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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일하고 싶다면

김보경 지음 | 생각의힘
일본에서 일하고 싶다면

김보경 지음

생각의 힘 / 2019년 3월 / 279쪽 / 16,000원





마이나비의 첫 외국인 신입사원에서 대표이사가 되기까지



나는 어쩌다 일본으로 갔나

“일본 기업에서 임원까지 될 수 있었던 전략은 무엇인가요?” “저는 평범한 외국인 사원이었습니다. 운이 좋았어요.” “그래도 뭔가 비밀 전략이 있지 않았나요?” “음… 없습니다. 아, 모든 현상의 본질에 집중하고자 노력하고 그 누구보다 최선을 다했다는 것만큼은 당당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요즘 내가 가장 많이 받는 질문과 그에 대한 답변이다. 마치 수석으로 상위권 대학에 입학한 학생이 “교과서 위주로 공부했어요.” 하는 것과 같이 진부한 답이다. 하지만 정말 특별한 건 없었다. 굳이 하나를 꼽자면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을지 항상 고민을 달고 살았다는 것 정도다.

우연히 접한 매력적인 문자 히라가나: 중학생 때 일본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우연히 접한 일본어 히라가나의 동글동글한 문자가 귀엽게 느껴졌다. 2001년은 중국이 세계무역기구에 가입하면서 중국어 열풍이 막 불기 시작하던 때였다. 이런 상황에 부모님은 갑작스런 나의 일본어 열정에 반기를 드셨다. 잠깐의 흥미일 뿐이니 영어 공부나 제대로 하라는 얘기였다. 결국 난 용돈을 모아 책 한 권을 사서 독학으로 공부를 시작했다. 그리고 내 생각이 맞았다. 일본어를 하면 할수록 흥미는 커져만 갔고, 열정도 더해졌다. 그리고 그 언어로 말하고 싶고 일본인과 대화하고 싶은 마음도 커져갔다.

드디어 일본에 가다!: 고등학교에서는 제2외국어로 일본어를 선택했다. 그리고 1학년 수학여행 때 일본을 다녀왔다. 수학여행을 다녀온 후에는 주변의 도움을 받아 일본 현지인과 펜팔을 주고받았다. 그런데 펜팔과 함께 공부를 하면 할수록 내 실력의 한계를 느꼈고, 그만큼 욕심이 더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이 답답함과 부족함을 채우려면 일본 유학을 가는 것이 최선이라는 결론을 내렸고, 종로에 있는 일본어 학원에 등록했다. 한 타임의 수업만으로는 부족해 오전반 6시, 저녁반 7시 두 개 수업을 들었다. 하루 2회 6시간을 투자하는 고된 일전이었지만 수업을 들을 수 있다는 것 자체로 놀이터에 가는 것처럼 즐거웠다. 한편 대학을 알아보던 중, 도쿄외국어대학교가 눈에 들어왔다.

일본 유학 준비 / 대학교 자체 시험 준비: 도쿄외국어대학교 입시는 일본유학시험의 일본어 점수와 외대 자체 시험(일본어, 세계사 또는 일본사, 영어) 점수의 합산으로 결정된다. 나는 일본으로 가 대학교 입시반에 등록했고,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수업을 받았다. 수업이 끝나면 도서관에 가서 문을 닫을 때까지 공부했다. 한편 자체 시험으로 일본어, 일본사, 영어를 선택하고, 과거 15년간의 기출문제를 반복적으로 풀어봄으로써 시험 유형과 출제 경향을 분석하며 준비했고, 다행히 합격했다.

일본 유학 생활: 꿈꾸던 일본 유학 생활이 시작되었다. 틈틈이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교 수업을 따라갔다. 대학교 2학년 후반부터는 경영학에 관심이 생겨 관련 수업을 모두 찾아 들었는데, 여전히 부족하다고 느껴져, 국립 히토츠바시대학교에 단위교환제도를 신청해서 3학년은 히토츠바시대학교 상경학부에서 경영학을 배웠다. 한편 당시(2010년)에는 3학년 10월부터 본격적인 취업 준비를 시작했는데, 3학년 2학기가 시작되면서 나도 취업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한국으로 귀국해서 취업을 해야 할지, 아니면 대학원에 가야 할지, 그것도 아니면 제3의 나라로 다시 유학을 가야 할지…. 유학생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고민해봤을 테지만, 답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때 한 선배가 대학교에서 누릴 수 있는 모든 혜택을 누리라며 조언을 해주었고, 나는 외국인 유학생도 교환학생을 신청할 수 있다는 말에 싱가포르국립대학교에 교환학생을 신청했다. 다행히 좋은 결과를 얻어 4학년 때는 싱가포르로 유학을 가게 되었다. 참고로 도쿄외대에서 보낸 유학 생활의 가장 큰 장점은 미국, 브라질, 러시아 등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 유학생들과 어울려 지낼 수 있었던 것이었는데, 이러한 생활은 한국과 일본밖에 알지 못했던 내 작은 세계를 크게 확장시켜주었고, 여러 나라의 문화를 접하는 경험을 가능하게 했다. 그리고 또 싱가포르 유학 경험은 그 세계를 한층 폭넓고 깊이 있게 만들어주었다.

일본 취업 도전기

온ㆍ오프라인 동시 공략! 한국인 채용 기업 찾기: 일본에서 취업하기로 결심한 이후, 알고 있는 현지 일본인을 비롯해 외국인 유학생, 선후배들에게 취업 준비 방법과 비법을 물었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마이나비와 리쿠나비에 등록하는 것이었다. 일본은 한국과 다르게 매년 신입사원 채용을 위한 온라인 취업 정보 사이트가 따로 열리는데, 사이트의 이름은 입사 연도에 따라 ‘마이나비 2019’와 같은 식으로 구분된다. 회원 등록까지는 수월했다. 그런데 현지 취업 정보 사이트에서 외국인, 그것도 한국인 채용 수요가 있는 기업을 찾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찾은 두 번째 방법은 오프라인 채용박람회에 참여하는 것이었다. 나는 당시에 각종 취업박람회는 물론이고 외국인 유학생이나 일본인 유학 경험자를 대상으로 하는 글로벌 인재 채용박람회에도 참가했다.

기업 선택의 기준: 일본에서 매년 신입사원을 뽑는 기업은 약 3만 개다. 일본 현지 취업 준비생들 사이에서는 평균적으로 50개 기업에 서류를 내고, 5개의 기업에서 내정을 받아 최종적으로 1개의 기업을 선택하는 게 정석으로 알려져 있다. 그 때문에 나는 현재 일본 취업 관련 사업을 하면서 만나는 취업준비생들에게도 처음부터 업계와 직종의 폭을 좁히지 말고 넓은 시야로 이곳저곳 알아보라고 목청을 높인다. 한편 마이나비에서의 면접은 특별했다. 1차에서 4차까지, 인사 담당자, 실무 사원, 매니저급, 임원으로 진행되는 면접이 매우 편하고 즐거웠다. 압박감이 느껴지던 다른 면접들과는 달리 나를 있는 그대로 보려는 면접관들의 태도가 안정감을 주었고, 면접이 즐겁다 보니 이런 사람들과 함께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최종면접까지 순조롭게 마친 바로 다음 날 내정 통지를 받았다.

나만의 ‘기무(金)’ 브랜드 만들기

신입 1년 차, ‘기무 코너’로 찾은 나만의 브랜드: 2011년 4월, 첫 외국인 신입사원으로 마이나비에 입사했다. 입사 후 1주일간 신입 연수를 받고 과를 배정받았는데, 이때 직속 과장이 신입사원을 데리러 오는 일정이 포함되어 있었다. 내 상사는 경력직으로 이직해 온 영업과장이었다. 과장은 첫 외국인 사원인 나를 다른 사원들과 어떻게 어울리게 해야 할지 고민이 많아 보였는데, 내가 맡은 첫 업무는 ‘매주 정례 회의 때 5분간의 기무 코너 준비’였다. ‘5분간의 기무 코너’란 매주 있는 영업 회의의 마지막 5분 동안 간단한 한국어 문장을 6명의 과원들에게 가르치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과장이 나를 배려하기 위해 몇 날 며칠 고민해서 내린 결정이었던 듯하다.

그날 이후 나는 정말 간단한 ‘안녕하세요?’부터 시작해서 ‘괜찮아요’, ‘맛있어요’, ‘더워요’, ‘얼마예요?’, ‘깎아주세요’ 따위의 말들을 준비해 가르쳤다. 과원들은 수첩에 한 자 한 자 열심히 받아 적으며 짬 날 때마다 배운 단어로 내게 말을 걸어오곤 했다. 그러자 ‘5분간의 기무 코너’는 사내에서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고, 여기저기서 배우고 싶다는 사원들의 이메일 요청이 쇄도했다. 고민하다 업무 시작 전 약 30분 정도를 모여서 공부하는 타 과의 모습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소속 임원에게 ‘기무 코너’ 운영에 대해 보고했다. 그러자 인트라넷에 공지해서 아예 전 사원을 대상으로 모집해보는 게 어떻겠느냐는 제안이 돌아왔고, 그렇게 기무 코너가 순식간에 전 사원에게 공지되었다.

두근두근 첫 수업이 열렸다. 50명의 사원과 포털 사이트의 공지를 도와줬던 1명의 임원까지 총 51명이 수업에 참여했다. 참고로 8시 30분 사내 강의실에서는 당시에 큰 인기를 끌고 있던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흘러나왔다. 노래 가사를 통해 한글과 한국의 문화를 해설하는 식으로 수업을 진행했다. 그 후로도 매달 2회씩 사내 강의실에서는 케이팝이 흘러나왔다. 내게 질문해온 사람들 덕분에 케이팝뿐만 아니라 한국 드라마, 영화, 역사, 여행, 음식, 미용 등 일본인들이 우리나라에 관심을 갖는 분야를 알게 되었고, 나 또한 그들의 관심 분야를 공통점으로 부각시키며 자연스럽게 나를 알릴 수 있었다.

“글로벌 인재 김보경입니다.”: 영업직은 신입사원이어도 입사 후 4주차가 되면 혼자서 영업 미팅을 잡기 시작한다. 방문영업에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몰라 갈피를 못 잡았지만 기댈 곳은 없었다. 거대한 영업용 가방을 들고 힐까지 신은 채 영업을 다녔다. 여기저기 방문영업을 하다보면 어느새 구두 밑창이 다 나갔고 어깨와 손은 빨갛게 달아올랐다. 하지만 하나의 과정일 뿐이라고 곱씹으며 버텼다.

일본과 싱가포르에서 유학 시절을 보내면서, 각국을 연결하는 글로벌 인재가 되고 싶다는 목표를 정했었다. 그리고 취업 활동 시에 했던 자기분석을 통해 커리어패스도 명확히 잡았다. 하지만 당시 꿈만 명확했지 비즈니스 현장에서 글로벌 인재로 어떻게 활약할 수 있을지에 대한 답은 구체적으로 갖고 있지 않았다. 게다가 나는 가까운 시일 내에 해외사업을 전개하기 위한 목적으로 채용된 것이 아니라, 추후 고객사의 글로벌 인재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서 미리 뽑아놓고 테스트해보기 위한 채용에 불과했다. 그렇다고 회사에서 지시가 내려질 때까지 가만히 앉아서 기다릴 수만은 없었다.

뭐라도 해야 했다. 일단 “외국인은 역시 어쩔 수 없구나.”라는 얘기가 나오지 않도록 일본인 사원과 견줄 수 있을 만큼 비즈니스 레벨 이상의 일본어 실력을 유지하려고 애썼다. 그리고 일본인들이 어려워하는 영어 실력까지 갖추려고 노력했는데, 먼저 일본에 있는 미국계 회사를 고른 후 인사 담당자 또한 지사장이 외국인인 곳을 찾아다니며 영업했다. 영어로 미팅을 잡고 영어 제안서와 견적서를 작성해서 방문영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미국 본사 승인을 받고 수주까지 하는 데 성공했다. 영업한 지 1년 만에 얻은 쾌거였다. 그리고 사내에 소문이 퍼져 일-영 번역 요청이 오기 시작했고, 내 일이 아니더라도 이게 다 피가 되고 살이 될 것이라 생각하며 사원들을 도왔다.

처음에는 내가 외국인이라는 바뀌지 않는 사실에 스스로 한계를 두는 것이 아닐지 고민하기도 했다. 그러다 내가 가진 핸디캡을 직시하고 그것을 보완해 장점으로 부각시키려는 노력이 어느 정도 효과가 있음을 깨닫자 핸디캡은 금세 장점으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이후 나는 일본의 비즈니스 경험뿐만 아니라, 해외, 글로벌 관련 키워드가 들어간 업무에 적극적으로 도전하며 나만의 이미지를 구축해갔다.

사원에서 임원까지, 험난한 여정

허점투성이 신입사원의 홀로서기: 일본 국내영업직으로 발령받은 나에게 주어진 업무는 기업들에게 마이나비 사이트에 구인광고를 내도록 영업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미팅 약속을 잡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그리고 여러 번씩 방문해도 채용 수요가 전혀 없는 기업도 많았다. 또 일본어를 잘못 알아들어 실수도 했다. 한계가 느껴졌다. 그렇게 지쳐가던 입사 3개월 차 무더운 여름, 사직서를 제출했다. 사직서를 받아 든 전무는 향수병이 아니냐며 휴가를 줄 테니 한국에 다녀오라고 했다. 그 휴가 동안 한국에서 가족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마음을 가다듬었고, 일본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다시 한 번 제대로 해보자고 다짐했다. 그렇게 다시 회사로 돌아온 지 3개월 만에 영업 실적 1위를 했고, 사장님이 초대한 식사 자리에서 전무들의 눈에 띄었다.

나, 김보경이어서 가능한 일을 하고 즐겨라: 나를 깊이 아는 사람들은 내가 다분히 감정적이라는 것을 안다. 그리고 이런 감정적인 내가 일본 기업에서 임원까지 오르게 된 것에 무척 놀라워한다. 그런데 어쩌면 내가 감정적인 사람이어서 일에 더 깊이 빠져들었을 수도 있다. 단순히 일이 정말 좋았기 때문이다. 내가 한국 진출 사업을 하게 된 것도 감정적인 성격이 한몫했다. 일본과 한국을 오가면서 한국의 대학생들이 겪는 취업의 어려움을 누구보다 가슴 아프게 느꼈고, 이러한 상황에 놓인 한국 대학생들에게 새로운 길을 제시하고 싶었다. 그들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경청하고 공감하지 못했더라면, 지금은 큰 사업이 된 ‘Career in Japan KOREA’ 시리즈의 한국 사업은 생각해내지도 못했을 것이다.

처음 한국 사업을 기획했을 때는 그저 내가 일본에서 경험한 것처럼 한국의 청년들이 취업하고 성공해 행복해졌으면 하는 마음으로 일 자체를 즐겼다. 누군가는 나보고 워커홀릭이라고도 하지만, 나는 드림홀릭이라고 명명했다.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서 일을 즐기다 보니 8년이 지난 지금 마이나비 한국 법인의 대표가 된 것이다. 2019년 1월 현재 전체 직원 9,900명이 넘는 마이나비그룹의 19개 그룹사 중 첫 외국인 사원, 보수적인 일본 사회에서 여성 임원이 된 것까지. 지금 와서 이유를 찾자면 운 좋게도, 그리고 감사하게도 나만이 가능한 일을 확실히 찾아냈기 때문이다.



일본 취업, 철저한 준비만이 살길이다



한국과 다른 일본의 채용 방식

일본 취업 한눈에 보기 / 한국 VS. 일본 신입사원 채용 방식: 일본 취업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한국과 일본의 채용 방식 차이를 명확히 파악해야 한다. 예로 한국은 3~4월, 9~10월 연 2회 기업들의 공채가 이뤄지는 편이지만, 일본은 일본경제단체연합회의 신입 채용 지침서에 의거하여 연 1회로, 3월에 대부분의 공채가 이뤄진다. 일본 기업의 채용 절차는 아래와 같다.일본의 신입 VS. 경력 채용: 일본의 경력 채용은 한국과 동일하게 결원 보충으로 진행되나, 신입사원은 정규 취업 시기를 통해 채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한국에서는 신입 때부터 어느 정도 직무 역량과 스펙이 특화된 스페셜리스트를 원하는 경향이 있는 반면, 일본에서는 성장과 인성에 중점을 두고 각 업종별 전문가로 성장할 것을 기대하는 제너럴리스트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다.

일본 기업의 채용 스케줄

일본 기업 채용에 지원하는 2가지 방법: ① 일본 현지 채용에 지원할 경우 - 보통 6월부터 이듬해 채용을 실시하는 기업의 인턴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취업 정보 사이트가 열린다. 개인의 성격, 잠재적인 능력 등을 주요하게 생각하는 일본 기업들의 특성상 이 시기에는 보통 자기분석과 업계 연구, 필기시험 등을 준비한다. 이듬해 3월 1일부터는 구체적인 구인 정보가 공개된다. 이때부터는 본격적으로 이력서, 엔트리시트, 필기시험, 면접 등 각 기업별 채용 절차를 확인하고 준비하는 취업 활동이 시작되며, 일본 전역에서 취업 설명회가 개최된다. 기업에 따라서는 취업설명회 참가가 지원 조건인 경우도 있기 때문에 이러한 내용 또한 사전에 반드시 확인해두어야 한다.

② 한국에서 진행되는 채용에 지원할 경우 - 한국에서 열리는 일본 채용 정보는 보통 상반기 때 집중된다. 대략 5~6월 사이 마이나비 본사에서 개최하는 일본 취업 합동면접회인 ‘Career in Japan KOREA’를 비롯해 각 정부나 단체에서도 이 같은 면접회가 크게 열린다. 단순한 취업설명회가 아니라 바로 면접이 진행되기 때문에 3학년을 마치는 즈음부터는 이력서와 면접을 준비해야 한다.

일본의 신입사원 종합직 일괄 채용: 종합직은 전공과 직무의 직접적인 연결이 없어도 입사할 수 있으며 지원자의 기본 역량을 바탕으로 한다. 따라서 종합직으로 채용되면 인사, 재무, 회계, 영업, 기획 등 다양한 직무에 배치될 수 있다. 기술직의 경우에는 전공을 살려 내용이 명확한 직무를 선택하여 입사한다. 참고로 은행원의 경우 종합직 사원은 법인영업이나 융자 담당 등 책임이 큰 일을 맡게 되며, 일반직 사원의 업무는 종합직의 서포트 역할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우며, 경리, 사무 등의 일상 업무나 개인 고객 담당 등 업무가 한정되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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