는 집착이 없었다. [무의 무필 무고 무아(毋意, 毋必, 毋固, 毋我.)]
의(意)는 여러 가지 해석이 있다. 억측이나 무리한 추측, 개인적인 의견이나 의도 등이다. 여기서는 의견보다 억측으로 해석하는 것이 전체 맥락에 더 적합하다. 필(必)은 반드시 무리하게 나의 주장을 관철시키려는 것이다. 고(固)는 단단하게 굳어진 생각이나 관념을 뜻하며, 아(我)는 자신을 내세우며 욕망을 채우려는 사심이다.
공자는 왜 이 4가지를 전혀 하지 않았을까? 그것은 억측한 것을 바탕으로 일을 추진하다가는 일이 어그러지기 때문이며, 자기의 주장만을 관철시키려다 독단적 인간이 되는 것을 경계하기 위함이다. 또한 세상은 끊임없이 흘러가며 변화하는데 혼자만 변화를 거부하고 세상과 소통하지 않음을 경계하기 위함이요, 나에 대해 집착하지 않음으로써 욕망을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무의, 무필, 무고, 무아를 가슴에 새겨 경계한다면 적어도 어리석은 인간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릇된 욕망을 버려라: 원헌이 물었다. “남을 이기려고 하고, 자신을 과시하며, 남을 원망하고, 탐욕을 부리는 일, 이 4가지를 하지 않는다면 인(仁)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극벌원욕불행언 가이위인의(克ㆍ伐ㆍ怨ㆍ欲, 不行焉, 可以爲仁矣.)” 공자가 말했다. “실천하기 어려운 일이라 할 수는 없겠지만 인한지는 모르겠다.” [가이위난의 인즉오불지야(可以爲難矣, 仁則吾不知也.)]
남을 이기려는 마음과 자신을 과시하려는 마음은 한 가지다. 자신의 능력을 자랑하기 위해 남을 이기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남을 원망하고 탐욕을 부리는 일도 그 마음은 한 가지다. 탐욕이 있는 사람은 내가 원하는 일이 뜻대로 안 될 때 남을 원망하기 때문이다. 또한 극(克)ㆍ벌(伐)ㆍ원(怨)ㆍ욕(欲)도 결국에는 인간의 그릇된 욕망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모든 욕망이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논어』를 읽고 사람의 길을 가고자 하는 욕망 같은 것은 좋은 욕망에 속한다. 그러므로 욕망도 등급이 있다. 남을 이겨 자신을 뽐내려 하고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남을 원망하는 욕망은 최하등급의 욕망이다. 그러한 욕망을 버리는 사람만이 진정 인간답게 살았다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리더십
5가지 다스림의 원칙: 공자가 말했다. “천승의 나라를 다스릴 때는 매사를 공경스럽게 해 믿음을 쌓으며, 씀씀이를 알맞게 하며 사람을 사랑하고, 백성을 부리는 데는 때에 맞추어 해야 한다.” [도천승지국 경사이신 절용이애인 사민이시(道天乘之國, 敬事而信, 節用而愛人, 使民以時.)]
승(乘)은 말 네 마리가 끄는 전차로, 당시 병력을 셀 때 주로 사용하던 단위였다. 천승의 나라란 천 대의 전차를 지닐 수 있는 국력을 가진 나라를 뜻하는 것으로, 이는 당시의 경제력으로 보았을 때 대단한 군사적 규모였다. 그렇지만 공자의 말이 꼭 천승의 나라와 같은 큰 나라에 한정된다기보다는 다스림의 원칙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공자가 말한 다스림의 원칙은 경(敬)ㆍ신(信)ㆍ절(節)ㆍ애(愛)ㆍ시(時)다. 경(敬)은 주일무적(主一無適), 즉 한 가지에 일관되게 집중해 흐트러짐이 없는 상태다. 경사이신은 일을 할 때 집중해 완벽하게 처리함으로써 타인에게 믿음을 얻는 것이다. 절(節)은 절약의 뜻이다. 절용이애인은 윗사람이 재화를 흥청망청 쓰면 백성이 곤궁해지므로 씀씀이를 아껴 백성이 곤궁해지지 않게 하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절용은 애인(愛人)의 조건이 된다. 사민이시에서 시는 농한기를 가리키는 것으로, 나라의 각종 사역에 백성들을 동원할 때는 농한기에 하라는 뜻이다. 농번기에 백성을 동원하면 한 해의 농사를 망치게 되며 이는 곤궁함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리더가 갖추어야 할 3가지 자세: 공자가 말했다. “군자는 섬기기는 쉬워도 기쁘게 하기는 어려우니, 도로써 기쁘게 하지 않으면 기뻐하지 않는다. 군자는 사람을 부릴 때 그 사람의 그릇에 맞게 쓴다. 소인은 섬기기는 어려워도 기쁘게 하기는 쉬우니, 도가 아닌 것으로 기쁘게 하더라도 기뻐한다. 소인이 사람을 부릴 때는 그 사람에게 완벽을 요구한다.” [군자이사이난열야 열지불이도 불열야 급기사인야 기지 소인난사이이열야 열지수불이도 열야 급기사인야 구비언(君子易事而難說也. 說之不以道, 不說也. 及其使人也, 器之. 小人難事而易說也. 說之雖不以道, 說也. 及其使人也, 求備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