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읽는 유대인 인생 특강
장대은 지음 | 비즈니스북스
새벽에 읽는 유대인 인생 특강
장대은 지음
비즈니스북스 / 2019년 4월 / 280쪽 / 15,000원
제1부 토라_ 흔들리지 않는 마음으로 산다는 것
베레시트_ 모든 성공은 믿는 것에서 시작된다
어느 분야건 기본이 중요하다. 노래를 잘하기 위해서는 발성을 갖춰야 하고 운동을 잘하기 위해서는 체력과 자세를 갖춰야 한다. 마찬가지로 사회인이 되어 자신의 능력을 펼쳐나감에 있어서도 기본기가 중요하다. 사회생활의 기본기는 인간관계다. 사회생활 대부분의 문제가 관계, 즉 사람 사이의 믿음과 신뢰의 문제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관계의 기본기를 지키지 않고 살다 보면 주변에 적이 생기기가 쉽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믿음과 신뢰로 맺어진 관계보다 계약과 법의 통제에 기댄 관계가 많아지게 된다. 이런 관계는 사회생활을 원활하게 할 수는 있지만 결코 사람 사이에 마음을 나눌 수는 없다. 이런 관계는 어떤 문제가 생기면 언제든 당신을 외면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인간관계가 모래 위에 지은 성과 같이 튼튼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이 가진 절대적 믿음의 시작: 여러 나라 사람들이 한 배에 타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폭풍우를 만나게 되었다. 사람들은 각기 자신이 믿는 신에게 기도를 올렸다. 그러나 유대인은 기도를 올리지 않고 있었다. 폭풍우가 더욱 심해지자, 사람들은 일제히 유대인에게 물었다. “당신은 왜 기도를 올리지 않는 거요?” 그제야 유대인은 기도를 올리기 시작했고 곧 폭풍우가 멎었다. 배가 무사히 도착했을 때 사람들은 다시 유대인에게 물었다. “우리 모두 열심히 기도를 올렸을 때는 효과가 없었소. 그런데 당신이 기도를 올리자 금방 폭풍우가 잠잠해졌소. 당신은 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시오?” 그러자 유대인은 이렇게 대답했다. “그 이유는 저도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여러분들은 각자 여러분의 나라에서 믿는 신에게 기도했습니다. 바빌로니아에서 오신 분들은 바빌로니아의 신에게 기도를 했고, 로마에서 오신 분들은 로마의 신에게 기도를 했습니다. 하지만 바다는 그 어느 나라에도 속해 있지 않지요. 우리 유대인들은 온 우주를 다스리는 위대한 신 한 분께만 기도를 올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분이 바다에서 제 기도를 들어주신 것 같습니다.”
이것은 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 중 하나다. 다소 종교적인 이야기이지만, 이것은 유대인을 이해하는 데 있어 반드시 필요한 절대적인 믿음을 나타내는 이야기다. 유대교 경전 타나크(개신교의 구약 성경에 해당)의 첫 번째 이야기 베레시트(창세기)는 태초에 천지를 창조한 신의 존재를 알리며 시작된다. 유대인에게 신은 그들이 가진 믿음과 확신의 출발점이다. 유대인을 이야기할 때 베레시트가 있는 율법서 토라를 빼놓을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유대인들은 토라를 그들의 신이 내려준 말씀으로 믿는다. 토라는 법이며 생명이다. 그래서 어떤 상황에서든, 누구에게든 토라를 이야기한다. 교육을 이야기할 때도, 사업상의 거래에서도, 쩨다카(자선)을 행할 때도 그들은 신의 명령임을 강조한다. 그만큼 그들은 그들의 신을 신뢰한다.
이 믿음은 단지 생각이나 말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들은 믿음을 행동으로 옮긴다. 유대인들 사이에서도 보수적인 유대인, 진보적인 유대인 등 다양한 성향의 유대인들이 있고 자신들만의 행동규칙이 있지만 그들은 자신의 성향이나 이념과 상관없이 모두 토라의 말씀을 일상에서 행하기 위해 힘쓰고 노력한다. 비유대인 또는 일반인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전통을 유대인들은 지금도 지키고 따르며 살아간다. 여기에서도 유대인의 남다른 믿음과 신뢰를 엿볼 수 있다. 그들은 그저 전통을 유지하고 지키려고 그것을 따르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글자 그대로 말씀을 천지를 창조한 조물주의 명령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믿으니까 의심 없이 행한다.
믿고 기댈 구석이 있는 사람은 자신감이 넘친다.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만 봐도 알 수 있다. 아이들은 놀다가도 중간 중간 뒤를 돌아보며 자신의 부모를 확인한다. 부모가 눈에 보이면 안심하고 계속 놀지만 눈에 보이지 않으면 불안해하며 울음을 터트린다. 하물며 믿음의 대상이 신일 때는 어떨까? 그 신이 전지전능한 창조주이며 반드시 약속을 지키는 존재라면 그 존재를 믿고 의지할 때보다 흔들림 없는 자신감을 가지고 두려움 없이 모든 일을 실행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유대인이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하는 원동력이다.
바미드바르_ 성공의 비밀, 세 가지 위기를 관리하라
성공으로 가는 길에 만나는 세 가지 위기: 유대 경전 네 번째 책 바미드바르(민수기)는 이스라엘 백성이 율법과 규례를 기준으로 삼아 생활 속에 적용하는 이야기다. 나아가 그 기준에 따라 가나안 땅에 입성할 ‘자격’을 가늠하는 광야에서의 여정을 담고 있다. 이집트를 탈출할 때만 해도 이스라엘 백성은 흥분해 있었다. 홍해를 건넜을 때는 완전히 자유가 되었다는 기쁨에 춤까지 추며 즐거워했다. 충분히 그럴 만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들이 잊고 있었던 한 가지가 있었다. 이집트에서 나와 그들이 들어선 곳이 바로 광야였다는 사실이었다. 약속의 땅,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향해 나아가는 그들 앞에 수많은 위기가 기다리고 있었다.
▲ 과거의 익숙함 - 광야 생활은 모든 것이 불편했다. 이집트 탈출의 기쁨도 잊은 지 오래였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불평하기 시작했다. 사막과 같은 광야에 먹을 것이 풍부했을 리 없다. 이집트를 떠날 때 예비한 식량도 축난 지 오래였다. 토라의 기록을 보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광야 생활 동안 하늘에서 내린 ‘만나’를 먹었다고 전한다. 아무리 맛난 음식도 오랫동안 먹으면 질릴 수밖에 없다. 매일 같은 음식만 먹게 된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에게 불만을 토로했다.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라. 우리가 이집트에 있을 때는 흔하게 생선과 오이와 참외와 부추와 파와 마늘을 먹었다. 허나 이제는 우리의 기력이 다하여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집트를 그리워하며 자신들을 광야로 이끈 모세를 원망했다. 매일 그런 원망과 불평에 시달리던 모세 역시 마음고생이 극심했다. 모세는 신에게 백성들의 원망을 전하고 도움을 구했다. “어찌하여 제게 신께서 약속하신 땅으로 그들을 품고 가라고 하십니까? 그들은 저를 보고 울면서 ‘고기를 달라!’ 하고 외치는데, 이 모든 백성에게 줄 고기를 제가 어디서 구할 수 있습니까? 저 혼자서는 도저히 이 모든 백성을 짊어질 수 없습니다. 제게는 너무 버거운 일입니다. 제발 저를 죽이셔서 이 곤경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주십시오.”
우리도 살면서 이와 비슷한 상황에 종종 맞닥뜨리곤 한다.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재정적, 심적 어려움을 겪곤 한다. 자신의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호기롭게 사업을 시작하지만 위기를 만나면 ‘월급 꼬박꼬박 나오던 때가 좋았지’ 하며 이전의 직장생활을 그리워하기도 한다. 나 혼자 겪는 어려움이라면 혼자 감내하고 말 텐데, 부양하는 가족들까지 같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 목표를 향한 자신의 선택이 맞는 건지 회의가 들기도 한다. 이런 일들이 조금씩 쌓이면 세상과 타협하게 된다. 그 후에는 자신의 목표, 꿈, 성공을 포기하고 현실에 안주해 살게 되고 만다.
그러나 모세는 신에게 원망의 목소리를 내긴 했지만 뒤돌아보지 않았다. 힘들어도 다시 가나안 땅을 향해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었다. 그러자 신이 모세의 기도에 응답한다. 신은 메추라기 떼를 이스라엘 백성들이 있는 곳으로 몰아넣어 그들이 새들을 잡아 배불리 먹을 수 있도록 해준다.
▲ 외부로부터의 훼방 - 미리암과 아론은 이집트를 탈출하기 전부터 모세의 최대 조력자였다. 미리암은 모세의 누이요, 아론은 모세의 형이다. 광야를 떠도는 동안에 그들은 모세에게 협력해 이스라엘 백성의 여정을 도왔다. 그런데 이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난하고 그의 리더십에 의문을 제기하는 일이 일어난다. 미리암과 아론은 두 가지를 문제 삼아 모세를 공격했다. 모세가 이방인과 결혼한 것, 이스라엘의 지도자 권위가 모세만이 아니라 자신들에게도 있다는 것이었다. 신이 모세를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삼을 때, 모세는 이를 거절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자신의 말이 어눌하다는 것이었다. 그때 신은 모세에게 아론을 붙여주며 아론이 모세의 이야기를 전하는 역할을 하도록 명령했다. 아론은 이렇게 말했다. “신이 모세만 말씀하셨느냐? 우리도 말씀하시지 않았느냐!”
성공을 향해 나아가는 길에는 자기 안에서 시작되는 위기도 있지만 외부로부터 오는 위기도 있다. 타인의 시선, 주변인의 의심과 걱정, 시기와 질투 등이 바로 그것이다. 모세처럼 그 대상이 가족이라면 그보다 더 어렵고 힘든 일이 없을 것이다. 신처럼 상황을 단숨에 정리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 현실에서는 오롯이 그 길을 가기로 선택한 자신이 헤쳐 나가야 한다.
그렇다면 외부로부터 시작되는 의심과 걱정, 시기, 질투에 어떻게 대응하면 좋을까? 모세는 미리암과 아론의 반란에 자신이 직접 판단하거나 벌하거나 대응하지 않고 모든 것을 신에게 맡겼다. 신은 주동자인 미리암의 행동을 신의 명령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하고 일정 기간 벌을 내렸다. 여기서 우리는 모세가 자신이 이스라엘을 이끄는 지도자로 신의 선택을 받은 것을 오로지 ‘역할’로만 여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모세는 자신이 신에게 간택된 것을 ‘권위’ 또는 ‘권력’으로 여기지 않았다. 그리하여 오로지 성공을 위해 자신이 해야 할 일, 역할, 임무에 몰두하며 나아갔다. 만약 모세가 자신의 권위나 위치를 지키는 데 연연했더라면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으로 이끄는 일은 실패했을지도 모른다.
▲ 비전에 대한 불평과 두려움 - “사람들을 보내 내가 약속한 가나안의 땅을 정탐하게 하라. 각 종족의 지파 가운데서 한 명씩 선정해 보내라.” 모세는 신의 명령대로 지파별로 한 사람을 뽑아 열두 명의 정탐꾼을 가나안 땅으로 보냈다. 이에 정탐꾼들은 40일 동안 가나안 땅을 정탐한다. 그중 열 명의 정탐군이 먼저 돌아와 다음처럼 고한다. “그곳은 정말 젖과 꿀이 흐르는 곳입니다. 허나 그 땅에 살고 있는 백성들은 매우 강하고 성읍 또한 견고한 요새로 되어 있습니다.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은 키가 장대 같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눈에는 우리가 메뚜기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큰 혼란에 빠진다. “우리는 이집트에 머물러야 했다. 가나안의 땅으로 가려다 칼에 맞아 죽게 생겼다. 차라리 이집트로 돌아가는 것이 좋겠다! 우두머리를 다시 세우자. 이집트로 돌아가자!”
이 순간은 모세에게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수백 년 동안 염원했던, 가나안으로 가는 여정이 이대로 끝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때 정탐꾼으로 갔던 여호수아와 갈렙이 돌아와 앞의 열 명과는 다른 견해를 피력한다. “그 땅은 매우 좋은 땅입니다. 신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면 그 땅으로 우리를 인도하실 것입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실 것입니다. 그 땅의 백성을 두려워 마십시오.”
어떤 일을 행할 때 우리는 여러 가지 환경과 조건을 따져본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자칫 외적 환경과 조건에 압도되어 자신의 부족함, 환경적 어려움만 보고 도전을 쉽게 포기한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말이 어눌하고, 도망자이자 가난한 목자에 불과했던 모세가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어 결국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의 땅으로 이끌었다. 때로는 외적 조건과 환경보다는 성공과 비전을 향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따라야 할 때가 있다. 바로 믿음, 의지, 각오와 같은 것들 말이다. 때로는 그것이 위기를 돌파하는 유일한 방법이 된다. 비전, 꿈, 목표는 지금 눈앞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기대와 소망의 눈으로 바라보아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인내하며 한 걸음씩 성취를 향해 나아가는 방향성이다. 그래서 그 길에 불안해하는 이들이 꼭 생겨나기 마련이다. 이들은 핑곗거리를 찾고 안 될 이유를 찾으며 전진을 방해한다. 또한 자기 스스로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경우도 있다. 자신의 비전과 목표를 스스로 의심하고 핑계를 찾으며 부정적인 역할을 자처하기도 하는 것이다. 이는 나의 미래에 어떤 성취도 불가능하게 만든다.
이처럼 성공으로 가는 길에는 다양한 위기와 고난이 있기 마련이다. 당장의 낯선 고통을 피하기 위해 과거의 익숙함을 그리워하고, 주변인들로부터 시작된 의심과 시기, 질투 때문에 의지가 약해지기도 한다. 눈에 뻔히 보이는 고난 때문에 낙담하는 일도 있다. 하지만 이루고자 하는 것이 있다면 매순간 흔들리는 마음을 경계해야 한다.
제2부 네비임_ 바른 기준과 생각을 갖는다는 것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한다
문제를 방치하면 더 큰 화를 부른다: 타나크의 열한 번째 책 이르메야후(예레미야서)는 남쪽 유다 왕국이 멸망하고 백성들이 바빌로니아의 포로가 된다는 예언을 주로 다룬다. 이전부터 유다 왕국의 멸망은 계속해서 예견되는 상황이었다. 선지자들이 여러 차례 경고를 외쳤으나 지도자와 백성 모두 타락의 길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눈물의 선지자’로 불릴 정도로 남다른 신실함을 보였던 예레미야에게는 그것 자체가 고통이었다. 신은 유대인을 벌하려 하는데 백성들은 사태의 심각성을 알지 못했다. 그 가운데서 예레미야는 괴로워하며 조국의 멸망을 예견해야 했다. 왜냐하면 그는 그것이 피해갈 수 없는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멸망은 자신들이 뿌린 씨의 결과이고 신의 뜻이기에 기꺼이 수용해야 한다고 그는 생각했다. 이르메야후에서 신이 하시는 말을 보면 그 뜻을 알 수 있다.
“나 주가 말한다. 나는 내가 세운 것을 헐기도 하고, 내가 심은 것을 뽑기도 한다. 온 세상을 내가 이렇게 다스리거늘, 네가 이제 큰일을 찾고 있느냐? 그만 두어라. 이제 내가 모든 사람에게 재앙을 내릴 것이다.”
“나 주가 말한다. 내가 너희 앞에 생명의 길과 죽음의 길을 둔다. 이 도성 안에 머물러 있는 사람은 전쟁이나 기근이나 전염병으로 죽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너희를 에워싸고 있는 바빌로니아 군대에 나아가서 항복하는 사람은 죽지 않을 것이다. 그 사람은 적어도 자신의 목숨만은 건질 것이다. 나는 복을 내리려고 해서가 아니라, 재앙을 내리려고 이 도성을 마주보고 있는 것이다. 이 도성은 바빌로니아 왕의 손에 들어갈 것이고, 그는 이 도성에 불을 질러버릴 것이다.”
문제는 외면한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방치하면 할수록 문제는 눈덩이처럼 불어나 더 큰 화를 부른다. 물론 문제를 직시한다고 해서 즉시 문제가 해결되고 성공에 이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더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다. 당시의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문제를 직시하지 않았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조국의 멸망을 예언하면서 바빌로니아 왕을 섬길 것을 백성들에게 권했다. 이런 행동들 때문에 그는 거짓 선지자 또는 배신자라는 오해를 받기도 한다. 그는 이미 벌어진 문제고 피해갈 수 없다면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라 생각했다. 유다 왕국의 백성들이 자신들의 잘못, 문제를 직시하지 않아 신의 노여움을 샀으니 고통의 시간을 통해 깨달음을 얻을 수 있기를 그는 바랐던 것이다.
편한 길은 없다: 유다 왕국도 새로운 시작을 위해 고난에 직면해야만 했다. 그러했기에 예레미야는 신이 명령한 예언을 멈출 수 없었다. 그들이 듣지 않아도 외쳤고 자신을 배척하고 핍박해도 물러서지 않았다. 계속 유다 왕국의 멸망에 대한 경고와 예언을 하자 이를 듣기 싫어했던 권력자들의 모함으로 예레미야는 감옥에 갇히기까지 한다. 그리고 매일 죽음의 위협 속에서 살았다. 그 역시 죽음이 두려웠고 무서웠다. 그러나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선지자로서의 직무를 마땅히 감당해야 한다고 여겼다. 그는 신의 약속을 굳게 믿었기 때문이다.
“내 백성아, 두려워하지 마라. 이스라엘아, 놀라지 말라. 내가 너희를 포로로 붙잡힌 나라로부터 구해내겠다. 너희가 다시 고국으로 돌아와 평화롭고 안전하게 살 것이니 너희를 두렵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다. 내 백성아, 두려워하지 말아라. 내가 너희와 함께한다. 내가 너희를 흩어 보낸 그 나라들은 완전히 없애 버려도 너희만은 전멸시키지 않겠다. 그러나 내가 너희를 정당하게 징계할 것이며 너희를 전혀 벌하지 않은 채 그대로 내버려두지는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