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터면 행복을 모르고 죽을 뻔했다
바바라 버거 지음 | 나무생각
하마터면 행복을 모르고 죽을 뻔했다
바바라 버거 지음
나무생각 / 2018년 11월 / 304쪽 / 14,500원
PART 1 나는 내가 믿고 있는 대로 살고 있다
생각과 마음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당신 자신을 지키고 행복한 삶을 사는 법을 배우고 싶다면, 기본부터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요컨대 마음의 기본적인 메커니즘을 알아야 한다. 당신이 삶의 경험을 어떻게 받아들이며, 당신이 행복한지 아닌지를 결정하는 것이 결국에는 마음가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런 마음의 기본적인 메커니즘은 무엇일까? 아주 간단하다. 생각이 의식이란 차원에서 생겨나면, 당신은 자신이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게 되고, 결국 그 무엇을 경험하게 된다. 정말 간단하지 않은가?
그런데 우리가 현실 자체를 직접적으로 경험하는 경우는 무척 드물거나 아예 없다. 우리는 눈앞에서 일어나는 현상에 대한 우리 자신의 해석을 경험하는 것일 뿐이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삶의 대법칙’을 가정할 수 있다. ‘생각은 원인이고, 현실에 대한 우리 경험은 결과다.’ 이는 우리의 사고방식, 즉 우리가 습관적으로 생각하는 태도가 삶의 경험을 받아들이는 방향을 결정한다는 뜻이다. 달리 말하면, 현실(또는 삶이라 불리는 것)을 어떻게 경험하느냐는 우리가 현실이나 삶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요컨대 현실 자체를 직접적으로 경험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보편적인 법칙이다. 당신의 지위나 신분, 연령이나 재산의 규모에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똑같이 적용되는 법칙이다. 이 법칙은 모두에게 예외 없이 적용된다. 그래서 ‘법칙’인 것이다. 이 법칙에 담긴 뜻을 풀어보면, “우리는 생각하는 대로 경험하게 된다.” 따라서 뭔가가 대단하다고 생각하면 대단한 것을 경험하게 되고, 뭔가가 끔찍하다고 생각하면 끔찍한 것을 경험하게 된다. 다른 반응은 일어나지 않는다. 현실은 눈앞에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다. 삶은 우리 눈앞에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우리가 경험하는 것은 삶 자체가 아니라, 삶에 대한 우리의 해석이다.
따라서 우리의 경험은 항상 전적으로 주관적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우리가 무엇이 좋은 것이고 무엇이 나쁜 것인지 판단하느냐에 따라 우리 경험이 달라진다. 요컨대 우리의 성향에 따라 어떤 사건을 어떻게 경험하느냐가 달라진다. 모두가 동의하는 선악의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기준은 없다. 모든 것이 당사자의 관점과 신념에 따라 달라진다. 그럼 우리 관점은 어떻게 형성되는 것일까? 문화와 종교, 배경, 성별 등 무수한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 한마디로 우리가 어떻게 프로그램되었는가에 따라 우리 관점이 결정된다. 그런데 관점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할 수 있다. 우리가 성숙해지고 한층 어른스러워져서 세상을 다른 관점에서 보게 되면, 과거에는 ‘나쁜 것’으로 인식하며 경험했던 것이 ‘좋은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 이런 이유에서 “불행을 가장한 축복”이란 말이 생긴 게 아니겠는가!
이쯤에서 신중하고 정직하게 우리 자신을 돌이켜보면, 우리는 세상을 살아오면서 구축한 믿음과 생각을 기준으로 반응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는 당신과 나, 우리 모두가 똑같다. 따라서 어떤 상황에서나 기본적인 메커니즘은 ‘생각이 원인이고 경험은 결과다.’라는 결론이 내려진다. 이 메커니즘은 누구에게나 언제나 예외 없이 적용되는 원칙이다.
이번에는 다시 주변을 둘러보며, 세상이 돌아가는 속도를 약간 늦추어보자. 그러고는 자신을 조심스레 관찰해보자. 어떤 사건이 닥치고 그 사건을 바람직한 것이라 생각하면 우리는 그 사건에 대해 좋게 받아들이고 바람직한 사건으로 경험한다. 그러나 어떤 사건이 터지고 그 사건을 나쁘게 생각하면 우리는 그 사건을 불편하게 받아들이고 불편한 사건으로 경험한다. 이런 판단과 경험은 사건 자체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사건 자체는 중립적이다. 사건은 사건일 뿐이다. 우리가 어떤 사건을 경험하는 방향은 전적으로 그 사건에 대해 우리가 갖는 생각과 믿음 및 가치판단에 의해 결정된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우리의 모든 경험은 우리 생각의 결과물이다. 이 등식은 어디에나 적용되는 ‘인과법칙’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세상을 경험하는 방법도 달라진다는 것, 다시 말하면, 생각하는 대로 세상을 경험하고 있다는 것을 모른다. 어떤 사건이 일어나면 우리는 곧바로 그 사건을 해석한다. 하지만 그 과정이 너무도 신속하게 진행되기 때문에 대부분 그런 과정 자체를 눈치채지 못한다. 그저 ‘아, 이것은 나쁜 거야!’라고 생각하고, 그 외적인 사건을 탓하며 중간에 개입된 단계를 의식하지 못한다. 달리 말하면, 그 사건에 대한 우리의 생각과 해석이 우리 반응과 경험에 미친 영향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그러나 현실은 우리 눈앞에서 실제로 벌어진 사건이고, 나머지는 우리 마음속에 자리 잡은 생각일 뿐이다. 우리 생각은 사건에 대한 직접적인 경험이 아니라, 사건에 대한 우리의 해석에 불과하다. 따라서 우리는 해석을 경험하는 셈이다. 따라서 우리는 현실을 해석하고, 그 해석에 맞춰 살아간다. 사건과 사람 및 그것들의 의미에 대한 이야기를 꾸며 우리 자신에게 속삭이고, 그에 맞춰 살아가며 현실을 그렇게 경험할 뿐이다.
이런 원칙을 이해해야 마음과 생각의 무궁무진한 힘을 이해할 수 있다. 또 이런 원칙을 이해해야 삶에 불만이 있더라도 우리가 생각하는 방향을 바꾸면 얼마든지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도 깨닫게 될 것이다.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오직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삶을 완전히 새롭게 바라보는 방법일 것이다. 지금까지 누구도 우리에게 ‘생각이 원인이고 경험은 결과’라는 기본적인 메커니즘을 알지 못했고, 따라서 우리는 생각을 관리하고 처리하는 법을 배울 수 없었다. 이 때문에 우리는 수많은 불필요한 고통에 시달려야 했다. 우리가 무지했고, 고통은 삶 자체에서 비롯되는 것이라 잘못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삶 자체는 고통의 원인이 아니다. 삶은 그저 존재할 뿐이다. 이 기본적인 메커니즘을 이해해야 생각을 올바로 관리할 수 있다. 그렇다. 생각의 관리가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한 전제조건이다!
내 삶의 방식은 옳은 것일까?
당신 자신의 주인이 된다는 것은 당신만의 세계관을 갖는다는 것 즉, 만물에 대해 당신만의 관점을 갖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쉽게 말하면, 당신의 관점에 맞추어 만물을 해석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것은 당신의 권리다. 그런데 이것도 당신의 권리라는 걸 내가 어떻게 알까? 당신이 그렇게 만물을 해석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것이 현실이다. 여하튼 당신이 이미 당신만의 세계관을 갖고 있고, 만물에 대한 자기만의 해석을 갖고 있다는 게 현실이다. 우리 모두가 그렇다는 것이 현실이다.
실제로 우리는 각자 자신만의 생각과 견해를 갖고, 또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각자 나름대로 해석하며 이야기를 지어낸다. 따라서 하나의 표준적인 ‘올바른’ 인생관, 세계관, 현실관이 있다는 견해는 크게 잘못된 견해다. 왜냐하면 하나의 올바른 세계관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사건이 터지면, 사람들은 그 사건을 각자의 관점에서 다른 식으로 해석한다. 따라서 하나의 올바른 세계관이 있어 우리가 각자의 개인적인 관점을 그 세계관에 맞추어야 한다면, 우리는 사건을 해석하고 경험할 때마다 불안감에 시달려야 할 것이다. 특히 자신의 세계관이 친구들이나 가족의 세계관과 다르지 않은지 노심초사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의견과 해석에서 어떤 것도 배울 수 없다거나, 어떤 사건을 두고 다른 사람들과 논쟁을 벌일 수 없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다른 대안이 없을 때 우리만의 세계관과 현실을 갖게 된다는 뜻이다. 하기야 그럴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우리는 각자의 고유한 정신세계에서 살아간다. 하나의 임의적인 ‘올바른’ 세계관은 없다. 그런 세계관이 있다면 어디에 있겠는가? 또 하나의 올바른 세계관에 대한 기준은 누가 세우는 것일까? 그런 것은 결코 존재할 수 없다. 삶은 철저하게 주관적인 경험이다.
PART 2 관계에 대한 의무가 먼저일까? 내가 행복할 권리가 먼저일까?
남자 친구가 화를 낸 이유를 모르겠어요
당신의 인간관계 규칙을 누가 정했는가? 당신은 그 규칙에 동의했는가? 이 문제를 설명하기 위해서 내가 경험했던 짤막한 실화 하나를 소개한다. 내가 ‘남자 친구와의 아침 식사’라고 부르는 일화다.
어느 금요일 저녁, 남자 친구와 외출해서 멋진 시간을 보냈다. 우리는 멋진 식당에서 친구들과 함께 맛있는 저녁 식사를 했다. 그러고는 산책을 즐긴 후에 남자 친구의 아파트에 가서 황홀한 섹스를 가졌다. 다음 날 아침, 나는 눈을 떴을 때 행복하고 기운이 충만했다. 당시 나는 중요한 프로젝트에 공을 들이고 있었지만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날 아침 눈을 떴을 때 그 문제를 단숨에 해결할 방법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나는 빨리 집으로 돌아가 일을 시작하고 싶었다. 남자 친구는 여전히 꿈나라에 있었다. 나는 샤워를 하고 옷을 입었다. 그때 남자 친구가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나는 그에게 입맞춤하고, 그동안 나를 괴롭히던 프로젝트를 시작하러 집에 가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놀랍게도 그가 버럭 화를 내며 “가더라도 아침은 먹고 가!”라고 소리쳤다.
그 때문에 우리는 심하게 다투었다. 남자 친구의 원칙에 따르면, 좋은 관계고 사랑하는 사이라면 당연히 아침 식사를 함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의 세계에서는 그것이 당연한 것이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아침 식사를 함께하지 않고 그냥 돌아가는 것은 그에게 상처를 주는 무례한 짓이었다. 그래서 그가 나에게 그처럼 화를 냈던 것이다. 나는 아침 식사를 하지 않고 떠나야 하는 이유를 논리적으로 설명했지만 그는 요지부동이었다. 여하튼 나는 남자 친구의 아파트를 나왔고, 그 후로 남자 친구를 달래는 데 며칠이 걸렸다.
나는 남자 친구의 아파트를 나서면서 조금 전에 있었던 승강이를 되새겨보았다. 정말 우스꽝스런 사건이지만, 어디에서나 흔히 듣는 전형적인 사건이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도 사랑하는 배우자나 자식 또는 친구 등과 걸핏하면 터무니없는 의견 충돌로 다투지 않는가. 내 남자 친구는 “아침 식사를 하지 않고 가는 건 무례하고 상처를 주는 짓”이라고 말했다. 이 말은 그의 생각이었고, 그날 아침 그는 실제로 그렇게 경험했다. 또 이것은 그의 원칙이었다. 나는 이 원칙을 꼼꼼히 뜯어보았다. 그 원칙에 따르면 내가 아침 식사를 그와 함께해야 내가 그를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그를 사랑한다면 아침 식사를 그와 함께한 후에 떠나야 했다. 그의 생각에는 사랑하는 사람이면 반드시 지켜야 할 원칙이었다. 나는 이런 행동 규칙을 누가 정했는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아침 식사를 함께하는 게 올바른 행동이라고 누가 말했는가? 꼬리를 물고 다음 질문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게 그의 규칙이라면, 내가 그 규칙을 지키겠다고 동의한 적이 있었던가? 내 기억이 맞다면, 우리가 데이트를 시작한 이후로 그가 내게 “바바라, 나를 사랑한다면 항상 아침 식사를 나와 함께해야 해.”라고 말한 적이 없었다. 따라서 그 규칙을 내가 알 길이 없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우리가 관계를 시작할 때 좋은 연인에게 필요한 전제조건을 서로 교환하지 않았던 게 불행의 씨앗이었다. 물론 그랬더라면 처음부터 우리 관계가 원만하지 않을 거라고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내가 이 사례를 소개하는 이유는 많은 연인들이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수많은 조건과 기대치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들의 조건을 자세히 살펴보면 양쪽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며 합의한 적 없이 한쪽이 일방적으로 정한 독단적인 생각에 불과하다. 따라서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는 게 조금도 놀랍지 않다. 이러한 독단적인 행동 원칙들을 기반으로 인간관계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분란에 휘말리기 마련이다. 따라서 그런 충돌이 있을 때마다 우리는 화를 내고 다투지만, 그처럼 다투는 근본적인 이유에 대해서는 모른다. 앞의 아침 식사 사례가 분명히 보여주지 않았는가. 하지만 그의 원칙은 현실과 아무런 관계도 없다. 나는 그와 아침 식사를 함께 하든 하지 않든 그를 사랑했기 때문이다.
인간관계에서 당신이 자주 화를 내거나 다툰다면 당신의 믿음 체계를 꼼꼼히 살펴보기 바란다. 당신의 믿음이 불필요한 분노와 원망의 원인인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좋은 인간관계를 유지하려면 무엇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가? 상대도 똑같이 생각하는가? 둘의 관계에서 당신이 기대한 것은 무엇이고, 상대가 기대하는 것은 무엇인가?
인간관계에서 당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분명히 파악한 후에는 상대와 이야기를 나눠보라. 당신과 상대가 각자의 행동 원칙이나 믿음을 부지불식간에 어기는 실수를 범하기 전에 그런 대화를 나누는 편이 더 낫다. 이미 불상사가 벌어졌다면, 지금이라도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눌 것을 권한다. 지금 겪고 있거나 앞으로 닥칠지도 모를 마음의 고통을 적잖게 덜어내고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원만한 인간관계를 위한 자기만의 조건을 갖는다고 나쁠 것은 없다. 그러나 상대에게 그 조건들을 미리 알려야 한다. 당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믿음이 있다면, 상대에게 솔직히 말해야 한다. 그래야 상대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판단할 수 있지 않겠는가. 원칙적으로 당신은 어떤 전제조건이든 원할 수 있다. 하지만 혼동과 충돌을 피하고 싶다면, 상대에게 그 조건들을 미리 말해두는 편이 낫다. 상대의 마음을 꿰뚫어보는 독심술사는 없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지적하고 싶은 것은, 그런 기대와 조건이 행복한 삶을 영위하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데 별다른 상관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이런 깨달음이 있을 때 동반자가 있든 없든 간에 당신은 지금 꿈꾸는 행복을 훨씬 쉽게 경험하게 될 것이다.
PART 3 마음에도 다이어트가 필요하다
행복이란 무엇인가?
기본적으로 행복은 두 종류가 있다. 첫째로는 우리가 뭔가에 성공하거나 승리한 경우, 또 일을 훌륭하게 해내고 부모나 자식을 즐겁게 해준 경우에 경험하는 행복이 있다. 이런 행복은 외적인 상황과 사건 및 사람에게서 비롯되는 것이다. 물론 이런 행복은 재밌고 즐겁지만, 사건과 사람이 달라지거나 외적인 상황이 바뀌면 물거품처럼 사라지는 행복이다. 다른 하나는 우리의 진정한 본성 또는 삶의 본질로서의 행복이다. 이런 행복은 외적인 상황과 사람과 사건에서 영향을 받지 않기 때문에 우리의 잘잘못으로 그 행복을 얻거나 잃는 것은 아니다. 이 행복은 지금의 우리며, 우리의 진전한 본성이다. 이 행복을 경험하려면 현재에 충실해야 한다. 그러면 ‘행복’이란 더없이 즐거운 상태가 우리의 현실이 된다. 지금 이 순간에 완전히 충실한 상태이며, 평화롭고 충만하며 편안하고 즐거운 상태다. 하지만 우리는 미래를 투영하거나 과거에 매몰되어 살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하는 즐거움을 놓치고, 우리의 진정한 본성인 더없는 행복을 누리지 못한다.
“지금 행복하십니까?”라는 물음에 “네, 행복합니다!”라고 대답할 수 있다면 다행이다. 하지만 이렇게 대답하지 못한다면 잠시라도 모든 것을 멈추고 그 이유를 생각해보라. 지금 이 순간 당신의 행복을 방해라는 것이 무엇인가? 지금 이 순간의 즐거움과 기쁨, 지금 여기 있다는 행복을 방해하는 것은 무엇인가? 잠시라도 모든 것을 멈추고 이런 생각을 해보는 것만으로도 놀라운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다른 모든 일을 멈추고 현재에만 충실해서 이 순간의 경이로움과 북돋움을 느낄 때마다, 현재의 행복을 경험하는 걸 방해하는 유일한 요인은 당신의 머릿속에서 꿈틀대는 생각, 예컨대 뭔가가 일어나야만 한다거나 반대로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런 생각을 잠시라도 중단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살펴보라. 잠시라도 당신 자신을 지금 이 순간에 있게 해보라. 어떤 기분인가? 이제 행복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