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사람들에게 상처받을까
네모토 히로유키 지음 | 비즈니스북스
나는 왜 사람들에게 상처받을까
네모토 히로유키 지음
비즈니스북스 / 2018년 8월 / 232쪽 / 13,500원
제1장. 왜 상대방과의 적당한 거리를 파악하지 못할까
상대방과 선 긋기를 못하는 사람의 특징
의리나 인정 따위에 얽매이지 마라: 당신은 언제까지나 주변에 좋은 사람이고 싶은가? 당신이 그토록 원하는 좋은 사람으로 남고자 한다면 자기다움 또는 자신의 아이덴티티, 즉 정체성을 잃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당신은 요즘 변비가 심해진 것 같으니 채소를 많이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친구가 “채소 위주의 식단이 오히려 건강을 해칠 수 있대. 매일매일 고기를 적당히 섭취해야 해.” 하고 말한다. 그러면 좋은 사람인 당신은 친구의 말에 금세 동의하고 만다. 자신의 몸 상태에 따라 채소를 많이 먹어야 한다는 생각을 부정하고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 상태가 되니 당연히 즐거울 리 없다. 이렇게 생각을 바꿔서 얻은 이점은 기껏해야 상대방의 말을 부정하지 않고 긍정하여 관계가 틀어지지 않고 웃으면서 하루를 보낼 수 있다는 것에 안심했다는 정도다.
하지만 상대에게 좋은 사람이 되기를 포기하는 순간,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행동할 수 있고, 그로 인해 만족감이 커지고 인간관계에서도 지치지 않는다. 나도 좋고 타인에게도 좋은 상황이 최선이겠지만,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나 자신이 우선이라는 얘기다. 당신이 나의 의도를 정확하게 이해했다면, 나의 제안에 흔쾌히 동의할 것이다. “단호해지자. 그리고 의리나 인정 따위에 얽매이지 말자.” 이 말을 다르게 표현하면 ‘나는 나, 남은 남’이다.
내 안의 자아가 사라진 상태: ‘상대방을 생각해서 그렇게 행동했는데, 진심으로 좋아하는지 몰라서 너무 불안해. 상대가 기쁘지 않다면 오히려 나를 미워할 수도 있을 텐데….’ ‘다행히 상대방이 좋아하는 것 같아 안심이야. 일단 나를 싫어하지는 않겠지.’ ‘그런데 진짜 기뻐하는 게 맞나? 나를 대하는 태도가 왠지 좀 이상하단 말이야. 겉으로만 좋아하는 척하는 건 아닐까?’ 당신은 이런 생각을 얼마나 자주 하는가? 이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끊임없이 이어지면 항상 자기 자신보다 상대방을 의식하는 환경이 뿌리를 내린다. 그러다 보면 자아가 사라진다. 자신보다 상대방을 우선한 나머지 나에게 정말 소중한 자아를 잃고 만다.
나는 그런 상태를 가리켜 ‘유체이탈’이라고 표현한다. 혼이 몸에서 빠져나가 상대방에게로 가버린 것이다. 이렇게 되면 뭘 해도 자아가 없으니 자신이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 전혀 신경 쓸 수 없다. “몸이 아무리 피곤해도 제 자신을 돌볼 수가 없어요. 몸이 보내는 신호를 무시하고 일에 열중하다 보면 퇴근 즈음에는 기진맥진해서 집으로 돌아와요. 집에 돌아오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만큼 피곤해서 쓰러져 잠들기 바빠요. 주말에도 좀처럼 기력을 차리지 못하고 하루 종일 누워 있다시피 해요.” “회식이나 동호회 모임 같은 자리에 가면 너무 어색하고 불편해요. 일단 사람이 많다는 것 자체가 참 피곤한 일이에요. 모임이 끝나면 즐겁다기보다는 피곤하기만 해요. 내가 누구를 만나서 무슨 얘기를 했는지도 잘 기억나지 않아요.”
당신이 이런 경험을 자주 한다면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유체이탈 상태인 것이다. 자신이 아닌 상대방의 생각과 표정, 말에만 관심을 집중한다는 말이다. 그 상황에서 자신의 감정이나 컨디션은 어떤지, 이를테면 얼마나 피곤한지, 얼마나 지쳐 있는지, 에너지가 넘치는지 이 모든 것이 무시된다. 사람들과 헤어져 혼자가 되었을 때 비로소 이탈했던 혼이 자신에게로 돌아온다. 즉, 유체이탈했던 사이 느꼈던 감정이 한꺼번에 몰려와 굉장한 피로를 느낀다. 그렇다면 당신이 왜 유체이탈 상태가 되는지 생각해 보자. 그 이유는 상대방과의 거리감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당신이 한 가지 알아야 할 것은,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면서까지 무리하게 남에게 맞출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물론 자신의 말만 앞세우고 남의 말은 듣지 않는 고집불통을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만, 자신이 양보할 수 있는 부분과 절대 양보할 수 없는 부분의 경계선이 명확해야 한다. 또한 상대방에 따라 그 경계를 잘 구분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선을 제대로 긋지 못하고 인간관계에 지쳐 있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나를 중심에 두지 않으면 적당한 거리를 유지할 수 없다
바운더리란 무엇인가: 인간관계에서 범하기 쉬운 오류가 두 가지 있다. 타인과 적당한 거리감을 유지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자신도 모르게 깊이 들어가 버리거나 반대로 너무 거리를 두는 것이다. 너무 가깝거나 너무 먼 거리를 유지하는 이유는 바운더리(마음의 경계선)를 모르기 때문일 수 있다. 보통 바운더리는 유소년기부터 시작되며 사람과의 관계성 안에서 키워진다.
대부분의 아이는 타인과의 거리가 매우 가깝다. 놀이터에 가보면 놀이기구를 타기 위해 차례를 기다리는 아이들의 거리가 매우 가깝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또한 수족관에 가보아도 처음 만나는 친구들과 서로 가까이 붙어서 수조를 들여다보는 아이들의 밀착도도 놀랄 정도로 높다. 이처럼 아이들은 처음 보는 상대와도 오래전부터 친했던 친구처럼 어울려 놀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 아이들의 부모는 아이들처럼 금방 가까워지는 게 쉽지 않다.
하지만 사춘기에 접어들면서부터 아이는 자신만의 ‘개성’이 뚜렷해지고 스스로 정체성을 확립해 나간다. 즉, 타인과 일정한 거리감을 유지하게 되는 바운더리가 명확해져 간다. 친하게 지내고 싶지만 다가갈 수 없거나 상대방이 다가오지 않기를 바랐지만 어느새 다가와 있는 등의 경험을 하게 된다. 이른바 상대방과 궁합이 좋거나 나쁠 수도 있으며, 코드가 맞거나 안 맞을 수도 있는데 이런 요소도 관계에 큰 영향을 미친다. 어쩌면 코드가 맞거나 궁합이 좋다는 판단도 개성이 확립되어 가기 때문에 의식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또 사춘기에는 이성에 대한 의식이 강할수록 긴장감도 그만큼 커지기 때문에 대화를 할 때 거리감을 두기 쉽다. 그런데 어른이 되어서도 그런 거리감을 그대로 유지하는 사람도 꽤 있다.
바운더리를 인식하지 못하는 이유: 물론 성인이 되었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바운더리를 정확하게 인식하는 것은 아니다. 유소년기에 부모와의 관계에 문제가 있었거나, 초등학교 시절 왕따를 당했거나, 여러 학교로 전학을 다녔거나, 소중한 사람을 잃었거나 하는 경험을 한 경우 바운더리를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어려서 어머니로부터 과잉보호를 받았거나 사사건건 간섭을 받은 경우, 폭언이나 폭력에 시달렸던 경우를 들 수 있다. 자신이 아무리 바운더리를 제대로 설정해도 어머니가 무작정 쳐들어오면 내적 세계가 파괴당할 수 있으며, 어머니의 지시에 복종하거나 제어당하기도 한다. 그런 관계가 계속되고 당연해지면 어머니와 아이 사이에 지나친 유착 관계가 형성되어 아이 스스로 자아를 갖기 어려워진다. 이는 정체성을 상실하는 결과를 불러온다.
어머니와 밀착된 관계에서는 바운더리 자체가 애매모호해지거나 아예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상대방과 자신을 심리적으로 구분하지 못하는 유착 상태가 되는 것이다. 또한 어머니와의 관계를 타인에게도 투영하게 되는데, 상대방과의 거리감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자신도 모르게 너무 깊이 들어가는 (또는 극단적으로 거리를 두어 갑자기 관계를 끊어 버리는) 상태를 만들고 만다. 또한 전학을 자주 다녔거나 소중한 사람을 갑자기 잃은 경험이 있을 경우에는 반대로 바운더리가 강고해져서 사람을 마음속에 담기 어려워진다. 마음의 상처가 너무 커서 타인과 친밀한 관계를 구축하기 어려워지는 것이다. 때로는 유소년기를 지나 어른이 되어서 겪은 깊은 상실감으로 이런 증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
이러한 전형적인 사례가 아니라도 많은 사람들이 바운더리가 명확하지 않아 혼란스러워지는 경험을 해봤을 거라 생각한다. 이와 반대로 상대방과 어떻게 거리를 두면 좋을지 모르겠다는 사람도 있다. 어쩌면 그 사람은 당신 이상으로 바운더리 문제로 고민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축과 타인의 축: 앞서 말한 대로 인간관계를 현명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먼저 상대방과 나 사이에 명확한 선 긋기가 필요하다. 그 선이 바로 바운더리다. 나의 말에 당신은 이렇게 반문하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상대방과 나 사이에 벽을 쌓는다면 나 스스로 고립되는 것은 아닐까요?” “그러다 나만 외톨이가 될지도 모르잖아요.” “건방지다는 오해를 받을 것 같은데요.” 나의 대답은 ‘그래도 괜찮다’는 것이다. ‘나는 나, 남은 남’이라는 의식이 명확하다면 확실하게 자신의 두 발로 설 수 있다. 그런 상태를 가리켜 ‘자신의 축’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반면에 자신의 축과 반대되는 개념으로, 상대방을 신경 쓰는 상태가 ‘타인의 축’에 서 있는 것이다. 앞서 설명한 유체이탈 상태가 타인의 축에 서 있는 전형적인 경우라 할 수 있다.
자신의 축에 서 있게 되면 자신과 상대방 사이에 선을 긋는 게 수월하다. 상대방보다 자신을 더 소중히 여기기 때문에 양보할 수 있는 것과 양보할 수 없는 것의 경계가 확실히 보인다. 상대방이 자신의 요구에 응하지 않아 불만을 터뜨려도 자신의 축에 서 있는 사람은 소중한 것을 지키는 일에 더 큰 가치를 느낀다. 타인의 축에 서 있다면 깊은 상처를 받았을지도 모르는 상대방의 말 한마디도 자신의 축에 서 있으며 “아, 당신은 그렇게 생각했군요. 그래도 그건 어쩔 수 없네요. 제 생각은 이러하니까요. 이것으로 끝내죠.” 하고 넘어갈 수 있다. 자신의 축에 선다는 것은 마음이 지치지 않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신의 축에 서 있을 때만 진정 안심할 수 있다: 당신은 안정감이 타인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지는 않은가? 당신한테 친절하거나 받아 주는 사람이 있어서 안심이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가? 만약 그렇다면 절반은 착각이다. 내가 사는 나라보다 치안 상태가 안 좋은 나라로 여행을 가게 되면 기본적으로 나의 안전은 스스로 지켜야 한다. 부모로부터 독립하지 못한 사람도 언젠가는 부모의 보호에서 벗어나야 한다. 당신이 만약 상대방을 통해 안정감을 얻는다면 타인의 축에서 있는 상태라 할 수 있다. 상대방의 기분이나 자신의 기분이 조금만 움직여도 안정감이 불안감으로 바뀔 수 있다. 그 안정감도 언젠가는 상대방이 자신에게서 멀어질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이 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에 견고하지 못하다. 진정한 안정감은 자신의 축에 서 있을 때만 얻을 수 있다.
‘나는 나, 남은 남’이라는 사실을 인식한 사람은 하나같이 인간관계가 훨씬 편해졌다고 말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타인의 축을 중심으로 살아온 사람이 마음을 먹는다고 한순간에 자신의 축으로 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말은 쉽게 할 수 있지만,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이 책에서 자신의 축과 타인의 축은 가장 핵심적인 주제이다. 여기서 한 가지 기억해야 할 것은 타인과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려면 반드시 타인의 축에서 자신의 축으로 이동해야 한다는 점이다.
제2장. 타인의 축에 서 있는 사람이 행복하지 못한 이유
모든 걸 상대에게 맞추는 사람들의 속마음
상대방에게 맞추는 것은 배려가 아닌 희생: 자신의 축이 없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희생당하게 내버려 두기도 한다. 상대방으로부터 미움을 받을지 몰라 두려워하고 이런저런 생각으로 신경 쓰는 것이 싫어서 당연히 손해 보는 역할을 받아들인다. 만약 이런 사람이 내 주변에 이런 사람이 있다면 굉장히 다루기 쉽거나 모든 선택을 자신 위주로 내릴 수 있기 때문에 나는 그와 더욱 친하게 지내면서 옆에 두려고 노력할 것이다. 자신의 축이 없는 사람은 상대방의 그런 호의적인 태도를 자신이 희생한 대가로 여기고 더욱더 자신의 축을 잃게 되는 악순환에 빠진다.
자신을 억누르고 있지 않은가: 스즈키는 주변에서 어떤 부탁을 해도 다 들어주는 정말 좋은 사람이다. 그는 나와 상담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나만의 주장’이라는 게 딱히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남들이 뭔가를 제안하면 그냥 다 좋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 아이디어를 내는 사람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존경스럽기까지 해요. 또 여자 친구를 만날 때도 모든 걸 맡기는 게 속 편해요. 사실 데이트 코스를 짜는 데 자신이 없거든요. 물론 당연히 싫을 때도 있죠. 하지만 나 때문에 모임 분위기가 깨지는 게 더 싫거든요. ‘나만 참으면 원만하게 해결될 텐데, 그럼 됐어’ 하고 생각하는 거죠. 그나마 다행인 게 내가 감정을 질질 끄는 성격이 아니라서 불편한 감정이 오래가지 않는다는 거예요. 덕분에 일도 많고 바빠요. 여러 가지 일을 맡아 잘해 내고 있습니다. 매일 야근을 하지만, 내가 회사에 필요한 사람이구나 생각하면 기뻐요. 당연히 피곤하죠. 어떻게든 체력적으로 버텨 보려 합니다.”
당신은 스즈키의 입장이나 태도가 마음에 드는가? 어떤 사람은 ‘아니, 인생을 왜 그렇게 살아? 그럼 너무 피곤하잖아’ 하고 안타깝게 생각할 테고, 또 다른 사람은 마치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처럼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물론 상대방에게 자신을 맞추거나 주변의 요구를 들어주는 게 나쁘다는 말이 아니다. 그것이 자신이 원해서 하는 일이라면 전혀 문제 될 게 없다. 하지만 스즈키처럼 ‘나만 참으면 모든 게 원만하게 해결돼’ 하는 식의 사고방식은 ‘나는 상대와 싸우는 게 싫어서 피하고 싶어’ 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자기희생이다.
제3장. 타인에게 휘둘리지 않기 위한 자신의 축 세우기
서로 도와 가며 살아가는 인간관계를 구축한다
문제를 함께 해결하는 윈윈 관계가 된다: 자신의 축을 확립한 다음 상대방의 기분을 헤아릴 수 있게 되면 탄력적인 관계, 다시 말해 상호의존 상태를 구축할 수 있다. 자신의 두 발로 서 있으면서 독선적인 태도가 아니라 상대방을 신뢰하고 서로 주고받는 관계가 형성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획기적인 아이디어가 있는데 이것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어려움에 봉착했다고 하자. 자신의 축이 확립되어 있으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의 선 긋기가 가능하다. 거기서부터 주변을 둘러보고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을 부탁할 만한 협력자’를 찾으면 된다. “이 부분에서 문제가 발생했는데, 좋은 해결 방법이 없을까요?”라며 주변에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 그래야만 자신도 무리하지 않으며, 부탁을 받은 상대방도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으니 서로 ‘윈윈’하는 관계가 자연스럽게 성립된다. 상대방 역시 당신의 부탁에 “어떤 문제 때문에 곤란한 건가요? 어떤 부분에서 일이 꼬인 건가요?” 하는 질문을 던지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모색할 것이다.
신뢰 관계는 상대방의 말을 듣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서로 신뢰하는 관계를 쌓는 데 전제가 되는 것은 ‘말하기’가 아니라 ‘듣기’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말을 부정하지 않고 들어주면 ‘자신을 받아들이는 건가’ 또는 ‘나를 이해하려고 하는구나’ 하고 생각해서 상대방에 대한 호감을 갖고 마음을 열게 된다. 상대방이 아무리 말을 능수능란하고 재미있게 말해도 자신을 받아들이고 있다고 느껴지지 않으면 신뢰하기 힘들다. 서로 신뢰 관계가 형성되면 당신이 난관에 부닥쳤을 때 상대방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나라면 이런 방법을 시도해 볼 것 같아요”, “이 방법은 어떨까요?” 또는 이런 격려를 하기도 할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좋은 해결책이 떠오르지 않네요. 하지만 당신이라면 반드시 해낼 수 있을 거예요”, “그런 거라면 나도 돕겠지만, 그분이 적임자일 것 같은데 한번 얘기해 볼까요?” 이렇게 서로에 대한 신뢰감이 더욱 굳건해질 것이다.
상대방이 ‘아니요’라고 말할 수 있는 선택지를 준다: 누군가에게 어떤 제안을 하거나 부탁을 할 때는 상대방이 ‘아니요’라고 말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둬야 한다.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없을까요?” “나라면 그렇게 할 것 같은데요.” 이 같은 표현은 ‘네’를 강요하지 않으므로 경우에 따라서는 ‘아니요’를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의 축이 확립되어 있지 않으면 상대방이 ‘아니요’라며 거절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래서 단정적으로 말하거나 지적하는 등의 표현으로 상대방을 컨트롤하려 한다. 또한 상대방의 기분이나 상황을 헤아리지 못한 채 ‘이 정도는 할 수 있겠지’, ‘이건 좀 해줬으면 좋겠는데’라는 생각으로 자신도 모르게 강요하게 되어 신뢰 관계를 쌓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상호의존 상태에 있는 사람은 상대의 반응을 받아들이고 현명하게 처리한다. 즉, 캐치볼을 잘하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상대방의 공을 잘 받고 내 공을 상대방이 잘 받을 수 있도록 던져주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