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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리더는 어떻게 성장하는가

최동욱 지음 | 태인문화사
최고의 리더는 어떻게 성장하는가



최동욱 지음

태인문화사 / 2019년 5월 / 254쪽 / 14,000원



실행력의 리더 아브라함



익숙한 것에서 떠나라: 아브라함은 메소포타미아 문명권에서 살던 사람이었다. 그가 살던 지역은 우르라는 곳으로 그 시대에 가장 번화한 도시였고, 그의 아버지는 각종 신의 형상을 만들어 팔아서 막대한 부를 축적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75세이던 어느 날 변화가 찾아온다. 그 변화는 갑자기 나타난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명령 때문에 발생한다.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너에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너에게 복을 주어 너의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땅에 사는 모든 민족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을 것이다.”

본 적도 없는 땅으로 가라는 신의 명령에 아브라함은 고민도 하지 않고 문명의 요람인 우르 땅을 떠났다. 당시 75세의 나이는 지금 시대로 치면 40대 중반의 나이이다. 아브라함은 중년의 나이에 자신의 모든 기반을 버리고 1500km가 넘는 위험하고도 먼 여정을 시작하는데, 다음과 같은 사명이 아브라함을 움직이게 한 원동력이었다. 첫째는 ‘개인적인 사명’으로 큰 민족을 이루어주겠다는 사명이다. 이 사명은 자녀가 있어야 가능한데 당시 아브라함에게는 자녀가 없었다. 아이를 낳을 적령기가 지난 이들 부부에게는 눈이 번쩍 뜨이는 약속이었다. 둘째는 ‘국가적인 사명’으로 아브라함을 통해서 한 민족을 이루라는 사명이었다. 셋째는 ‘세계적인 사명’이다. 땅에 사는 모든 민족이 아브라함과 그의 민족을 통해 복을 받게 된다는 것이었다.

1952년 7월 4일, 34세의 플로렌스 채드윅은 캘리포니아 해안을 횡단하는 최초의 여성이 되기 위해 도전에 나섰다. 냉기와 몰려오는 피로를 참으며 16시간을 헤엄쳐 간 그녀는 목표지점 800m를 앞두고 지독한 안개 때문에 도전을 포기한다. 코치가 해안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좀 더 힘을 내라고 격려했지만, 결국 그녀는 해협을 건너지 못했다. 기자들이 물었다. “거의 다 왔고 800m 남았는데 왜 포기했습니까?” “안개만 없었다면 나는 성공했을 것입니다. 내가 가야 할 방향을 분명히 볼 수만 있었다면 800m 이상도 수영할 수 있었습니다.” 두 달 후에 그녀는 재도전을 했고 결국 성공을 했다. 처음에 그녀가 실패한 이유는 안개 때문에 목표를 전혀 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사명의 길을 떠난 아브라함 일행도 약속의 땅까지 가지 못하고 중간 기점인 하란에서 몇 년을 머물게 되는데, 우르 못지않게 상인들로 북적이는 도시 하란은 아브라함 일행에게 고향에 대한 향수와 정서적인 안정감을 제공했다. 쾌적하고 안락한 하란이 자욱한 안개가 되어 목표를 가린 것이다. 게다가 몇 년 동안 하란에 머물면서 그들은 부유해졌고 비즈니스 기반도 탄탄하게 다져놓았다. 그러자 제2의 고향과도 같은 하란에 ‘안주’하고 싶은 생각이 서서히 그들을 잠식하고 있었다.

매사가 잘 되어 가고 지금처럼 계속 좋을 것이라는 생각은 대단히 위험한 환상이다. 오히려 지금의 상태가 부족한 상태이고 방향전환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옳은 생각이다. 특히나 사명을 아직 이루지 못한 중간 상태의 달콤함에 빠져 있다면 더욱 그렇게 생각해야 한다. 아직 가야할 길이 남았다면 아무리 좋은 환경일지라도 절대로 중도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

한 번도 실패하지 않았다면, 한 번도 도전하지 않은 것이다: 아브라함은 사명의 땅인 가나안에 도착한다. 그가 도착한 가나안 땅의 네게브 지역은 건조한 사막이었다. 물을 찾아보기가 힘들고, 식량이 부족해지는 일이 빈번한 곳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이 땅에 극심한 기근까지 닥쳐왔다. 천신만고 끝에 도착한 사명의 땅이 자신들이 떠나온 땅보다 열악하다는 것을 깨달은 아브라함의 식솔들은 원망 섞인 눈으로 아브라함을 바라보았다. 아브라함도 흔들리고 있었다. “사명의 땅에 머물 것인가? 아니면, 기근을 피해 이집트로 갈 것인가?” 조카 롯은 “살아남으려면 이집트로 가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고, 다른 식솔들도 롯의 의견에 동조했다. 아브라함의 리더십은 위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결국 아브라함은 이집트로 가기로 결정했다. 덕분에 식량 문제는 해결되었지만 대신 새로운 걱정거리가 생겼다. 자신의 아름다운 아내 사라 때문에 자신이 죽임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었다. 당시 왕들은 자기가 마음에 드는 여자가 있다면 어떤 여인이라도 첩으로 들일 수 있었다. 곰곰이 생각하던 아브라함은 사라를 자신의 아내가 아니라 누이라고 거짓말하기로 결정한다.

위기의 상황에서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을 때 나타나는 고유의 반응들은 그 사람이 어떤 방어기제를 가지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어떤 사람은 그럴듯한 말로 자기를 위장하고, 어떤 이는 연락을 끊고 스트레스의 수면 밑으로 가라앉아 버리는데, 그런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두려움 때문이다. 아브라함의 경우 두려움에 대한 위기모면 방법은 거짓말이었다. 거짓말은 책임과 위기를 모면하는 데 있어서, 단시간에 탁월한 효과를 낸다. 그러나 장기적인 관점에서 거짓말은 시간을 낭비하게 만들고, 상황을 더 악화시킨다. 리더가 거짓말을 일삼으면 구성원들에게도 고스란히 영향을 미친다.

사라의 미모는 이집트에 오자마자 사방으로 퍼졌고, 파라오는 사라를 자신의 궁으로 불러들였다. 아브라함이 아내를 누이라고 속이는 바람에 파라오의 후궁이 될 위기에 처한 것이다. 이 모든 일들은 아브라함이 고향에 머물러 있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실패였다. 그러나 이 실패를 통해서 아브라함은 귀중한 가르침을 얻게 되었다. 자신이 여기까지 내몰린 이유가 핵심가치인 ‘사명의 땅’에 집중하지 못하고, 눈앞의 문제인 기근에 집중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무엇을 해야 하는가도 중요하지만,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가도 중요하다.

아브라함의 결정 원칙: 가나안 땅에 다시 풀들이 돋아나고 곡식이 자라기 시작했다. 얼마 전 이집트에서 끔찍한 일을 겪었던 사라도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다. 아브라함에게 사명을 준 하나님이 파라오의 꿈에 나타나 “사라를 다시 돌려보내라” 하고 엄중하게 명령하지 않았다면 사라는 파라오의 아내가 되었을 것이다. 아브라함은 많은 재물과 종들을 선물로 받은 후 사명의 땅으로 돌아와 정착했고, 아브라함의 재산은 날로 늘어만 갔고 많은 종들로 인해 집 안은 북적거렸다.

위기가 지나가자 모든 것이 좋아 보였지만, 아브라함에게는 또 다른 위기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것은 외부에서 오는 위기가 아니라 내부에서 시작된 위기였다. 이 위기의 이름은 부유함이었다. 소유가 많아진 아브라함과 조카 롯 사이에 갈등의 골이 패이기 시작했다. 깊은 고민 끝에 아브라함은 사랑하는 조카 롯에게 선택권을 주기로 했다. “너와 나 사이에, 어떠한 다툼도 있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한 핏줄이 아니냐! 네가 보는 앞에 땅이 얼마든지 있으니, 따로 떨어져 살자. 네가 왼쪽으로 가면 나는 오른쪽으로 가고, 네가 오른쪽으로 가면 나는 왼쪽으로 가겠다.”

‘땅을 선택하라’는 삼촌의 제안에 롯은 그동안 봐두었던 노른자 땅을 생각해냈다. 가축들을 먹일 목초지와 물이 풍성한 강가, 교역을 하기에 안성맞춤인 소돔 성읍, 각종 나무 열매가 맺히는 아름다운 동산들, 한마디로 기회의 땅이었다. 롯은 손가락을 가리켜 그 땅을 지목했다. 그곳이 극심한 타락으로 심판을 받아 폐허가 될 땅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채, 롯은 가족들을 이끌고 기회의 땅 ‘소돔’으로 이주해 들어갔고, 아브라함은 롯과 반대 방향으로 거처를 옮겼다.

리더는 가족, 주변 사람, 본인에게 미칠 영향을 다차원적으로 고려해서 입체적인 결정을 내려야 한다. 단순히 눈앞의 이익을 보면서 평면적으로 생각하여 내린 결정은 공동체에 위기를 줄 수 있다. 그러므로 리더의 결정은 공동체를 위한 것이어야 하며, 리더 자신만을 기쁘게 하는 일은 과감하게 포기할 줄 알아야 한다. 아브라함은 ‘공동체를 위한 결정’을 했고, 롯은 ‘자신을 위한 결정’을 했다. 아브라함은 ‘옳은 결정’을 했고 롯은 자신에게 ‘이로운 결정’을 했다.

속도를 늦추고 더 깊어져라: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사명의 땅에 정착한 지 10년의 세월이 흘렀고, 아브라함은 덕망 있고 고귀한 인품을 가진 족장으로 지역 주민들에게 호감을 얻었다. 그의 보호를 받기 위해 종이 되겠다고 자발적으로 찾아오는 사람들도 많았다. 한편 주변 족장들은 그의 덕망과 인품에 존경심을 가졌지만, 빠르게 커지는 그의 세력이 두려웠고, 한편으로는 못마땅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함부로 그를 적대시 할 수도 없었다. 얼마 전에 발발한 ‘소돔 전쟁’ 때, 아브라함이 자기들의 목숨을 구해주었던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이후부터 아브라함은 지역의 실질적인 지도자로 급부상했다.

하지만 정작 아브라함 본인은 아무도 모르는 답답함에 잠을 못 이루고 있었다. 변변한 자식 하나 없으니 자신의 처지가 너무 허전하고 쓸쓸했다. 사라도 아브라함이 하늘을 보며 한숨을 쉴 때마다 몰래 눈물을 훔쳤다. 이러다가 영영 아이를 낳지 못할 것 같은 생각이 들자, 사라의 마음은 조급해졌다. 그런데 이런저런 생각과 고민에 밤잠을 설치던 사라의 뇌리에 갑자기 기막힌 생각 하나가 스쳤다. 당시 고대 근동에서는 아이를 낳지 못하는 사람들이 종을 통해서 아이를 낳는 관습이 있었는데, 사라가 이집트에서 데려온 여종 하갈을 통해 아이를 낳는 것이 부부가 찾아낸 묘수였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들이 리더에게 가장 원하는 것은 정직성과 윤리성이다. 아브라함과 사라가 하갈을 이용해서 목적을 이루려 했을 때, 그들은 하갈을 인격으로 본 것이 아니라 도구로 보았다. 사람을 수단화시키고 도구화시킨다면 누가 그를 복의 통로라고 인정하겠는가? 하갈은 종이기 때문에 복종할 수밖에 없었지만, 주인의 아이를 가지게 되자 사라를 우습게 여기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사라와 하갈 사이에 힘 싸움이 시작되었고, 이 힘 싸움은 두 후손들 간의 전쟁이 되어 오늘날까지 갈등과 다툼의 역사로 이어지고 있다.

채우려면 비워라: 아브라함은 어느새 117세의 노인이 되었다. 아브라함이 100세 때 사라가 임신하는 바람에 이 지역 전체가 떠들썩했던 일, 100세에 낳은 아들이 젖을 떼던 날에 큰 잔치를 벌였던 일도 아스라해졌다. 여종 하갈을 통해 먼저 태어난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의 집에서 분가해 나갔고, 청소년기에 접어든 노부부의 보물 이삭은 아브라함의 집에서 건강하게 자라났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이 다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서 명령을 내리셨는데, 충격적인 말이었다. “너의 아들, 네가 사랑하는 외아들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거라. 내가 너에게 일러주는 산에서 그를 번제물로 바쳐라.”

아브라함의 마음에 ‘이럴 거면서 왜 아들을 주신다고 하셨을까?’, ‘도대체 왜 내 아들을 바쳐야만 하는 것인가?’, ‘아들이 죽으면 큰 민족은 어떻게 이룰 것인가?’라는 질문들이 소용돌이쳤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내 아들 이삭만은 안 된다고, 나를 데려가라고 애원하고 싶었다. 아브라함도 충격을 받았지만, 사라가 더 큰 문제였다. 사라는 절대 이삭을 내어주지 않을 것이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아브라함은 누워 있을 수가 없었다. 밖은 캄캄했다. 여행에 쓸 짐과 번제에 쓸 나무를 준비한 후 아들과 몇 명의 종들을 깨웠다. 아무것도 모른 채 잠들어 있는 사라의 얼굴이 안쓰러워 보였다. 나귀를 탄 아브라함과 이삭, 종들의 그림자가 달빛에 길게 드리워졌다. 사흘만 걸으면 모리아산에 닿을 수 있었다.

각 사람이 겪는 역경의 강도는 그 사람이 감당해야 할 책임의 무게만큼 오기 마련이다. 아브라함은 한 민족을 이룰 조상이 될 사람이었으며, 모든 민족에게 영향력을 미칠 사람이었기에 그가 겪어야 할 역경의 강도는 무거웠다. 그러나 전쟁터와 같았을 아브라함의 내면과는 달리 아브라함의 몸은 움직이고 있었다. 새벽부터 나귀에 안장을 올리고 장작과 짐을 실었다.

그러고 나서 아들을 깨워 떠날 채비를 시켰다. 아브라함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영원한 것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알았기 때문이다. 리더는 ‘시대를 초월하는 소중하고 영원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영원한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목숨을 걸고 절대 타협하지 않을 각오가 된 사람이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이야말로 아브라함에게 ‘가장 소중하며 값진 것’이었고, ‘변하지 않는 영원한 진리’였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다.

열정의 리더 야곱



야곱은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이 낳은 쌍둥이 형제 중 차남으로, 장남인 에서와 태어날 때부터 경쟁하는 모습을 보이며, 분쟁과 재난으로 점철된 험악한 인생을 살았다. 그는 권모술수에 능한 자로 아버지를 속여 형 에서의 축복을 차지했다. 그 때문에 형을 피해서 도망 다니느라 많은 고생을 겪었지만, 두 명의 아내와 두 명의 첩을 통해 12명의 아들을 낳았다.

야곱의 열두 아들들로부터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가 나온다. 그리고 ‘압복강’에서 자신을 찾아온 신비한 방문자와 씨름을 한 후, 야곱의 이름이 ‘이스라엘’로 바뀐다. 우리는 야곱의 사례를 통해 성공한 리더는 아무리 작은 위기라도 우습게 보지 않는다는 것을 배울 수 있는데, 이는 파도가 모여 큰 파도가 되듯, 한두 번의 작은 위기가 쓰나미가 되어 불가항력적으로 덮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신념의 리더 요셉



요셉은 야곱이 노년에 낳은 아들로 부모로부터 특별한 사랑을 받았다. 이 때문에 형들에게 미움을 받았고, 형들은 요셉을 사막길을 다니며 노예 등을 교역하던 미디안 상인들에게 은 20냥에 팔아 버렸다. 그 뒤 요셉은 이집트 파라오의 꿈을 해석한 뒤 극적으로 이집트의 총리로 등극한다. 우리는 요셉의 사례를 통해 성공한 리더는 미움을 감사하게 여긴다는 가르침을 얻을 수 있는데, 이는 미움을 받는다는 것은 문제가 있으니 자신을 돌아보라는 경고등이기 때문이다.

사막을 통과한 리더 모세



세월이 지나 요셉과 그의 형제들과 그 시대 사람들 모두가 죽음을 맞이했다. 한편 새로 왕위에 오른 파라오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살고 있는 국경지대를 지나서 원정을 다녀오곤 했는데, 그는 국경지대에서 200년이 넘도록 살고 있는 이스라엘 자손을 볼 때마다 위협을 느꼈다. 고심하던 파라오와 이집트의 관료들은 곡식을 저장하는 성읍인 비돔과 라암셋을 건설하는 일에 이스라엘 자손을 동원하기로 결정하고, 이스라엘 자손들만 전담하는 공사감독관을 따로 두어 강제노동으로 그들을 억압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억압을 받을수록 히브리인들의 수는 더욱 불어났고, 자손은 번성했다. 그래서 결국 파라오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아이를 낳을 때 아들은 죽이고 딸만 살려 두라고 산파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산파들은 파라오처럼 잔인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갓 태어난 생명에 손을 대지 못했고, 히브리 남자아이들은 고스란히 살아남았다.

영향력을 남용하지 말라: 모세는 이스라엘 민족의 이집트 노예 생활 말기에 태어났다. 사내아이가 태어나면 가차 없이 죽이라는 파라오의 서슬 퍼런 명령이 있었지만, 그들의 부모는 도저히 죽일 수 없었고, 석 달 동안 아무도 모르게 모세를 키웠다. 하지만 언제 이집트 경비병들이 들이닥칠지 모를 일이었다. 그들은 한 가지 꾀를 생각했다. 갈대상자에 물이 들어오지 않도록 역청과 송진을 바르고, 아이를 상자에 담아서 나일강 갈대밭 사이에 놓아두었다.

모세의 누나 미리암은 나일강가에서 긴장한 채로 갈대상자를 지켜보고 있었는데, 어느 날 파라오의 딸이 강가로 내려왔다가 갈대상자를 발견하고는 건져 오라 명령했고, 시녀가 가져온 상자를 열어 보니 아름다운 남자아이가 울고 있었다. 아이를 보자마자 불쌍함과 연민, 사랑스러운 감정을 느낀 공주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이 아이는 히브리 사람의 아이겠구나. 하지만 이젠 내 아이다. 신이 나에게 선물로 주신 것이 틀림없다.”

멀리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미리암은 공주에게 뛰어가 인사를 올린 뒤 급하게 말했다. “공주님, 혹시 유모가 필요하지 않으신가요? 제가 히브리 여인 가운데 이 아기에게 젖을 먹일 유모를 찾아 드릴까요?” 잠시 고민하던 공주가 말했다. “가서 데려 오너라. 대신에 이건 너와 나만의 비밀이니 누구에게도 발설하면 안 된다.” 미리암은 즉시 집으로 돌아가 어머니에게 자초지종을 말하고, 공주에게 어머니를 데려갔다. 공주는 미리암이 데려온 유모가 아기의 어머니인 줄 모르고 명했다. “이 아이를 데리고 가서, 나를 대신하여 젖을 먹여다오. 그렇게 하면, 내가 너에게 삯을 후하게 주마.” 이렇게 하여 아기는 친어머니의 집에서 젖을 먹으며 자랐고, 젖을 떼는 날이 되자 공주의 양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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