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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준의 고사성어 독법

신동준 지음 | 리더북스



신동준의 고사성어 독법

신동준 지음

리더북스 / 2018년 8월 / 320쪽 / 17,000원





인생의 지혜- 시련의 날에 더욱 굳건하게



돌로 양치질하고 흐르는 물을 베개 삼는다- 수석침류(漱石枕流)

서진 때 풍익태수를 지낸 손초는 벼슬길에 나가기 전에 도인처럼 살고자 했다. 당시 사대부 사이에는 속세를 경시하며 도인처럼 사는 것을 중시하는 이른바 청담 사상이 유행했다. 대표적인 인물들이 바로 죽림칠현이다. 손초 역시 젊었을 때 죽림칠현을 흉내 내어 산림에 은거하고자 했다. 하루는 친구인 왕제에게 자신의 속셈을 털어놓았다. 이때 돌을 베개 삼아 눕고 흐르는 물로 양치질을 한다는 뜻의 침석수류를 잘못하여 반대로 얘기했다. 돌로 양치질을 하고 흐르는 물을 베개로 삼는다는 뜻의 수석침류로 표현한 게 그렇다.

수석침류 얘기를 들은 왕제가 큰소리로 껄껄 웃었다. 이내 그가 실언임을 지적하자 자존심이 강한 손초가 이같이 강변했다. “흐르는 물을 베개로 삼는 ‘침류’는 요임금 때의 은자인 허유처럼 쓸데없는 말을 들었을 때 귀를 씻고자 하는 취지이고, 돌로 양치질을 하는 ‘수석’은 이를 잘 닦고자 하는 취지라네!” 전혀 틀린 말은 아니나 궤변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은 늘 실수 내지 실언을 할 수 있는 만큼 곧바로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면 될 일이었다. 그럼에도 손초는 결코 이를 인정하지 않고 억지 해석을 시도한 것이다. 그의 실수로 인해 만들어진 수석침류 성어는 남에게 지기 싫어하여 사실이 아닌 것을 억지로 고집부리는 궤변의 뜻으로 널리 쓰이게 되었다.

수석침류와 비슷한 고사성어로는 견강부회가 있다. 가당치도 않는 말을 끌어들여 자신의 주장이나 조건에 맞도록 합리화하는 것을 뜻한다. 주목할 것은 이와 비슷한 취지로 만들어진 아전인수 성어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를 두고 우리말에서 나온 한자성어로 알고 있으나 사실은 일본에서 만들어진 성어이다. 일본어로는 ‘가덴인스이’로 읽는다. 중국에서도 ‘워텐인수이’로 읽으면서 이 성어를 널리 사용하고 있다. 이 성어가 수출국인 일본보다 수입국인 한국과 중국에 더 널리 쓰이고 있는 셈이다. 문화 수출의 성공사례에 해당한다.

이와 정반대로 침류수석은 수출국인 중국보다는 수입국인 일본에서 널리 사용되는 경우에 속한다. 이는 이 성어와 관련한 일본의 역사문화 배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크게 2가지 점을 들 수 있다. 첫째, 일본어에서 예상했던 사람이 예상된 행동을 할 경우 우리말의 ‘역시나!’ 의미를 지닌 부사어로 이 성어를 널리 사용하고 있는 점이다. 일본어로 ‘사스가’로 읽으면서 한자로 침류수석의 약자인 유석(流石)을 사용하는 게 그렇다. 정탐한다는 뜻의 ‘정’ 자를 사용해 ‘사스가’로 읽기도 한다. 대다수 일본인들은 그 유래를 자세히 모르는 까닭에 ‘유석’이라고 쓰고는 왜 ‘사스가’로 읽는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둘째, 일본의 셰익스피어라는 칭송과 함께 일본 최고의 문호로 손꼽히는 나쓰메 소세키가 자신의 필명을 소세키로 택한 점이다. 원래 그의 이름은 나쓰메 킨노스케이다. 그는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손초의 행보가 마음에 든 나머지 자신의 필명을 소세키(漱石)로 정했다. 영국 유학 후 도쿄대 강사와 아사히신문 기자생활을 하면서 잡지에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등을 연재해 명성을 떨쳤다. 1911년 문부성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수여하려고 하자 이를 단호히 거절하는 고집을 보여주었다. 그는 죽은 지 68년 뒤인 지난 1984년 11월에 1천 엔짜리 지폐 초상의 주인공으로 채택됐다. 그 화폐는 지난 2007년까지 사용됐다.

소박하고 청빈하게 살다- 단식표음(簞食瓢飮)

많은 사람들이 단식표음을 단사표음으로 읽고 있다. 『맹자』 <양혜왕 상>에 나오는 단식호장 성어도 많은 사람들이 단사호장으로 읽고 있다. 원래 ‘식(食)’은 먹는다는 뜻의 동사뿐만 아니라 ‘밥’을 뜻하 는 명사로도 사용된다. 여기의 단식은 대광주리에 담긴 밥을 뜻하는 까닭에 ‘식’은 명사로 사용된 것이다. ‘식’으로 읽는 게 타당하다. ‘사’로 읽는 것은 밥을 먹여준다는 뜻의 사동사로 사용될 때뿐이다.

원래 단식표음 성어는 가난한 생활을 하면서도 편안한 마음으로 수도를 즐기는 이른바 안빈낙도를 행한 안회의 행보를 가리킨 것이다. 도인의 모습이다. 이를 두고 훗날 북송의 정이천은 이같이 풀이했다. “안회의 즐거움은 한 그릇의 밥과 한 표주박의 물, 누추한 시골을 즐거워한 데 있지 않다. 가난으로 인해 그 마음이 얽매인 바가 있었으나 그 즐거움을 조금도 바꾸지 않은 데 있다.”

대략 <옹야>에서 언급한 단식표음의 취지에 부합한다. 안회, 즉 안연은 공자의 수제자이다. 열심히 공부하며 도를 닦는 점에서 단연 발군이었다. 공자가 여러 제자 가운데 유독 안연을 높이 평가하며 자신이 창시한 유도를 전하고자 한 이유다. <옹야>에 나오는 단식표음 정신은 공자가 『논어』 <술이>에서 언급한 수도 자세와 정확히 일치한다. <술이>의 해당 대목이다.

“거친 밥을 먹으며 물을 마시고, 팔을 굽혀 베개로 삼을지라도, 즐거움이 또한 그 안에 있다, 불의한 방법으로 얻은 부귀는 나에게 뜬구름과 같다.”

공자의 이 언급은 학문하는 자세에 관한 공자의 자술 가운데 최고의 걸작에 해당한다. 이를 두고 정이천은 풀이키를, “공자가 거친 밥을 먹고 물을 마시는 것을 즐거워한 것이 아니라, 거친 밥을 먹고 물을 마시면서도 그 즐거움을 고칠 수 없다고 말한 것이다.”라고 했다. 공자가 말한 기본 취의에 부합한다.

<옹야>의 단식표음과 <술이>의 반소식음수 구절을 통해 공자와 안연이 얼마나 유사한 모습을 보였는지 대략 짐작할 수 있다. 공자의 수제자들 가운데 안연은 할 말을 다하는 자로와 달리 평소 말을 건네는 경우가 드물었고, 깊이 천착하는 자공과 달리 공자가 무슨 말을 하는지 단박에 알아차렸다. 굳이 자세히 물어볼 이유가 없었다. <위정>에 나오는 공자의 다음 술회가 이를 뒷받침한다.

“내가 회와 더불어 온종일 얘기했다. 그가 내 말을 어기지 않아 일견 어리석은 듯했다. 그가 물러간 뒤 그의 사생활을 살펴보니 그 내막이 충분히 드러났다. 회는 어리석지 않다.”

안연은 가난 속에서 도를 닦는 이른바 안빈낙도의 삶을 살았다. 공자도 내심 스스로 안연만 못하다고 여길 정도였다. 안연은 배움을 통해 다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기쁨을 느꼈을 것으로 본다. 단식표음으로 상징 되는 안연의 안빈낙도 행보는 물질과 이익을 향해 무한 질주하는 인간의 호리지성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처세의 교훈- 살면서 지켜야 할 처신



재주를 흙먼지에 감추다- 화광동진(和光同塵)

일찍이 성선설을 주장한 맹자와 달리 인간의 악한 본성에 주목한 순자는 『순자』에서 이같이 설파한 바 있다. “말을 많이 하는데도 모두 합당한 이른바 다언이류의 인물이면 성인이고, 말을 적게 하는데도 법도에 맞는 소언이방의 인물이면 군자이고, 말이 많고 법도에 맞지도 않는 다언무법과 그 내용을 종잡을 수 없는 유면연의 인물이면 비록 말을 잘 할지라도 소인일 뿐이다.”

도가는 도를 말로 설명키에 적합하지 않은 까닭에 말을 아낀다는 의미에서 ‘불언’을 중시했다. 이는 무조건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는 취지에서 나온 게 아니다. 『순자』 <대략>이 지적한 것처럼 다언무법의 한계를 통찰한 결과다. 『도덕경』에 나오는 ‘무’와 ‘불’을 글자 그대로 해석해 일체의 ‘유’와 배치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은 『도덕경』의 기본 취지를 망각한 것이다. 『도덕경』은 제1장에서 이같이 설파했다.

“도는 가히 ‘도’라고 쉽게 말하지만 이는 영원한 도인 ‘상도’가 아니다. 명은 가히 ‘명’이라고 쉽게 이름을 붙이지만 이는 본질적인 명칭인 상명이 아니다.”

‘도’를 크게 말할 수 있는 가도지도와 그럴 수 없는 불가도지도로 나눠 풀이했음을 알 수 있다. ‘명’ 역시 크게 이름을 붙일 수 있는 가명지명과 그럴 수 없는 불가명지명으로 양분되어 있다.

제1장의 논리에 따르면 결국 <상 = 무 = 도 = 현>의 도식이 성립된다. 사실 이 도식은 『도덕경』의 처음과 끝을 관통하는 기본 도식이기도 하다. 삼국시대 때 활약한 왕필은 가도지도와 가명지명을 하나로 묶어 ‘지사조형’으로 규정하면서 불가도지도와 불가명지명은 이에 반대되는 것으로 풀이했다.

불가도지도와 불가명지명은 똑똑한 사람이 어리석은 사람처럼 보이면서 사는, 이른바 난득호도와 취지를 같이한다. 난득호도는 어리석은 사람처럼 내보이며 살기가 쉽지 않다는 뜻이다. 청대 건륭제 때 화가 겸 학자로 명성을 떨쳤던 정판교는 난득호도를 삶의 기본철학으로 삼은 바 있다. 그는 자신이 쓴 시 <난득호도>에서 이같이 읊은 바 있다.

총명해 보이기도, 어리석게 보이기도 어렵다

총명한데도 바보처럼 보이기는 더욱 어렵다

고집 버리고 일보 물리면 매사 마음 편하다

그러면 의도하지 않아도 나중에 복이 오리니



중국인들은 자신의 속셈을 남에게 드러내지 않는 것은 물론 바보처럼 보이며 살아가는 것을 최상의 처세술로 생각한다. 자신이 지니고 있는 것을 온갖 방법을 동원해 모두 드러내 보이고자 하는 한국인의 심성과 대비된다. 플로베르의 소설 『보바리 부인』에서 유래한 보바리즘이 한국인의 심성과 닮아 있다. 허영심으로 인해 자신을 과장되게 생각하고 표현하는 경향을 말한다.

난득호도의 처세술은 자신이 지니고 있는 장점을 전혀 드러내지 않는 처세술을 지칭한다. 좋은 물건일수록 숨겨두며 없는 척을 하는 것이다. 없는 것도 있는 척을 하는 한국인의 행태와 정반대다. 언짢은 일을 당했을 때 한국인들은 두고 보자며 말을 앞세운다. 그러나 중국인들은 10년이 넘게 은밀히 칼을 갈며 후일을 기약한다. 중국에 군자보구, 십년불만 속담이 유행하는 이유다. 군자가 복수를 할 때는 10년 뒤에 할지라도 결코 늦지 않다는 뜻이다. 일본인도 중국인과 유사한 행태를 보인다. 겉으로 드러내는 외교적 언동인 다테마에와 깊이 감춘 속셈인 혼네를 엄히 구분하는 게 그렇다.

먹던 복숭아로 죄를 짓다- 여도지죄(餘桃之罪)

춘추시대 말기 위령공으로부터 커다란 총애를 받은 미자하가 방자한 모습을 보였다. 위나라 법에 따르면 군주의 수레를 몰래 타는 자는 발을 자르는 월형에 처하도록 되어 있었다. 미자하의 모친이 병 이 들었을 때 어떤 사람이 밤에 몰래 와서 이를 알렸다. 미자하가 위령공의 수레를 슬쩍 빌려 타고 나갔다. 위령공이 이를 전해 듣고 오히려 그를 칭찬했다. “효자로다. 모친을 위하느라 발이 잘리는 형벌까지 잊었구나!”

다른 날 미자하가 위령공과 함께 정원에서 노닐다가 복숭아를 따먹게 되었다. 맛이 아주 달았다. 반쪽을 위령공에게 주자 위령공이 칭송했다. “나를 사랑하는구나. 맛이 좋은 것을 알고는 과인을 잊지 않고 맛보게 하는구나!”

세월이 흘러 미자하의 용모가 쇠하고 총애가 식었다. 한번은 위령공에게 죄를 짓게 되었다. 위령공이 대로한 표정으로 질타했다. “이자가 전에 과인의 수레를 몰래 타고 나간 일도 있고 또 자신이 먹던 복숭아를 과인에게 먹인 일도 있다!” 결국 미자하는 죽임을 당했다. 이를 두고 한비자는 이런 사평을 덧붙여 놓았다.

“미자하의 행동에는 변함이 없었다. 미자하의 행동이 전에는 칭찬받았다가 후에 책망을 받게 된 것은 군주의 애증이 변했기 때문이다. 군주에게 총애를 받을 때는 지혜를 내는 것마다 군주의 뜻에 부합해 더욱 친밀해졌다. 그러나 미움을 받게 되자 아무리 지혜를 짜내도 군주에게는 옳은 말로 들리지 않고 오히려 질책을 받으며 더욱 멀어지게 되었다. 군주에게 간언을 하거나 논의를 하고자 하는 자는 반드시 먼저 자신이 과연 군주에게 총애를 받고 있는지, 아니면 미움을 받고 있는지 여부를 잘 살핀 뒤 유세해야만 한다!”

미자하의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듯이 군주의 심기를 거스르는 이른바 역린은 기본적으로 군주의 변덕에서 비롯된 것이다. 사서를 보면 군주의 변덕에 따른 여도지죄 추궁 사례는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이를 무턱대고 탓할 수만도 없다. 군주 입장이 수시로 바뀔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군주도 사람인 까닭에 상황에 군주가 총애하는 신하도 수시로 바뀔 수밖에 없다 아무리 뛰어난 미색을 지닌 여인일지라도 미색이 쇠해지면 계속 군주의 총애를 얻을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세난>에 미색이 출중한 여인에 비유될 수 있는 유능한 신하들에게 늘 역린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일화가 나온다.

하루는 송나라에 사는 부자의 집 담장이 비로 인해 무너져 내렸다. 그의 아들이 말했다. “담장을 고치지 않으면 반드시 도둑이 들 것입니다.” 이때 이웃집 노인도 부자의 아들과 똑같은 말을 했다. 그날 밤이 되자 과연 크게 도둑을 맞았다. 부자는 자신의 아들을 대단히 지혜롭게 여겼다. 그러나 이웃집 노인은 크게 의심했다. 한비자는 이를 두고 이같이 평했다.

“이웃집 노인의 말은 그대로 적중되었으나 의심을 샀다. 아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아는 바를 처리하는 게 어려운 일이다. 서쪽 진나라 대부 요조 역시 자신이 한 말로 인해 중원의 진나라에서는 성인으로 대접받았으나 정작 자신의 나라에서는 처형을 당했다. 잘 살피지 않으면 안 된다.”

요조는 서쪽 진나라의 대부로 그에 관한 일화가 『춘추좌전』 <노문공 13년>조에 나온다. 그는 중원의 진나라에서 서쪽 진나라로 망명한 대부 사회를 계책을 써서 데려오고자 했을 때 그 속셈을 간파했다. 사회가 고국인 중원의 진나라로 돌아가려고 할 때 이같이 경고했다. “우리 진(秦)나라에 진(晉)나라의 속셈을 아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지 마시오.”

사회는 귀국한 뒤 요조의 재능이 자신을 크게 위협한다고 생각해 곧 첩자를 들여보내 요조를 무함했다. 진강공은 이를 곧이듣고 요조를 처형했다. 중원의 진나라가 요조를 얼마나 두려워했는지 짐작케 해준다. 그러나 요조의 입장에서 보면 섣불리 자신의 재능을 드러내는 바람에 횡사를 당한 셈이다. 한비자가 “요조 역시 자신이 한 말로 인해 중원의 진나라에서는 성인으로 대접받았으나 정작 자신의 나라에서는 처형을 당했다.”고 언급한 것도 바로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고금을 막론하고 재능은 함부로 내비치는 게 아니다. 자신의 능력을 높이 평가해 발탁하는 은혜인 이른바 지우지은을 베푼 주군도 사람인 까닭에 수시로 마음이 변할 수 있고, 당사자 또한 이내 여도지죄의 덫에 걸릴 소지가 크다. 주군을 택할 때 『춘추좌전』 <노애공 11년>조에서 공자가 언급했듯이 마치 새가 나무를 가려 앉는 이른바 조즉택목의 이치를 좇아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사물을 꿰는 안목- 쓸모없는 것의 쓸모



쓸모없는 게 쓸모 있다- 무용지용(無用之用)

무용지용에 관한 일화는 사물의 이치와 사람이 사는 이치가 꼭 같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인간세>에 나오는 무용지용의 일화에 따르면, 전설적인 장인인 장석이 제나라로 가다가 곡원 땅에 이르렀을 때, 토지신인 사당의 상수리나무를 보았다. 크기는 수천 마리 소를 가릴 만하고 둘레는 백 아름쯤 되었다. 높이는 산을 내려다볼 정도여서 땅에서 천 길이나 올라간 뒤에야 비로소 가지가 뻗어 있다. 배를 만들 경우 수십 척에 달할 정도였다.

나무를 구경하는 사람들이 마치 저잣거리처럼 많이 몰려왔다. 장석은 이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그대로 가던 길을 멈추지 않았다. 그의 제자가 그 나무를 본 뒤 황급히 달려와 물었다. “제가 도끼를 잡고 선생을 따른 이래 이처럼 좋은 재목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선생은 본체만체하며 가던 길을 멈추지 않으니 이는 어찌 된 것입니까?”

장석이 대답했다. “되었다. 더 이상 말하지 말라. 그것은 쓸모없는 잡목일 뿐이다. 배를 만들면 가라앉고, 관이나 곽을 만들면 곧바로 썩고, 그릇을 만들면 이내 부서지고, 대문이나 방문을 만들면 나무 진액이 흘러나오고, 기둥을 만들면 좀이 슬 것이다. 그러니 이 나무는 재목이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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