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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자의 습관

최장순 지음 | 홍익출판사



기획자의 습관

최장순 지음

홍익출판사 / 2018년 5월 / 300쪽 / 14,800원





Part 1. 기획자의 생활습관



생활의 발견

엣지 오브 투모로우(더그 라이만 감독, 톰 크루즈 / 에밀리 블런트 주연, 2014년): 무척 좋아하는 영화다. 톰 크루즈의 액션도 액션이지만, 영화의 시나리오가 참 좋았다.

주인공 빌 케이지는 광고인이었다. 광고 회사가 망하자 군대의 홍보 장교가 된다. 외계인과의 전쟁에 나가 용감히 싸우자는 광고에 출연해 수많은 청년들을 군대로 끌어들이는 역할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전쟁터에 직접 나가 홍보하라는 명령을 받게 된다. 자신은 전투 병력이 아니라며 명령에 불복하지만 전쟁터에 억지로 끌려온다. 그리고 상관 명령에 불복해 탈영하려 한 파렴치한 군인으로 낙인찍혀 계급까지 병사로 강등된다. 케이지는 첫 전투에 참여하자마자 외계인의 피를 뒤집어 쓴 채로 죽임을 당한다. 외계인의 피에는 시간을 되돌리는 초능력이 담겨 있어, 그는 전투에서 죽을 때마다 다시 당일 아침으로 돌아와 영원히 하루를 반복하는 군인이 되고 만다.

영원히 같은 일상을 반복하다 보니, 그는 자기에게 일어날 모든 일을 알게 되고, 무수한 전투의 반복을 통해 실력이 뛰어난 전투병으로 거듭나게 된다. 이러저러한 우여곡절 끝에 외계인을 이길 수 있는 새로운 방법들을 찾게 되고 마침내 외계인을 전멸시킨다는 이야기다.

이 영화의 원작은 사쿠라자카 히로시 글, 아베 요시토시 삽화의 일본 소설 『올 유 니드 이즈 킬(All You Need Is Kill)』이다. 같은 내용인데 제목이 다르다. 일본 원작의 타이틀은 주인공의 행위 자체에 초점을 맞추었다. 외계인을 죽이는 것이 계속 반복된다는 점이 강조된 듯하다. 이에 반해 할리우 드의 인식은 웬일인지 보다 철학적이다. 엣지 오브 투모로우(Edge of Tomorrow), 내일의 가장자리. 내일로 가는 듯한 순간에 다시 오늘의 시작점으로 되돌아간다는 시간에 대한 인식을 담고 있다.

영원히 동일한 사태가 반복되는 상황, 왠지 우리 일상과 비슷하지 않은가? 매일 학교에 가야 했던 초중고등학생의 일상. 1~8교시 후 자율학습. 이후 좀 더 자유로워지긴 했으나 별다를 것 없이 비슷한 나날을 반복해온 대학 생활(군 생활의 엄격한 시간 관리는 굳이 예시로 들지 않겠다). 매일 아침 일어나면 출근해야만 하고, 야근을 밥 먹듯 하고도 억지 회식에 이른 아침 출근에 몸을 혹사시키고, 그 가운데에서도 버티는 삶을 살고 있는 이 땅의 많은 직장인들. 하지만 좀처럼 바라는 내일은 오지 않고 언제나 내일의 가장자리에 머물러 또 하루를 반복하고 있는 우리들.

감독은 바로 그 지점을 놓치지 않는다. 바에 앉아 술을 마시는 케이지의 한숨과 표정을 통해 수도 없이 똑같이 반복되는 전투에 대한 지겨움, 회의감, 매너리즘을 표현한다. 삶에 대한 우리의 태도와 비슷하지 않은가. 니체는 ‘영원회귀’라고 말한다. 이 개념은 직역하자면, ‘동일한 것의 영원한 반복(Ewige wiederkehr des Gleichen)’을 의미한다. 시간은 순환적이고, 동일한 사건들이 동일한 순서로 계속 반복된다는 것이다.

출근, 상사의 지적, 클라이언트의 끊이지 않는 요구, 가계 대출의 발생, 가족 문제, 취업 문제, 취업에 성공해도 여전히 반복되는 진로의 문제, 반복되는 고민과 술자리, 이직을 해도 해결되지 않는 커리어의 고민… 우리의 삶은 어찌 보면 ‘영원회귀’의 생(生)이라 할 수 있다. ‘반복되는 생활’은 우리에게 주어진 공통 조건이다. 하지만 그 공통 조건하에서 그저 시간을 버티며 순응하고 살 것인지, 내일의 가장자리를 넘어 내일로 나아가려 노력할 것인지, 그 삶의 태도를 결정짓는 건 각자의 몫이고 각자의 능력이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Zarathustra)의 입을 빌어, 입속에 뱀이 들어가 목구멍을 꽉 물어버린 한 양치기의 이야기를 전한다. 그 양치기는 몸을 비틀고 캑캑거리고 경련을 일으키며 얼굴을 찡그리고 있다. 아마 숨이 붙어 있는 한 계속 그 상태를 유지하다 죽을 것이다. 이 상황을 보고 차라투스트라는 손으로 뱀을 잡아당기고 또 잡아당기지만 아무리 힘껏 당겨도 뱀은 꼼짝하지 않는다. 그러자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명령한다. “뱀 대가리를 물어뜯어라! 물어뜯어라!” 양치기는 뱀 대가리를 단숨에 물어뜯고 멀리 뱉어내고는 벌떡 일어나 환히 웃었다. 니체는 이 양치기가 더 이상 그 전의 양치기가 아니라 ‘변화한 자’, ‘빛으로 감싸인 자’가 되었다고 말했다. 양치기는 생을 억누르는 필연적 조건을 극복한 사람이다.

영원할지도 모를 동일한 조건 속에 사는 우리들, 그 안에서 ‘내일의 가장자리’에 머무르는 대신 조금씩 꾸준히 생활에 틈새를 낼 수 있는 ‘차이’의 습관을 마련할 수 있다면 좀 더 나은 ‘내일’을 기획할 수 있지 않을까. 동일한 ‘내일’이 아니라, 좀 더 다른 ‘내일’을 기획하기 위한 작은 차이의 연습은 지금 우리 생활을 다른 무언가로 바꿔준다. 이 작은 차이의 습관을 통해 우리는 생활의 진정한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그러한 습관이 반복되면 우리는 일체의 반복되는 억압의 조건들을 극복해 ‘살아 움직여야 한다’는 당위를 깨닫게 된다. 그리고 비로소 ‘생활(生活)’은 ‘살아 움직인다.’

생활의 의미를 발견하고 실천할 때 우리는 ‘환히 웃는 자’, ‘변화한 자’, ‘빛으로 감싸인 자’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좀 더 나은 내일을 위한 작은 차이의 연습. 내일의 기획은 공식이나 방법론, 프로세스 따위가 아니라, 바로 이곳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관찰의 힘

관찰은 한마디로 ‘보고 살피는 것’이다. 볼 관(觀), 살필 찰(察). 시선은 언제나 깨어 있어 보는 것에 민감해야 한다. 익숙한 풍경 속에서 미세한 변화를 살필 줄 아는 섬세함이 필요하다. 그뿐이다. 관찰은 그리 거창한 게 아니다. 선배의 안경테가 바뀐 것을 알아보고 “안경 바꾸셨네요?”라고 말하는 것, 동료에게 “헤어스타일 너무 멋지게 바꿨는데?!”라고 이야기해주는 것, “저 가게 결국 문 닫았구나!” 하고 거리의 변화를 눈치채는 것. 이런 일상적 행위가 모두 관찰이다.

관찰을 통해 파악할 수 있는 건 바로 그 변화의 지점이다. 무엇이 그대로 있고, 무엇이 변화했는지 파악해내는 관심이 필요하다. 감각을 갖춘 사람들은 모두 감각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세상에 관심을 보이고,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은 것을 구분 짓는다. 그리고 나에게 들어오는 정보를 파악한 뒤 내 생각과 행동에 반영할 정보들을 취사선택한다.

아담에게 사과를 파는 법: 창세기 3장 4절을 보면 뱀이 여자를 유혹해 선악과(사과)를 따 먹게 하는 장면이 묘사돼 있다(무신론자들이여, 갑자기 등장하는 종교 텍스트 이야기를 불편해 마시라. 나 역시 종교가 없다. 기독교인이여, 성서를 텍스트로만 다루는 태도를 용서하시라. 필요하다면 불경이나 꾸란도 텍스트로 다뤄주겠다).

(3:4) 그러자 뱀이 여자를 꾀었다. “절대로 죽지 않는다.”

(3:5) “그 나무 열매를 따 먹기만 하면 너희의 눈이 밝아져서 하느님처럼 선과 악을 알게 될 줄을 하느님이 아시고 그렇게 말하신 것이다.” (3:6) 여자가 그 나무를 쳐다보니 과연 먹음직하고 보기에 탐스러울뿐더러 사람을 영리하게 해줄 것 같아서 그 열매를 따 먹고 같이 사는 남편에게도 따주었다. 남편도 받아먹었다.(『공동번역 성서』, 가톨릭용, 대한성서공회, 1997.)



‘뱀’은 인류 최초의 사과 마케터다. 그것도 시장을 100퍼센트 점유한 ‘성공한 세일즈맨’이다. 당시 소비자는 단 두 명뿐이었는데, 결국 모든 소비자에게 사과를 판매했으니까. 뱀도 남자보다 여자를 설득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나 보다. 그래서 남자가 아니라 여자에게 말을 건다.

이 뱀 마케터에 따르면, 먼저 ‘사과를 먹으면 눈이 밝아진다.’ 눈이 밝아진다는 것은 눈에 빛이 들어온다는 것이고, 이는 영어로 번역하면 ‘인라이트먼트(Enlightment)’이다. 이 단어는 ‘빛이 들어온다’, ‘빛을 밝히다’라는 의미로 ‘계몽’, ‘깨달음’을 의미한다. 사과를 먹으면 ‘맛이 있다’, ‘영양가가 높다’도 아니고, ‘지혜가 생긴다’는 말을 남긴 것이다. 즉, 사과를 먹으면 ‘신처럼 지혜를 얻게 된다’고 했던 것이다.

그 한마디를 하자 여자는 스스로 생각한다. ‘과연 먹음직하고 보기에 탐스러울뿐더러(사과의 기능적 편익 - 맛있다) 사람을 영리하게 해줄 것 같다(사과의 자아표현적 편익 - 영리한 사람)’고 느낀다. 결국 구매를 결정한다. 사과를 한입 베어 먹는 것이다. 뱀은 여자에게 구매 컨펌을 획득한다!

여자를 설득하면 일이 수월하다. 그 후 창세기 기자는 자초지종에 대한 일언반구 없이 “남편도 받아먹었다”라고만 기록한다. 남자의 구매 결정은 매우 단순했던 것이다. 남자로서 아쉬운 결론이지만, 인류 태초에도 구매 결정의 고유 권한, 컨펌의 주체는 여자였다.

강남 한 자동차 매장에서 내가 엿들었던 부부의 대화(남편은 SUV를 사고 싶고 아내는 세단을 원해서, 남편이 아내를 열심히 설득하고 있었다)와 겹쳐진다. 남자의 물건처럼 보이는 ‘자동차’에 대해서도 구매 결정에 주요한 역할을 하는 존재가 ‘여자’라는, 매우 중요한 인사이트를 얻게 된 대화였다.

몇 년 후, 모 자동차 회사의 SUV 차량의 브랜드 전략과 브랜드 네임, 세일즈 아이디어를 기획하게 되었다. 동료들과 브랜드 전략, 컨셉, 네임을 일사천리로 마무리했다. 운이 좋았다. 론칭 일정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판매였다. 우리는 외부 전문가들과 함께 다양한 토론을 진행했고, 모두가 동의한 관점은 ‘구매 컨펌은 여자가 한다’는 변치 않는 진리였다.

비록 SUV가 남자들의 장난감, 소위 어덜트 토이(Adult Toy)라고는 하지만 남자들이 이 차를 구매하고 운전하면 얼마나 좋은지 말해서는 아내를 설득할 수 없을 것이다. 메시지 포인트는 여자를 향해야 한다. 이 차량의 특징은 이전 SUV 모델보다 트렁크가 넓어졌다는 것. ‘트렁크가 넓다’고 말해야 하지만, 이렇게 말하는 건 “내가 널 얼마나 아끼는 줄 알지?”라고 말하는 매우 정직하고 매력 없는 태도다. 그보다 조용히 아끼는 사람 책상에 음료수를 하나 놓고 간다거나, 노골적이지 않게 그 사람을 위해 양보하거나 하는 태도가 훨씬 매력적이다. ‘넓어진 트렁크’를 표현할 만한 보다 매력적인, 그러면서도 구매 결정권을 지닌 여성들을 위한 메시지가 필요했다.

우리가 타겟으로 선정한 고객군의 라이프스타일을 조사해보니 여성들이 스토케(Stokke)라는 유모차를 선호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스토케는 유모차계의 BMW라고 불리는 매우 비싼 가격의 프리미엄 유모차다. 이 유모차는 다른 일반 유모차처럼 작게 압축되거나 접히지 않는다. 사이즈도 다른 유모차에 비해 엄청 크다. 볼드한 바디감을 자랑하는 이 유모차는 아이를 태우고 가는 엄마의 표정을 보다 당당하게 만들어준다. 그녀들을 세련되고 경제적으로 부유한 여성으로 보이게 해주는 신박한 아이템이다. 그런 스토케가 들어가는 차량은 일단 트렁크가 크다는 이야기다.

‘트렁크가 넓어졌습니다’라고 말하는 건 매력이 없었다. 우리는 ‘이 차에는 스토케가 들어갑니다’라는 세일즈 토크(Sales Talk)를 제안했다. 백번 나은 멘트였다. 참고로 이 차는 출시한 지 4개월 만에 1년 양산 목표의 두 배 가까이 판매 계약되었다.

사과 하나를 선택할 때도 여자의 말을 들어야 했던 인류 최초의 역사가 아직도 변하지 않은 것 같다. 여성을 잘 관찰하고 여성의 니즈를 충족시켜주는 브랜드가 더욱 사랑받을 수 있다. 남자가 사용하는 제품인데도 구매 영향력 내지는 구매 결정권이 여성에게 있다는 말이다. 내 경험상 남자가 결혼을 하고 나면, 80~90퍼센트 이상은 결정권이 아내에게 넘어간다. 아쉽다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원망스럽다는 이야기도 절대 아니다. 나는 내 아내를 사랑한다.

거리의 소음에도 정보가 있다: 길거리에는 활력이 넘친다. 난 사무실을 나오는 그 순간부터 리프레시가 되는 편이다. 내가 만든 회사임에도 불구하고 사무실은 언제나 답답하다. 천국 같은 사무실? 크리에이티브하고 리프레시를 주는 사무실? 내가 보기에 그런 건 없다.

많은 이들은 특정 글로벌 IT 기업의 사무실 문화를 부러워한다. 침대도 있고, 식사도 제공되고, 놀이기구도 있고, 일단 폼 나니까 말이다. 하지만 난 달리 본다. 숙식이 제공되고 놀이기구까지 있다는 건 사무실을 나가지 않아도 생활이 가능하게끔 디자인되었다는 것이고, 회사 주변에 식당을 많이 찾아보기 힘들고 워낙 집이 먼 사람들이 대부분인 미국의 상황을 대변하는 것이다. 한국에서 이런 디자인의 사무실은 ‘밥도 회사에서 먹고 집에 가지 말고 일하라’는 무언의 암시가 아닐까. 물론 농담처럼 흘리는 말이니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길.

다시 길거리로 돌아오자. 길에서는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이 걸어 다닌다. 다양한 공간의 첫인상(매장의 입구, 간판 등)을 접하기도 한다. 기분에 따라 생기발랄한 거리를 택할 때도 있고, 우중충하고 어두운 길거리를 가볼 때도 있다. 트렌드를 파악하고자 한다면 그 두 부류의 곳을 균형감 있게 다녀봐야 한다. 난 많이 돌아다니는 편은 아니지만 한번 ‘봐야겠다’ 싶으면 정말 집중해서 거리를 살피는 편이다. 그리고 길을 자주 다니는 동료들의 이야기를 많이 듣는 편이다.

무언가 거리에서 영감을 얻고 관찰하고 싶다면, 일단 차를 두고 나와야 한다. 거리를 걸어야 하니까. 그리고 되도록 이어폰을 끼지 않는다. 거리의 소음 역시 중요한 단서다. 버스, 택시의 경적, 자전거 벨소리, 사람들이 걸으며 내는 소리, 부딪힐 때 미안하다는 말, 택배, 중국집 등 배달 오토바이 소음, 경찰차 사이렌, 사람들의 대화, 물건을 사라고 외치는 호객꾼의 목소리, 브랜드 매장별로 외부에 관심을 끌고자 틀어놓은 음악… 모든 것이 거리의 소음을 이룬다.

길거리는 무정형의 오케스트라다. 그 소음들은 거리에 활력을 준다. 난 그 기운을 온몸으로 느낀다. 그리고 몸에 다음과 같은 정보들을 각인시킨다. 그곳의 교통량과 배달되는 정도, 지역 사람들의 분위기, 유행하는 음악이 뭔지, 호객꾼은 어떤 기획으로 무엇을 제안하는지… 이어폰은 이런 모든 정보 수집을 단 한 방에 차단한다. 가급적 거리를 관찰할 땐 이어폰을 끼지 마시길! 거리를 다닐 때 이어폰을 끼면 교통사고 위험도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는 점도 명심하자.

평소에 난 특별히 무언가를 의도적으로 관찰하려 들진 않는다. 다만 거리의 소음을 듣고, 간판들을 쭉 둘러보는 습관이 있다. 어떤 가게가 망하고 흥했는지 거리 간판의 역사(History)를 살피게 된다. 게다가 간판을 살피면 브랜드 네이밍 트렌드까지도 엿볼 수 있게 된다.

거리를 걸으며 사람들의 패션을 본다. 헤어스타일, 가방, 아우터 신발의 스타일, 남자는 남자대로, 여자는 여자대로 패션을 통해 자기 몸의 어느 부분을 강조하는지도 살핀다. 그리고 다음에 내 패션을 조정할 기회가 생기면 거리에서 봤던 것을 참고한다. 별도로 패션 잡지를 보지는 않는다. 집에 텔레비전도 두지 않았다. 그런 것이 있으면 난 완전 중독되기 때문에 스스로의 나태함과 방만함을 차단한 것이다. 대신 유행은 거리에서 파악하는 편이다.

거리의 관찰은 내 취향과 구매 생활에도 적잖은 도움을 준다. 난 신발을 사야 할 때 최소 1~2주간 길거리에서 사람들 신발만 쳐다보고 다닌다. 주로 많이 돌아다니는 색상은 무엇이고, 브랜드는 무엇인지, 하이탑이 많은지, 컨버스가 많은지, 워커가 많은지, 구두가 많은지, 신발과 어떤 바지를 함께 매치하고 다니는지, 신발에 따른 걸음걸이들은 어떻게 다른지, 습관적으로 쳐다본다. 포멀한 구두를 신는 사람이 발을 질질 끌면서 다니는 경우는 거의 없다.

포멀한 구두를 신으며 통이 넓은 힙합 팬츠를 입진 않는다. 종종 거리에서 반복해서 보는 사람이 있다. 벌써 시각적으로 정이 들어버린 그런 사람. 그 사람의 패션이 변하는 것을 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내가 망원역에서 자주 봤던 그 남성은 구두를 신고 수트를 입을 땐 매우 반듯한 걸음새였으나, 농구화와 배기팬츠를 입을 땐 껄렁껄렁한 걸음걸이였다. 신발과 옷은 단지 실용성이나 패션 아이템 정도가 아니라 그 사람의 태도(Attitude)를 대변하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옷을 입는 행위는 태도를 입는 것이라는 의류브랜드 베트멍(vetement) 디자이너의 말이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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