딴짓의 힘
김충만 지음 | 프리윌
딴짓의 힘
김충만 지음
프리윌 / 2017년 11월 / 216쪽 / 14,000원
제1장. 워크 앤 라이프 밸런스는 딴짓에서 나온다
마라톤을 완주한 5천 명이 실격한 이유
2013년 영국의 한 마라톤 대회에서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2, 3위 선수를 포함한 5천여 명의 선수들이 결승선을 통과했지만 전원 실격처리 되고, 선두로 달리던 1명의 선수만 상을 받았다. 1등을 제외한 나머지 선수들이 실격 처리된 이유는 무엇일까? 2, 3위를 달리던 선수들이 경로를 이탈하였고, 뒤따르던 선수들 모두 이탈 경로를 뒤따라 달렸다. 42.195km에서 264m를 덜 달린 것이다. 5천 명 중 어느 누구도 그 경로를 의심하지 않았다. 앞사람의 뒤통수만 보고 달렸기 때문이다. 제대로 가고 있는지 의심조차 하지 않은 채 따라가기만 했다.
삶의 속도가 점점 더 빨라지면서 사람들은 느린 것을 참지 못한다. 도로에서 신호가 바뀌고 바로 출발하지 않으면 경적을 울린다. 엘리베이터에서 닫힘 버튼을 누르기 바쁘고, 인터넷 화면이 바로 뜨지 않으면 답답해한다. 빠른 것에 익숙해져 있고, 빠르지 않으면 불안감을 느낀다. ‘세계경제포럼’의 창설자이자 총재인 클라우스 슈바프는 빠른 속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금 세계는 큰 것이 작은 것을 잡아먹는 세상에서 빠른 것이 느린 것을 잡아먹는 세상으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일을 할 때도 빠르고 신속하게 처리하라고 지시받는다. 여러 일정들은 마쳐야 할 기한을 갖고 있고, 그 기한은 더 빨리 한눈팔지 말고 처리하기를 재촉한다. 가속화된 사회에서 잠시 한눈을 팔거나 딴짓을 하면 뒤처지는 것으로 생각한다. 우리는 멈출 수 없는, 일의 빠른 흐름 속에서 살고 있다. 무엇이든 속도를 높여 시간을 절약하고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것을 최고의 미덕으로 삼는다. 힘들고 바쁘지만 남들도 다 그렇게 살고 있으니 나라고 별다를 수 없다는 생각으로 살고 있다. 피곤하고 힘들어도 열심히 일해야만 한다는 생각을 갖고 앞사람의 뒤통수만 바라보며 하염없이 달리고 있다.
한국의 대기업에서 10년간 CEO로 일했던 프랑스인 에리크 쉬르데주는 『한국인은 미쳤다』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수술은 새벽 2시에 끝났다. 한국인 직원들은 의사에게 몰려들었다. 수술이 잘 끝났다는 의사의 답변을 듣고 안심한 그들은 드디어 물어보고 싶었던 것을 물었다. ‘언제 회사에 다시 복귀할 수 있을까요?’ 그 물음에 나는 깜짝 놀랐다. 물론 걱정보다는 희망을 담은 말이었다. 환자의 복귀가 궁금한 것은 그의 쾌유를 비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표시가 다시 일하는 것이라니. 한국인은 아마 죽음의 문턱에서도 업무의 바퀴에 짓눌릴 것이다. 업무를 벗어나면 그는 존재하지 않는 것과 다름없다.”
수술이 끝나도 업무를 생각하고, 퇴근을 해도 다음날 처리해야할 업무를 생각한다. 주말에는 또 월요일 걱정을 한다. 2014년 기준 우리나라 근로자의 연 평균 노동시간은 2,124시간이다. OECD 국가 중 두 번째로 많이 일한다. 늦은 밤까지 꼿꼿이 앉아 일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바쁠수록 더 중요한 사람, 회사에 충성하는 사람, 열심히 살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바쁨을 의무감으로 생각하고 바쁘지 않으면 해야 할 일을 놓치고 있다고 느낀다. 일이 많고 적음으로 평가가 달라지고, 중요하고 바쁜 일을 맡게 되면 더 중요하게 평가받는다고 생각한다. 잠까지 줄여가며 미친 듯이 일을 하지만 정작 자기 자신을 착취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2016년 OECD 통계에 따르면 한국인의 평균 수면 시간은 7시간 41분으로 나타났다. OECD 국가 중 최하위 수준이다. 그렇지만 수면시간이 부족하다고 당장 늘릴 수는 없다. 회사와 조직의 시스템에 속해 있기 때문에 출근 시간을 어겨가면서까지 늦잠을 잘 수 없는 노릇이다. 결국 시스템 속에서 시간을 어떻게 활용할지, 그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지를 생각해야 한다.
유리 감옥에 주도권을 빼앗긴 현대인
스마트폰을 손에서 뗄 수가 없다. 스마트폰은 어느새 신체의 일부다 되어 버렸다. 눈을 뜨자마자 스마트폰을 확인하고, 잠자리에 들기 전에도 스마트폰과 함께 잠든다. 심지어 화장실 갈 때도, 식사를 할 때도 손에서 뗄 수 없다. 잠시라도 떨어지게 되면 불안해진다. 어디선가 나를 찾는 메시지가 왔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유리 액정 속에서 울고 웃으며 사람들과의 관계를 이어간다. 내가 올린 글과 사진을 좋아해주고, 댓글로 의견을 나누는 행위를 통해 진정한 소통을 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진다. 마주 앉은 사람보다 유리 액정 속의 관계에 더 집중한다.
스마트폰으로 편리를 얻었지만 여유를 잃었다. 회사에서는 메신저를 통해 퇴근 후에도 업무를 지시하고, e메일을 보내 즉각 처리할 것을 요구한다. 스마트폰을 통한 업무 요구가 많아지자 독일의 ‘크리스탈-클리어’ 규정에서는 근무 시간 외에 직원 스마트폰으로 메시지, e메일을 보내는 것을 원칙적으로 금지했다. 폭스바겐은 업무 종료 30분 후부터 스마트폰 업무용 e메일 기능이 멈추도록 설정했다. 업무용 e메일은 다음날 근무 시간 30분 전이 되어야 정상 작동한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업무 메시지로부터 해방되었더라도 끊임없는 자극과 넘치는 정보들 속에서 끝없이 선택하도록, 새로운 페이지를 확인하도록 강요받는다. 스마트폰을 보며 휴식을 취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뇌는 혹사당하고 있는 것이다. 길을 걸으며 볼 수 있는 풍경을 놓치고, 마주 앉은 사람과 깊은 교감을 하지 못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을 참지 못하고, 침묵과 고요함을 상실했다. 언제 올지 모를 메시지에 항상 대기하고 있고, 새롭고 더 자극적인 정보들을 갈구한다. 가만히 앉아 삶을 음미할 시간을 잃어버렸다. 휴식조차 내 뜻과 의지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정보와 자극에 이리저리 끌려다닌다. 유리 액정 속에 갇혀 삶의 주도권을 상실해버린 것이다.
오늘날 기술의 발전은 엄청난 시간의 여유를 가져다주었다. 은행에 가지 않더라도 스마트폰 앱을 통해 단 몇 초 만에 돈을 송금하고, 모르는 것들을 쉽게 검색할 수도 있다. 네비게이션은 길에서 헤매는 시간을 줄여 주었고, 수많은 맛집 정보들은 선택의 실패를 줄여주었다. 시간을 줄여주는 도구와 방법들이 넘쳐나게 많이 나왔지만 역설적이게도 시간이 더 부족하게 되었다. 10년 전, 100년 전에 비해 훨씬 더 바빠졌다. 왜 그럴까? 이러한 상황에 대해 경제학자 제레미 레프킨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로 하여금 시간을 얻게 만드는 새로운 기술은 그게 어떤 것이든 우리 활동의 리듬과 흐름을 가속화한다. 결국 새 기술은 우리에게 더 많은 시간을 선물한 게 아니라, 일거리만 더욱 부풀린다.”
기술의 발전으로 가장 빨라진 것은 마음의 속도다. 1초 만에 화면이 바뀌지 않으며 인터넷에 문제가 생겼다고 생각한다. 잠시도 기다리지 못하고 참지 못한다. 빨라진 마음의 속도로 인해 일상에서 항상 쫓겨 다닌다. 느긋이 걸어가면 남들에게 뒤처지는 것 같아 속도를 내서 걸어야 마음이 편하다. 기술의 발전으로 오히려 시간이 부족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마음의 속도’가 기계와 기술의 속도에 지배당했기 때문이다.
제2장. 딴짓은 ‘멈춤’에서 시작된다
인디언들이 일제히 멈춘 이유
한 탐험가가 탐험 도중 정글을 만났다. 그곳을 통과하기 위해 인디언 두 명에게 가이드를 부탁했다. 인디언들은 능숙하게 길을 찾아 정글을 통과해나갔다. 나흘째 되던 날, 정글의 막바지에 접어들 무렵 갑자기 인디언들이 일제히 걸음을 멈추고 돌아온 쪽을 돌아보았다. 탐험가는 인디언들이 지쳐서 쉬는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숨이 가쁘거나 지친 기색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탐험가는 인디언들이 돈을 더 요구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돈을 더 줄 테니 가던 길을 계속 가자고 재촉했다.
그러나 인디언들은 들은 체도 하지 않고 왔던 길을 하염없이 바라보기만 했다. 탐험가가 답답한 나머지 따지듯 물었다. “왜 앞으로 가지 않는 겁니까?” 그러자 인디언이 대답했다. “기다리는 중입니다.” “누굴 기다린다는 겁니까? 더 올 사람이 있나요?” 인디언이 침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영혼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너무 빨리 걸어온 나머지 우리 영혼이 따라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영혼이 우리를 따라올 때까지 여기서 기다려야 합니다.”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한숨 돌릴 여유조차 갖기 힘들다. 정지나 멈춤은 곧 퇴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잠깐의 멈춤은 지금 이 순간을 생생하게 느끼해주고 내면을 더 선명하게 만든다. 냇가에서 물놀이를 하다 동전을 떨어뜨리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가만히 기다리는 것이다. 물속에 빠진 동전을 찾기 위해 기다리지 않고 분주하게 움직이다보면 흙탕물이 되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가만히 기다려야 한다. 시간이 지나면 흙과 모래가 가라안고 물이 점점 맑아진다. 그런 뒤에야 동전을 쉽게 찾을 수 있다. 흙탕물보다 더 혼탁한 정보와 자극들이 우리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이런 때일수록 잠시 멈추고 내면을 정리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인생은 100미터 달리기가 아니다. “속도보다 중요한 것은 방향이다.”라는 말이 있다. 천천히 가더라도 방향 선택을 올바로 해야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다는 얘기다. 현대인들은 어디를 향해 왜 달려가는지도 모른 체 레밍처럼 시류와 속도에 휩쓸려 앞만 보고 달려간다. 우리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인디언처럼 멈춰 서서 영혼이 뒤따라오기를 기다려줘야 한다. 인도의 철학자 아난다 쿠마라스와미는 그의 저서 『그대 스스로를 고용하라』에서 이렇게 말했다. “존재를 멈추지 않고는 어떤 생명도 한층 높은 차원의 존재로 승화할 수 없다.”
멈춤의 시간은 결코 시간 낭비가 아니다. 멈춤은 몸과 마음을 회복시킨다. 쉴 새 없이 휘몰아치는 업무 속에서 잠시 멈춰 서서 무엇부터 먼저 해야 하는지, 어떻게 처리해야 효율적으로 할 수 있을지를 차분하게 생각해야 한다. 우리에게 연결된 수많은 연결고리들을 잠시 내려놓고 내면을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 시간 동안 다양한 방법으로 잃어버린 시간의 주도권을 찾을 수 있다. 눈을 감고 가만히 있거나, 다이어리 모퉁이에 작게 그린 낙서, 마음에 드는 책의 한 구절을 따라 써보는 것 등 다양한 행위를 통해 오롯이 내면에 집중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누군가가 보면 ‘딴짓’으로 보일 수 있지만 실은 내 삶의 주도권을 찾는 소중한 회복의 시간이다.
나만의 박자와 속도를 만들자
세상 모든 것에는 합당한 때가 있다. 일해야 할 때가 있고 쉬어야할 때가 있으며, 잠을 자야 할 때가 있고 일어나야 할 때가 있다. 아침이면 해가 뜨고 밤이면 달이 뜬다.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봄이 되면 싹이 트고, 가을이 되면 곡식이 무르익는다. 인간의 일이나 우주 만물에는 합당한 박자가 있다. 그 박자에 순응하지 않을 때 질서가 깨지고 혼란이 오기 시작한다. 우리의 삶에도 박자가 있다. 쉬지 않고 일만 할 수는 없다. 아무리 바빠도 잠은 자야하고, 아무리 바빠도 밥은 먹어야 일을 할 수 있다.
우리가 삶의 박자를 상실했다면 두 가지 측면에서 생각해봐야 한다. 바로 외부의 상황과 내면의 질서 측면이다. 외부의 상황은 개인적 차원에서 통제하기에 한계가 있다. 그칠 수 없는 일의 흐름에 빠져있을 때 자신의 박자를 잃게 된다. 또한 내면의 질서가 정돈되어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외부의 자극에 반사적으로 반응을 하거나 마음을 진정시키지 못하고 통제권을 상실한 경우, 스스로 바쁨을 만드는 꼴이 된다. 당장 일을 줄이고 쉴 수는 없다면 하루 몇 분이라도 삶의 박자를 회복하려는 의지의 시간이 필요하다. 박자를 잃게 하는 외부의 상황, 그칠 수 없는 일에서 한발 물러나 내면의 질서를 바라볼 수 있을 때 자신의 박자와 리듬을 회복할 수 있다.
자신만의 박자를 상실하는 이유는 외부의 박자가 빨라 외부 박자에 편입되거나 혹은 스스로 너무 지쳐 박자를 유지할 힘을 잃는 경우다. 오늘날 세상은 너무도 빠르게 돌아가기 때문에 굼뜨고 있다면 도태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외부의 속도에 중독되어 자신의 속도를 잃게 된 것이다. 그러나 자연의 박자는 고유한 속도를 유지한다. 씨를 뿌리면 일정 시간이 지나야 싹트고 열매를 맺는다. 이러한 자연의 질서 속에서 나만의 속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인생에는 속도가 있다. 걸음마를 갓 뗀 아이가 빠르게 달릴 수 없고, 장성한 어른이 기어 다닐 수 없다. 나름대로의 속도가 있기 때문이다. 다산 정약용은 『늙음의 미학』에서 늙음의 박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나이가 들면서 눈이 침침한 것은 필요 없는 작은 것은 보지 말고 필요한 큰 것만 보라는 것이며, 귀가 잘 안 들리는 것은 필요 없는 작은 말은 듣지 말고, 필요한 큰 말만 들으라는 것이고, 이가 시린 것은 연한 음식만 먹고 소화 불량 없게 하려 함이고, 걸음걸이가 부자연스러운 것은 매사에 조심하고 멀리가지 말라는 것이요, 머리가 하얗게 되는 것은 멀리 있어도 나이 든 사람인 것을 알아보게 하기 위한 조물주의 배려요, 정신이 깜박거리는 것은 살아온 세월을 다 기억하지 말라는 것이니, 지나온 세월을 다 기억하면 아마도 머리가 핑할 테니 좋은 기억, 아름다운 추억만 간직할 터이고, 바람처럼 다가오는 시간을 선물처럼 받아들여 가끔 힘들면 한숨 쉬고 하늘 한번 볼 것이라. 멈추면 보이는 것이 참 많소이다.”
이처럼 정약용은 가끔 힘들면 한숨 쉬고 하늘을 보며 멈출 때 보이는 것이 많다고 강조한다. 멈출 때 비로소 자신이 얼마나 바쁘고 숨 가쁘게 달려왔는지 돌아보게 된다. 자신의 속도와 박자를 발견하고 유지할 때 세상을 좀 더 풍요롭게 느낄 수 있다. 현대의 대표적 영적 스승으로 불리는 토마스 머튼도 “행복은 밀도의 문제가 아니라 균형과 질서, 리듬 그리고 조화의 문제이다.”라고 말했다. 멈추고 하늘을 바라볼 때 삶의 균형과 질서, 리듬을 느낄 수 있다.
제3장. 딴짓을 발견하라
눈으로 시작하는 딴짓
눈을 감기도 힘든 시대다. 갖가지 볼거리들이 눈을 자극하고 잠시도 쉬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아침에 일어나서 잠들기 직전까지 새로운 소식, 새로운 정보들은 우리의 눈을 유혹한다. 잠이 들어 수면이 시작되면 외부 감각의 수용이 잠시 중단된다. 기도할 때도 마찬가지다. 간절하게 기도를 하면 저절로 눈이 감긴다. 눈을 감아야 마음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눈을 뜨고 이것저것 보면서 마음의 상태를 고요하게 할 수 없다. 눈을 감고 내면의 호흡에 집중할 때 차분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분주한 일상에서 끝없이 이어지는 흐름을 잠시 중단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눈을 감는 것이다. 사무실에서 일을 하다가 잠시 눈을 감아보자. 사무실에서 일을 하다가 잠시 눈을 감아보자. 들리지 않던 소리가 마치 확성기를 통과한 듯 크게 들린다. 눈을 뜨고 있을 때 간과하고 있었던 수많은 소리들이 귀에 들리기 시작한다. 실제로 시각을 잃을 경우 청각이나 촉각 등의 감각이 시각을 잃기 전보다 월등하게 예민해진다고 한다. 일상에서도 눈을 감으면 다양한 소리가 선명하게 들리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외부의 소리뿐만 아니라 내부의 소리도 들을 수 있다. 여기서 내부의 소리 중 ‘호흡’ 소리에 주목해야 한다. 호흡은 공기가 몸으로 들어왔다가 나가는 과정이다. 생명 유지를 위해 필요한 가장 기본적이고도 중요한 행위이다. 물은 며칠 마시지 않아도 살 수 있지만 호흡은 단 5분이라도 멈추면 죽는다. 호흡은 생명 유지의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며 필수적인 과정이다.
눈을 감고 호흡소리를 들으면 호흡의 깊이와 속도를 느낄 수 있다. 스트레스를 받거나 불안해지면 호흡은 얕고 빨라진다. 뇌는 산소를 충분히 받아들이지 못하게 되고, 몸 전체가 불균형의 상태에 놓이게 된다. 숨이 가쁘거나 스트레스를 받을 때 심호흡을 하라는 것도 뇌에 충분한 산소를 공급하기 위함이다. 눈을 감고 호흡 소리를 들어보면 자신의 상태를 자각할 수 있다. 자신의 상태는 눈을 감았을 때 온전히 느낄 수 있다. 호흡이 빠르다면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호흡을 고르게 해야 한다. 호흡이 이완되었다면 다시 하던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상태가 된 것이다. 눈을 감고 호흡을 느끼며 나 자신을 자각하는 것이 눈으로 하는 딴짓의 시작이다. 이와 같이 눈을 감고 호흡을 다스리는 순간부터 일상의 주도권은 회복되기 시작한다. 내가 왜 분주한 것인지, 왜 혼란스러운 것인지를 인지할 때 나아갈 방향은 더욱 선명해진다.